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변절

한국전 월미도 양민학살 사건 규명노력, NY 타임스

한부울 2008. 8. 3. 18:10
 

한국전 월미도 양민학살 사건 규명노력, NY 타임스

[뉴시스] 2008년 08월 03일(일) 오전 09:42


[뉴욕=뉴시스]한국전쟁 초기 미군의 공습으로 수백명의 양민이 학살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월미도 네이팜탄공습’이 반세기만에 주목을 받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되기 5일 전인 1950년 9월10일 미군 폭격기 43대가 월미도 지역에 93개의 네이팜탄을 투하해 이 일대를 초토화하면서 최소한 228명 이상의 민간인이 숨졌다”먼서 “이들은 대부분 부녀자와 노인이었으며 지금까지 이러한 사실을 거론하는 것이 한미 동맹을 해친다는 이유로 금기시됐다”고 지적했다.


주민 이범기(76)씨는 “미군이 폭격한 시간은 대부분 자고 있는 새벽 시간이었다. 생존자들이 집을 뛰쳐나와 미군 조종사들에게 우리가 민간인임을 보여주려 했지만 그들은 여자와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기관총으로 사살했다”고 증언했다. 타임스는 이 사건이 최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로 진행됐으며 최소한 167명 이상이 사망한 단양 피난민학살 사건 등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무차별적으로 폭격한 3건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타임스는 미군의 공습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적인 수행으로 서울을 수복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면서 맥아더 장군을 영웅으로 만들었지만 피해를 입은 월미도의 양민들은 반세기가 넘게 진실을 묻어둬야 했다고 말했다. 월미도공습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한인득씨는 “우리는 공산주의로부터 우리나라를 구해 오늘의 평화와 발전을 가져오게 해준 미군에 감사한다. 그렇다고 우리 주민들이 겪은 진실에 대해 침묵을 지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미국립기록보존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한 조종사는 “우리는 그 일대를 네이팜탄으로 완전히 불바다로 만들라는 명령을 받았다. 공습 당시 북한군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주둔지로 보이는 불빛 등을 관측할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타임스는 월미도학살사건이 2005년 처음 제기된 이후 좌파 그룹이 인천 자유공원에 있는 맥아더장군 동상 철거를 추진했지만 정작 월미도 주민들은 이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었다는 한 월미도 주민은 “사람들은 맥아더를 영웅으로 생각하지만 우리가 겪은 고통을 알지 못한다. 한국과 미국은 동맹을 강조하지만 동맹의 이름으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고 비판했다.


노창현특파원 뉴시스통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