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조선왕조실록 정부가 직접 번역한다

한부울 2007. 9. 26. 16:00
 

조선왕조실록 정부가 직접 번역한다

[연합뉴스] 2007년 09월 24일(월) 오전 06:00


 

한국고전번역원 11월 출범…예산 85억 확보

(서울=연합뉴스) 김성용 기자 = 교육부는 고전 문헌을 수집ㆍ정리하고 번역할 한국고전번역원을 11월 출범키로 하고 예산 85억2천700만원을 확보했다고 24일 밝혔다.
이에 따라 대표적인 고전 문헌인 조선왕조실록 등을 정부 주도로 직접 다시 번역하는 등 주요 고전들에 대한 번역 및 관리 작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교육부는 한국고전번역원 설치 예산 중 인건비로 35억원, 운영비로 5억2천700만원, 사업비로 45억원을 각각 배정했다.
사업비를 세부적으로 보면 고전번역사업 27억2천300만원, 고전번역자 양성사업 14억9천800만원, 민족문화자료센터 사업 2억7천900만원등이다.
그동안 고전 번역은 정부가 교수 등 전문가에 의뢰, 특정 문헌을 대상으로 수시 진행돼 왔으나 역사나 한학 전문가 양성의 부재, 번역 자체의 혼선 등 문제점을 낳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앞으로 국가가 직접 번역 사업을 주도할 것"이라며 "조선왕조실록 등 기존 번역 문헌을 재검토하고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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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록이란 무엇인가

․정의 - 왕이 죽은 뒤 후대 왕이 전왕의 사적을 연․월․일 순으로 기록한 관찬 사서

․실록의 역할

  ①역사의 정리

  ②왕권의 견제와 비판

  ③정사(正史) 편찬을 위한 자료집

․실록의 열람이 극히 제한된 이유 - 현대사(現代史)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최초의 실록 - 중국 남조(南朝) 양(梁)에서 편찬된 『양황제실록』-인정할 수 없는 문제

․우리역사 최초의 실록 - 고려 현종 때 편찬된 『7대실록』- 사서가 현존하는 한계 때문에 파악 곤란

․조선왕조실록의 중요성

  ①세계에서 유일한 500년 왕조사의 전체기록

  ②정치만이 아닌 경제․사회․문화 등의 기록을 모두 포괄

  ③철저하게 지켜진 직서주의(개정이 거의 없다) -일제가 남긴 이유를 모르면 확언할 수 없음

 

2. 조선의 사관들

․사관의 기원 - 중국 고대의 좌사(左士)와 우사(右史) →당(唐) 때에 비로소 역사 전담 편찬 기관인 사관(史館)을 설치 - 우리민족역사가 전부 소실되었다는 이유로 제외된 것이어서 믿을 수 없음

․우리 역사에서는 고려 초에 사관(史館)을 설치(전임사관은 4인) -이전 역사의 유무관계 때문에 단정지울 수도 없음

․조선의 사관제도

  ①조선의 역사편찬기관은 춘추관(春秋館)으로 관리들은 모두 겸직

  ②전임사관 - 예문관의 봉교(2)․대교(2)․검열(4)

․사관의 자격

  ① 삼장지재(三長之材) - 재능․학문․삭견을 갖춘 자

  ② 문과출신자․가문이나 신상에 문제가 없는 자

․사관의 선발 - 자천제(自薦制) → 영조 이후 왕이 직접 선발 - 그러한 이유로 중립성이 훼손 되었을 것을 감안하여 일제가 조작했을 가능성이 농후함

․사관은 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면 어디든 출입이 가능(초기에는 제한이 무척 심했음)

※ 역사 일화 - 어느 날 태종이 사냥을 나갔다가 말에서 떨어졌다. 태종은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이렇게 말했다. “이 일을 사관에게 알리지 마라.” - 이러한 환경이라고 할지라도 국권이 도둑맞고 왕이 허수아비 허약한 신세일때 올바른 사관에 의한 사서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에서 분명치 않다.

․사관의 역사비판, 사론(史論)

  ①사론(史論)이 있는 실록은 조선왕조실록뿐-이러한 사실 전부를 곧이 곧대로 믿아서는 안된다고 생각이 되며 중국에서 사용하지 않았으면 우리역사에도 당연히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가 중국역사의 근거를 두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본래 중국이란 역사가 우리의 역사이며 지나가 사용하는 중국은 우리의 역사를 자기네 역사처럼 도용한데 불가한 기록이다.

강단사학자들이 우리의 역사가 바로 대륙의 역사이고 본래 중국이란 사실을 여러측면에서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른척하고 있을 뿐이다.

사론이 존재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역사가 하찮은 역사가 아니기 때문에 일제가 그렇도록 집착하였고 우리의 역사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론(史論)이 있는 실록은 조선왕조실록뿐이란 것은 일제가 조선왕조실록전체를 뜯어고쳤다는 증거이다.

일제가 우리민족의 역사를 축소하려고 하였다면 당연히 조작해야 하였을 것이고 그러한 부분에서 보다 확실하게 하고자 근거를 만들어 부연 설명의 근거가 필요하였을 것이라고 판단되며 그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고치고 조작하고 때론 수정하며 본 뜻과 다르게 만들었다고 보기 때문에 사론이 일제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②사론의 종류: 인물평․관청․재이․민생(순으로 수가 적음)

※ 임꺽정의 활동에 대한 사론: 나라에 선정이 없으면 교화가 밝지 못하다 재상이 멋대로 욕심을 채우고 수령이 백성을 학대하여 살을 깎고 뼈를 말리면 고혈이 다 말라 버린다. 수족을 둘 데가 없어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굶주림과 추위가 절박하고 아침저녁거리가 없으니 잠시리도 목숨을 잇고자 해서 도둑이 되었다. 그들이 도둑이 된 것은 정치의 잘못이지 그들의 죄가 아니다.

  ③세조시대까지 사론이 극히 적음(전부 합쳐 10편): 건국과 정변의 혼란 때문

  → 성종 이후 사림파의 진출로 사론이 늘어남(성종실록에 629편)

  → 연산군대에는 사화로 인해 사론이 줄어듦

  → 중종 이후 사림파의 진출로 사론이 실록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음

  ④사론은 군주와 신하의 권력남용을 견제하는 문치주의의 상징

 

3. 실록의 편찬과 보관

․편찬 시기: 왕의; 승하 후 편찬

․필요 자료 - 사초(史草): 사관이 작성 시정기(時政記): 춘추관에서 3년마다 편찬 각 관청의 업무

 일지 기타 개인문집․야사․구전 등도 수집

․편찬 과정

실록청(實錄廳) 설치 → 각 방(房)에서 초초(初草)작성 → 도청(都廳)에서 중초(中草) 작성 → 총 

                     재관(總裁官)이 최종 점검하여 정초(正草)로 최종 완성 → 인쇄․사고 봉안 → 세초

․사고(史庫)

① 사고는 실록만이 아니라 왕실계보인 선원록을 비롯, 역사서와 경서도 보관

② 고려 전기에는 사관 사고만 존재 → 고종 대에 해인사에 외사고 설치 → 고려말기 외사고는 충

     주에 소재

③ 조선 시대의 사고 체제

보면 알겠지만 우리의 역사 사서가 제대로 보관되어 온전하게 전해진 사서라곤 하나도 없다.

전국에서 강제적으로 압수되고 수탈된 우리의 역사서 20만권이 일제에 의하여 불태워져 없어졌다. 강단사학자들은 지금까지 일제가 만들어 놓은 로드맵대로 역사를 말하다가 말문이 막히거나 증명하기가 곤란한 것이 있으면 무조건 자료가 어느어느시대 때 전란으로 또는 내란으로 무슨무슨 사화로 소실되었다고 둘러되는 것이 전부였다.

한나라의 중요한 사서 전부가 일제의 총독부관리 있었다는 사실에서 과연 신뢰성이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인지 강단사학자들은 먼저 지적하고 밝혀야 할 것이다.

 

 

․사고의 관리 및 경비

①사고는 춘추관에서 관리하며 사고를 열 경우에는 반드시 전임사관을 파견

②사고에 봉안된 서책은 3년마다 포쇄

③경비병을 따로 배치→조선후기에는 승군을 활용

 

4. 실록과 정치

․사관들의 수난

  ① 사관의 직필을 제한하는 요소 - 사초실명제․왕 사후 편찬의 관례

  ② 이행 사초사건

  ③ 민수의 사옥

  ④ 무오사화

․실록과 일기

  ① 폐위된 왕의 실록은 일기(日記)라 하며 편찬 때에도 일기청을 설치

  ② 노산군일기는 숙종 대에 단종실록으로 개칭

  ③ 광해군일기는 여러 사정으로 인해 인쇄가 되지 못해 중초본이 남아있어 실록의 편찬 과정을일수 있는 중요한 자료임.

․실록의 개정

  ① 원칙상 실록은 개정이 불가능하나 정치적인 이유로 개정되었음.

  ② 태조실록은 3번에 걸쳐 개정

  ③ 선조수정실록: 원래의 선조실록이 임진왜란 이전 기사가 미비하고 북인에 의해 편찬  되었으

      므로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이 개정

  ④ 현종개정실록: 원 현종실록이 남인들에 의해 편찬되었으므로 경신환국으로 집권한 서인들이

      아예 새로 실록을 만듦(원실록을 부정)

  ⑤ 숙종실록 보궐정오: 노론이 편찬한 숙종실록을 영조 3년(1727)에 집권한 소론이 수정한 것

      (전면 개정이 불가능해 숙종실록에 덧붙임)

  ⑥ 경종수정실록: 원 경종실록이 소론집권기에 편찬되었으므로 이에 불만을 가진 노론이 수정

※ 조선 후기의 실록 개정은 비록 정쟁에 의한 것이나 전대의 실록을 그대로 남겼다는 점에서

유학적 역사 인식이 보다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5. 조선왕조실록의 현대적 의미

․실록의 한계: 지배층 중심의 기록

․현대의 조선왕조실록 - 역사적․문화적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음 번역, CD롬화를 통한 대중화

․조선왕조실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①역사사실의 충실한 보존과 전달(조선은 기록의 국가)

  ②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비판정신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선조수정실록이란 것이 있다.

선조때 임진왜란이 있었던 것은 삼척동자가 다 아는 바다.

그러나 27대 왕조중 유독 선조, 경종 대 수정실록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간교하고 음흉한 일제에 의하여 중요한 부분에서 수정이 되고 조작이 되었을 것이라고 판단하지만 역사의 진실은 그래도 어느 곳에든지 살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지금 정부가 하고자 하는 번역작업에서 반도사관이나 모화사상에 젖어있는 강단사학자들에 의하여 또 다시 왜곡되지 않기를 바랄뿐이고 그들의 잘난 사견이 부첨되지 않고 오로지 현재 있는 그대로 올바르게 번역작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걱정스럽게 지켜 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