한국문화

한글이 옛 몽골 문자 본떴다?

한부울 2008. 11. 18. 16:36

한글이 옛 몽골 문자 본떴다?

[조선일보] 2008년 11월 18일(화) 오전 03:13

 


해외의 일부 문자(文字)학자들은 한글이 몽골의 '파스파(八思巴) 문자'를 본뜬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국내 학자들은 지금까지 이 학설에 대해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김정배)이 18~19일 개최하는 '훈민정음과 파스파 문자 국제워크숍'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자리다. 파스파 문자 관련 고서인 영국도서관 소장 《몽고자운》의 영인출판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한 이번 워크숍은 오래 전부터 관련 자료를 분석해 온 정광(鄭光) 고려대 명예교수가 본격적인 '반론'을 마련했다.


파스파 문자는 1269년 티베트 출신의 파스파가 원(元)나라 세조(世祖) 쿠빌라이의 명을 받아 만든 문자로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정 교수는 18일 발표할 논문 〈훈민정음 자형(字形)의 독창성〉에서 훈민정음과 파스파 문자를 면밀하게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훈민정음이 파스파 문자로부터 일부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아음(牙音·어금닛소리), 설음(舌音·혓소리), 순음(脣音·입술소리) 같은 36개의 중국어 자모(字母·한글의 초성)를 기본 틀로 해서 글자를 만들었다는 점 등 유사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 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한글의 자형(字形)은 완전히 독창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파스파 문자와는 다르다"고 정 교수는 말했다. 파스파 문자가 티베트 문자의 형태를 조금 변형해 만든 것인 반면, 훈민정음은 발음기관의 모습과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를 표현해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만든 글자라는 것이다.


《훈민정음》의 〈제자해(制字解)〉편에는 "아음 ㄱ(기역)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습을 본뜨다" "치음(齒音·잇소리) ㅅ(시옷)은 치아의 모습을 본뜨다" "후음(喉音·목구멍소리) ㅇ(이응)은 목구멍의 모습을 본뜨다"는 등의 글자 창제 원리가 적혀 있지만 외국 학자들은 이를 무시했다고 정 교수는 말했다. 또

▲소리가 나지 않는 'ㅇ'자를 써서 모든 중성자(모음)를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

▲파스파 문자에는 없는 종성(받침)이 존재하는 것 역시 훈민정음만의 독창성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가 19일 발표하는 〈훈민정음의 제정과 반포 재고〉는 《해례본 훈민정음》의 완성일인 1446년(세종 28) 9월 상한(양력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한 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실록에 의하면 훈민정음의 창제는 1443년(세종 25) 12월(양력 1444년 1월)에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글의 파스파 문자 모방설'의 대표적 학자인 게리 레드야드(Ledyard) 미국 컬럼비아대 명예교수, 몽골계 학자인 주나스트(照那斯圖) 중국 사회과학원 교수 등도 참석해 한글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을 벌이게 된다. (031)709-2898


2008년 11월 1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글의 파스파 문자 모방설'을 반박하고 있는 정광 고려대 명예교수(왼쪽). 오른쪽은 김정배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유석재 기자


유석재 기자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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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창제인가 모태있나

[한국일보] 2008년 11월 18일(화) 오전 02:32

 

 

"원나라 파스파 문자 본 삼았다" 對 "모음 중성체계는 독창적"


한글은 정말 독창적으로 창제된 문자일까. 학교에서는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1446년 훈민정음을 새로 만들어 반포했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한글과 비슷한 고대 문자는 사실 동아시아에 널리 퍼져 있다.


인도 구자라트 지방과 티베트의 고대 문자, 신대문자(神代文字)로 불리는 일본 아히루(阿比留)문자 등이 그것이다. <세종실록>과 <훈민정음해례>에도 '옛 글을 본떠(倣古篆)' 훈민정음을 만들었다고 명기돼 있다.


학계는 여러 문자 중 한글의 연원을 밝혀줄 것으로 몽골의 파스파(八思巴)문자를 주목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훈민정음과 파스파문자를 비교연구해온 국내외 학자들이 참가하는 워크숍 '훈민정음과 파스파문자'를 18, 19일 연다. 워크숍은 파스파문자로 한자의 표준음을 기록한 <몽고자운(蒙古字韻)>의 국내 영인본 출간을 기념해 마련됐다.


"훈민정음은 파스파문자를 본떠 만든 것"


게리 레드야드 콜롬비아대 명예교수(한국사)는 15세기 조선과 중국의 관계를 파헤치며 훈민정음의 기원을 추적한다. 레드야드는 고대 문자들의 자음을 비교해 훈민정음과 파스파문자가 티베트, 더 거슬러 그리스 문자와도 연관이 있음을 주장해온 학자다.


이번 발표 논문 '방고전(倣古篆)의 문제: 파스파문자와 훈민정음'을 통해, 그는 훈민정음이 본을 삼았다고 밝힌 '고전(古篆)'이 파스파문자라며 그 근거를 제시한다.


그는 상고주의(尙古主義)의 영향으로 15세기 조선의 학자들이 전서(篆書)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었음을 여러 사료를 통해 드러낸다. 이는 훈민정음보다 175년 앞서 원나라에서 만들어진 파스파문자도 마찬가지였는데, 두 문자는 모두 전서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레드야드의 설명이다.


그는 두 문자의 구상ㆍ발명 과정과 구조의 유사성, 원과 조선의 학자들이 문자 창제 후 음운론 연구에 가장 먼저 착수한 점(몽골의 <몽고자운>과 조선의 <동국정운> 발간) 등을 들며 두 문자의 연결고리를 보여준다.


게리야드는 이번 논문에서 특히 훈민정음 반포 당시의 정치ㆍ문화적 맥락에 주목한다. 원의 통제를 받았던 고려의 문화적 유산과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세종의 가족사적 내력(이씨 왕가의 변경생활)이 그것이다.


그는 통역 교육기관인 사역원에서 파스파문자가 1469년까지 교육됐다는 실록과 <경국대전> 등의 기록을 통해 조선 초까지 이 문자가 널리 퍼져 있었음을 밝힌다. 신숙주, 최세진 등의 언어학 문헌들도 당시 파스파문자의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훈민정음의 자형(字形)은 독창적인 것"


정광 고려대 명예교수(국문학)도 한글에 대한 국수주의적 태도를 경계한다. 지금으로부터 560여년전에 음운이라는 단위를 인식해, 한국어의 음운에 맞는 기호체계(훈민정음)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 교수는 초성자가 한자음의 음모(音母)에 근거해 만든 것이라 할지라도, 중성자(모음)만은 새로운 것이라 주장한다. 모음체계의 독창성이 훈민정음이 파스파문자와 구별되는, 다른 문자인 근거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몽고자운>의 분석을 통해 파스파문자는 모두 티베트문자를 변형시킨 것임을 밝힌다. 반면 <훈민정음해례>를 근거로 훈민정음의 기본 초성(ㄱ, ㄴ, ㅁ, ㅅ, ㅇ)은 발음기관을 본떠 만든 것이고, 일부 자음에서 유사성을 보이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ㅇ'의 제자 방식, 음소 단위 표기법 등에서 파스파문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 교수는 천지인삼재(天地人 三材)를 기호화해 중성체계를 만든 것은 전혀 독창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파스파문자


쿠빌라이 칸의 명을 받아 티베트 출신 승려 파스파(1235~1280)가 만든 몽골어 문자. 몽골어뿐 아니라 중국어, 티베트어, 산스크리트어, 투르크어 등을 표기하는 데 쓰였다. 자음 30자, 모음 8자, 기호 9개로 이뤄진 표음문자다. 세계 문자학계에서는 이 문자가 훈민정음 창제에 결정적 영향을 줬다는 것이 상식으로 통한다.


유상호기자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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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몽골‘파스파 문자’영향 받아

[중앙일보] 2008년 11월 18일(화) 오전 01:06

 

 

“훈민정음과 한글에 대한 국수주의적인 연구들은 이 문자의 제정과 그 원리·동기에 대해 진상을 호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국어학자 정광(68) 고려대 명예교수는 훈민정음의 ‘독창성’에 대해 국내 학계의 주류와는 다른 견해를 펼친다. 훈민정음이 창제 과정에 있어서 몽골의 ‘파스파 문자’를 참조하고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파스파 문자란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칸이 라마승인 파스파(八思巴)에게 명해 만들어 1269년에 반포한 문자다. 한자의 발음과 몽골어를 기록할 수 있는 문자로서 ‘몽고신자(蒙古新字)’로도 불린다. 원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고려뿐 아니라 조선 초기의 지식인들은 이 파스파 문자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췄다고 한다.


정 교수는 “훈민정음(1443년 창제)은 174년 앞서 만들어진 파스파 문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을 담은 논문을 18일~19일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주관하는 ‘훈민정음과 파스파 문자 국제 학술 워크숍’에서다.


정 교수에 따르면 파스파 문자는

▶중국의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한 수단이며

▶중국의 전통적인 자모(字母) 36자를 기본으로 만들어졌고

▶모음의 개념을 담은 유모자(喩母字) 7개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훈민정음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자들이 훈민정음이 당시 한국어 음운을 분석해 자음과 모음을 추출하고 여기에 문자를 하나하나 대응시켜 만든 것으로 잘못 이해해 왔다는 것이 정 교수의 입장이다. 언어학에서 음운 분석은 19세기에나 비로소 제기된 방법이다. 이를 560여 년 전에 인식했다는 것은 ‘현대적 편견’이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초성에 해당하는 중국 자모의 36자를 파스파 문자는 중복음을 제외해 31자로 줄였고, 우리는 동국정운 23자와 훈민정음 17자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체계는 원나라 말기에 편찬된 『몽고자운(蒙古字韻)』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이를 근거로 훈민정음은 처음엔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한 발음기호로서 창제됐다고 본다. 그러나 이 발음기호로서의 유용성 때문에 창제 직후 고유어 표기에도 활발하게 쓰였다는 것이다.


훈민정음의 소위 ‘파스파 문자 기원설’은 해외 학계에서는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 학계에선 ‘파스파 문자’ 자체에 대한 해독 능력이 떨어지고, 해외 학계에선 한글에 대한 오해 등이 겹쳐 혼선을 빚고 있다는 것이 정 교수의 지적이다.


해외 학계에선 훈민정음이 글자 모양 자체도 파스파 문자를 교묘하게 변형시켜 모방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정 교수는 “발음기관을 상형해 만든 훈민정음의 자형 자체는 독창적인 것”이라는 견해다. 또 ‘천(·)·지(ㅡ)·인(ㅣ)’의 기본자를 바탕으로 초출자(ㅗ,ㅏ,ㅜ,ㅓ)와 재출자(ㅛ,ㅑ,ㅠ,ㅕ)를 만든 중성(=모음)의 제자 원리는 훈민정음의 가장 독창적인 업적이라고 말한다. 정 교수는 “훈민정음의 모음이 파스파자의 유모음을 참조한 것이라 해도, 중성을 독립시켜 초성과 더불어 인류 최초의 자모문자를 만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배노필 기자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