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 옌볜자치주 해체 … 차츰 북한과 경계 허물어
지금상황 19세기말과 비슷 숨은 위협 못 보는 일 없길
우리의 미래를 위협할 최대 적국(敵國)은 어느 나라일까? 한 세기 전 우리의 역사 경험에 비추어 살펴보자. 아이로니컬하게도 당시 우리의 운명은 수퍼 파워 영국이 아니라, 아류(亞流) 제국주의인 일본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가 쥐고 흔들었다. 오늘도 초강대국 미국보다 중국과 일본이 우리에게 더 위협적인 존재일 수 있다. 일본에 식민지 지배를 당한 우리는 과거사 왜곡이나 총리의 신사 참배에 더없이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운다. 허나 우리는 고구려사를 우리 역사 기억 속에서 빼앗아가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무신경하다.
우리의 근대화를 가로막은 주범(主犯)은 애초에 중국이었다. 개화파 몇몇을 뺀 이 땅의 사람들 대다수는 오랫동안 중국을 보호자로 알았다. 그러나 1882년 임오군란 때 3000명의 군대를 몰고 이 땅에 들어온 중국은 1894년 청일전쟁으로 일본에 밀려날 때까지 조선을 자국의 경제적·군사적 지배 아래 놓으려 했었다. 사실 그때 우리는 이미 중국의 반(半)식민지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남북 분단에 대한 미국과 소련·일본의 책임을 묻는 데 적극적인 데 반해 6·25전쟁 때 중국의 개입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왜 이렇게 중국에 대해서는 관대한지 궁금하다. 우리의 최대 무역 상대이자 거대시장으로서의 경제적 필요 때문일까? 아니면 자본주의를 넘어 민중이 주인이 되길 꿈꾼 사람들의 가슴에 사회혁명의 모델로서 중국에 대한 동경이 남아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민족의 이름으로 북한을 품으려 하는 우리 위정자에게 북한 붕괴를 막아줄 최후의 보루로 중국이 비치기 때문일까?
중국 단둥(丹東)시 잉화산(英華山) 정상의 항미원조(抗美援朝) 기념탑 앞에 서면, 압록강 푸른 물을 가로지르는 ‘조(朝)·중(中) 우호 친선교’ 너머로 신의주가 손에 잡힐 듯하다. 단둥의 옛 이름은 안둥(安東)이다. “동방을 편안하게 한다”는 침략의 뉘앙스가 짙게 풍기는 이름이었는데, 1965년 사회주의 형제나라 북한을 배려한다는 취지에서 이를 ‘단둥’으로 바꿔 불렀다. 작년 말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북한에 20억달러의 원조를 약속했으며, 최근에는 신의주 경제특구 진출을 필두로 나진항을 비롯한 항만과 철도 및 탄광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게다가 옌볜자치주를 해체하는 작업에 착수하였고, 북한과의 국경에 배치된 중국군도 15만을 헤아린다. 구한말의 아픈 기억이 자꾸 떠오른다.
이제 동북공정은 역사기억에 대한 침략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일본의 황국사관이 침략의 전초였듯이 동북공정을 추동하는 중국의 중화사관이 무엇을 결과할지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기 때문이다. 옛 고구려 강역은 동북3성 만주벌만이 아니라, 한강 이북도 포함한다. 그렇기에 이제 옛 고구려의 강역으로서 북한은 여차하면 중국의 한 지방으로 편입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격변하는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방으로 한 세기 전과 지금의 처방이 너무도 비슷한 것도 흥미롭다. 중국에 기댄 유길준의 ‘중립론(中立論)’과 자주(自主)의 기치를 높이 든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열강 사이의 세력균형을 도모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한국·중국·일본 동아시아 세 나라의 화합을 내건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 요즘 탈민족·탈근대주의자들이 주창하는 유럽공동체(European Union)를 모델로 한 동아시아공동체론은 국가와 민족을 넘어 더불어 살기를 꿈꾼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힘이 곧 정의인 약육강식의 시대에는 포식자와 먹이만이 존재할 뿐 보호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이상도 현실을 바꾸는 데 실패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가슴을 후빈다. 지금은 잠시 이상의 나래를 접고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열강들의 속내를 파악하는 데 머리를 모으고 손을 맞잡을 때다. ‘단둥’이 머지않아 다시 ‘안둥’으로 불릴 것 같아 우울하다.
허동현 경희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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