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사건

18세기 제주 주민, 베트남에 표류했다 귀환한 사연

한부울 2008. 8. 21. 19:36

강원도(江原道)-강(江)의 수원(水原)이다.

강원(江源)이라는 곳
대륙에서 오강원(五江源) 다섯강원이라 함은 바로 황하원(黄河源)、장강원(长江[金沙江]源)、란창강원(澜沧)江源、노강원(怒)江源、그리고 아로장포강원(雅鲁藏布)江源(合称五江源)이다.

이 오강원이 대륙 전역에서 흐르는 강원을 원천하고 있다.
즉 모든 물이 생성되는 발해(渤, 發)라 추측되는 곳은 바로 오강원(五江源)이다. 
그래서 고사에 청장고원(靑藏高原)지역을 바로 서해(西海)라 했을 가능성이 대단히 많다.

오강원(五江源)을 서해(西海)라 했으니 바다이다.

 

역사는 잘못된 역사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모두가 들어 이해 할 수 있는 상식선에서 논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베트남까지 표류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과연 상식선에서 받아 들여 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상상이다.

어떻게 한반도에서 표류하여 베트남에 도착 할 수 있는가?

한반도와 베트남 사이에 거리를 구글로 재어 보니 약 2,800 ㎞-7,000 리다.

이러한 상식에도 통하지 않는 그야말로 얼토당토하지 않는 사실에 대해서 비판없이 자꾸 논한다는 것은 스스로 나는 바보입니다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야말로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다.

상식선에 따져 본다면 먼저 바람의 방향과 해류를 생각 할 수 있다.

해류 즉 바다의 흐름은 표류한 사실에 대하여 증명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확실한 자연적인 이치이며 과학이다.

표류라 하여 난데 없는 곳에 무작정 던져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연적인 환경 폭풍, 태풍에 의한 것이지만 해류따라 흘러 최종 표류지까지 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난데 없는 곳에 자연의 이치에도 상관하지 않고 무작정 어떤 위치를 만들어 놓고 그곳에 그냥 던져 버린 것처럼 표류사실을 만드는 것은 정말 허황한 이야기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야말로 얼토당토하지 않는 기발한 상상력의 표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래 해류도를 보면 한반도에서 베트남으로 흐르는 해류는 없다.

전부 서(西)에서 동(東)으로 흘러가는 해류가 존재 할 뿐이다.

오히려 베트남에서 한반도로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대체 한반도에서 베트남까지 표류할 수 있다는 상상력 자체가 신기하기만 하다. 

가당찮은 상상력에 우리 모두가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유구를 지금의 오키나와라고 했는가?

유구는 오키나와가 아니라 인도네시아 자바섬 부근에 존재해야 할 역사적인 장소이다.

턱도 없는 소리를 왜 이처럼 즐기는지 알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반도사의 피폐로 역사를 제대로 판단조차 할 수 없는 바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만약 베트남에 표류한 사실이 사실이라면 고려가 되었던지 조선이던지 지금 베트남 근처에 분명 존재해야 한다.

고려라고 하는 조선이 실제 어디에 존재하였던 간에 조선에서 표류하여 해류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난데 없이 던져진 곳이 아니라 그야말로 지극히 상식적인 해류를 타고 흘러갈 수 있는 곳이라야 하며 결론적으로 베트남에서 그리 멀지 않는 근역에 존재해야 맞다.

지금 처럼 한반도에 고려와 조선이 존재 한 것이라고 단정하고 엉뚱한 상상력을 키우는 것은 처녀가 낳지도 않는 아이를 상상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다.

베트남에 표류할 수 있는 곳은 기어코 바다가 아닐 수도 있고 큰 강을 흘러들어 갈 수 있는 곳일 수도 있다.

인도지나반도 가운데 북에서 남으로 흘러 지나가는 큰강은 무수히 많다.

해남도 가까이엔 홍수하(紅水河)가 있고 인도지나반도를 가로 질러 베트남 남부로 흐르는 메콩강 (Mekong River)이 있다. 고려와 조선이 메콩강이나 홍강(紅河 Red River) 또는 해남도와 통하는 홍수하 상류에 존재 하였다는 반증은 너무나도 많다. 청장고원(靑藏高原)이나 사천지방에서 흘러 베트남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것이고 홍수하(紅水河)와 통하는 해남도 근역에 도착 할 수도 있다.

베트남에서 조선으로 귀화한 귀족과 백성들도 많다.

고려와 조선에서 유구로 통하는 길이 바다뿐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엄청나게 큰 강을 흘러가면 바다가 나오고 망망대해가 나온다.

그곳에 악어가 득실거리는 바다도 있다.

오강원(五江源)을 서해라 했고 바다라 했으니 상상력은 이런데서 키워야 하지 않겠는가?

 

 

************************************

18세기 제주 주민, 베트남에 표류했다 귀환한 사연

[한국일보]2008/01/18 19:00:05

 

일본 돗토리현 현립도서관에 소장된 <조선표류민도>. 강원도 평해에서 표류한 12명의 모습을 그렸다.

 


조선 후기 영조 시절인 1727년 2월 제주도 북포의 백성 김일남 등 9명이 추자도 근방에서 풍랑을 만나 배의 키와 노가 부러져 한달이상 남쪽으로 표류했다. 어느 섬에 닿았으나 말이 통하지 않아 현지 주민들에게 배 안에 있던 <언해천자문>을 보여주면서 서로 문자에 따른 소리를 익혔다. 그러다 저쪽 주민들이 “고려! 고려!”하고 외쳤다.


그러나 김일남 등은 고려가 조선의 옛 이름 인줄 몰랐다. 천자문에서 조(朝)자를 짚어주고 선(仙)자를 보여주자 현지인들이 말했다. “그래 조선과 고려는 본래 한 나라야.” 현지인들은 글씨를 써서 ‘유구국’이란 세 글자를 보여주었다. 지금의 일본 오키나와였다.


18세기 조선의 지식인들은 철학 윤리 정치 문학 등 전통적인 주제를 넘어 낮선 세계와 일상생활의 소소한 사물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이 두 책은 그런 관심이 남긴 기록이다.


<탐라문견록-바다 밖의 넓은 세상>은 제주 목사로 부임한 부친을 따라 제주도에 간 정운경(鄭運經ㆍ1677~1753)이 일본 유구국 안남국(베트남) 등에 표류한 제주 주민들을 인터뷰해 기록한 표류기 모음집 <탐라문견록>과 제주에 관한 이전의 글에서 관련 정보를 재편집한 제주 입문기인 <영해기문>, 제주 여행기인 <탐라기>와 <순해록>, 제주의 풍광을 담은 <해산잡지>, 제주의 감귤에 관한 정보를 담은 <귤보> 등의 글을 모았다.


<탐라문견록>에는 1687년 안남에 표류한 조천관 주민 고상영의 표류기부터 1730년 관노 만적의 가라도 표류기에 이르기까지 14인의 표류기가 수록돼 있다. 고상영의 안남 표류는 안남측이 인도적 견지에서 중국 상선에 부탁해 이들을 되돌려 보냈고, 교류를 원하는 공문까지 보냈기 때문에 당시 크게 회자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기록 외에도 두 건의 표류기가 전해지고 있다.


표류기에는 표류민들이 예외 없이 제주 사람임을 숨기는 장면이 나온다. 1612년 제주에 표착한 유구국 태자가 탄 상선을 당시 제주 목사가 습격해 죽인 사건의 여파로 외국에 표류하면 제주민들은 무조건 죽인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선에는 표류에 대한 기록이 부실하지만 일본 공식기록으로만 18세기 100년 동안 409건, 수천명의 조선인이 일본에 표류했던 것으로 미뤄 외국 표류가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조, 담배 피우며 스트레스 푼 사연


<연경, 담배의 모든 것>은 이옥(李鈺ㆍ1760~1815)이 광해군 때 조선에 들어와 친숙한 기호품이 된 담배에 대해 쓴 <연경(烟經)>과 여러 글을 모았다. 담배 재배법, 유래, 성질, 모조품 판별법, 피우는 법, 쌈지, 부시 등 조선의 담배에 관한 모든 것을 기록한 <연경>은 담배에 관한 독보적인 단행본이다. “남령초의 도움으로 가슴에 막힌 것이 저절로 사라졌고, 밤잠을 편히 이룰 수 있었다”는 애연가 정조의 담배 예찬론이 흥미롭다.


한국아이닷컴 남경욱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