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SINA-신중국

주구점 북경원인, 그 70만년 전으로의 시간여행

한부울 2009. 7. 19. 18:29

주구점 북경원인, 그 70만년 전으로의 시간여행

[오마이뉴스]05.01.21 15:44

 

인류기원의 비밀이 묻힌 고고학의 보고

917번 타임머신을 타고


마르코 폴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극찬했다는 노구교(盧溝橋)를 빠져 나와 917번 버스를 타고 주구점(周口店)으로 향했다. 917번 버스는 타임머신이 되어 70만 년 전 원숭이 인간, 원인(猿人)이 살았던 세계로 안내한다.

 

                                   ▲ 발굴지에서 내려다본 주구점 마을의 모습 ⓒ 김대오

 

나지막한 구릉에 둘러싸인 석회광산의 탄광마을은 가끔 화물기차의 기적소리만 들려올 뿐 뿌연 연기 속에 적막하기만 하다. 그러나 마을을 휘도는 강물과 보잘 것 없는 용골산(龍骨山)에도 140m나 되는 천연 동굴들이 있었으니, 바로 원인들의 생명수요 맹수의 공격을 피하는 소중한 주거지가 되었던 것이다.


주구점 북경원인(北京猿人) 유적지는 198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이래 입장료는 30위엔(4000원 정도)으로 올라 있다. 발굴자들의 사진이 도열하고 선 수림 사이를 올라가면 바로 인류기원의 비밀을 간직한 유골의 발굴지들이 1지점에서 15지점까지 낮은 산허리를 감싸고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인류기원의 뼈가 묻힌 퇴적물 위를 거닐다


주구점 근처에서는 고래로 '용골(龍骨)'이라 불리는 각종 동물의 뼈가 자주 발견되었는데 사람들 사이에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져 높은 가격에 거래돼 왔다고 한다. 어쩌면 그 뼈 중에 인류조상의 뼈가 포함되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가 1870년 영국의 고대척추동물학자 리처드 오원이 주구점 일대에서 포유류유골을 발견하여 학계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주구점은 고고학의 보고로 주목 받기 시작하였다.

 

                         ▲ 뼈대만 남은 바위 틈으로 작은 발굴용 동굴이 보인다. ⓒ 김대오

 

1921년에는 스웨덴의 고생물학자 앤더슨이 이 지역에서 고대원시인류의 이빨을 발굴하였으며 드디어 1927년 12월 2일, 중국의 고고학자인 배문중(裵文中)이 30m 깊이의 동굴 밑바닥에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동굴 속에서 69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완전한 원인의 두개골을 발굴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북경원인'이다. 대나무 주걱을 가지고 손상 없이 이 두개골에 붙은 흙을 제거하는 데에만 4개월이 소요되었다고 하니 고고학자들의 유적 발굴의 지난함을 가늠할 수 있다.


지금은 앙상한 뼈대처럼 바위만 남아 있는 발굴지에는 군데군데 작은 동굴의 입구만이 신비감을 더해주며 자리 잡고 있다.

 

                          ▲ 주구점유적박물관에 설치된 원인들의 동굴생활 가상도 ⓒ 김대오

 

베이징원인의 뇌 용량은 현 인류의 2/3수준이라 한다. 두개골이 낮고 평평하며 눈 위의 뼈와 광대뼈가 돌출되어 있고 직립보행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동굴 속에는 5개의 재더미층이 있는데 두꺼운 곳은 그 길이가 6m에 달하며 이밖에도 3곳의 잿더미유적, 다량의 불에 탄 유골들이 발견되었다. 이 발굴로 인류가 불을 사용한 역사는 수십만 년 앞당겨졌으며 당시 베이징원인이 이미 각종 석기를 다듬어 도구로 활용하는 법과 불씨를 보존하는 기술 등을 터득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 산정동인(山頂洞人)이 발굴된 산정동의 모습  ⓒ 김대오

 

1933년, 배문중은 다시 1.8만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인류의 화석을 발견하였는데 바로 '산정동인(山頂洞人)'이다. 10개에 달하는 산정동인은 원시몽고인의 특징을 갖고 있으며 체질적으로 북경원인보다 분명히 진보된 것으로 현인류와 거의 비슷한 모습이다. 특히 3개의 완전한 성인남녀의 두개골은 각종 장식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순장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당시에 벌써 원시종교의 맹아가 싹튼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장식품의 제조기술이 상당히 발전된 것으로 보아 산정동인이 시기적으로 이미 구석기말기에 해당되는 문명을 지녔다고 한다.


사라진 유골의 미스터리


1935년부터는 가란파(賈蘭坡)의 주도하에 발굴작업이 계속 되었는데 1936년 11월, 3구의 북경원인 두개골이 발굴되어 학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발굴작업은 1937년 7월 7일 주구점 근처인 노구교(盧溝橋)에서 발발된 중일전쟁으로 중단되었다.

 

                         ▲ 좌측에서부터 현원인-북경원인-현인류의 뇌구조이다. ⓒ 김대오

 

더욱 놀랍고 안타까운 사실은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한 후 주구점을 점령하고 베이징원인이 보관되어 있던 협화의원(協和醫院)의 대금고를 열었을 때 유골은 이미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다는 것이다. 금고를 열 때 함께 참관했던 중국의 고고학자 배문중은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유골이 있었다고 증언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발굴작업을 지원했던 미국의 록펠러 재단 측에서 태평양전쟁 발발 직후 유골을 안전한 곳으로 운반하다가 도중에 무슨 사고로 분실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정될 뿐이다.


인류기원의 비밀을 간직한 북경원인과 산정동인의 두개골 그리고 대량의 석기유물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진 이 미스터리는 인류의 문화유산을 땅 속에 묻어둔 채로 내버려두는 것이 가장 좋은 보존방법이라는 항간의 우스갯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가장 완전하게 보전된 고고학의 보고


1973년에는 69만년 전의 베이징원인과 1.8만년 전의 산정동인의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10만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신동인(新洞人)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 주구점유적박물관 앞마당을 지키고 서 있는 베이징원인의 동상  ⓒ 김대오

 

1921년 이후 계속된 발굴작업에서 총 3만m²의 퇴적물에서 6개의 비교적 완전한 두개골과 12개의 부서진 얼굴뼈, 15개의 턱뼈, 157개의 이빨과 10여 개의 인체의 유골들이 발굴되었는데 모두 40인분의 사람 뼈에 해당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밖에도 수십만 건에 달하는 구석기유물과 코끼리, 코뿔소, 말, 소, 양, 돼지, 사슴 등의 포유류의 유골이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이렇게 체계적이면서 대량으로 고인류발전사의 유적이 완전한 형태로 발굴된 곳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것이다.


낮은 산을 돌아 내려오면 주구점유적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에서 발굴된 각종 유물들 앞에는 베이징원인의 동상이 놓여 있는데 역사라는 말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 엄청난 시간의 퇴적을 넘어선 인류 탄생의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덧붙이는 글 | 북경의 서남쪽 42km 위치한 주구점은 근처의 노구교, 운거사, 석화동, 십도, 계태사 등과 함께 1박 2일 코스로 여행을 즐기기에 적당하다.

[오마이뉴스]김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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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원인(北京猿人:sinanthropus pekinensis)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에 속하는 멸종된 인류.


베이징 근교의 저우커우뎬[周口店] 동굴에서 화석이 발견되어 그 존재가 알려졌다. 1927년 데이비드슨 블랙이라는 인류학자가 이빨 1개에 근거해 새로운 화석인류임을 확인했다. 이후 발굴을 통해 14개의 두개골 상부, 여러 개의 하악골, 안면골, 사지뼈, 40인의 이빨 등이 발견되었다. 이 저우커우뎬 인류화석은 홍적세 중기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더 정확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다. 호모 에렉투스라고 명명되기 전까지 이들은 피테칸트로푸스 또는 시난트로푸스라고 다양하게 분류되었다.


베이징 원인의 두개골 평균용적은 1,075㎤로 그 범위는 850~1,300㎤이며, 평균용적이 1,350㎤인 현대인의 용적범위와 부분적으로 일치한다. 두개골의 옆모습은 평평하지만 이마는 작은 편이다. 강한 턱근육이 연결되어 있는 두부 위쪽의 시상척(矢狀脊), 매우 두꺼운 두개골, 무거운 이마뼈, 후두골의 융기, 넓은 구강, 턱뼈가 떨어져나간 입 부분 등이 특징이다. 이빨은 본질적으로 사람의 이빨이지만 송곳니와 어금니는 매우 크며 어금니의 에나멜질은 주름이 잡혀 있다. 사지뼈는 현대인과 거의 구별할 수 없다. 이러한 인간의 뼈와 함께 발굴된 석핵석기(石核石器), 원시적인 박편석기, 골각기, 까맣게 태운 동물뼈, 화로의 유적 등은 베이징 원인이 매우 발달한 공동생활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수렵생활을 했으며 가정에서 불을 사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베이징 원인은 자바 원인보다는 나중에 출현했으며 두개골 용적과 이마가 더 크고 송곳니가 겹치지 않은 점 등으로 보아 좀더 발달한 인류였다고 추정된다.


원래 화석은 1941년 베이징 연합의과대학에 소장되었으나 일본의 침략이 임박하자 미국으로 밀수되어 결국 되찾지 못했다. 단지 연구를 위해 만든 석고모형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1958년부터 새로 시작된 동굴 발굴로 새 표본이 발견되었다. 해리 L. 샤피로가 쓴 〈베이징 원인 Peking Man〉(1975)은 최초의 화석발견과 그 중요성에 대한 논의, 그리고 그 뼈들이 사라졌을 때의 상황재구성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네이트사전]


중국 북경시 周口店유적의 발견은 고고학 연구사상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출토된 40여개 체분의 인골과 이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석기와 불의 흔적등은 극동지역에 있어서 홍적세 제 시기의 인류거주와 그 문화적 양상 및 인류가 진화해 온 과정을 복원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유적은 북경시에서 서남쪽으로 약 50km정도 거리에 위치한 주구점 용골산의 석회암 구릉에 있는 동굴이다. 유적의 두께는 40m이고 위에서부터 13개의 층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층들은 지질학적으로 중기 홍적세에 해당하며 지금으로부터 70~20만년전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유적이 최초로 발견된 것은 1921년이었으나 그 본격적인 발굴은 1927~1937년, 1949~1966년, 1978~1979년의 3차에 걸쳐 이루어졌다. 15개 지점이 발굴되었으며 그 중 1지점에서 발견된 고인류화석은 발굴 담당자 가운데 한 사람이어 TEjs 북경 유니온 의과대학 해부학 교수인 데이빗슨 블랙에 의해 1927년에 北京猿人으로 명명되었다.


이 화석인골은 같이 발굴된 석기와 함께 제2차 대전 중 상자에 포장되어 해외로 반출되는 과정에서 그 행방이 묘연해지고 말았다. 다시 말하여, 북경원인은 1926년 처음 발견된 이후 15년 후인 1941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북경원인은 제2차 대전 중 일본과 중국의 교전 직전인 1941년 이 화석인류가 보관된 북경 협화의학원 신생대연구소에서 미국 대사관으로  그곳에서 다시 북경에 주둔하고 있던 홀로콤 미국 해병대 기지로 옮겨져 천진의 항구 도시인 진황도에 정박한 해리슨호에 선적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배는 결코 진황도에 도착하지 않았으며 마닐라에서 오는 길에 양자강 입구에서 일본 전함에 피격되어 침몰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석인골은 그 배에 실리지 않았던 것이 된다. 또 데이빗슨 블랙 교수의 후임으로 북경 협화의학원에 부임하여 북경원인에 대한 결정적인 연구를 한 저명한 해부학자겸 인류학자인 프란쯔 바이덴라이히 교수가 원본을 모형이라 속여 귀국 때 미국으로 가져갔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이 화석인류를 탈취하여 동경에 가져갔다가 제2차 대전 말에 일본을 점령한 미국인들에게 다시 발견되어 맥아더 장군 사령부에서 미국으로 보냈기 때문에 이것이 현재 미국 내에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세계적인 북경원인의 화석 행방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따라서 북경원인에 대한 연구는 당시 원본을 가지고 떠놓았던 정교한 모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후 이곳에서 발견된 다른 인골화석으로 그 연구가 보완되고 있다.


북경원인의 인골화석은 1921년 쯔단스키에 의해 2개의 치아가 발견된 것을 필두로 하여 1921년~1966년에 이르는 발굴기간 동안 6점의 완전한 두개골, 12편의 두개골편, 15점의 하악골, 157개의 치아, 7편의 대퇴골, 1점의 정강이뼈, 3점의 상완골, 1편의 쇄골과 소목뼈가 11층 이상에서 출토 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40여 개체분의 성별․연령이 다른 인골에 해당한다.


이들의 주요 형태는 직립의 자세를 보이고 있어 직립원인에 포함시키고 있다. 세부적인 특징을 보면, 두뇌 용량은 1,015cc~1,225cc 사이에 들어 평군 1,088cc 정도로써 현대인의 평균 1,400cc보다 적다. 전두골은 경사가 심하며 뼈의 두께가 현대인에 비해 두껍고 전체적으로 낮고 평평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눈 위의 미긍골과 머리 위에는 골즐이 매우 현저하고 얼굴은 비교적 짧으며 입은 앞쪽으로 돌출된 형태이다. 턱은 매우 크고 발달되어 있고 입천장도 매우 크며 머리 뒤통수에는 두정골이 발달되어 있다.


치아는 치관과 치근이 모두 현대인보다 크며 특히 윗부분의 앞니 내면에는 삽 모양의 흠이 패여 있어 현대 황인종의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대퇴골, 경골과 비골의 길이로 신장을 복원할 수 있는데 바이덴라이히 교수는 대퇴골을 통해 북경원인의 신장이 남자가 156cm, 여자가 144cm정도가 된다고 추정하였다.


진화의 과정에서 볼 때 뇌 용량과 신장은 점차 같은 비례로 커진다고 인식되고 있는데 북경원인의 경우 두뇌 용량에 비해 신장이 너무 작아 비례상 적절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주구점유적은 지금으로부터 50~20만년 전에 걸쳐 직립원인이 살던 곳으로 이 시기의 생활은 10만점 이상이나 되는 많은 석기자료를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다.


석기로는 주로 박편, 긁개, 찍개류 등이 출토되며 직접 타격이나 양극 타격 기술을 제작 방법으로 사용한 찍개문화로 주먹도끼와 같은 석기들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주된 석재는 가까운 강가나 언덕에서 발견되는 석영, 수석, 사암 등이다. 이를 근거로 하여 한때 동북아시아 구석기문화 전통은 유럽의 아슐리안계와 구분되는 찍개문화 전통으로 규정되기도 하였다. 한편, 인골이 발견된 제1지구 외에 석기는 주로 제15지구에서 발견되는데 이곳에서 발견된 석기에서는 중기구석기시대의 발전된 르발르와 기법도 보인다.


북경원인의 살림살이는 주로 사냥, 채집에 의존하였다. 사냥의 대상은 사슴, 야생말, 곰, 물소 등이고 채집은 주로 과실, 야생식물의 줄기와 뿌리를 비롯하여 곤충, 개구리, 뱀, 알, 새, 쥐등 손쉬운 것에 국한하였다.


주구점에서는 인골, 석기와 함께 다량의 동물화석이 발견되었다. 이 유적에서 96종의 포유동물화석이 발견되었는데 이들에는 물소, 멧돼지, 사슴, 양, 야생말, 비비원숭이 코뿔소, 검치호 등이 포함되어 있어 원인의 식생활에 대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재의 흔적은 북경원인이 불을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익혀 먹던 생활을 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불의 사용은 인류문화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불의 사용은 인류문화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왜냐하면 이를 사용함으로써 보온, 방어, 음식을 익혀먹는 습관 등의 각종의 이점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불가에 둘러앉아 가족과 여러 성원들의 활동이나 경험으로 이루어진 이야기가 후일, 구비설화나 신화 등의 형성과 전승까지도 가능케 하였기 때문이다.


구점 유적에서 발견된 두개골 중에는 인위적으로 파괴된 것이 많은데 이를 공격성 이론과 결부시켜 식인습관으로 본 사람도 있다. 즉 인간에게는 선천적으로 공격적인 본능이 잠재하고 있어 오랜 옛날부터 동료들을 서로 상해하여 그 골수를 먹는 무서운 식인 풍습이 존재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의견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들 간에 인간의 본성이라는 문제와 결부하여 많은 논란이 거듭되어 왔다. 최근에는 두개골이 파손된 부위는 의도적으로 구멍을 뚫은 것이며 이것은 단순히 골수를 먹기 위한 목적에서라기보다는 일종의 의례적 풍습에 기인한 것으로 같은 종족의 골수를 먹음으로써 사자의 정기나 지혜를 흡수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풍습은 현존하는 브라질의 야노마모 인디언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死者에 대한 존경이나 정기의 흡수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한편 최근에는 이러한 구멍이 사람들에 의해 뚫어진 것이 아니라 식육류에 의한 것이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해석 방향은 과거 밥 브레인이 아프리카 식육류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사이의 관계를 지적한 것과 유사하다.


불의 사용과 석기의 이용 그리고 불에 탄 사슴의 상악골과 불 먹은 돌로 미루어 본 음식을 익혀먹던 습관 등으로 북경원인이 여러 가지 문화적 행위를 영위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 또 북경원인의 화석은 그 형질적 특징 연구를 통해 인류 진화상에서 계통적 위치를 명확히 규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러나 북경원인이 원인(직립원인)에서 고인(호모 사피엔스, 슬기인)으로의 직접적인 이행 과정상에 위치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의문점이 제시되고 있다. 즉 북경원인의 두개골이 길지만 낮고 두꺼운 골벽, 앞으로 나온 입, 튀어나온 미궁골과 두개골 윗부분에 나있는 뚜렷한 골즐 등의 이유로 고인에로의 직접적인 이행에 회의적인 의견이 있다.


그러나 직립원인 가운데도 다양한 종이 있을 수 있으며 또 차이가 있는 亞種이 지역에 따라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아종 중의 하나가 북경원인이 아닌가 주장되기도 한다. 이와같은 견해는 각각 系統漸變論과 斷續平衡論이라는 최근의 새로운 해석상의 상이한 관점에서 기인한 것으로 이는 직립원인의 광범위한 형태적 특징에 대한 명확한 규명과 보다 많은 화석인골 연구를 통해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북경원인 외에도 丁村, 新洞, 金牛山 등 인근 지역에서 발굴된 화석인골 연구를 통해서 고인에로의 이행과정과 더불어 황인종(몽골로이드)과 같은 지역적인 특수성의 계승 여부도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1933년, 1934년에 발굴된 주구점의 산정동이라 명명된 동굴에서는 두개골 4개를 포함한 8명분의 인골과 여러 화석, 석기, 골기가 다량으로 출토되었는데 이들은 시대상 후기 구석기시대에 속한다. 여기에서 나온 두개골은 이종적으로 중국인, 에스키모,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조상으로 추정되기도 하는데 아무튼 이들은 신인(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 슬기․슬기인)들로 현생인류이다.


자바원인과 더불어 북경원인은 7,000만년전 처음 영장류 출현 이후 5~7백만년 전 인간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인류의 진화가 4~5백만년 전 쯤 남방의 원숭이라 불리우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걸쳐 2백만년 전 직립원인 그리고 30~40만년전 고인으로 발전하여 최후에는 현생 인류인 4~5만년 전의 신인에로의 발전계통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고리가 된다.


또 이렇게 중요한 북경원인이란 화석인골의 실종 미스테리는 학문외적 흥미와 이야기 거리를 더해주고 있다. [역사와고고학 김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