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논란 유감 / 이만열

한부울 2008. 10. 7. 20:19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논란 유감 / 이만열

[한겨레신문] 2008년 09월 30일(화) 오후 08:29


[시론]


한-일 역사공동위원회 제1기에 참여했을 때, 일본 쪽 학자들이 비판조로 언급한 대목이 생각난다. 일본의 교과서가 검인정인데, 한국은 아직도 국정 교과서를 편찬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근현대사가 검인정으로 간행되었지만, 공통필수 과목에서 국정 국사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음을 두고 이렇게 힐난했다. 이런 비판에는 아직도 한국이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시행함 직한 국정 국사 교과서를 사용하면서 어떻게 검인정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를 비판할 수 있는가 하는 조롱조의 항의가 담겨 있었다.


오늘날 논란되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관련 의제에서도 이런 시각차를 의식할 수 있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국정 교과서로 공통필수 국사를 공부하고, 고등학교 2~3학년에서는 ‘한국 근현대사’를 검인정 교과서로 공부한다. 이는 ‘한국 근현대사’를 선택과목으로 선정한 취지를 교과서 제도를 통해서도 뒷받침하려고 한 것으로 안다.


교과서를 검인정으로 한 것은 검인정 교과서가 갖는 장점 때문이다. 국정제도가 갖는 획일성과 경직성을 탈피하기 위함이다. 한 가지 사실을 두고도 보는 각도에 따라서 사실과 해석이 다를 수 있다. 다양성은 민주사회의 장점이자 획일성을 극복하는 데서 가능하다. 이것은 국정 교과서가 갖는 경직성과도 대조가 된다. 그동안 우리는 특수한 상황을 내세워 그런 획일성을 정당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사회의 민주화는 역사 이해에서도 획일성을 탈피하고 다양성을 요구했다. 검인정 교과서는 민주화된 사회의 요청에 따라 다양성과 유연성을 전제로 해서 만들었다.


따라서 검인정 제도 아래 교과서들은 역사 이해와 해석, 그리고 서술에 온도차와 진폭의 고저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되 ‘오~대~한민국’이라고 열광적으로 애정 표시를 할 수도 있고, 독재와 부패를 비판하면서 냉정하게 애정을 표시할 수도 있다. 비판적인 것은 열광적인 것과는 다른 가치지만, 이들이 조화를 이뤄야 그 사회의 건전성을 담보한다. 검정제도 아래 교과서가 갖는 장점도 바로 이런 것이다. 검정제도가 갖는 이런 장점은 획일적인 경직된 잣대로는 이해할 수 없다. 오늘날 비판자들의 시각에서 교과서 검정제도가 갖는 이런 유연성과 장점을 왜 애써 무시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의 논리에서 비판과 부정(否定)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절망감을 준다.


교과서 논란에서 유감스러운 것은 또 있다. 공당에서 교과서 문제를 다루겠다고 하면서 왜 대화 상대의 폭을 넓히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식으로 대화 상대를 특정화하면 또다른 편파성 논란은 명약관화하다. 더구나 그들의 역사의식이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며, 우리 독립운동사를 폄훼하고 있음에랴. 그 단체도 검인정 제도의 장점을 활용하여 자기주장을 담은 교과서를 만들어 당당하게 내 놓으면 된다. 다른 교과서를 ‘자학사관’이니 ‘좌편향’이니 폄훼하기 전에, 비슷한 용어를 사용한 일본 극우파의 교과서가 그 국민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도 살펴보기 바란다.


또 하나, 교과서 심의와 관련된 것이다. 교과부 장관이 수정을 명할 수 있다. 검정교과서 6종은 국정기관의 심의를 거쳐 간행되었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수정도 했다. 이미 심의를 거친 사안을 또 들먹이는 것은 순수한 의도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교과부가 마련한 교과서 편찬지침서를 먼저 검토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리고 차제에 역사 교과서 심의업무가 직제상으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국사편찬위원회로 이관되었는지도 궁금하다. 국가기관이 역사 해석을 재단하려 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


이만열/숙명여대 명예교수 한겨레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