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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순조 당시의 서토의 반란이란?

한부울 2008. 8. 13. 23:57
 

조선 순조 당시의 서토의 반란이란?

OUTSIDER (2008-08-12 10:06:22)


순조 15권, 12년(1812 임신 / 청 가경(嘉慶) 17년) 1월 24일(무술) 6번째기사

양리 선발·구휼·각도 섬의 정찰에 대한 수찬 이광문의 상소


수찬 이광문(李光文)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서토(西土)의 소추(小酋)가 감히 미친 듯이 역적질을 제멋대로 저질러 위로 신려(宸慮)를 번거롭게 한 지 두어 달이 지났습니다만, 다행히 천도(天道)가 순리를 도와 승리의 소식이 잇달아 이르러, 소탕하는 날이 아침 아니면 저녁에 있게 되었으니, 이는 진실로 인심이 의(義)를 향하고, 뭇 군사들이 왕명을 받든 보람입니다. 그리고 삼가 살펴보건대, 경보(警報)가 있은 이후 하늘이 성충(聖衷)을 계도하여 경구(警懼)하는 마음을 깊이 두시어, 연한(燕閒)의 절선(節宣)은 마땅함을 얻고 신린(臣隣)을 진접(晉接)하심은 때에 맞았습니다. 그리하여 거조(擧措)로 말할 것 같으면 가볍게 행동하는 실수를 경계하고, 주복(奏覆)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지체되는 한탄이 없게 되었으니, 마땅히 하늘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백성의 뜻을 진복(鎭服)시킴으로써 능히 신무(神武)로 확청(廓淸)하는 공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애초 변란(變亂)을 겪으면서 나라 안이 소란스러워지자, 순역(順逆)·현우(賢愚)를 논할 것 없이 반드시 모두 발돋움하여 기다리면서 보고 듣고 있으니, 전하의 한마디 말이 실수를 하면 사방이 흩어지고, 한 가지 일이 마땅하면 만백성이 마음을 붙일 것입니다. 행동이 안위(安危)에 관계되니, 삼가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이 삼가 며칠 전에 내려진 전교(傳敎) 내리신 것을 읽었는데, 말씀하시기를, ‘오늘의 급선무로 말하자면, 주륙(誅戮)은 오히려 가벼운 일이고, 초래(招徠)하는 것이 중요하며, 효유(曉諭)하는 것이 먼저이고, 전안(奠安)케 하는 것이 다음이다. 나의 진실로 괴로와하는 지극한 뜻을 체념(體念)하여 나의 서쪽을 돌아보며 근심하는 것을 펴 주는 것은, 생각건대 방백과 곤수(閫帥)가 일심으로 선양하는 데 있지 않겠는가?’라고 하셨습니다. 거룩합니다. 성상의 말씀이야말로 돈어(豚魚)를 감동시키고, 용사(龍蛇)를 교화할 만하니, 어찌 봉천(奉天)의 조서(詔書)가 능히 산동(山東)의 교장(驕將)·한졸(悍卒)로 하여금 창을 버리고 눈물을 흘리게 했던 데에 그치고 말 뿐이겠습니까? 그러나 저 반측자(反測子)들은 반드시 아직도 의심과 두려움을 품고 완전히 마음이 안정되지 안아서 머리를 모아 모의하고 귀를 기울여 듣되, 전하께서 행하시는 일을 살펴 전하께서 알리시는 말씀과 맞추어 보고 말과 일이 맞으면 개과천선하는 마음이 점차 굳어질 것이고, 일과 말이 어긋나면 난을 생각하는 뜻이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사람의 말에, ‘말로 사람을 감동시킬 경우 그 감동함이 깊지 않고, 행동으로 사람을 감동시킬 경우 그 감동함이 반드시 빠르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신은 오늘날 마땅히 행하여야 할 급선무를 전하를 위해 진달하겠습니다.


나라의 안위는 인심의 향배(向背)에 달려 있으며, 백성의 휴척(休戚)은 장리(長吏)의 선악(善惡)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임금이 된 자는 인심을 얻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양리(良吏)를 선발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한(漢)나라 선제(宣帝)는 새서(璽書)로 직질(職秩)을 더하고, 당(唐)나라 선종(宣宗)은 전(殿)의 기둥에 이름을 썼던 것이니, 모두 그 청렴하고 유능한 사람은 포상하여 장려하고, 탐학(貪虐)하고 직분을 다하지 못하는 자는 그 사이에 끼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한나라와 당나라의 어진 임금이 되었던 까닭입니다. 지금 전하의 백성을 구휼하시는 덕의(德意)는 진지하고 간절하여 진실로 처음부터 지극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만, 친민(親民)하는 관리에 이르러서는 그 선악과 청렴·탐학을 논하지 않고 한결같이 과기(瓜期)를 기준으로 삼으시어, 수재(守宰)에게 죄가 있어도 방백이 자거(刺擧)하지 않고, 방백이 치적(治績)이 없어도 조정에서 물리쳐 파직하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탐학하여 불법을 저지르는 자가 꺼리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무능하여 직분을 다하지 못하는 자가 힘써 애쓰지 않는지라, 관할 구역 안이 치우치게 그 해를 입으며, 위에서는 걱정하고 구휼하나 은택이 아래에 미치지 못하고, 아래에서는 고통에 시달리나 그 실정이 능히 위에 통하지 못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나라의 기강이 점차 해이해지고 백성의 뜻이 일정함이 없게 되어, 이번 관서(關西)의 변과 같이 극도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능히 따로 경장(更張)을 일삼아 출척(黜陟)을 빨리 행하지 않는다면, 근심하시는 뜻이 아무리 위에서 간절하고 또 애통해 하는 조서(詔書)가 아무리 아래로 전파된다 하더라도, 또한 나라를 다스릴 수 없고 백성도 힘입어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지난날의 깊은 잘못을 깨달으시어, 장래의 아름다운 계책을 세우소서. 도신(道臣)과 읍리(邑吏)를 논하지 말고 한번 징태(澄汰)를 크게 가해 유능한 자는 그 직임에 오래 있게 하고, 유능하지 않은 자는 물리쳐 금고(禁錮)시켜 민심을 수습하고 나라의 운명을 비는 근본으로 삼으소서. 이것이 오늘날의 급선무입니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국가가 경복(傾覆)하는 이유가 어찌 일찍이 도적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며, 도적이 몰래 일어나는 단서가 어찌 일찍이 기근(饑饉)에서 생겨나지 않았던가?’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대저 관서(關西)는 해마다 흉년이 들어 굶어죽은 사람이 길에 즐비하여, 전해 듣는 말이 마음을 놀라게 하고 귀를 참담하게 합니다. 그러나 널리 진휼을 베푼 적은 없고 징렴(徵斂)은 갈수록 급해져 급기야 이 지경에 이르러 수습할 수 없게 되었으니, 수토(守土)하는 신하는 죄를 진실로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조정에서 전후로 베풀고 조처한 것은 또한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회보(懷保)한 것과 한(漢)나라 문제(文帝)가 세금을 견감·면제해 준 것처럼 크게 민정(民情)을 위로해 줌이 있지 않았으니, 땅에 나뒹구는 걱정과 도둑의 근심은 진실로 불러온 까닭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즉, 오늘날의 선후책(善後策)이야말로 더욱 어찌 무마하고 구제하는 실지에 급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청천강(淸川江) 남북은 창이(瘡痍)가 눈에 가득한데, 적이 평정된 뒤에도 근심과 걱정이 갈수록 심해질 것입니다. 조정에서 진대(賑貸)하는 재물과 곡식 약간을 나누어 준 것이 있지만, 만약 그 나누어 준 것으로 한 도의 생령(生靈)을 구하고자 한다면, 한 방울의 물을 타는 솥에 붓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구제하되 철저하게 하지 않고 은혜를 베풀되 끝맺음이 없다면, 또한 어찌 우리 성상께서 구휼에 부지런하신 본래의 뜻이겠습니까? 더욱이 바야흐로 봄 농사철을 맞았는데, 난을 겪은 백성들에게는 이미 보리 종자가 없고, 또 농사철 양식까지 모자라며, 밭갈이 소와 농사 기구 또한 모두 싹 쓸어버린 듯 남은 것이 없으니, 비록 혹 전리(田里)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장차 어떻게 때에 맞춰 파종할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보리농사를 실패하면, 바야흐로 닥쳐 올 근심을 또 헤아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으면 백성이 없고 백성이 없으면 나라가 없는 법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는 어떻게 대처하시려는지요?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빨리 유사(有司)에게 명하시어 진휼에 필요한 물자를 다시 더 나누어 주도록 하시고, 종자와 양식은 따로 조처·마련하되, 급히 행회(行會)하여 그 때를 놓치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진휼(賑恤)을 실시한 여러 도 또한 마음을 다해 구휼하도록 하고, 암행어사를 나누어 파견해 따로 부지런하고 태만함을 살펴 실효(實效)를 책임지우게 하소서. 이것이 또 오늘날의 급선무입니다.


경기도는 사방의 근본이고, 서울은 또 경기도의 근본입니다. 서울은 때마침 발매(發賣)하라는 명령이 있으나, 억지로 빼앗는 무리들이 부실(富室)을 엿보고, 협박하여 빼앗는 근심이 방방곡곡에서 마구 행해져 그 조짐이 이미 나타났으니, 그 걱정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경기도의 여러 고을은 기근이 더욱 심하여, 누더기를 걸친 채 누렇게 부황이 든 백성들의 사정이 꺼꾸로 매달린 듯한 형편입니다. 노약자는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장정들은 고을과 저자에서 공갈 협박으로 살고 있으니, 얼마 안가 무리를 지어 일어나 도둑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자목(字牧)하는 사람들에게서 노래(勞徠)의 정사가 있음을 듣지 못했고, 크게 모의하는 곳에서는 조처해 구제할 방도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진휼을 실시한 4도에 끼어들어 한 가지로 여기는 은혜를 균등하게 입지 못했을 뿐더러 해를 넘긴 지 이미 오래되었음에도 조세를 독촉함이 그치지 않으니, 한갓 잠시 흩어졌다가 다시 모인 백성들로 하여금 그 휘두르는 채찍에 울부짖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게 할 뿐입니다. 인심이 한번 떠나 다시 거둘 수 없고, 백성의 형편이 이미 궁해져 이르지 않은 데가 없으니, 삼가 생각하건대, 아마도 국가의 근심은 관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의 땅에 있는 듯합니다. 소문을 듣자니, 경기도 주변의 지극히 가까운 땅에 이미 왕왕 무리를 불러모아 몰래 일어날 조짐이 있다 합니다. 그러니 만일 한번 북을 울리는 경보가 관보(關輔)의 사이에서 일어나면, 그 위기가 더욱 급박해짐과 여정(輿情)의 뒤흔들림이 어찌 이번 서쪽 변방의 변에 그치고 말 뿐이겠습니까? 신은 진실로 국계(國計)가 바닥나 조처에 대책이 없고, 경용(經用)은 지극히 중대하여 견감을 의논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하께서는 한번 생각해 보소서. 이번의 급한 경보 이후로 구적(寇賊)들이 약탈한 바와, 병화에 탕진한 것과, 열군(列郡)에서 싸우고 지키는 데 든 비용과, 여러 군사들을 먹이고 상줄 밑천에 있어 무릇 그 잃고 쓴 바를 총계한다면 마땅히 몇 만 냥이 되겠습니까? 가령 지난겨울 이전에 능히 이 수의 3분의 1을 덜어 굶주림에 시달려 거의 죽게 된 목숨들을 구해 주었더라면, 아마도 장차 흩어질 백성들을 거둘 수 있었고, 형체를 드러내지 아니한 환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혹 난이 일어나기 전에 우연히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었다 할지라도, 신은 또한 유사(有司)의 신하가 반드시 장차 아껴서 기꺼이 베풀지 않았을 줄로 압니다. 그러나 지금 형편으로 보건대, 그 득실을 비교해 본다면, 어느 쪽이 많고 적겠습니까? 지나간 일은 비록 탓할 수 없지만, 앞으로의 일은 그래도 따라가 미칠 수 있으니,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신의 이 아룀을 묘당(廟堂)에 내리셔서 빨리 변통(變通)하는 길을 넓히시고 진제(賑濟)를 크게 베푸소서. 그리고 초절(草竊)·간귀(奸宄)의 무리들 또한 더욱 엄하게 정탐·체포하여 불어나 도모하기 어려운 근심이 없도록 하소서. 이것이 또 오늘날의 급선무입니다.


신은 이미 오늘날의 세 가지 급선무를 천번 생각 끝에 하나를 얻은 것에 붙였습니다만, 또 구구한 숨은 근심이 있어 전하를 위해 모두 진달하고자 생각합니다. 지금 왕사(王師)가 신속하게 토벌하여 위무(威武)를 이미 펼치매, 적의 형세가 궁하고 위축되어 외로운 성에서 겨우 숨을 쉬고 있습니다. 하늘이 행시(行尸)를 가두매 마치 솥 안에 든 고기와 같고, 마르고 썩은 나무를 부러뜨리는 격이라 진실로 족히 비유할 것도 없습니다. 다만 생각하건대, 탄환이 미치는 3리(里)의 성곽에서 능히 힘을 다해 천병(天兵)에 항거하며 오랫동안 왕화(王化)를 막는 것은, 아마도 반드시 그 가운데 교활한 부류가 있어, 어리석은 백성들을 ‘성이 부수어지는 날 남김없이 도륙(屠戮)할 것이다.’라고 속이고 꾀자, 어리석고 무지한 백성들 또한 스스로 죄악이 이미 쌓여 주벌(誅罰)을 벗어나기 어렵고, 스스로 나뉘어 도마 위의 고기가 될 것임을 알아 적을 위해 죽음을 바치는 것을 꺼리지 않기 때문인 듯합니다. 대저 반드시 죽으려는 뭇사람의 마음이 이처럼 여러번이긴 교병(驕兵)과 맞닥뜨렸으니, 숨은 근심과 깊은 염려가 또한 어딘들 이르지 않겠습니까? 어제 내리신 윤음(綸音)에 덕의(德意)가 양양하게 흘러넘치고, 인자하신 음성이 전파되어 천리가 메아리처럼 응하였으니, 신은 진실로 명령을 반포하는 날이 곧 적을 격파하는 날일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에워싼 성가퀴 안이 죄다 적의 소굴이 되어 있어, 비록 널리 포고한다 할지라도 능히 모두를 깨우치지는 못할 듯합니다. 바라건대, 서정(西征)한 여러 장수들에게 신칙하여 널리 수십 백 본(本)을 베끼게 하되, 몇 명의 흉괴(凶魁) 외에 성을 넘어 스스로 귀순하는 자와, 병기를 버리고 무너져 흩어지는 자는 일체 묻지 않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뜻을 그 아래에 덧붙여 써서 혹은 깃발 아래에 달고 혹은 화살에 묶어 날려 보내어 온 성안에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루 알게 한다면, 배반·반역한 자들이 귀순하여 병이(秉彛)를 함께 얻을 것입니다. 삶을 즐기고 죽음을 싫어함은 오히려 미물도 그러하거늘, 저들이 이미 그물을 풀어 놓은 길이 있음을 안다면 또한 어찌 괴롭게 오랫동안 굶주린 범의 굴에 머물러 있겠습니까? 보루(堡壘)를 통하여 항복하는 것을 시각을 정해 놓고 기다릴 수 있을 뿐 아니라, 관서(關西) 한 지방에는 다시는 대우패독(帶牛佩犢)하는 백성들이 없을 것입니다. 이어 삼가 생각하건대, 이번의 소인들은 쥐도둑과 같아서 흉봉(凶鋒)이 한번 꺾이면 남은 근심이 없을 것을 보장하겠습니다만, 그러나 그 온양(醞釀)한 지 이미 오래라 또한 반드시 쌓은 소굴이 있을 것입니다. 삼가 듣건대, 청북의 연해(沿海)에는 섬이 수십 군데가 넘는데, 신미도(身彌島)·단도(椵島)와 같은 땅은 주위가 백리나 되고 텅 비어 사람이 살지 않아 경비(警備)가 미치지 않고 정탐이 이르지 않아서, 간악한 자가 숨고 달아난 자들이 몰려들 염려가 있은 지 오래입니다. 만약 그물을 빠져나간 잔당들이 그 가운데 웅거할 수 있다면 뭍에서 농사를 짓고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며, 이로우면 나와 도둑질을 하고 패하면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 손 손은(孫恩)·노순(盧循)이 했던 것처럼 할 것이니, 바닷가의 여러 고을들은 아마도 편히 쉴 날이 없을 것이며, 선속(船粟)이 왕래하는 길은 장차 표략(剽掠)당하는 근심을 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근심을 막는 방도는 주밀하고 상세한 데 있으니, 차라리 지나치게 계획하였다가 쓸모없게 될지언정 대비를 잘못해 후회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전하께서 별도로 주모(籌謨)하는 신하에게 신칙하여 거듭 해안의 방비를 엄히 하고 예사롭지 않는 일을 사찰(伺察)하여 공사(公私)의 배를 모두 거두어 모아 그들이 바다로 들어가는 길을 끊되, 반드시 왕식(王式)이 구보(裘甫)를 막던 것처럼 하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또 주사(舟師)를 미리 선발하여 여러 섬을 조사하게 해서 난의 근본을 끊는다면, 소굴이 미리 소탕되고, 헛소문이 자연히 그치게 될 것입니다. 생각하건대, 목전의 기무(機務)로 또한 이것보다 큰 것이 없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재량하여 처리하소서. 아! 당나라의 신하 육지(陸贄)가 말하기를, ‘혹은 많은 난으로 나라를 굳건히 하고, 혹은 어려움이 없어서 그 나라를 잃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어려움이 없어 그 나라를 잃게 한다는 것은 만기(萬機)의 중요함을 소홀히 하여 근심과 두려움을 잊는 것이요, 많은 난이 나라를 굳건히 한다는 것은 숱한 일의 어려움을 겪어 신칙하고 조심할 줄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역》에 이르기를, ‘위태롭게 여기는 사람은 그 자리를 안전하게 하는 자이다.’라고 했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더욱 조심하시어 비록 헌괵(獻馘)하고 개선을 아뢴 뒤라 하더라도 여러 군(郡)이 다투어 무너지던 날을 잊지 말도록 하소서. 그러면, 태평 만세가 이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만약 혹시라도 적이 이미 평정되었다고 생각하시어 다시 눈앞의 안일만을 도모하는 습관을 반복하신다면, 민심이 매여 있을 데가 없어 나라의 안위는 아마 보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하니, 비답하기를,


“그대의 말이 참으로 좋아서, 지금 이 시기에 절실하니, 마땅히 유의하겠다. 먼저 묘당에서 즉시 채택하여 시행토록 하고 실효가 있도록 하라.”하였다.

[태백산사고본]15책 15권 14장 B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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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토라 하면 이른바 한족을 우리 입장에서 칭하는 말입니다.

물론 뒤에 이어서 관서지방이라는 표현이 나오긴 하지만 삼국시대도 아니고 조선시대 그것도 말기에 이런 표현이 나왔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서토에서 일어난 역적을 무리를 가리켜 관서지방의 변이라 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서토, 관서지방에서 일어난 반란보다는 경기 주위에서 일고 있는 반란의 조짐이 더 중요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관보(關輔)의 사이에서 한번 북을 울리면(이 말은 반란을 선동하는 또는 반란이 일어나면 이란 표현이 되겠습니다)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서울 주위에 관이 있고 그 수도권 경기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날 경우를 조심해야 한다는 거죠.


서토, 관서지역의 반란을 진압하러 간 군사를 천병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천병이라 함은 천자의 군대를 칭하는 말이지 일개 제후국의 군대를 칭하는 게 아닙니다.


"서정(西征)한 여러 장수들"이란 표현에서 역시 서쪽방향으로 토벌을 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반도의 평안도 관서지역이라면 북정이라고 해야 옳은 표현인 것입니다.


<덧> 그냥 관서지방(반도사관으로 볼 경우 평안도)에서 일어난 반란(홍경래의 난과 관련)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왜 관서지방이 서토인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좌측에 위치한 ‘관’이 있고 그 서쪽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 관서지역이며 이 관서지역과 그 연장선상의 서쪽지역이 조선시대 당시의 서토인 것입니다.[우리역사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