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동포

고려인 1·2세대, 고국서 꿈같은 5일

한부울 2007. 10. 30. 22:07
 

고려인 1·2세대, 고국서 꿈같은 5일

[중앙일보] 2007년 10월 30일(화) 오전 05:54

 


[중앙일보 이찬호] “강원도와 주민의 도움으로 평생소원을 풀었습니다. 도민의 푸근한 정 마음에 품고 돌아갑니다.”29일 오후 속초시 동명동 속초항 국제여객터미널은 눈물바다를 이뤘다. 4박5일 일정으로 모국을 방문하고 연해주로 돌아가는 고려인들은 자신들을 초청하고 돌봐준 관계자와 자원봉사자를 끌어안고 “고맙다” “감사하다”란 말을 되풀이하며 눈시울을 붉혔다.모국 방문을 마친 고려인들이 29일 오후 연해주로 돌아가기에 앞서 속초항 국제여객터미널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자신들을 돌봐준 자원봉사자와의 작별을 아쉬워하고 있다.

[고려인돕기운동본부· 강원도 제공]


고려인돕기운동본부·강원사회복지신문·강원환경사랑 초청으로 25일 모국을 방문한 이들은 강릉 선교장·이마트·서울 경복궁·삼척 죽서루·홍천 무궁화동산·동해 화력발전소·울진 원자력발전소 등을 둘러보면서 고국의 정취와 발전상을 확인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모국이 너무 발전해 놀랐다” “고향 땅을 밟아 본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스탈린에 의한 고려인 강제 이주 70주년을 맞아 초청된 모국방문단은 강제 이주 고려인 1~2세대 및 독립운동가 후손 109명과 자원봉사자 35명 등 모두 144명. 러시아 자루비노를 떠나 18시간 만에 올 수 있는 거리였지만 이들이 고국 땅을 밟는 데는 80여 년이 걸렸다.고려인돕기운동본부 등은 7월 “죽기 전에 고국 땅을 한번 보았으면 원이 없겠다”는 고려인들의 소망을 이뤄주기로 뜻을 모았다. 연해주 각 지역에 알려 방문단을 모집했다.

그러나 경비가 문제였다. 다행히 한글강사를 파견하고 고려인 청소년을 초청하는 등 2005년부터 고려인 조국문화 전파사업을 펴온 강원도가 이들의 모국 방문을 흔쾌하게 지원했고, 동춘관광은 이들의 뱃삯을 할인해줬다.

또 삼척시와 동해시·하이원리조트·성우리조트 등에서 숙식을 무료로 제공하거나 비용을 깎아 줘 고려인 모국 방문이 성사됐다.26일 강원도청을 방문해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사진을 김대기 정무부지사에게 전달한 외손녀 김알라씨. [고려인돕기운동본부· 강원도 제공]

방문단은 이에 26일 강원도청을 찾아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를 염원하는 2017명의 고려인 서명이 담긴 현수막과 감사패를 김대기 정무부지사에게 전달했다.

현수막은 김 정무부지사가 더 서명해 2018명을 채웠다.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 등에서 독립군을 지휘한 홍범도(洪範圖) 장군의 외손녀 김알라(67·연해주 스파스코시) 씨도 홍범도 장군 사진을 전달했다. 홍 장군이 일제를 물리친 공으로 레닌 초청으로 모스크바를 방문, 레닌으로부터 권총 선물과 함께 전쟁영웅 칭호를 받은 뒤 찍었던 젊었을 때의 흑백사진이다.

김씨는 “할아버지가 지킨 조국이 이렇게 발전한 걸 보니 기쁘다” 며 “조국을 방문할 수 있게 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방문단 최고령으로 소련 시설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삼척 출신 전인수(82·연해주 파르치챤스크)씨는 “강원도 도움으로 두 살 때 고향을 떠난 지 82년 만에 찾아오게 됐다”며 “후손들이 언젠가는 조선에 와 조선말 하고 조선창가 부르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고향이 양구 수윤면이라는 박찬목(71·연해주 우스리스크) 씨는 사촌 형제가 있을 것이라며 수소문했지만 친척을 찾지 못한 대신 강원환경사랑의 알선으로 29일 속초에서 수윤면 명예면장을 만나 고향 소식을 들었다.고

려인돕기운동본부 박정열 사무국장은 “강원도와 도민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고려인이 꿈에 그리던 모국을 방문할 수 있었다”며 “더 많은 고려인이 우리나라를 찾을 수 있도록 정부는 물론 대기업 등의 지원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한편 고려인 모국방문단은 고국 방문이 연례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강원도에 건의했다.


춘천=이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