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민족사학자(이중재) "후한은 고구려…중국역사는 없다"

한부울 2006. 10. 1. 00:34
 

민족사학자(이중재) "후한은 고구려…중국역사는 없다"

중국의 시안 고분군을 직접 걸고 들어가는 금단의 문을 열려하는군요..

강단사학자들 발끈하겠네요.


민족사학자 "후한은 고구려…중국역사는 없다"

이중재씨 국회 토론회서 주장


중국 한나라가 멸망한 이후 건국된 후한(後漢)이 우리 민족의 고대국가인 고구려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민족사학자인 이중재 상고사학회 회장은 27일 ‘국회 21세기 동북아연구회(회장 권철현)’가 중국 동북공정(東北工程)의 허구성을 입증하기 위해 주최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후한은 사실상 고구려로, 고구려는 근 900년간 지속된 천자(天子)의 대국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에 따르면 한(漢)을 멸망시키고 ‘신(新.AD8~23)’이라는 나라를 건국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왕망(王莽)이 사실은 ‘구려(句麗.고구려의 전신)’의 6대왕 태조대왕의 동생인 8대왕 신대왕(新大王)이며, 신대왕은 제위 직후 위상이 크게 높아진 나라의 이름을 현재의 고구려(高句麗)로 바꿨다고 한다.


그는 ‘삼국사기’와 ‘자치통감’ 등을 인용해 이같이 주장하고 “중국이 사서나 연표에서 왕망이 고구려왕이라는 것을 감추고, 신을 건국했다고 기록한 것은 명백한 역사 날조”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삼국지 고구려전’과 ‘후한서 동옥저편’ 등을 인용, “이후 고구려가 19대 광개토왕에서 20대 장수왕에 이르는 전성기때 현 중국 대륙 전체는 물론 외몽고 중부 이상과 만주 지방 전체, 한반도까지 영토를 넓혔다”고 주장했다.


앞서 이 회장은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이 졸본부여의 왕비였던 소서노와 결혼해 졸본부여를 기반으로 ‘구려’를 건국했고, 당시 도읍지는 현재 랴오닝성(遼寧省) 인근인 졸본이 아니라 과거 장안성(長安城)으로 불렸던 개마현 현도군, 즉 시안(西安) 인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때 구려의 영토가 현재 한반도의 4배가량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자치통감에 ‘중국의 근본은 사이(四夷)의 가지와 잎’이라고 기록된 부분을 인용한 뒤 “중국 역사인 ‘통지’와 ‘통전’에는 ‘사이’가 고구려, 백제, 신라, 왜를 지칭하고 있고, ‘사이’에서 갈라져 나간 민족이 중국인”이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중국의 국제국호가 ‘가지의 나라’, 즉 ‘지나(支那.China)’가 됐다는 게 이 회장의 주장이다.


이 회장은 “이처럼 자신들의 역사가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동북공정’을 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내가 중국학자들을 만나 고대 중국 사서를 들이대며 말하면 단 한 마디도 반론을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 일본 학자들도 모두 내 학설을 인정하는데, 유독 한국 학자들만 밥그릇을 뺏길까봐 인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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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장안)

서울=연합뉴스

입력 : 2006.09.27 13:51 40'


섬서성 咸陽市 피라미드群의 위성사진 (구글로 시안쪽을 보면 고분군들이 있더군요..)

중국에서는 漢나라 제왕 무덤군이라고 공개하는 곳입니다만 외국학자의 발굴기로는 10,500년 전에 축조된 피라미드로부터 3-4,000년 전까지의 것들이 즐비한 의문이 많은 곳 입니다.

중국당국에서 지속적으로 숨기고 실체를 공개하지 않는 곳인데 이부분만 위성사진으로 명확히 잡힙니다.

황토로 축조하면 피라미드 등성이가 사진처럼 정확하게 각이 잡히지 않습니다. 석조물이 들어가야 되고 그래야 장구한 세월에도 견디며 형태를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석조 축조방식은 중국 화하족 방식이 아니라 동이족의 오랜 축조방식입니다. 추론컨데 <환국시대>의 제사장의 무덤 그리고 고조선시대의 석성과 무덤 이후에 고구려의 석성과 장군총등의 석조물로 발전되지 않았는가 판단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