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ROCKET), 그 기나긴 역사 속으로-V2
[파이낸셜뉴스] 2008년 08월 29일(금) 오전 10:50
로켓에는 그 나라의 과학기술은 물론 인류의 꿈과 희망, 그리고 도전정신이 담겨 있다. 1961년 구소련이 세계 최초의 유인우주선을 쏘아 올렸을 때나 1969년 미국의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탈것의 추진력은 반동에 의하여 얻어진다. 사람은 신발을 신고 지면을, 자동차는 바퀴로 대지를, 배는 스크루로 물을, 항공기는 프로펠러 등으로 대기를 박참(밀어냄)으로써 추진된다. 그러나 로켓은 아무것도 없는 진공 중에서 추진력을 얻어야 한다. 인류가 우주 공간으로 진출하기 위해 진공 상태의 우주에서도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바로 로켓이다. 로켓은 자체 내에 저장된 물질을 외부로 분사하여 반작용의 힘으로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추진기관이다.
로켓을 처음 발명한 나라는 화약의 발명국인 중국이다. 11세기 초에 만들어진 화전(火箭)이라 불리는 군용 병기 로켓으로 이것은 불화살에 불과했다. 창의 앞부분에 매달아 놓은 통에 화약을 넣고 발사하면 통속의 화약이 맹렬히 타면서 연소가스가 뒤로 분출하고 그 반작용으로 앞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로켓기술이 유럽으로 전파되고 독일과 미국, 러시아를 거치면서 우주로켓으로 꽃을 피웠다.
우리나라 로켓의 시조는 고려 말 최무선에 의해 만들어진 주화(走火)다. 이것이 조선시대 세종 때(15세기) 신기전(神機箭)으로 이름이 바뀌어 발전했다. 신기전은 화약의 폭발에 의한 추진력으로 날아가는 로켓 화살이다. 화차는 그 발사대였다. 제일 큰 대신기전은 전체길이가 5.5m로 약 2km정도를 비행했고 추진제를 담았던 통은 종이를 말아서 만들었다.
그 후 19세기 초 영국의 콩그레브에 의해 화약추진제를 개량하고 비행을 안정시키는 유도봉을 단 로켓이 개발됐다. 최대 사정거리가 2700m에 달했던 그의 로켓은 나폴레옹 전쟁과 1812년 전쟁 때 영국군이 사용하며 로켓이 군용으로 유럽에서 널리 사용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주여행의 가능성과 함께 그 운송 수단으로 로켓을 주목한 사람은 러시아의 치올코프스키다. 당시의 로켓 원리는 ‘배기가스가 공기를 밀기 때문에 추진력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치올코프스키는 1897년 ‘진공내에서도 로켓이 배기가스의 반작용에 의해 추진된다’고 주장해 우주여행을 위한 운송수단이 무엇인가를 알게 했다. 이것은 그가 죽은 후 로켓이 우주공간에 발사됨으로써 증명되었다.
로켓의 추진원리를 이용하여 실제로 로켓의 제작을 실현한 선구자는 미국의 고더드다. 고더드는 1926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액체연료 로켓 발사를 성공시킨 인물이다. 고체추진제 로켓은 짧은 거리를 비행하는 데는 훌륭하지만 커다란 로켓을 만드는 데는 맞지 않아 액체추진제 로켓을 개발했다. 또한 1935년 3월 28일 역사상 처음으로 자이로스코프 제어장치가 장착된 로켓을 띄웠다.
근대 로켓의 실용화의 길을 터놓은 사람은 폰 브라운이다. 그는 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4년 9월부터 영국 시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그 유명한 V-2 로켓을 개발한 주인공이다. 이 로켓은 인간이 달세계를 정복하는 원동력이 된 현대 로켓의 시조다. 액체연료로 추진되는 V-2 로켓은 1톤의 탄두를 300㎞까지 운반하는 능력을 보유했다. 그러나 V-2 로켓의 강력한 위력에도 불구하고 전세를 만회할 수 없었던 독일의 항복으로 1945년 2차 세계 대전은 끝이 났고 미국은 독일의 폰 브라운을 비롯한 주요간부급 과학자 100여명과 많은 V-2 부품들을 확보했다. 반면 소련은 다수의 실무진과 기술자들을 데리고 갔다. 이들 독일 과학자들이 후에 미국과 구소련의 인공위성 궤도진입과 우주선 실용화 등 우주개발연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자국의 인공위성을 자국의 로켓으로 발사한 나라 중 일본과 인도, 그리고 이스라엘을 제외한 미국·러시아·프랑스·영국·중국 등은 모두 독일의 V-2 로켓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한 로켓으로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V-2 로켓이 전세계의 로켓 개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구소련간의 냉전시대가 도래하면서 양국은 국가적 자존심을 걸고 우주로켓 개발에 경쟁적으로 몰두했다. 1950년대 초 미국은 다단(multi-stage)로켓으로 소형 인공위성을 지구궤도에 진입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에 맞춰 미국으로 건너간 폰 브라운이 ‘레드 스톤’이란 단거리 탄도탄을 만들었고 그것을 좀 더 크게 해 중거리 탄도탄인 주피터를 개발했다.
이무렵 구소련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체로 사용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에 성공, 우주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구소련의 첫 인공위성 발사에 커다란 충격과 자극을 받은 미국은 주피터-C를 발사체로 사용해 1958년 1월 31일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 익스플로러1호를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주피터-C는 레드 스톤 액체추진제를 사용한 중거리 탄도미사일에 3단의 상단에 고체추진제 로켓을 추가로 부착한 것이다.
미국의 성공을 비웃기라도 하듯 1961년 4월 12일, 구소련의 코로레프가 만든 보스토크 로켓이 가가린 비행사를 우주선 ‘제비’에 싣고 인공위성 궤도로 날아갔다.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이라는 로켓 개발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대사건이었다.
그 뒤 1969년 7일 20일, 폰 브라운이 지휘하는 마샬 우주비행센터에서 개발한 새턴V 로켓이 아폴로 11호를 달에까지 올리는 데 성공했다. 유인 우주로켓이 최초로 달에 착륙하는 대역사가 이뤄진 것이다. 새턴 로켓은 우주공간에서 작동하도록 특별히 설계된 최초의 부스터 로켓으로 상징된다.
아폴로의 성공적인 달 착륙과 귀환으로 명예를 회복하고 우주 경쟁에서 구소련을 앞지르기 시작한 미국은 우주 로켓을 한번 사용하고 폐기하는 게 아니라 지구로 귀환시켜 재사용이 가능한 ‘한 번 쓰고 버리는 형’에서 ‘재사용형’으로의 우주왕복선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우주 발사체의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최초의 왕복선인 컬럼비아호는 1981년 4월 12일 발사됐다. 이 모두가 인류의 오랜 꿈인 우주탐사를 이룩하기 위한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력이 꽃을 피운 결과이다.
앞으로 개발될 차세대 로켓은 재사용형·저비용·저궤도위성 발사체다. 그 대표적 예가 미국항공우주국에서 개발 중인 X-34다. X-34는 비행기에서 발사되는 우주로켓으로 무게 1100kg의 인공위성을 28회 정도 지구 저궤도에 발사할 수 있도록 설계되고 있다. 21세기의 우주개발 방향 중 중요한 하나는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우주개발이다.
(글=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자료제공=한국항공우주연구원)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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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獨V2 로켓 런던 공습
[동아일보] 2008년 09월 08일(월) 오전 02:59
1944년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밀려 궁지에 몰리게 된 독일의 히틀러에게 한 편의 영화가 전달됐다. 지상에서 발사된 길이 14m, 무게 125t의 거대한 로켓이 100km를 넘게 날아가는 모습을 영화로 본 히틀러는 “6년만 일찍 개발됐었더라면…” 하며 가슴을 쳤다고 한다. 히틀러는 즉각 탄두만 980kg인 이 거대한 로켓을 만들 대규모 공장을 짓도록 지시했다.
그로부터 2개월여가 지난 9월 8일 이 거대한 로켓이 영국 런던 하늘에 나타났다. 단 한 대의 폭격기도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거대한 폭탄이 쏟아져 내리는 모습을 본 런던시민들은 경악했다. 보복무기(Vergeltungswaffe) 2호의 머리글자를 따 ‘V2’로 명명된 이 로켓은 이후 6개월여 동안 3000여 발이 발사됐고 런던을 포함한 연합국 주요 도시 시민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대형 트럭을 이용한 이동식 발사대에서 쏘아지는 데다 당시로는 요격이 불가능한 시속 5760km의 속도로 날아오는 V2 로켓에 연합군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V2 로켓의 명중률이 매우 낮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목표 지점에서 몇 km씩 떨어진 지점에 떨어졌고 런던으로 발사된 V2 로켓 중에는 해협을 건너지 못해 바다에 떨어진 것도 적지 않았다.
V2 로켓의 비싼 생산비용은 오히려 독일군의 골칫거리가 됐다. V2 로켓 한 발의 제조비는 전투기 한 대의 제조비와 비슷했다.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독일이 만든 V2 로켓은 6000여 발로 탱크 4만8000여 대를 만들 수 있는 비용이 V2 로켓 제조에 들어갔다.
1945년 전쟁이 끝났지만 V2 로켓의 주가는 떨어지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미국과 소련은 V2 로켓 개발 연구원과 발사되지 않은 V2 로켓 확보 경쟁에 나섰다. 미국은 V2 로켓 개발자인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를 포함해 126명의 주요 연구원을 수백 발의 V2 로켓과 함께 미국으로 데려갔다.
소련으로 압송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미군에 붙잡힌 브라운 박사는 1950년부터 미국 육군병기공장의 유도탄 연구 기술부장으로 장거리로켓을 연구했다. 1960년부터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소속돼 아폴로계획을 포함한 우주개발계획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덕분에 V2 로켓에 사용된 엔진구조와 유도제어 기술은 아폴로 우주선인 새턴 5호에 이용될 수 있었다. 소련도 V2 로켓 발사 연구원과 V2 로켓을 확보한 덕분에 소련 최초의 미사일인 R1을 만들어냈다.
이현두 기자 동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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