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달렸으나 세계는 더 빨랐다
[문화일보] 2007년 06월 09일(토) 오전 08:44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은 세계적인 민주주의· 시장경제 국가로 발돋움했지만 지난 20년간 국제사회도 부지런히 앞으로 달려왔다. 20년을 돌이켜 보면 세계는 한국보다 빨리 변화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20세기의 마지막 냉전지대, 허약한 정당정치와 지역주의, 상호불신과 사회 갈등의 그늘 때문에 양적 성장을 뛰어넘는 질적 도약을 못하고 있다.
87년 5월말 서울과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민주화를 향한 시민들과 군부세력과의 마지막 세대결이 임박했을 때 소련의 모스크바에서는 냉전의 방공망을 뚫고 서방에서 날아온 단발 세스나기가 붉은 광장에 착륙했다. 나비의 날갯짓 같은 이 사건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개혁·개방 정책을 재촉해 냉전시대 종말이라는 역사적 폭풍으로 이어졌다.
88년 한국이 올림픽을 개최해 세계무대에 본격적으로 데뷔했을 때 2차대전 이후 미·소 간의 분할점령으로 분단됐던 또 하나의 나라 동서독은 통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89년에 베를린 장막이 무너지면서 한국에서도 평화와 민족 공존의 분위기가 싹트며 91년 한반도 비핵화선언까지 나왔지만 북한은 곧이어 핵무장으로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켜 왔다.
◆위태로운 11대 경제대국 = 한때 동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렸던 한국은 90년대 중반 선진국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지만 97년 외환위기의 시련을 겪었다. 지금 국내총생산(GDP)으로 따진 세계 순위는 11위. 그동안 중국(2006년 현재 4위)에 이어 인도(13위)가 세계경제의 파워하우스로 성장하고 있고 남미의 브라질(12위)은 노조출신 지도자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대통령이 이끄는 노동자당 정부가 경제개혁을 이루어 지금 경제규모면에서 한국을 앞지를 기세다.
서유럽은 유럽연합(EU)이라는 지역공동체로 합쳐졌고 독일과 프랑스는 이제 보수당이 새로운 개혁을 이끌며 경제 부흥을 노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재계 최고 지도자인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한국 샌드위치론을 제기하고 있다.
◆허약한 정당정치·고착되는 지역주의 = 87년 이후 한국은 네번의 대통령 선거를 거쳐 역사적 정권 교체도 이루면서 완전한 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있다. 선거법 개혁으로 금권정치의 폐해도 치유되고 있지만 정치는 한국사회의 도약을 가로막고 있다. 새천년을 내세웠던 정당은 정권재창출과 함께 분열했고, 100년 정책정당을 다짐했던 정당도 대선을 앞두고 파국적인 탈당사태를 맞고 있다.
미 스탠퍼드의 후버 연구소가 지난 2000년 펴낸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서 지적했듯이 한국의 정치는 끊임없는 정당 이름 바꾸기, 세력 재편의 연속이었다. 이는 87년 김대중·김영삼 두 문민지도자의 분열 때부터 시작됐다. 외신에서도 87년 6월 민주주의를 갈망해온 한국 시민들의 찬란한 승리가 6개월 뒤 문민정치 지도자들의 분열 때문에 퇴색하는 과정을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그해 11월16일 미국의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지는 양김 분열을 그리스 비극에 비유하며 ‘한국민들의 높은 기대가 참담한 실망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썼다. 11월17일 뉴욕타임스는 광주에서 김영삼 후보가 유세 도중 쫓겨나는 상황을 기록했다. 한국의 3김은 정권교체의 공로와 함께 지역주의의 심화라는 부작용을 남겼고 지금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지역분할 표계산에 분주하다.
◆사회갈등·북핵문제 = 냉전과 이념갈등의 시대가 전 세계에서는 90년을 고비로 끝났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이분법적인 편 가르기가 무성하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싸고 찬성파를 ‘매국노’로 몰아붙일 정도로 사회적 분위기가 거칠다.
정강정책상의 뚜렷한 차이도 없이 ‘친북 빨갱이’대‘수구 꼴통’으로 서로 비난하거나 대북 접근법의 정도 차이를 두고 ‘평화세력’이냐, ‘전쟁세력’이냐라는 이분법까지 동원됐다. 북한·미국과의 관계설정을 둘러싼 입장차이도 “북한 가서 살아라”, “미국 가서 살아라”는 살벌한 말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질적 도약에서 최대 걸림돌은 역시 북핵이다. 북핵은 한반도 비핵화선언 위반임에도 한국내의 여론을 심각하게 분열시켰다. 문제는 세계 각국이 앞서가는 사이에 우리만 북핵을 둘러싼 긴장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워싱턴 = 최형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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