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록가수 최건 중국의 음악 혁명가
[중앙일보] 2008년 01월 07일(월) 오전 05:33
[중앙일보 장세정] “중국 록 음악의 대부(代父: Godfather)가 돌아왔다.”
5일 밤 중국 베이징(北京) 노동자체육관에서 데뷔 21주년 기념 콘서트를 연 조선족 출신 록가수 최건(崔健·47·사진)에 대해 현지 영자신문 차이나데일리는 이렇게 극찬했다. 중국의 유명 포털사이트 신랑왕(新浪網)은 그를 ‘음악 혁명가’라고 표현했다. 파격적 헌사를 아끼지 않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건은 현지에선 ‘중국 록음악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릴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1986년 ‘일무소유(一無所有:아무것도 가진 것 없네)’란 곡을 발표하며 중국 록음악 역사의 첫 장을 쓰기 시작했다. 최악의 인플레가 몰아닥쳤던 당시 국민의 소외감을 묘사한 노래다. 특히 89년 천안문(天安門) 민주화 시위 등으로 혼란스러울 당시 젊은 학생들이 그의 노래를 즐겨 부르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때부터 최건의 이름은 중국 록음악과 동의어로 불려왔다.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와 전통 춤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최건은 트럼펫을 공부한 뒤 스무살 때 베이징 교향악단에 연주자로 입단했다. 하지만, 곧바로 록음악에 심취해 7인조 밴드를 결성했다. 86년 첫 콘서트를 열면서 스타덤에 올랐고, 서울올림픽 기념 공연을 하면서 전세계에 이름이 알려졌다. 미국·유럽·일본 순회 공연도 여러 번 다녀왔다. 현재 앨범이 5집까지 나와있다.
애초 최건은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대형 콘서트를 지난해 8월에 열 예정이었다. 그러나 여러 사정으로 연기되다 결국 그가 처음 ‘일무소유’를 포효하듯 불렀던 베이징 노동자체육관 무대에 올랐다.
이날 항상 그랬듯이 붉은 별이 새겨진 하얀 모자를 눌러 쓰고 기타를 치며 등장했다. 객석을 가득 채운 1만여 명의 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일무소유를 비롯해 최건의 주요 히트곡들을 대부분의 관객이 함께 불렀다. 이 때문에 중국 언론은 “최건의 콘서트장은 마치 1만 명이 동시에 가라오케에서 노래를 부르는 광경을 연출했다”고 전했다.
중국 언론들은 “최건의 열정과 파워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했다”고 호평했다. 최건은 이날 베이징올림픽을 기념해 작곡한 ‘아웃사이드 걸(Outside Girl)’이란 신곡도 발표했다. 베이징 아시안 게임이 열렸던 90년 중국 음악인 중에서 첫 콘서트의 주인공이었던 것처럼 베이징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올해의 첫 콘서트 기회도 최건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번 공연을 위해 최건은 옛 멤버들을 다시 불러모았고 예술 총감독을 겸했다. 3시간 동안 계속된 공연은 열광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공연 중간에 최건은 관객들을 행해 “세월이 많이 흘렀고 표 값도 많이 올랐다. 나도 많이 변했다”고 인사를 건넸다.
객석을 채운 팬들은 20대부터 40대까지 세대가 다양해 그의 폭넓은 인기를 반영했다. 특히 격동기였던 80년대에 20대를 보낸 40대들이 많았다. 이들은 최건의 ‘일무소유’를 함께 부르는 동안 많은 이들이 눈물을 눈물을 훔쳤다.
개혁·개방 초기였던 당시 중국 사회는 빈부 격차를 용인한 덩샤오핑(鄧小平)의 선부론(先富論)으로 인해 인플레가 심해지면서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구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중국은 올해 개혁·개방 30주년을 맞으며 경제 대국으로 도약했지만 빈부격차 심화로 소외감을 느끼는 이들도 그만큼 늘어났다. 20여 년 전에 불렀던 최건의 노래가 중국 사회의 이런 흐름을 꿰뚫고 있었던 셈이다. 그의 록이 강한 생명력을 가지는 이유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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