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중국의 북한 합병설
권대열·논설위원입력 : 2004.08.23 18:18 00'
북한 체제가 붕괴되거나 정변에 휩싸인다면 그 힘의 공백을 당연히 대한민국이 채우리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통일 공간이 열린다고 남북한 땅이 반드시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진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언론에서 크게 다루진 않았지만 최근 인터넷에 급속히 확산돼 파문을 일으킨 글이 있다. 무명(無名)의 필자가 중국 정부 학술고문을 겸하는 베이징(北京)대학 정치학 교수의 강의를 듣고 정리했다는 것인데 요약하면 이렇다.
‘북한 정권은 10년 이상 존속할 수 없다. 붕괴 이후 친중파 군부(軍部)가 정권을 장악하게 되면 중국은 북한 지역을 군사 연방으로 편입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만들려 한다. 지금 진행 중인 동북공정(東北工程)은 그에 대한 역사적 논거를 미리 축적하기 위한 것이다….’
네티즌들 사이에 이 시나리오가 꽤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포털 사이트마다 가장 많이 읽은 뉴스로 기록되고 댓글도 수백개씩 달렸다. 하지만 통일 또는 정권 붕괴 상황에서 북한 땅을 중국이나 다른 주변 강대국이 노릴 수 있다는 우려는 국제정치나 국제법을 공부한 사람들에게는 상식이다.
“중국이 북한 붕괴 이후 북한 지역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려 한다”, “북한 땅에 대한 기득권을 주장하며 신라계 국가만 한국에 떼어주려고 한다”는 분석 역시 이미 서울대 송기호 교수 등이 몇 년 전부터 해오던 것이다. 거기에다 일본 우익 역사관을 우려하는 측에서는 “한·일 관계가 나빠지거나 한국 힘이 약해지면 일본은 언제든 ‘한반도 남쪽 땅에 일본의 연고권이 있다’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주장을 다시 들고 나올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우리 헌법은 북한 땅을 대한민국 영토로 규정하지만 국제사회에서 보면 그건 어디까지나 ‘너희 생각’일 뿐이다.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 미국이 통일 국면에서 그 땅을 ‘곱게’ 내주리라 믿는다면 이만저만 순진한 생각이 아니다. 법적으로도 중국은 ‘조·중(朝中)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의 자동개입 조항을 악용해 한국이 북한 영토에 들어가려 할 경우 북한에 파병할 수 있다. 중국은 물론 일본과 미국, 러시아 입장에서도 북한은 그냥 두고 보긴 아까운 땅이다.
안보는 1% 가능성도 대비하는 것이고 실제로 이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1%보다는 훨씬 높다. 우리가 4강국을 배제할 정도의 힘을 갖고 있다면 별 문제가 아니지만 아쉽게도 지금 같은 ‘입으로만 자주국방’으로는 10년 내에 해결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보험 드는 심정으로 확실한 능력을 가진 누군가를 친구로 만들어 이용해야 하고 4대 강국 중 그럴 힘과 우호 관계를 가진 나라는 미국뿐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이 오면 미국이 우리 편에 서리라는 기대치가 높았지만 지금은 다른 것 아니냐는 걱정이 많다. 정부기관 학자들까지 “중국 견제를 위해서라도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우려하고, 6자회담 관계자는 “미국과 멀어지면서 벌써 다른 참가국들은 이전만큼 한국 발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고 전할 정도다.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고, 한반도에 대한 영토욕도 적으며, 역사적으로도 우리와 잘 지냈고, ‘힘도 센’ 미국은 중국의 욕심을 차단하고 통일을 대비하는 데도 유용한 도구다. 그런 나라를 잘 써먹자는 생각을 ‘숭미(崇美)’라고 비난하는 이들이야말로 반민족·반통일 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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