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학 덕분에 한양이 도읍지로!
[소년조선] 2008년 06월 23일(월) 오후 03:51
지도는 문자에 뒤지지 않을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작게는 부족에서 크게는 대제국을 운영하기까지 가장 중요한 자료가 바로 지도이기 때문이다. 영국박물관에 있는 고대 바빌로니아의 지도는 무려 4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태양열로 구운 벽돌 위에 나뭇가지로 그렸다.
인류가 활동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면서 지도가 아우르는 범위도 조금씩 확대되기 시작했다. 특히 유럽인들은 15세기 초부터 신대륙을 찾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계지도를 완성시켰다.
우리나라에서 세계지도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태종 2년(1402년)이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로 불리는 이 지도는 현재 남아있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다. 제작을 담당했던 의정부 검상 이회는 자신이 만든 우리나라 지도와 중국과 일본을 통해 구한 외국 지도를 합해 세계지도를 완성했다.
이 지도에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은 물론 아시아, 아라비아반도, 아프리카, 유럽까지 그려져 있다. 하지만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의 영향을 받아 지도의 한가운데에 중국이 지나치게 크게 그려졌고 한반도가 아프리카 대륙보다 크게 그려지는 등 단점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우리나라 지도에는 풍수지리적인 자연관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당시 사람들은 산과 강, 동서남북의 방위가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는 데도, 풍수지리적 요소가 아주 중요하게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집터나 조상의 묘를 정할 때도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겼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5년(1433년)에는 중추원 부사 조비형이 풍수의 학문이 잘못 알려져 사람들을 현혹시키니 나라에서 이를 연구하고 바르게 가르칠 훈도를 정해달라고 하자 임금이 이를 따랐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성종 1년(1470년)에는 동지중추부사 이파가 집터를 파다가 노비 3명이 깔려 죽은 사고가 있었다고 아뢰자 임금이 “땅을 파는 곳이 손해를 끼치지 않는지를 풍수학적으로 조사하라”고 지시한 기록이 남아있다.
풍수학에 대한 평가는 오늘날까지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신적인 요소가 강하다고 하여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사상은 지구 오염의 문제를 일으킨 과학문명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더 알아볼까요?
택리지(擇里志) : 영조 27년(1751년) 실학자 이중환이 현지 답사를 기초로 하여 저술한 우리나라 지리서다. 실학파 학풍의 배경에서 만들어진 지리서이며 ‘동국여지승람’을 대표로 하는 종전의 군현별로 쓰여진 지리서와 달리 우리나라를 총체적으로 다룬 팔도총론, 도별지지, 그리고 주제별로 다룬 인문 지리적 접근을 갖춘 새로운 지리지의 첫걸음이다. 지리서이기는 하나 그 내용이 역사·경제·사회·교통 등을 다루고 있어 많은 학문 분야에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조선시대 대표적 지리서로 외국에서도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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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지도(東國地圖),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택리지(擇里志), 풍수지리(風水地理), 도참설(圖讖說), 명당(明堂)
조찬호 기자 소년조선일보ㆍ국사편찬위원회 공동 기획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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