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

요즘 사람, 한문공부 안해 팔할은 짐승 돼

한부울 2007. 11. 5. 16:58
 

요즘 사람, 한문공부 안해 팔할은 짐승 돼

[조선일보] 2007년 11월 05일(월) 오전 00:22


조선시대 사색당파(四色黨派)는 일반적으로 남인(南人)과 북인(北人),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을 일컫는다. 이중 남인과 노·소론은 조선후기까지 명맥을 이어 지금도 전국 곳곳에 그 학맥을 자처하는 유학자들이 있다. 하지만 광해군 시대 집권했던 북인(대북)은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자취가 사라져 북인 학맥을 이었다는 선비를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경남 합천에서 평생 살고 있는 유학자 춘산(春山) 이상학(李相學·90) 옹은 스스로 북인 학맥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매우 드문 경우다. 그는 “남명(南冥) 학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칼을 찬 유학자’로 유명한 남명 조식(曺植·1501~1572)은 북인학자들이 공통의 스승으로 섬기는 조선중기의 대학자다. 임진왜란 의병장들 대부분이 그의 제자들이었고, 광해군 즉위 후 그의 제자들이 정권을 잡았다. 남명은 이기론(理氣論)과 심성론(心性論) 같은 성리학의 이론적 측면에만 몰두하는 당대 유학자들을 향해 “물 뿌리고 비질하는 법도 모르면서 입으로만 천리(天理)를 말하며 이름을 도둑질하고 세상을 속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상학 옹은 “남명 선생은 청백하고 정직한 산림학자(山林學者)였다”면서 “학문은 글보다도 사람의 도리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충효지덕(忠孝之德)을 닦지 않으면 글을 안다 해도 천하에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남명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임진왜란 난리가 났을 때 남명 제자들 50여명이 의병을 일으켰어요. 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쫓아내지 않았소? 이순신 장군과 남명 선생 두 어른이 임진난 난리를 평정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 남명 선생은 충효 예절 도덕의 학문을 닦으면서 세상에 나가지 않고 산림에서 청백한 선비로 살았지. 내가 그 영향을 많이 받았어.”

남명과 퇴계를 비교하실 수 있습니까.

퇴계는 청백하고 정직하고 충효 도학을 숭상한 대 선생이지. 좌도(左道)에 퇴계가 있다면 우리 우도(右道)에는 남명 선생이지. 두 분이 낳은 해도 같은 신유생(辛酉生·1501년)이야. 글은 퇴계 문집이 많지. 남명은 10권 미만이거든. 글이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고, 충효 도덕 예절 인륜만 갖추면 책이 한 권이라도 좋은 것이지.”

영남을 남북으로 흐르는 낙동강을 기준으로 동쪽을 경상좌도, 서쪽을 경상우도라고 부른다. 안동을 중심으로 한 좌도는 퇴계의 학맥이 이어졌고, 합천·진주 등을 중심으로 한 우도는 남명의 학풍이 자리 잡았다. 이 옹은 퇴계와 남명을 “구슬이 두 개라, 쌍벽(雙璧)이지.”라며 높이 평가했다.


남명의 수제자인 정인홍(鄭仁弘·1535~1623)은 인조반정 직후 참형을 당했습니다.

서울 선비들이 시골 선비를 잡아먹은 거요. 내암(萊菴·정인홍의 호)은 이곳(합천)이 고향인 분이야. 눈 하나에 눈동자가 둘인 중동(重瞳)인 분이었어. 눈이 두 개니까 눈동자가 넷이었지. 보통 분이 아니지. 이 분이 정권을 잡으면 서울 사람들이 꼼짝 못해. 그러니까 역적으로 몰아붙인 것이지.”

눈동자가 넷이었다고요?

그래요. 순(舜)임금이 중동이고, 항우(項羽)가 중동이지. 서전(書傳)과 통감(通鑑)에 나와요. 한국에서는 내암 선생이 중동이지. 동양에서는 이 세 사람밖에는 없었어.” (‘선조수정실록’에 정여립 아들의 눈이 중동이라는 말이 나온다. 조선중기의 학자 송익필도 중동이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중동이 한 눈에 눈동자가 두 개라는 뜻이라는 데는 이설(異說)이 있다.)

젊은 시절에는 어떻게 사셨습니까?

나는 일본에 반대해서 머리도 안 깎고 지금까지 살아왔소. (이 옹은 머리에 상투를 틀고 있다.) 젊을 때 상해 임시정부에 가서 심부름이라도 하려고 만주에 갔지. 산해관이 막혀서 들어가지는 못했어. 나는 합천이 관향(貫鄕·본관)이오. 합천 가야산 밑 학계(鶴溪)에서 태어나 살다가 쉰 살이 넘어서 읍으로 나왔지. 학교는 안 댕겼고(다녔고).”

왜요?

일본이 싫어서 그랬지. 지금 생각하면 학교 다니고 독립운동 하면 되는 긴데…. 내가 어릴 때부터 재주가 있다고 해서 윤영보(尹永甫) 변도형(卞道亨) 윤석희(尹錫熙) 여러 어른들한테 글을 배웠어. 문리(文理)를 얻어서 한문으로 적은 책은 모를 게 없어. 특히 변 선생한테는 한시(漢詩)를 배웠지. 성균관 한시 백일장에서 장원만 30번 했소. 시관(試官·시험 심사 및 감독관)은 70~80번도 더 했고.”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 기념으로 한·중·일·대만 4개국이 참여한 한시 대회에서 ‘천하 장원’을 차지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시대에 한문 공부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요즘 세상에는 한문을 공부하지 않아서 10분의 8~9할은 짐승이 됐어. 앞으로 한문이 부흥되어야 해.”

한문을 모르면 짐승이 됩니까?

인간이 되려면 행신(行身·처신)을 잘해야 하지. 부모로부터 받은 몸을 잘 가지고 다녀야 해요. ‘불초자손 욕급선조(不肖子孫 辱及先祖·자손이 잘못하면 조상을 욕보이게 된다)’라는 말이 있어. 이런 말을 알면 내 몸을 귀중하게 가지고 다니게 되지.”

그는 “요즘은 동족 혼인, 여자 호주 같은 망할 소리만 하고 있다. 모두 금수의 짓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전(書傳)에 ‘빈계사신(牝鷄司晨)은 유가지색(惟家之索)이라’는 말이 있어. 암탉이 새벽을 맡으면 집이 비색(否塞·운수가 꽉 막힘)해진다는 뜻이지. 여자들이 나서는 게 좋은 것이 아니오” 했다.

그런 말씀을 여자들이 들으면 큰일 납니다. 그러니까 유학이 고루하다는 말을 듣지요.

나쁜 여자들을 말하는 것이지, 남자를 보호하는 옳은 여자를 말하는 게 아니오. 남자라고 소인(小人)이 없나? 천지만물은 음양조화로 크고, 음양조화로 삽니다. 비가 하루 오고 볕이 열흘씩 나면 만물이 잘 크지만, 볕이 하루나고 비가 열흘씩 오면 만물이 안 커요. 일폭십한 만물부장(一曝十寒 萬物不長), 일한십폭 만물구생(一寒十曝 萬物俱生)이지.”

이한수 기자(합천=글·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