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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咸鏡)의 빙하와 움푹들어간 땅, 끼어있는 바다
글쓴이:한부울
소제:함경도는 캐나다지역이라 할 수 있다.
여러분들께서는 제가 글쓴이라 하는 것에 퍽 신경쓰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밝히고 있는 입장에서 작가라는 것 보다 훨씬 편한 단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 블로그 글 "복분자딸기(Rubus coreanus)와 미국레드라즈베리(American red raspberry) http://blog.daum.net/han0114/17048467"에서 말하길 서양에서는 열매의 빛깔에 따라 이 복분자를 레드라즈베리·红莓:red raspberry);블랙라즈베리·蓝莓(blue raspberry);퍼플라즈베리·紫莓(purple raspberry)3종류로 나누는데 이것을 미국레드래즈베리(American red raspberry)라고 한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Rubus idaeus L. Raspberry(Alternative common name: American red raspberry)
위 분포지도는 야생 생물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적인 조직인 네이처서브(NatureServe)회사가 제공한 자료이며 초록색 범위가 보존상태를 안전하게 확보한다는 세큐어(secure)로 보았다는 것은 본래 산딸기 아메리카 레드 래즈베리(American red raspberry)의 근원지를 말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산딸기속(懸鉤子屬:Rubus)복분자를 학명 "Rubus coreanus Miq.1867"으로 하는데 위 아메리카 레드 래즈베리 보다 시기적으로 한 참 뒤처지는 학명생성이다.
세종지리지(世宗地理志)에서는 약재로 나는 곳을 경기(京畿), 충청도(忠淸道), 경상도(慶尙道), 강원도(江原道), 함길도(咸吉道)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곳은 바로 강원도, 함경도이다.
우리 사서(史書)에 등장하는 야인(野人)을 어떤 종족을 뜻할까?
사전에 따르면 일단 교양(敎養)이 없고 거친 사람을 말하거나 벼슬을 하지 않고 지내는 양반(兩班) 계급(階級)의 사람이라 하였고 시골에 사는 사람이거나 특히 압록강(鴨綠江)과 두만강(豆滿江) 이북(以北) 연안(沿岸)에 살던 여진족(女眞族)을 조선(朝鮮) 왕조(王朝) 이후(以後)에 일컫는 말이라고 하였다.
또 김대문(金大問)의 화랑세기(花郞世記)에는 야인들이 가야의 통제하에 있었다고 하였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세력인지 알 수 없지만 거의 왜(倭)와 관련된 세력으로 여겨진다 하였다.
그렇다면 서양계이다.
야인은 대체적으로 시골사람, 평민, 서민, 거칠고 몰상식한 사람, 떠돌이, 부랑자 등으로 설명되고 있으며 미개인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이런 부류를 당시 문화적으로 뒤떨어진 종족일 수 있으나 야인(野人)을 아메리카인디언(American Indian)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함경도(咸鏡道)
본래는 고구려의 땅이다. 고려 성종 14년 경내(境內)를 10도(道)로 나눌 때, 화주(和州)ㆍ명주(溟州) 등의 군현(郡縣)을 삭방도(朔方道)로 하였다. 정종 2년에 동계(東界)라 일컬었는데 북계(北界)와 더불어 양계(兩界)라고 한다. 문종 9년에는 동북면(東北面)이라 일컬었다. 뒤에 함주(咸州) 이북은 동여진(東女眞)에 함몰되고 말았는데, 예종 2년에 윤관(尹瓘)과 오연총(吳延寵)을 보내어 이를 격파하여 축출하고, 함주로 부터 공험진(公嶮鎭)까지 9개의 성곽(城郭)을 쌓아 경계를 삼고, 선춘령(先春嶺)에 비(碑)를 세웠다.
명종 8년에는 연해 명주도(沿海溟州道)라 일컬었다. 원나라에서는 화주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설치하고 조휘를 총관(摠管)으로 삼고 탁청을 천호(千戶)로 삼았다. 원종(元宗) 4년에는 강릉도(江陵道)라 일컬었다. 공민왕 5년에 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 유인우(柳仁雨)를 보내어 쌍성을 격파하여 진(鎭)을 수복(收復)하였다. 이에 앞서 삭방도(朔方道)를 도련포(都連浦)로 경계를 삼아 장성(長城)을 쌓고 정주ㆍ선덕ㆍ원흥의 세 관문(關門)을 설치하였던 것이 모두 원 나라로 들어간 지가 99년이었더니, 이에 이르러서 비로소 회복하였던 것이다. 수춘군(壽春君) 이수산(李壽山)을 파견하여 강역(彊域)을 정하고 다시 동북면(東北面)이라 호칭하고, 또 강릉삭방도(江陵朔方道)라 일컫다가, 9년에는 삭방강릉도(朔方江陵道)라 일컬었다. 공양왕(恭讓王)때에 이르러 비로소 강릉도(江陵道)와 나누어 자연히 한 도가 되었는데, 본조 태조 때에 국토를 두만강(豆滿江)까지 개척하여 공(孔)ㆍ경(鏡)ㆍ길(吉)ㆍ단(端)ㆍ청(靑)ㆍ홍(洪)ㆍ함(咸)의 7개 주(州)를 두었고, 태종 13년에 관내에 영흥(永興), 길주(吉州)가 있다 하여 영길도(永吉道)라 고쳤고, 16년에 영흥을 강등시켜 화주목(和州牧)으로 만들고, 함주를 승격시켜 함흥부(咸興府)로 만들어 관찰사의 본영(本營)을 여기에 두고, 드디어 함길도(咸吉道)로 고쳤다. 세종 때에 또 회령(會寧)ㆍ종성(鍾城)ㆍ온성(穩城)ㆍ경흥(慶興) 등의 4개 읍을 설치하였고, 예종 원년에 이시애(李施愛)가 길주(吉州)에서 반란을 일으킨 까닭으로 길주를 강등시켜 현(縣)으로 만들었으며, 성종 원년(1470)에 함흥에서 반란군을 따라 관찰사를 살해하였다 하여 군(郡)으로 강등시키고, 관찰사의 본영을 영흥부(永興府)로 옮기고 영안도(永安道)로 고쳤고, 전하(殿下 중종) 4년(1509)에 다시 함흥부에 관찰사의 본영을 옮기고, 드디어 지금의 명칭으로 고쳤다.
위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인데 함경도(咸鏡道)를 고려(高麗)때 강릉삭방도(江陵朔方道)라 하다가 공양왕(恭讓王)때에 이르러 강릉도(江陵道)와 나누어 삭방도(朔方道)라 하였고 조선(朝鮮)태종16년(1416)에 함길도(咸吉道)로 고쳤다가 다시 성종원년(1470)에 영안도(永安道)로 고쳤고, 중종4년(1509)에 다시 함흥부에 관찰사의 본영을 옮기고, 함경도(咸鏡道)로 고쳤다고 하였다.
함경도는 본래 삭방도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삭방(朔方)은 방향(方向)을 이를 때에, 북극을 가리기는 것이라 하였다.
반도사가 말하는 삭방도(朔方道)는 강원도를 말하는 것으로 고려시대 이름이고 정의한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는 함길도 즉 함경도(咸鏡道)의 땅을 춘추전국 시대에는 숙신(肅愼), 한(漢)나라 때에는 읍루, 남북조시대에는 물길(勿吉), 당(隋)·수(唐)시대에는 말갈(靺鞨)로 불렸다고 하였다.
東濱大海, 南界鐵嶺, 西接黃海。 平安道有峻嶺, 自百頭山起伏, 南走鐵嶺, 緜亘千餘里, 北連野人界面。 南自鐵嶺北至公險鎭一千七百餘里, 東西介大山大海之間, 廣狹不同, 或數百餘里, 或六七十里, 唯甲山斗在大山西北外。
함길도를 동쪽은 큰 바다[大海]에 임하고, 남쪽은 철령(鐵嶺)에 닿고, 서쪽은 황해도와 평안도에 접(接)하였다. 준령(峻嶺)이 백두산(白頭山)에서부터 기복(起伏)하여 남쪽으로 철령(鐵嶺)까지 뻗쳐 있어, 천여 리에 긍(亘)한다. 북쪽은 야인(野人)의 땅에 연하였는데, 남쪽은 철령으로부터, 북쪽은 공험진(公險鎭)에 이르기까지 1천 7백 여 리이다. 동쪽과 서쪽으로 큰 산과 큰 바다 사이에 끼어 있어서, 넓고 좁은 것이 같지 아니하여, 어떤 데는 수백여 리가 되고, 어떤 데는 6, 70리가 되는데, 오직 갑산(甲山)만이 큰 산의 서북쪽 바깥으로 쑥 들어가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 함길도 동쪽은 큰 바다라 하였다.
한반도 지형 같으면 그냥 동해(東海)라 하였을 것이고 막연하게 대해(大海)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쪽으로 기복 일어섰다 엎드렸다를 반복하면서 철령(鐵嶺)에 닿았다고 하는 것은 시에라산맥을 말하는 것이다.
위 기록에서 우리가 유심히 관찰해야 할 것은 다음 제시하는 글이다.
東西介大山大海之間
廣狹不同
동쪽과 서쪽으로 큰 산과 큰 바다 사이에 끼어(介) 즉 사이에 들다, 들어박히다란 뜻으로 위 그림처럼한 지형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즉 대산을 북서쪽에 걸쳐 있는 록키산맥군을 이야기 하는 것이고 대해는 바로 허드슨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때문에 끼워져 있는 허드슨만(Hudson Bay)때문에 동서간격에서 땅이 넓거나 좁다 하여 한결같이 같지 않다고 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시에라산맥(Sierra mountains)의 시에라(Sierra)는 라틴어로 qhek(saw) 뜻이지만 스페인어로 아세로(acero)로 스틸(steel) 강철(鐵)의미가 강하다.
북쪽은 야인 땅이라 한 것은 여진을 말하는 것으로 서양 발트해 노르만 종족들을 말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동쪽과 서쪽 사이에 산과 바다에 끼워 있다 하였고 넓거나 좁거나 하며 오직 갑산만이 큰 산의 서북쪽 바깥으로 쑥 들어가 있다는 것은 마치 알레스카를 이야기 하는 것과 같다.
백산(百頭山)이라고 하는 "머리산" 즉 북쪽의 갑산(甲山)인 매킨리산(McKinley, Denali:6194m)이 그곳에 있다는 것으로서 갑산은 바로 매킨리산임을 밝히는 것이다.
갑산이 알레스카게 있었다면 중국이라고 하는 고려는 그 아래 남쪽을 지배한 것이다.
본 블로그 글 "조선패모(朝鮮貝母)와 북아메리카대륙 서부 http://blog.daum.net/han0114/17050693"에서 이곳을 고대 산스크리트(梵語)로 눈(雪)을 뜻하는 히마(hima)와 거처(place, home, temple)를 뜻하는 알라야(alaya)가 합체 된 히말리아가 그곳에 있어야 하며 샹그리라(Shangri-La)를 찾았던 티벳 역사 그곳에 존재해야 한다고 하였던 것이다.
현재 한반도에서 갑산은 함경도(咸鏡道), 갑산군에 있는 면(面)으로 되어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함경도(咸鏡道)가 여러 이름으로 불렸음을 알 수가 있다.
그중에서도 고려(高麗)때 강릉삭방도(江陵朔方道)로 하다가 공양왕(恭讓王)때 강릉도(江陵道)가 나뉘어지면서 삭방도(朔方道)라고 한 사실이다.
삭방(朔方)은 삭변(朔边), 삭북(朔北)이라 하여 북쪽과 북방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렇지만 지금 한반도 역사는 이 삭(朔)을 엉뚱한 곳을 가르키고 강원도라고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실로 불편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함길도를 고려문종(文宗1019-1083,재위:1046-1083)9년(1055)에 동북면(東北面)이라고 한 사실이다.
강릉도(江陵道)가 고려때 삭방도(朔方道)와 함께 함경도(咸鏡道)의 또 다른 지명이라고 할 때 분명 현재 강원도(江原道)는 강릉도(江陵道)도 옛 중국의 5대도회지 즉 당대(唐代)의 다섯 개의 도회지(五都) 장안(長安), 낙양(洛陽), 봉상(鳳翔), 강릉(江陵), 태원(太原)이라 한 사실의 강릉(江陵)과 무관하지 않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 강원도에 도청소재지로 강릉(江陵)이란 이름을 붙이고 있어 강릉도(江陵道)라 했던 것이 무색하게 만든 걳이다.
또 하나는 강릉(江陵)이나 강원(江原)이라는 지명은 강(江)을 뿌리근원으로 하는 지명이다.
그런데 한반도에 강원이나 강릉은 강(江)을 근원으로 하는 것보다 산(山)을 근원으로 하는 지명이다.
한반도의 강원과 강릉은 제왕(帝王), 귀인(貴人)등의 능, 큰 무덤, 큰 묘 등은 고사하고 릉(陵)의 본뜻인 넓게 퍼져 있는 구릉(丘陵), 언덕이 청구(青丘)가 있을 만한 곳이 없고 기어코 찾는다면 구릉이 아니라 험준한 태백산맥만이 이어질 뿐임을 알게 한다.
이것은 본래의 지명과 다르게 변형된 결과라 할 수밖에 없다.
함경도(咸鏡道)의 함(咸)은 모두 함, 소금기 함 등의 뜻이 있고 짠물, 소금물의 함수(咸水)와 알칼리성 토양, 염분을 함유한 토양을 말하는 함토(咸土), 절인죽순인 함순(咸笋), 절인고기 함육(咸肉), 절인음식의 함식(咸食), 짠지란 함채(咸菜), 염수(鹽水) 즉 소금물 함조(咸潮), 함염(咸盐)등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일단 바닷물을 의미하는 것이며 습지
경(鏡)은 ‘거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이 경(鏡)도 잔잔하다와 맑다는 뜻도 있어 바다가 ‘거울처럼 맑다’든지 또는 ‘잔잔하다’란 뜻을 가지고 있고 순백의 차갑고 깨끗한 빙하(冰河)를 떠올리게 한다는 사실이다.
“캐나다”란 이름 자체도 이로쿼이어(Iruquoi)로 마을 또는 정착지를 뜻하는 낱말에서 비롯되었다는 걳을 알 수 있는데 지형적으로 보면 북극해 연안은 툰드라 기후로서 그 남쪽에는 침엽수림이 넓은 지역을 덮고 있고 동쪽으로는 구릉지대가 있어 이것을 로렌시아 대지 또는 캐나다 순상지(Canadian Shield)라 하는 것이다.
그 사이, 가운데에 길이1,400㎞, 너비1,000㎞, 수심은 40~180m, 면적은 120만㎢의 허드슨만(Hudson bay)이 깊숙이 들어와 있으며 이들 평지에는 옛날 빙하의 침식을 받은 많은 호수들이 있고 5대호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습지 및 초원을 볼 수 있어 이것을 담고 있다는 뜻의 함(咸)이라 하여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동시에 이와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세계삼한역사(世界三韓歷史)관점으로 현재 북아메리카대륙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주(British Columbia州)남서부에 있는 도시 밴쿠버(Vancouver)를 함수부(鹹水埠, 咸水埠)라 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함수부의 부(埠)는 부두, 무역항, 개항장(開港場)의 부두가 있는 큰 항구도시를 나타내는 단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함경도(咸鏡道)라고 하기 전에 영안도(永安道)라고 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영안도의 영(永)은 ‘길다, 강이 길다. 물줄기가 길다, 깊다, 빛깔 맛 따위가 짙다’라는 뜻이 있고 얼음 빙(冰, 氷)자와 형상이 비슷하여 ‘차다, 시리다, 차갑다, 또는 쌀쌀하다’란 의미로 쓰여 북쪽 빙하를 의미하는 뜻이 강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함경도(咸鏡道)는 거대한 빙하(冰河), 빙천(冰川), 차거운 강(江)이 많은 곳임을 알 수가 있고 깊이가 깊은 바다나 빙하에 의해 생성된 호수, 습지가 있었을 가능성을 역사적으로 이야기 해 볼 수 있다.
영길도(永吉道)에서 함길도(咸吉道)로 고쳤다는 것도 영(永)과 함(咸)이 고대된 듯 한 것도 이와같은 뜻으로 풀어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함주(咸州) 역시 그런 뜻으로 보아야 하며 이것은 밴쿠버(Vancouver)를 함수부(鹹水埠, 咸水埠)라 했다는 사실과 연관시켜도 무방할 것이다.
아마도 이글을 접하는 사람들은 함경도의 함경(咸鏡)이 바다빙하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는 것에 놀라워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반도 지형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는 지형적인 한계가 분명하게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세계삼한역사관이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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