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김홍도, 신윤복의 조선의 칼

한부울 2008. 9. 1. 20:42

김홍도, 신윤복의 조선의 칼

[대륙조선사연구회]글쓴이: 임연수

 

                                      ▲ 창의토왜도(倡義討倭圖, 고려대 박물관 소장) 

 

창의토왜도(倡義討倭圖)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왜군이 함경도에 들어왔을 때 의병을 일으켜 대항했던 북평사 정문부의 활약상을 그린 그림입니다. 왜군을 격퇴하는 모습과 왜군과 내통한 자의 목을 치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중앙 상단). 적군과 내통한 자는 관이에 귀를 꿰어 군중을 한 바퀴 돈 다음 효수하지요.

특히 활을 쏘며 왜군을 추격하는 장면에서 기마병들의 등자(발걸이)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들의 말 타는 실력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말 타는 실력이 서투르면 발 앞부리가 아래로 처지고, 말을 잘 타면 발뒤꿈치가 아래로 처진답니다. 종종 다른 사료에서는 발 앞부리가 처진 고관대작이 말 타고 가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직접 마상무예를 익히지 않는다면 이런 부분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지요.

 

                                           ▲ 뇌공도(雷公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뇌공도(雷公圖)

이 작품은 조선후기 궁중화원었던 김덕성이 그린 것으로 지본에 채색한 형태로 두루마리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김덕성을 평하기를 자못 그림의 이치를 알고 동료들 사이에서 칭찬을 듣는다 하였으며, 이후 김덕성의 아들 김종회 또한 가업을 이어 그림에 뛰어난 실력을 칭찬 받습니다.

외수검을 굳게 움켜쥐고 등에는 망치 하나를 메고 벼락을 치는 기세가 그림에 가득합니다. 허리춤에 찬 호리병에는 청주가 가득하겠지요. 근육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은 마치 서양의 조각상을 보는 듯합니다.

 

 

                      ▲ 포의풍류(布衣風流, 단원 김홍도 '한국의 미 21'중앙일보 1985년) 

 

포의풍류(布衣風流)

조선후기 풍속화가인 단원 김홍도의 작품으로 작품명이 예술입니다. 비파를 켜고 있는 조선 한량의 모습을 저리도 잘 표현하였습니다. 바닥에는 생황 하나 그리고 검집을 잃은 검 한 자루가 외로이 누워 있습니다. 물론 풍류의 기본인 술은 호리병에 늘 그와 함께 합니다. 이미 뽑아 버린 검은 저리도 애처로이 검집을 부르건만, 쓸쓸한 비파 소리만 외로운 칼 한 자루를 달래는 듯합니다.

 

                                      ▲ 유불선도(儒佛仙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불선도(儒佛仙圖)

조선시대 이인문(李寅文)이 그린 그림으로 지본에 담채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섯 명의 풍류객들이 그림을 그려 놓고 그림에 시하나 붙일 모양인가 봅니다. 술병과 붓 그리고 검 한 자루가 함께 하니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스님이라도 좋고, 유학에 이름 있는 학자도 좋고, 도교에 심취한 도인도 좋고, 그렇게 따스한 오후 한 자락이 흘러갑니다. 만약 이렇듯 정파와 종교에 상관없이 정치가 이뤄졌더라면 조선이라는 국가가 그렇게 허망하게 끝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검선(劍仙,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검선(劍仙)

18세기에 그려진 작품으로 멋스런 소나무 아래 칼 한 자루와 함께 그의 얼굴이 가득합니다. 검선이라 칼을 가지고 이미 신선의 반열에 오른 노 검객의 모습이 부럽기만 합니다. 이젠 칼을 떠나 선계로 접어 들어가면 칼이 있어도 좋고, 칼이 없어도 좋을 듯합니다. 외수 검의 형태로 무척이나 화려한 검막이 인상적입니다.(그림 왼편 하단에 검 손잡이가 보입니다)

 

                                            ▲ 쌍검대무(雙劍對舞, 간송미술관) 일부 

 

쌍검대무(雙劍對舞)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조선시대 풍속화가로 이름난 혜원 신윤복의 작품입니다. 국보 13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검무를 추는 두 무녀의 고운 자태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치맛자락이 휘날리는 모습을 보니 무예24기가 실린 무예도보통지의 쌍검법 중 초퇴방적세로 고요히 뒤를 돌아 회전하며 칼이 춤추는 듯합니다. 세필로 꼼꼼하게 그려진 필선과 진한 채색을 살펴볼 때 아마도 고가집 작품 감상용 그림이지 않을까 합니다. 어여쁜 여인의 쌍검 휘두르는 모습이 눈앞에 선해,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픈 생각이 간절합니다.

"나도 본시 팔도의 한량으로 칼에 묻힌 지 십여년이오."

"어디 한번 나와 대무(對舞:둘이 짝을 지어 추는 춤)나 한판 멋들어지게 춰 보오이다."

 

                          ▲ 비선검무(飛仙劍舞, 단원 김홍도 '한국의 미 21'중앙일보 1985년) 

 

비선검무(飛仙劍舞)

앞에 설명한 포의풍류를 그린 조선 풍속화의 거장 단원 김홍도의 비선검무입니다. 하늘 훨훨 나는 고운 선녀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저리도 고운 자태로 하늘을 나니 뭇 사내들 가슴이 아마도 많이 콩닥 거렸을 듯…. 김홍도는 앞에서도 설명하였지만 궁중 화원으로도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정통무예인 무예24기를 집대성한 무예도보통지의 그림 또한 김홍도의 화풍이 강하게 나타나죠. 물론 일성록을 살펴보면 정조 대왕께서 무예도보통지의 완판을 보시고 흡족하셔서 그림 작업에 함께 한 허감 이하 네 명의 화원들에게 푸짐한 상을 내리십니다. 아마도 무예도보통지의 그림 또한 김홍도의 제자들이 그렸을 듯합니다.

 

                                 ▲ 안릉신영도(安陵新迎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부 

 

안릉신영도(安陵新迎圖) 일부

본 그림은 1786년에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의 기록화 중 반차도의 형태로 그려졌습니다. 요산현의 부친이 1785년 황해도 안릉의 신임현감으로 부임하는 광경을 잘 묘사하였으며 특히 말위의 군관은 조선의 전통적인 검 패용방식인 띠돈을 이용한 허리고정 양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등 뒤 기마병이 착용하는 궁시일체인 동개의 화살까지 세밀하게 묘사하여 좋은 자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동래부사접왜도(東萊副使接倭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부 

 

동래부사접왜도(東萊副使接倭圖) 일부

이 작품은 동래부사가 초량 왜관에 온 일본 사신을 맞이하여 의례를 지내는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칼 두 개를 허리춤에 찬 일본 관리들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특히, 일본관리들과 가장 근접해 있는 조선 관리의 환도 패용 방식은 일본과 아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곳의 환도 패용 방식 또한 띠돈을 이용한 방식으로 보입니다. 아직까지도 허리띠에 칼을 뒤집어 패용하고 일본식 치마바지를 입으며 전통을 말하는 것은 조금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합니다.

 

                                             ▲ 책가도(冊架圖, 한국 국학진흥원 소장) 

 

책가도(冊架圖)

이 작품은 조선시대 어느 무인의 서가를 작은 병풍에 그린 작품입니다. 서가에 들어서면 책장에 쌓인 책과 무인임을 알리는 목화(무인들이 신던 신발)와 환도(환도: 조선시대 주로 사용되었던 외날 검)가 반깁니다. 조선후기의 검패용 방식인 분합띠(광다회)와 회전형 띠돈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검집을 둘러싼 은은한 어피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어피의 빛깔로 보아 아마 가오리 가죽인 듯합니다. 외수와 쌍수를 겸용으로 사용하였기에 환도의 손잡이는 짧게 느껴집니다. 앞의 유불선도(儒佛仙圖)의 모습처럼 지금 정치하시는 분들이 정파와 종교에 상관없이 마음을 합치고 상생의 묘미를 살린다면 좀더 살 만한 대한민국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만약 지금처럼 자신의 당만을 위하여 끊임없이 논쟁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며 오늘을 살아간다면 비록 힘든 오늘이지만 힘차게 내딛을 미래를 향한 믿음이 있기에 결코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대륙조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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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병사들의 모자는...몽골복장입니다. 

글쓴이: 홍진영 조회수 : 187 08.09.01 02:04

 

 

 

                                ▲ 안릉신영도(安陵新迎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부


몽골의 모자

글쓴이: Sadary 조회수 : 38 08.07.21 09:52

 

위 임선생님 글의 황해도 병사들이 쓴 모자는...몽골의 전통모자입니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돼는 디자인은...청나라(만주)의 영향을 받은 형식이며...옷깃도 그렇습니다만...원래의 전통복식은 우리 한복의 옷깃과 같으며...모자는 신라 기마 인물상의 스키타이 식입니다.


이렇게 글을 쓰면 또 어느 선생님은...거  봐라 몽골은 서역에 있었다...앤드 청(만주)은 없었다...내외 몽골 전체도 모두 조선의 강역였다~!,,, 하시겠으나 그렇친 않아 보입니다.


스키타이는 분명 동북에서 왔다고 양이들이 명기 했거든여,...지들 조상의 흔적이 쪼금이라도 발견됐다면...아시아는 본디 유럽의 속국였다~!,,, 우기고도 남았을 서양 제국주의자들의 과거의 행태로 보면 스키타이의 복식은 분명 유라시아 동쪽에서 서쪽으로도 진출했었던 복장임이 상식일 겁니다.


청(차하르 몽골)은 현 북경과 산동...만주일대를 접수한 싯점부턴...신강성과 알타이 인근을 포기하고...조선에 대신 경략을 부탁합니다. 그래서 조선군이 러시아군과 조우하게 �니다.


물론,이순신 장군의 녹둔도 전투등이 치뤄진 이전에도 알타이 인근과 신강성은 조선의 강역였을 테고여...병자란 이훈 모두 여진의 속지가 됐다가...여진이 현 대련&텐진&청도일대의 청구리지역을 어쩜 한반도까지 먹곤 야인여진들의 빈번한 침범으로 골치아프고...

상대적으로 현 만주보다 훨 쓸모없는 이 서부지역을 조선에게 다시 돌려줬다 보여 집니다.


이 지역이 과거엔 비옥했던 알알해까지 포함한  알타이 산맥지대로...현 신강성이요...거기가 황해도로 보이며...그 황해는...타클라마칸 사막으로...고대엔 많은 황톳물호수들의 내륙바다였기에 황해였고 황해도였다 예상해 봅니다. 이 곳 황해도로 추정돼는 우루무치 일대도 역시 과거나 현재나 몽골족들의 강역입니다.

 

 

                                                             도제기마인물상


말 궁뎅이에 모셔진 저 등잔은...향로라는 학설 보단...유목족들이 쓰는 고기 삶아 먹는 솟(동복?) 이란 해설이 더 맞을것 같습니다.

진의 유민인...몽골이나 키타이족들이 백제(전라도?) 옆 현 경상도인 과거 신라(?)로 피난 온게 아니라...스키타이 몽골 만주 한반도는...최 근세까지 유구하게 한 덩어리였다 보여 집니다. 그게  전통적인 구리요... 구려요...고려..코리아의 라인이라 예상해 봅니다


일제전후에 피난온 중원 남부의 중조인들이...현 한반도에 기득권(거점)확보를 위해 구라를 쳤고...그걸 좀 아는 일부 후손들도 현재까지 구라를 치고 있다 보여집니다. 물론 왜놈들도 도와 줬겠고여...현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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