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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우주인 후보, 우주인 훈련일기 (고산)

한부울 2007. 9. 7. 22:18
 

한국 우주인 후보, 우주인 훈련일기 (고산)

[뉴스와이어] 2007년 08월 29일(수) 오전 10:40

(서울=뉴스와이어) 흑해 해양 생존 훈련

07.07.29

우크라이나에 위치한 흑해 연안의 크림반도, 지난 일주일간 우리가 우주선 비상 착륙에 대비한 해양 생존 훈련을 받은 곳이다. 세계지도의 어디쯤 붙어 있는지 언뜻 감이 잘 오지 않고, 그 이름조차 낯설기만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곳은 한민족 분단의 역사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의 훈련 기지였던 군항 ‘세바스토폴(러시아의 흑해 함대가 정박해 있는 항구)’에서 자동차로 약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거리에 ‘얄타’라는 휴양지가 있는데, 이곳에는 제정 러시아 시절 ‘짜르’의 여름 별장이 아름답게 지어져 있다. 바로 이곳에서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연합 3국의 수뇌(구소련의 스탈린, 미국의 루즈벨트, 영국의 처칠)가 모여 전후 처리를 협의하였고, 그 과정에서 우리 한반도는 38선을 경계로 이북 지역은 구소련이, 이남 지역은 미국이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담당하기로 합의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60여 년이 흐른 지금, 한반도는 아직 허리가 잘린 채로 아파하고 있다.

강대국의 정상들에 의해 우리 민족의 운명이 정해졌던 머나먼 이국땅에서 우주인 훈련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 한편으론 애잔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국토에 경제와 문화를 다시 꽃 피워내고, 이제 바로 그 강대국들이 판을 치는 우주에 자국민을 올려 보내려 하는 나라가 나의 조국이라는 사실이 가슴 뿌듯한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이번 해양 생존 훈련에는 러시아 우주인 두 명, 미국 우주인 두 명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의 우주인 후보 두 명이 함께 훈련을 받았는데, 아마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라도 더 강인한 모습을 보여 주려고 노력했었던 것 같고 그 결과 다른 어느 나라의 우주인들보다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소유즈 우주선에는 세 명의 우주인이 탑승하기 때문에 여섯 명을 두 개의 조로 나누어 훈련이 진행되었다. 러시아 우주인 ‘기나디’ 가 커멘더를 맡은 첫 번째 조에는 미국 우주인 ‘마이클’과 ‘니콜'이 함께 했고, 나와 이소연이 속한 두 번째 조에는 러시아 우주인 ‘알렉산드르’가 커멘더를 맡았다.

‘기나디’에 의하면 이번 훈련은 우주선 귀환 시의 비상 착륙을 대비하는 목적도 있지만, 사실 우주선 발사 시 발생할지도 모를 비상 탈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고 한다.

카자흐스탄의 발사대를 떠난 우주선은 1분 58초 후에는 1차 로켓을 분리하고, 4분 48초에는 2차 로켓 분리, 8분 48초에 3차 로켓을 분리한 후 궤도에 진입하게 되는데, 그 사이에 로켓의 연료가 샌다거나 하는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로켓으로부터 우주선을 분리하여 불시착을 시도하게 된다. 만약 이런 비상 탈출 상황이 1차 로켓 분리 이전에 발생하면 우주선은 발사대에서 멀지 않은 카자흐스탄의 초원지대에 떨어지게 되지만, 1차 분리와 2차 분리 사이에는 중국지역에, 그리고 2차 분리 후에는 우리의 동해 또는 일본 근해에 불시착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전에 이러한 비상 탈출 상황이 두 번 발생한 적이 있었는데, 한번은 카자흐스탄 초원지역에, 다른 한번은 중국의 산악 지역에 착륙하였고 아직 바다에 불시착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번 해양 생존 훈련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첫 번째 훈련은 지상 관제소의 명령에 따라 우주인들이 귀환 모듈에서 탈출하여 바다 위에 장기간 떠 있게 될 경우를 가정한 것이고, 두 번째 훈련은 귀환 모듈에 불이 나거나 모듈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등의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주복을 입은 채로 신속히 탈출하는 요령에 관한 것이었다.

장기간 바다 위에 표류하게 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보온이다. 아무리 따뜻한 바닷물이라고 해도 사람의 체온보다는 차가워서 아무 대비 없이 물에 들어가면 지속적으로 열을 빼앗기게 되고 결국엔 저체온증에 걸릴 위험이 있다. 따라서 장기간 물에 떠 있을 경우를 가정한 훈련에서는 귀환모듈 내부에서 우주복을 벗고, 우주복 안에 받쳐 입었던 내의 위에, 비행복, 스웨터, 방한복, 방수복, 구명부이(buoy)를 차례로 껴입고 나서야 바다에 뛰어들게 된다.

귀환 모듈의 내부는 요람 모양의 좌석 세 개에 세 명의 우주인이 간신히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정도로 굉장히 좁아서 옷을 갈아입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한 사람이 옷을 갈아입을 때 다른 승무원들은 반대쪽 벽에 바짝 붙어서 자리를 내 주어야 하고 서로 옷을 벗고 입는 것을 도와주어야만 한다.

또한, 각자의 우주복에 장착하는 통풍장치를 제외하면 거의 밀폐되다시피 한 귀환 모듈의 내부 온도는 한여름 훈련 중에 50~60도까지 올라가는데, 여기에다 스웨터에 방한복까지 껴입고 있자면 정말 땀이 비 오듯 흐른다. 보통 세 명의 승무원이 모두 옷을 갈아입고 탈출하기까지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훈련 전후에 몸무게가 3~4kg 정도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우주복을 입은 채 탈출하는 훈련은 우주선 내부에 화재가 발생하거나 하는 비상 상황에 대비하는 것을 목적으로 모든 과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훈련 시간이 30분을 넘지 않을 정도로 짧다. 그래서 교관들은 보통 앞의 훈련을 ‘긴 훈련’ 뒤의 훈련을 ‘짧은 훈련’이라고 부르곤 했다. 교관들이 ‘긴 훈련’이라는 말을 할 때는 항상 뭔지 모를 묘한 여운이 느껴졌었는데 실제로 ‘긴 훈련’이 있었던 날 훈련을 받으면서 그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훈련은 총 4일간 주로 배 위에서 진행되었다. 우리의 훈련선 역할을 한 배 또한 러시아 흑해 함대 소속의 군함으로 전투 장비는 갖추고 있지 않았지만 우리의 훈련에 필요한 우주선 귀환모듈, 크레인, 작은 수조, 의료장비 등을 갖추고 있었다.

훈련 첫째 날에는 바다에 나가지 않고 배를 항구에 정박시켜 둔 채로, 훈련 전반에 관한 브리핑과 함께 갑판 위에 마련된 작은 수조에서 바다에 뛰어드는 요령에 관한 간단한 실습 훈련이 있었다. 바다에 입수할 때는 반드시 물을 등지고 뛰어들어야 하는데 옷과 장비를 모두 갖춘 채로 바다를 바라보고 입수하면 몸을 다시 바로잡기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훈련 둘째 날에는 물에서 실제 상황의 훈련을 하기 전에 갑판 위에 놓인 귀환 모듈에서 ‘긴 훈련’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습해 보는 이른바 ‘마른 훈련’ (귀환 모듈을 바다에 띄우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이 진행되었다. 우리 조의 커맨더인 ‘알렉산드르’에 의하면 ‘마른 훈련’의 주요 적은 ‘더위’이다. 귀환 모듈을 물에 띄워 놓지 않기 때문에 바다에서 하는 ‘긴 훈련’보다 모듈 내부가 더 뜨거워지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하기 전 모든 우주인들은 의학 검진과 심리검진을 통과해야 했다. 그런데 미국 우주인 ‘마이클’이 의학 검진을 받는 과정에서 심장에 약간의 문제가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마이클’ 자신도 의사 출신 우주인이기 때문에 검사 결과를 보고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 문제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일 경우 이번 훈련을 받지 못함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우주 비행이 가능하리라 장담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사람 좋기로 유명한 ‘마이클’이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 보았다. 우주로 향한 꿈을 위해 꽤 오랜 시간 NASA에서 일하며 준비한 그는 드디어 얼마 전 Expedition19의 승무원으로 선발되었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래서 상심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이미 미국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부디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날 ‘마이클’은 NASA에서 동행한 의사와 함께 정밀 검사를 위해 ‘세바스토폴’의 병원으로 떠났고 첫 번째 조는 나머지 두 사람만으로 훈련을 받아야 했다.

우리 조는 다행히 별 이상 없이 검진을 통과하고 무사히 훈련을 끝마칠 수 있었다. 비록 엄청나게 더운 귀환 모듈 안에서 2시간 동안 고생하긴 했지만, 이날만큼은 아무 이상 없이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 하기에 충분했다.

훈련 셋째 날, 먼 바다로 나가 본격적인 ‘긴 훈련’이 시작되었다. 나와 이소연 씨, ‘알렉산드르’가 차례로 귀환 모듈에 들어가 자리에 앉은 후 해치가 닫히고 잠시 후 갑판 위에 있는 크레인이 귀환 모듈을 들어 올려 바다에 내려놓았다. 바다는 잔잔한 편이었지만 크기가 그리 크지 않은 귀환 모듈은 끊임없이 파도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훈련 전 브리핑에서 교관들이 뱃멀미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과연 사우나 같은 열기에 울렁거림이 겹쳐,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훈련이 시작되고 10여 분 후 이소연 씨가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이소연 씨는 워낙 멀미에 약하기 때문에 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의사가 준 멀미약을 먹었는데, 너무 늦게 약을 먹는 바람에 효과를 보지 못했던 것 같다. 훈련이 진행되는 1시간 30여 분 동안 계속해서 고생하는 이소연 씨가 너무 안쓰러워 보였지만, 나의 통풍장치를 얼굴에 대주어 조금이라도 더 시원하게 해주는 것 이외에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서로 도와 빨리 옷을 갈아입고 장비를 챙겨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탈출하는 수밖에…

<마른 훈련>에서의 경험 덕분인지 전날보다 신속하게 옷을 갈아입은 우리는 각자에게 할당된 비상 장비 블록을 챙겨서 커맨더, 이소연 씨, 그리고 나의 순서로 한 명씩 귀환 모듈에서 탈출하였고 푸른 바다는 우리를 시원하게 껴안아 주었다. 시원한 바다 위에 누워 있자니 입가에 절로 웃음이 피어났다.

아마 실제 비상 착륙 상황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사우나 같은 열기와 흔들림 속에서 고생을 하고 나면, 설령 망망대해에서 누군가에 의해 구조되리라는 확신이 없다고 하더라도, 귀환 모듈에서 탈출했다는 사실 하나에 너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원한 바다에 누워 잠시 달콤한 휴식을 만끽한 우리는 계속해서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다. 커맨더가 가지고 나온 비상장비 블록 속에는 구조 신호를 위한 라디오와 조명탄 등의 장비가 들어 있었고, 나와 이소연 씨의 블록 속에는 각각 비상식량과, 물통이 들어 있었다. 우리는 우선 파도에 떠밀려 멀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서로 몸을 밧줄로 연결한 후, 라디오를 이용하여 구조신호를 보내는 한편 비상식량을 준비하고 물을 나누어 마셨다. 그리고 얼마 후 구명보트가 다가와 우리를 바다에서 건져냈고, 우리 조는 성공적으로 훈련을 마치고 전원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가장 어렵다는 <긴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니 갑판에서 다른 우주인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훈련 넷째 날에는 <짧은 훈련>이 진행되었는데, 위에 언급한 것처럼 이 훈련은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훈련에 임할 수 있었다. 우주선 내의 화재 등 긴박한 상황을 대비한 ‘짧은 훈련’ 시에는 옷을 갈아입을 필요가 없이 우주복을 입은 채로 탈출하면 되는데, 탈출하기 전에 우주복의 목 부분으로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잘 조이고, 구명부이(buoy)와 비상장비 블록을 몸에 잘 고정 시킨 후 장갑을 착용하고 차례차례 탈출하면 그만이었다. 전날보다 바람도 많이 불고 파도도 거셌지만 총 훈련 시간이 30여 분 정도밖에 안 걸렸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훈련을 마칠 수 있었다.

훈련이 끝난 후 브리핑에서 한 교관이 난데없이 내게 축하한다고 해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이소연 씨가 탈출하고 나서 내가 탈출할 때까지 10초가 걸렸는데 이것이 새로운 탈출시간 기록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훈련 마지막 날이었던 이날, 호텔에서는 작은 파티가 열렸다. 이 파티는 그동안 훈련을 위해 고생했던 분들을 위해 모든 우주인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마련한 자리였는데, 며칠간 정이 많이 들었던 여러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밤이 깊어갔다.

이렇게 흑해에서의 모든 훈련은 끝났고, 우리는 하루 휴식을 갖은 후 다음날 러시아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번 해양 생존 훈련을 통해서 우주인에게 체력과 정신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비단 비상 상황에서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거의 모든 우주인은 궤도에 진입하고 며칠 동안 우주 멀미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렇게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을 이겨내려면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수적이다. 특히 다른 나라 우주인들처럼 장기간 우주에 체류하는 것이 아니라 열흘간의 짧은 비행 동안 신속하게 우주환경에 적응하고 실험과제들을 수행해야 하는 우리 한국의 우주인에게는 이러한 부분이 더욱 많이 요구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우주인을 꿈꾸고 있거나, 우주인이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소중한 꿈을 가슴에 품은 어린이나 청소년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지금부터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권하고 싶다. 그러려면 평소에 적당한 운동으로 심신을 단련시켜야 하는 것은 기본이거니와, 담배같이 건강에 해로운 것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번 훈련 기간에 바다 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많이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 아버지는 먼 바다를 항해하는 선장이었다. 내가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그로부터 엄청난 영향을 받았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내게 모험과 도전을 사랑하는 기질이 있음이 분명한데 아마도 그런 기질 중 상당 부분은 언제나 먼 바다를 가슴에 품고 살았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

어떤 동물은 태어나자마자 제 살길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자라서 제 구실을 하는 사람이 될 때까지는 어른들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 보살핌은 비단 육체적인 것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꿈을 담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잘 자라날 수 있도록 보살펴주어야 하는 것도 바로 어른들이다. 이 글을 통해 내게 꿈을 심어주고, 나의 몸과 마음이 잘 자라날 수 있도록 보살펴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제 나도 어린이들의 꿈을 북돋아 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나를 바라보면서 꿈을 키우고 있을지도 모를 누군가를 위해서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한번 해본다.

- 고산 -

보도자료 출처 : 과학기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