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망부석(望夫石) 대륙인가 한반도인가?

한부울 2008. 7. 28. 16:55
 

망부석?

신라전설 속에 망부석이 울산 울주에 있는 한국국적에 망부석인가?

아니면 지나 국적인 청도에 있는 망부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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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부석(望夫石)


위치 : (689-842) 울산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산 1(Tour/Vestiges)

지정별 :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호

지정일 : 1997년 10월 9일



망부석은 멀리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던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다 죽어서 돌로 변했다는 전설(傳說)을 가진 바위를 말한다. 이러한 전설은 몇 군데에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박제상(朴堤上)의 부인이 남편을 그리며 통곡하다가 굳어서 바위가 되었다는 이곳 망부석의 전설이다.


박제상은 신라 눌지왕(訥祗王 : 재위 417∼458) 때의 유명한 충신(忠臣)이었다. 눌지왕이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 있던 두 동생을 몹시 보고 싶어 했다. 박제상은 임금의 명령을 받아, 먼저 고구려로 가서 복호(卜好)를 구출해냈다.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미사흔(未斯欣)을 구출해 귀국시켰으나, 일이 탄로나 자신은 붙잡혔다.



자신의 신하가 되면 많은 상을 주겠다고 일본왕이 달랬지만, 박제상은 끝내 신라 신하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일본왕은 심한 고문을 가해도 소용이 없자 박제상을 불에 태워 죽이고 말았다. 한편 박제상의 부인은 딸들을 데리고 이곳 치술령(鵄述嶺)에 올라 일본 쪽을 바라보며 통곡하다가 죽었는데, 그 몸이 돌로 변해 이 망부석(望夫石)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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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섞일 수 없었던 발해와 唐처럼 바다도…

[도깨비뉴스] 2008년 07월 28일(월) 오전 11:53


                                             ▲ 창다오 해변 멀리 보이는 망부석.


산둥반도에서의 여정이 며칠 남지 않았던 시점에서 외국인들은 쉽게 갈 수 없다는 창다오(長島)를 찾아가기로 했다. 펑라이(蓬萊)에서의 배낭여행의 마침표를 찍게 되는 창다오는 황해와 발해의 경계가 되는 곳이다. 여행의 하루를 창다오에서 맑은 공기와 깨끗한 바닷물, 그리고 풍부한 해산물에 마음껏 심취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침 일찍 펑라이 여객터미널에 도착해 창다오로 가는 배편에 몸을 실었다. 펑라이각의 해변이나 팔선과해, 그리고 삼선산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안개가 피지 않는 맑은 날에는 창다오가 잘 보이지만, 안개가 많은 날에는 보기가 쉽지 않다. 창다오는 남북섬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남섬의 길이가 7km, 북섬의 길이가 5km인데, 서로 다리로 이어져 있다.


가는 곳마다 수심이 얕고, 깨끗한 해변들이 있어 아무 곳에서나 무료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다.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 있는데, 어느덧 창다오의 산 위에 풍력발전소가 시야에 들어오며, 도착했다. 평일이라 사람이 별로 없어 대부분 택시를 타고 가버리고, 작은 항구에 필자 혼자만이 남아 있었다. 배낭만 메고 남아있는 이방인에게 어느 중년 택시기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원래 창다오의 7곳의 절경을 구경하려면 택시비가 340위안이 들지만, 어차피 혼자이니 180위안에 할인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7곳의 입장료는 1곳에서 한꺼번에 사면 총 150위안이 든다"고 설명했다. 

 

                                                     ▲ 창다오 해변의 망부석.


제일 먼저 향한 곳은 망부초(望福礁)였다. 다른 명칭으로는 망부석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망부석 전설과 비슷한 이야기가 이곳에도 있다고 한다.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얕은 해변을 따라 길을 돌면 뽀족하게 솟아오른 망부석이 보인다. 바위들이 모두 날카로우니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 구장애의 모습.



▲ 구장애 절벽에 있는 해변.


택시기사는 다음에 구장애(九丈崖)로 향했다. 구장애는 마치 칼로 잘라 낸 듯한 절벽의 바위들이 마치 벽돌블럭 모양으로 첩첩이 쌓여져 있어 그 높이가 20여 미터에 달해 보였다. 절벽에 쌓인 하나하나의 블록을 꺼내어 레고처럼 쌓아도 될 만큼 층층이 쌓인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다.

 

                                                        ▲ 구장애의 모습.


그리고 절벽의 바닥에는 몇 층의 블록이 빠진 것 같은 모양으로 파여져 있는데, 사람이 가히 누울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 공간에 누워 있으면 무더운 한여름에도 더위를 모를 정도로 시원하다고 한다. 이곳을 구경하고 절벽 위로 올라가 보니 야생화가 만발하고, 백합꽃이 만개되어 있었다. 


▲ 월량만의 해변 모습.


다음으로 찾은 곳은 월량만(月亮?)이었다. 월량만은 해변의 모습이 초승달 모양처럼 생겼다. 이곳은 해수욕을 즐기기에 아주 좋은 해변이다. 그러나 해변의 모습을 멀리서 초승달처럼 바라보기 위해서는 해변의 끝에 있는 등대에 올라가야 한다. 등대 저편의 해변에는 여러가지 해산물 양식장들이 산재해 있다.

 

▲ 월량만의 해변 모습. 이곳에 머물 때 어민들에게 "바다표범들이 보고싶다"고 말하면 바다표범들이 군락을 이루는 곳을 구경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주위의 작은 아름다운 섬들을 일주할 수 있다.

 

                                        ▲ 창다오에 있는 화려한 양귀비꽃의 자태.


이어서 선경원, 임해 공원등을 차례로 구경했다. 선경원에??아름다운 양귀비꽃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임해공원에는 장도의 산자락에 놓여 있는 풍력발전소를 가까이 가서 볼 수 있었다.

 

                                     ▲ 창다오의 산자락에 있는 풍력 발전소의 모습.


이제 마지막으로 황해와 발해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에 이르렀다. 중국인 여행객들은 이 기념탑 앞에서 사진을 찍고 모두 가버리지만, 나는 직접 바닷가에 내려가 손으로 만지고 싶었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 황해와 발해의 경계선. 모래톱을 따라 왼쪽이 황해고, 오른쪽이 발해다.


사진에서 보이는 모래톱을 따라 왼쪽은 황해고, 오른쪽은 발해다. 내가 모래톱으로 내려가니, 주변에 있던 중국 노인이 뭐라고 소리쳤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바닷가로 나이갔다. 그 노인은 필자에게 다가와서 "돌아?《?고 소리쳤지만, "나는 관광객이고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자 이 황해와 발해의 경계선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 황해와 발해의 경계선. 모래톱을 따라 왼쪽이 황해고, 오른쪽이 발해다.


이 경계선에서는 "황해의 물길이 발해 쪽으로 흐르지 않고, 발해의 물길은 황해 쪽으로 흐르지 않는다"고 노인은 말했다. 이 경계선에서 황해는 다시 황해 쪽으로 돌아가고, 발해는 다시 발해쪽으로 돌아 흐르는 것이다. 만약 이곳에서 길을 잘 못 들면 바다 밑으로 끝없이 빨려 들어간다고 한다. 이곳의 어민들도 배를 타고 이 경계선에 잘 못 들어 실종된 예가 많다고 한다. 나는 한동안 이 황해와 발해의 경계선을 바라보다 그 중국 노인에게 인사를 하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 펑라이로 돌아가는 선상에서 바라본 바다.


이제 어느덧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나도 이제 귀소(歸巢)할 시간이다. '여름휴가를 이곳에서 보낸다면 아주 즐거운 휴가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펑라이에서의 아름다운 시간들을 정리했다.


창다오= 도깨비뉴스 독자리포터 이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