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조선에 석유가 있었다?

한부울 2007. 11. 14. 12:11
 

이것은 간단하게 그렇겠지 하고 그냥 넘어 갈 사한이 분명아니다.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이런 것이 바로 대륙조선이란 사실적 논거이며 대륙조선에 대한 일체된 실제 존재성의 일부분이다. 송나라 작몽록이나 본초강목에서 말하는 것은 분명한 석유를 말하는 것이고 그러한 석유가 곳곳에 품어나오는 현상을 누구나가 쉽게 볼 수 있는 지역, 위치를 대륙조선이 포함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한 사실에서 열심히 위치와 근거를 찾기 위하여 지금도 밤낮으로 연구하고 있는 재야 사학자들이 많이 있다. 머지않아 그들로 하여금 체계화된 사실적 근거가 백일하에 들어 나 우리모두를 대낮같이 깨우쳐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

조선에 석유가 있었다?

[YTN뉴스] 2007년 11월 14일(수) 오전 02:20


[앵커멘트]

우리나라는 흔히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고 말하는데요.

그런데 조선에 석유가 있었다는 소문이 당시 중국에 파다했다고 합니다.

육당 최남선이 쓴 조선판 '상식용어 사전'에 나오는 내용인데요, 권오진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고려의 동방 수 천리에서 맹화유가 나니 뜨거운 볕에 돌이 달아서 나는 액이란 물에 들어가면 불길이 뻗치고 다 죽느니라'.


송나라 시대에 쓰여진 '작몽록'에 있는 기록입니다.


또 명나라 때 박물학자인 이시진은 '본초강목'에서 '석유는 고려에서 나니 석암에서 솟아서 샘물과 섞여 흐르며 빛이 검고 유황 기운이 있는데 그곳 사람이 떠다가 등을 켜니 대단히 밝았다'고 적었습니다.


최남선은 그러나 조선에 석유가 있다는 소문이 옛날에 중국에 퍼져 있었지만 조선 안에서 석유를 발견한 사실은 물론 없다는 전제를 깔았습니다.


'삼천리 화려강산'에서 삼천리는 무슨 뜻일까?

옛날 서울에서 함경북도 끝에 있는 온성까지 약 2,000리, 전라남도 끝 해남까지 약 1,000리로 이를 합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조선은 '날이 샐 때 햇볕이 맨 먼저 쏘이는 곳'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조선민족의 흰옷을 입는 습관은 백성들이 태양을 하느님이라고 믿었고 태양의 광명을 표시하는 의미로 흰빛을 신성하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육당은 그러나 때를 가리지 않고 흰옷을 입는 것은 시대를 따라갈 줄 모르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장가든다는 말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장가의 의미는 장인과 장모의 집이란 뜻이므로 곧 처가로 들어간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내가 부인을 얻으려면 그 집에 들어가서 한동안 살다가 첫아이를 낳은 뒤 분가하는 법이 있었다는 부연설명을 달았습니다.


그는 특히 조선인의 민족성으로 낙천성결벽성 근면함 지구력 용맹함을 장점, 형식의 과중함, 조직력과 단합심 소속감이 약한 것을 단점으로 들었습니다. 매일신보에 연재한 '조선 상식'을 모태로 한 이 책은 1946년에 재편했으며 해방직후 사회에 꼭 필요했던 조선인들의 민족의식을 높이고자 기획했습니다.


YTN 권오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