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백산 문화론은 또 하나의 동북공정
[조선일보] 2008년 01월 15일(화) 오전 00:05
"중국의 '장백산(長白山) 문화론'은 한국 민족문화의 독자성을 부인하려는 '또 하나의 동북공정'이다."
백두산(白頭山)을 '장백산'으로 표기하고 여진족의 발상지라는 것을 강조하는 중국 당국의 '장백산 문화론'에 대해 반박하는 논문이 나왔다. 조법종(趙法鍾) 우석대 교수(한국고대사 전공)는 최근 출간된 학술지 '백산학보' 제79호에 '장백산 문화론의 비판적 검토'를 게재했다.
'장백산 문화'라는 표현은 지난 2000년 10월 출범한 중국 지린성(吉林省) '장백산문화연구회'에 의해 부각된 것으로, 장백산(백두산)을 '중국 동북 문화의 대표이자 동북 인민의 정신적인 상징' 또는 '중화 문화의 중요한 발원지'로 여기고 있다. 또한 백두산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단독 등재하려는 중국 당국의 목표와 맞물려 각종 개발 정책을 낳았다.
'장백산 문화론'의 내용은
▲백두산의 이름은 '장백산'이고
▲'장백산 문화'의 영역은 현재의 동북 3성과 내몽고 동부, 러시아 연해주, 한반도 일부까지 아우르며
▲서주(西周) 때부터 중국에 복속된 숙신(肅愼)족이 핵심 종족을 이룬 뒤 읍루→말갈→여진→만주족으로 계승됐다는 것이다. 또한
▲'장백산' 문화는 한족(漢族)의 영향을 받아 이뤄진 중원 문화권의 일부이며
▲만주족에 의해 '장백산'이 종교적 숭배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 교수는 중국측의 이런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백두산'이란 명칭은 이미 8세기 통일신라 초기를 서술한 기록인 '삼국유사(1281년경 편찬)' 권3 '대산 오만진신'과 '명주 오대산 보질도 태자전기'에 나타나며, '고려사'에서도 고려 태조의 계통을 설명하는 '고려세계'에서 고려 왕조의 기원을 드러내는 상징적 의미로서 등장하고 있다. 반면 '장백산'은 이보다 훨씬 늦은 11세기의 상황을 서술한 '요사(遼史, 1344년 편찬)'에서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백두산 지역의 문화 주체 역시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로 이어지는 예맥계(濊貊系)가 2000여 년에 걸쳐 정치적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에 '여진족이 주도한 문화권'이라는 중국측 주장은 맞지 않는다. 더구나 '말갈'은 고구려·발해에 속해 있던 운명공동체였다. 일찍이 중국에 복속됐다는 '숙신'은 중국측이 후속 종족으로 생각하는 '읍루'와 지역적·혈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종족이며 실제 거점 공간은 요하와 산해관 사이였으므로 백두산이 '중원 문화권'이라는 근거는 사라지게 된다. 산에 대한 종교적 숭배는 백두산을 문수보살 신앙과 연결시킨 통일신라와 고려 때의 전통에서 찾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소위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합리화하려는 입장에서 나온 '장백산 문화론'은 만주 지역 고구려·발해 문화의 기원을 중국으로 귀속시키려는 역사 왜곡"이라고 말했다.
유석재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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