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북한의 탄도탄ICBM, 그 위협의 실체

한부울 2007. 11. 2. 22:59

 

북한의 탄도탄ICBM, 그 위협의 실체

2007-05-13 12:16:58


지난 해 7월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미사일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실험을 해 미국을 놀라게 했던 북한이 잠수함이나 선박에서 발사하는, 사거리 2천500km 이상의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 또는 배치중이라고 최근 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가 밝혔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잠수함이나 선박 발사용 미사일은 지상발사용보다 훨씬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하는데다가 이동이 자유로워 사거리 제약을 상당 정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상발사용 장거리 미사일인 대포동 2호보다도 미국에겐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초 사거리 70km급의 단거리 미사일, 프로그 7의 도입을 통해 시작된 북한의 미사일 개발은 경제난과 주변국의 견제 등 여러가지 제약에도 불구하고 부단한 진화를 거듭했다. 그리고 이제는 선박을 통한 발사수단 등의 개량으로, 모자라는 사거리를 보완하는 편법까지 동원, 한반도만이 아닌 전 세계를 향한 위협으로 발전하고 있다.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된 북한이 이제 그 운반수단인 장거리 미사일까지 갖추게 된 것은 한반도만이 아닌 전 세계가 북한의 위협권에 들어간다는 의미로써 심각한 안보이슈가 아닐 수 없다. 이에 <코나스>는 북한의 미사일에 대해 그 기원과 성능 그리고 위협의 정도를 종합 정리하고 장래의 파장까지를 분석해 보는 기획특집을 마련했다.

수회에 걸쳐 연재할 이번 기획특집은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근·현대 군비경쟁사를 전공하고 석사학위를 받은 'military mania' 김영림(金永林) 객원기자가 맡았다.<편집자>


북한의 탄도탄, 관리되지 않는 위협(1)

written by. 김영림


북한의 미사일이 가진 위험성에 대해 혹자는 이런 비유를 한다.

‘경찰이 가진 자동소총과 강도가 든 식칼 중 어떤 것이 더 위험할까?’

현명한 독자라면, 당연히 후자가 더 위험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경찰이 가진 자동소총은 항시 철저한 안전관리상태에 놓여 있고,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법적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한 그것이 사용되는 대상은 범법자에 국한된 것이다. 반면 강도의 식칼은 강도 자신의 의지나 욕망에 따라 강도보다 약하거나 경계가 풀어져 있는 일반인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공갈 혹은 상해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경찰의 것보다 훨씬 열등하고 위력이 낮은 무기임에도, 강도의 식칼이 더 위험한 것은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요컨대 ‘관리되는 위협’과 ‘관리되지 않는 위협’의 차이인 것이다.


필자가 이러한 비유를 화두로 꺼내는 것은 최근 연달아 급부상하는 북한의 위협- 탄도탄과 핵탄두 확보-에 대해, 도리어 그것을 옹호하는 일부 친북적 인사들을 비판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북한의 핵보유와 미사일개발에 대해 성토하는 국제여론을 두고 핵을 독점한 강대국의 일방적 횡포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존 핵보유국인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은 그 정치체제가 안정되어 있고, 자신이 보유한 핵탄두와 미사일의 사용은 물론 유출까지 철저히 엄금하는 ‘관리되는 위협’이다. 반면 지금까지 북한이 보여준 행태-협정위반, 대량살상병기 및 기술의 수출-를 볼 때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위의 비유에 대입한다면, 분명 ’강도의 식칼‘ 따라서 ’관리되지 않는 위협‘에 가까운 존재 일 것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강대국의 그것에 비하면 아직까지는 ‘강도의 식칼’이란 비유에 걸맞게 사거리나 정확도 등의 기술적 측면에서 열등하다. 그러나 강도의 식칼이니만큼 그것은 경찰이 아닌 가까이 있는 일반인, 쉽게 말해 대한민국을 1차적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주지해야할 것이다. 또한 그 강도의 식칼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다른 불량배들 -일명 북한과 동반자 관계에 있는 ‘불량국가 그룹’과 테러리스트-들에게도 넘겨져 한반도만이 아닌 국제사회 전반에 까지 그 위협을 확산시킬 수 있는 우려가 있는 만큼 그것이 가져올 정치, 외교 및 군사적 파장에 항시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필요성이 있다.


따라서 이번 기획특집 첫 회는 북한의 관리되지 않은 위협, 그중에도 수출을 통해 범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위협인 북한의 탄도탄에 대해 그 기원과 성능, 예상할 수 있는 위협에 대해 분석해 보고자 한다.


위협의 시작-탄도탄 화성5, 6호(SCUD-B, C)의 개발

                                              ▲ 국군의 어네스트 존 발사모습


한반도에 최초로 배치되기 시작한 탄도탄체계는 주한미군이 1960년에 들여온 MGR-1A ‘어네스트 존’ (Honest John)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유도장치가 없고 사거리도 38km(개량형 MGR-1B는 좀 더 증가)로 짧아, 탄도탄보다는 포병화력을 보완하는 대형 로켓에 가까운 개념의 무기였으나 필요시, 40KT급의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전술적 유연성이 뛰어난 무기체계였다. 당시 미국과 첨예하게 대립 중이던 소련은 이에 대응하는 무기체계인 ‘프로그’(FROG) 단거리 탄도탄을 개발했고, 북한도 1969년에 이 체계를 도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초에는 한국육군도 주한미군 7사단이 철수하면서 잉여장비로 어네스트 존을 도입, 남북한의 미사일균형은 팽팽하게 지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남북한 사이에 지속되던 미사일균형은, 이 1970년대를 기점으로 급변하게 되었다. 종전의 미, 소 양극과 각각을 따르는 세력들 간의 대결로 진행되던 냉전체제가, 미 대통령 닉슨의 중공방문을 거치며 다극화 체제로 변모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벌어진 미국의 월남 포기와 패망은 미국의 맹방이던 대한민국조차도, 미국으로부터 더 이상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를 우려하게 만들었다. 그 우려를 반증하듯 주한미군은 지속적으로 감군되고 있었고,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미군이 5년 내에 완전히 철수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 NKH-1 백곰: 한국최초의 국산 탄도탄이다, 개량형 현무의 명중률은 CEP 50m 급에 달하는 정밀도를 자랑한다.


마침내 1977년 카터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전면철군까지 입안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그 결과 박대통령은 미군의 철수가 초래할 급격한 전력공백을 매우기위해 야심찬 자주국방계획을 추진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지금도 최신병기체계에 속하는 탄도탄의 국산화였다.


백곰이라는 암호명으로 시작한 한국형 탄도탄은 미국의 나이키 허큘리스 지대공미사일을 모델로 하여 지대지 탄도탄으로 개량한 것으로, 즉각 발사가 가능한 고체연료 로켓을 장비하고, 최신 관성항법장치를 도입한 유도시스템을 통해 최종적으로는 미국의 퍼싱-2 중거리미사일과 동급인 50m 급의 CEP(원형공산오차-탄착정밀도)를 자랑하는 무기로 완성되었다. 1978년, 한국형 탄도탄은 성공리에 시험발사를 마쳤고, 기술후진국으로 인식되던 대한민국의 위상을 재고시켰으며, 소련조차도 그해 발간된 당 기관지 ‘붉은 별’의 사설을 통해 한국의 탄도탄개발에 주목할 정도의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북한 또한 비밀리에 독자적인 탄도탄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다.


한국형 탄도탄이 개발되던 시기, 북한 또한 1970년대의 세계조류의 변화로부터 체제수호에 심대한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스탈린 사후 벌어진 소련의 스탈린 격하운동과 중공의 반발, 중소국경분쟁을 통한 양대 사회주의강국의 분쟁 속에서, 북한은 줄타기 외교를 통해 양측으로부터 지원을 끌어내고 있었지만, 양국의 분쟁을 통해 그간의 이데올로기적 확신이 무너져가고 있었다. 게다가 미중간의 수교는 북한역시 그들이 의존하던 냉전체제에 결정적인 이상이 발생한 것을 감지하게 만들었고, 이러한 격변 속에서도 그들의 체제를 고수하고자 주체사상이라는 신정(神政)일치와 유사한 독자 이데올로기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그와 동시에 체제수호의 수단으로 무력의 강화를 선택했고, 그 핵심은 역시 독자적인 핵과 탄도미사일의 확보였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집착의 근원은 이러한 체제수호욕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욕구와 달리 핵은 물론이고 탄도탄을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과정은 지난한 것이었다. 북한의 줄타기 외교는 종국에는 중. 소 양국 모두의 불신을 초래했고, 한미미사일각서를 통해 사거리 제한을 두는 대신 선진국으로부터 합법적으로 기술을 확보하던 한국과 달리 북한은 중, 소 어느 쪽에서도 첨단기술을 도입할 수 없었다. 그러한 불신을 반증하는 사례로서, 소련은 1969년 북한에 프로그 미사일을 공급할 때 스커드 미사일용의 이동식 발사대 12~15기를 공급했지만 미사일 본체만은 넘기지 않았다는 정보도 있다. 결국 북한은 탄도탄 기술의 확보를 제3의 경로를 통해 입수했다.


1973 년 4차중동전 당시  이집트에 MIG-21 조종사 1개 중대를 파견하여 지원했던 북한은 그 대가로 프로그 시리즈의 최신개량형인 프로그-7탄도탄의 기술정보를 넘겨받을 수 있었다. 어네스트 존과 마찬가지로 무유도 로켓이었던 종전의 모델과 달리 프로그-7은 도플러 레이더와 라디오 지령시스템을 장착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단거리 탄도탄이었고, 북한은 이 정보를 토대로 1979년부터 독자적인 미사일의 연구개발에 들어갈 수 있었다.

                                           ▲ 북한군의 단거리 탄도탄 프로그-7


그러나 앞서 언급한대로 소련등으로 부터 기술을 도입하기 힘들었던 북한은 81년 8월 이집트와 ‘과학기술합의’를 맺고 비로소 개발의 시초가 되는 기술과 노하우를 흡수하게 된다. 특히 북한이 절실히 바라고 있었던 것은 '스커드-B'(Scud-B) 미사일의 본체였다.

 스커드 미사일은 2차 대전 중 독일이 런던 공습에 사용해 악명을 떨쳤던 세계최초의 탄도탄 V-2의 기술을 기초로 소련이 독자적으로 개량한 모델이다. 스커드 미사일의 첫 번째 모델인 스커드-A가 배치된 것은 1957년이었으며 이 당시에도 기동성을 중시해 스탈린 중전차의 차체를 개수한 이동식 발사대에 탑재되어 운용되고 있었다. 스커드-B미사일은  스커드-A의 크기를 확대해 사정거리를 130km에서 300km로 연장시키고, 이동식 발사대를 궤도식의 스탈린 중전차 대신에 MAZ-543P 다용도 트레일러로 교체하여 기동성을 향상한 모델이다. 이 모델의 실전배치는 1965년에 이루어졌고, 소련은 이집트에 기술을 유출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 스커드-B를 넘겼다. 그러나 탄도탄을 확보하고자 하는 욕망은 북한만이 아닌 이들 중동국가들도 갖고 있었고, 이집트는 일종의 위탁개발형식으로 북한에 스커드-B와 MAZ-543P 이동식 발사대 세트를 넘겼다. (일설에는 1976년, 이집트에 파견된 북한조종사들이 귀국할 때 이미 스커드-B형이 북으로 넘어 갔다고 전해진다.)


1984 년, 북한은 이 스커드-B형의 본체를 나사못 하나까지 분해하여 역설계하는 과정을 통해 복제 생산하는 것에 성공했으며 그 과정에서 이란의 자금지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사실상 중동과 북한의 본격적인 미사일 커넥션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개발된 북한제 스커드-B형을 북한에서는 화성-5호라고 부른다. 사거리도 원형인 스커드-B보다 연장된 330km에서 380km에 달하며, 1989년에 개발된 북한판 스커드-C형인 화성-6호는 사거리가 500km에 달해 사실상 한반도 전역이 그 위협에 노출 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두 탄도탄은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이 되어 제 3세계국가의 대량살상병기 확산에도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다음 기사에는 북한의 대 중동 탄도탄 수출과, 한반도뿐만 아니라 일본까지도 위협하는 노동 1호의 실체에 대해 서술해 보겠다.(konas)

▲ 북한군의 퍼레이드에 등장한 화성-6호(SCUD-C)의 모습, MAZ-543P 다용도 트레일러에 탑재된 이동식 미사일 시스템이다.


북한과 중동의 탄도탄 커넥션과 노동1호의 개발(2)

written by. 김영림

 

▲ 북한제 탄도탄의 변천과정, 스커드-A에서 시작해 노동미사일까지의 형태 및 크기변화가 드러난다.


앞서의 연재에도 제시하였듯이 북한의 미사일 개발은 중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북한은 60년대 말의 프로그 탄도탄 도입 이래로, 공여국 소련의 허가 없이 일반고폭탄이 실린 탄두부에 임의로 화학탄을 탑재하는 개조를 통해 독자적인 미사일 기술을 확보해 나갔다. 그러나 다극화시대로 대표되는 70년대 냉전체제의 변화 속에서, 서로 대립하게 된 양대 사회주의 종주국-중공, 소련-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북한은 그 반작용으로 어느 쪽으로 부터도 미사일 기술을 쉽게 얻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 그리고 이 기술 장벽의 틈새에서 북한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된 것이, 역시 탄도탄 기술 확보를 갈망하던 중동이었다는 것은 이미 전술한 바 있다.

70년대 당시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국가들은 중동에 세력기반을 구축하려는 소련의 의도에 따라 막대한 양의 소련제 최신병기들을 입수할 수 있었다. 그중 MIG-21전투기, 스틱스 대함미사일, T-62전차, BMP 보병전투차등의 병기들은 중동전에서도 크게 활약하였으며, 소련은 이집트에게 이스라엘의 탄도탄-제리코 단거리 탄도탄-에 대응하도록 이동식 스커드-B 미사일 까지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소련은 이집트에게도 북한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완제품만이 아닌 생산기술의 이전만큼은  인색했다. 경쟁국 이스라엘은 이미 1970년에 프랑스의 기술로 지대지탄도탄을 국산화하여 중동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당시 중동의 맹주를 자처하던 이집트는 탄도탄 수입에만 그치지 않고 독자적인 탄도탄기술을 확보하길 원했다. 그들은 과거 낫세르 집권기 때에도 독일 기술자의 협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탄도탄 체계를 확보하려다 서방측의 제재로 좌절당한 전력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이 나타난 협력자는 새로이 제3세계국가와의 반미, 반 서방연대를 표방하던 북한이었다. 그리고 다년간의 역설계를 통한 무기 국산화 전력이 있는 북한과  이집트사이에서 미사일 본체와 역설계기술의 교환이라는 빅딜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빅딜이 바로 1981년 8월, 북한과 이집트 간의 ‘과학기술합의’였다. 일반적으로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 국산화는 이 이후 본격화 되었다고 추정되어지고 있다.


그리고 1984년, 최초의 북한제 스커드가 완성되어 동해를 향해 발사 테스트가 실시되었다. 그러나 이 때 만들어진 시제품은 보통 300km의 사거리를 갖는 스커드-B보다 사거리가 모자랐고(280km), 본격 양산은 그 약점을 개선한 1985년에 이루어졌다. 오리지날 스커드-B 보다 사거리가 연장된(320~340km) 북한제 스커드-B, 일명 화성 5호는 1986년에 들어서 월 8~12발 꼴로 양산되었고, 87년에는 중동으로 수출되기에 이른다. 첫 고객은 이라크와의 전쟁이 한창이던 이란이었다. 이란, 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는 소련제 무기로 충실히 무장하고 다량의 스커드 미사일까지 보유한 반면 이란은 회교혁명으로 종전에 보유하던 서방제 무기체계의 공급선이 끊기고 소련과의 관계도 그때까진 서먹하여 매우 불리한 입장에 처해있었다. 이라크군은 스커드 미사일의 떨어지는 탄착정밀도(명중오차범위 900m 이상)를 대도시와 같은 거대한 목표에 무차별 발사하는 것으로 보완했고, 이란의 수도 테헤란은 이 공격으로 8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당시 테헤란 인구의 4분의 1이 공포심에서 도시를 탈출하게 만드는 부수적 효과까지 얻었다. (이는 통상탄두의 탄도탄이라도 상대국에 대해 큰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북한의 스커드가 서울에서 120㎞ 떨어진 북한 신계기지에서 발사될 경우 서울에 3분30초 만에 도달하는 대한민국의 상황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란은 새로운 무기도입선으로 독자 노선을 표방하던 북한을 선택했고, 북한으로부터 수입한 스커드가 다시 이라크에 대한 보복병기로 사용되기에 이른다. 사실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 국산화는 대량 구매를 약속한 이란이라는 시장이 있었기에 탄력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어서 1989년에는 스커드-B보다 사거리가 연장된 사정 500㎞, 탄두중량 700㎏인 스커드-C형 미사일을 자체 개발, 월 4~8발 양산 체제에 들어간다. 일설에는 이란이 자국 내에서 수거한 ‘알 후사인’(스커드-C의 이라크 판)의 잔해를 북한에 제공하고 그것을 참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우리 국방부는 1987년 3월에 「북한이 원산 북방에서 스커드-B를 기초로 한 장거리 미사일의 비밀실험을 하고 있다」고 발표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북한제 스커드-C형의 존재가 처음으로 공표된 보도일 것이다.


북한은 미사일의 개발이 진전되고 보유하는 미사일 수가 충분해지자 북한 인민군에 미사일 부대를 창설하였다. 1986년 초에 미사일 부대를 창설하고 1988년에는 인민군 제 4군단에 최초의 스커드-B 미사일 연대를 편성했으며, 1991년 스커드-C형 36기를 제조한 단계에서 미사일 여단을 편성하였다.


생산체제가 정비되자 북한은 수출에도 힘을 기울기 시작하여 스커드-C형을 1991년부터 이란에, 그리고 시리아에는 약 60기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1991년 5월 이란은 북한으로부터 도입한 스커드-C형을 테헤란 남방 500km의 사거리에 발사 실험한 것으로 알려졌고, 1992년 8월에는 이스라엘 수상이 시리아가 이란으로부터 입수한 북한제 스커드-C형 미사일 발사실험을 했다고 공식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첫 후원자였던 이집트에도 그 개량기술이 넘어가 이집트 독자의 사거리 연장형 스커드 개발의 토대가 되었다. 이것은 북한의 스커드-C형이 국제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고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중동국가들로부터의 미사일 판매대금은 다시 한 번 종전의 성능을 끌어올린 후속형의 개발에 투입된다. 이들 중동국가들이 제공하는 돈과 그것을 통해 더욱 개량된 미사일 공급의 반복, 이것이 북한과 중동간의 미사일 커넥션의 기본구조였다. 이후 노동 시리즈나 대포동 시리즈 등의 신형 중, 장거리 탄도탄의 개발에도 이들 국가와의 커넥션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 노동미사일의 구조 개념도. 액체연료 추진식이라는 것은 기존의 스커드와 다를게 없지만, 최종 돌입단계에서 탄두부가 분리되도록 되어 있다.


이란에 스커드-C가 공급된 91년과 같은 해 북한은 벌어들인 외화를 통해 더욱 개량된 스커드-D라는 신형탄도탄을 개발했다. 스커드-D는 단순히 탄두를 줄이고 연료탱크를 조금 연장하는 식으로 개량된 스커드-C 와 달리 전반적으로 그 크기를 늘리고 탄두가 최종돌입단계에서 로켓부스터와 분리되는 등의 기술적 진보를 이룩했다. 스커드-D는 최초 91년도의 시험발사는 실패한 것으로 보였으나 93년 5월 29일 함경북도 김책시 부근의 노동(蘆洞)발사대에서 동해 중앙부를 향한 시험발사 성공을 통해 국내외에 큰 충격을 주었다. 발사 사실이 처음 보도된 것은 6월 11일로 일본의 고위당국자가 ‘자위대가 확인했다’고 흘린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6월 14일에는 일본 방위청이 조사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이것이 바로 일명 노동-1호의 등장이었다. 추정사거리 1,300km에 달하는 이 미사일은 한반도만이 아닌 일본까지 사정에 넣었고, 그 결과 북한의 탄도탄 확산문제에 일본까지 개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미사일의 주요 고객인 이란이 이 미사일을 확보할 경우 이슬람권 공통의 숙적 이스라엘까지 사거리에 넣을 수 있는바, 북한의 미사일수출은 대상지역의 안보구도에도 심대한 악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북한은 냉전붕괴와 함께 시작된 중소국가로의 탄도탄 확산 붐을 사실상 촉발시켰다. 제3세계와의 외교를 위한 당근으로 단거리탄도탄을 제공하던 소련이 냉전붕괴와 함께 사라지고,  중국역시 개방과 함께 단거리 탄도탄 수출을 자제하면서 생긴 공백에 북한이 대신 공급자의 자리를 차지했다. 문제는 북한이 결코 정정이 안정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분쟁당사국들에게까지 외화벌이 수단으로 치명적 전술 전략무기인 탄도탄을 공급했다는 것에 있다. 북한이 지금까지 공급한 탄도탄은 화성 5-6(스커드-B, C)호가 이란, 리비아, 이집트, 예멘 등에 500발, 노동미사일은 이란, 리비아, 파키스탄에 50~100발이 넘게 수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노동미사일은 이란에는 샤하브3, 파키스탄에는 가우리라는 명칭으로 각각 배치되어 주변국가(이스라엘, 인도 등등)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그 결과 비슷한 시기 벌어진 걸프전쟁을 통해 단거리 전술탄도탄도 얼마든지 상대국에 대한 치명적 공갈 및 위협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미국은 냉전붕괴로 폐기된 SDI(전략방위구상: 전면 핵전쟁에서의 대륙간탄도탄 요격시스템, 속칭 스타워즈계획)계획을 일부 부활시키기에 이른다. 제 3세계에 확산된 중거리 탄도미사일 -쉽게 말해 관리되지 않는 위협- 으로부터 동맹국과 파견된 미군을 지키기 위한 TMD(전역미사일 방어)계획과 미 본토에 대한 탄도탄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NMD(본토 미사일 방어)계획, 총칭 MD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단순히 방어용 무기체계 개발에만 전념하는 것이 아닌, 저렇게 무차별적으로 유통되는 미사일 공급원 그 자체의 단속 및 차단에도 주의를 돌리게 된다. 대량살상병기 통제에 대해 미국이 촉각을 기울이게 된 것에는 역시 북한의  탄도탄 수출도 큰 이유였던 것이다. (konas)

▲ 수출용 노동미사일의 각형식. 위로부터 이란의 샤하브-B, 샤하브-A, 파키스탄의 가우리 순이다. 샤하브-B는 탄두부분만 다를 뿐 기본적으로는 가우리나 샤하브-A, 노동미사일과 동일하다.


김영림 코나스 객원기자


북한의 미사일 커넥션과 칸 네트워크(3)

written by. 김영림


노동1호의 수출 및 제 3세계 확산이 가지는 의미는 과거의 스커드 미사일 수출과 격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스커드 같은 단거리 탄도탄은 엄밀히 말하면 포병화기의 연장선상개념으로 운용 된 것이다. 잘해야 40km가 한계인 야포의 사거리를 극복하고자 프로그나 어네스트 존 과 같은 무유도 로켓이 개발되었고 그것보다 좀 더 긴 사거리의 병기 개념으로 활용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스커드와 같은 단거리 탄도탄이었다. 그러나 노동과 같은 중거리 탄도탄은 1000km이상의 사거리를 이용, 경우에 따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적대국의 국토 대부분을 커버하는 준 전략무기로서 사용이 가능하고, 그에 따른 정치 외교적 응용범위도 종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실제로 과거 냉전당시 동서 유럽의 국경에 배치되었던 중거리 탄도탄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미소 본토에 떨어져 배치된 대륙간 탄도탄 못지않은 정치적 억지력을 가졌었다. 미소의 중거리 탄도탄이 냉전 종식과 함께 제일 먼저 폐기 된 것도 그러한 이유였고, 한때는 중거리 탄도탄이라는 병기 체계 자체가 사라지는 듯했다.


그런데 몇 년 지나지 않아 갑작스럽게 등장해 제 3세계 국가의 베스트셀러 상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노동 1호였다. 그것은 수출대상국의 지역균형 그 자체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공개행사중인 이란의 샤하브-3 탄도탄. 이란의 탄도탄 확보는 북한과의 공조가 낳은 결정체였다.


  이란에 먼저 이란에 판매된 노동의 예를 들어보면 샤하브-3(SHAHAB-3: 샤하브-1, 2는 북한 제 화성-5, 6호의 이란 판)로 라이센스 생산되어 이슬람 전체가 적대하는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고, 뿐만 아니라 중동전체에 이란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도구가 되었다. 게다가 파키스탄에 수출된 노동1호의 경우에는, 파키스탄이 개발한 핵무기와 결합되어 더욱더 강력한 무기로 변신했다. 그것은 적대국 인도를 위협하는데 그치지 않고 다시 한 번 북한과 주변 이슬람 국가로 피드 백 되어 한미 안보당국자들을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북한의 노동 미사일은 일명 ‘칸 네트워크’와 북한을 잇는 중대한 매개체였던 것이다.

▲ 1998년 5월, 지하핵실험을 수 시간 앞에 두고 포즈를 취한 압둘 카디르 칸 박사. 애국심과 종교적 신념이 그의 행동철학이라 하나 그는 분명 제 3세계 핵확산의 장본인이자 실재하는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다.


칸 네트워크’의 중심인물이자 파키스탄의 국가적 영웅, 압둘 카디르 칸 박사는 1998년 파키스탄최초의 핵실험을 성공시킨 장본인이었다. 그는 서독 벨기에 네덜란드등을 거치며 물리학과 농축우라늄 기술을 배웠고, 1976년 귀국 후엔 카후타 연구소를 건립하여 핵탄두 기술 개발에 전념했다. 그는 먼저 핵무장에 성공한 인도에 대항하기 위해 파키스탄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보았고, 나아가 그 기술을 주변국에 전파에 반 서방 핵클럽을 만드는 것까지 기도했다. 그는 1990년대 초부터 이란, 리비아, 북한에 우라늄 농축 기술과 원심분리기 도면, 부품 등을 제공해왔으며 이들 3국 실무자들과 콸라룸푸르, 카사블랑카, 이스탄불, 모로코 등지에서 만나 관련 부품을 건넸고 기술자문 역할을 맡아왔다. 이것이 일명 ‘칸 네트워크’였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아니면서도 핵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로는 파키스탄에 앞서 이스라엘과 인도가 있지만, 이들 국가의 핵기술은 주변에 확산되지 않은데 비해(이스라엘과 남아공이 한때 공동핵개발을 했다는 의혹은 있다.) 칸 박사가 벌인 행위는 사실상 3세계 핵확산의 첫 도화선을 당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핵무기 확산시도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북한의 탄도탄 기술이었다.

                           ▲칸 연구소의 작업장에서 롤 아웃된 가우리 탄도탄의 모습.


칸 박사는 90년대 초 핵개발과 동시에 발사수단 의 확보를 연구했다. 핵무기 체계라는 것은 핵탄두의 확보라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을 상대국에게 투사하게 만드는 투발수단과의 결합이 필수적이다. 파키스탄이 적대국 인도의 주요도시를 공격하기 위해선 북한이 개발한 사거리 1300km의 노동 1호의 기술이 절실한 것이었다. 칸 박사는 노동미사일이 아직 개발단계이던 1991년부터 13차례 북한을 방문했고, 1997년 12월에는 파키스탄군 육군참모총장이 북한을 방문했다. 그리고 파키스탄 제 노동 1호인 ‘가우리’는 4개월 후인 1998년 4월 발사 실험에 성공했다. 미 정보당국은 가우리가 칸 박사가 북한으로부터 들여온 10~12개로 분해된 노동 1호의 부품을 조립하여 완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통해 핵보유국임을 선언 한 것은 미사일 실험에서 1달 남짓한 5월 28일 이었다.


문제는 북한의 미사일이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에 공헌한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북한의 미사일기술과 파키스탄의 핵탄두 기술이 일종의 구상무역의 형태로 양국 간에 교환되었던 것이다. 이란에 제네바 핵합의 후 플루토늄 핵개발 프로그램이 봉인되어 있던 북한의 입장에서 파키스탄의 고농축 우라늄(HEU)을 사용한 핵탄두 기술은 몹시 탐이 나는 것이었다. 대규모의 설비가 필요한  플루토늄재처리에 비해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개발은 좀더 시설의 규모를 숨기기 쉬웠다. 또한 플루토늄 핵탄두는 재료와 구조의 특성상, 핵분열을 위해선 고도의 정밀도를 가진 기폭장치의 개발과 반복된 핵실험을 통한 폭발 데이터 구축이 필요했다. 그러나 서방은 저러한 기폭장치에 필요한 부품유출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었고, 작년 10월의 북한 핵실험이 예상을 및 도는 낮은 폭발력을 보인 것도 기폭기술의 미비로 보는 측도 있다. 반면 농축우라늄을 이용한 핵탄두는 실험이 없다 해도 이론상 설계만 완벽하다면 실전에서도 거의 불발하지 않는다. 지난 2차세계대전, 미국이 1945년 7월 16일 세계최초의 핵실험을 플루토늄 탄을 이용하여 성공시켰음에도 히로시마에 가해진 세계최초의 핵공격에는 우라늄탄을 사용했던 것도 저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 우라늄탄과 플루토늄탄의 차이를 보여주는 구조도. 구의 안쪽 면에 배열한 플루토늄들을 오차 없이 동시 기폭 시켜야 핵분열이 일어나는 플루토늄탄에 비해, 우라늄탄은 기폭장치가 훨씬 단순하다.


북한이 관심을 보이자 칸은 원심분리기를 이용한 우라늄 농축기술과 설비 및 자재를 북한이 입수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거기에다 칸 네트워크의 해당국들은 동시에 북한과 미사일 커넥션을 이루고 있는 국가-이란, 리비아, 파키스탄-들이었다. 칸 네트워크와의 이러한 거래는 단순히 북한의 제네바 핵 합의 위반을 넘어서서, 대량살상병기의 확산이라는 중대한 문제로서 국제사회의 이슈가 되었다. 북한은 이러한 ‘위험한 거래’를 통해 1996년부터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탄두 개발 프로그램을 가동했고 그것이 드러난 것은 잘 알려진 대로 2002년 켈리 특사의 방북 당시의 사건을 통해서였다. 켈리 특사 일행에게 HEU를 이용한 핵개발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강석주 외무상이 시인해 버렸기 때문이다.

▲2005 년 3월 이란이 공개한 이스파한의 우라늄 전환시설의 모습. 이 공장에서는 농축우라늄의 원료인 육불화 우라늄을 만드는 작업이 이뤄진다. 출처: 연합뉴스


이후 북핵문제는 국제안보이슈로 부활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인 상황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1994년의 상황과 달리 칸 네트워크와의 연계라든지 중동과의 미사일 커넥션을 통한 북한 발(發) 대량살상병기의 확산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지금 시점에선, 북핵문제 하나의 해결만으로 국제사회가 안심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되었다. 그리고 북한은 노동 1호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개량형을 개발, 선전하여 출자자에게 선보이고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등장한 쇼 비즈니스 상품이 다음에 설명할 대포동 시리즈이다. (konas)


쇼 비즈니스 상품 대포동-1.2호(4)

written by. 김영림

 

               ▲북한 최초의 인공위성을 탑재한 것으로 알려진 대포동 1호의 발사장면.


1994 년 2월, 북한이 2단계 로켓 형태의 새로운 미사일 2기를 제작하고 있다는 사실이 미국에 의해 포착됐다. 미국은 이 지역의 명칭을 따 미사일 이름을 대포동으로 명명했다. 그리고 북한은 1998년 9월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옛 대포동)에서 대포동 1호를 인공위성 발사란 명목으로 발사해 세계를 경악케 한 바 있다. 사실 북한의 미사일 개발능력이 집중 조명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98년 8월 31일 발사한 대포동 1호는 마지막 3단계 부분이 6000km를 비행해 미국 알라스카 인근 해상까지 비행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나 북한이 주장하는 소형 인공위성은 지구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불타 버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앞서 미 국방부는 98년 9월15일 "북한이 대륙간 탄도탄을 개발 중" 이라는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케네스 베이컨 국방부 대변인은 북한은 이번 발사에 3단계에 고체연료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3단 추진식 대포동 1호는 사거리가 2000km 정도이지만 위성발사용으로 개조된 3단 추진식 대포동 1호, 일명 백두산 1호는 알려진 대로 6000km를 비행했고 후속 개발 중인 대포동 2호는 2단 추진 식 만으로도 6000km이상, 3단으로 개조하면 더욱더 긴 사거리를 가질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정도면 GPR(미군재배치계획)에 의해 사실상 미국의 동북아 무력전개 포스트가 될 괌 기지는 물론 나아가 미국 본토인 알라스카까지 충분히 사거리 안에 넣는 수준이다.

▲ 대포동 1.2호의 개념도. NKSL-1.2라고 적힌 3단 추진부는 대포동 1. 2호의 인공위성 발사형이다. 이란 수출형은 각각 SHAHAB-5, 6로 분류된다. 우측은 대포동2호의 1단 추진체 기술에 전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소련의 SS-4.5와 중국의 CSS 2. 3의 모습이다.


CEP 는 3000 m이상으로 핀 포인트 목표 공격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대도시 공격에는 충분한 명중 정밀도다. 탄두 중량은 750kg이라는 소형이기 때문에, 통상의 고성능 작약에서는 파괴력은 한정적이다. 그러나, 핵·생물·화학 병기를 탑재하면 상대방을 공황상태에 빠뜨리는 것은 가능하고, 그 심리적 효과는 대단히 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포동 시리즈의 개발은 사실상 유엔 상임이사국 외의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대륙간 탄도탄의 개발에 착수한 만큼 국제사회의 시선집중도 과거와 비교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대포동 탄도탄 시리즈는 알려진 것과는 달리 실제 전술적 효용가치로는 보잘 것 없는 속빈 강정일 가능성이 있다. 사실상 1960년대 수준의 기술을 넘지 않는 초보적인 대륙간 탄도탄이기 때문이다.


일단 그 기본구조는 대단히 조잡하고 단순해 대포동 1호는 1단은 노동1호에 2단으로 스커드-C를 얹어 만들었으며, 대포동 2호 또한 중국의 CSS-3 탄도탄(중국최초의 인공위성 발사용 로켓으로도 전용된 바가 있다. 혹은 소련제 구형 SS-5를 참조했다는 설도 있다. 실제로 1992년에는 구소련의 미사일 기술자들이 대거 입북을 시도하다가 러시아 정보국에 의해 저지된 사례도 있다.)을 참고한 1단에 노동 1호를 2단으로 얹은 것에 불과하다. 멀리서 보면 그 실루엣은 가늘고 긴 연필처럼 보일 것이다. 단지 저런 기존보유 미사일의 조합으로 값싸게 장사정 탄도탄을 만들어 낸 점만은 평가해 줄 만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 미사일은 발사 결정 버튼이 눌러 졌다 해서 바로 날아 갈 수도 없고, 발사 준비가 진행되는 동안 서방의 정찰 위성의 감시에 항시 노출되어 있다는 것에 있다. 기본적으로 액체 연료추진 로켓이니 만큼, 고체연료 로켓처럼 항상 즉시 발사태세를 갖추기 힘들고 연료를 주입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그 크기 때문에 은닉도 여의치 않다. 이동식 트레일러 차량에 실을 수도 없고 조립절차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서방에서는 대포동 1호, 2호 모두 발사 수주 전부터 감시를 시작할 수 있었고, 사실상 북한의 미사일 실험과정은 벌거벗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는 이러한 상황을 북한 스스로 의도하여 즐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대포동의 발사는 모두 야외에 설치된 발사대에서 행해졌으며, 미국이나 서방국가가 정치적 군사적 후폭풍을 감내할 여력이 있다면 발사준비 중에 장거리 정밀 유도 병기를 이용하여 간단하게 ‘제거’ 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튼튼한 지하 사일로를 건설해 대포동을 그 안에 장진시키는지는 불확실하지만, 그런 수단이 없으면 대포동을 실제 병기로 사용하는 것은 북의 입장에서도 매우 난망한 일일 것이다.

▲ 중국 최초의 인공위성 동방홍 1호(좌)와 북한이 발사했다고 주장하는 광명성 1호(우)의 모습, 보다시피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세계를 놀라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완성도에서 아직은 미비하다는 지적도 많다. 먼저 대포동 1호는 그 실험에서 3단추진체로 개조해 알라스카 근처까지 비행할 수 있음을 보여 줬지만, 원래 목표인 인공위성 ‘광명성’을 궤도에 올리는 것은 실패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발사 후 4분 53초만인 12시 11분 53초에 위성을 자기 궤도에 정확히 진입시켰고,「김일성장군의 노래」와 「김정일장군의 노래」선율과 함께 '주체조선'이라는 모르스 전신부호가 27MHz로 9일 동안 지구상에 전송되었다라고 한다. 그런데 이를 캐치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뿐더러, 사진으로 공개된 광명성 1호의 모형은 중국이 1970년 발사한 중국 최초의 인공위성 ‘동방홍 1호’와 거의 똑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런 면을 볼 때 북한의 위성기술은 낡은 중국기술의 복제이거나 있지도 않은 물건을 프로파간다용으로 급조해서 공개한 게 아닌가? 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일단 위성의 발사 실패에 대해 일반적으로는 3단 째의 탄두 분리기술이 미비하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의견이 보편적이다. 그리고 대포동 탄도탄의 탄두로 탑재 가능한 핵병기의 개발에는,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므로, 현시점의 북에는 독자 개발 능력은 없다고 전망된다. 게다가 대포동 2호의 경우, 탄도 비행의 최고 고도는 1000 km를 넘고 목표를 향해 마하 20이상의 속도로 낙하한다. 탄두 부분은 대기권 재돌입 시, 단·중거리 탄도 미사일보다 고속으로 낙하하기 때문에 대기와의 마찰 및 고온에 노출되므로 제조에는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북한이 이런 기술을 습득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추진장치의 신뢰성 문제에 대해서도 의혹이 많다. 일단 대포동의 연료는 연료탱크에 충전한 상태로 저장이 가능한 연료인 UDMH(Unsymmctrical Dimethyl Hydrazine:비대칭 디메틸 하이드라진)탱크와 산화제인 IRFNA(Inhibited Red Fuming Nitric Acid:적연 억제 질산 칼륨산)를 사용하는 걸로 추정된다. 그러나 저장이 가능하다해도 역시 부식성이 높은 연료이기 때문에 장기간 연료탱크에 충전하는 것은 위험하고 이와 같은 연료를 사용하는 미국의 타이탄2형 대륙간 탄도탄의 경우엔 종종 폭발사고를 일으켜 문제가 되기도 했다. 발사에 성공한 대포동 1호와 달리, 지난 2006년 여름, 발사도중에 분해 되어버린 대포동 2호의 경우는 주변국의 이목을 끌기위해 연료를 충전한 채 발사까지 너무 오랜 시간을 끌었던 것이 실패의 원인일 수도 있다. 대포동 2호는 발사하기 일주일 전부터 연료가 충전 된 상태였고, 그 과정에서 연료계통에 부식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대포동 2호는 2003년에도 연소시험 중 엔진 폭발사고를 일으킨 전력이 있다고 전해진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연료 자체만이 아닌 엔진의 경우에도 기성품(노동1호+스커드-C)을 이용해 조립한 대포동 1호와 달리, 새로이 1단을 제작한 대포동 2호의 추진계통은 충분한 기계적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 미국의 타이탄 2 대륙간 탄도탄의 폭발사고 모습. 액체 연료로켓은 고체 연료로켓에 비해 연료를 충전한 채 장기 보관하는 능력이 떨어져, 선진국의 탄도탄은 대부분 고체 연료식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대포동시리즈는 서방에 충격을 주는 것만큼은 성공했다. 북한은 어찌되었건 장사정미사일의 개발 능력을 보였고 일단 발사된다면 그것의 요격은 상당히 골치 아픈 영역에 속하게 된다. 대포동 1호만 하더라도 탄도 비행의 최고 고도는 500 km이상에서 목표를 향하고 마하 10이상의 속도로 낙하한다. 기존의 패트리엇 체계로는 스커드 보다 더욱 고속으로 낙하해 오는 대포동의 탄두 요격은 곤란하여, 이것의 요격에는 THAAD, PAC-3 등의 고성능 요격 미사일이 필요하다. 대포동 2호는 낙하 돌입 속도가 마하 20에 달하기에 위의 TMD(전역미사일 방위)용 요격미사일 체계만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고, 미국이 미사일 조기경계위성과 초장거리 위상배열레이더, 그리고 GBI(지상배치 요격미사일)가 조합된 NMD(미 본토 미사일 방위)체계개발을 추진하는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대포동 시리즈의 발사가 북한의 주장대로 순수한 인공위성 발사라 할지라도, 그것은 40여 년 전의 일명 ‘스푸트닉 쇼크’의 리바이벌 판으로서 의미가 있다. 1958년 미소가 탄도탄 개발에 한참 열을 올리고 있을 무렵, 소련은 실질적으로 탄도탄 보유수에서 미국보다 열세였던 상황이었다. 후르시쵸프가 공언하던 수소폭탄을 탑재한 세계최초의 대륙간탄도탄 R-7 또한 실제 보유량은 수기에 불과했으며(냉전종식 후 밝혀짐) 서방측은 후르시쵸프의 주장을 허풍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R-7의 개발자 코롤레프는 ICBM의 보유와 발사능력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한 방편으로 인공위성의 발사를 강력히 주장했고 그 결과 농구공 크기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되기에 이른다. 이것은 단지 그들의 과학 개발 성과를 대외에 과시하는 도구로 기획했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 미친 후폭풍은 참담하여, 소련의 기술력에 대한 공포를 실제 이상으로 주입시키고 핵 경쟁에서 소련이 우세한 것처럼 위장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인공위성의 발사는 대륙간 탄도탄 개발 능력을 입증, 과시하는거와 마찬가지의 의미가 되었고 강대국들은 이를 경쟁적으로 행했다.

▲ 세계 최초의 대륙간 탄도탄이자 인공위성 발사체 R-7.(NATO 코드 SS-6) 스푸트닉위성 발사와 같은 화려한 데몬스트레이션으로 소련의 핵능력을 과시하고 서방을 협박하는데 성공했다.


대포동 또한 북한과 같은 후진국에서 '이 정도의 기술력을 어떻게든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 뿐만이 아니라, 단순히 북한이 이것을 무기로 전용하는 것만이 아닌 북한과 커넥션을 맺고 있는 ‘불량국가’그룹에도 그 기술과 완제품이 넘어가 서방을 위협할 가능성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 가능성은 단순히 가능성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최근 미국과의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는 이란에서도 북한에서 도입한 대포동 2호의 기술로 인공위성을 발사를 기도(애비에이션 위크 & 스페이스테크놀로지, 2007년 1월 29일자 참조) 하는 것으로 현실화 되고 있다. 대포동 시리즈는 일명 선전용 병기로서, 서방과 적대하면서도 그들에게 주목받기를 갈망하는 이들 ‘불량 국가’에게 훌륭한 홍보 및 공갈 수단으로 사용되는 쇼 비즈니스 상품인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쇼 비즈니스 상품의 데몬스트레이션과 별도로 북한은 실질적으로 더욱 위협이 될 만한 탄도탄 체계를 속속 개발하여 세계를 위협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것은 대포동 2호 실험 당시 같이 발사되어 실험에 성공한 것으로 추정되는 중거리 탄도탄인 노동 B형 혹은 북한판 SS-22로서, 서방에 진정한 위협이 될 가능성을 가진 무기체계이다. 다음 회에는 이것에 대한 분석으로 연재를 이어가겠다. (konas)


숨겨진 비수‥스커드 ER인가, SS-22인가?(5)

written by. 김영림


작년(2006년) 7월의 대포동 2호 실험은 실패였다고 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실험은 1단 추진체의 능력만 검증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성공했다. 완제품은 이란에서 실험할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긴 했지만 아직은 확인할 길이 없다.


모두의 관심이 대포동의 실험에 쏠려 있는 마당에 그것이 실패함으로서 북한의 미사일 기술은 세간의 비웃음거리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포동의 실패에 가려진 진짜 위협적인 성과물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


그것은 대포동 발사당시에 같이 쏘아 올려 진 수발의 중거리 탄도탄의 정체가 무엇인가에 따라 판가름 날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이날 대포동과 별개로 발사된 6발의 탄도탄을 각각 스커드 단거리 탄도탄과 노동 1호 중거리 탄도탄으로 추정하고 있고 일본 방위청은 노동1호가 아닌 스커드를 사거리 1000km급으로 개량한 스커드 ER(가칭)이라는 신형미사일을 실험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스커드 ER에 대해 조갑제 전 월간 조선 편집장은 한 탈북고위층의 증언을 인용해 이날 실험한 미사일이 노동 1호도 스커드 ER도 아닌 보다 발달된 SS-22중거리 탄도탄의 북한판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북한은 노동보다 훨씬 우수한 비수를 갖추고 남한과 일본을 위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북한이 보유했을 가능성이 의심되는 신형 탄도탄 SS-22의 모습.


조갑제 기자의 보도에 의하면 그가 만난 고위급 탈북자는 북한의 SS-22도입에 관해 이렇게 증언했다고 한다.


북한 군부는 노동 미사일보다도 스커드 미사일을 좋아한다. 노동 미사일을 쏘는 데는 연료주입이나 充電(충전)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발각되기도 쉽기 때문이다. 2000년 무렵부터 북한 과학원은 舊소련의 SS-22 미사일 모방 설계를 완성하여 試製品을 만들었고 그것을 목격했다. 북한에선 육상에서 출력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실험을 한 것이 분명하다"


북한이 보유했다고 의심되는 SS-22는 미 국방부에서 부르는 호칭이며 SS-12M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구소련에서는 Temp-S 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려 졌는데 그 개발은 구소련이 1959년 이래 '발사명령 수령 후 발사까지 준비에 20~30분밖에 소요되지 않을 것'을 목적으로 추진해온 9K71 "Temp" (tempo)이동식 미사일 시스템이 기원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데이터에 따르면 이 미사일의 초기형인 SS-12(형식명: 9K76 )은 연료를 미사일내에 충전한 채 보존 할 수 있는 개량형 액체연료 로켓에 900킬로미터의 사거리, 명중정밀도는 목표물에서의 CEP(원형공산오차)0.81km이내의 성능을 가졌고, SS-22(혹은 SS-12M 형식명: 9K76B로 )는 SS-12의 추진계통을 고체연료추진방식으로 개량하고 CEP를 0.23km 이내로 향상시킨 모델이며 둘 다 최대 1메가톤급의 핵탄두를 운반하는 것이 가능하다.


게다가 SS-22는 길이와 직경 모두 스커드를 훨씬 상회하는 노동 미사일과 달리 기존의 스커드를 탑재하던  MAZ-543 다용도 트레일러를 이동식 발사대로 사용가능하다. 이 트레일러는 8륜구동 식으로 산악에서도 기동력이 우수하여, 그 길이 때문에 민수용 대형 컨테이너운반용 트레일러에 실려 운반되어야 하는 노동 미사일에 비해 훨씬 운용이 용이하다. 사실 현재까지 사진으로 확인된 수출용 노동1호의 운반트레일러를 보면 북한의 구불구불하고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인 도로사정에서는 기동에 상당한 제약이 있어 보인다. 따라서 노동 1호는 이동식 발사대를 이용한 미사일 발사방식의 이점인 신속한 이동과 발사 후 은닉에서 종래의 스커드에 비해 열세일 가능성이 높다. SS-22를 북한이 배치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일선에서의 요구도 포함된 결과일 것이다.

▲ 북한의 스커드 C와 SS-22 이동식 발사시스템의 비교. 보다시피 같은 종류의 차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 SS-12, 22시리즈와 종래의 스커드미사일 사이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사거리뿐만 아니라 항시 신속 발사가 가능하다는 즉응성에 있다.


종래의 스커드 시리즈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액체연료 로켓으로, 4산화질소 같은 부식성이 강한 물질을 산화제로 사용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연료를 장진하지 않고, 발사 직전에 연료충전 작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액체연료충전작업은 매우 위험하면서도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1시간가량의 발사준비시간이 필요했고, 그동안은 한 자리에서 정지한 상태에서 대기해야 하기 때문에 적국의 감시와 공격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 쉽게 말한다면 순발력이 엄청나게 떨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 걸프전 당시에는 발사준비 중에 다국적군의 공습으로 격파당한 스커드의 숫자도 상당하다 한다. (최근에는 격파한 걸로 알려진 스커드 중 상당수가, 진짜처럼 만든 가짜(dummy)였다는 보고서도 나오고 있다.)


반면에 SS-12는 개량된 액체연료를 이용해 평시에도 연료를 미사일 내부에 충진 하는 게 가능하고, SS-22는 이를 더욱 개량해, 아예 연료탱크 부식위험 자체가 없는 고체연료방식으로 추진체를 바꾼 모델이다. 그러한 만큼 발사명령 수령 후 발사까지의 준비시간이 절반이하로 짧아졌다. (그것에 더해 이동식 발사대!) 북한이 이 미사일을 보유한 게 사실이라면 비상시 그것을 발사준비단계에서 탐지, 공습으로 사전 격파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희박해지고, 그만큼 한, 미연합군과 한국국민의 안보에 치명적이고 심대한 위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이 미사일의 기술을 어떻게 도입했을까? 원래 액체연료 추진방식이 주력이던 북한의 중거리 탄도탄기술 수준에서, SS-22의 고체연료 추진체 기술을 과연 북한이 확보 할 수 있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SS-12와 마찬가지로 액체연료추진식일 가능성이 높은데, 역시 구소련제가 가진 수준만큼의 신뢰성을 확보했을까?


SS -22는 1980년대 말, 미 소 간의 중거리 미사일 폐기협정에 따라 전량 폐기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스커드 보다 훨씬 우월한 무기체계인 만큼, 해외로의 기술유출을 용납하기 힘든 무기체계이다. 그럼에도 SS-22가 쿠바로 밀반출되었다는 미확인 소문이 돈 적이 있다. 북한이 기술을 얻은 소스는 종래의 ‘맹방’인 쿠바일 가능성이 높다.

▲ 최근 북한이 국산화했다고 전해지는 또 하나의 단거리 탄도탄 SS-21. 비록 사거리는 120km로 짧지만, 소련이 미국의 랜스 미사일에 대항해 개발한 미사일이니 만큼 전쟁시 한국군에게 새로운 전술적 위협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북한의 추진체 기술은 주로 액체연료 추진체에 의존하고 있는 게 사실이긴 하나 사거리 100km미만의 단거리 탄도탄의 경우엔 프로그-7같은 고체연료 추진로켓도 자체적으로 조달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프로그-7의 후속모델이자 소련판 ‘랜스’ 미사일이라 할 수 있는 SS-21 ‘스캐럽’ 단거리 탄도탄의 국산화도 실현, 배치하고 있다는 정보도 있는데, 이 역시 고체추진식 로켓이고 사거리도 120km 수준으로 연장되었다. 북한은 이러한 반복된 기술개발로 고체 추진로켓기술의 노하우를 더욱 더 일신하였을 가능성도 없진 않다.


그래도 여전히 의혹은 남아 있다. SS-22보유설 자체가 비록 탈북 고위층이 정보소스이긴 하나, 기본적으로는 증언에 의존하고 있다. 게다가 그날 실험한 미사일이 노동 1호도, 스커드 ER도 SS-22도 아닌 전혀 별개의 미사일이라는 보도도 있다.


조선일보의 유용원 기자는 2006년 7월 18일, 한미 정보당국이 북한이 지난 5일 발사한 6발의 미사일 가운데에 사정거리 2500~4000㎞의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2발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추적 결과를 정밀 분석 중이라고 보도했다.


그는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 5일 발사된 북한 미사일 7발 가운데 대포동 2호 1발을 제외한 6발 중 2발의 미사일에서 기존의 노동 및 스커드 미사일과는 전혀 다른 전파신호를 포착, 새로운 미사일 2발을 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그 소식통은 그 미사일 2발이 당초 최대 사정거리 1000km인 신형 스커드(스커드-ER)일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추가분석 결과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일 가능성도 나와 정밀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정거리 2500~4000㎞의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그것은 본 기획에서 다루는 북한 탄도탄의 위협, 그중에서도 진정한 와일드카드이자, 새로운 수출 상품인 노동-B형으로 불리는 소련제 잠수함발사 탄도탄의 개조형이다.  

 

                           ▲노동 B형의 모델이 된 SS-N-6잠수함 발사 탄도탄의 모습.


노동 B형, 진정한 비수인가?(6)

written by. 김영림


북한최초의 중거리 탄도탄이자 그들의 수출 효자상품인 노동 미사일은, 등장당시 조만간 후속 개량형이 나올 것이라고 관측되었고 국내와 일본 언론에서는 일반적으로 노동 1호 미사일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추정치의 성능데이터만 돌고 있던 노동 미사일의 후속형은 노동 2호라고 불렀다.

▲ 북한의 신예 중거리 탄도탄 노동 B형은 컴팩트한 사이즈와 긴 사정거리로 기존의 노동 1호나 대포동 시리즈 보다 전술적 응용범위가 훨씬 넓다.


그러나 이 노동이라는 코드네임을 부여했던 미 정보당국에선, 그 후속코드네임으로 종전의 상식처럼 NODONG-2라고 부여하지 않고 NODONG-B형이라는 이름을 부여했으며, 그 대상이 되는 미사일 또한 도저히 노동미사일의 후계형으로 보이지 않는 동떨어진 형상을 하고 있었다. 또한 그 형상 뿐 만 아니라 사거리와 성능 면에서도 확연히 틀리다. 베이스가 된 미사일자체가 노동1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미사일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언론에 공개된 것은 2003년 9월 8일, 미국의 정찰위성이 평양근교의 미림비행장에서 발사대에 거치된 상태로 있던 이 미사일 10여기의 사진을 찍은 후였다. 실제 이러한 종류의 미사일이 개발 중이라는 정보는 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이미 한미정보당국도 감지하고 있었으나, 실제로 찍힌 사진 속의 미사일 모습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존재였다. 그것은 종전의 지대지 미사일이 아닌 잠수함 발사용 탄도탄(SLBM)의 형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노동 B형의 원 모델인 SS-N-6(R-27)운용하던 양키급 원자력 잠수함. 사진은 1971년, 함내 화재 사고로 버뮤다해상에서 긴급 부상했을 때의 모습.


미 정보당국은 이 미사일의 원 모델을 구소련의 양키 급 원자력 잠수함에 탑재한 SS-N-6잠수함발사 탄도탄(소련에서는 R-27로 분류, 일부자료에서는 BM-25로 표기)으로 추정하고 있다. SS-N-6미사일은 사실상 소련이 처음으로 본격실용화 한 잠수함 발사 탄도탄으로 미국의 폴라리스 잠수함 발사 탄도탄에 대응하는 급의 미사일이다. 소련은 실제로는 이전부터 골프 급 디젤 잠수함이나, 호텔 급 원자력 잠수함에, 스커드 미사일의 파생형인 SS-N-4나 SS-N-5미사일을 탑재한 전력이 있었으나 성능 적으로 동시대의 미국제 폴라리스 미사일에 비해 훨씬 열등했고 발사 시엔 잠수함이 물위로 부상해야 하는 등 결함이 많았다. 수중에서 발사할 수 있으면서도 성능 면에서 서방에 처지지 않는 진정한 잠수함 발사 탄도탄은 이 SS-N-6이 최초일 것이다. 스커드의 개량과 확대 및 다단계화 (화성5, 6호, 노동 1호, 대포동1, 2호)만으로 장사정 탄도탄을 개발하던 북한이 갑자기 이러한 소련제 잠수함 발사 탄도탄을 국산화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은 여러모로 주목할 만한 일이다. 북한은 어떻게 그 미사일을 국산화 할 수 있었을까?

▲ 노동 B형과 기존의 노동미사일과의 크기 비교. 직경은 조금 늘었지만 길이를 포함한 전체적인 크기에서 상당한 컴팩트화를 이룬 것을 알 수 있다.


일단은 소련제 잠수함발사 탄도탄 또한 최초에는 스커드를 기본으로 시작했다는 걸 볼 때 북한 또한 그것을 하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1992년, SS-N-6개발 이전의 잠수함발사 탄도탄인 SS-N-4와 SS-N-5를 개발하는데 참여했던 구소련기술자를 몰래 고용하려다 러시아 정보당국에 저지당한 전력이 있다. 그리고 비록 기술자를  입국시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역시 90년대 초 구소련 극동함대에서 사용하던 골프 급 잠수함 10여척을 고철 분해 및 기존의 잠수함 수리부속 확보 목적으로 들여오기도 했다. 골프급 잠수함은 북한도 보유한 로메오 급 잠수함에서 파생된 디젤추진식 탄도탄 탑재 잠수함으로  SS-N-4나 SS-N-5를 최대 3발까지 탑재할 수 있는 잠수함이었다. 북한이 도입할 당시에 이들 잠수함에서는 미사일은 제거되었지만, 발사시스템이나 각종 도면은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 기술은 기존의 노동미사일 개발에도 전용되었다고 서방측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그러 나 SS-N-6는 역시 그 이전의 미사일과는 판이한 성능을 지닌 미사일이다. 북한이 이 미사일을 개발하는 과정에는 역시 구소련 붕괴 후 고용주를 찾아 헤매던 러시아의 기술자의 협력이 대폭 들어갔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작년의 대포동 2호 실험당시의 태도처럼 러시아가 북한의 미사일 능력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것에는 저러한 ‘원죄’에 의한 자격지심이 깔려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각설하고 이제는 이 SS-N-6 잠수함 발사탄도탄의 북한판인 노동 B형의 성능과 위협의 정도가 어떠한지에 대해 알아보자.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면 이 노동 B형의 성능과 위협은 비록 추정치이지만, 지금까지 열거한 여러 북한제 탄도탄들 중에도 가장 강력한 무기일지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지역을 한반도만으로 국한 시킬 경우엔 기존의 스커드 개량형이나 노동미사일만으로도 이미 충분이상의 위협이 되고 있다. 그러나 범용성과 사거리, 세계에 불러올 파장에서는 이 미사일은 쇼 비즈니스 상품인 대포동과는 격을 달리할 무기가 될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먼저 노동 B형의 추정 제원을 알아보자. 원 모델인 SS-N-6보다도 탄두와 연료의 용량을 늘렸다 하지만 그 길이는 12미터에 직경은 1.5미터로, 길이 15미터 급의 노동 1호나, 23미터 급의 대포동 1호 보다 훨씬 컴팩트한 사이즈를 가졌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크기에도 불과하고 사거리는 2,500km에서 4.000km에 해당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동 1호의 사거리 1300km나 대포동 1호의 2000~3000km를 훨씬 상회하는 성능이다. 사실상 대륙간 탄도탄(5.500km이상이 기준)에 조금 못 미치는 존재인 것이다.

▲ 노동 B형의 컨테이너 위장 발사대의 개념도. 만약 북한이나 이란이 저러한 전술을 사용할경우 미사일의 위협만이 아닌 임검 문제만으로도 범세계적 물류대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게다가 그 크기와, 잠수함발사 탄도탄에서 파생된 출생배경은 이것의 운영범위도 훨씬 광범위하게 만들어 놓았다. 노동 B형은 12미터라는 길이덕분에  현재 국제 해운 표준으로 사용되고 있는 40피트 컨테이너에 그대로 수납이 가능하다. 이것은 밀수출이 용이함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분해하지 않은 완제품상태에서도 수납이 가능하고 유사시에는 개조한 컨테이너 형 발사대를 잠수함의 미사일발사관과 같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이는 일반상선을 이용해서도 발사가 가능하다는 걸 의미할 뿐만 아니라, 상선을 이용해 의심받지 않고 적국해안에 더욱 근접하여 쏘는 것으로 종전의 미사일로는 사거리가 닿지 않는 곳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당초 핵미사일 탑재 잠수함의 개발도 비슷한 이유를 갖고 있다.)


일견 007 영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과거 60년대 미국에서도 나토 동맹국과 함께 핵미사일을 상선에 탑재 운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사례를 생각할 때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이야기다. 북한은 수년전 우리는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만들었다고 기염을 토한 적이 있다. 그 무기체계란 대포동을 개량한 대륙간 탄도탄이 아니라, 이 노동 B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북한의 노동 B형은 지금 북한의 탄도탄 능력에 촉각을 세우던 한, 미, 일  3개 국 만이 아닌 유럽국가들 에게도 중대한 안보문제로 떠오를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과거의 스커드와 노동 1호등과 마찬가지로 이 노동 B형 또한 속칭 불량국가에 수출되었으며, 그것을 입수한 국가는 유럽의 거의 대부분을 공격범위 안에 넣었다. 그 수입국은 바로 지금 국제이슈의 축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란이다.


이스라엘의 일간지 ‘하레츠’의 보도에 의하면 작년 4월, 이스라엘군 정보기관의 수장 아모스 야들린 소장은 이란이 유럽에 닿을 수 있는 미사일의 첫 인도분을 북한으로부터 이란은 받았다고 강연을 통해 말했다고 한다.

▲ 노동 B형과 노동 B형을 2단 추진체로 사용하는 대포동 2호의 개량형의 모습. 이란은 이 모델을 위성발사명목으로 발사실험을 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독일의 일간지 ‘빌트’ 역시 그보다 앞선 2005년 12월, 독일정부의 정보를 인용하여, 이란이 18개의 노동 B형 미사일들을 부품상태로 북한으로부터 구입했다고 보도했다. 빌트 지는 동시에 이 미사일의 사거리는 2500km 급이지만 이란의 대통령 아흐마디네자드 는 그 미사일들의 사정거리를 3500km로 늘일 것을 원한다고 덧붙이며 이란이 미사일이 사정거리를 더 늘이고  그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하면 이란은 이스라엘뿐 만아니라 중부유럽(최대 추정치는 프랑스 파리 남부까지)도 타격이 가능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2006년 6월 말, 북한의 대포동 2호 테스트가 임박한 가운데 미국은 유럽에도 MD를 구축할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그 미사일 방어시스템이 막고자 하는 것은 명확하다. 바로 이란이 구입한 노동 B 형과 그 개량형인 것이다.


미국이 동유럽국가(체코, 폴란드)와 협상하여 배치하기로 한 MD 시스템에는 이란제 노동미사일 SHAHAB-3을 대상으로 한 TMD용의 THADD미사일 뿐 만아니라, 대포동 시리즈처럼 미본토를 노릴 수 있는 미사일들을 우주공간에서 격추하기위해, 알라스카 기지에 배치중인 GBI(지상발사미사일)시스템도 포함되어있다. 노동 B형은 기존의 노동미사일을 훨씬 상회할 뿐 만 아니라, 대포동 1호에 근접하거나 더욱 능가하는 성능을 가졌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노동 B형은 노동 1호를 대신해 대포동 2호 미사일의 2단 발사체로 전용될 가능성도 있고 더욱더 사정거리가 연장된 개량형이 이란에 넘어갈 가능성은 농후하다. 실제로 앞서 언급했듯이 이란은 대포동 2호를 자국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체로 사용하려 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게다가 노동 B형은 기존의 검증된 미사일 기술을 이용해 개발한 것이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북한의 다른 중거리 탄도탄보다 더 신뢰성이 우수할 가능성도 있으며, 대포동 같은 기술 실험용의 성격이 짙은 미사일보다 더욱 실전적이다. 그리고 이란은 이 실전적 무기체계를 소지하고 농축우라늄프로그램을 통해 핵탄두 탑재를 기도하고 있으며 그러한 무기를 실제로 반미, 반 이교도 목적으로 사용할 각오가 되어 있는 회교 원리주의 정권 치하에 있다. 그리고 그들은 과거의 테러전력에서 보듯 상선을 이용한 발사 같은 변칙적인 수단도 충분히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란이 그들이 생각하는 위기 시에 이 무기체계를 사용할 가능성은 결코 북한에 비해 낮지 않다. 도리어 종교적 확신으로 무장했으며 이란이라크 전쟁이라는 기나긴 소모전기간동안 적국과 탄도탄을 주고받은 전력이 있는 국가로서 자국에 대한 제재가 들어올 시에 사용할 가능성은, 김정일의 안위와 체제수호에 목을 매는 북한보다 더 높을 지도 모른다.

▲ 노동 B형의 사거리별 미대륙 공격가능 범위를 보여주는 지도. 노동B형은 상선을 이용한 위장침투 선박으로 미국 연근해에 접근하는데 성공한다면 사실상 미국의 48개 주를 사거리안에 넣을 수 있다 (지도출처 글로벌시큐리티)


최근 국내 분위기는 2.13 핵합의를 통해 북핵과 미사일 발사사태의 긴장이 크게 완화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직 종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북한의 2.13 합의 이행 의지와 관련된 변수만이 아니다. 북한이 뿌린 '악의 씨앗'-관리되지 않는 위협-이 여전히 정세가 불안정한 국가에 퍼져있고, 어떤 결과로 비화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미사일이 초래하는 위기는 지구 저편에서 또 한 번 새로운 전개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인터넷신문 KON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