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신석기, `과학의 시대`인 이유

한부울 2007. 9. 12. 14:19
 

신석기, `과학의 시대`인 이유

[파이미디어] 2007년 09월 05일(수) 오전 09:50


[북데일리] 추리소설과 같은 재미와 연애소설을 닮은 달콤함. 이것이 역사공부의 정의라면 믿어지는가? 지루하고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에 쌓인 한국사를 삶에 대한 희망과 행복한 미래의 염원을 담아 펼쳐낸 이가 있다. 바로 <단숨에 읽는 한국사>(2006. 베이직북스)의 저자 오정윤이다.

<단숨에 읽는 한국사>라는 표제를 보면 단순히 연대표의 역사를 간추려 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닫을 때는 제목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다. 손에서 놓기 힘든 재미를 주는 역사이야기. 그것이 바로 표제의 숨은 뜻임을.

이 보물 같은 책에서 저자는 4가지 원칙을 통해 한국사를 다루고 있다. 첫째는 변두리 의식을 벗어던지는 역사관, 둘째는 한반도를 벗어난 동아시아 국가의 중심에 선 역사관, 셋째는 과거의 사실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생각하는 자세, 넷째는 역사의 이면에 숨어있는 진실 찾기 이다.

그 중 세 번째 원칙인 “왜?”라는 질문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된다. 인류는 왜 도구를 만들었는지, 신석기인은 왜 농경활동을 통하여 정착을 했는지. 끊임없이 “왜?”라는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역사는 생기를 일고 연대표를 외우는 역사, 사실을 암기하는 죽은 역사로 자리 잡을 뿐이다.

이제 선사시대, 고조선시대, 열국시대와 삼국시대, 남북국시대와 후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이어 근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왜?”라고 질문해보자. 그 해를 구하다보면 우리는 추리소설을 읽듯 흥미롭게 한국사를 읽어갈 수 있다.

먼저 한국사의 포문을 여는 선사시대에 네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그 답을 찾다보면 당신은 새로운 역사관을 갖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어 있을 것이다.

1. 왜, 인류는 직립 보행을 하게 되었을까?

450~400만 년 전 나무에서 내려와 초원과 개활지에서 생활하게 된 호미니드(똑바로 서서 걷는 영장류)가 당면한 문제는 세가지였다. 첫째는 평지에서 네 발로 걷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 둘째는 평지에 노출된 자신을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보호하는 것, 셋째는 오랜시간동안 다니며 너른 지역에 퍼져있는 식량을 찾는 것이었다.

300만 년 전에 이르러 출현한 호모 하빌리스(손쓴 사람)는 이 세 가지 문제의 해결안으로 직립보행을 택한다. ‘손이 된 앞발‘로 짐승 사냥을 하여 짐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식량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뒷발로 몸을 지탱하고 오랜 시간을 돌아다니며 먹잇감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손이 된 앞발‘은 매우 유용하여 260만 년 전에 이르러서는 조잡한 모양이지만 찍개와 같을 돌로 만든 인류 최초의 도구를 계발하게 된다. 그리하여 190만 년 전에 이르면 새로운 모습과 능력을 지닌 호모 에렉투스(곧선사람)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들은 현생 인류의 조상이라 불린다.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대륙을 망라하여 그들의 흔적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2. 왜, 선사인들은 암각화를 남겼을까?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에 그림을 남긴 까닭은 무엇일까? 도구가 발달하지 않은 당시 바위에 그림을 새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바위그림이 수천 년간 그려진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부동성, 불멸성, 융기성에서 출발하여 당시의 삶의 터전에 자리 잡았다는 바위의 특징을 고려해보면 답을 찾기는 쉽다. 암각화가 있는 곳은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 되기도 하고, 회의나 법을 집행하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 조상의 영혼이 숨 쉬는 곳으로 받들어 진 것으로 추론해볼 수 있다. 대체적으로 그림이 새겨진 바위의 앞쪽에는 젊고 평평한 공터가 있는데, 이것은 공동체의 회합의 장소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3. 왜, 신석기 시대를 과학의 시대라고 부를까?

미래학자 엘빈토플러는 <제3의 물결>을 통해 신석기시대의 농경생활을 제1의 물결로 명명한다. 인류역사상 첫 번째로 맞이하는 가장 중요한 혁명이라는 것이다. 구석기시대에도 결합식 도구, 기계식 도구의 사용 등 과학의 싹은 있었지만,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미약했다.

허나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화학, 물리학, 수학, 역학과 같은 여러 과학의 원리가 만나 새로운 물결의 변화를 인식하고 흐름을 장악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과학의 산물을 꼽으라면 질그릇 빚기(토기제작), 활 만들기, 농사짓기, 가축 기르기, 배 만들기, 집짓기, 실낳이, 천짜기(방직), 술빚기 등을 들 수 있다.

4. 왜, 중국은 홍산문화를 훔쳐가려고 하는가?

홍산문화는 1935년에 내몽골 적봉시 홍산 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동북아 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신석기시대의 문화이다. 출토유물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가장 대표적인 문화의 내용은 다음의 4가지를 들 수 있다.

1)산상재단(원형제단, 방단제단) 2)적석총(북방민족 고유의 무덤형태), 3)여신묘(신석기 모계사회의 특징) 4)옥(玉)문화(청동의 발견과 청자탄생의 시금석)이다. 홍산문화의 이러한 유형은 황화문명의 문화원류에 해당하는 대문구문화, 하모도 문화와는 닮은 형이고, 또 다른 황화문명의 원류인 황화종류 양소문화와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동북아지역 신석기 문화의 주류에 해당된다.

이러한 홍산문화를 남긴 자들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동아시아 초기 역사의 주체를 결정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현재 가장 유력한 집단은 우리 민족의 원류로 추정되는 동이족의 수령인 치우집단 선조들을 꼽을 수 있다.그럼에도 중국학계는 이곳의 유적을 굳이 전국고양씨(서기전 2514~2437)와 연결한다. 그 까닭은 전국고양씨가 황제 창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홍산문화를 황제헌원 씨의 선조들이 남긴 문화로 규정하여 중국에 귀속시키고 싶은 것이다.

그동안 선사시대인들을 원시인으로 치부했다면 이제 그 편견을 벗어버리자. 그들은 이미 도구도 발달하지 않던 시절부터 암각화를 통해 회화예술을 즐겼으며 신석기시대 과학혁명을 이뤄냈다. 화려한 홍산문화는 전혀 미개하지 않은 화려한 문화의 자취를 보여준다. 그들은 더듬기도 버거운 먼 과거의 미개인이 아닌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자랑스러운 과거의 뿌리인 것이다.

신주연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