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변절

양무(楊武)호와 독도함

한부울 2007. 7. 18. 17:47
 

양무(楊武)호와 독도함

[노컷뉴스] 2007년 07월 09일(월) 오전 08:23


우리나라의 첫 서양식 군함은 대한제국의 양무(揚武)호다. 1903년 7월 도입된 양무호는 기울어 가는 대한제국 못지않게 기구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포함의 위력을 절감한 대한제국 조정에서도 나라를 지키고 황제의 위엄을 세우려면 군함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이 틈에 끼어든 일본이 중고 화물선을 군함처럼 꾸며서 팔아먹은 것이 양무호였다.

양무호는 1888년 영국에서 건조된 3432톤의 화물선이었다. 일본의 미쓰이물산이 선령 6년 된 것을 사들여 화물선으로 사용하다가 경제성이 떨어지자 대한제국에 판 것이다. 영국에서 25만원에 사 온 배를 9년이나 쓰다가 구조를 바꾸고 고물 대포를 달아 55만원에 팔았으니 미쓰이는 꿩 먹고 알 먹은 셈이다.

양무호 도입계약을 했으나 대한제국은 이를 인수할 재정능력이 없었다. 선박대금 1차 분할금 지불마감을 두 달이나 넘기고 나서 20만원을 지급하고 선박을 인수했다.

대한제국 군부대신이 함장이 되고 승선함장으로는 조선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상선학교를 졸업하고 실습까지 마친 신순성(愼順晟)이 임명되었다.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터지자 일본은 제멋대로 양무호를 일본함대에 편입시켜 첩보선과 화물선으로 참전시켰다. 대한제국이 "강탈운행"에 항의하자 일본은 용선료를 지급하겠다면서 무마시켰다.

1905년 러일전쟁이 끝났지만 양무호는 인천항으로 돌아오지 않고 일본 사세보항으로 끌려갔다. 승전으로 대한제국의 국정을 마음대로 주무르게 된 일본은 선박대금 잔금에 이자까지 얹어서 받아낸 후 양무호를 다시 화물선으로 개조하여 대한제국에 넘겨주었다. 을사보호조약에 따라 외교 군사권을 일본에 양도했으므로 이제는 군함이 필요 없다는 이유였다.

만신창이 고물 화물선으로 되돌아간 양무호는 인천으로 돌아왔으나 배가 너무 커서 쓸모가 없었다. 해양요원 양성용으로 쓴다고 부산으로 옮겨졌다가 1909년 공매를 통해 일본인에게 헐값으로 팔려 운항되다가 1916년 동지나 해역에서 침몰했다.

지난 주 우리 손과 우리 기술로 만든 아시아 최대의 상륙함 독도함(1만4000톤)이 취역했다.

독도호는 지난 5월 진수한 이지스 구축함 1호 세종대왕호와 함께 우리 해군전력의 주력함이 될 것이다. 나라를 지키는 일에 써보지도 못한 우리 군함 1호 양무호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나라를 지킬 힘과 의지가 없으면 대한제국의 역사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양무호가 주는 교훈이다.

신우재(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