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뺏긴 문화재’ 되사기 열풍
[경향신문] 2007년 06월 15일(금) 오후 03:21
중국 베이징(北京) 서북쪽 베이징대학 부근에 자리 잡고 있는 위안밍위안(圓明園). 청나라 건륭 황제가 프랑스 베르사유궁전을 본떠 세운 황실 정원인 이곳은 올해로 지어진 지 300년을 맞았다. 그러나 현재 이곳은 폐허만 남아 있는 상태다.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당시 베이징에 쳐들어온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이곳을 불태운 뒤 대부분의 유적을 약탈해 가버렸기 때문이다. 일부는 중국 민간인들이 들고 가 버리기도 했다.
지난 8일 오후 8시, 베이징시 문물국 주최로 관계자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원래 위안밍안에 있다가 기관이나 민간인들이 소장하고 있던 문화재 12점을 무상으로 기증해 다시 ‘고향’에 돌아온 것을 축하하는 모임이었다.
이날 행사에서 참가자들의 눈길을 가장 끈 것은 대리석으로 만든 물고기 조각품 한 쌍이었다. 길이는 125㎝, 높이 58㎝인 이 조각품은 위안밍위안 서양건물 앞에서 물을 뿜어내는 일을 맡고 있다가 민간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물고기 조각품의 반환이 이뤄진 것은 드라마와 같은 일이었다. 위안밍위안 유적을 연구하는 역사학자 류양(劉陽·26)은 4년 전인 2003년, 우연히 베이징 도심 시단(西單)에 있는 베이징 전통 가옥의 형태인 사합원(四合院)을 지나면서 마당 안에 놓인 조각품을 보게 됐다. 그는 2년 전에 외국인이 찍은 위안밍위안 유적 사진첩을 훑어보다가 위안밍위안에 있던 물고기 조각품 6점의 일부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집 주인은 “1971년 이사 왔을 때부터 마당 안에 있던 물고기 조각품에 날마다 물을 주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아쉬워하면서도 “그러나 문화재는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흔쾌히 무상으로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번 반환 행사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문화재 반환 행사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위안밍위안이 약탈을 당한 지 올해가 147년째. 위안밍위안 관리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에 흩어져 있는 유물은 500여점으로 베이징대학, 이화원(이和園) 등에 있다.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 졸정원(拙政園)에도 일부 문물이 자리 잡고 있다. 민간인들에게 흘러간 작품도 많다. 가장 예술성이 뛰어난 문화재는 예상대로 영국, 프랑스, 미국 등 3개국에 주로 있다. 특히 프랑스에 많다. 1860년 중국을 침략한 프랑스 사령관이 나폴레옹 3세에게 전한 전리품들이다.
2003년 9월에는 위안밍위안 분수대에 있다가 외국으로 흘러간 12 지신상 가운데 돼지머리상의 반환 행사가 있었다. 홍콩 사업가가 미국 뉴욕의 수집상에게서 미화 90만 달러에 구입한 뒤 바오리(保利)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현재 바오리 그룹이 운영하는 바오리 박물관에는 12 지신상 가운데 돼지머리상 외에 소머리, 호랑이머리, 원숭이머리 등 총 4마리의 머리상이 소장돼 있다.
중국은 해외로 유출된 문화유산과 국보 되찾기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뭉칫돈을 들고 해외 경매시장에서 되사들이고 있다. 민간단체인 중화사회문화발전기금회를 주축으로 군수산업으로 이름이 높은 바오리 그룹 등이 문화재 매입에 적극적이다. 바오리 그룹은 왕전(王震) 전 국가부주석의 아들인 왕쥔(王軍)이 최근까지 회장직을 맡으면서 부동산 개발업과 다양한 업종에 손을 대고 있다. 사실상 중국 인민해방군이 운영하는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이처럼 민간단체나 기업이 앞서는 것은 중국 정부가 전면에 나서는 것보다 외교적 마찰을 줄이고 일도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 산하 재단이나 박물관, 국유기업이 전 세계에 흩어진 유물들을 다시 사들이고 있는 현상을 두고 중화민족주의의 새로운 표현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중국 유물학회의 한 인사는 “값비싼 국보를 되찾는 것은 중국 경제성장의 결과”라면서 “이런 일은 15년 전만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직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를 중국이 되사들이는 것은 걸음마 단계라면서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베이징-홍인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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