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명백한 역사 기록 있다
[조선일보] 2007년 06월 07일(목) 오전 00:29
인구 13억을 자랑하는 중국에는 56개 소수 민족이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조선족은 티베트족, 서장족, 몽골족 다음으로 중요한 민족으로 대우받는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중국이 가장 겁내는 민족은 조선족일 것이다. 그 이유는 주로 넓은 만주 벌판에 200만이나 되는 조선족이 살고 있는데, 그들이 가장 건실하며, 끈질기고, 부유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그들 뒤에는 세계에서 13위 안에 들어가는 부국(富國)인 모국이 있고, 역사적으로 볼 때 만주는 원래 그들의 조상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근래에 중국은 옛날 변방의 작은 나라로 취급하던 한국을 따라잡기에 여념이 없다. 그것을 우리는 ‘한류(韓流)’라고 표현하나, 중국의 입장에서는 ‘한국 배우기’라 할 만하다. 중국인들은 한국의 문화, 예절, 풍습, 경제, 학문을 선호하고, 추종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정치적인 면에서는 그런 풍조가 왠지 껄끄럽고 두렵다. 언제 조선족들이 독립을 부르짖을지 모르고, 한국이 ‘만주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데, 중국의 한족들이 이에 묵인이라도 하거나, 다른 소수 민족들이 다 같이 들고 일어난다면 낭패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나라답지 않게 그들이 생각해낸 것이 역사의 왜곡이고,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정책이다.
그러나 그들이 감추려 해도 잘 안 되는 것이 땅위나 땅속에 실존하는 유물이며 유적이다. 아니 그보다도 더 은폐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역사의 기록이다. 〈삼국사기〉와 더불어 고대 한국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책이 〈삼국유사〉다.
〈삼국유사〉는 고려 중기-13세기 전반-에 생존하였던 일연이 쓴 책으로서 당시는 고려가 최씨 정권의 전성기였으며, 몽골군의 침략으로 수도를 강화도로 옮겼다가, 마침내 그들에 항복하여 지배를 받던 시기였다. 이 책은 이름이 ‘유사’(遺事)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정사인〈삼국사기〉에서 빠뜨린 것을 보완한다는 성격을 지녔다.
〈삼국사기〉는 방대하고도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국가적인 대사업으로 이루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중국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소홀히 하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 지나치게 유교적이어서 불교적 측면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다룬 바가 있었다. 게다가 당시는 몽골의 침략이 계속되어, 중국에 대한 모화사상(慕華思想)이 비판되고, 민족자주의식이 강하게 대두되던 시기였으므로, 이와 같은 민족감정이 〈삼국유사〉에 여실히 반영되어 있다.
〈삼국유사〉는 역사 사실을 주로 다룬 1, 2권은 상권이 되고, 불교 사실을 주로 다룬 3, 4, 5권은 하권이 된다. 이 책은 〈삼국사기〉에서 유교적 사고(思考) 또는 사대주의 사상으로 말미암아 누락시켰거나, 혹은 그렇게 보여지는 고기(古記)의 기록들을 원형대로 온전히 수록한 점에서 오히려 그 특색과 가치가 있으며, 민족사의 대서사시라 일컬을 만한 이유가 있다.
〈삼국유사〉는 일연 혼자의 손으로 쓴 일종의 야사(野史)이며, 많은 고대 사료(史料)들을 수록하고 있어,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문헌으로, 그 중에서도 특히 고조선(古朝鮮)에 관한 기술은 한국을 반만년 역사를 가진 나라로 내세울 수 있게 하고, 단군신화(檀君神話)는 단군을 국조(國祖)로 받드는 근거를 제시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중심으로 생성·소멸했던 여러 나라에 관한 자료를 실어, 우리 민족의 형성과정을 살필 수 있게 하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 당나라에 예속당하지 않기 위해 투쟁한 사실을 기록하였고, ‘가락국기’를 통해 역사에서 사라진 가락국의 모습을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그 외에도 향찰(鄕札)로 표기된 14수의 신라 향가(鄕歌)가 실려 있어, 한국 고대 문학의 실증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구지가(龜旨歌)’ ‘해가사(海歌詞)’ ‘치당태평송(治唐太平訟)’과 일연의 찬시(讚詩) 등 한시(漢詩) 작품도 많아, 당시의 한문학의 흐름을 살펴보는 데도 도움을 준다. 또한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는 신화와 설화들은 우리나라 구비문학(口碑文學)과 산문문학의 원류를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이 책에는 당시의 불교에 관한 비교적 풍부한 자료가 실려 있는데, 불교의 전래와 전파라든가 사찰 건립의 유래, 불교와 민간신앙의 갈등과 화합 등도 알 수 있고, 당시 정치상황과 불교와의 관계, 중국 불교 및 중국과의 외교관계 등도 살펴볼 수 있으며, 불교의 문제점과 폐해에 대한 객관적 비판도 있어 사료적 가치를 높인다.
요즘 방송 매체에서는 삼국시대를 주제로 한 연속극들이 상영되고 있어, 국민들의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는 중국이 취하고 있는 못마땅한 정책과 대립되어, 마치 우리 역사를 새로이 조명하려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우리들의 당당하고 굳센 의지는 역시 〈삼국유사〉에서 보이고 있는 바와 같은 ‘우리들의 얼과 명백한 역사적 사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낙수 한국교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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