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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저널-용(龍)(중앙정부)이 뱀(지방조폭)을 못이긴다

한부울 2008. 7. 1. 18:30
 

베이징 저널-용(龍)(중앙정부)이 뱀(지방조폭)을 못이긴다

[조선일보] 2008년 07월 01일(화) 오전 03:03


강력한 용이 뱀을 못 이긴다(强龍鬪不過地頭蛇).


중국인들이 요즘 '부패 문제'가 화제에 오를 때, 자주 꺼내는 말이다. 중앙정부(强龍)가 지방의 조폭, 즉 '디터우서(地頭蛇)'를 척결하겠다며 열을 올리고 있지만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중국 공산당도 어쩌지를 못한다니 디터우서의 기세를 짐작할 만하다.


상당수 '디터우서'의 우두머리는 '투황디(土黃帝)'다. 투황디는 권력과 이권을 한 손에 쥐고 황제처럼 군림하는 부패한 토착 관리로, 현지 디터우서와 공생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중국 구이저우(貴州)성 웡안(甕安)현에서 발생한 '민란' 형식의 대규모 시위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주민 1만명은 현지 공안국으로 몰려가 청사를 불태워버렸다. 조폭들의 각종 만행에 공안당국이 나 몰라라 하자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공안이 '단순 사망'으로 처리하려 했던 15세 여중생의 사망에 "공안 고위 간부의 아들이 살인범"이라는 소문이 퍼진 게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주민들 눈에는 부패 관리든 조폭이든 '그 놈이 그 놈'으로 보인 것이다.


올 초 안후이(安徽)성 푸양(阜陽)시 잉취안(潁泉)구에선 장즈안(張治安)이라는 구 공산당 서기(書記)가 자신의 비리를 폭로하려던 부하를 교도소에 감금해 살해한 뒤 자살로 위장한 사건이 터졌다. 부하가 폭로하려던 서기의 비리 중엔 지난 2003년 멀쩡한 초등학교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미국의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본뜬 초호화판 구청 청사를 지으면서 학교 이전비용 2000만위안(약 30억원)을 착복했다는 내용까지 들어 있었다. 학교에서 쫓겨난 초등학생 200여명이 1960년대 지어진 폐교(廢校)에서 7년째 콩나물 수업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네티즌들의 원성이 들끓었다.


압축 성장의 이면(裏面)에 도사린 투황디와 디터우서의 전횡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지방도시의 중간간부가 여기저기서 거둬들인 뇌물로 146명의 첩을 먹여 살렸고, 시골 마을 공산당 서기가 정부(情婦) 22명을 한데 모아 '미인대회'까지 연 사실이 밝혀지면서 "관리들은 '정부(政府)'가 아니라 '정부(情婦)'를 위해 일한다"는 말까지 유행했다.


올 4월엔 광둥(廣東)성 자쯔(甲子)진에선 AK소총으로 무장한 조폭 수십명이 대낮에 활극을 벌이는 장면이 지역신문인 남방도시보(南方都市報)에 보도되면서 중국인들을 경악시켰고, 작년 6월 허베이(河北)성 탕산(唐山)시에선 장갑차로 무장한 조폭이 주민들에게 정기적으로 '세금'을 뜯어온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1998년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가 "100개의 관을 준비하라. 99개는 탐오분자(貪汚分子·부패 관리)의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내 것이다"고 선언한 이후 10년째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조폭들을 무장시킨 무기들은 도대체 어디서 왔는가", "공산당 고위 간부들의 자제그룹인 '태자당(太子黨)'이 국가 주요 산업을 주무르고 있다"며 정부를 불신하고 있다.


베이징=이명진 특파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