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변절

21세기의 망령 레드콤플렉스…국가보안법에 갇힌 대한민국

한부울 2008. 8. 13. 17:46
 

21세기의 망령 레드콤플렉스…국가보안법에 갇힌 대한민국

[경향신문] 2008년 07월 31일(목) 오전 10:16


송두율 교수가 지난 24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에서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송두율 교수 사건에서는 무죄가 나왔지만 2008년 촛불을 밝히는 한국에서는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살아 숨쉰다. 아니, 살아 숨쉬는 정도가 아니라 제8의 전성기를 맞이하려 하고 있다. 2004년도에 여야는 국가보안법 대부분의 문제 조항을 폐지하는 데 합의했다. 열린우리당은 완전 폐지를 주장했고 한나라당은 법안 자체는 존치해야 하지만 문제 조항 대부분의 개정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그 당시에 국가보안법은 1000여명의 집단단식이라는 유례 없는 투쟁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완전 폐지냐, 대폭 개정이냐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년 반이 지난 지금, 한나라당조차도 삭제하는 데 합의했던 것으로 알려진 고무 찬양이나 이적표현물 소지 등과 같은 구시대의 악법에 의거하여, 지금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기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북의 김형근 선생님, 서울의 김맹규 선생님, 최화섭 선생님, 경남의 최보경 선생님 등 많은 교사들이 현재 진작 박물관에 보내졌어야 할 시대착오적 악법에 의해 재판을 받고 있다.

 

 

지금 정부와 뉴라이트는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겠다는 황당한 일을 꾀하고 있다. 광복과 건국을 서로 경쟁하는 개념으로 만들어버리는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이런 발상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광복을 지우고 건국을 내세우는 자들은 ‘광복’하면 당연히 독립운동이 생각이 나고 친일파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언필칭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내세운다. 이들이 내세우는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에서는 헌법에 의거한 정체성은 사라지고 국가보안법이 초헌법적인 규정성을 갖고 있다. 바꿔 말하면 이들이 말하는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은 사실은 국가보안법 정체성이다. 지금 뉴라이트나 집권세력 내에서 주장하는 국가 정체성은 이들이 건국이라 부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때 합의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의 국가 정체성은 제헌헌법에 기초해야 할 것이다. 당시의 제헌헌법은 3·1 운동의 계승과 친일파 청산을 중요 내용으로 담고 있었다. 또한 정치적인 면에서의 자유민주주의와 아울러 사회주의적 통제경제에 가까운 경제민주주의를 건국 이념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뉴라이트들이 강조하는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의 국가 정체성이 아니다. 그것은 1949년 6월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이 제헌헌법에 기초한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파괴하고, 그 자리를 국가보안법 정체성으로 대신한 것에 불과하다. 49년 5월에서 6월 사이에 벌어진 남로당 프락치 사건, 반민특위 해산 사건,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 사건 등 일련의 사건은, 친일파 민족반역자 세력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파괴하고 민족적 양심을 가진 건전한 우파세력을 제거한 쿠데타였다. 여순반란사건이라는 위기상황에서 임시조치로 마련된 국가보안법은 이제 친일파들의 쿠데타에 의해 초헌법적 지위를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58년 12월24일 한국현대사상 최악의 크리스마스 이브에 국가보안법은 새롭게 강화되어 야당과 언론과 전국민을 더 세게 옥죄는 굴레가 되었다. 48년 12월 제정 당시의 국가보안법은 군사반란이라는 위기상황임에도 전문 6조에 최고형도 무기징역형에 불과한 단출한 법안이었지만, 지금은 전문 25조에 사형이라는 말도 여덟 번이나 나오는 무시무시한 법률로 변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모두 다섯 차례의 개정을 거쳐서 악법적 요소를 제거했다는 것이 이 정도이다. 국가보안법에는 그 법이 모태로 삼은 일제의 악명 높은 치안유지법에도 없는 조항이 수두룩하다.


우리는 제헌헌법에 기초한 국가 정체성이 파괴되고 난 뒤, 국가보안법 정체성을 강요 받은 대한민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저들의 친일 행위를 기억하는 자들, 그리고 그것을 입 밖에 내는 사람들은 “말 많으면 공산당”이란 간단한 판정으로 처단되었다. 이승만이 이른바 24파동으로 국가보안법을 강화했을 때 그 주된 희생양은 이승만의 재집권을 위협하던 전 대통령 후보 조봉암이었다. 박정희 체제 아래의 중앙정보부가 초기에 국가보안법이라는 칼을 들어 겨눈 대상은 민족일보의 조용수, 경향신문의 이준구, 문화방송의 황용주 등 언론사 사장이거나 공화당의 실력자나 국회의원 등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흘러 사회 상층부가 완벽한 통제 하에 들어온 이후 국가보안법(그리고 반공법)은 그 대상을 지식인과 반체제 세력으로, 나아가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게 되었다.


60년대까지 남북 간에는 많은 숫자의 공작원을 서로 침투시켰다. 그리고 그 시절에 간첩을 잡아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에 공안기구는 크게 팽창했다. 그러나 72년 7ㆍ4 남북공동성명을 거치면서 남북 상호간에 피차 소모적이고 효용도 없는 공작원 침투는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다. 공안기구는 비대해졌는데 내려오는 간첩의 숫자는 크게 줄어든 것이다. 60년대까지는 실제 북쪽이 파견한 간첩을 적발하는데도 공안기구가 바빴는데 70년대 남파간첩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조작의혹 간첩의 숫자가 크게 늘었다. 그리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80년대에 들어와 북한이 실제 남파하는 간첩의 숫자가 줄어듦에 반비례하여 급증하기 시작했다.


50년대 후반에는 북한에서 직파된 공작원이 남한에 침투하여 3~4개월 체류하다 붙잡혀도 그가 실제로 정보를 수집, 탐지하여 북으로 보고하지 않았다면 간첩미수죄로 처벌받았다. 그런데 80년대 들어 북한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안기부, 보안사 또는 각 대공분실의 지하실에서 수십일간 고문을 당하고 간첩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다. 국가보안법의 오·남용이 진짜 남북 간의 대결이 심각했던 50년대나 60년대에 비해 80년대에 아주 심각해진 것이다. 간첩으로 중형을 받은 사람들이 수집한 대한민국의 국가기밀이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경부고속도로는 4차선이다” “자장면은 맛있다”가 간첩이 탐지한 국가기밀이고, 군대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아주머니가 어떤 모임에서 만난 해병대 예비역 장성에게 “아저씨, 해병대는 뭐하는 데예요?” 한 마디 물어본 것이 군사기밀 수집탐지로 둔갑하곤 했다.


7ㆍ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72년 이후 남한 당국이 적발했다고 발표된 1000여건의 간첩 중에서 북한이 직접 파견한 직파간첩은 40~50명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를 모두 조작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무전기, 난수표, 암호문, 권총, 독침 등의 물적 증거는 전혀 없이 오직 자백만으로 간첩이라는 어마어마한 딱지를 받은 사람은 부지기수이고, 그들의 대부분은 지금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과거사 진실규명 작업은 국가보안법에 의해 짓눌린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들로부터 말도 안 되는 간첩의 멍에를 벗겨내는 일이다. 국가보안법은 진작에 사라졌어야 할 구시대의 악법이다. 3·1 독립운동을 계승하고 경제적 민주주의가 살아숨쉬는 민주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을 친일파들이 찬탈하고 일제시대의 악법인 치안유지법을 부활시켜 국가보안법의 전성시대를 열어갔다. 지금 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일 뿐이다.


이명박 정부는 아직도 국가보안법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주장하며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국가보안법 시대의 체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끝없이 타오르는 촛불을 보며 “촛불의 배후는 누구인지”를 파헤쳐야 한다고 소리 높이고 시위에서 연행된 사람들에게 “너 아고라 회원이지”라고 진지하게 물어본다.


이 질문에 왜 연행된 사람들이 어이없어 하는지를 이해 못하는 자들이 지금 대한민국을 북한의 적화야욕과 남한 내의 좌경용공세력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며 거품을 물고 있다. 그들은 마치 국가보안법이 사라지면 대한민국이 당장 무너질 것처럼 떠들어대고 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면 무너지는 것은 낡은 세력이 강요하는 국가보안법 정체성이고 깨지는 것은 ‘공안족’의 밥그릇일 것이다. 이미 경찰이 퍼붓는 물대포에 “온수” “온수”를 외치고 정권의 바리게이트를 ‘명박산성’이라 부르며 그 앞에 ‘시민토성’을 쌓는 발랄한 시민들을 통제하기에 국가보안법은 너무나 시대착오적이다. “온수, 온수”의 합창을 “배후, 배후”라는 마법의 주문으로는 이제 더 이상 상대할 수 없다. 이명박 정권이여, 당신들 자신의 선진화를 위해서라도 이제 스스로 국가보안법을 포기하라. 냉큼 포기하라!


레드콤플렉스 피해사례


▲ 조봉암 진보당 당수 = 57년 간첩죄 누명을 쓰고 사형.

2007년 진실·화해위가 정부의 사과와 명예회복 조치를 권고.


▲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 61년 북한에 동조했다는 혐의로 사형.

2008년 법원 재심에서 무죄 판결.


▲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 64년 반공법 위반 구속.

89년 한겨레신문 북한취재 계획과 관련,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


▲ 윤이상 음악가 = 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 구속됨.

2006년 과거사위 조사에서 중앙정보부가 날조한 사건으로 드러남.


▲ 서준식 인권운동가 = 71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 17년간 복역

99년 제주4·3항쟁을 다룬 영화 ‘레드헌트’를 상영,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됨.

2003년 ‘레드헌트’ 사건에 대해 대법원 무죄 판결.


▲ 인혁당 재건위 사건 = 75년 국보법 위반 혐의로 8명 사형, 9명 무기징역 선고.

2007, 2008년 법원 재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


▲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 = 80년 출간된 저서 ‘민중과 지식인’이 법원에서 국보법상 이적표현물로 판정.

2002년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


▲ 조정래 소설가 = 94년 소설 ‘태백산맥’에 대해 국보법 위반 혐의로 고소·고발됨.

2005년 무혐의 처분.


▲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 = 97년 저서 ‘나는야 통일1세대’에 대해 국보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

2003년 대법원 무죄 판결.


▲ 최장집 전 고려대 교수 = 98년 저서 ‘한국 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에 대해 국보법 위반 혐의로 고소·고발됨.

2005년 무혐의 처분.


한홍구 | 성공회대 교수 경향신문 & 경향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