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을 차지하고 있는 지나인들이 다시 한당시대로 하고 외치고 있다지만 중화주의를 표방하는 구실치고는 온당치 않는 역사, 날조된 역사를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추후 더 많은 연구와 실증을 찾고 보완하고 보충해야 할 문제이지만
여기서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진은 다 알다시피 동이족 국가이다.
漢(韓)은 동이족 국가이거나 정부일 뿐이지 지나가 정통성을 말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漢과 韓은 음운차이가 똑 같다.
이러한 국가명이나 정부명을 함께 쓰지 않는다.
같은 시대에 漢과 韓이 글씨체만 다르게 존재했었다는 것 자체가 날조다.
당은 신라제국 때 수많은 정부중 한 지방정권이고
송도 고려제국 때 수많은 정부중 지방정권일 뿐이다.
청시대 때 중국역사상 최고 넓은 영토를 차지했다고 주장하지만 청이 아니라 조선이며 그 전 역사에서 당, 송은 그러한 영토를 가지지 못했다고 암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들이 암시한대로 당 송 지역은 지방정권에 걸맞게 차지했을 뿐 그 위에 어마어마한 신라와 고려가 아시아 전역을 지배하던 시대에 존재 했을 뿐인 것이다.
당송이 지나족이라고 우기는 것은 차지하더라도 역사자체가 그들 식으로 날조되고 조작된 역사에 묻혀 있을 뿐이지 사실적 밝혀야 할 역사와 거리가 먼 것이다.
고려와 원 관계는 좀 더 따져 보아야 할 문제에 역사이지만 원은 북방민족이고 분명한 이민족 역사이다.
명 또한 대륙조선 서쪽 한 귀퉁이에 있었던 보잘 것 없던 지방정권일 뿐이다.
청은 말을 하지 않아도 지나족 스스로 이민족 국가라고 인정했던 것이니 재론 할 것도 없다.
그들이 주장하는 중화주의 역사는 비로소 1949 이후 인민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일뿐이지 온통 이민족 역사를 가지고 정통성 운운하며 중화주의를 얹어 놓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역사적 모순을 우리가 나서 밝혀 바르게 세워야하는 당위성도 여기에 있다는 것을 우리민족 모두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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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당시대로...강한 중국 부활 꿈꾼다
[중앙일보 2008.07.11 02:12:19]
중국을 통치하는 방식이라는 면에서 지금의 집권 공산당은 과거 통일 왕조와 다를 바 없다. 강력한 중앙 행정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질적 요인들을 ‘중화(中華)’라는 이데올로기로 묶어가는 측면이 특히 그렇다. 그렇다면 같은 왕조적인 통치자로서 올해 올림픽을 치르는 공산당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과거의 왕조는 무엇일까.
중국중앙방송(CC-TV) 등 관방을 대변하는 핵심 언론들이 내놓는 컨셉트는 한(漢)과 당(唐) 왕조다. 올림픽이라는 건국 이래 최대 이벤트를 치르면서 중국이 두 왕조를 거론하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그곳에는 두 왕조가 구가했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음은 불문가지다. 두 왕조의 핵심 개념은 강(强)과 성(盛)이다. 강성한 대국을 노리는 중국의 꿈이 올림픽을 앞두고 영글어 가고 있는 셈이다.
◇공산당의 국가 모델은 한·당=중국인들이 역대 중국 왕조를 평할 때 이 두 왕조를 표현하는 방식은 대개 일치한다. ‘강한 한 나라(强漢)’와 ‘성세를 이룬 당 나라(盛唐)’다. 『품삼국(品三國)』이란 책으로 일약 중국 최고 고전 전문가로 부상한 이중톈(易中天) 샤먼(厦門)대학 교수는 아예 이 두 시기를 ‘한당기상(漢唐氣象)’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지난해 11월 CC-TV는 올림픽을 위해 노래 한 곡을 발표했다. ‘다시 한·당으로 돌아가자(重回漢唐)’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한족의 옷을 입고, 예의의 나라를 일으켜 한·당으로 돌아가, 다시 중화의 문화가 넘치는 성세를 읊고 싶다…”는 내용이다. 각종 중국 국내 언론들은 올림픽 개막식과 관련해 “전체적인 기조는 한·당의 성세에 맞춰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상태다. 중국적 특색을 최대한으로 표현하되 그 주요 컨셉트는 한과 당이라는 두 왕조의 색채로 칠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왜 한·당인가=중국은 최근 강대국과 부흥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국가 발전의 지향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우선 공산당 정치국 집단학습에서 채택했던 ‘강대국의 흥망성쇠’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CC-TV는 2006년 ‘대국굴기(大國<5D1B>起)’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TV에서뿐만 아니라 이를 책과 CD 등으로 만들어 대대적으로 뿌렸다. 이어 중국은 2007년 다시 ‘부흥의 길(復興之路)’을 만들어 낸다. 같은 CC-TV 제작진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앞의 것은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역대 강대국의 흥망사, 뒤의 것은 중국이 걸어온 역사의 뒤안길과 새 중국이 거대 강국으로 변해야 한다는 필연성을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중국사의 대가 민두기(1932∼2000) 교수는 “중국인에게 있어 이상은 미래를 지향해 탐구되는 것이 아니고 현실의 바탕 위에 ‘상정된 과거’의 실재에서 얻어지게 되어 있다”라 말한 바 있다. 중국인은 미래의 모델을 과거의 영광에서 찾기 마련이라는 얘기다. ‘대국굴기’ ‘부흥의 길’은 이를테면, 중화의 세기를 다시 부활시키려는 중국 당국의 의지가 담긴 표현이다. 한 왕조와 당대, 나아가 청(淸)나라 중기까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이는 현재 미국이 세계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보다도 높다. 중국의 부상이 세계의 강대국을 지향하는 것은 분명하다. 아울러 그 모델은 과거 중국 역사에서 가장 강대하고 번영했던 한과 당 왕조다. 베이징 올림픽은 이런 개념을 축으로 치러질 전망이다.
◇왕조 이름에 정치를 담다=과거 중국에서는 오랜 혼란 끝에 통일 정권이 들어선 뒤 그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쉽게 망하는 수가 많았다. 그 다음에 들어선 정권이 새로운 역사적 방향에 순응하면서 오랫동안 정권을 유지했다. 진(秦)을 이은 한(漢), 수(隋)를 이은 당(唐)이 그 경우다. 군벌 할거를 통일한 국민당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회주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이끄는 공산당이 강한성당(强漢盛唐)을 모델로 삼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방(劉邦)이 항우(項羽)를 물리치고 세운 한은 개국 초기 북방의 강국 흉노에 굴욕적인 친화정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무제(武帝) 시기에 이르러 강력한 중앙집권제와 유교로의 국론 통일을 바탕으로 흉노를 토벌하고 실크로드를 개척해 제국의 영역을 넓혔다. 한 왕조는 중화민족의 상징이다.
정관지치(貞觀之治:617~649)로 꽃을 피운 당 나라는 과거제도를 통한 문벌귀족 타파와 관용적 문화·종교정책에 힘입어 세계 제국으로 번성했다. 당 제국의 건국 세력이 북방계의 혼혈 집단이었음은 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들은 따라서 한 왕조에 비해 동·서 교류와 통합에 보다 적극적이었다. 개방성·국제성을 통해 화려한 문명이 꽃핀 성당의 치세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에 비해 송(宋)과 명(明)은 제한적인 제국이다. 나름대로 치세를 이룩했지만 전자는 문인정치에 골몰해 동북방의 금(金)에 굴욕을 당했고, 후자는 만리장성을 재구축하고 바다를 닫는 ‘해금(海禁)’정책을 취했다. 개혁·개방의 대세를 유지하면서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강대국을 지향해야 할 중국으로서는 맞지 않는 이미지다. 한·당 왕조와 공산당의 이미지는 이렇게 겹쳐진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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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네티즌이 보는 역대 왕조
‘강력한 한(强漢), 번성한 당(盛唐), 부강한 송(富宋), 강직한 명(硬明), 야만적인 원(蠻元), 비굴한 청(奴淸)…’.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유행하는 역대 왕조에 대한 평가다. 대체로 보면 한족이 지배한 왕조는 치켜세우고 이민족 왕조는 폄하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최초의 통일 제국인 진나라에 대해서는 ‘웅장한 진(雄秦), 폭정의 진(暴秦)’으로 평가가 엇갈린다. 한족(漢族)·한어(漢語)·한시(漢詩)라는 명칭에서 보이듯 항우를 물리친 유방이 세운 한나라를 중화제국의 모태로 본다. 문경지치(文景之治:BC 180~141)를 이어 제위에 오른 무제(武帝 劉徹: 재위 BC 141~87)는 끊임없는 확장 정책을 통해 광대역의 제국을 건설해 이름을 떨쳤다.
강성한 국력, 찬란한 문화, 발달된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성당(盛唐)의 정관지치(貞觀之治)는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제국의 문명을 꽃피웠다. 송 왕조는 공·상업을 중시하는 정책을 폈다. 인쇄업은 물론 각종 제조업이 발전해 부강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특히 도시 문화가 발전해 당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의 절반을 차지했다.
명 왕조는 개국 후 엄격한 법치를 시행했다. 조공제도에 입각해 중화제국의 틀을 단단히 했다. 1449년 북벌에 나선 정통제(正統帝)가 오히려 몽고족에 포로로 잡히는 ‘토목보의 변(土木堡之變)’이 발생했다.
명나라 조정은 정통제의 동생을 황제로 앉히고 오히려 협상 자체를 거부하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네티즌이 강직한 명이라 부르는 근거다. 그러나 대외 교류에는 소극적인 면모를 보였다.
한인 왕조에 비해 이민족 왕조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다.
몽고족은 낙후한 유목민족이었지만 강력한 군사력과 잔혹한 민중 학살, 민족 차별 정책으로 중원을 지배했다. 원의 치세 동안 이렇다 할 문화의 창조는 없었던 것으로 평가한다. 원의 치세는 결국 한인들의 지구전을 당해내지 못했다.
청조의 민족정책은 원 왕조에 비해서는 나아졌지만 만주족 통치자 앞에서 한족들은 스스로를 노예(奴隸)라 부르는 처지가 됐다. 청조 후기에는 국력이 쇠퇴해져 서구 열강의 노예로 전락했다. 청 왕조는 한족에게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선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지금에 와서는 비굴한 왕조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한족 중심의 왕조 평가는 최근 중국에서 유행하는 신민족주의의 산물이다.
중국 전문가들은 한과 당의 부흥을 꿈꾸는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중화 민족주의가 더 기승을 부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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