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도부

오키나와 주민 집단 자결, 일군이 강제

한부울 2008. 3. 29. 12:10
 

오키나와 주민 집단 자결, 일군이 강제

[조선일보] 2008년 03월 29일(토) 오전 00:09

 


일본 법원이 28일 '태평양전쟁 당시 오키나와(沖繩)에서 일어난 주민들의 집단 자결을 일본군이 강제했다'는 노벨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사진)의 주장을 사실로 인정했다.


오사카(大阪) 지방재판소는 "일본군이 깊이 관여했다는 합리적 자료와 근거가 있다"며, 당시 일본군 부대장이 오에씨의 이 같은 주장을 담은 책을 출판한 이와나미(岩波) 서점과 오에씨를 상대로 제기한 출판금지 청구 소송을 기각했다.


작년 봄 일본 정부는 바로 이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것을 이유로, 교과서에서 '일본군 강제' 기술(記述)을 삭제하도록 지시했다가 오키나와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자 '일본군 관여'로 표현의 강도를 낮춰 기술을 재인정하는 촌극을 벌였다. 이번 판결은 주민 반발을 의식한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법적 판단을 통해 일본군의 '오키나와 주민 자결 강요' 사실이 인정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일생 동안 반전(反戰)·평화를 주장해온 오에씨는 1970년 이와나미 서점을 통해 발간한 논픽션 '오키나와 노트'에서 증언집 '오키나와전기, 철(鐵)의 폭풍'을 인용해 "군의 행동을 방해하지 않고 식량을 축내지 않기 위해 깨끗이 자결하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기술했다. 이후 이 책은 35만부가 판매됐으며, 오키나와 전쟁에 관한 대표적 저술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당시 부대장은 2005년에야 뒤늦게 "주민들이 유족 연금을 받기 위해 꾸며낸 주장"이라며 오에씨와 출판사를 제소했다. 패전 60주년을 맞아 제기된 이들의 주장은 일본군 '성 노예'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주장과 더불어, 일본 우파 진영의 '역사 왜곡' 움직임을 대표하는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오키나와 집단 자결


태평양 전쟁 막바지인 1945년 3월 28일, 미군이 오키나와현 자마미 섬·도카시키 섬·게류마 섬에 상륙하자 800여 명의 주민들은 집단으로 서로를 죽이고 자살했다. 오키나와현 남단 도카시키 섬의 한 동굴 안에서 있었던 집단 자결의 한 생존자에 따르면, 이들은 일본군으로부터 받은 수류탄을 터뜨리거나, 면도칼 등으로 이웃과 가족을 서로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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