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변절

영혼이 되살아난 80대 노병, 신세대 장병에 6.25를 깨우치다

한부울 2007. 6. 22. 11:25
 

영혼이 되살아난 80대 노병, 신세대 장병에 6.25를 깨우치다

[헤럴드생생뉴스] 2007년 06월 22일(금) 오전 11:10


20일 오후 4시 강원도 인제군 신남면 어론리 487고지 중턱.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한 구의 6ㆍ25 전사자 유해를 혼백함에 모시고 있었다. 뼈만 남은 유해를 가지런히 정리해 흰색 한지로 곱게 싸고, 자연과 함께 하나가 되라는 기원으로 청실ㆍ홍실과 예단을 함께 넣었다. 함의 뚜껑을 닫고 태극기로 감쌌다. “선배의 영혼이 보다 자유로워지길 바랍니다.” 감식단은 경건한 경례와 묵념의 기원을 들으며, 용사는 이제 막 차가운 땅 속을 벗어났다. 살아있다면 80대 노병이었을 그가 한국전 발발 57년에 보내는 메시지는 어떤 것일까.

1951년 5월 487고지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한국군 5사단과 3사단이 지키고 있는 주요 고지를 향해 중공군 6개 사단이 일제히 2차 춘계 공세에 나선다는 말에 부대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50년 12월 30일부터 시작된 질긴 전투. 4번이나 서로 뺏고 뺏기기를 반복했던 487고지로 중공군의 인해전술이 전개됐다. 5월 16일 마침내 전투는 시작됐다. 19일까지 3일간 맞서 싸웠지만 결국 평창까지 후퇴를 해야 했다.

나는 전우에 의해 모포에 싸인 채 고지의 산 중턱 전투호에 가매장됐다. 그리고 아군과 적군의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단지 전사자 명단에 배재용이라는 이름만을 남긴 채.

시간이 지나며 전투화를 참나무 뿌리가 뚫고 들어와 발가락을 짓이겼다. 잔뿌리는 갈비뼈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고 심장을 뚫었다. ‘모든 죽은 것은 땅 속으로 간다’며 육체는 조금씩 사라져갔다. 감청색 모포가 썩어가며 뼈를 검게 물들였다. 골반뼈에 요대(군인용 벨트)가 눌러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시간은 지나갔지만 사람뼈가 병을 치료하는 약이라는 미신을 믿는 환자들만이 나를 찾아 돌아다녔다. 아무도 땅속에 버려진 나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었다. 수백만명이 쓰러진 사람에 대한 무관심. 나라를 위해 싸운 대가가 고작 이것인가 항변을 하고 싶었지만 세월의 무게만큼 흙은 쌓여갔다.

1주일 전부터 주변이 시끄러웠다. 웅성거리는 소리, 땅을 파는 소리. 몸 위를 짓이기던 땅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있었다. 앞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한 병사가 주변 흙을 솔과 호미를 이용해 조심스레 제거하고 있었다.

왼쪽 가슴께 ‘진동귀’라는 이름이 보였다. “이병 진동귀입니다. 충남에 있는 전통문화학교에 다니다 자원해서 여기로 왔습니다.” 이제 갓 스무살이 넘었을 나이로 보였다. 그는 말하고 있었다. “선배의 영혼을 모실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누군지 알까. 강원도 정선에서 1927년 4월 태어나 일병으로 ‘전사 전역’한 배재용이라는 것을. 6ㆍ25전쟁 당시 목숨을 잃고 이렇게 버려진 채 있는 전사자라는 것을 알까. 내가 살아있었다면 혹독한 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한몸 바쳐 일했지만 그 자부심이 온데간데없이 늙은이로만 취급받는 노인으로 만났을텐데….

“저희 세대에게 6ㆍ25가 의미가 있을까요.” 진동귀는 갈비뼈 사이로 자란 나무 뿌리를 정리하며 말을 걸어왔다. “6ㆍ25는 공휴일도 아닌 날, 단지 방학의 여러날 중 하나일 뿐이잖아요.”
그는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평화로운 한반도. 이제는 남과 북의 정상(頂上)이 서로 만나 악수까지 했거든요.” “이제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든 군사적으로든 세계의 주목을 받는 강국이 된 걸 아세요?” “북한은 이제 우리 상대가 되지 않아요.”
갑자기 지난 56년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1999년 6월 서해교전이 일어나 나와 같은 전사자가 생겨날 때 전쟁이 또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도 한 순간뿐.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것 같이 떠들어댔지만 7년 동안 북한은 한반도를 날려버릴 핵무기를 만들었다. 축구대표팀을 응원하느라 서울광장을 붉게 물들인 순간에 잊혀져갔던 2002년 6월 25일.

“지난 56년 참혹했던 전쟁 속에서 나의 영혼은 땅속에 묻혔다 이제 겨우 되살아났지만, 여전히 전쟁의 기억은 되살아나지 못한 듯하다”고. “나의 영혼처럼 전쟁의 참혹함의 기억이 내 후배 세대에 되살아나기를 바란다”고 외칠 때 감식단 후배들의 묵념이 끝이 났다. 과연 그들은 내 외침을 들었을까.

감식단은 이 유해를 육군 3사단 8연대 소속의 배재용 일병(당시 24세)으로 추정했다. 배 일병은 51년 치열했던 ‘현리지구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55년이 지난 2006년 그를 가매장했는 이수경(80ㆍ당시 24세) 씨가 유해발굴감식단을 찾아와 그 사실을 알렸다.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