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세계인종분류색인

한부울 2008. 8. 3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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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종분류

 

자료정리:한부울

 

INDEX

1.가우초(gaucho) 

2.게르만인(Germanen) 

3.고산족(高山族 Formosans) 

4.고아시아제족(古-諸族 Paleo-Asiatic peoples) 

5.고트족(Goths) 

6.과라니(Guarani) 

7.누바족(Nuba) 

8.니브히족(Nivkhi) 

9.다야크족(Dayak)

10.동예(東濊)

11.라트비아인(-人 Latvian) 

12.라프족(Lapp)

13.마사이족(Masai) 

14.마오리족(Maori) 

15.말레이인(Malay) 

16.맨던족(Mandan) 

17.먀오족(苗族) 

18.모시족(Mossi) 

19.동예(東濊) 

20.라트비아인(Latvian) 

21.라프족(Lapp)

22.마사이족(Masai) 

23.마오리족(Maori) 

24.반투계제족(Bantu) 

25.본토크족(Bontok) 

26.부기스족(Bugis) 

27.부시먼(Bushman) 

28.사우드가(Sa'Wd) 

29.산탈족(antal) 

30.소말리족(Somali) 

31.스키타이(Scythian) 

32.시노티베트계제족(Sino-Tibetan) 

33.실루크족(Shiluk) 

34.아랍인(Arabs) 

35.아메리칸인디언(American Indians) 

36.아삼제족

37.아샨티족

38.아이마라족(Aymara) 

39.아파치족(Apache) 

40.야오족 

41.야쿠트족(Yakut) 

42.에스키모(Eskimo) 

43.여진(女眞) 

44.오스트레일리아원주민(Australian Aborigines) 

45.오스트로네시아계제족(Austronesians) 

46.오스트로아시아계제족(Austroasiatic peoples)

47.요루바족(Yoruba) 

48.위구르(Uighur) 

49.이반족(Iban) 

50.이족(彛族)

51.이푸가오족(Ifugao) 

52.줄루족(Zulu) 

53.집시(gypsy)

54.차모로족(Chamorros)

55.차이나타운(Chinatown) 

56.카렐리야족(Karelians) 

57.쿠르드족(Kurd) 

58.타밀족(Tamils) 

59.토라자족(Toraja) 

60.투르크멘족(Turkmen) 

61.티베트인(Tibetans)

62.피그미(Pygmy) 

63.가나산족(Nganasany) 

64.가다족(Ngada) 

65.가로족(Garo tribe)

66.가요족(Gayo) 

67.간다족(Ganda tribe)

68.갈(?) 

69.갈라족(Galla) 

70.강(羌) 

71.게노스(genos) 

72.게피드족(Gepids) 

73.고고족(Gogo) 

74.고차(高車) 

75.고트라(gotra) 

76.곤드족(Gond) 

77.골라족(Gola) 

78.과히로(Guajiro) 

79.관체족(Guanches) 

80.구룽족(Gurung) 

81.구르자라족(Gurjara) 

82.구아시아제족(舊) 

83.구티인(Gutians) 

84.그루지야인(Gruziya) 

85.그리스민족

86.그리스인(Greeks) 

87.그리쿼(Griqua) 

88.기수족(Gisu) 

89.길랴크족(Gilyak) 

90.나나이족(Nanai) 

91.나바호족(Navaho) 

92.나스카피족(Naskapi) 

93.나시족(納西族) 

94.나와(Nahua) 

95.나우아족(Nahua) 

96.나이만(Naiman) 

97.나체즈족(Natchez) 

98.난디족(Nandi) 

99.남비콰라(Nambiqwara) 

100.내안각주름(內眼角-) 

101.냠웨지족(Nyamwezi) 

102.네기달족(Negidaltsy) 

103.네네츠족(-族 Nenets)

104.네와르(Newar) 

105.네즈퍼스족(Nez Perce)

106.노가이족(Nogaitsy) 

107.노르만인(Normans) 

108.노르인(Norses) 

109.뇨로족(Nyoro)

110.누리스탄인(Nuristani) 

111누비아족(Nubian) 

112.누에르족(Nuer) 

113.누족(怒族) 

114.누페족(Nupe) 

115.니그로 몽골로이드·

116.니그리토족(Negritos) 

117.니코바르제도민(-諸島民 Nicobarese)

118.다게스탄제족(-諸族 〔러〕narodnosti Dagestana)

119.다곰바족(Dagomba) 

120.다아에족(Daae) 

121.다우르족(Daghur) 

122.다코타족(Dakota) 

123.다호메이족(Dahomey) 

124.도로보족(Dorobo) 

125.도리아인(Dorians) 

126.독일인(獨逸人 Deutsche)

127.동고트족(東Ostrogoths) 

128.동이(東夷) 

129.동호(東胡) 

130.두룽족(獨龍族) 

131.두순족(Dusun) 

132.드라비다족(Dravidian) 

133.드루즈족(Druze) 

134.디나르인종(Dinaric race)

135.디아귀트족(Diaguita) 

136.딩카족(-族 Dinka)

137.라디노(ladino) 

138.라메트족(Lamet) 

139.라무트족(Lamut) 

140.라스(Laz) 

141.라에티(laeti) 

142.라오족(Lao) 

143.라이림부(Rai Limbu)

144.라틴아메리카인디언 

145.라틴인(Latini) 

146.라후족(拉祜族) 

147.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거주 한국인(-中央-居住韓國人)

148.러시아인(Russkie) 

149.레즈긴족(Lezgini) 

150.렐레족(Lele)

151로르족(Lor) 

152.롤로족

153.루그바라족(Lugbara) 

154.루이아족(Luyia) 

155.루테니아인(Ruthenen) 

156.리구리아인(Ligures) 

157.리비아족(Libyan) 

158.리쑤족 

159.리투아니아인(Lithuanians) 

160.리판족(Lipan) 

161.마가르족(Magar) 

162.마두라인(Madurese) 

163.마사게타이(Massagetai)

164.마셜제도인(-諸島人 Marshall Islanders)

165.마야족(Maya) 

166.마카사르족(Makassar) 

167.만나이(Mannai) 

168.만시족(Mansi) 

169.만주족(滿洲族) 

170.말갈(靺鞨) 

171.말라(Malla) 

172.말린케족(Malinke) 

173.맘(Mam) 

174.망갼족(Mangyan) 

175.망데제족(Mande peoples)

176.망베투제족(Mangbetu peoples)

177.맥국(貊國) 

178.메스티소(〔에〕mestizo) 

179.모골족(Mogol) 

180.모르드빈족(Mordvin) 

181.모소족(Moso) 

182.모용부(慕容部) 

183.모이제족(Moi) 

184.모호크족(Mohawk) 

185.모히칸족(Mohican) 

186.몬족(Mon) 

187.몽골로이드(Mongoloid) 

188.몽골족(Mongolians) 

189.무루트족(Murut) 

190.무스코기족(Muskogee) 

191.문다족(Munda) 

192.물길(勿吉) 

193.미나하사족(Minahasa) 

194.미낭카바우족(Minangkabau) 

195.미슈미족(Mishmi) 

196.믹스텍족(Mixtec) 

197.밍그렐족(Mingrelian) 

198.바가라족(Baggara) 

199.바스크인(Basque) 

200.반달족(Vandal) 

201.반투어족

202.발트족(Balt) 

203.밤바라족(Bambara) 

204.버마계제족(-系諸族 Burman)

205.베다족(Vedda) 

206.베두인(Bedouin

207.베르베르족(Berber) 

208.벤드족(Wenden) 

209.벰바족(Bemba) 

210.벵골인(Bengalese) 

211.보도족(Bodo) 

212.보로로족(Bororo) 

213.보어인(Boer) 

214.보탸크족(Votyak) 

215.보토쿠도족(Botocudo) 

216.부랴트족(Buryat) 

217.부르군트족(Burgunder) 

218.부족(tribe) 

219.북유럽인종(Nordic race)

220.비사얀족(Visayan) 

221.비콜족(Bikolano) 

222.비하르인(Bihari) 

223.빌족(Bhil) 

224.사르트족(Sart) 

225.사모예드족(Samoyed) 

226.사모왕국(Samo) 

227.사카이족(Sakai) 

228.사카족(Saka) 

229.사타(沙陀) 

230.삼니움인(Samnites) 

231.색목인(色目人) 

232.생번(生蕃) 

233.샤반테족(Shavante) 

234.샤세반족(Shahsevan) 

235.샤이엔족(Cheyenne) 

236.샤카족 

237.샨족(Shan) 

238.서고트족(Visigoths) 

239.서족

240.선비(鮮卑) 

241.설연타(薛延陀) 

242.세노이어군(語群) 

243.세노이족(Senoi)

244.세누포족(Senufo) 

245.세망족(Semang) 

246.세부아노족(Cebuano) 

247.세파르딤(Sephardim) 

248.셈어족

249.셰렌테족(Sherente) 

250.소그드인(Sogd) 

251.소르브인(Sorben) 

252.소토족(Sotho) 

253.솔론족(Solon) 

254.수족(族) 

255.실위(室韋) 

256.싱할리족(Singhalese) 

257.아누아크족(Anuak) 

258.아라비아인 

259.아라와크족(Arawak) 

260.아라우칸족(Araucanians) 

261.아란다족(Aranda) 

262.아람인(Aramaeans) 

263.아루아족(Arua) 

264.아르메노이드(Armenoid) 

265.아리안(Aryans) 

266.아모리인(Amorites) 

267.아바르족(Avars) 

268.아에타족(Aeta) 

269.아이누족(Ainu) 

270.아잔데족(Azande) 

271.아치에족(Atjehnese) 

272.아캄바족

273.아프간족(Afghan) 

274.아피나예족(Apinaye) 

275.알곤킨계제족(Algonkians) 

276.알라만족(Alamannen) 

277.알라칼루프(Alacaluf) 

278.알류트족(Aleuts) 

279.알타이계제족(Altaians) 

280.알푸루족(Alfuru) 

281.암하라족(Amhara) 

282.애뢰(哀牢) 

283.애서배스칸계제족(Athabascans) 

284.앵글로색슨(Anglo-Saxon) 

285.야간족(Yahgan) 

286.야노마모족(Yanomamo) 

287.야키(Yaqui) 

288.야페테인(Japhetic) 

289.에벤키족(Evenki) 

290.에웨족(Ewe) 

291.에트루리아인(〔라〕Etrusci) 

292.에티오피아인종(Ethiopian race)

293.예맥(濊貊) 

294.오나족(Ona)

295.오로촌족(Orochon) 

296.오로크족 

297.오스탸크족(Ostyak) 

298.오이라트(Oyirad) 

299.오이로피데 

300.오지브와족(Ojibwa) 

301.오환(烏桓) 

302.옹구드(Ongud) 

303.와족(wa) 

304.왈론인(Wallonese) 

305.우리양하이(Uriyanghai) 

306.우문부(宇文部) 

307.우아스테카(Huasteca) 

308.우즈베크족(Uzbek) 

309.움브리인(Umbri) 

310.월(越) 

311.위촐족(Huichol) 

312.윌타족(Uilta) 

313.유대인(Jews) 

314.유카기르족(Yukagir) 

315.이고로트족(Igorot) 

316.이오니아인(Ionians) 

317.인도게르만족

318.인도네시아인

319.인도스키타이족 

320.인디언 

321.일로카노족(Ilocano) 

322.잔데를링잔데족

323.정령(丁零,丁令·丁靈) 

324.조선족(朝鮮族) 

325.좀비족(Zombie) 

326.좡족(壯族) 

327.주니족(Zuni) 

328.주트인(Jutes) 

329.지리안족

330.참족(Cham) 

331.철륵(鐵勒) 

332.체레미스족(Cheremis) 

333.체로키족(Cherokees) 

334.체코인(Czech) 

335.초르티(Chorti) 

336.초칠족(Tzotzil) 

337.추족(鄒族) 

338.추크치족(Chukchee) 

339.츠와나족(Tswana) 

340.치브차족(Chibcha) 

341.친족(Chin) 

342.카나카족(Kanaka) 

343.카라모종족(Karamojong) 

344.카렌족(Karen)

345.카를루크(Kharlukh) 

346.카리비언블랙 

347.카리에라족(Kariera) 

348.카마유라족(Kamayura) 

349.카시족(Khasi) 

350.카얀족(Kayan) 

351.카잉강족(Caingang) 

352.카자흐족(Kazakh) 

353.카프카스인종

354.칼미크족(Kalmyk) 

355.캄바족(Kamba) 

356.캄보디아인 

357.캄차달족(Kamchadal) 

358.케추아족(Quechua) 

359.케트족(Ket) 

360.코랴크족(Koryak) 

361.코만치족(Comanche) 

362.코미족(Komi-) 

363.코이산(Khoisan) 

364.코카서스인종 

365.콘드족(Khond) 

366.콰키우틀족(Kwakiutl) 

367.쿠나(Cuna) 

368.쿠부족(Kubu) 

369.크레올(Creole) 

370.크리미아타타르(Krymskie tatary)

371.크리크족(Creek) 

372.크메르족(Khmer) 

373.키르기스족(Kirghiz) 

374.키오와족(Kiowa) 

375.키와이족(Kiwai) 

376.키쿠유족(Kikuyu)

377.키타이 

378.타갈로그족(Tagalog) 

379.타라스코족(Tarasco) 

380.타라우마라족(Tarahumara) 

381.타타르족(Tatarin) 

382.태즈메이니아족(Tasmanians) 

383.테소족(Teso) 

384.테우토니인

385.텔루구족(Telugu) 

386.토다족(Toda) 

387.토르구트(Torgut) 

388.토번(吐蕃) 

389.토토나카(Totonaca) 

390.통가족(Tonga) 

391.투아레그족(Tuareg) 

392.투피남바족(Tupinamba) 

393.투피족(Tupi) 

394.퉁족

395.튀링겐족(Thuringen) 

396.튜턴인(Teuton) 

397.틀린깃족(Tlingit) 

398.파에스족(Paez) 

399.파이유트족(Paiute) 

400.파푸아족(Papuan) 

401.팔라웅족(Palaung) 

402.팔레오아시아제족

403.팜파스인디언(Pampas Indians)

404.펠리시테인

405.표해민(漂海民) 

406.푸난족(Punan, Penan)

407.푸르족(Fur) 

408.푸어화이트(poor white)

409.푸에블로족(Pueblo) 

410.풀라니족(Fulani) 

411.프러시아인(Prussians) 

412.프리지아인(Friesian) 

413.플라망인(Flamands) 

414.피그마이오스(Pygmaios) 

415.핀인(Finn) 

416.필리스틴인(Philistines) 

417.하우사족(Hausa) 

418.하이다족(Haida) 

419.하자르(Khazars) 

420.하카(客家) 

421.한민족(韓民族) 

422.한인(漢人) 

423.한티족(Khanty) 

424.할하부(Khalkha) 

425.헝가리인(Hungarian) 

426.헤브라이인

427.헬베티아인(Helvetian) 

428.호텐토트족(Hottentot) 

429.호피족(Hopi) 

430.회족(回族) Huizu

431.회흘(回紇) 

432.후르리인(Hurrians) 

433.후투족(Hutu) 

434.훈족(Huns) 

435.히바로족(Jivaro) 

436.히타이트(Hitt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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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우초(gaucho) 


남아메리카의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대초원 팜파스를 무대로 단순·소박하여 자유롭게 자연에 도전하는 동시에 대자연에 대한 일종의 체념으로부터 우수를 느끼는 주민의 총칭. 에스파냐·포르투갈에서 들어온 사람들과 원주민 과라니족(族)과의 혼혈종족이다. 이 지방 일대가 거의 목축지대이므로 목동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현재 아르헨티나서에는 통례적으로 1년에 한번 우시장이 서는데 이때는 <에스탄샤>라는 목장을 중심으로 수만 ㏊의 광활한 지역에 흩어져 있는 소가 모인다.


2.게르만인(Germanen) 


인도유럽어족(語族) 중 게르만어파(語派)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총칭. 현재의 덴마크인·노르웨이인·아이슬란드인·앵글로색슨인·네덜란드인·독일인 등이 이에 속하며 이들 민족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민족 대이동 이전의 옛 게르만인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게르만이라는 명칭은 갈리아의 켈트인이 부여한 것이다. 그들은 인종적으로 똑같지는 않지만 대체로 키가 크고 금발에 파란 눈과 높은 코를 가졌다. 유틀란트반도 및 이에 인접하는 북·북서독일,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중·남부 등지가 BC 2000년대 중엽의 게르만인 원주지였다고 생각된다. BC 1000년대 중엽부터 BC 300년경까지 서쪽으로는 네덜란드에서 라인강의 하류 유역까지, 동쪽으로는 비스툴라강 유역으로부터 다뉴브강 북쪽 기슭, 드네프르강 하류지역까지 퍼졌으며 북·서·동게르만의 3개 그룹을 형성하게 되었다. G.J. 카이사르의 《갈리아전기(戰記)》, C.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Germānia, AD 98)》 등 고대 저술가들의 기록을 통해 기원전후 게르만인의 사회구조나 정치조직에 대해 약간이나마 구체적으로 알 수가 있다.


3.고산족(高山族 Formosans) 


타이완[臺灣(대만)] 원주민의 여러 종족을 일컫는 말. 청(淸)나라 때에는 한족화(漢族化)한 종족을 숙번(熟蕃), 그렇지 않은 종족을 생번(生蕃)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모두가 숙번이라고 불린다. 인도네시아로부터 처음으로 타이완에 정착한 종족은 산포(山胞)라고도 하였다. 한편 일본점령시대(1895∼1945)에는 다카사족[高砂族(고사족)]이라고도 하였다. 분포지역은 주로 타이완 본토의 중앙 산지와 동부 협곡 및 란위[蘭嶼(난여)] 등지이다. 타이완에 거주하는 원주민족의 언어의 총칭으로서 고산족제어(高山族諸語)라고도 하며 모두 오스트로네시아어족(語族;이하 <남도어족(南島語族)>이라고 약칭)에 속한다. 그런데 고산족제어(高山族諸語)가 남도어족 가운데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의견이 다르다. 남도어족을 서부어파(西部語派;인도네시아어파)와 오세아니아어파로 나누어 고산족제어는 전자에 속한다는 설(說), 남도어족을 타이완어파(고산족제어)·서부어파·오세아니아어파의 셋으로 나누는 설, 그리고 남도어족을 아타얄어파·초우어파·타이완어파(이상의 3어파는 모두 고산족제어)·말레이폴리네시아어파 등 넷으로 나누는 설 등이 있다. 실제로는 여러 방언군으로 나뉘는데 분포지역의 문화 정도의 차이에 따라 아타얄·사이샤트·부눈·사우·초우·루카이·파이완·퓨마·아미·야미 등의 종족이 제각기 그들의 방언을 사용하고 있다.


4.고아시아제족(古-諸族 Paleo-Asiatic peoples) 


고아시아제어를 사용하는 제민족. 옛 아시아제족, 옛 시베리아제족이라고도 한다. 현재 러시아연방 영내에 살고 있다. 다른 민족과의 언어적인 관계가 확인되지 않아, 아시아 또는 시베리아 최고(最古)의 민족이라는 가정 아래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에 포함되는 민족은 다음과 같다. ① 예니세이강 중류에 사는 케트(예니세이 오스탸크;인구 약 1100) ② 아무르강 하류지방에서 사할린 북부에 걸쳐 분포하는 길랴크(니브흐;인구 약 4400) ③ 인디기르카강 하류지방에서 콜리마강 동쪽에 걸친 북극해 연안에 분포하는 유카기르(인구 약 800) ④ 캄차카반도 남부에 살며 러시아화(化)가 현저한 캄차달(이텔멘;인구 약 1400) ⑤ 캄차카반도 북방에 거주하는 코랴크(인구 약 7900) ⑥ 추크치반도의 동쪽과 북극해 연안에 걸쳐 널리 분포하는 추크치(인구 약 1만 4000). ①∼⑥ 외에 러시아의 학계에서는 ⑦ 에스키모(아시아의 에스키모는 인구 약 1500) ⑧ 알레우트(인구 약 500)를 더한다(이상 인구는 모두 1979년 조사). 이 가운데 ④ ⑤ ⑥의 상호간, 그리고 ⑦ ⑧의 상호간에는 저마다 언어상의 친족관계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지만, ① ② ③은 상호간의 관계는 물론 다른 언어와의 관계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5.고트족(Goths) 


게르만민족 중 동(東)게르만계의 부족. 원주지(原住地)는 스칸디나비아반도 남부로 생각되는데 그리스도 탄생을 전후로 해서 근연(近緣)인 게피트족과 함께 대륙으로 건너가 위크셀강(江) 하구 부근에 정주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부족 전체의 통일이 유지되었던 것 같으나 그 후 동(東)고트족과 서(西)고트족으로 분열된 것으로 생각된다. 고트족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원주지에 있을 때 일부가 고틀란드섬에 갈라져서 살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또한 대륙으로 건너갈 때 이 섬을 경유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2세기 중엽 이후에 고트족은 다시 흑해 북쪽 연안으로 이동하여 동고트족은 드네프르강 하구를 중심으로 서고트족은 다뉴브강 하구 북안(北岸) 일대에 정주하였다. 3세기 중엽 이후 로마령 내에 거듭 침입했으나 269년 클라우지우스 황제에 의해 격퇴된 뒤로는 침입을 멈추었다. 4세기 고트인(人) 주교(主敎) 울필라의 포교활동으로 아리우스파의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으며, 울필라는 성서를 고트어로 번역하기도 하였다. 민족이동기에 서고트족은 에스파냐에, 동고트족은 이탈리아에 나라를 세웠다. 흑해 북안의 원주지에 남아 있던 고트족은 훈족에 이어서 슬라브족에 흡수되었으나, 크림반도 동안(東岸)의 이른바 크림고트인(人)만은 1475년 오스만제국에 의해 정복될 때까지 독립을 지켰다.


6.과라니(Guarani) 


남아메리카의 원주민 집단. 두피과라니어족에 속하는 과라니어를 사용하는 여러 부족을 총칭한다. 라플라타강 하구에서 우루과이, 브라질의 남해안,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 브라질 일부의 넓은 지역에 걸쳐 살고 있었다. 과라니계의 치리과노족은 현재의 볼리비아령에 들어가 잉카제국과 싸웠는데 이 치리과노족을 과라니족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과라니족의 직계 자손은 많이 줄어들어, 파라과이·브라질·아르헨티나의 3국 국경지대에 조금 남아 있을 뿐이다(약 3000∼5000명으로 추정된다). 과라니족의 직계자손은 가요바·무부야·니얀데바라로 분류하여 부른다. 또 파라과이 동부에서 수렵·채집을 주로 하며 생활하는 집단이 있는데 이를 과야키라 한다. 파라과이에서 일찍이 과라니가 차지하고 있던 지역에 살고 있는 혼혈 파라과이인은 지금도 과라니어를 사용하고 있다. 과라니어는 파라과이의 공용어로 과라니어 방송국도 있다. 과라니족의 생활은 해안에 살고 있는 두피계의 두피난바와 서로 비슷하다.


7.누바족(Nuba) 


아프리카 북동부 수단 중부의 코르도판 지방에 살며 코르도판어파(語派)에 속하는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 코르도판어파에는 카틀라·콰리브·타게리·타로디·툼툼의 5가지 하위어군이 포함되며 문화적으로 서로 비슷하다. 생활지역은 누바구릉이라는 산이 많은 환경으로, 사람의 이동에 수반하는 문화의 변모에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문화를 지켜오고 있다. 피·수수·옥수수와 함께 깨·오크라·멜론·조롱박·목화·담배 등을 경작한다. 평지부분에서는 소·염소·양·닭을 비롯하여 약간의 말과 나귀, 그리고 돼지를 기른다. 소·염소·양의 방목과 젖짜기는 남자의 일이고, 돼지와 닭 돌보기는 여자의 일이다. 남녀가 함께 농사를 짓는데 경작지개간이나 취락에서 떨어진 경지작업은 남자가 맡고, 취락근처의 밭일은 여자가 맡는다. 모든 누바족 출신의 집단은 단일계통인데 부계를 따르는 집단과 모계집단이 있다. 언어와 지리적인 분포로 보아 본래는 모계였으나 다른 부족과의 접촉으로 인하여 최근에 부계집단이 생긴 것으로 여겨진다. 원형에 가까운 집단에서는 신부에게 주는 결혼지참금의 양이 적어 결혼하기 전의 노력봉사가 의무화되어 있으며, 복혼(複婚)도 드물다.


8.니브히족(Nivkhi) 


러시아 극동지방, 아무르강 하류지역과 사할린에 사는 원주민. 니브히는 <인간>이란 뜻이며, 전에는 길랴크라고 불렸다. 니브히어는 유사한 형제언어를 갖지 않은 고립된 언어인데, 이웃의 여러 언어와 함께 구(舊)아시아 여러 언어에 포함되어 있다. 역사적으로는 아이누어를 비롯하여 이웃의 퉁구스·만주어 계통의 여러 부족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문화적으로도 뚜렷한 공통성이 있다. 생업은 하천에서 연어·송어를 잡고 해안에서 해수(海獸)수렵을 한다. 여름철에는 냇가나 바닷가의 지상구조의 집에서 살다가 겨울철에는 내륙의 겨울집(세로로 판 구멍;堅穴)에 옮겨 산다. 연어·송어를 말린 것은 사람과 개의 주된 식량이며, 이동수단으로는 대형 외양선(外洋船), 하천용 통나무배, 개썰매가 이용된다. 신앙이나 의례는 애니미즘적 색채가 짙으며, 또 우주는 지상·지하·천상의 세계와 물의 세계로 되어 있으며, 각각 주인이 있는 것으로 여겨 일상적으로 공물(供物)을 바친다. 그중에서도 물의 주인이나 곰에 대한 의례는 씨족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생활 중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종교로서는 샤머니즘을 들 수 있으나, 주술사의 역할은 사회적으로 그다지 크지는 않다.


9.다야크족(Dayak)

 

보르네오섬 남부와 서부 내륙부의 하천유역에 사는 비이슬람계 원주민. 몇 개의 부족으로 나뉘지만, 인종은 모두 프로토 말레이계이며, 언어는 서(西)오스트로네시아어에 속한다. 하천유역에 거주하고, 부근에 있는 토지에서 주요작물인 밭벼를 화전경작한다. 친족은 쌍계적(雙系的)이고, 집단에 귀속되는 것을 결혼 뒤의 주거로 결정하는 등 공통되는 면도 많다. 주요한 부족은 다음과 같다. 보르네오섬 남부의 카하얀강 유역에 산다. 정확한 인구통계는 없으나 십 몇 만으로 추정되며, 화전농경·하천어업을 한다. 문신을 하며 목공예가 발달했고 광주리·토기 제작, 직물 제조 등도 행해진다. 사회계층은 자유민과 노예로 구분하는 정도이고, 카하링간이라 불리는 애니미즘적인 종교를 믿으며, 장례는 시체를 일단 나무관에 담아 시렁에 걸어 수년동안 방치해 둔 뒤, 두개골을 꺼내서 나무로 만든 안치소에 두는 2차장례를 치른다. 보르네오섬 남부의 파타이강 유역을 중심으로 3만 5000명 정도가 산다.


10.동예(東濊)


오늘날의 원산(元山)·안변(安邊)일대에서부터 경상북도 영덕(盈德)에 이르는 동해안지역과 강원도 북부지방에 거주하였던 고대 종족.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에 의하면 인구는 2만여 호에 혼인·장례 등의 풍속과 언어가 고구려와 비슷하였다고 한다. 동예지역은 처음 위만조선에 복속되어 있었으나, 그 후 위만조선이 멸망하자 임둔군에 속하게 되었고, BC 75년에는 낙랑군 동부도위(東部都尉)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그리고 대략 2세기 후반 동예의 읍락들은 고구려의 세력하에 복속되었다. 고구려의 동예지역 읍락에 대한 지배는, 읍락내의 일은 족장으로 하여금 자치적으로 영위하게 하고, 족장을 통하여 공납을 징수하는 간접적인 지배방식을 취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2세기 후반에서 3세기 전반에 걸친 시기의 동예의 사회상을 보면 읍락은 산과 내를 경계로 하여 구역이 나뉘어 있어 함부로 다른 구역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이를 어겼을 경우 노예와 소나 말로 보상하게 하였는데, 이를 일컬어 <책화(責禍)>라 하였다. 또 같은 성(姓)끼리는 결혼하지 않는 족외혼(族外婚)의 풍속이 있었으며, 살인자는 죽였고, 도적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10월에는 하늘에 제사지내고 밤낮으로 마시고 춤추고 노래부르며 즐겼는데, 이 축제를 <무천(舞天)>이라 하였다.


11.라트비아인(-人 Latvian) 


발트어파 내의 동(東)발트어에 속하는 라트비아어를 모어(母語)로 하는 민족. 2000년 현재 라트비아에 약 136만 1920명이 살며, 레트인이라고도 한다. 4개의 부족인 라트갈리·셀리·젬갈리·쿠르시의 자손으로서, 그 거주지역은 지금도 4개의 문화권을 이루고 있다. 모어인 라트비아어는 리가를 중심으로 사용되는 우세한 중앙방언(中央方言), 동부에서 사용되는 상부(上部)방언, 북서부에서 사용되는 리보니아방언 등으로 나뉜다. 라트비아의 역사 가운데 13세기 이후 게르만족의 리보니아 기사단과 스칸디나비아의 지배가 길어 문화적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종교는 루터파가 우세하다. 이러한 문화·종교적 전통에 있어서 라트비아인은 오히려 핀계(系)의 에스토니아인에 가깝다. 그러나 리투아니아어적 요소를 가졌으며 라트비아어방언을 사용하는 라트갈리아족만은 폴란드의 영향 아래에서 전통적으로 가톨릭교도이다. 제1차·제2차세계대전을 통해 독립을 달성했지만, 1940년에 소련내의 라트비아공화국이 되었다가 1991년 소비에트연방 해체와 함께 독립했다. 전쟁중에 많은 인구가 미국·캐나다 등으로 망명하였으며, 전통적인 생업은 농경·어업·양봉이다. 19세기 중엽까지 부유농가에 대가족이 존재했지만 기본적인 가족형태는 핵가족이다.


12.라프족(Lapp)


스칸디나비아반도 북부에서 핀란드 북부, 러시아연방의 콜라반도에 걸쳐서 거주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사미(Sami)라고 부른다. 정확한 인구는 알 수 없지만 노르웨이에 약 2만 500명, 스웨덴에 약 1만 7000명, 핀란드에 약 6000명, 러시아연방에 약 2000명 등 전체 5만~7만명 정도로 추정한다. 그들의 조상은 볼가강 유역에서 서진(西進)했고, BC 1000년경 핀인(人)과 에스토니아인으로 나뉘어서 북진하여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현재의 핀란드 전역에 걸친 지역에 분산되었다고 한다. 그 후 AD 100년경부터 핀인·스웨덴인·노르웨이인 등의 북상(北上)으로 인하여 그들의 지배를 받게 됨과 동시에, 핀란드에서는 19세기까지 북변(北邊)을 제외하고는 전 지역에서 핀인에 동화되거나 아니면 쫓겨나고 말았다. 라프족은 스칸디나비아에 이주해 온 당시부터 수렵과 어업을 주요 생업으로 삼아왔으나, 거주지역의 차이 때문에 산악라프·삼림라프·해안라프 등 3개의 그룹으로 크게 나뉜다. 산악라프는 내륙 산악지대에 거주하며, 소수의 순록(토나카이)을 썰매 견인용으로 기르면서 수렵을 주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었다. 삼림라프는 노르웨이, 핀란드 북부, 콜라반도의 삼림지대에 거주하며, 역시 수렵을 주생업으로 하고 있었다.


13.마사이족(Masai) 


아프리카 케냐의 중앙 고지대에서 탄자니아 중부 평원에 걸쳐 살고 있는 목축민. 인구는 케냐에 45만, 탄자니아에 29만(1997) 이상이 살며, 파라나일계 마사이어를 사용한다. 17∼18세기에 나일강 상류에서 남하해온 것으로 보인다. 케냐와 탄자니아의 도시이름 중에는 마사이어에 기원을 둔 것이 있다. 마사이족은 인접지역에 있는 종족을 자주 습격하여 동아프리카 일원에서는 공포의 대상이 되어왔으며, 인근지역 종족들과의 빈번한 접촉으로 공통적인 관습과 제도 및 혼혈인이 많다. 마사이족은 단일부족이 아닌 10여 개 집단으로 나뉘어 있으며 마사이족과 가까운 혈연인 민족도 많다. 마사이족은 거의 반정주(半定住) 생활을 하며 3∼4년마다 이동한다. 건기에는 물이 있는 먼 곳까지 가축을 이끌고 가며, 거기에서 일시적인 캠프생활을 한다. 그들의 사회는 민주적이고 평등하며, 정치적인 조정은 연령조(組)와 연령계제(階梯)를 짜맞춘 연령집단체계에 의하여 행해진다. 외혼적(外婚的) 부계씨족(父系氏族)이며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이다.


14.마오리족(Maori) 


뉴질랜드 원주민. 인종적·문화적으로 폴리네시아계(系)에 속한다. 고고학 조사에 의하면, 쿡제도 또는 소시에테제도로부터 왔다고 추정되는데, 마르키즈제도에서 왔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고 있다. 뉴질랜드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000년대 끝무렵으로, 그때부터 14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주로 수렵·채집 생활을 하며 살아왔다. 그 뒤 북도(北島)에서는 그때까지 극히 미비하던 농업이 주요 생업이 되었고, 또 오늘날까지 이어진 마오리족 특유의 나선(螺線)무늬 미술양식도 생겨났다. 전설에 의하면 이 시기에 여러 척의 카누를 타고 대이주를 했다고 하며, 오늘날에도 사회조직의 기원에 관해서는 이 전설이 중요시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고고학적으로는 이 시기 이전과 이후의 문화 사이에 뚜렷한 단절이 나타나지 않는다. 열대 폴리네시아에서 들어온 얌감자·타로감자·고구마·호리병박의 4가지 작물 중에서도 온대기후에 가장 적합한 고구마를 주요작물로 하고, 인구의 대부분은 북도에서 화전경작에 종사하며, 주변에 울타리를 두른 <파>라는 요새 같은 촌락에 살고 있다. 사회는 최초의 이주자를 조상으로 받드는 사람들의 집단인 부족과 토지 소유 단위로서의 부족, 그리고 그 하위 세대들로 각각 나누어져 있는데, 부족을 초월한 정치통합이 이루어진 적은 없이 늘 전쟁상태에 있다.


15.말레이인(Malay) 


말레이열도를 중심으로 그 부근의 섬에 사는 민족의 총칭. 말레이시아연방의 공식적인 인식으로는 이슬람교를 믿고 말레이어로 말하며 말레이관습에 따라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말레이반도·리아우·링가군도(群島)·수마트라지역에 집중해 있으며, 또한 보르네오·자바 등의 여러 지역, 특히 연안지대에 넓게 분포하는 이른바 <연안부 말레이인>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말레이인은 예로부터 항해·교역에 활약했고, 공통어인 말레이어와 이슬람교 보급에 밀접하게 관여했다. 연안부 말레이인은 문화적·인종적으로 동질이라고는 보지 않으나 자바인·마카사르인 등 인도네시아 이외의 주민을 비롯해 아랍인·인도인 등 다양한 문화적·인종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 또한 말레이인에 대한 넓은 의미의 해석은 학술상 문화적·신체적 특징을 기준으로 해서 원(原)말레이인

(舊말레이인 또는 古말레이인;Proto-Malays)과 속성(續成)말레이인(제2차말레이인 또는 新말레이인;Deutero-Malays)의 두 대범주를 설정하고, 오늘날 동남아시아 여러 섬 대부분의 토착민을 분류한다. 예를 들면 수마트라의 바타크족, 보르네오의 다야크족, 셀레베스의 토라자족은 전자, 좁은 뜻의 말레이인·자바인 등은 후자에 속한다.


16.맨던족(Mandan) 


수어(語)를 쓰는 북아메리칸인디언의 한 부족. 미주리강 유역에서 반정주식(半定住式) 촌락생활을 하였다. 옥수수·콩·호박 등을 재배하고 들소사냥을 하며, 세련된 토기·직물제작으로 유명하다. 종교생활은 태양춤·오키파축제를 정점으로 하여 조직되었고, 주물(呪物)신앙과 곰의 제사 등도 행해졌다. 각 마을에는 전투추장·평화추장·촌장 등이 있었고 나이별로 조직된 전사(戰士) 집단이 있었다. 1750년까지는 9개 마을이 있었으나 1970년대에는 노스다코타주 인디언 보호구역에 350명이 거주하였다.


17.먀오족(苗族) 


중국 남부 구이저우성[貴州省(귀주성)]을 중심으로 거주하는 소수민족. <먀오[苗(묘)]>는 예로부터 중국인이 남쪽 미개민족에게 붙여 온 명칭의 하나로 처음에는 타이족·롤로족 등 다른 종족도 포함되었다. 먀오족의 역사와 민족이동 경로는 분명하지 않으나, 옛날에는 양쯔강[揚子江(양자강)] 이북에서 한(漢)민족의 진출에 대항하였고, 점차 정복·추방되어 남하하였으며, 그 사이에 많은 소(小)부족으로 갈라지고 주변에 있는 롤로족이나 타이족과 교차되어 오늘에 이른 것으로 보여 진다. 먀오족은 헤이먀오[黑苗(흑묘)]·바이먀오[白苗(백묘)]·칭먀오[靑苗(청묘)]·훙먀오[紅苗(홍묘)]·화먀오[花苗(화묘)]의 5종족으로 나누어지며, 복장의 색깔에 의하여 구별하고 있다. 헤이먀오는 구이저우성의 동부에, 바이먀오·칭먀오는 중부에, 훙먀오는 구이저우성 동쪽의 퉁런[銅仁(동인)]을 중심으로 거주하며, 화먀오는 구이양[貴陽(귀양)] 방면에 거주한다. 먀오족의 언어는 여러가지 방언으로 갈라졌고 외래어의 영향도 받았다. 일부일처(一夫一妻)의 가족 외에 외혼제(外婚制)의 부계친족집단이 있고, 혼인할 때는 남자측에서 여자측에 혼인자금을 지불한다. 정령을 믿으며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마을에는 무사(巫師)가 있어 장례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18.모시족(Mossi) 


부르키나파소(옛 오트볼타)에서 살고 있는 니제르 코르도판어계(語系)의 모레다그반어를 사용하는 농업경작민. 단일민족 집단으로는 국내에서 제일 크고, 예로부터 왕국을 만들어서 살아오고 있다. 구두전승(口頭傳承)이 많으며, 뚜렷했던 수장(首長)의 역사전승을 지니고 있는 것은 <벤다>라 하는 특수한 부계(父系) 혈연집단의 고사(古事)를 전해오던 씨족이면서 악사(樂師)이다. 그들은 거대한 호리병박으로 만든 북을 치면서 낭송(朗誦)을 한다. 그들의 토지는 건조하고 척박하기 때문에 조금씩밖에 농업경작을 하지 않는데, 교역은 15세기 이전부터 성행되었고, 북아프리카와 남쪽 삼림지역의 여러 민족과 연결되어 왔다. 수장은 시장거래에서 과세를 할 수가 있었으므로 교역은 정치적으로도 중요하였다. 그들 중 상인은 16세기에 정주(定住)한 야루세족이라 하는 만데어계(語系)의 이슬람교도이며, 그들에 의해 모시족에게 이슬람교가 널리 퍼졌다. 결혼은 씨족간의 교환형태로 진행되는 것이 보통인데, 태어난 맏이는 수장에게 바치는 제도도 있다.


19.동예(東濊) 


오늘날의 원산(元山)·안변(安邊)일대에서부터 경상북도 영덕(盈德)에 이르는 동해안지역과 강원도 북부지방에 거주하였던 고대 종족.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에 의하면 인구는 2만여 호에 혼인·장례 등의 풍속과 언어가 고구려와 비슷하였다고 한다. 동예지역은 처음 위만조선에 복속되어 있었으나, 그 후 위만조선이 멸망하자 임둔군에 속하게 되었고, BC 75년에는 낙랑군 동부도위(東部都尉)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그리고 대략 2세기 후반 동예의 읍락들은 고구려의 세력하에 복속되었다. 고구려의 동예지역 읍락에 대한 지배는, 읍락내의 일은 족장으로 하여금 자치적으로 영위하게 하고, 족장을 통하여 공납을 징수하는 간접적인 지배방식을 취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2세기 후반에서 3세기 전반에 걸친 시기의 동예의 사회상을 보면 읍락은 산과 내를 경계로 하여 구역이 나뉘어 있어 함부로 다른 구역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이를 어겼을 경우 노예와 소나 말로 보상하게 하였는데, 이를 일컬어 <책화(責禍)>라 하였다. 또 같은 성(姓)끼리는 결혼하지 않는 족외혼(族外婚)의 풍속이 있었으며, 살인자는 죽였고, 도적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10월에는 하늘에 제사지내고 밤낮으로 마시고 춤추고 노래부르며 즐겼는데, 이 축제를 <무천(舞天)>이라 하였다.


20.라트비아인(Latvian) 


발트어파 내의 동(東)발트어에 속하는 라트비아어를 모어(母語)로 하는 민족. 2000년 현재 라트비아에 약 136만 1920명이 살며, 레트인이라고도 한다. 4개의 부족인 라트갈리·셀리·젬갈리·쿠르시의 자손으로서, 그 거주지역은 지금도 4개의 문화권을 이루고 있다. 모어인 라트비아어는 리가를 중심으로 사용되는 우세한 중앙방언(中央方言), 동부에서 사용되는 상부(上部)방언, 북서부에서 사용되는 리보니아방언 등으로 나뉜다. 라트비아의 역사 가운데 13세기 이후 게르만족의 리보니아 기사단과 스칸디나비아의 지배가 길어 문화적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종교는 루터파가 우세하다. 이러한 문화·종교적 전통에 있어서 라트비아인은 오히려 핀계(系)의 에스토니아인에 가깝다. 그러나 리투아니아어적 요소를 가졌으며 라트비아어방언을 사용하는 라트갈리아족만은 폴란드의 영향 아래에서 전통적으로 가톨릭교도이다. 제1차·제2차세계대전을 통해 독립을 달성했지만, 1940년에 소련내의 라트비아공화국이 되었다가 1991년 소비에트연방 해체와 함께 독립했다. 전쟁중에 많은 인구가 미국·캐나다 등으로 망명하였으며, 전통적인 생업은 농경·어업·양봉이다. 19세기 중엽까지 부유농가에 대가족이 존재했지만 기본적인 가족형태는 핵가족이다.


21.라프족(Lapp)


스칸디나비아반도 북부에서 핀란드 북부, 러시아연방의 콜라반도에 걸쳐서 거주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사미(Sami)라고 부른다. 정확한 인구는 알 수 없지만 노르웨이에 약 2만 500명, 스웨덴에 약 1만 7000명, 핀란드에 약 6000명, 러시아연방에 약 2000명 등 전체 5만~7만명 정도로 추정한다. 그들의 조상은 볼가강 유역에서 서진(西進)했고, BC 1000년경 핀인(人)과 에스토니아인으로 나뉘어서 북진하여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현재의 핀란드 전역에 걸친 지역에 분산되었다고 한다. 그 후 AD 100년경부터 핀인·스웨덴인·노르웨이인 등의 북상(北上)으로 인하여 그들의 지배를 받게 됨과 동시에, 핀란드에서는 19세기까지 북변(北邊)을 제외하고는 전 지역에서 핀인에 동화되거나 아니면 쫓겨나고 말았다. 라프족은 스칸디나비아에 이주해 온 당시부터 수렵과 어업을 주요 생업으로 삼아왔으나, 거주지역의 차이 때문에 산악라프·삼림라프·해안라프 등 3개의 그룹으로 크게 나뉜다. 산악라프는 내륙 산악지대에 거주하며, 소수의 순록(토나카이)을 썰매 견인용으로 기르면서 수렵을 주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었다. 삼림라프는 노르웨이, 핀란드 북부, 콜라반도의 삼림지대에 거주하며, 역시 수렵을 주생업으로 하고 있었다.


22.마사이족(Masai) 


아프리카 케냐의 중앙 고지대에서 탄자니아 중부 평원에 걸쳐 살고 있는 목축민. 인구는 케냐에 45만, 탄자니아에 29만(1997) 이상이 살며, 파라나일계 마사이어를 사용한다. 17∼18세기에 나일강 상류에서 남하해온 것으로 보인다. 케냐와 탄자니아의 도시이름 중에는 마사이어에 기원을 둔 것이 있다. 마사이족은 인접지역에 있는 종족을 자주 습격하여 동아프리카 일원에서는 공포의 대상이 되어왔으며, 인근지역 종족들과의 빈번한 접촉으로 공통적인 관습과 제도 및 혼혈인이 많다. 마사이족은 단일부족이 아닌 10여 개 집단으로 나뉘어 있으며 마사이족과 가까운 혈연인 민족도 많다. 마사이족은 거의 반정주(半定住) 생활을 하며 3∼4년마다 이동한다. 건기에는 물이 있는 먼 곳까지 가축을 이끌고 가며, 거기에서 일시적인 캠프생활을 한다. 그들의 사회는 민주적이고 평등하며, 정치적인 조정은 연령조(組)와 연령계제(階梯)를 짜맞춘 연령집단체계에 의하여 행해진다. 외혼적(外婚的) 부계씨족(父系氏族)이며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이다.


23.마오리족(Maori) 


뉴질랜드 원주민. 인종적·문화적으로 폴리네시아계(系)에 속한다. 고고학 조사에 의하면, 쿡제도 또는 소시에테제도로부터 왔다고 추정되는데, 마르키즈제도에서 왔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고 있다. 뉴질랜드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000년대 끝무렵으로, 그때부터 14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주로 수렵·채집 생활을 하며 살아왔다. 그 뒤 북도(北島)에서는 그때까지 극히 미비하던 농업이 주요 생업이 되었고, 또 오늘날까지 이어진 마오리족 특유의 나선(螺線)무늬 미술양식도 생겨났다. 전설에 의하면 이 시기에 여러 척의 카누를 타고 대이주를 했다고 하며, 오늘날에도 사회조직의 기원에 관해서는 이 전설이 중요시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고고학적으로는 이 시기 이전과 이후의 문화 사이에 뚜렷한 단절이 나타나지 않는다. 열대 폴리네시아에서 들어온 얌감자·타로감자·고구마·호리병박의 4가지 작물 중에서도 온대기후에 가장 적합한 고구마를 주요작물로 하고, 인구의 대부분은 북도에서 화전경작에 종사하며, 주변에 울타리를 두른 <파>라는 요새 같은 촌락에 살고 있다. 사회는 최초의 이주자를 조상으로 받드는 사람들의 집단인 부족과 토지 소유 단위로서의 부족, 그리고 그 하위 세대들로 각각 나누어져 있는데, 부족을 초월한 정치통합이 이루어진 적은 없이 늘 전쟁상태에 있다.


24.반투계제족(Bantu) 


아프리카에서 가장 넓은 지역, 즉 서쪽은 카메룬에서 동쪽은 케냐까지, 남쪽은 코이산어(부시먼어 등)를 말하는 사람들의 지역을 제외한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의 넓은 영역에서 사용되는 반투어를 말하는 사람들의 그룹. 반투어로 <사람들>을 의미하는 말은 거의 공통적으로 bantu(단수는 muntu)이며, 이 점에 인상을 받은 백인들에 의해서 <인종> 또는 <종족>을 나타내기 위하여 언어상의 한 특징으로 선택된 것이다. 그러나 인종(생물학적 신체특징에 의한 분류)과 언어 및 문화는 꼭 정확하게 겹쳐진다고만은 할 수 없으므로, <반투인>이라는 인종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언어학적으로는 <반투어>라는 범주도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관용적으로는 인류학에서도 <반투계>란 용어는 빈번히 사용된다. 반투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기원은 카메룬 또는 자이르 북서부로 생각되며, 기원 100∼200년 전후에는 이미 동쪽과 남쪽으로 이동을 개시하였다고 추정된다. 그 때문에 이 광대한 지역에 현재보다 훨씬 많이 거주하였다고 생각되는 피그미와 부시먼이 점차로 살 장소를 한정당해갔다. 700∼800년 무렵 남아프리카에까지 다다른 것은 세계사 민족이동사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속도이다.


25.본토크족(Bontok) 


필리핀 루손섬 북부에 가로놓인 센트럴 코르디리엘라산맥의 중앙부(마운틴주)에 거주하는 프로토 말레이계(系) 민족. 본토크란 마운틴주 일대에 거주하는 산지민(山地民)을 가리키며 가톨릭교도화한 평지민으로부터는 다른 주변 여러 부족들과 함께 <산사람들>을 뜻하는 <이고로트>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웃한 여러 부족과 문화적 차이는 별로 없지만 둥근 모자를 후두부에 얹는 일, 할례(割禮)를 하는 것, 낫모양의 큰 칼보다는 손도끼 사용을 즐기는 것 등이 특징이다. 생업은 벼농사가 중심이며 그 밖에 고구마·바나나·옥수수 등도 재배한다. 친족관계는 쌍계적(雙系的)이며, <이리>라고 하는 취락이 지연집단으로서 하나의 조직을 이루고 있다. 탁월한 정치적·사회적 지도자는 없고 취락 안에서 생긴 일, 다른 취락과의 싸움이나 화해의 결정, 의례와 제사에 관한 것 등은 관습법에 따라 장로들의 합의제(合議制)에 의해서 처리된다. 각 취락 내에는 <아투>라는 집회장이 몇 개 있는데 이곳에서 제사나 회의가 행해진다. 또 <아투>는 7세 이상의 미혼남성의 숙박소로도 사용되고, 여성은 들어갈 수 없다. 젊은이들은 이곳에서 연장자로부터 관습이나 예의를 배운다. 종교는 조상의 혼령이나 여러 신격(神格)·정령(精靈) 신앙이 중심이며, 가톨릭 문화의 영향을 확대시키고 있는 현재에도 각종 치병의례(治病儀禮)와 농경의례가 행해지고 있다.


26.부기스족(Bugis) 


인도네시아 셀레베스섬 남부에 사는 말레이계 민족. 부기스어(語)를 모어로 한다. 마카사르족과 함께 해양민으로 알려졌으나 마카사르족보다는 반농반어적(半農半漁的)이며 논농사나 화전농사를 하면서 섬 내부로도 퍼졌다. 14세기에 보네왕국을 세우고 17세기에 네덜란드와 결탁하여 마카사르족 고아왕국을 격파하고 남셀레베스를 정복했으나 1905년 이후 네덜란드 지배를 받았다. 문화적으로 마카사르족과 거의 동일하며, 17세기 초 이슬람교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힌두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마을은 벵골보리수 광장을 중심으로 높은 마루로 된 집이 반원형으로 늘어서 있다. 벵골보리수 아래에서 마을 시조에게 제사하는 의례가 거행되었다. 산스크리트에서 유래된 독자적인 문자를 사용하며, 지배자의 선조를 신으로 숭배하였으나 현재는 이 신앙도 이슬람적 해석을 취하고 있다. 현재 부기스와 마카사르족의 90%는 이슬람교도이다.


27.부시먼(Bushman) 


아프리카 남부의 칼라하리사막에 사는 채집수렵민족. 산(San)족이라고도 한다. 인구 약 5만 2000(1997). 호텐토트와 함께 코이산어족에 속하고, 그 언어는 흡타음음운(吸打音音韻)을 자주 사용하는 특징이 있다. 평균신장은 남자가 약 155㎝, 두발은 축모(縮毛), 황갈색의 피부, 돌출한 광대뼈를 갖는 등 몽골로이드적 특질을 가지고 있다. 혈청학적으로는 니그로에 가깝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주민이다. 부시먼은 남아프리카에 넓게 분포하였는데, 백인과 반투족의 압박으로 대부분은 멸종되고 현재는 칼라하리사막에만 잔존한다. 남자는 수렵, 여자는 식물채집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 수렵은 기린·영양·여우 등을 활과 덫을 이용하여 잡는다. 친족관계에 기본을 둔 몇 가족단위의 집단이 끊임없이 이합집산을 반복하면서 물·음식물을 찾아 이동한다.


28.사우드가(Sa'?d) 


15세기 중엽 페르시아만 연안 알하사지방에서 내륙부 네지드지방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아나자 부족의 갈래인 바니우토브족 중 한 족속. 이 일족의 선조인 마니 알 무하마디의 8대 후손인 사우드가 이 왕가의 시조이다. 18세기 중엽 이 시조의 장남 무하마드(初代首長) 시대에 사우드가는 급격히 그 세력을 확장하여 한때 그 판도가 북쪽은 알레포, 남쪽은 아라비아해에 이르렀다. 그 원동력이 된 것은, 당시 코란으로의 복귀에 의한 이슬람의 순화(純化)와 청교도적 종교계율을 주창한 신학자 모하메드 이븐 압둘 와하브와 무하마 사이에 맺은 이른바 <검(劍)과 종교>의 맹약(盟約)이었다. 그러나 1818년 제1차 사우드왕국(1740∼1818)의 수도 다리야는 그 세력확대를 두려워한 메메트 알리가 이끄는 이집트원정군의 맹공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2차 사우드왕국(1818∼1902)은 투르키(재위 1824∼34)의 활약으로 부흥하지만, 반도 중앙의 샴마르족 라시드가와의 극렬한 항쟁과 함께 왕실 안의 내분으로 1892년 왕족은 수도 리야드를 떠나 쿠웨이트의 수장 무바라크에게 몸을 의탁했다. 1902년 압둘 아지즈 2세(이븐사우드)는 그 즈음 라시드가의 지배 아래에 있던 리야드를 기습, 탈환하여 제3차 사우드왕국(1902∼)이 재흥되었다.


29.산탈족(antal) 


동인도 최대 부족. 인구 약 598만(1997). 비하르주 동부를 중심으로 오리사주·서벵골주의 3주에 거주하고 있다. 언어는 문다어계이고, 이동 잡곡재배·채집수렵민이었다고 하는데, 자작농은 적고 계절적 농업노동자와 반농의 광산노동자가 많다. 각 촌락에는 세습적 촌장과 제사담당자가 있고, 파르가나의 전 구성원이 수렵을 목적으로 모여서 최고 결정기능을 가진 모임을 갖고 있으나, 오늘날에는 사냥감이 줄어 모임이 드물다. 종교적인 행사에서는 병마쫓기와 기우제를 정기적으로 행하는 특징이 있는데, 촌장 등의 조상숭배도 있다. 19세기 중엽에 일어난 영국에 대한 반란 이후 힌두화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30.소말리족(Somali) 


쿠시트계(系) 유목민.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하는 소말리반도, 지부티에서부터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케냐의 타나강 북쪽 연안까지 거주한다. 인구는 200만 명 또는 400만 명이라고 하며 그 중 소말리아영내에 약 3/4이 거주한 다. 이들은 7세기부터 이슬람교도였다고 한다. 소말리라고 하는 총칭 아래에 많은 하위그룹이 포함되며 신체적·언어적으로 큰 차이를 볼 수 있다. 대부분은 9∼13세기에 아라비아반도에서 온 추장 밑에서 개종하였는데, 이것이 이삭·다 로드라고 하는 그룹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주혼혈(移住混血) 중에서 남부의 하미이 에·라한웨인이라는 그룹이 생겨났다. 생업의 중심은 낙타(양·염소·소를 사육하는 경우도 있다) 유목이고, 유목민의 대부분은 소년으로 약 7세부터 목동이 된다. 순회코란학교에서 공부 하는 소년은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뿐이다. 부 계(父系)의 친족관계는 자녀들의 기억에 새겨 지며 목초지와 우물의 융통은 부계친족의 계통 을 통해 이루어진다.


31.스키타이(Scythian) 


유라시아 내륙의 광대한 초원지대에서 활동했던 세계 최초의 기마유목민. 이란계 언어를 쓰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그리스인은 스키타이, 페르시아인은 사카라고 불러 왔지만 그들은 고유 문자를 갖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 스스로를 어떻게 불렀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또 스키타이는 흑해 북쪽 기슭 일대의 여러 유목민 전체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생활양식·문화에 관해서는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의한 것이 많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의하면 스키타이는 예로부터 흑해 북쪽 기슭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스키타이는 아시아의 유목민으로 BC 8∼BC 7세기에 동방에서 서쪽으로 진출, 볼가강가에 출현하여 원주민 킴메르인을 내쫓고, 남러시아 초원에 강대한 스키타이국가를 건설했다. 그리고 BC 4세기에는 돈강 동쪽에서 온 사르마트인의 공격을 받아, 북카프카스의 쿠반지방을 포기하고 본거지를 서쪽으로 옮겼다. 스키타이의 세력권은 크림반도와 드네프르강·돈강 하류지역 등 흑해 북쪽 기슭 일대를 포함하여, 서쪽으로는 다뉴브강 남부, 동쪽으로는 카프카스지방을 넘어 소아시아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BC 3세기 중엽에는 사르마트의 압박을 받아 세력을 잃었다.


32.시노티베트계제족(Sino-Tibetan) 


한어(漢語)·타이어, 티베트버마어 등 여러 언어가 같은 계통에 속한다는 가설하에 설정된 여러 민족. 인도차이나계제족이라고도 한다. 중국으로부터 동남아시아 대륙부, 티베트, 네팔에 걸쳐 널리 분포한다. 일반적으로 시노타이어파(語派)와 티베트버마어파로 대별되나, 타이 제어(諸語)를 리어(語) 등과 함께 타이카다이어족으로 하고, 오스트로아시아어족과 연관시키려는 시도도 있으며, 타이 제어의 계통 귀속에 새로운 문제가 추가되고 있다. 이 밖에도 먀오야오어군과 카렌어군을 시노티베트어족에 포함시킨다는 입장도 있다. 시노티베트어족이 분포하는 지역의 자연환경이나 생태계는 다양하다. 즉 티베트고원으로부터 준험한 고원·산악지대가 중국대륙 동부, 인도차이나반도에 걸쳐 이어지고 그 협곡 사이를 브라마푸트라·살윈·이라와디·메콩·양쯔강[揚子江(양자강)] 등의 큰 하천이 흐르고, 각지에 크고 작은 여러 하곡분지나 충적평야를 이루면서, 해안부에 이르러 삼각주지역을 형성한다. 이러한 지리조건하에서 시노티베트계 제족은 복잡하게 교차하면서 저마다의 지방에서 다채로운 역사를 전개해 왔던 것이며, 사회통합의 규모나 생업형태도 여러 가지이다. 먼저, 티베트버마어파에 속하는 민족에는 티베트족·창족·푸미족·두룽족·누족·이(롤로)족·리수족·나시족·하니족·라후족·아창족·페족·징포(카친)족·버마족, 나가 제족, 친 제족 등이 있다.


33.실루크족(Shiluk) 


수단 남부, 나일강유역의 말라칼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 사는 부족. 나일로트계의 부족이며, 언어는 나일사하라어계이다. 남자의 평균신장은 180㎝이며, 여자도 비교적 키가 크다. 100여 개 이상의 부계혈통집단이 왕권에 의하여 통합되어 있다. 옥수수·보리·밀을 경작하며, 소를 사육한다. 소는 중요한 재산이며, 선물과 벌금은 소로 지불된다. 그 밖에 고기잡이와 사냥도 한다. 16세기에 전설적 영웅 니캉이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왕국을 세웠으며, 오늘날에도 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왕은 니캉의 화신으로, 단순한 통치자가 아니라 신성불가침의 존재이다. 왕이 병에 걸리면 소·농작물 및 부족도 병에 걸리게 된다고 하여, 왕을 죽임으로써 재해(災害)를 방지하였다고 한다.


34.아랍인(Arabs) 


원래 아라비아반도에 살았고 뒤에 중동지역에 널리 진출한 사람들. 아랍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구약성서》이다. <창세기> 제10장에 아라비아반도에 사는 사람들과 아라비아의 토지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아랍>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지만 뒤에 아랍이라고 불리게 된 사람들과 그들이 살고 있던 지역에 대한 기록이다. <아랍>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사용된 것은 BC 853년 아시리아의 비문에서이다. 샬마네세르 3세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왕자들에게 <아랍>의 긴디브라는 사람이 낙타 1000마리를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BC 6세기 무렵까지의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비문에는 <아랍>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 <아랍>은 아라비아반도 북부의 시리아사막에 사는 유목민을 가리키는 것이라 추정된다. 그 아랍인이 자신들을 가리켜 <아랍>이라는 말을 사용한 기록은, 북아라비아에서는 북아랍어로 쓴 나마라의 묘지에 나오는 것이 가장 오래되었고, 남아라비아에서는 고대 비문의 연대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 많은데 기원전 말기에서 기원후 초기의 기록으로 추정된다. 여기에서 <아랍>은 유목민을 가리킨다. 코란에 나오는 <아랍>도 도회사람이 아닌 사람, 사막의 유목민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메카·메디나의 주민은 <아랍>이라 하지 않았다.


35.아메리칸인디언(American Indians) 


남·북아메리카대륙 원주민의 총칭. C.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는 그곳을 인도(印度)라고 오인했다. 그래서 주민을 인디오 또는 인디언이라 부르게 되었다. 현재는 인도인과 구별하기 위하여 아메리칸 인디언이라 하며 좁은 뜻으로 중·남아메리칸 인디언을 인디오라 하기도 한다. 북극지방의 에스키모·알레우트족(알류샨열도 주민) 등은 아메리칸 인디언에 포함시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아메리카대륙에는 유인원(類人猿)이 살지 않으며 화석인류 유구도 발견된 일이 없다. 따라서 인류는 다른 대륙으로부터 이동하여 왔을 것으로 생각되며, 그 기원에 대한 여러 학설이 있으나 아메리칸 인디언의 조상은 유라시아대륙에서 베링해협을 건너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시기는 제4빙하기 해퇴(海退)로 인하여 베링해협이 육지로 이어진 시대가 확실하다. 그 연대는 여러 설이 있으므로 분명하지 않으나 2만 5000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아메리카대륙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36.아삼제족


인도 북동부 아삼지방에 거주하는 주민. 미얀마와 접하는 아삼지방에는 여러 민족이 오래 전부터 거주하고 있다. 그 주요 민족을 언어학적으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① 오스트로아시아계: 카시족 ② 티베트버마계: 아카족·다프라족·미리족·아보르족·미슈미족(이상 북아삼군), 가로족·라룽그족·카차리족(이상 보도군), 미키루족·나가족·친족 ③ 타이계: 아홈족·카무티족 ④ 인도유럽계: 아삼족·벵골족이다. 이 가운데 카시족은 중부 인도의 문다족 등과 마찬가지로, 동남아시아에서 인도 북동부에 걸쳐 분포하고 있던 오스트로아시아어족이 그 후 남하한 티베트버마어계 제족(諸族)에 의해 분단되어 독립해서 남겨졌다고 한다. 타이계가 이 지역에 진출해서 아홈왕국을 만든 것은 훨씬 뒤인 13세기이다. 평지에 사는 인도유럽계 주민 중에는 토착원주민족을 흡수한 흔적이 보인다. 그 밖에 마니푸르인이라는 사람들은 원래 티베트버마어계로 18세기에 힌두화했지만 고유언어인 메이테이어를 사용한다. 채집에서 초기 농경으로 옮아가는 단계에 있는 부족의 존재도 보고되어 있지만, 대다수는 농경에 의해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화전(火田)이 대부분이지만, 아홈족·나가족·아삼족은 수도경작을 행하며, 쌀 외에 뿌리채소류·옥수수·담배·고추·잡곡류를 생산한다.


37.아샨티족


아프리카 가나의 중심적인 종족. 인구 약 100만. 북쪽의 세네갈강과 니제르강 사이의 지역에 번영하였던 가나제국(13세기에 멸망)을 구성하고 있었던 종족의 후예라는 설도 있으나 확실한 증거는 없다. 아샨티는 북쪽에서 기니만 연안의 삼림지역까지 진출하여 정착한 농경을 생업으로 삼는 아칸족의 하나이다. 17세기말에는 그때까지의 작은 나라의 분립상태에서 벗어났고 18세기초에는 오세이 투투왕 아래 아칸족의 다른 나라들도 정복하여 일종의 연합왕국을 이루고 왕도(王都) 쿠마시를 중심으로 해안부와 내륙부의 통상(通商) 요충지를 제압하여 힘을 증대시켰다. 왕권 및 왕국의 통일은 하늘에서 내렸다고 하는 <황금의자>로 상징되었다. 신대륙으로의 노예무역 쇠퇴와 함께 세력을 뻗은 영국은 19세기 말 해안부의 판티족에 대한 지배권을 둘러싸고 아샨티왕국과 여러 차례 충돌을 되풀이하다가, 20세기초에는 수도 쿠마시를 점령하고 아샨티 영토를 직할식민지로 만들었다. 이리하여 독립국으로서의 아샨티는 끝을 맺었다. 아샨티의 사회생활의 중심은 아부스아라는 모계친족집단이며 과거에는 국왕이나 수장 선출도 아부스아의 장로(長老) 부인의 조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최성기의 아샨티문화로는 실랍법(失蠟法)으로 만들어진 주조품, 특히 금의 무게를 달기 위한 순금제 분동(分銅)이 유명하다.


38.아이마라족(Aymara) 


남아메리카 페루·볼리비아 두 나라에 사는 원주민 집단. 인구 약 80만. 언어는 아이마라어를 쓴다. 안데스산맥 사이에 끼어 있는 대고원 알티플라노에 살며 티티카카호수 주변에서부터 남쪽으로 볼리비아 남서부의 우유니염원(鹽原)에까지 퍼져 있다. 잉카 이전의 티아와나크 문명을 담당했던 사람의 자손으로 생각되는데 잉카에 정복, 합병되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아이마라어를 쓰는 사람들에게서 케추아어(잉카 공용어)화(化)가 진행되고 있다. 알티플라노는 해발고도 3000m를 넘는 춥고 건조한 지대로 생업은 감자 등 내한성 작물 경작이 중심이며 감자의 동결건조라는 뛰어난 저장방법을 발명하였다. 라마·알파카를 사육하여 모직물을 만드는 것도 중요 산업이다. 종교상으로는 파차마마라는 대지모신(大地母神)에 대한 신앙이 깊다.


39.아파치족(Apache) 


미국 애리조나·뉴멕시코·오클라호마주에 사는 인디언 부족. 제로니모의 인솔하에 백인의 침략에 저항하여 용감하게 싸웠다. 언어는 아사바스칸어족이다. 주위의 영향을 받아 농경도 하지만, 원래는 수렵민이다. 부족 전체를 통일하는 큰 정치조직은 없고, 수렵조직인 결합체만 존재했다. 보호지역에 살게 된 오늘날의 아파치족은 전체적으로 가난한 생활 속에서 급속한 문화변동을 겪고 있다.


40.야오족 


중국 남부의 산지에 주로 거주하는 소수민족. 인구 231만(1997). 중국에서는 광시좡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광서장족자치구)]와광둥[廣東(광동)]·후난[湖南(호남)]·윈난[雲南(운남)]·구이저우[貴州(귀주)]의 각 성과, 인도차이나반도 북부에 걸쳐서 살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만족이라 한다. 광시좡족자치구에는 야오족 전체의 67%가 살고 있다. 야오어는 시노티베트어족 먀오야오어군에 속하며 방언이 아주 많다. 야오족은 산지에서 화전경작을 하는 부족사회이며, 소집단이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사는 것이 특징이다. 정치적 단위인 촌락은 조상제사, 족외혼제를 특색으로 하는 부계친족집단이다. 야오족은 송(宋)나라의 《계만총소(溪蠻叢笑)》에서 산야오라 했듯이 산에서만 사는 민족이며, 야오족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는 한자체(漢字體) 문서류를 가지고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해 왔다.


41.야쿠트족(Yakut) 


러시아연방 동시베리아의 사하공화국 원주민. 인구 36만(1997). 동시베리아에서 부랴트족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민족이며 사하(caxa, saha)족이라고도 한다. 야쿠트라는 이름은 퉁구스어계 민족의 통칭으로 알타이어족 투르크어군에 속하며, 분포지역은 레나강 중류를 중심으로 동쪽의 콜리마강과 서쪽의 예니세이강까지 광대한 툰드라·삼림지대에 이른다. 인구의 대부분은 수도인 야쿠츠크를 중심으로 한 레나강 중류지역에 집중되어 있고 북쪽에는 다른 민족과 섞여 여기저기 유목 캠프를 형성하고 있다. 야쿠트족의 기원은 남쪽인데, 10~15세기에 걸쳐 지금의 장소로 이동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종적으로는 긴 얼굴에 가는 코를 가진 사람(중앙아시아형)과 넓은 얼굴에 납작한 코를 가진 사람(바이칼형)이 있으며, 대체로 몽골적인 얼굴모양을 하고 있다. 주요 산업은 소·말의 목축이다. 레나강 중류지역의 야쿠트족은 소·말을 기르는 목축민 중에서는 최북단에 살며, 보다 북쪽에 산재하는 야쿠트족은 에벤키족·추크치족과 함께 순록사육에 종사하고 있다. 수렵과 어로가 중요한 생업이며, 특히 가축이 없는 가난한 사람은 어로 중심의 생활을 하고 있다.


42.에스키모(Eskimo) 


북극에 사는 수렵민. 약 9만의 인구가 서쪽으로는 시베리아의 추코트반도에서 동쪽으로는 그린란드에 걸친 고위도지방에 분포되어 있다. 이 분포대는 거의가 삼림한계 이북의 툰드라이며, 에스키모의 선사유적의 분포도 이것과 겹친다. 국적별로 그 인구수를 보면, 러시아연방령에 1200명, 미국령에 3만 4000명, 캐나다령에 1만 8000명, 덴마크령에 4만 1000명이다. <에스키모>라는 말은 남쪽에 인접한 알곤킨계 인디언의 말로 <날고기를 먹는 사람>을 뜻하는 에스키만치크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에스키모인 자신은 스스로를 <인간>을 뜻하는 어간에서 나온 이누이트(캐나다), 이누피아크(북알래스카), 유피크(서남알래스카) 등으로 부르고 있다. 에스키모는 형질적으로는 비교적 균질이며, 아시아-몽골로이드의 특징을 많이 갖추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서사시 《사가》에 의하면, 982년 아이슬란드의 농부 <붉은수염의 에리크>는 살인혐의로 고국을 떠나 그린란드에 도달하여 이 섬의 남서부에 식민하였다. 뒤이어 1003년 토르핀 카를세프니는 빈란드(뉴펀들랜드 지방으로 짐작된다)에서 바이킹이 <스쿨레링>이라고 부르던 원주민을 만나, 그들의 단어를 4개 기록하였는데, 이것이 에스키모어로 해석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43.여진(女眞) 


10세기 초 이후 나타난 퉁구스계 민족. 여직(女直)이라고도 한다. 쑹화강[松花江(송화강)]·무단강[牧丹江(목란강)]·헤이룽강[黑龍江(흑룡강)] 유역과 동만주 해안지방에 살던 종족이다. 10세기 초 요(遼)나라 태조가 발해(渤海)를 멸망시키자 발해의 지배에서 벗어난 말갈족(靺鞨族)을 여진족이라 하였다. 요나라 때 거란의 통치 아래 있던 흑수말갈(黑水靺鞨)은 고려와의 국경인 두만강(豆滿江)유역에서 함경남·북도 지방에 해당되는 지역에 이동하여 살면서 요와 고려에 조공하여 흑수여진·동여진(東女眞)·생여직(生女直)이라 하였으며, 지린성[吉林省(길림성)] 남서부의 여진을 송(宋)나라에서는 숙여직(熟女直), 고려에서는 서여진(西女眞)이라 하였다. 고려 초기에 여진은 고려를 상국(上國)으로 섬겨 여진인들은 활·말·모피 등을 주로 조공하고 의류·식량·농기구·그릇 등 생활필수품을 수입해 갔다. 고려는 이들을 회유하여 귀화인들에게는 가옥과 토지를 주어 살게 하였으며, 추장에게는 무산계(武散階)·향직(鄕職) 등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숙종 때 완안부(完顔部)의 추장 영가(盈歌)가 여진족을 통합하고 북간도(北間島)지방을 장악한 뒤 두만강까지 진출하자, 고려는 별무반(別武班)을 편성하여 1107년(예종 2) 윤관(尹瓘) 등이 함흥평야지역의 여진을 토벌하고 함주(咸州)를 중심으로 9성을 쌓아 그들의 방어에 전력하였다.


44.오스트레일리아원주민(Australian Aborigines)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백인이 들어오기 전부터 살고 있는 사람들. 애버리지니라고도 한다. 오스트랄로이드 인종에 속하며 진한 갈색 피부, 검은색의 완만한 파상모(波狀毛)를 가지며, 수염과 몸털이 많다. 눈구멍은 깊이 패이고, 코끝의 좌우 양쪽 끝부분은 납작하게 누워 있다. 평균신장은 약 170㎝이다. 언어계통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여러 방언으로 나누어져 서로 이해가 불가능한 것도 많은데, 많은 언어에 익숙해져 있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그들의 조상은 최종한랭기(뷔름빙기)의 바닷물 수위가 낮았던 시기, 특히 1만 7000년 전(일찍이는 4만년전) 무렵에 말레이반도, 인도네시아, 뉴기니섬 등을 지나 오스트레일리아대륙 북부에 옮겨와 산 것으로 보인다. 유럽인이 본격적으로 이주해온 18세기 후반에는 인구 약 30만 명, 약 500개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다. 1997년 현재 인구는 약 36만 명으로 추정된다.


45.오스트로네시아계제족(Austronesians) 


오스트로네시아어계 언어를 모어로 하는 여러 종족. 뉴기니섬 대부분과 오스트레일리아를 제외한 오세아니아 전부 및 동남아시아의 타이완·필리핀·인도네시아 등의 여러 섬들, 말레이 반도의 해안부, 또한 멀리 인도양을 지나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섬에 이르는 넓은 영역에 분포해 있다. 사람들의 외관은 다양하나 폴리네시아어나 말레이어·말라가시어 사이의 뚜렷한 유사성은 대항해시대의 항해자들에 의해서 지적되었다. 오스트로네시아어가 쓰이는 지역은 광대하지만 파푸아어·오스트레일리아어 등과 비교해 볼 때 유사성이 강한 언어이다. 이것은 본래의 오스트로네시아어를 썼던 민족이 짧은 시기에 광대한 영역으로 이동, 확산한 결과로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오스트로네시아계 여러 종족은 이 지역의 역사적 재구성을 목표로 하는 선사학(先史學)의 중요한 개념이 되어 있다. 이설(異說)도 있기는 하나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본래 고향은 동남아시아로 여겨진다. 오늘날 이곳에서 이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옛 몽골로이드로 몽골로이드대인종(大人種)에 속하는데, 동아시아계에서 발달한 내안각(內眼角)의 특징은 약하며 피부색도 다른 몽골로이드보다 약간 짙고, 머리카락도 직모(直毛) 외에 파상모(波狀毛)도 있다. 폴리네시아인·미크로네시아인도 형질적인 특징은 이 범위에 들지만 폴리네시아인의 경우에는 전체적으로 체구가 크고, 또 양쪽 모두 머리카락은 파상모이거나 고수머리이다.


46.오스트로아시아계제족(Austroasiatic peoples)


오스트로아시아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모어(母語)로 하는 여러 종족 및 민족집단. 미국의 민족학자 F.M. 르바르에 따르면 동남아시아대륙의 오스트로아시아계제족은 몬크메르족·베트무옹족·세노이세망족 등으로 분류되고, 이것을 다시 세분하면 거의 100여 종에 가까운 종족·민족집단으로 나뉜다. 인종적으로 오스트로아시아계제족의 핵을 이루는 몬크메르족과 베트무옹족 등은 넓은 뜻의 몽골로이드에 들어가지만 변이(變異)가 크다. 세망족 등의 니그리토계, 세노이족 등의 원(原)말레이계, 이 밖에 드라비다계와 베다계 종족도 포함된다. 대체로 몬크메르족은 논농사를 짓는데, 그들 가운데는 인도차이나반도의 바나르·무농족·세당족·로벤족과 같이 산지민족이라 일컬어지는 종족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 산지민족은 베트남에서는 모이, 캄보디아에서는 프농, 라오스와 타이 및 동부 미얀마에서는 카 등으로 일컬어지는데, 이러한 명칭은 미개인을 뜻하는 일종의 경멸적인 호칭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이러한 명칭도 서서히 바뀌기 시작하여 캄보디아에서는 크메르루, 베트남 남부에서는 동바오투옹, 베트남북부에서는 노이킨이라고 하고, 라오스에서는 카족을 푸텡 또는 푸팅, 즉 <고지주민(高地住民)>이라 일컫는다. 몬크메르족은 이른바 몬크메르어족의 중핵(中核)이며, 넓은 뜻의 오스트로아시아어족에 속하는 어족군의 하나이고 이것을 다시 방언(方言)이나 민족적 특징에 따라 구별하면 몬크메르·팔라웅와·카시·버날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47.요루바족(Yoruba)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남서부로부터 베냉·토고 북부에 걸쳐 있는 지역에 거주하는 흑인종족. 인구 2282만 9000(1997). 요루바어를 쓴다. 얌·카사바·옥수수 등을 주요 작물로 하는 농경민으로서, 예로부터 교역활동을 많이 했으며 자패(紫貝)를 화폐로 쓰고 사용했다. 전통적으로 대규모의 도시적 취락을 형성하여 인구의 대부분이 그곳에 사는 독특한 생활양식 때문에 아프리카에서도 특이한 도시거주민으로 알려져 왔다. 요루바 전체가 정치적으로 통일된 적은 없으며, 이페·오요·이제샤·이제부·온도·에키티·에그바 등 13∼14세기에 걸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여러 왕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왕국의 왕은 모두 신화적 시조 오두두와의 자손으로 되어 있는데, 정치조직의 구성은 왕국마다 크게 다르다. 친족조직도 북부가 부계(父系)의 지역집단을 형성하는 데 반해 남부는 쌍계적 경향을 나타내는 차이를 볼 수 있다. 전통적 종교는 직능신(職能神)이나, 자연이 신격화된 인격신에 대한 제사를 중심으로 하는 다신교이며, 오늘날에는 대다수가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로 바꾸어 가고 있다. 20세기 초 옛 도시 이페에서 발견된 청동제 인물상은 13세기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프리카풍에서 벗어난 사실적(寫實的) 작풍과 완성도는 요루바문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48.위구르(Uighur) 


투르크계의 한 민족, 또는 그들이 건국한 나라. 회흘(回紇)·회골·웨이우얼[維吾爾(유오이)]이라고도 한다. 몽골에서 남시베리아에 걸쳐 널리 산재하고 있던 고대 투르크계 유목민족의 하나로, 돌궐(突厥)의 뒤를 이어 744∼840년 몽골에 유목국가를 건설하였다. 초대 회인 칸[懷仁可汗(회인가한)]이 위튀켄산 기슭에 도읍을 정하였고, 제2대 갈륵 칸[葛勒可汗(갈늑가한)] 때 안사(安史)의 난(755∼763)에 파병해 그 진압에 협력함으로써 한때 당(唐)나라보다 우위에 섰다. 그들은 유목생활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영내(領內)에 바이발릭[富貴城(부귀성)]·오르두발릭(카라발가순) 등 도성을 세워 지배층은 정착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문화면에서는 제8대 보의 칸[保義可汗(보의가한)]의 공적비인 <카라발가순 비문(碑文)>이 주목된다. 이 비문은 돌궐문자로 된 투르크어 외에 한문·소그드어로도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유목 위구르사회에 국제적 상인인 소그드인의 문화가 깊이 침투되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제3대 모우 칸[牟羽可汗(모우가한)] 시대이래 종래의 샤머니즘과는 별도로 소그드인의 마니교가 신봉된 것도 그 한 예이다. 840년 내란과 북방 키르기스민족의 침공으로 위구르 유목국가는 붕괴하였다.


49.이반족(Iban) 


보르네오섬 서부에 사는 프로토 말레이계열의 민족. 해다야크족(Sea Dayak)이라고도 한다. 대부분은 말레이시아연방 사라와크주 남부의 구릉지대에서 밭벼[陸稻(육도)]를 주요작물로 한 화전경작을 영위한다. 돼지·닭을 사육하는 외에, 멧돼지와 같은 야생동물의 수렵과 하천에서의 어로도 활발하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빈번한 이주와 전투행위를 좋아하는 용맹한 종족으로 알려졌으며 다른 부족의 목을 베어 종교적 의식을 거행하는 풍습이 있다. 그 뒤 사라와크정부에게 평정되면서 고무·후추와 같은 환금작물을 도입하여 현재는 정착적인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사라와크주 내에서 이반족의 인구는 약 41만 8000명으로, 이 주에서 최대의 단일민족집단을 이루며 정치적으로도 경시할 수 없는 세력을 갖고 있다. 이반족의 사회는 전통적으로 세습적인 수장(首長)이나 신분계층은 존재하지 않는 평등사회이다. 촌락은 한 채의 롱하우스(긴 연립식高床住居)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이 전통적으로는 정치적 자율단위였다. 롱하우스는 평균 15호, 때로는 50호 정도의 거실을 가지고 있다.


50.이족(彛族)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이족(彛族)이라 하는데, 과거에는 <롤로족>이라 하였으며, 유럽에서는 아직도 이 명칭을 쓴다. 중국의 쓰촨성[四川省(사천성)] 남부, 구이저우성[貴州省(귀주성)] 서부, 윈난성[雲南省(운남성)], 광시좡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광서장족자치구)] 서쪽이 주된 거주지역이며, 베트남 및 라오스의 북부, 중국·미얀마 국경에 걸쳐서 사는 티베트-버마어계(語系)의 민족이다. 몽골로이드인종에 속하는데, <흑이(黑彛)>는 티베트인과 유사한 신체적 특징이 보인다. 중국령 안의 인구는 540만 명(1983)인데, 가장 많은 윈난에 300만 명, 다음이 쓰촨 130만 명, 구이저우 40만 명, 광시 1만 명이다. 지역에 따라 자칭·타칭의 각종 부족명이 있으나 쓰촨성의 다량산[大凉山(대량산)]·샤오량산[小凉山(소량산)]의 이족을 위시하여 <노스>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중국내 인구의 약 반을 차지한다. 인도차이나에는 윈난에서 서서히 남하한 이족이 살고 있으며, 그곳에서는 주변의 타이족·만족·먀오족 등의 문화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중국내의 이족은 해발고도 1000∼2500m인 산지에 거주하며, 옥수수·메밀·귀리·감자·쌀을 재배한다. 보통 밭농사를 주로 하지만 화전경작과 논농사도 한다.


51.이푸가오족(Ifugao) 


필리핀 루손섬 북부 코르디예라센트럴산맥 동쪽 사면의 이푸가오주에 거주하는 원(原) 말레이계의 민족. 이푸가오라는 이름은 <지상의 사람들(Ipugaw)>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푸가오어를 모어로 쓰는 사람들은 약 13만 명이다. 생업은 논농사가 중심이며, 험준한 산허리에 펼쳐지는 계단식논의 정경이 웅장하며 현재는 관광지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밖에 고구마·옥수수·콩·사탕수수 등도 재배한다. 전체적인 정치조직은 취약하며, 사회생활은 쌍계적(雙系的)인 친족조직 중심으로 영위되고 있다. 토지에 못지않게 물소도 중요한 재산으로 취급되며,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회는 셋으로 성층화되어 있다. 토지의 소유권이나 상속법이 확립되어 있고, 혼인이나 분쟁의 해결도 전통적 관습법에 의하여 처리된다. 조령(祖靈)이나 여러 정령(精靈), 신격의 존재를 믿고, 그것이 가져오는 재앙이나 불행을 두려워한다. 이와 같이 초자연적 제재를 피하기 위하여 관습법에서 일탈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일이 있을 때마다 닭이나 돼지를 잡아 공양하여 위무하고 있다.


52.줄루족(Zulu)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사는 반투계 민족집단. 반투어를 사용하며 14세기 무렵까지 동아프리카지역에서 남하해온 것으로 여겨지는 유목민 웅구니족의 일파이다. 인구는 951만(1997). 농경과 유목을 주로 한다.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로 백인에게서 분리된 민족집단 중에서는 제일 크다. 줄루족은 19세기 초까지 몇 개의 수장국(首長國)으로 나뉘어 대립·항쟁을 되풀이하였으나 1818년 샤카가 왕위를 찬탈하고 강력한 군사국가를 형성했다. 샤카는 무기를 개량했으며 새로운 전투진형을 만들어냈고, 엄한 군대 규율을 세우고 훈련을 실시했다. 이 강력한 군대로 인근지역 여러 부족을 잇따라 정복, 통합하여 큰 제국을 건설했지만 1828년 동생에게 암살당했다. 그가 죽은 뒤 줄루왕국은 쇠퇴일로를 걸어 백인식민주의자와의 싸움에도 패해 1879년에는 나라가 13수장국으로 분할되고 말았다. 오늘날 줄루족은 남아프리카에서 모든 실권을 박탈당했으나 줄루족의 아이덴티티(동일성)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53.집시(gypsy)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흩어져 떠돌아다니는 민족집단. 집시라는 명칭에 관한 유래는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소아시아의 프리기아에서 마니교의 한 종파인 아팅가노이에서 파생했다고 하는 설로서, 독일어의 치고이네르(Zigeuner), 프랑스어의 치가느(Tsiganes) 등을 들 수 있다. 또 하나는 이집트인이라는 의미의 명칭에서 파생한 것으로, 영어의 집시(Gypsy)와 에스파냐어의 히타노(Gitano)등을 들 수 있다. 이것은 모두 유럽인의 입장에서 본 것으로 동방에서 찾아 온 미지의 민족에 대한 잘못된 출신지 추정에서 나온 것이다. 집시들 자신은 롬(Rom, Lom)·로마(Roma)·돔(Dom)이라고 자칭(自稱)하는데, 이것들은 모두 <인간>을 뜻한다. 집시의 출신지가 인도 북서부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인도의 어느 민족집단과 기원이 동일한지는 분명하지 않으며 그들이 인도를 출발한 것은 9∼10세기로 추정된다. 10세기에는 근동(近東) 여러 나라에 나타났고, 14∼15세기에는 소아시아에서 발칸반도로, 그리고 동유럽·서유럽으로 이동했으며, 근년에는 남북아메리카대륙에서 오스트레일리아에까지 이주하고 있다. 언어는 인도아리안어에 속하는 로마니어이다.


54.차모로족(Chamorros)


미크로네시아 마리아나제도의 원주민. 1565년 에스파냐가 마리아나제도의 영토권을 선언할 때에는 약 10만 명이 거주하였으나 17세기 말 괌섬으로 강제이주를 당한 뒤에는 혼혈이 되어 현재 순수한 차모로족은 없다. 에스파냐 통치 초기부터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아 고유의 종교 및 제도를 상실하였다. 고고학적 발굴과 17·18세기 문헌에 따르면, 차모로족은 산호석회암과 현무암으로 만든 라테스톤이라는 석주(石柱) 건조물을 축조했다고 한다. 선사유물인 마리아나붉은토기[赤色土器(적색토기)]·민무늬토기[無文土器(무문토기)]로 미루어 볼 때, 이곳에 기원전부터 인간이 거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차모로족은 쌀을 재배하였고, 삼각돛과 아우트리거가 있는 마타라고 하는 카누를 이용하였다. 라테기(期) 유적의 발굴에서 어로 및 돌찜 요리를 했으며, 베텔추잉(아래카야자의 열매인 빈랑자에 후추과식물의 잎과 석회를 섞은 것을 씹는 습관)이 있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차모로어는 서(西)카롤린의 파라오어(語)와 함께 오스트로네시아어족에 속하며 인도네시아 여러 언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5.차이나타운(Chinatown) 


중국 이외의 도시에 있는 중국인 집중지구. 특히 유럽이나 미국에서 중국인들로 형성되어 상업이나 일상생활에 중국색이 짙게 나타나는 거리를 말한다. 중국요리점을 비롯, 중국 의상·식품·의약품 등 중국원산물의 가공품 상점이 모여 있고 중국사찰이나 사당의 제사, 기타 중국식 행사가 엄격하게 이루어지는 등 생업이나 사회생활에서 중국의 전통이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중국인의 외국진출은 항구를 거점으로 하류(河流) 연안을 거쳐 내륙지방으로 들어가는 식이었으므로, 항구도시를 중심으로 한 상업지역에 많이 형성되어 있다. 중국인은 해외에 진출하여 거점을 만들면 우선 본국의 혈연자를 부르고, 이어 동향자(지연자)·동업자를 불러들였으므로 차이나타운에는 동향자가 모이는 동향회관이 있게 마련이며 관혼상제나 전통행사는 주로 이곳에서 거행된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차이나타운에는 싱가포르·마르세유·샌프란시스코 등에 형성된 것이 있으며, 한국의 인천이나 일본의 요코하마[橫濱(횡빈)]에도 작은 차이나타운이 있다.


56.카렐리야족(Karelians) 


러시아연방 북서쪽의 카렐리야공화국과 핀란드 동부 카렐리야주를 중심으로 거주하는 민족. 거주지 대부분이 침엽수림과 습지이다. 카렐리야족은 핀족·에스토니아족 등과 함께 우랄어족의 피노·우그리아어파에 속하며 카렐리야어를 사용한다. 러시아연방 영내에 약 78만 5000명(1996)이 살고 있다. 역사는 2000년 이상 되었고, 7세기 무렵 현재의 카렐리야인이 라도가 호수 주변에 정착하여 사냥과 어로를 주요생업으로 삼아왔다. 카렐리야지방은 북유럽의 대립되는 두 세력 동러시아·서핀란드 및 에스파냐의 충돌지점이었으므로 오랜 역사를 통해서 국제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침략과 정복이 반복되어 왔다. 종교는 러시아정교이며, 애니미즘(정령신앙)의 영향이 뿌리 깊어 결혼식과 장례식 때에는 오랜 동안 정성을 들여 의례를 행한다. 전통적으로 가부장의 권한이 강한 대가족제도이고, 사냥·어로·임업·농업 등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핀란드의 민족서사시 《칼레발라》에는 핀족과 마찬가지로 카렐리야족의 역사와 생활양식이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57.쿠르드족(Kurd) 


이란어 서북계에 속하는 민족. 터키·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북이라크에 사는 쿠르만지와 이란·이라크에 걸쳐 있는 쿠르디의 두 방언 그룹으로 크게 나뉜다. 음성·형태면에서는 옛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 쿠르드말은 고유문자가 없고, 문헌은 지역에 따라 아라비아(페르시아)·아르메니아·라틴·키릴 문자로 표기한다. 인구는 약 2000만 명에서 250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쿠르드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터키에는 터키 인구의 19%, 이란 전체 인구 중 10%, 이라크 전체 인구 중 23%가 쿠르드족이며, 그 외 시리아, 소련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BC 2000년쯤 수메르 비문(碑文)에는 이미 반호수 동방민족으로서 카르다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 있다. BC 1000년쯤에는 쿠르티에로 알려졌으며, BC 5세기의 그리스 군인·역사가인 크세노폰은 카르다카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현재 터키에서는 퀴르트, 아랍권에서는 쿠르드, 이란에서는 코르드라 한다. 거주민의 대부분은 산악지대에서 양·염소 등의 목축이나 과수·보리·쌀 재배에 종사한다. 지연적(地緣的) 성격이 강한 부족(아시라)을 이루어 족장 아가는 의식·재판의 집행, 구성원으로부터의 벌금, 아하티라는 세금 징수, 외래자 접대 등을 하고, 그 지위는 장남이 상속한다.


58.타밀족(Tamils) 


드라비다어족 타밀어를 쓰는 남인도 원주민. 인구는 남인도 타밀나두주를 중심으로 약 4500만, 스리랑카와 남·서아프리카 및 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으로 이민한 약 370만이 있다. 남인도는 아리아족 침입이나 이슬람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고, 드라비다 전통과 결합한 독자적 힌두문화가 궁정·사원을 중심으로 번영하였다. 예로부터 해상무역이 활발하여 이민을 한 원주민들이 많다. 종교는 힌두교이며, 타밀 사회·문화는 종교와 밀접히 관련되어 가장 엄격한 카스트제도가 있고 소수파인 불교도(자이나교도)나 그리스도교도와는 가까이 하지 않는다. 가장 많이 이민한 스리랑카에는 기원전부터의 많은 이민으로 확실한 번영을 이룬 실론 타밀과, 19세기∼20세기 영국 식민지시대에 차(茶)재배농장 강제노동력으로 끌려온 사람들로 지금도 사회의 하층을 이루는 인도 타밀이 있다. 일반적으로 타밀족은 부지런하고, 교육열이 높으나 언어·종교·카스트제도를 같이하는 폐쇄적 타밀커뮤니티를 지켜와 다른 사회와 친숙해지기 힘들다. 스리랑카에서는 다수파 싱할리족 민족주의에 대해 북부 타밀거주지에 독립국가 건설을 주장하는 등 서로 간의 격렬한 분쟁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59.토라자족(Toraja) 


인도네시아 슬라웨시섬 중남부 산악지대에 사는 민족. 토라자(Toraja)란 <오지인(奧地人)>이라는 뜻으로 평지에 사는 부기스족 등이 산지 사람들을 이르던 명칭이며, 그에 따라 몇몇 부족이 이 이름으로 불려 왔다. 오늘날에는 흔히 사단강 상류지역에 사는 사단 토라자족을 가리킨다. 사단 토라자족은 사단 토라자어를 모어(母語)로 사용하는 말레이 계통 부족이다. 부족 가운데 60%가 그리스도교도이며 오지인은 전통 종교를 지키고 있다. 이전에는 목을 베어 종교의식에 사용하였으며, 외적을 막기 위해 각 친족집단의 집은 높은 언덕 위에 취락을 형성하여 드문드문 세워져 있다. 조상을 기념하기 위해 집 앞에 세운 거석(巨石)과 전통에 따라 만든 배를 본따 지은 아름답고 휘어진 지붕을 한 고상(高床)가옥은 쌍계(雙系)를 찾는 친족집단의 정신적 중심을 이룬다. 친척이 모계·부계 양쪽을 거슬러 찾아가면 한 개인은 몇몇 친족집단에 속하며 종형제간의 결혼을 좋아하여 친족관계가 넓어지는 일은 없었다. 결혼 후에는 처가살이가 많았던 것 등 모계친족과의 결속이 강하였다. 그러한 친족은 물소를 바치는 장례의식 때 물소를 제공하는 의무가 있으며, 그러한 일을 한 뒤에야 비로소 유산분배에 참여하였다.


60.투르크멘족(Turkmen) 


중앙아시아·서아시아 투르크계 민족집단의 호칭. 언어학적으로 투르크어파에 속하며, 인류학적으로는 지중해인종이지만 몽골로이드 특징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란화한 훈족 및 오구즈족과 관계가 깊으며 몽골의 침입으로 큰 영향을 받았다. 주거주국인 투르크메니스탄을 비롯하여 이란 북부, 아프가니스탄 북부, 이라크·시리아 북부, 터키 중부 등지에도 거주하여 총 312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아랄해와 카스피해 북쪽지방에서 남하하여 1038∼1194년 셀주크왕조의 건국을 전후하여 카스피해 동쪽지방과 아무다리야강유역의 마와라안나르를 거점으로 이란을 경유, 아제르바이잔·아나톨리아(터키 중부 고원지대)로 이동하였다. 그 동안 룸셀주크왕조·카라만제후국·오스만왕조 등을 건국하고 아나톨리아지방을 투르크화하는 데 원동력이 되었다. 거주지역은 주로 건조지역으로 대부분 양·염소·말·낙타 등을 기르며 유목생활을 하지만 투르크메니스탄의 투르크멘족은 농업을 영위하고 있다. 각 부족은 부계조직(父系組織)에 기초한다.


61.티베트인(Tibetans)


중국 남서부 티베트자치구에 사는 민족. 자치구와 동쪽으로 칭하이성[靑海省(청해성)]·쓰촨성[四川省(사천성)], 남쪽으로 네팔 북부·시킴·부탄 등지에 분포한다. 민족은 중앙티베트에서 농경에 종사하는 단두민족(短頭民族)과 동부에서 유목에 종사하는 장두민족(長頭民族)으로 구별된다. 티베트인은 몽골로이드에 속하지만 신체적 특징은 중국인과 다르다. 언어는 티베트-미얀마어족에 속하는 티베트어를 쓰는데 사투리가 많다. 문자는 자음 30자, 모음기호 4자로 이루어진 표음문자로 7세기 무렵 인도의 데바나가리에서 불교경전과 산스크리트의 주석을 해석하기 위하여 도입되어 티베트문학과 예술로 발전하였다. 종교는 8세기 이후 불교가 도입, 라마교로 발전하면서 토착신앙인 본교(bon敎)가 밀려나게 되었다. 17세기부터 달라이라마를 정치·종교상 군주로 하는 독특한 제도가 유지되다가 1959년 티베트 동란 뒤 농노제가 폐지되고 토지개혁이 이루어지면서 전통사회가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사회는 승려·귀족·상인·농부·유목민·천민 등 여러 계급으로 나누어지고, 부계사회이지만 모계의 전통이 강해 여성이 가정일·농사일·무역거래 등을 도맡아 하고, 친족 내에서도 남녀 구분 없이 연장자가 우선시된다. 결혼풍습은 단혼제로 형제들이 한 아내를 공유하는 일처다부제이거나 일부다처제를 취하고 있다.


62.피그미(Pygmy) 


인류학적으로 성인남자의 평균키가 150㎝ 이하인 종족의 총칭. 아프리카 및 동남아시아의 열대 삼림지대와 뉴기니에 분포하며, 아프리카 종족은 니그릴로, 동남아시아 종족은 니그리토라 하여 구분한다. 두 종족은 모두 수렵 채집민이지만, 오늘날에는 농경부족과의 교류를 통해 수확물을 서로 교환하는 경제구조를 이루고 있다. 동남아시아 피그미는 벵골만의 안다만섬 원주민, 말레이반도의 세만, 필리핀의 아에타 등으로서, 이들은 피그미의 원형에서 독립되어 있다. 또한 신체적으로 균형잡혀 있으며 피부는 진한 갈색을 띠고 털이 적게 나 있는 등 니그릴로와 많은 신체적 차이를 보인다. 아프리카 피그미에 대해서는 4000년 전 이집트 고대왕조 때부터 알려져 왔으나, 실제로 확인된 것은 1870년 이후이다. 이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니그로를 피해 열대 우림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위축되었다는 설과 인류의 오래된 형태라는 설 등이 있다. 아프리카 피그미는 피부색이 흑인보다 밝고 땀샘이 발달되었으며 털이 많이 나 있다. 머리형태는 둥글고 머리칼은 고수머리이며 눈이 둥글고 크다. 또한 몸통과 팔이 길고 다리는 비교적 날씬한 체형을 갖추고 있다.


63.가나산족(Nganasany) 


러시아연방 북쪽 타이미르반도에 사는 순록 수렵·사육민(飼育民). 인구 900. 예전에는 타브기족(Tavgi 族) 또는 타브기 사모예드족(Tavgisamoyed 族)이라고 불리었던 민족으로, 우랄 어족(語族) 사모예드 어파(語派)의 북방군(北方群)에 속하는 가나산어를 쓴다. 타이미르반도는 야생 순록의 대량 서식지로서 가나산 문화는 순록 사냥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칼리프 에스키모 문화와 대비할 수 있다. 지역은 동부의 바데예프(Vadeyev)와 서부의 아밤(Avam) 등의 2개군(群)으로 나누어져 있다. 


64.가다족(Ngada) 


인도네시아 소(小)순다열도의 플로레스섬 남서부에 사는 프로토말레이계 인종. 언어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에 속하며, 밭벼·잡곡류를 재배하고 수렵·어로도 한다. 가축은 물소·말·돼지·닭·염소 등이다. 사회조직은 선계적(選系的)으로 사촌간 혼인을 좋아한다. 마을 서로간에 결연관계를 가지며, 직접 교환을 하는 곳도 있다. 주로 물소를 사용하는 혼수(婚需)의 지불이 집단귀속을 결정한다.


65.가로족(Garo tribe)


인도 아삼 지방을 흐르는 브라마푸트라강(江)의 만곡(彎曲) 부분의 동남쪽에 있는 가로산(山)을 주요 거주지로 하는 사람들. 인구 58만(1997). 몽골로이드인종(人種)이며, 티베트-버마어계(語系)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그들의 전승(傳承)에 따르면 아삼계곡을 경유해서 티베트방면으로부터 이동해왔다고 한다. 종족명 <가로>는 영국인이 이 지역의 산지민 전체를 가로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화전(火田)을 경작하고, 밭벼[陸稻(육도)]와 잡곡류·카사바·토란 등을 생산한다. 취락(聚落)은 산의 경사면이나 구릉부(丘陵部)에 형성되며, 보통 50∼60호의 가옥이 모여 있다. 족외혼적(族外婚的)인 모계씨족(母系氏族)이 중요 단위이며, 혈연은 모계를 따르고, 가족의 재산은 딸이 상속받는다. 특별한 신분계층은 없으나, 일정한 제연의례(祭宴儀禮)를 거쳐서 특정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자가 사회생활에서의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종교는 애니미즘을 기본으로 하고, 나무나 돌로 조각된 조상신(祖上神)을 숭배하는데, 영혼이 다시 육체로 돌아온다고 믿으며, 그리스도교도 수용되고 있다.


66.가요족(Gayo) 


바타크족과 연관된 인도네시아 종족. 수마트라섬 북단의 산악지대에 거주하며 인구는 같은 계통인 알라스족을 포함하여 약 15만 명(1967)이다. 종교는 이슬람교인데 초기(初期) 모슬렘신앙이 강하게 살아 남아 있다. 주업은 농업으로 쌀농사를 주로 하며 목축과 수공예도 잘 발달되어 있다. 가요족 사이에는 일부 가부장적 관계도 잘 보존되어 있다. 20세기 초 침략자인 네덜란드인에 대해 적극적인 항쟁을 전개하였다.


67.간다족(Ganda tribe)


동(東) 아프리카 내륙, 우간다공화국의 빅토리아호(湖) 서북안(西北岸)의 비옥한 땅에 사는 반투어계(語系) 농경민. 인구 약 373만(1997). 1966년에 소멸한 우간다왕국의 주체가 되었던 민족으로, 바나나·두류(豆類)·고구마·땅콩·커피·면화 등을 재배하고, 철기·토기·수피포(樹皮布) 등의 공예품 제작에 뛰어났다. 약 50개의 토템을 가진 부계 씨족이 전지역에 분산하여, 각 씨족은 직계나 방계로 나뉘어 있다. 사망한 뒤에는 씨족의 땅에 매장한다. 마을은 산촌형태로 되어 있고, 촌장이 토지 할당과 세금 징수를 행하고 있다. 일부다처혼이 행해지고 있으며,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 수피포·맥주·산양 등이 사용되었다. 종교는 조령제사(祖靈祭祀) 외에, 초인적인 인물의 신령을 모시고, 빙의의례(憑依儀禮)가 행해진다. 현재는 거의 그리스도교도가 되어 있다. 간다족은 19세기 후반에 영국과 우호관계를 가졌고, 서양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교육수준도 높고 국가적 엘리트도 배출하였다.


68.갈(?) 


2∼3세기경 산시성[山西省(산서성)] 위서현[楡社縣(유사현)] 지방에 입거(入居)하여 4세기 5호16국(五胡十六國) 시대에 중국을 휩쓴 흉노족의 한 종족. 당시 이 지방을 갈실 혹은 갈이라고 하였으므로 이런 이름이 나왔다고 한다. 5호16국의 하나인 후조(後趙)를 세운 흉노 석씨(石氏)는 이 종족이다. 갈이란 당시의 중국인이 멸시하는 뜻으로 사용해서 음역한 것이라 해석된다. 수(隋)나라와 당(唐)나라 때는 갈호·융갈 등의 명칭이 북방 유목민족 전반에 대한 통칭으로 사용되었다.


69.갈라족(Galla) 


에티오피아와 케냐 북부지방에 살고 있는 종족. 인구는 에티오피아에 1821만, 케냐에 41만명 가량 살고 있다(1997). 언어는 셈어·함어계 어족인 쿠시계에 속한다. 지역적으로 여러 부족으로 나누어지는데 툴라마(쇼아州)·마차(왈라가州)·아루시·보란(시다도州)와 케냐족 등이 대표적이다. 주업은 농업인데 에티오피아 중서부지역은 목축을 겸하고, 남부지역과 케냐는 목축이 주업이다. 일부 부족은 그리스도 단성론파(單性論派)의 그리스도교를 믿고 나머지는 이슬람교를 믿는다. 중부 에티오피아의 갈라족은 다른 종족과 함께 에티오피아 단일국가에 통합되어 있다.


70.강(羌) 


칭하이[靑海(청해)]를 중심으로 중국 서북 변경에 거주하는 티베트계의 유목민. 한대(漢代)에 정치적으로 통합되어 서강(西羌)이라 불리었고, 그후 강족의 요씨(姚氏)는 5호 16국(五胡十六國)의 후진(後秦)을 세우기도 했다. 남북조 시대에는 탕창강[宕昌羌(탕창강)]·등지강(鄧至羌)이 간쑤[甘肅(감숙성)] 남부에 웅거하였다. 수(隋)·당(唐) 시대에는 그 일족인 탕구트[黨項(당항)]가 강력한 존재가 되기도 하였으나, 그 후 그 일부는 토번(吐蕃)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또 일부는 닝샤[寧夏(영하)] 지방으로 옮겨 서하(西夏)를 세우기도 했다. 현재는 탕꾸터[唐古特(당고특)] 또는 장인(藏人)·번인(蕃人) 등으로 불리며, 티베트 민족의 한 구성 종족으로 본다.


71.게노스(genos) 


고대 그리스의 씨족 단위. 프라트리아보다는 작은 단위를 말하며, 아테네의 게노스가 유명하다. 씨족원은 정통(正統)의 남자를 게노스에 소개하여 승인되면, 그 일원으로 가입시켰는데, 시민권과는 관계가 없었다. 게노스는 폴리스가 성립하게 되자 해체되었다. 게노스를 귀족의 가계(家系)로 보는 설이 유력한데, 아테네의 게노스는 약 90개로 알려져 있다.


72.게피드족(Gepids) 


발트해 연안 남부에 거주하고 있던 게르만 민족의 일파. 3세기 중엽부터 역사에 출현했으며, 지금의 폴란드를 흐르는 위슬라 하구를 점령하여 소유했다. 부르군트족을 내쫓고 고트인들과 함께 다뉴브강 하류로 진격했지만, 375년 훈족에 굴복했다. 훈족의 왕 아틸라가 죽은 뒤 다시 독립해 다키아지방을 점령했다. 489년 동(東)고트의 테오도릭대왕의 이탈리아 원정을 저지하려 했으나 패배하여 복속되었다. 566년 랑고바르드족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당함으로써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73.고고족(Gogo) 


탄자니아 중부, 해발고도 1000m의 관목림 지대에 사는 반투어계(語系) 부족. 인구 약 116만(1997). 생업은 주로 농경이며, 주작물은 수수를 비롯한 잡곡류다. 그러나 가축을 중요시하여, 소의 교환과 소에 대한 권리가 사회관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사회는 부족 전체를 통합하는 등의 정치적 통일은 없고, 특정한 씨족이 의례적인 권위를 갖는 소규모 의례영지(儀禮領地)와 부계(父系)의 씨족유대 등에 따른 원만한 사회조직을 이루고 있다. 토지소유권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상당한 공간적 이동성을 가지며, 확대가족이 거주하는 가옥이 생활의 중심이 되어 있다.


74.고차(高車) 


중국의 남북조(南北朝)시대를 전후하여, 준갈이부(準喝爾部) 지방에서 활동했던 투르크계(系)의 한 부족. 이들이 바퀴가 높은 차를 사용한 데서 고차라고 불렸다. 처음 이들은 유연(柔然)에 예속되어 있다가, 485년부터 알카이 서쪽 준갈이부 지방에서 독립하였다. 이 부족은 남·북으로 나뉘어 북부는 알타이산의 서남 산기슭에, 남부는 톈산[天山(천산)]의 북쪽 산기슭에 거주하였던 것 같다. 수(隋)나라 때 철륵(鐵勒)부족이 이 두 산록에 거주했는데, 고차부족의 지족(支族)이 많이 혼거(混居)한 듯하다. 6세기에 접어들어 고차는 돌궐(突厥)에 의해 패망하였고, 돌궐은 철륵의 무리 5만여 명의 항복을 받아 독립의 기초를 튼튼히 하였다.


75.고트라(gotra) 


인도 브라만의 씨족(氏族) 이름. <우사(牛舍)> <우군(牛群)>이 원뜻인데, 《리그 베다》 이후 씨족을 의미하게 되어, 성선(聖仙;리시)의 이름을 따서 <고트라>라고 했다. 그 이름은 본디 7가지였다고 하는데, 후세에 증가되었다. 매일의 제식(祭式)에서 성선의 이름을 부르고, 한 성선의 자손은 같은 씨족에 속한다고 믿어 씨족간의 혼인을 금하였다. 족외혼(族外婚)은 아리아인(人)이 인도에 와서 살기 이전의 관습으로, 고트라도 처음에는 브라만에 한정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베다 제식의 문헌에서는 고트라제도가 정비되어서 브라만 고유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주효(奏效)해서 오늘날에는 브라만에서만 볼 수 있다.


76.곤드족(Gond) 


인도 데칸고원 중부에서 북부에 걸친 광대한 지역에 사는 인도 최대의 원주민 부족. 인구는 약 278만(1997). 프로토오스트랄로이드 내지 베티드 인종형(人種型)의 특징을 보이며 사용언어인 곤디어(G?ndi語)는 남인도의 드라비다어(語) 계통에 속한다. 전체적으로 말하면 농경생활, 부계(父系) 혈연관계를 축으로 한 정치·사회조직, 지모신(地母神)·촌락수호신 신앙, 청년동사조직(靑年洞舍組織) 등의 문화요소로 특징지어지지만, 그 구체적 내용에는 적지않은 지역차를 볼 수 있다. 바스타르지방의 마리아 곤드족과 같이 단순한 화전경작에 의존하는 이동성이 강한 그룹에서, 아디라바드지방의 라지 곤드족과 같이 정착농경을 하여 힌두 농민과 거의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그룹까지 여러 가지이다. 이러한 지역차를 많은 인구와 광대한 거주지 등으로 미루어 생각하면 곤드족 전체가 단일부족인지가 의심스럽고, 공통어인 곤디어도 남인도의 드라비다문화의 강한 영향하에 보급된 것일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 현재 이 그룹간에는 힌두교도의 카스트 제도와 유사한 상호관계가 형성되어 있고, 통혼(通婚)하는가 하지 않는가, 물이나 음식물을 받아들이는가, 받아들이지 않는가에 따라, 서로의 서열적 위치가 표현된다.


77.골라족(Gola) 


파울강(江)과 마노강 사이의 서부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 국경지대에 사는 민족. 1967년 조사에 의하면 라이베리아에 15만 이상, 시에라리온에 1만 이상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덴골라·톨디에·마나고블라 등의 부족으로 세분되며 언어는 서반투어군(語群)에 속한다. 골라족의 대부분은 고대의 전통적 신앙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들 중 소수가 힌두교도이다. 농사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바나나·아프리카기름야자 등 과일도 재배한다.


78.과히로(Guajiro) 


콜롬비아 북동부, 카리브해에 면한 과히라 반도의 토착민속. 인구 약 5만. 16세기 초 에스파냐 사람과 접촉한 후 곧 가축사육을 도입, 1550년에는 이미 소·염소·양·당나귀 등을 방목하여 이동적인 생활을 하는 목축민이 되었다. 소나 염소의 젖에서 우유·버터·치즈를 취하여 이들과 염소고기를 주식으로 하고, 그 외에 고구마·옥수수·카사바 등 약간의 경작도 한다.


79.관체족(Guanches) 


아프리카 북서안 카나리아제도 서부의 원주민. 카나리아제도 동부의 원주민은 카나리아족이라고 한다. 15세기 초 에스파냐에게 정복된 뒤 유럽에 알려졌다. 그 조상은 오랜 옛날 북아프리카를 경유해 들어온 유럽의 크로마뇽인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피부는 다갈색이고, 금발머리에 눈은 푸르거나 회색이다. 이 특징들은 오늘날에도 많이 보이나, 에스파냐인과 신체적·문화적으로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하였다. 에스파냐인이 처음 이 ·과일을 식량으로 하며 가죽과 풀로 짠 간단한 의류를 몸에 걸치고 있었다. 또 알파벳 모양곳에 왔을 때에는 석기시대 문화 수준으로, 도기를 사용하고 밀크·버터·양·돼지의 문자를 가졌고, 종교는 일신교(一神敎)였다. 오늘날 카나리아제도의 주민은 모두 카나리아인이라고 한다.


80.구룽족(Gurung) 


네팔의 안나푸르나 연봉(連峰)의 남사면(南斜面)에 사는 민족. 티베트 버마어계 구룽어를 사용하며 용모는 동양인에 가깝다. 주 거주지는 표고 1000∼2500m에 있으나 옛날에는 더 높은 곳에서 양(羊)의 목축, 옥수수·기장 등의 농업과 티베트와의 교역, 수렵으로 생활하였다. 오늘날에는 목축과 교역의 비중은 저하하고 벼의 재배를 포함하는 농업이 주요한 산업이다. 네팔군·인도군, <구르카군>으로 유명한 영국군 용병 등으로 많이 빠져 나가 성인 남자의 수가 적다. 구룽사회는 <4씨족>집단과 <16씨족>집단으로 나누어져, 전자가 후자보다 지위가 높고 각각 내혼족(內婚族)이며, 각 <씨족>은 부계(父系)의 계족(系族)으로 나누어진다. 근년에 와서는 국가의 행정조직이 침투해 들어와서 지위를 둘러싼 분쟁이 있다. 전통적인 종교는 라마교이고 힌두교의 영향도 크게 받고 있다.


81.구르자라족(Gurjara) 


고대 인도의 종족명. 5세기경 훈족 등과 함께 중앙아시아 방면에서 서인도로 들어와 정착하여, 인도화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는데, 이 외래설에 반대하여 토착설을 주장하는 사가(史家)도 많다. 6세기 중엽부터 유력해져서, 크샤트리아(라지푸트)라 일컬어서 인도 각지에 몇 개의 왕국을 건설했다. 이 종족에 속하며 8세기 전반 말와 지방에 일어난 프라티하라 왕조는, 9세기 초 강가(갠지스) 강 유역에 진출하여 카나우지에 천도(遷都)했으며, 또 북인도에 대왕국을 건설하였다(11세기 초까지 계속된다). 구자라트라는 지명은 이 종족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또한 오늘날의 서·서북 인도에 거주하는 구자르족(Gujar族;주된 생업은 목축)은 고대 구르자라족의 자손이라고도 일컬어진다.


82.구아시아제족(舊) 


고아시아제어를 사용하는 제민족. 옛 아시아제족, 옛 시베리아제족이라고도 한다. 현재 러시아연방 영내에 살고 있다. 다른 민족과의 언어적인 관계가 확인되지 않아, 아시아 또는 시베리아 최고(最古)의 민족이라는 가정 아래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에 포함되는 민족은 다음과 같다. ① 예니세이강 중류에 사는 케트(예니세이 오스탸크;인구 약 1100) ② 아무르강 하류지방에서 사할린 북부에 걸쳐 분포하는 길랴크(니브흐;인구 약 4400) ③ 인디기르카강 하류지방에서 콜리마강 동쪽에 걸친 북극해 연안에 분포하는 유카기르(인구 약 800) ④ 캄차카반도 남부에 살며 러시아화(化)가 현저한 캄차달(이텔멘;인구 약 1400) ⑤ 캄차카반도 북방에 거주하는 코랴크(인구 약 7900) ⑥ 추크치반도의 동쪽과 북극해 연안에 걸쳐 널리 분포하는 추크치(인구 약 1만 4000). ①∼⑥ 외에 러시아의 학계에서는 ⑦ 에스키모(아시아의 에스키모는 인구 약 1500) ⑧ 알레우트(인구 약 500)를 더한다(이상 인구는 모두 1979년 조사). 이 가운데 ④ ⑤ ⑥의 상호간, 그리고 ⑦ ⑧의 상호간에는 저마다 언어상의 친족관계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지만, ① ② ③은 상호간의 관계는 물론 다른 언어와의 관계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83.구티인(Gutians) 


북서 이란의 자그로스산맥 일대에 살았던 고대 오리엔트의 산악 민족. 인종적 기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엘람인·루르비인·카시트인 등과 가까운 관계에 있다. 구티인의 이름이 최초로 동시대의 사료에 나타나는 것은 아카드의 샤르칼리샤리왕의 치세(BC 2217∼BC 2193) 때이며, 구티왕을 붙잡았다는 기록이 있다. 구티인은 샤르칼리샤리의 사후 혼란기에 접어든 아카드왕국을 압도하여, 그 멸망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구티인은 전승에 의하면 전(全)바빌로니아, 실제로는 대체로 아카드지방을 BC 22세기 전반에서 말기에 걸쳐 지배하였다. 이 기록은 아카드어로 기록되어 있다. 한 전승에서는 약100년간에 21명의 구티왕이 지배하였다고 한다. 수메르인의 전승에 의하면 <산악의 독사> 구티인의 최후의 왕 티리간을 격파하여 바빌로니아를 해방시킨 것은 우르크의 지배자 우트헤길이었다. 구티인은 우르 제3왕조시대 이후에도 오랫동안 자그로스산맥 중에서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왕국이나 도시를 위협하였다.


84.그루지야인(Gruziya) 


대(大)카프카스산맥 서남 경사면과 흑해 사이에 사는 민족. 스스로는 카르트벨리(Kartveli)인이라 말한다. 인구는 530만(1992). 서양 고전에 나타나는 콜키스인·이베리아인의 후손으로, 언어는 남아프리카제어(諸語)의 카르트벨리어파에 속하며, 인종은 지중해형·아르메노이드형 특질을 나타낸다. 북방 유목민, 그리스·로마·이란 등의 중간에 있었으므로 복잡한 문화적 영향을 받았다. 4세기에 그리스도교에 귀화하였으나, 7세기 이후 이슬람교 신도의 침입을 자주 받았으며, 16세기에 러시아에 병합되기까지 터키와 이란에 의해 동서로 분할되었다. 때문에 동그루지야에서는 문학·미술 등 이란문화의 영향이 강하며, 이란에서 군인으로 활약하는 자도 적지 않았으나 이슬람으로 개종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서그루지야에서는 오스만제국 치하에서 이슬람화되어, 현재도 흑해쪽의 아자르지방에서는 무슬림 주민이 아자르자치공화국을 이루고 있다.


85.그리스민족


고대 그리스를 구성하고 있던 민족. 오늘날 흔히 쓰이고 있는 <그리스인>이라는 명칭은 라틴어 <Graeci>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그리스인 자신은 그들이 사는 땅을 헬라스(Hellas)라 하였고 스스로를 헬레네스(Hellenes)라 일컬었으며, 자신들과 같은 언어를 쓰지 않는 이민족(異民族)을 바르바로이(barbaroi)라 불렀다. 고전기(古典期)에서의 이 명칭은 대개의 경우 페르시아인들을 가리킨다. 그리스인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그리스어를 사용하였던 민족이다. BC 2000년 이전에 유럽의 동남부로부터 발칸동부로 남하(南下)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리스민족의 분류를 이오니아인·도리아인·아케아인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오니아인과 도리아인 사이에는 본래 구별이 없었고, 이러한 분류는 오히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국제(國制) 차이를 일반화한 것에 불과하므로 오늘날에는 고대 그리스 방언연구에 토대를 둔 분류가 유력하다. 방언에 따라서 분류한다면, 그리스인은 동방방언군(東方方言群)과 서방방언군(西方方言群)으로 나누어진다. 전자에 속하는 것은 크레타문명을 받아들이고 미케네문명을 창조했는데, BC 1100년경부터 제2차 민족이동이 일어나 도리아인이 남하했기 때문에 소아시아로 이동하거나 아티카나 아르카디아 땅에 남은 사람들이다.


86.그리스인(Greeks) 


그리스와 지중해 지역에 거주하며 인도·유럽어족의 그리스방언을 사용하는 민족. 형질적으로는 코카소이드의 지중해형 지방인종에 속한다. 고대그리스인의 자손에 중세 이후 그리스에 들어온 슬라브인이 혼혈되어 있다. 대부분이 그리스정교를 믿는다.


87.그리쿼(Griqua) 


남아프리카로 식민(植民)한 네덜란드인과 케이프주(州)의 미개 민족인 호텐토트족과의 혼혈족 및 그의 자손. 18세기 끝무렵에 오렌지강 남부 평원에서 이동생활을 하던 이들 혼혈아의 집단이 19세기부터 현재의 그리쿼타운(Griquatown)에 정주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그리퀄란드 웨스트의 시작이다. 그리쿼란 초기의 네덜란드계 이민이 그리그리카라 불린 지점에 살고 있던 호텐토트의 한 부족으로부터 유래한 것을 기념하여 여기에 정주한 사람들이 스스로 부르게 된 이름이다.


기념물(紀念物) 역사적인 유물·유적 등이나 자연적인 동물·식물 등 학술적·예술적·관상적(觀賞的) 가치가 매우 큰 물건. 역사상으로 남아 있는 조개더미[貝塚(패총)]·궁터[宮址(궁지)]·절터[寺址(사지)]·무덤[古墳(고분)]·성터[城址(성지)] 및 유물포함층, 기타 사적지(史蹟地)와 명승고적과 동물·식물·광물 등이 있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문화재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문화관광부장관이 사적·명승 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수 있다.


88.기수족(Gisu) 


빅토리아호(湖)의 북동쪽, 우간다와 케냐의 국경부근 엘곤산(山) 서쪽에 살고 있는 팬트어계(語系) 농경민. 인구 93만(1997). 잡곡류·사탕수수·바나나를 재배한다. 좁은 지역이지만 인구밀도는 꽤 높으며, 토지 부족은 예로부터 심각하다. 출신이나 상속은 부계(父系)를 따르고, 지역집단끼리의 관계가 출신 특유의 언어로 표현되는 분절적(分節的) 혈통체계를 갖는다. 전통적으로 중앙집권화된 정치형태를 가지지 않고 세습이 아닌 소출생집단의 어른이 지도자였다. 남자들의 복잡한 집단가입을 위한 입사식의례(入社式儀禮)가 유명하다.


89.길랴크족(Gilyak) 


러시아 극동지방, 아무르강 하류지역과 사할린에 사는 원주민. 니브히는 <인간>이란 뜻이며, 전에는 길랴크라고 불렸다. 니브히어는 유사한 형제언어를 갖지 않은 고립된 언어인데, 이웃의 여러 언어와 함께 구(舊)아시아 여러 언어에 포함되어 있다. 역사적으로는 아이누어를 비롯하여 이웃의 퉁구스·만주어 계통의 여러 부족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문화적으로도 뚜렷한 공통성이 있다. 생업은 하천에서 연어·송어를 잡고 해안에서 해수(海獸)수렵을 한다. 여름철에는 냇가나 바닷가의 지상구조의 집에서 살다가 겨울철에는 내륙의 겨울집(세로로 판 구멍;堅穴)에 옮겨 산다. 연어·송어를 말린 것은 사람과 개의 주된 식량이며, 이동수단으로는 대형 외양선(外洋船), 하천용 통나무배, 개썰매가 이용된다. 신앙이나 의례는 애니미즘적 색채가 짙으며, 또 우주는 지상·지하·천상의 세계와 물의 세계로 되어 있으며, 각각 주인이 있는 것으로 여겨 일상적으로 공물(供物)을 바친다. 그중에서도 물의 주인이나 곰에 대한 의례는 씨족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생활 중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종교로서는 샤머니즘을 들 수 있으나, 주술사의 역할은 사회적으로 그다지 크지는 않다.


90.나나이족(Nanai) 


러시아연방 극동부의 아무르강, 우수리강의 하류유역, 사할린 및 중국 북동부의 러시아연방과의 국경에 연하여 거주하는 종족. 이전에는 골드족 또는 골디족이라고 불렸으나, 현재는 나나이로 불린다. 거주지는 삼림과 하천으로 둘러싸였고, 예로부터 수렵·어로에 종사하며 특히 어로기술이 뛰어나고 기술혁신에 의한 새로운 방법으로 많은 어획량을 올리고 있다. 옛 전통사회의 기본단위는 외혼적(外婚的)인 부계 씨족이고, 종교는 샤머니즘이 현저하였으나, 지금은 근대화하여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며 과학교육을 받고 있다. 대부분의 나나이족은 콜호스(집단어장)에서 일하거나 연어·송어 등의 양식업과 통조림산업에 종사한다.


91.나바호족(Navaho) 


미국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인디언부족. 인구 약 15만. 언어는 아사바스칸어족에 속한다. 현재 거주지는 애리조나주·뉴멕시코주·유타주에 걸쳐 있는 인디언 거류지이다. 몇 세기 전에 북부에서 이주해 왔으며 아파치족과는 매우 가까운 종족이다. 옛날부터 거주해 오던 푸에블로계 사람들에게서 대부분의 문화요소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사회문화는 혼교적(混交的)인 성격을 띠며 여러 가지 민족집단이 섞인 부족이다. 중심이 되는 생업은 옥수수·콩·호박 등의 농경인데 에스파냐시대 이후 소·양의 목축도 하고 있으며, 직물도 중요한 수입원이다. 기본이 되는 사회단위는 핵가족이며, 모계사회로서 혼인 후의 거주규제는 처가 쪽이고 약 60개의 모계집단이 있다. 확대가족 등의 근친자는 대체로 가까이에 거주하며 농업·가옥건축·목축 등을 할 때 서로 협동하여 일한다.


92.나스카피족(Naskapi) 


북아메리카 북동부에 살고 있는 인디언의 한 부족. 알곤킨어 사투리를 사용하며, 문화적으로 몬테너족과 공통점이 많다. 툰드라 또는 초원으로 뒤덮인 래브라도고원에 살고 있으며, 순록으로 이동생활을 한다. 복장은 해안의 에스키모와 흡사하며, 물 위에서 카누, 육상에서 개썰매를 타는 법 등은 에스키모로부터 배운 것이다. 혈연적으로 관계있는 소집단과 떨어져 살고 있으며, 유럽인과의 모피교역이 시작되자 모피사냥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현재는 문명의 발달로 본래의 모습이 사라져가고 있다.


93.나시족(納西族)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 인구는 30만(1997). 쓰촨성[四川省(사천성)] 및 티베트자치구에도 일부 거주하지만, 리장[麗江(여강)] 나시족 자치현이 있는 윈난성[雲南省(운남성)]에서 대부분이 살고 있다. 그 조상은 고대 중국 서북 지역의 저와 강(羌) 등의 유목민에게서 유래한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나시어(語)는 티베트-미얀마어군(語群) 이어계(彛語系)로 분류된다. 거주지역이 양쯔강[揚子江(양자강)] 등의 큰 강 상류가 교차되는 복잡한 지형이기 때문에, 한대성에서 아열대성까지 기후의 지역차가 크다. 주요 생업은 농업이며, 밀·쌀·옥수수·감자·콩류를 생산하고, 가축 사육과 임업도 성행한다. 면양의 가죽을 옷으로 만들어 입는 점이 복장상의 특징이다. 종교적 직능자(職能者)인 톰바[東巴(동파)]가 의식(儀式) 때에 영창(詠唱)하는 경전은 독자적 상형문자로 쓰여 있고, <톰바경[東巴經(동파경)]>이라 하며 그들의 조상이나 사물(事物)의 기원, 과거 사회상황 등을 알려주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이다.


94.나와(Nahua) 


아스텍족의 언어였던 나와틀어(Nahuatl 語)에 속하는 각종 방언을 말하는 현대 멕시코 최대의 인디오집단. 인구 102만이라고 하나, 5살 이상의 나와틀어만을 말하는 사람으로 한정하면 약 30만이다. 주로 산 루이스 포토시·이달고·푸에블라·연방구(聯邦區)·틀락스칼라·모렐로스·게레로·베라크루스 등 각 주에 분포한다. 소수이긴 하지만 할리스코·미초아칸·나야리트·오악사카·타바스코 등 여러 주에도 살고 있다. 에스파냐어를 사용하지 않고 나와틀어만 쓰는 인구는 푸에블라주에 집중되어 있다. 현대의 분포권은 위와 같지만 19세기에는 과테말라나 니카라과에도 분포해 있었다. 현재 멕시코 이외에는 엘살바도르의 피피르족만이 나와틀어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1960년 이후 경제변동과 정부의 인디오사회 발전정책의 영향으로 각 마을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95.나우아족(Nahua) 


멕시코 중부에 사는 중앙아메리카인디언. 특히 산루이스포토시·이달고·푸에블라·틀락스칼라·모렐로스·게레로·베라크루스 등의 주(州)에 많이 살며, 19세기에는 과테말라·니카라과에도 분포하였다. 나우아틀어를 쓰며 방언이 많다. 주요 작물은 옥수수·콩·고추·토마토·호박 등이며 용설란·사탕수수·벼·커피도 많이 재배한다. 면직과 모직천 짜기가 주요 수공업인데, 남·여 모두 베짜는 일을 하며 기술이 아주 뛰어나다. 전통 차림새는 여자의 경우 몸에 감는 긴 치마와 블라우스를 입고 장식띠를 띠며, 짧은 3각형 케이프에 숄을 걸친 모양이다. 남자는 짧은 흰색 면바지에 면셔츠를 입고 장식띠를 띠며, 모직으로 된 오버셔츠에 샌들을 신는다.


96.나이만(Naiman) 


10세기에서 13세기 초 사이에, 알타이산맥과 이르티슈강(江) 주변에 살고 있던 유목부족 또는 유목국가의 이름. 내만(乃蠻)이라고도 한다. 투르키스탄의 위구르에서 문자와 문화를 수용하였고, 적어도 그 지배층은 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도교를 믿고, 그 동쪽의 케레이트와 더불어 개화된 강력한 부족이었다. 1204년 칭기즈 칸에 의해 멸망되었으나 그들의 문자나 국가제도는 몽골에 영향을 끼쳤다. 또한 이때 이 부족의 왕자 쿠크루크는 서요(西遼)로 도망하여 훗날 서요국을 빼앗았으나, 1218년에 몽골제국의 군사에 의해 포살되었다.


97.나체즈족(Natchez) 


북아메리카 미시시피강 하구 근처에 살고 있었던 원주민 부족. 언어는 나체즈어족에 속하는 나체즈어였다. 1968년에 3500명이었던 인구는 그 후 급격히 감소되고 주위의 여러 부족에게 흡수되어 끝내는 자취를 감추었다. 생업은 옥수수를 주작물로 하는 농경으로, 부락 단위의 공동노동이었으나, 개별적으로 야생의 과실채집과 수렵도 하였다. 30∼40호의 오두막집들이 하나의 마을을 구성하고, 의례용 건물이 반드시 부속되어 있었다. 부족은 태양의 자손이라고 생각되었던 귀족과 그 지배를 받는 평민의 두 계급으로 나뉘어 있었다. 마을의 수장(首長)은 귀족으로, 태양이라고 불리고, 부족 전체의 우두머리는 큰 태양이라고 불리었다. 그 지위는 모계적으로 계승되어 큰 태양의 어머니와 함께 주술사가 종교적으로 큰 구실을 하며, 사슴제사와 옥수수제사가 제례로 중시되었다.


98.난디족(Nandi) 


동아프리카 케냐 서부, 빅토리아호(湖)의 북동쪽 고지에 살며 나이로디크계(系)의 문화를 가진 사람들. 나일로트·사하라어족의 분파 샤리·나일로트어를 사용한다. 인구 30만(1980). 생업은 집단적 농경으로 옥수수·고구마·피 및 콩류·야채를 관개(灌漑)된 계단식 밭에서 재배한다. 소·양·염소의 사육도 농경에 못지않는 중요성을 갖는다. 그 중에도 소는 식료원(食料源)인 우유·고기·피를 공급하고, 우유로 버터·치즈·요구르트 등을 만든다. 또 소는 결혼할 때 신부의 몸값으로나, 의례 때의 희생물로도 이용된다. 난디족은 17개의 부계(父系) 쿠란으로 나뉘어져 있고, 같은 쿠란사람끼리는 결혼할 수 없다. 일부다처제를 인정하는 사회이지만 자매가 한 남자의 아내는 될 수 없다. 결혼 후의 주거는 부방거주(夫方居住)이며, 아내는 각각 독립된 집에서 아이들과 생활한다.


99.남비콰라(Nambiqwara) 


브라질 서부 마투그로수주(州)의 원주민 부족. 표박하는 채집·수렵민이라고 생각되어 왔으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우기(雨期)에는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 주위에서 화전을 일구며 건기(乾期)에는 여러 집단으로 나뉘어 수렵·채집여행을 떠난다고 여겨지는데, 그 기간은 일찍이 생각되던 바보다는 짧다. 남비콰라의 물질문화는 열대우림에 사는 부족보다 더 가난하며 보다 열악한 생활조건 아래 있다. 하나의 집단은 형제를 중심으로 한 근친자 그룹을 핵으로 하여 형성되어 있고, 인원도 30명 안팎으로 적다. 리더는 핵이 되는 집단 중에서 수렵기술이 뛰어나고 관대한 인품을 갖춘 남자가 리더가 되지만, 사회는 평등하며 리더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1만명을 넘는 큰 부족이었지만, 질병 등으로 인구가 격감하였으며 현재는 선교소(宣敎所) 가까이에 정착해 사는 사람도 적지 않다.


100.내안각주름(內眼角-) 


몽골로이드(황색인종)에 특히 많이 나타나는 내안각(內眼角) 윗눈꺼풀[上眼瞼(상안검)] 가장자리의 독특한 주름. <몽골추벽> 또는 <내안각주름(epicanthus)>이라고도 한다. 사람 눈에서는 위·아래 눈꺼풀(속눈썹이 나 있는 부분)이 코쪽에서 만나는 부분을 내안각(눈시울)이라 하는데, 이 부분이 둥글게 오목 들어가 누호(淚湖)를 이루고 있다. 누호와 누호 안의 누구(淚丘)라 하는 도톰한 부분까지 내안각의 주름이 덮여서 바깥에서 보이지 않는 경우에 그 내안각의 주름을 몽골주름이라 한다. 이 주름은 상안검구(上眼瞼溝;윗눈꺼풀 가장자리와 평행하게 지나는 홈)가 윗눈꺼풀 가장자리에 접근해서 지나는 경우에 생긴다. 몽골주름은 내안각에 도달하면 내안각을 덮는데, 이렇게 되면 내안각은 매우 날카롭게 보인다. 이와는 달리 상안검구가 윗눈꺼풀 가장자리에서 꽤 멀리 떨어져 지나는 경우에는 겹눈꺼풀, 즉 이른바 <쌍꺼풀>이 된다. 몽골주름의 분포는 민족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한국인(남한) 62.8%, 중국인(남부) 100%, 일본인 100%, 말레이시아인 70∼80%, 자바인 52%, 인도인(벵골주) 0.7%이다.


101.냠웨지족(Nyamwezi) 


탄자니아 서부에 사는 반투어계(語系)부족. 수쿠마족에 이어 2번째로 큰 부족이다. 인구 약 40만. 작물은 잡곡류·옥수수·고구마·카사바 등을 재배하고, 환금작물로 쌀도 생산한다. 여러 수장국(首長國)으로 나누어져 각 수장국은 수장을 정점으로 한 중앙집권적 정치구조를 갖는다. 수장의 자리는 19세기에 모녀상속에서 부자상속으로 바뀌었으며, 그 밖의 직책은 언제나 부계(父系)로 계승되고 있다. 평민 사이에서는 모계를 따르고 일부다처제도 볼 수 있는데 대가를 지불하고 신부를 산다. 또 입사식(入社式)이 엄한 비밀결사가 많이 있다. 19세기 이후에는 해안지방과의 교역 요지가 되어 아랍상인과의 관계가 깊고 타보라에는 그들의 거주지도 만들어졌다. 조상숭배가 가장 중요한 종교의식으로 되어 있다.


102.네기달족(Negidaltsy) 


러시아연방의 극동지방, 아무르강 하류와 암군강 지역에 거주하는 원주민. 인구는

500(1979). 그 가운데 1/2 이상이 러시아어를 국어로 사용하고 있다. 네기달은 <강변 사람>의 뜻이고, 엘칸베이에족이라고도 자칭하지만, 민족의 기원은 에벤키족이다. 네기달어는 퉁구스 만주어계에 속하며 특히 에벤키어에 가깝다. 문화적으로는 이 지역의 다른 어로민(漁撈民;우리치족·오로치족·니브히족)과 많은 공통점을 가진다.


103.네네츠족(-族 Nenets)


북러시아와 서시베리아의 북쪽에 펼쳐진 툰드라지대(북드비나강 하구에서부터 예니세이강 하구까지)와, 예니세이강 중류 이북의 삼림지대에 사는 사모예드계의 민족. 툰드라에서 순록 사육에 종사하는 유목형의 툰드라네네츠족과 타이가지대의 수렵·어로민(漁撈民)인 삼림네네츠족으로 크게 나뉜다. 인구 5만 5000명(1989), 그 중에서 삼림네네츠족은 약 1000명 정도이다. 네네츠족은 사모예드의 여러 종족 중 최대의 집단(인구비율은 8할 이상)으로서, 옛날에는 단순히 사모예드, 그 밖에 유라크, 유라크 사모예드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1917년의 혁명 후 <인간>을 뜻하는 <니에네치>에 어원을 둔 네네츠로 개칭되었다. 툰드라네네츠족은 축치족이나, 코랴크족과 마찬가지로, 순록의 큰 무리를 유목하고 있어, 그 생활문화를 전면적으로 순록에 의존하고 있다. 순록의 털가죽으로 만든 후드(방한모)가 달린 마리카(털을 안쪽으로 하여 만든 밀폐옷)는 한랭기후에 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4.네와르(Newar) 


네팔의 카트만두 분지에 사는 사람들. 분지의 높이는 약 1300m이며, 모국어는 티베트·버마어계의 네와르어이다. 예부터 도시문명을 가꾸고, 1769년 사하왕조에 의해서 현재의 네팔왕국이 통일되기 전에 분지와 그 주변을 판도로 하는 몇 개의 왕조를 세웠다. 7세기 전후 수세기에 걸쳐 존재한 리챠비왕조의 번영은 중국의 사서(史書)에도 보이고, 또 13∼18세기의 말라왕조시대에는 건축·조각 등의 공예와 학문을 꽃피웠다. 오늘날 네와르는 일반적으로 상재(商才)에 밝은 사람들로 알려져, 전체 인구의 절반 정도가 분지 외의 마을로 진출하여 상업·관청 등에 근무하고 있다. 또 이전에는 티베트와 인도 사이의 중계무역도 성행하여, 이것이 분지내 여러 도시 번영의 커다란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분지 내에는 카트만두시(市)에서 상업에 종사하는 네와르가 특히 많지만, 다른 마을에서는 농업인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농업은 벼를 앞갈이, 소맥(小麥)·고구마 등을 뒷갈이로 하는데 네팔의 다른 지역에 비해 토지생산성이 높은 편이며 목축의 중요성은 낮다. 또 도시에서는 관리·교직 등에 근무하는 사람도 많으며, 근년에는 토목건축관계의 취업인구도 증가하고 있다. 종교면에서는 토착신앙과 옛 인도에서 전해져 네와르적으로 변모한 불교·힌두교가 뒤섞여 있는데, 의례행위를 행하는 것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며 출가(出家)한 불교승려가 거의 없는 것 등이 특징이다.


105.네즈퍼스족(Nez Perce)


미국 북서부의 아이다호주(州)에서 워싱턴·오리건 두 주에 걸쳐 스네크강 하류 부근에 살고 있는 북아메리칸 인디언의 한 부족. 그 이름은 프랑스어로 <구멍뚫린 코>라는 뜻이다. 페누티어족 중의 서해프틴어(語)를 사용한다. 고원형(高原型) 문화를 기조로 삼았지만, 인접한 평원의 인디언으로부터도 문화적 영향을 받았다. 연어가 거슬러 올라오는 강 근처에 취락을 이루고 초가집에서 살았다. 주식은 말린 연어이며, 사냥으로 잡은 고기와 과실 등을 먹었다. 18세기에 말[馬(마)]이 도입된 뒤 그들의 생활은 급속히 변모되어 멀리 로키산맥을 넘어 들소사냥 또는 교역을 위한 원정도 하였다. 전투나 승마의 풍습은 대부분 평원에 사는 인디언으로부터 배웠다. M. 루이스와 W.


106.노가이족(Nogaitsy) 


러시아연방 북(北)카프카스 남부에 사는 민족. 킵차크한국(汗國)을 세운 터키계·몽골계 유목민의 후예이다. 투르크어계(語系)의 노가이어(語)를 사용하며, 종교는 이슬람의 수니파(派)에 속한다. 13세기 후반 주치 칸의 증손 노가이는 돈강(江)과 다뉴브강 사이의 광대한 지역을 자신의 세력권에 넣었고, 그의 손자 에디규(에디게)는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에 걸쳐 사실상의 독립국인 노가이한국을 세워서 주도(主都)를 야이크강 하류의 사라이티크(사라이쥬크)에 두었다. 아랄해(海)와 카스피해 북쪽 초원의 중심지를 차지해서 상업을 활발하게 하여 16세기에 와서는 모스크바와 카잔에 매년 수만 마리의 말과 양을 출하하였다. 16세기 후반에 카잔과 아스트라한 등 두 나라가 멸망한 뒤에는 대(大)노가이·소(小)노가이·알티울 등 세 나라로 분열되었다. 1634년 몽골계 칼미크족의 침입으로 볼가강의 좌안(左岸)을 잃고 우안으로 옮겼으며 그 뒤에도 계속 남쪽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서 노가이족의 일부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들였고 일부는 터키령으로 이주하였다. 그들은 1917년 러시아혁명 때까지 유목민이었으나 지금은 대부분이 정착을 하여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하고 있다.


107.노르만인(Normans) 


스칸디나비아반도 및 덴마크를 본거지로 하는 게르만의 일파. <북쪽 사람>을 뜻하며, 원래는 북(北)게르만인과 바이킹을 가리켰는데, 바이킹이 서유럽 방면으로 남하함에 따라 역사적으로는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① 9~11세기의 바이킹 및 그 고국의 주민(스칸디나비아인)을 서유럽에서는 노르트만니(Nortmanni) 또는 노르만니(Normanni)라 불렀는데, 이것은 고(古)북유럽어의 <norð(북)>와 <maðr(사람)>의 복수형 menn의 합성어의 라틴어 표기이다. 오늘날 <노르웨이인>은 노르웨이어로 Nordmann, 덴마크어로는 Nordmand라 표기되며, <노르만>으로 발음된다. 여기서 영어의 노스멘(Northmen), 프랑스어의 노르망(Normans, Normands)이 생겨났다. ② 덴마크계를 중심으로 하는 바이킹의 한 그룹은 9세기 초부터 센강 하류지방을 근거지로 삼고 있었는데, 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라인강 하구지대(河口地帶) 및 잉글랜드에서 패퇴한 바이킹도 흡수하였다. 911년 서(西)프랑크의 단순왕(單純王) 샤를 3세는 이들 센 바이킹의 수령 롤로와의 사이에, 그들이 현실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지역을 봉토(封土)로서 주는 대신에, 샤를을 왕으로 섬기고 그 신하가 되는 봉건적 주종계약을 맺었다.


108.노르인(Norses) 


고대(古代) 노르웨이 사람. 북(北)게르만족에 속한다. 바이킹시대에 활약하였으며 8세기 말부터 남서쪽으로 셰틀랜드제도·아일랜드·스코틀랜드북부·만섬 등에 침입하여 정복하고 식민지화하였으며 중부 프랑스에도 침입하였다. 9세기 중엽부터는 북서쪽으로 향하여 아이슬란드·그린란드를 발견하여 식민지로 하고, 10세기경에는 아메리카대륙(북아메리카 북동해안의 빈랜드)도 발견하였다고 한다. 한편 노르인의 본토에서도 9세기 말까지 하르단흑왕(黑王)과 그 아들 하랄1세(美髮王)에 의하여 많은 소왕국들이 통합되어 노르웨이 왕국이 건설되었다.


109.뇨로족(Nyoro) 


아프리카, 우간다 서부의 반투계(系) 제족 중의 하나. 바뇨로족·부뇨로족이라고도 한다. 인구 61만(1997). 생업은 피·옥수수·카사바·고구마 등의 농경을 주로 한다. 과거에는 소를 많이 사육하였으나 전쟁과 질병 때문에 현저하게 감소되었고, 지금은 염소·양 등을 주로 사육한다. 전통적으로 무카마라고 하는 왕에 의해서 다스려졌으나, 1967년 우간다공화국의 중앙집권화와 함께 왕제는 폐지되었다. 당시의 왕은 18대 계속된 것으로 생각되는 비토왕조에 속했다. 전승에 따르면 뇨로족의 왕국은 과거에 키타라라고 하는 광대한 <제국>의 중심이었다고 한다. 외혼적(外婚的)인 부계의 씨족이 존재하는데, 씨족은 산재해 있고, 실제 촌락생활에서는 추장의 지배하에 있는 것과 근린관계가 중요하다. 가톨릭 및 프로테스탄트의 교회가 종교와 교육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110.누리스탄인(Nuristani) 


파키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위치하는 힌두쿠시산맥의 남쪽 사면에 사는 산악민족. 이전에는 카피르족(族)이라고 불렀다. 해발 1800m 이상의 험한 산중에 6만∼8만명이 폐쇄적인 사회를 만들고 산다. 카피르(Quafir)의 어원은 아라비아어로, <이교도(異敎徒)> <불신심자<(不信心者)>를 뜻하는데, 1895∼1896년에 아프간인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슬람교로 개종(改宗)되기 전까지는 이 지역은 카피리스탄(이교도의 땅)이라고 불렸다. 이슬람개종 후 그들의 거주지는 누리스탄(빛의 땅)이라고 불리고 카피르족도 누리스탄인(빛을 본 사람)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금발에 푸른 눈이며, 인도유럽어족의 산스크리트에 가까운 말을 가진 것으로 미루어, BC 2000년경 인도에 침입한 아리아인이 기원(起源)인 것으로 짐작된다. 고지(高地)의 산 중턱에 계단식 밭을 만들어 곡물을 재배하고 염소나 소의 이목(移牧)을 한다. 평탄지는 모두 경지가 되기 때문에 그들의 주거는 험한 벼랑가에 건설되는데 돌과 나무로 만들어지고 창이 없어 마치 비둘기집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출입시에는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111누비아족(Nubian) 


아프리카 수단 나일강 유역의 누비아지방에 살며 동(東)수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총칭. 누비아지방은 나일강 와디할파의 제2급류(急流)에서 하르툼 부근 청(靑)나일과 백(白)나일의 합류점(合流點)까지의 일대를 말한다. 누비아 남쪽의 코르도판어를 사용하는 누바족과는 다르지만 누바구릉(丘陵)에 사는 누비아인의 일부는 누바족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있다. 고대로부터 누비아인은 피부색으로 보아 북부의 <빨간 노바>와 남부의 <검은 노바>로 구분되고 있었다. <검은 노바>는 누바족의 선조라고 생각되며 그들의 사회조직·관습·신앙 등은 아프리카적 요소가 강하다. 한편 누비아인의 선조로 생각되는 <빨간 노바>는 강건한 코카소이드(백인종)의 신체적 특징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기원적으로는 흑인종이지만 고대이집트인이라든가 아랍인, 또는 터키 등 아시아인과의 오랜 혼혈(混血)의 결과라고 여겨진다. 누비아에는 고대부터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국가, 그리스도교국가, 이슬람국가 등이 발흥(勃興)했다. 현재 그들은 바라브라·빌크트·디린 등 몇 개의 집단으로 나뉘어 있다. 주로 농경(農耕)을 하지만 목축을 중시하는 집단도 있다. 주된 작물은 잡곡인 기장, 그리고 사탕수수·수박·호리병박·오크라·참깨 등이다.


112.누에르족(Nuer) 


아프리카의 수단 남부 나일강과 그 지류인 바하르강·아르가잘강·소바트강 유역의 평원에 사는 목축민. 아우족이라고도 하며 스스로는 나아스라고 한다. 1930년대 영국의 사회인류학자 E.E. 에번스 프리처드가 누에르족을 다룬 3부작 민족지(民族誌)를 저술했다. 이에 의하면 누에르어(語)는 동(東)수단의 여러 언어 중에서 서나일어계(系)로 분류된다. 인구는 1930년대에 20만이었으나 1960년대에는 30만으로 늘었다. 이 수치는 인접한 딩카족을 포함한 것으로 이들은 사회적으로 대등한 지위를 얻고 있다. 생업으로는 남성이 소·염소·양을 기르는 목축이 중심이며 여성은 잡곡류재배로써 그것을 보충하고 있다. 젖을 짜는 일은 여성과 미성년의 일로 되어 있다.


113.누족(怒族) 


중국의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 주로 윈난성[雲南省(운남성)]의 리수족 자치주인 비장현[碧江縣(벽강현)]·푸궁현[福貢縣(복공현)]과 궁산[貢山(공산)]의 두룽족[獨龍族(독룡족)]·누족 자치현에 거주한다. 누어(語)는 티베트·미얀마어파에 속하며 방언은 지역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궁산 누어는 두룽어와 비교적 가깝고, 또 누족은 거주지가 리수족과 인접해 있어 리수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을 가리켜 누수[怒蘇(노소)]·아누[阿怒(아노)]·아룽[阿龍(아룡)]이라고 하는데, 한적(漢籍)사료에는 누인[怒人(노인)]·누자[怒子(노자)] 등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역사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 수 없으나 당(唐)나라 때는 남조국(南詔國), 송(宋)나라 때에는 대리국(大理國)에 종속되었으며 원(元)·명(明) 이후에는 나시족[納西族(납서족)]·토사족(土司族)·티베트족·베족[白族(백족)]·리수족의 지배를 받았다고 한다. 고산지에 살며 전에는 화전을 일구는 것이 주된 농업이었으며 옥수수·메밀 등 잡곡을 생산했으나 지금은 소를 부리며 논농사를 짓고 있다. 사회의 기본단위는 일부일처제의 소가족단위로, 혼인은 씨족외혼제로서 교차사촌제가 우선되었다고 한다. 촌락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은 <아샤>라고 불리는 위엄있는 연장 남자로서 촌락내외의 공공사무를 처리하고 무당 역할도 한다.


114.누페족(Nupe) 


서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중앙부의 니제르강과 카두나강의 합류지역에 사는 민족. 인구 130만(1997). 누페어(語)는 계통적으로 남서부의 요루바족과 남동부의 이보족 등의 언어와 함께 니제르 콩고어파(語派)의 쿠아어군(語群)에 속한다. 참마·수수·옥수수·카사버 등 삼림성(森林性)과 사바나성 2종류의 식물을 재배하는 농경민이지만, 대장일도 능숙하고 또 상업에도 능해서 넓은 교역권을 가지고 있다. 요루바족·바리족·이가라족 등과 마찬가지로 누페족 사회는 16세기 이래 성스러운 왕을 받드는 왕국을 형성하였고 17∼18세기에는 사하라사막을 넘나드는 교역의 일부로, 특히 남쪽 산림지역과 북쪽의 보르누·하우사 등의 광역교역 루트를 맺는 요충지로 일찍이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다. 또 주위에 있는 작은 나라와의 전쟁을 통해 노예교역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누페의 왕은 에츠(Etsu)라고 불리었으며 그 기원은 1530년경이다. 그들의 구전설화에 따르면 그 이전의 누페는 통일되지 않은 약소민족이었으며 남방의 이가라왕국에 종속되어 그 조공국(朝貢國)이었다. 이가라왕국의 왕자가 어느날 누페의 땅을 여행하다가 누페추장의 외동딸과 사랑에 빠졌는데, 왕자는 고국에 돌아가 뒤에 이가라왕(아츠타)이 되었으며 누페추장의 딸은 임신을 해서 사내아이를 낳았다.


115.니그로 몽골로이드·


코카소이드와 함께 인류 3대 인종군(人種群)의 하나. 네그로이드라고도 한다. 또 피부색이 검기 때문에 흑색인종이라고 불린다. 라틴어의 negro는 <흑(黑)>, oid는 <∼와 같은>을 의미한다. 주된 분포지역은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인데, 오세아니아 일부도 포함된다. 이 인종군의 공통된 특징은 피부색이 검은 점이지만, 이 인종군에 속하는 모두가 공통의 조상에서 유래된다고는 할 수 없다. 따라서 이것은 전통적인 구분이고 편의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계통적인 친근성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피부의 색이 짙은 것은 표피(表皮)와 진피(眞皮)의 접합부에 멜라닌색소가 침착(沈着)하기 때문이며, 이것이 태양광선중의 자외선 투과(透過)를 막는다. 자외선 중의 일부는 피부에 화상(火傷)과 같은 손상을 주기 때문에, 햇빛이 강한 저위도(低緯度)지대에서는 피부색이 짙은 쪽이 유리하다. 물론 피부색이 짙으면 햇빛 중의 열선(熱線)을 보다 많이 흡수하기 때문에 체열(體熱)을 발산시키는 한선기능(汗腺機能)도 그것에 수반하여 왕성해야만 한다.


116.니그리토족(Negritos) 


니그로이드의 하나. 아프리카 콩고분지·동남아시아 각지·오세아니아에 사는 왜소한 흑인족을 말하는데, 특히 안다만섬 사람·말레이반도와 동수마트라의 세망족·필리핀의 아에타족·뉴기니의 타피로족 등을 가리킨다. 150㎝ 정도의 작은 키에 고수머리·한선(汗腺)과 피지선(皮脂腺)의 발달 등 공통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나, 피부색·팔다리 길이·체모(體毛)의 다소 등은 지역에 따라 다르므로 동일한 조상을 가졌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아시아에서 가장 미개한 문화생활을 하며, 단순한 채집·수렵단계에 머물러 있다. 안다만인은 독자적인 언어를 가졌으며, 세망은 오스트로네시아어, 아에타는 인도네시아어를 사용하고 있다.


117.니코바르제도민(-諸島民 Nicobarese)


인도령 니코바르제도의 원주민. 언어적으로는 모두 오스트로아시아어족에 속하고 6개 방언으로 나누어진다. 대(大)니코바르섬의 오지(奧地)에 사는 반표류(半漂流)적인 숌펜족이 이 제도의 가장 오래된 주민층을 이루고 있으나, 가까이 있는 안다만제도민(諸島民)과는 동족이 아니다. 니코바르제도민은 비교적 키가 작고 피부가 갈색이며 단두형(短頭形;숌펜족은 中頭形)이다. 코코야자·판다누스가 주된 농작물이며, 참마도 재배한다. 돼지·닭 등의 가축을 기르면서 잔치 때 먹는다. 어로생활을 하는데 한쪽에 부목(浮木)이 있는 통나무배를 쓴다. 바닷가에 취락을 이루는데, 가옥은 크고 높은 마루의 둥근 벌집 모양의 것으로서, 그 안에 하나의 비단일계(非單一系) 혈연(血緣)집단이 산다. 취락이 정치단위이고, 취락내에서 가장 오래 된 혈연집단의 장(長)이 그 취락의 장이 된다.


118.다게스탄제족(-諸族 〔러〕narodnosti Dagestana)


카프카스지방에 거주하는 여러 민족의 일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카프카스제어 (諸語) 중 다게스탄어군(語群)에 속하는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다게스탄에 거주하는 여러 토착민족에 대한 총칭이다. 후자의 경우 터키어계의 언어를 사용하는 쿰이크인·노가이인을 포함한다. 고대 카프카스알바니아왕국과 중세 그루지야왕국이 노력하여 남부를 중심으로 그리스도교화가 진행되었으나, 16세기까지는 이슬람교 수니교파가 압도적이었다. 이란어계 타티어를 사용하는 유대교도가 소수 남아 있다. 고대에는 거주지역이 휠씬 넓었으며 일부 민족은 카프카스알바니아왕국을 세웠다. 중세에는 교역의 중계지점 데르벤트가 발전하였고, 12세기부터는 아바르족의 사리르국, 라크족의 샴하르, 카이터그의 우스미 등 봉건국가가 발전하였으나, 19세기 초 러시아령에 병합되기까지 통일국가는 성립하지 않았다. <언어의 숲>이라 부를만큼 극단적인 다언어지역이나 대체로 같은 문화를 가지며, 혼인도 족내혼이 지배적이었다.


119.다곰바족(Dagomba) 


가나 북부에 살며 니제르·콩고어파(語派)의 구르 제어(諸語)인 다그바네어를 사용하는 종족. 자칭 다그밤바라고 한다. 1874년 아샨티족이 영국군에게 패할 때까지 연공(年貢)으로 노예를 바쳤다. 농업이 생업의 중심으로 옥수수·얌감자·땅콩 등을 재배하며 이동경작을 한다. 가축도 사육하며 수렵과 어업도 한다. 사회조직은 평민과 족장가족으로 구분된다. 평민 사이에서는 부계혈통이 형성되어 그것이 계층적인 몇 개 조로 나뉘며, 각 조는 지위에 상응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조상숭배와 토지신앙이 주요한 의례이다. 족장계급에서는 부계와 모계 양쪽을 통해 한 사람의 조부 또는 대조부의 모든 자손으로 구성된 친족집단이 중심이 된다. <야 나>라는 전추장의 아들만이 정권을 잡을 수 있다.


120.다아에족(Daae) 


카스피해 동쪽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이란계 투란민족. 다하에라고도 한다. 이 민족의 한 지파인 파르니족이 BC 3세기에 파르티아지방으로 남하하여 파르티아왕국을 형성했다.


121.다우르족(Daghur)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 중국어로는 다흐르[達呼爾(달호이)]·다가르[達斡雨(달알우)]·다후얼[打虎兒(타호아)], 영어로는 Dafur·Daghur로 표기한다. 다우르(Daur)·다구르(Dagur)라고도 한다. 인구 약 13만(1997). 중국의 싱안령[興安嶺(흥안령)]과 넌장강[嫩江(눈강)]유역에 주로 거주하는데, 다우르족의 일부는 신장[新疆(신강)] 위구르자치구의 타청현[塔城縣(탑성현)]에 거주하기도 한다. 그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분명하지는 않다. 16세기에 청조(淸朝)로 귀순하여 솔론(Solon)·오로촌(Orochon) 등의 퉁구스족과 함께 프토하팔기(八旗)·주팡[駐防(주방)]팔기에 가담하여 러시아의 남하에 대한 방비 역할을 하였다. 또한 중국 각지, 널리는 신장에까지 원정하여 용맹을 떨쳤다. 다우르어는 퉁구스어계(系)와 함께 퉁구스어와 몽골어의 혼합, 또는 옛 형태를 남긴 몽골어의 하나라고 한다. 솔론족 등 퉁구스의 여러 족과 함께 거주한 결과 언어뿐만 아니라 많은 문화요소에서 퉁구스 여러 족의 영향을 받았다.


122.다코타족(Dakota) 


미국 그레이트 플래인스에 거주하는 평원 인디언부족. 수족(Sioux族)이라고도 한다. 수는 앨곤킨계제속(系諸族)들이 부르는 이름이며, 그들 스스로는 다코타라고 한다. 언어는 수어족(語族)의 수어를 사용하며, 동부의 삼림지대로부터 서부의 미주리강 유역까지 펼쳐지는 7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다. 평원인디언 중 가장 강력한 세력을 자랑하며, 백인의 침입에 대해서도 가장 격렬하게 저항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1876년 S. 불 등의 인솔로 커스터장군 지휘하의 제7기병대를 전멸시킨 리틀빅혼전투는 유명하다. 또한 1890년 운디드니에서 학살되어, 인디언 반항의 최후를 장식한 것도 다코타족이었다. 생활상은 다른 평원인디언과 기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는데, 채집수렵과 간단한 농경을 겸하는 경제생활이 말의 도입과 동시에 들소 사냥에 전면적으로 의존하게 되었다. 티피라는 원뿔형 텐트에 거주하며, 밴드, 즉 몇 가족으로 구성된 정치·경제상의 공동집단으로 나뉘어서 생활하고 있는데, 각 밴드는 독립해 있으며, 지도자는 선견지명과 무용(武勇)을 겸비한 개인적인 능력에 따라 선출되었다.


123.다호메이족(Dahomey) 


17세기 서아프리카에서 번성했던 군주독재적 전제국가인 다호메이왕국을 세운 사람들의 후예. 1975년에는 국명을 다호메이에서 베냉으로 바꾸었고, 그 중에는 다수의 민족집단이 포함된다. 폰족(80만)·아쟈족(25만)이 대표적인 부족인데, 폰족은 자주 다호메이족이라고 부른다. 폰족은 주로 농경민이며, 주요작물은 옥수수·얌토란·카사바·오크라(果菜)·면화·기름야자·카카오 등이다. 강과 해안부에서는 어업도 한다. 부계출신에 근거하는 씨족이 있는데, 이들은 넓은 지역에 분산되어 있으며, 중요한 것은 지역적으로 정리된 부계 리니에지(공통 조상을 갖고 출신이 같은 집단)이다. 그 최연장인 남성이 리니에지장이 되어 리니에지회와 의례(儀禮)를 주도할 권위를 가졌다. 일부다처가 보통이고, 남편은 여러 아내 가운데 한 여인과 4일(다호메이의 1주일) 동안 함께 지내며, 그동안 그녀가 남편의 식사시중을 든다. 조상숭배의 제도가 발달되어 있고, 다호메이왕국의 역사적 영향 때문에 사회계층이 남아 있는데, 조령(祖靈)도 몇 종류로 나누어져 계층화되어 있다. 각 가족은 제단과 조상의 사당을 가지며, 예배를 통하여 조령과의 밀접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124.도로보족(Dorobo) 


아프리카 케냐 서부 및 북부의 넓은 지역과 얼마 되지는 않지만 탄자니아와 우간다에 작은 그룹으로 나뉘어 사는 수렵채집민의 총칭. 그들의 언어는 여러 가지이며, 쿠시어(語)·마사이어·카렌진어 등이 포함된다. 도로보라는 이름은 마사이어의 일 도로보(가난한 사람이라는 뜻)에서 파생한 스와힐리어로 만들어졌다. 이들 그룹 가운데에는 오키에크(Okiek)·사니에(Sanye)·코르코로(Korkoro)·다할로(Dahalo)·산다웨(Sandawe)·이크(Ik)·야크(Yaak)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카렌진어에 가까운 언어를 사용하는 오키에크로서, 케냐의 삼림지대 전역에 30개 이상의 작은 무리로 나뉘어 살고 있다.


125.도리아인(Dorians) 


고대 그리스인의 한 분파로, 도리스방언을 사용한 종족. 도리스인이라고도 한다. 도리아인은 BC 1200∼BC 1100년경 북방에서 펠로폰네소스반도로 침입해 왔다고 생각되었는데, 최근에는 미케네문명을 파괴한 종족은 <바다의 백성(BC 13세기 말부터 BC 12세기 초에 걸쳐 리비아 및 해상에서 이주지를 찾아 이집트를 공격한 동지중해의 여러 종족)>이고, 그 후에 도리아인이 왔다는 설이 유력해졌다. 도리아인은 그곳에서 크레타·로도스·소아시아연안 남부로도 이동하였다. 3부족구성(三部族構成)을 특징으로 하고 원시적 성격이 남아있지만, 그들을 본래 이오니아인과는 다른 강건한 북방인종이라고 하는 설은, 같은 도리아인인 후세의 스파르타인을 근거로 전체를 짐작하는 것으로서,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126.독일인(獨逸人 Deutsche)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독일어를 사용하며 독일·스칸디나비아·네덜란드 및 영국 남부지역에 분포하는 사람들. 독일사람도 다른 유럽국가의 주민들처럼 많은 족속과 고대인의 혼합민족이다. 수백년 동안 자치제와 개인적 자유와 민족적 통일을 이루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소독립국가로 분할되어, 절대지배자나 제후들의 지배를 받아 왔다. 북독일 사람들은 대부분 북부형인 노르만족에 속하며 푸른 눈동자와 고운 모발 및 피부, 타원형의 머리에 키가 큰 것이 특징이다. 남부 독일에는 고산지대의 종족형태인 알프스인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백인종으로 갈색·밤색의 두발과 허리가 길고 사지가 짧은 163㎝ 정도의 신장을 가지며 머리가 단두(短頭)인 것이 특징이다. 매사에 완벽을 기하려는 독일사람들의 속성은, 문학·철학·과학·음악·공업 및 군사적 정복 등 모든 분야에 잘 나타나고 있다. 독일인의 고대풍습 및 시대별 풍습은 산악과 삼림 등 상호교류에 불리한 자연조건으로 인하여 단절된 채 여러 지방에서 독자적으로 보전되어 왔으며, 그러한 모습들이 오늘날에도 유지되어 독일인의 특성·문화 등을 형성하고 있다.


127.동고트족(東Ostrogoths) 


동게르만계 고트족의 한 분파. 고트족은 1세기경 비슬라강의 하류지역에 정착, 3세기말 도나우강 하류지역과 흑해 북서안으로 이동하여 동고트족과 서고트족으로 분리되었다. 370년경 훈족에게 정복당했으나 474년 독립, 아마라가의 왕권이 확립되었다. 테오도리크대왕은 483년 로마령 다키아·모에시아, 488년 이탈리아를 침입, 오도아케르를 격파하여 동고트왕국을 세웠다. 테오도리크는 로마인을 등용하여 로마인과의 융합을 꾀하며 왕국을 융성시켰으나, 신앙상 대립으로 로마교황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그의 사후, 비잔틴제국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전쟁을 일으켰고, 동고트족은 토틸라를 중심으로 저항했으나 555년 멸망하였다.


128.동이(東夷) 


중국의 동북방에 분포한 민족을 중국인이 부르던 명칭. 산둥[山東(산동)]반도로부터 회사유역(淮泗流域)에 분포된 이들 집단이 <이(夷)>라고 불리게 된 것은 은(殷)시대부터이며, 서주시대(西周時代)의 금석문에는 동이·남이·회이라는 명칭이 보인다. 그 후 중국인들이 점차 여러 종족의 차이를 인식하면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남쪽의 제민족을 남만(南蠻), 북방의 제민족을 북적(北狄), 서방의 제민족을 서융(西戎)이라 하고, 동방 제민족을 동이라 했다. 따라서 <동이>란 특정한 종족을 지칭한 고유명사라기보다는 중국의 한문화(漢文化)와 상대적인 문화개념으로 호칭된 것이었다. 그러나 한족의 활동영역이 확대되면서 일정한 종족적 개념의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한편 《후한서》 《삼국지》의 <동이전>에 기록된 동이에는 읍루·왜(倭) 등도 포함되어 있다. 동이에 관해서는 흑도문화와의 관련성, 무문토기·청동기문화의 담당자 역할 등 연구되어야 할 과제가 많다.


129.동호(東胡)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부터 한(漢)나라 초기까지 내몽골 동쪽에 있었던 수렵목축민족(狩獵牧畜民族). 흉노(匈奴), 즉 호(胡)의 동쪽에 거주했다는 뜻으로서의 호칭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직접 이웃한 연(燕)나라가 동호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상곡(上谷)·요동(遼東) 등에 5군(郡)을 설치하고는 동시에 지금의 허베이성[河北省(하북성)] 회래(懷來)에서 랴오닝성[遼寧省(요녕성)]의 요양(遼陽) 사이에 장성(長城)을 구축하고 이들의 기마병을 방어하였다. 진(秦)에 이르자 동호는 더욱 강해져서 서방의 대월지[大月氏(대월씨)]와 더불어 흉노를 위협했으나, 전한(前漢) 초기에 흉노의 묵돌선우[冒頓單于(모둔단우)]에게 급습당하고 괴멸되어 그들의 세력하에 들어갔다. 흉노는 동호왕(東胡王)을 두어 이를 지배하였으며, 오환(烏桓)·선비(鮮卑)·거란(契丹) 등은 동호의 후예라 한다. 동호란 퉁구스의 음역(音譯)이라고 하는 퉁구스설(說)이 있으나, 이는 다만 흉노 즉 호의 동쪽에 거주했다는 의미이고, 민족계통에 관해서는 몽골계(系)를 주로 하여 여기에 퉁구스계가 혼합된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130.두룽족(獨龍族)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 인구는 약 4700(1982). 주로 윈난성[雲南省(운남성)] 북서부인 궁산두룽족누족자치구[貢山獨龍族怒族自治區(공산독룡족노족자치구)]의 두룽하곡(河谷)에 거주한다. 두룽어는 티베트·미얀마 계통에 속하며 궁산에 거주하는 누족의 언어에 가깝다고 일컬어진다. 문자는 없고 목각이나 결승(結繩)으로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한적사료(漢籍史料)에는 구인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역사에 관해서는 상세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당(唐)시대에는 남조국(南詔國)에, 송(宋)시대에는 대리국(大理國)에 예속됐었다고 한다. 원(元)·명(明)·청(淸)시대에는 나시족[納西族(납서족)]의 토사(土司)인 여강목씨(麗江木氏)의 지배 아래 있었다고 하며, 중국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타이족 토사와 리쑤족 두인(頭人)의 지배도 받았다. 고지에서 살며 주요 생업은 화전을 일구어 옥수수·조·메밀·피 등을 주식으로 하고 수렵과 채집이 생산활동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논농사도 짓고 있다. 두룽강 유역에는 15씨족이 존재했으며, 각 씨족은 다시 아씨족(亞氏族)으로 나뉘었고, 그 아씨족장은 <카샹> 또는 <카상>이라 하여 생산활동과 제사의례를 주관했다.


131.두순족(Dusun) 


말레이시아 사바주(州) 보르네오섬 북부의 원주민 종족. 쿠다트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해안평야지역과 탐부난 산지 등에 살고 있으며 프로토 말레이 종족에 속한다. 오스트로네시아 계통의 카다잔어(語)를 쓴다. 전통적으로 200명 가량이 살 수 있는 목조의 긴 연립식 주택에서 큰 혈족집단을 이루는데 근래에는 소규모의 가족단위로 독립가옥에서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주로 관개농업에 의한 논농사를 지으며 화전개간으로 밭벼[陸稻(육도)]·옥수수·고구마 등도 생산한다. 고무생산에 있어서도 두순족의 비중이 크고, 보르네오섬의 원주민들 중 가장 먼저 쟁기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2.드라비다족(Dravidian) 


인도 남부에 거주하며 드라비다계(系)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의 총칭. 북인도 사람들에 비해 몸집이 작으며 피부가 검은 편이다. 건조한 내륙지방에서는 주로 잡곡 경작을 하며 일반적으로 인구가 희박하나, 해안지대 일부에서는 논이 집중되어 중세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힌두 소왕국 집단이 성립하였다. 신분(카스트)관계가 공고해서 혼인범위가 퍼지지 않고 특히 교차적인 사촌간 혼인이 많다. 또 여성의 높은 지위 등, 드라비다계 사회의 공통된 특징은 중세 힌두 소왕국의 지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도시의 힌두사원인 브라만(바라문) 제사의 종교와 촌락의 비(非)브라만 제사의 동물공희(動物供犧)·사령신앙(死靈信仰)이 복합된 드라비다계 종교도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갖는다. 형질적·문화적 공통성이 뚜렷하지 않은 드라비다계사람들의 일체성을 강조하는 것은 1940년 이래의 정치적 경향이다. 1944년에 현재의 타밀나두주(州)에서 당을 결성한 드라비다 카즈건이 1950년 전후의 공산당 운동을 계승한 형태에서 농민주체의 민족주의적 개혁운동을 전개하고, 1960년대에 공산당·사회당과 함께 드라비다 분리독립운동을 전개하여 큰 치안문제를 야기하기도 하였다. 힌디어의 단독 공용어화(化)에 대해 드라비다의 주요 언어인 타밀어의 공용어화를 주장하여 득표를 늘렸으며, 1967년에 타밀나두주의회의 단독 과반수를 획득한 민족주의 정당 드라비다 무네트라 카즈건(DMK;드라비다 진보연맹)도 <드라비다>의 현대적 용법의 좋은 예이다.


133.드루즈족(Druze) 


중동지방에 거주하는 이슬람의 소수파로 구성된 호전적인 민족. 인구는 1995년 현재 약 40만 명으로, 시리아에 약 반수가 살고, 그 외 레바논, 이스라엘, 요르단에 살고 있으며, 아랍어를 사용하고 있다. 1년 중 대부분이 덥고 건조하며 겨울인 12월에서 2월까지에만 온화하고 비가 내리는 날씨를 보인다. 11세기 전반 드라지목사가 카이로에서 제창한 교리를 신봉하며, 그것이 드루즈의 부족이름이 되었다. 그 교리는 신은설(神隱說)을 가진 점에서 이스마일파 중의 한 파라고도 하며 메시아주의·그노시스파·신플라톤주의 등이 절충되어 있다. 드루즈가 십자군에 반항하고 오스만제국 시대의 영신(領臣)으로 활약한 사실은 역사에도 수록되어 있다. 교파는 2갈래로 나누어져 있으나 교리는 비밀로 되어 있고, 그 규율에 따라 부족의식은 강하고 결속이 단단하다. 사회는 전통적 습관을 유지하고 있지만 여성의 지위는 다른 이슬람 문화의 여성들에 비해 아주 높아 남성들과 대등하며, 일부일처제가 철저히 지켜지고 여자도 이혼을 요구할 수 있다. 금욕·금연·금주를 엄격히 지키며 부락을 형성하여 주로 농사를 짓는다. 이들의 거주지는 대부분이 사막이다.


134.디나르인종(Dinaric race)


코카소이드(백색인종계)의 한 아인종(亞人種). 아드리아인종이라고도 한다. 단두(短頭)로 머리 나비가 넓다기보다 후두부가 납짝한 이른바 절벽두(絶壁頭)이다. 대후두공(大後頭孔)과 외청도(外聽道)는 현저하게 뒤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머리는 높고 얼굴도 길다. 앞이마는 경사지고, 코는 크며 돌출해 있고 콧마루는 볼록하게 나와 있다. 이러한 점들은 아르메노이드와 유사하나, 그들과 달리 코의 살집이 두텁지 않으며 코의 나비도 좁다. 아래턱은 돌출해 있고, 눈과 모발은 변이가 심하나 전체적으로 짙은 색이다. 키는 큰 편에 속한다. 아드리아해 연안에서 발칸반도의 산간지방에 걸쳐, 특히 유고슬라비아·알바니아 및 오스트리아의 티롤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다.


135.디아귀트족(Diaguita) 


에스파냐인이 침입하기 이전에 칠레 북부와 아르헨티나 북서부의 산악지방에 거주했던 소수부족. 디아귀트어를 사용하였으나, 언어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 아라우카노족·아타카마족 등과 함께 잉카제국의 변경에 살았던 부족이다. 안데스 산악지대의 경사진 곳에 계단식 밭을 경작하고 라마·알파카를 방목하면서 수렵도 하였다. 토기·목조(木彫)·골기 등의 발달도 현저하고 그 문화에는 잉카의 영향도 찾아볼 수 있으나 잉카제국 내의 여러 부족과 접촉하기 이전부터 토착문화가 발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136.딩카족(-族 Dinka)


남부 수단의 나일강 유역에 거주하는 나일로트계 목축민. 자칭 지엥(Jieng)이라고 한다. 주거지인 딩카랜드는 합류하여 백(白)나일강이 되는 엘제베르강과 엘가자르강으로 좁혀진 광대한 사바나와 습지대로 되어 있다. 자연자원이 적고 생활필수품의 대부분은 초목과 진흙, 동물로부터 얻는다. 재산이라고는 가축뿐이지만 그것을 다음 세대에 안정되게 양도하는 것이 어려운데, 이것은 딩카족의 평등주의와 관련되어 있다. 우기에는 목초지가 물에 잠기기 때문에 마을에서 농경생활을 한다. 우기가 한창일 때에는 소를 사바나로 몰고 가서 캠프를 만들고 건기가 되면 캠프를 해산하고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또한 물이 빠지면 어로도 행해진다. 딩카족은 하나의 정치적 단위가 아니라 약 25개 부족의 연합이다. 각 부족은 몇 개의 아부족(亞部族)으로 나뉘고, 아부족 단위로 연령층이 형성되어 이름이 붙여진다.


137.라디노(ladino) 


멕시코 남동부 치아파스주와 과테말라에서 백인과 인디오의 혼혈을 가리키는 말. 백인과 인디오의 혼혈은 일반적으로 메스티소라고 불린다. 혼혈은 원래 생물학적인 개념인데 인디오와 메스티소(라디노)의 분류가 엄밀한 생물학적 근거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유전자 차원에서는 순수한 인디오는 이미 있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중요시하는 것이 사회문화적 의미 부여인데, 라디노라는 말에는 그런 측면의 뜻이 강하게 들어 있다. 라디노란 외부에서 인디오공동체에 섞여 들어가서 공동체의 사회규범에는 따르지 않는, 인디오와는 다른 문화권의 사람, 즉 <타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본래 인디오였던 부부가 그들의 공동체를 떠나 도회지에서 살면서 다른 생활 양식을 몸에 익히면 그 자녀들은 라디노가 된다.


138.라메트족(Lamet) 


라오스 북서부의 산악지대에 분포하는 민족. 인구 약 6000. 아우스트로아시아어족의 몽크메르어족에 속하는 라메트어를 사용한다. 산간의 평지에 평균 14∼15호의 취락을 이루며 취락중앙의 광장에는 남성 집회소가 설치된다. 1년 경작한 토지를 12∼15년 휴한지(休閑地)로 하는 방식의 화전경작을 해서 찹쌀·조·카사바·타로감자·참마 등을 재배한다. 화전경작 작업은 공동으로 하며 토지는 모두 공동소유로 되어 있다. 부계(父系)의 단계혈연집단(單系血緣集團)을 이루는데, 이것이 외혼(外婚)의 단위가 되며, 모계 쪽의 재종형제자매와 혼인을 하는 규제혼(規制婚)의 관습을 볼 수 있다. 신랑 쪽에서 신부 쪽에 지불하는 신부 대상(代償)의 반대급부로 장인이 사위에게 창(槍)을 주는데 그 때 산 짐승을 잡아 의례를 갖춘다. 혼인을 한 뒤 신부의 대상 지불이 끝날 때까지의 기간은 처가에서 살게 되나 지불이 끝나는 동시에 신랑집에서 살게 된다. 물소·징 등을 비축함으로써 마을에서 부자계층인 렘의 위계(位階)에 오를 수 있다.


139.라무트족(Lamut) 


러시아연방 야쿠티야공화국 동부 오호츠크해 연안에 거주하는 소수민족. 만주-퉁구스어에 속하는 라무트어(에벤어)를 사용한다. 라무트라는 호칭은 라무(바다)에서 유래하며 현재는 에벤(Eveny)이라고도 한다. 전통적으로 수렵·어로와 토나카이사육을 생업으로 한다. 토나카이의 먹이인 지의류(地衣類)가 풍부하여 사냥감이 많은 장소를 찾아 이동하면서 생활한다. 수렵대상은 식용으로 야생토나카이·사슴 등, 모피용으로 여우·담비·족제비 등이며, 곰·이리도 수렵한다. 어로를 주된 생업으로 하는 라무트족은 초여름에 해안에 집을 지어 거주하고 겨울이 되면 내륙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대부분이 정착생활을 한다. 그 밖의 북방아시아 여러 종족과 마찬가지로 샤머니즘이나 동물의 영, 산신에 의례를 지낸다. 부계사회이며 씨족외혼제를 취한다.


140.라스(Laz) 


터키 동부 트라브존에서 국경을 넘어 그루지야의 흑해 연안지대에 사는 카프카스계 소수민족. 인구는 터키측 6만 명, 그루지야 1000명 남짓하다. 고대부터 전투적이며 독립심이 강한 민족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자신들의 국가는 건설하지 못하고 이 지역에서 흥망했던 여러 국가에 복속하였다. 1461년 트레비존드(트라브존)제국(帝國)이 멸망한 이후 오스만제국 통치하에 들어가자 수니파 이슬람교도로서 터키화가 촉진되었다. 19세기 후반 오스만제국의 개혁기에는 트라브존 밑에 라지스탄주의 설치가 인정되었다. 현재는 터키공화국의 리제주를 구성하고 있다. 농민은 밀·보리 외에 차 재배에 종사하고, 그 밖에 어로(漁撈)·해운업자로서 해외로 나가는 사람도 많다. 근면하고 교육수준도 비교적 높다. 남자는 머리에 검은 천을 두르는 민족의상과 백파이프에 맞추어 춤추는 용감하고 씩씩한 민족무용인 호론이 유명하며, 여자는 예로부터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141.라에티(laeti) 


로마 제정기(帝政期)에 제국 내에 정주(定住)당해 농민이 된 외래민족. 주로 투항(投降)하거나 포로가 된 게르만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3세기 이후 많은 게르만인이 주로 갈리아의 국유지에서 토지를 받아 정주하였다. 라에티에게는 이동의 자유가 없었으며, 일부 사람들은 병역의 의무가 있었다.


142.라오족(Lao) 


타이 북부에서 라오스에 걸쳐 분포하는 타이계 민족. 라오족의 언어는 타이어족에 속하며, 선 사시대에는 타이족과 공통되는 기원을 가지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원래 아삼에서 중국 남부에 걸친 지역에 살았는데, 오늘날의 타이족 선조 는 차오프라야강 유역으로 이동하여 차츰 말레 이반도로 남하했으며, 한편 메콩강 및 그 지류 의 유역으로 이동해 정착했다. 메콩강 서쪽 연안 의 라오족 대부분은 타이족의 지배를 받았다. 1991년 라오스에 약 200만 정도, 타이에 약 1000만 정도 살고 있으며, 수전(水田)·화전으로 벼농사를 짓 고, 쌀을 쪄서 먹는다. 곡물·야채·과수를 재배 하고 돼지·닭·오리·물소·소 등을 사육한다. 벼 는 5∼10월의 우기에 심어서 11월의 건기 초에 수확한다. 라오족의 대다수는 불교도이며 젊은사람은 적어도 3개월간의 승려의 수행(修行)을 쌓는다. 불교와 동시에 피이라 불리는 여러 형태의 정령의 존재를 믿고, 각 피이에 대해서 어울리는 의례를 치른다.


143.라이림부(Rai Limbu)


네팔 동부산지의 민족. 라이와 림부로 구성되며 키란티(Kiranti)로 총칭된다. 인구는 라이 약 23만, 림부 약 17만. 언어는 티베트-미얀마어파계(派系)의 라이어·림부어이지만 라이 내부에서는 골짜기를 따라서 분포하기 때문에 다른 명칭을 가진 하위집단(下位集團)마다 방언차가 크다. 또 림부어에는 문자가 있었다고 한다. 림부는 동부(東部) 끝의 메티, 코시주(州), 라이는 그 서쪽의 사가르마타주 골짜기 사면(斜面)의 800~2000m 부근에 산촌(散村)을 형성, 쌀·옥수수 등을 경작하고 소·산양·돼지 등을 사육한다. 경찰관·용병(傭兵) 등이 되어, 인도 등지로 벌이를 하러 떠나는 인구도 많다. 그들의 고유한 토지는 정부에 의하여 키파트로서 지정되고, 개인은 부계집단(父系集團)에 속하여 양도할 수 없고 비과세인 토지공유권이 보증되었다. 이것은 림부 사이에서는 엄격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남아 있다.


144.라틴아메리카인디언 


에스파냐어·포르투갈어로 아메리카대륙의 원주민을 가리키는 명칭. 영어로는 Indian이다. 인도인과 구별하기 위하여서 아메린디오(Amerindio)·아메리칸인디언(American Indians)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명칭이 생겨난 원인은 C.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에 도달했을 때, 그곳을 인디아스(당시에는 동아시아 전체를 가리켰다)로 오해하고 아메리카대륙의 원주민을 인디아스의 주민, 즉 인디오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정복 당시 인디오의 자손이면서 이주자와 혼혈되지 않은 아메리카대륙의 주민을 인디오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는 메스티소, 중앙아메리카에서는 라디노, 남아메리카 안데스지방에서는 촐로 또는 미스티라고 불리는 혼혈과, 인디오의 구별은 생물학적 혼혈 여부를 기준으로 하는 인종구분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중앙안데스에서는 실제로는 혼혈이 아니어도 종래의 거주지에서 이동한 사람은 인디오 고유의 생활양식을 버렸기 때문에 이미 인디오가 아니라 촐로 또는 미스티라고 불린다. 곧, 외래문화와의 동화 여부가 인디오와 촐로·미스티를 구분하는 결정적 기준으로 크게 작용한다. 또한 인디오라는 용어에는 일종의 가치판단도 포함되어 있다.


145.라틴인(Latini) 


본래 이탈리아 중앙부 라티움지방에 거주하며 라틴어 또는 이와 같은 계통의 언어를 사용한 고대민족. BC 7세기 이래 이들은 몇개의 도시를 건설하고, 이 도시국가들 사이에 <라틴동맹>을 결성하였다. 로마인도 원래는 라틴인의 일파이며, 초기의 왕은 라틴계(系)나 사비니계였는데, BC 7세기 말 에트루리아계 왕 밑에서 도시를 건설하였고, 이 도시는 왕정 말기까지 라티움 최대의 도시국가로 성장하였다. 이와 같은 로마에 대하여 라틴동맹은 BC 496년경 레기르스호반(湖畔)에서 일전(一戰)을 치렀는데 그 뒤 로마와 라틴인은 협동하여 식민(植民)하고, 몇개의 도시국가(라틴식민시)를 구축하였으며, 이들은 로마의 긴밀한 동맹국이 되었다. BC 338년 다시 무력충돌(라틴동맹시전쟁)을 한 뒤, 로마는 라틴인의 도시 중 어떤 것은 라틴식민시 또는 독립국으로 머물게 하고, 때로는 로마시민권을 주어 무니키피움(자치도시)으로 하였다. 라틴식민시는 그 뒤에도 다른 종족을 포함시켜 건설되었고, 라틴인이란 호칭은 라틴권(權)을 가진 라틴식민시의 시민이라는 법적 지위를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으며, 제정기(帝政期)에는 속주(屬州)로까지 확대되었다.


146.라후족(拉祜族) 


중국 남서부 윈난성[雲南省(운남성)]에서 미얀마와 타이에 걸쳐서 분포하는 산악 민족. 윈난에는 약 27만 명(1978)이 살고 있고 란창(瀾滄)라후족 자치구(自治區)가 있다. 미얀마에는 6만 6000명, 타이에는 1만 5000명이 거주하고 있다. 타이에서는 뭇소(사냥꾼)라고 부른다. 언어는 티베트미얀마어족(語族)에 속하는 아카어나 리수어와 유사하다. 화전(火田)경작으로 모밀·밭벼·옥수수 등을 재배하는데 중국에서는 논벼[水稻(수도)] 경작이 발전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령(精靈) 니에를 믿으며, 부락에서는 수장과 함께 포쿠라는 종교 지도자의 권위가 높다.


147.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거주 한국인(-中央-居住韓國人)


러시아연방과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국인. 소연방 해체 직전인 1989년 인구조사에서는 총 43만 8700인데, 그중 우즈베키스탄에 18만 3100명, 러시아에 10만 7100명, 카자흐스탄에 10만 3300명이 거주하였다. 연방 해체 후, 정치적 혼란 속에서 다른 공화국으로 많이 이주했기 때문에 각 공화국의 인구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예를들면, 내전이 계속된 타지키스탄에서는 1989년 당시 1만 3400명이었던 인구가 전쟁중 사망자가 많았고 또 피난했기 때문에 2000명 이하로 격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이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중앙아시아에 옮겨진 것은, 그때까지 정착하고 있었던 러시아 극동지방으로부터의 강제이주 때문이다. 우수리강 동쪽이 러시아 영토가 된 직후인 1860년대 초부터 이 지역을 중심으로 러시아로 이주하기 시작하여 1897년에는 2만 4500명으로 증가했고 1905년 이후에는 그때까지의 농업이민과 함께 항일운동의 지도자들이 많이 망명하여 극동 러시아는 독립운동을 위한 유력한 근거지의 하나가 되었다. 1917년의 혁명과 이와 관련된 내전 및 간섭전쟁에도 적극 참가했고 코민테른의 권위를 배경으로 국내 사회주의운동을 지도하는 그룹도 생겼다.


148.러시아인(Russkie) 


러시아연방의 핵심을 이루는 민족. 인구는 1억 7890만 6000(1997)이며, 그 99.9%가 러시아어를 모어(母語)로 삼는다. 본래 거주지는 우랄산맥의 서쪽인 유럽 러시아이다. 러시아연방 이외에서는 유럽 각지·미국·캐나다·중국 등에도 상주하고 있다. 형질적으로는 다른 슬라브 여러 종족과 마찬가지로 동유럽인종에 속하며 중간 키에다 머리털이나 눈의 색깔은 밝지만 다른 종족들과의 혼혈도 생겨났다. 러시아인은 우크라이나인·백러시아인 등과 함께 13세기 무렵까지 고(古)러시아인을 구성하고 있고, 8세기 무렵부터 노르만인의 진출로 인해서 노브고로드·키예프를 중심으로 국가를 건설했다. 현재의 러시아인은 14~15세기의 몽골·타타르에 대한 저항과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한 통일국가 건설 속에서 형성되었다. 모스크바대공국(大公國) 독립 이후 영토는 확대일로를 거듭했고, 19세기에 접어들어 남쪽은 흑해·카스피해 연안으로부터 북쪽은 북극해까지, 서쪽은 폴란드로부터 동쪽은 극동·알래스카까지 미쳤다. 러시아인은 예로부터 농경생활을 했는데, 모스크바대공국이 러시아제국으로 발전함과 동시에 많은 농민이 농노로 변하였다.


149.레즈긴족(Lezgini) 


카프카스 동부 다게스탄공화국과 아제르바이잔 북부에 사는 민족. 인구 46만 6000(2000). 카프카스의 여러 언어 가운데 다게스탄어군(語群)에 속하는 레즈긴어를 사용한다. 예전에는 남(南)다게스탄의 몇몇 민족이 레즈긴이란 이름으로 총칭되었다. 고대·중세에는 그리스도교가 침투하였으나, 중세 후기에는 이슬람화 되었다. 18세기 그루지야동부, 아제르바이잔 북부에 대한 레즈긴족의 상습적인 약탈때문에 이란 정부는 그 대책에 고심하였고, 당시의 그루지야문학은 레즈긴족에 대한 원성으로 가득차 있었다. 레즈긴족은 국가를 형성하지 않고, 작은 공동체로 존재하였다. 오늘날에도 농업·목축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으며, 전통공예인 융단 제조가 유명하다. 문어는 발달하지 않았으나, 구비문학에서 술레이만 스탈스키(1869∼1937) 같은 아슈크(민요·구전 등의 이야기꾼)를 낳았다. 19세기에는 시작(詩作)이 이루어졌다.


150.렐레족(Lele)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카사이주에 사는 반투계(系) 농경민. 부숑족(族) 등과 함께 쿠바그룹에 속한다. 옥수수와 카사바, 라피아야자가 주요 작물이다. 렐레족은 라피아야자로 라피아포(布)를 만들어 주변민족이 생산하는 어육(魚肉)·철제품 등과 교환한다. 덫을 사용하여 수렵도 한다. 촌락이 가장 중요한 사회적 단위로 초원의 숲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형성된다. 남자는 결혼하면 아내를 위해서 높은 울타리로 둘러싼 오두막을 짓는다. 오두막은 부모나 클랜(씨족)구성원의 오두막 근처가 아니고 같은 연령집단의 오두막 근처에 짓는다. 렐레의 남성은 독신기간이 길어서 각 촌락에는 많은 공동 소유의 아내가 있다. 이 <촌락의 아내>가 되는 것은 대단한 영예이며 그녀들은 수장(首長)과도 비교되어 인근 촌락과의 분쟁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151로르족(Lor) 


이란 남서부에서 유목하는 부족. 언어는 쿠르드어에 가까운 이란계의 로르방언을 사용한다. 사파비왕조 때까지 유력한 대정치집단으로 호르시디왕조(1155∼17세기 초)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후 데즈강을 경계로 양분되어, 강의 북쪽에 있던 집단은 <소(小)로르>, 강의 남쪽에 있던 집단은 <대(大)로르>라 불렸으나, 뒤에 바흐티야리족·쿠흐길루에족이라 자칭했다. 다시 19세기 후반 <소로르>가 카비르산맥과 캬르하강을 경계로 동서로 갈라졌는데, 오늘날 로르족이라고 하는 것은 동쪽의 속칭 <피슈쿠흐(Pishkuh)> 지역의 유목민을 말한다.


152.롤로족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이족(彛族)이라 하는데, 과거에는 <롤로족>이라 하였으며, 유럽에서는 아직도 이 명칭을 쓴다. 중국의 쓰촨성[四川省(사천성)] 남부, 구이저우성[貴州省(귀주성)] 서부, 윈난성[雲南省(운남성)], 광시좡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광서장족자치구)] 서쪽이 주된 거주지역이며, 베트남 및 라오스의 북부, 중국·미얀마 국경에 걸쳐서 사는 티베트-버마어계(語系)의 민족이다. 몽골로이드인종에 속하는데, <흑이(黑彛)>는 티베트인과 유사한 신체적 특징이 보인다. 중국령 안의 인구는 540만 명(1983)인데, 가장 많은 윈난에 300만 명, 다음이 쓰촨 130만 명, 구이저우 40만 명, 광시 1만 명이다. 지역에 따라 자칭·타칭의 각종 부족명이 있으나 쓰촨성의 다량산[大凉山(대량산)]·샤오량산[小凉山(소량산)]의 이족을 위시하여 <노스>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중국내 인구의 약 반을 차지한다. 인도차이나에는 윈난에서 서서히 남하한 이족이 살고 있으며, 그곳에서는 주변의 타이족·만족·먀오족 등의 문화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중국내의 이족은 해발고도 1000∼2500m인 산지에 거주하며, 옥수수·메밀·귀리·감자·쌀을 재배한다. 보통 밭농사를 주로 하지만 화전경작과 논농사도 한다.


153.루그바라족(Lugbara) 


우간다 북서부와 콩고(민주공화국) 지역에 사는 수단어계(語系) 농경민. 주작물은 잡곡류·담배·카사바 등이며 채집·수렵도 한다. 부족을 통합하는 중앙집권적 권위가 없다. 일부다처제이며 가축은 혼수품으로 쓰인다. 지역집단은 부계(父系)의 리니지 구성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리니지의 장로(長老)에게는 조상숭배에 바탕을 둔 제사장으로서의 권위가 있고, 조상의 넋은 구성원의 악행에 대한 장로의 노여움에 호응해 그 위반자와 가족들을 병들게 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장로의 권위가 아직 불안정하여 지역집단은 분열을 되풀이하고 있다.


154.루이아족(Luyia) 


케냐 서부 엘곤산에서 빅토리아호반(湖畔)에 걸쳐 살고 있는 반투어계(語系) 여러 부족의 총칭. 인구 약 145만. 루피아족·카비론 반투라고도 하며, 북스족·왕가족·이스하족·디리키족·마라고리족·니아라족 등 18부족이 섞여 산다. 그러나 사회적 관습이나 종교적 관념 등은 약간 다르다. 언어상으로 그들은 동서남북 각 4부로 크게 나뉘고 사회조직은 일정한 영역을 가지는 부계씨족(父系氏族)을 근본으로 한다. 거의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는 농경민이지만 소·염소 등도 많이 기른다. 우간다 쪽에 사는 문화적·언어적으로 관계 깊은 기스족·사미아족 등 4부족도 루이아족에 포함된다.


155.루테니아인(Ruthenen)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내에 살던 우크라이나인의 독일어 이름. 카르파티아우크라이나인이라고도 하며 대부분 동(東)갈리시아에서는 폴란드인과, 부코비나에서는 루마니아인·독일인과 혼재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총인구 5139만 가운데 루테니아인은 오스트리아지역에서 352만, 헝가리지역에서 46만 4000이었다(1910). 주민의 대부분이 그리스정교도이다. 제1차세계대전 후 루테니아인 지역은 연합국 승인하에 폴란드·루마니아·체코슬로바키아에 분할·지배되었으나, 제2차세계대전중 소련이 우크라이나공화국에 편입시켰다.


156.리구리아인(Ligures) 


켈트화하기 이전의 갈리아 선주민족(先住民族). 론강에서 아르노강까지의 지중해 연안과 포강 남쪽의 내륙 산악지대에 걸쳐서 거주하고 있었으나, 처음에는 켈트인의 도래에 의해, BC 3세기 이래에는 로마의 정복에 의해 거주지역이 축소되었다. 서쪽의 리구리아인은 점차 켈트화하였으나, 마실리아(현재 마르세유)는 인접한 <켈트 리구리아인>에게 위협을 받자 BC 154년과 BC 125년 로마에 원조를 요청했다. BC 125년 원조요청은 로마 속주 설치의 결과를 초래했다. 사료(史料)에 리구리아인은 단구(短軀)이며 강건·용맹한 민족, 용병 또는 산적으로 나타나 있다. 어떤 종류의 접미사로 끝나는 단어나 지명에 리구리아어가 잔존해 있다고 하나 상세한 것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민족계통에 대해서도 확언할 수 없다. 리구리아란 명칭은 이탈리아의 주이름으로 남아 있다.


157.리비아족(Libyan)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이 북아프리카에 침입하기이전에 이집트 서쪽에 거주한 베르베르인의 일족. 언어는 함셈어족에 속한다. 그리스어로 리비네(Libine)는 북아프리카를 뜻한다.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분묘에 그려진 리비아족은 푸른 눈이었으나 선왕시대에는 적갈색 눈과 검은 머리의 체형이었고, 이들이 북아프리카 전체를 차지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져 이들을 리비아족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 블론드베르베르라고 불리는 푸른 눈의 체형은 지금도 모로코 일부에서 볼 수 있다. 이집트 남부에는 고대 리비아족 계통을 이어받은 부족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그들은 이 지역이 초원이었던 당시 소를 길렀고, 왕조시대 말기 나파타와 메로에에 피라미드를 세운 것으로 짐작된다. 고대 리비아족은 고대 지중해문명의 흔적을 남겼고, BC 1세기 무렵까지는 모권제가 행해졌다.


158.리쑤족 


중국 남서부 윈난성[雲南省(운남성)]에서 미얀마·타이에 걸쳐 분포하는 산지민족. 리소·리쇼·요인 등으로도 부른다. 윈난에서는 서부에 밀집하여, 1954년 누장강리쑤족자치주를 형성했다. 언어는 티베트·버마어족(語族)에 속한다. 화전농업을 경영하며 밭벼·옥수수·보리·수수·양귀비 등을 재배하는데, 지역에 따라 논벼경작도 발달하였고 수렵도 성행한다. 주식은 쌀·기장이며 직접 만든 삼베옷을 입고 토장(土葬)이 행해진다. 누장강[怒江(노강)] 상류의 리쑤족은 용맹한 부족으로 한민족(漢民族)의 지배에 쉽게 복종하지 않았는데, 남방의 리쑤족은 한민족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9.리투아니아인(Lithuanians) 


리투아니아의 중심이 되는 주민. 주변 국가를 포함하여 전체인구는 약 300만(1992). 발트해연안에 거주하며, 라트비아인과 함께 동발트족을 이룬다. 코카소이드에 속하고 리투아니아어를 사용한다. 고대에는 드네프르분지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13세기 리투아니아공국을 건설하여 14∼15세기에 가장 번성하였다. 1940년 소련에 병합되었다. 생업과 관습은 동슬라브족에 가깝고, 보리·밀·메귀리·조 등을 재배하며, 소·말·돼지 등을 기른다. 대가족주의이며 전통적으로 장자상속이다. 대부분 로마 가톨릭교도이며, 전통공예로 목각·호박세공(琥珀細工)·가죽세공·도기제작을 한다.


160.리판족(Lipan) 


북아메리카 남서부에 거주하는 아파치족 가운데 가장 동쪽에 자리한 부족. 평원(平原)에 있는 인디언으로부터 문화적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본디 아파치족 계열의 하나로서 뉴멕시코주 북부에서 다른 아파치족과 마찬가지로 옥수수·콩 등을 재배했으나, 생업으로 들소사냥을 중시하게 되어 이동생활을 하게 되었다. 1720년대에 코맨치족과의 싸움에서 패하여 대평원으로부터 물러날 수밖에 없었으나, 인접해 있는 카이오아 아파치족과는 긴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해 왔다.


161.마가르족(Magar) 


네팔 중서부의 해발고도 1200~2500m의 산지 부근에 사는 종족. 인구 약 50만(1997). 현재는 티베트-버마어파계(語派系)의 마가르어를 잊고 네팔어를 쓰는 사람이 많다. 산기슭에 경지·목장을 가진 집단마을을 구성한다. 영국군·인도군의 용병(傭兵;구르카병)이나 네팔군이 되는 사람도 많다. 17~18세기 서부 네팔에서는 마가르 토후(土侯)가 수많은 토후국 중에서도 세력이 있었고, 또 18세기 네팔통일 때에는 마가르의 모든 세력이 샤흐(?h)왕조에 협력해 구르카세력의 유력한 일환(一環)을 이루기도 했다. 마가르 전체는 명칭을 갖는 하위집단(타르)으로 나뉘며, 내부는 부계(父系)의 친족집단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다. 카스트적 관행, 화장, 브라만[婆羅門(파라문)]에 대한 의존 등 종교·사회면에서는 힌두화가 뚜렷하나, 북부에는 라마교도도 있으며 토착신앙도 깊게 남아 있다. 옥수수·피·밀·논벼 등을 경작하고 소·염소·양 등의 가축을 사육한다. 


162.마두라인(Madurese) 


인도네시아 자바섬 북동쪽에 있는 마두라섬에 주로 살고 있는 주민. 약 1212만 5000(2000). 사용하는 마두라어(語)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에 속하여 자바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양 언어는 서로 소통되지 않는다. 촌락에서는 사유지 외에도 마을의 공유지를 많이 볼 수 있다. 혈통은 부계와 모계를 모두 인정하고 결혼예물로 소를 중요시하며 투우(鬪牛)를 좋아한다. 자바왕국의 지배를 받았으므로 문화적으로는 자바의 영향이 강했다. 종교는 대부분 이슬람교이지만 주술신앙이 기본을 이루며 사술(邪術)도 성행하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벼농사를 지으며, 연안 주민들은 어업에 종사한다.


163.마사게타이(Massagetai) 



중앙아시아의 고대 민족. 라틴어로는 마사게타에이다. 헤로도토스가 쓴 고대 그리스의 사료(史料)에는 이 민족이 아케메네스왕조 키루스 2세(재위 BC 559∼BC 530)를 싸움에 져 죽게 한 뒤에, 반대로 다리우스 1세(재위 BC 522∼BC 486)에게 멸망당한 일과 유목민으로서의 관습·풍속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거주지역이나 인종적 귀속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마사게타이는 ① 고대페르시아어 방언인 아베스타어에 의해 물고기를 먹는 사람(masya-ko)이라고 해석하는 설 ② 고대페르시아어 masso-getae에 적용해 <대월지(大月氏)>로 보는 설 ③ massaka-ta로서 <대사카족>이라고 하는 설 등이 있었다. 그러나 3가지 설 모두 결정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카스피해 동쪽부터 아랄해 주변 지역에 살던 잡다한 고대 민족의 총칭이라는 설도 대두되고 있다.


164.마셜제도인(-諸島人 Marshall Islanders)


미크로네시아의 마셜제도 주민. 마셜제도는 232개의 환초와 80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졌는데 주민은 이곳에 흩어져 산다. 언어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에 속한다. 20여 개의 모계외혼 씨족으로 나뉘고 각 씨족의 지배지는 각 열도 안의 많은 환초섬에 흩어져 있다. 강력한 수장 아래 계층별로 공납제도가 있고 수장의 권위는 신격화되어 있다.


165.마야족(Maya) 


멕시코 남동부 유카탄반도로부터 벨리즈 및 과테말라 북부의 페텐지방, 그리고 온두라스·엘살바도르에 걸쳐 거주하는 민족집단. 언어는 마야토토나카어군(語群) 마얀세어족(語族)에 속하며, 언어인구는 약 200만 명이다. 에스파냐인이 처음 건너온 l6세기 초엽의 유카탄반도는 마야 후고전기문명 뒤 각지에서 소수장(小首長)의 분립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에스파냐의 정복은 F. 몬테호 부자(父子)에 의해 1646년까지 계속되었는데, 그 뒤 1761년·1847년에 원주민반란이 일어났다. 특히 1847년의 반란은 카스트전쟁으로 유명하며, 일부 세력은 유카탄반도 남동부 밀림에서 고립된 채 약 반세기 동안이나 멕시코정부에 저항하였다. 1910∼1917년 멕시코혁명이 일어난 뒤, 1930년대에 단행된 농지개혁은 원주민의 생산 및 종교적 활동기반에 큰 영향을 주어 마야 고유문화의 소멸이 진행되었다. 기본적인 생업은 화전경작이며, 옥수수를 중심으로 콩·호박·고추 등이 재배된다. 또 전통적인 양봉업과, 목축·과수 재배도 이루어지며, 북서부에서는 에네켄마(麻)가 생산된다. 사회구성의 기본단위는 핵가족으로 일찍이 부계제도의 조직은 해체되었다.


166.마카사르족(Makassar) 


인도네시아 셀레베스섬 남부에 사는 말레이계민족. 마카사르어를 사용한다. 해양민족으로서 수전경작도 하지만 주업은 어업으로 인도네시아 내해는 물론, 멀리 오스트레일리아 북해안까지 진출하여 어로작업을 하였다. 13세기에는 해양왕국인 고아왕국을 세워 항구도시 우중판당을 왕도(王都)로 정하고 마카사르해협을 정복해 몰루카제도와 숨바와섬까지 세력을 떨쳤다. 그 뒤 16세기에는 향료를 구하는 포르투갈인·네덜란드인과의 접촉이 시작되었고, 1685년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의 싸움에서 패하여 남셀레베스의 패권은 부기스족의 보네왕국으로 넘어갔다. 1905년 네덜란드의 직접통치 아래로 들어갔다.


167.만나이(Mannai) 


BC 1000년대 전반, 고대 아제르바이잔에 최초로 국가를 건설한 민족. BC 829년 아시리아의 원정기록에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그 뒤 우라르투의 공격을 거듭 받았으나 저항을 계속하면서 BC 8세기에 통일왕국을 실현하였다. BC 715년에는 아시리아의 사르곤 2세와 협력하여 우라르투를 격퇴하였다. 수도 이지르투는 오늘날의 우르미아호수 남쪽에 있었으며, 남부 아제르바이잔의 거의 모든 지역을 지배하였다. 잘 관개(灌漑)된 자그로스 산간의 하곡(河谷)과 우르미아호수 평야는 곡물과 포도재배 및 말의 사육에 알맞고, 금속공예도 발달하였다. BC 7세기에 접어들면서 스키타이·메디아와 연합하여 아시리아와 싸웠으나, BC 660년의 패배로 다시 아시리아와의 협력관계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이란 고원의 정세변화에 따라 BC 615년 무렵에는 베디아에 복속되고, BC 590년 무렵 병합되었다. 주요 유적으로는 하산루·지비예 등이 유명하다.


168.만시족(Mansi) 


러시아연방 서(西)시베리아의 오브강유역에 사는 민족. 인구 약 7600(1979). 대부분이 한티만시자치구에 산다. 민족적·언어적으로 한티족과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고, 양자는 오브우고르족으로 총칭되지만 우고르는 러시아인에 의한 명명이고, 그들은 스스로 <만시>라 부르고 있다. 원래 남부의 우랄평원에 사는 유목민이었는데 타타르인과 러시아인에게 쫓기어 북으로 이동하여 1000년 무렵부터 현재의 지역으로 이주했다고 전해진다. 생업은 전통적으로 여름에는 수렵지에서 텐트를 치고 이동하면서 수렵을 하며 겨울에는 강 가까이에 통나무로 만든 오두막에 정주하여 어로를 하였다. 주로 사슴을 사냥하며 그 모피는 교역에 쓰고, 고기는 건조시켜서 가늘게 썰어 일종의 보존식량으로 삼았다. 러시아혁명 후에는 집단농장에 정주하여, 전통적 생업과 아울러 농업과 순록사육을 하고, 일부는 공장노동자로서 일하고 있다. 특히 남부의 사람들은 러시아화가 현저하다. 사용언어는 우랄어족의 우고르어파에 속하는 만시어를 쓰는데, 대부분은 러시아어도 구사한다.


169.만주족(滿洲族) 


17∼20세기 초에 중국을 지배한 청(淸)나라를 이룩한 민족. 인구 1천 64만(1997). 중국에서는 현재 만족(滿族)이라 불린다. 본래 랴오닝성[遼寧省(요녕성)]을 중심으로 지린성[吉林省(길림성)]·헤이룽장성[黑龍江省(흑룡강성)] 등 중국 동북지방이 거주지였으나 청나라의 중국 진출로 전국에 퍼졌다. 주(周)나라 때의 기록에 의하면 중국 동북지방에 <숙신(肅愼)>이란 민족이 모피·화살·청석촉(靑石鏃)을 중위안[中原(중원)]의 여러 왕조에 헌상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기원 전후, 부여(夫餘)·읍루·물길(勿吉)·말갈(靺鞨) 등 여러 민족이 흥망하고 7세기에는 속말말갈(粟末靺鞨)과 고구려유민이 중심이 되어 발해(渤海)를 건국하였으나 10세기에 거란(契丹)에게 멸망하였다. 11세기에 만주족의 직접 조상의 하나인 여진족(女眞族)이 나타나서 1115년 금(金)나라를 세워 거란족의 요(遼)나라를 멸망시키고 송(宋)나라를 압박하였으나, 1234년 몽골에게 망하였다. 원(元)·명(明)시대의 여진족은 요동의 건주여진(建州女眞), 쑹화강[松花江(송화강)] 유역의 해서여진(海西女眞), 헤이룽강[黑龍江(흑룡강)] 방면의 야인여진(野人女眞)으로 나뉘어 몽골족·한족(漢族)의 지배를 받았다.


170.말갈(靺鞨) 


6∼7세기무렵 중국 수·당시대에 만주 북동부에서 한반도 북부에 거주한 퉁구스계 민족. 주(周)나라 때에는 숙신(肅愼), 한(漢)나라 때에는 읍루라 불렀다. 본디 쑹화강(松花江) 유역의 물길(勿吉)이 지배하였으나 6세기 중엽 물길의 세력이 약화되자 각 부족이 자립하였는데, 이들을 총칭하여 말갈이라 부른다. 이들 부족 중 대표적인 것은 예맥 계통으로 농업을 주로 하던 속말(粟末), 백산(白山)과 순수 퉁구스계로 수렵에 의존하던 백돌·불녈(拂涅)·호실(號室)·흑수(黑水)·안차골(安車骨) 등 7개 부족이었다. 그중 속말과 백산부족은 고구려에 복속하였다가 고구려가 멸망하자 영주(營州;遼寧省 朝陽)로 이주하였고, 나중에 발해가 성립되자 대부분의 말갈족이 발해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흑수부족만은 쑹화강과 헤이룽강[黑龍江(흑룡강)] 하류지역에 근거를 두고 발해에 대항하였고, 발해 멸망 이후 흑수말갈은 거란에 복속되어 여진(女眞)이라 불렀으며, 그 뒤 생(生)여진과 숙(熟)여진으로 나뉘었다가 생여진은 금(金)나라 건국의 주체가 되었다.


171.말라(Malla) 


고대 북인도 부족. BC 6세기 무렵 말라국은 <16대국>의 하나였으나, 석가가 살아 있던 때에는 파바(P?v?)와 쿠시나라(Kus?n?r?)를 각각 도읍으로 하는 두 세력으로 분열하였다. 이들은 모두 부족공화제(상가)를 실시하고, 공회당(公會堂)에서 집회를 열어 중요문제를 결정하였다. 또한 쿠시나라는 석가가 입멸(入滅)한 땅으로도 유명하다. 말라국은 남쪽 이웃에 있는 마가다국에 의해 멸망되었으나, 멸망된 해는 알려져 있지 않다.


172.말린케족(Malinke) 


서아프리카의 기니(172만 명)·코트디부아르(171만 명)·말리(66만 명, 1997) 등에 걸쳐 거주하는 부족. 언어는 만데어군(語群)에 속한다. 말린케족은 만데의 여러 부족 중에서도 밤바라족과 함께 유력한 부족이며, 기니에서는 최대의 부족이다. 니제르강 상류의 사바나에서 피·수수 등의 잡곡을 주요작물로 하는 농업에 종사하며, 교역도 활발하여 넓은 지역에 걸쳐 상업활동을 하고 있다. 그 밖의 만데 여러부족과 마찬가지로 일찍이 번영한 말리제국 자손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있다. 사회는 부계의 쿠란(씨족)이 기본이며, 말리 왕이 나온 케이타라는 성(姓)의 쿠란이 현존해 있다. 말리 왕 순디아타의 구두전승(口頭傳承)을 전하는 그리오(樂師)는 오늘날에도 마을들을 떠돌며 시가(詩歌)를 읊조리고 있다. 말린케족에는 이슬람교도가 많은데, 전통적 문화를 아직도 보존하고 있으며, 비밀결사 누트모에서는 소년이 성인사회로 들어가는 가입 의례를 실시하고 있다.


173.맘(Mam) 


고지대 마야계(系) 인디오 중 문화적 보수성이 강한 집단. 마메라고도 한다. 맘족이라고 할 때도 있지만, 부족집단이 아닌 맘어(語)를 사용하는 원주민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오늘날 약 35만 명에 이른다. 과테말라 북서부의 험준한 산악지대의 농촌에 살며, 다른 고지대의 마야족처럼 전통적으로 옥수수·콩·호박을 중심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았으나 최근에는 상업활동 등에 종사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종교도 다른 고지대의 마야족과 마찬가지로 마야 특유의 종교와 중세 에스파냐의 그리스도교가 절충된 민속가톨리시즘을 중심으로 하고, 주기적인 역(曆)에 바탕을 둔 의례와 점(占) 등을 특징으로 한다. 후고전기의 맘은 성채적(城砦的)인 사크레우를 중심으로 왕국이 성립된 것으로 보이며, 키체왕국에 종속되었다가 16세기 초에는 에스파냐에 정복되었다.


174.망갼족(Mangyan) 


필리핀 민도로섬 산지인(山地人)의 총칭. 인구는 2만∼3만으로 추정된다. 언어학·민족학적으로는 7개의 종족으로 나뉜다. 모두 말레이폴리네시아어계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서로 뜻은 통하지 않는다. 북쪽으로부터 이라야족·알란간족·다쟈완족·바탕간족(타오부이드족)·부히드족·하누노오망갼족(하누노오족)·라타그논족의 순으로 분포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의 종족에게 <망갼>이라는 낱말은 <인간>을 의미한다. 망갼족의 복장은 하체만을 가리는 특징이 있는데, 민도로섬 중앙부에서 상당히 미개한 생활을 하는 바탕간족과 알란간족은 여자도 나무껍질로 엮은 포(布)를 이용하여 하체만을 가린다. 알란간족은 나무 덩굴을 감아 스커트 모양의 옷을 입는다. 인도 기원 문자를 오늘날까지 쓰고 있는 부히드족과 하누노오망갼족의 여자는 직조기술이 있어 스커트 모양의 것을 허리에 걸치고 있다. 망갼족은 모두 산 속에서 화전농경을 하며 밭벼·감자·카사바·타로토란·마·옥수수·요리용 바나나 등을 재배하여 주식으로 한다.


175.망데제족(Mande peoples)


서아프리카 내륙 말리 서쪽, 수단의 사바나지대를 중심으로 기니·시에라리온·라이베리아·코트디부아르·가나·오트볼타·나이지리아의 열대우림지대까지 넓게 분포하는 니제르-콩고어파(語派)의 망데 여러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총칭. 가장 전형적인 부족은 밤바라족·말링케족·소닝케족이다. 망데족들은 BC 5∼BC 4세기 무렵부터 독자적으로 농경문화를 발전시켜 온 것으로 생각되며, 그것을 기반으로 서아프리카 초기의 수준 높은 문명이 탄생되었다. 예를 들면 가나의 소닝케왕국이나, 14세기에는 이미 최고조에 달해 있던 말리제국 등이 있다. 농업은 이동경작이었으나, 때에 따라서는 관개(灌漑)도 하였다. 수수·쌀 등이 주요 곡식이고, 위신(威信)이나 혼수에 대비하여 소도 사육한다. 교역도 경제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여, 지역적인 교역에서부터 멀리 있는 다른 부족이나 아랍인들과도 교역하였다. 계보나 상속은 부계제이며 결혼은 일부다처제로 외혼제이다. 사회구조는 특히 이슬람교도 사이에 종종 왕족이나 귀족으로부터 평민, 나아가서는 천대받는 공장계층이나 노예에 이르기까지 현저한 계급제도를 볼 수 있다. 


176.망베투제족(Mangbetu peoples)


콩고민주공화국 동북부 우엘레주에 거주하는 니그로이드의 여러 부족. 몬부투(Monbuttu)족이라고도 한다. 샤리-나일의 여러 언어 중 수단계 언어를 사용한다. 피그미 거주지에도 진출하였으며 반투어계(語系) 여러 종족과도 뒤섞여서, 언어·문화적으로 서로 다른 여러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래 망베투라는 말은 19세기에 많은 왕국을 세웠던 귀족의 명칭인데, 그 뒤에 뜻이 변하여 그들이 지배한 사람들을 일컫게 되었다. 괭이경작·고기잡이·사냥·채집 등을 생업으로 하며 가축사육도 하고, 얌(참마)·바나나가 주요산물이다. 일부다처제의 부계사회이며, 정치조직은 지역 수장과 장로회의에 의하여 구성된다. 식인습속과 젖먹이 아이의 머리 모양을 길게 변형시키는 습속이 알려져 있고, 미술작품이 뛰어나다.


177.맥국(貊國) 


강원도 춘천(春川)에 있던 원시부족국가의 이름. 《고려사(高麗史)》 <지리지(地理志)>를 보면 춘천은 본래 맥국의 자리인데, 637년(선덕여왕 6)에 우수주(牛首州)를 설치하여 군주(君主)를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맥국의 도읍은 지금의 춘천시 북쪽 소양강(昭陽江) 북안(北岸)에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믿을 만한 유적(遺蹟)이 교동(校洞) 봉의산(鳳儀山)과 의암호(衣岩湖) 가운데 있는 섬인 중도(中島)와 석사동(碩士洞)·온의동(溫衣洞) 등지에 남아 있다.


178.메스티소(〔에〕mestizo) 


남아메리카의 에스파냐어권(語圈)에서 백인과 인디오의 혼혈을 가리키는 말. 에스파냐에 의한 정복 이후 혼혈이 늘어, 많은 나라에서 혼혈이 인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됨에 따라 혼혈은 백인과 인디오 사이의 중간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메스티소는 혼혈을 가리키기는 하나 생물학적인 의미에서의 혼혈을 의미하는 개념은 아니다. 남아메리카에 백인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인디오는 없다고 생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디오 출신일지라도 도시의 노동자 또는 고향과는 다른 곳으로 이주한 사람도 메스티소 속에 포함된다. 이같은 의미에서 메스티소는 인디오의 공동체를 떠나 보다 문명화된 생활양식을 선택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같은 사람들을 페루의 백인들은 촐로(cholo), 인디오는 미스티(misti)라고 부른다. 파라과이에서 과라니, 브라질에서 카보클로(caboclo)라고 하는 지방농민도 메스티소이다.


179.모골족(Mogol) 


아프가니스탄 서부에 남아 있는 몽골계의 민족. 고라트고원을 중심으로 50개 정도의 마을에 약 1만 명이 산재한다. 그 조상은 13세기에 일한국(汗國)의 장군 니쿠달오구랑에 통솔된 몽골족 장병으로, 그의 사후 헤라트의 쿠르드조(朝)에 귀화하여 고라트고원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타이마니족과의 전쟁에 패하여, 많은 사람이 북쪽으로 도망가 흩어졌다. 모골은 엄격한 내혼제를 유지하여 오랫동안 민족으로서의 의식을 보전하여 왔으나 현재는 그것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모골어도 일부의 고로(古老)에게 기억이 있을 뿐으로 사실상 사어(死語)가 되었다. 그 문화도 몽골의 모습을 남기고 있지 않으며,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으며 물질문화도 주변의 파슈툰족 등과 다를 것이 없다. 생업은 정주적(定住的)인 농경과 목축으로, 밀·보리 등을 재배하고, 양·염소·소·말을 사육한다. 그러나 비교적 유복한 유목민인 파슈툰족의 소작을 하는 경우도 많다.


180.모르드빈족(Mordvin) 


우랄계 볼가 핀어파 모르드빈어(에르자어·목샤어)를 사용하는 러시아연방 모르도바공화국의 주요한 주민. 체레미스(마리)족과 친연관계에 있다. 13세기 초 러시아의 기록에는 2명의 모르드빈 지도자(북부의 푸르가스, 남부의 푸레슈)의 이름이 올라 있는데, 각각 에르자어와 목샤어를 사용하는 그룹의 지도자였다고 하며, 오늘날 두 방언은 서로 의사소통이 곤란할 정도로 차이가 크다고 한다. 거주지의 3/4은 농경지로, 콩·양배추·감자·홉·담배 등을 재배하고, 아마유 등을 생산하며 나머지 1/4은 삼림이다. 16세기 이래로 그 사회적 신분은 농노에 가까운 소작민으로서 러시아인에게 예속되어 왔다. 에르자어로 된 최초의 기도서는 19세기 초에 모스크바에서 출판되었으며, 러시아어로 된 문법서가 만들어졌을 뿐, 에르자어는 러시아 제정시대에 종교·초등교육 관계의 출판물에 국한되어 있었다. 현재에는 에르자어·목샤어 등의 문장어가 완성되어 각각의 언어를 사용하는 작가가 활약하고 있으며, 수도 사란스크에는 모르도바 언어학 연구소를 비롯하여, 문학·역사학·경제학 연구소가 설치되어 있다.


181.모소족(Moso) 


한서(漢書)에 게재되어 있는 중국의 소수민족인 나시족의 호칭. 여러 가지로 표기되었으나 마사·마사(摩沙)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그들 자신이 선택한 통일명칭인 나시족으로 불린다. 나시족의 지역간의 차이는 기원적으로 복수의 민족계통을 포함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J.F. 로크는 융닝지구[永寧地區(영녕지구)]의 나시족을 <모소족>이라 하고 그 외의 <나시족>과 구별하였으나 다른 연구자들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하였다.


182.모용부(慕容部) 


고대 북아시아의 유목민족인 선비족(鮮卑族)의 한 부족. 중국 5호(五胡) 16국시대에 전연(前燕)·후연·서연·남연 등의 왕조를 세웠다. 모용의 유래에 대해서는 그들이 애용하던 보요관(步搖冠)의 와음(訛音)이라는 설, <이의(二儀;양과 음)의 덕을 흠모하며 삼광(三光;해·달·별)의 모습을 이어받는다>는 뜻이라는 설 등이 《사서(史書)》에 기록되어 있으나 오히려 몽골어로 부(富)를 상징하는 <Bayan>의 음역(音譯)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2세기 중엽 선비족의 대인(大人;부족장)에 모용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모용부는 3세기 전기에는 다링강[大凌河(대릉하)]유역에서 중국의 요서(遼西;河北省盧龍縣)지방으로 이주하여 위(魏)나라와 서진(西晉)을 위해 변경방위와 대외원정에 종사하였으며 그 부족장을 선우(單于)·좌현왕(左賢王) 등의 칭호로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모용부가 강성(强盛)하게 된 것은 4세기 전기의 모용외시대부터이며, 그의 손자인 모용준(慕容儁)은 허베이[河北(하북)]로 진출하여 업으로 천도(遷都)하고 화베이[華北(화북)] 동부를 영유하였다. 그리고 4세기에서 7세기에 걸쳐 칭하이성[靑海省(청해성)] 칭하이지방을 지배했던 토욕혼국(吐谷渾國)의 시조 토욕혼은 모용외의 서형(庶兄)으로 알려졌다.


183.모이제족(Moi) 


라오스 남부, 캄보디아 동부에서 베트남 남부산악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총칭. 오랜 역사를 통해 거의 행정적으로 통일되지 않고 착취와 약탈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지배민족에 의해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려져 왔다. 라오스에서는 카(Kha), 캄보디아에서는 프농(Pnong), 베트남에서는 모이 등으로서 모두 야만인·노예 등의 뜻으로 불렸다. 그러나 현재는 50년 이상에 걸치는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를 반영하여서 프랑스어로는 몽타냐르(산악민족), 베트남어로는 퉁(Thuong)이라 총칭되었다. 인구는 베트남에만 약 3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수십 종족으로 세분되어 있어 언어도 몬-크메르어족에 말레이-폴리네시아어족이 혼재하여 민족기원의 다원성을 시사하고 있다. 몇 안되는 동질성 중 하나는 화전경작으로 밭벼나 옥수수를 재배하며, 최근에는 정주하는 경향이 있다. 샤머니즘과 앞니를 깎는 풍습이 있고, 가옥이나 물을 나르는 용기 등의 재료로 대나무가 쓰인다.


184.모호크족(Mohawk) 


이로쿼이어를 쓰는 북아메리칸인디언. 이로쿼이연맹 가운데 가장 동쪽에 살던 부족으로 뉴욕주 스케넥터디 서부에서 3개 부락을 이루고 살았다. 반(半)정착민으로 여자들은 옥수수 경작을, 남자들은 가을·겨울에 사냥, 여름에는 고기잡이를 했다. 이로쿼이의 상징인 롱하우스에서 일가친척이 모여 살았으며 각 부락에는 추장에게 조언하는 회의체가 있었다. 모호크족은 이웃의 알곤킨제족(諸族)과 자주 전쟁을 벌였고, 유럽인들과 접촉한 후 인구가 격감했다. 미국혁명 후 많은 모호크인들이 캐나다로 옮겨 온타리오의 이로쿼이보호구역에서 살고 있다.


185.모히칸족(Mohican) 


미국 뉴욕주 허드슨강 상류 캐츠킬산지(山地)에 살고 있던 알곤킨어족(語族)의 인디언. 마히칸족이라고도 한다. 모히칸은 <이리>를 의미한다. 세습되는 추장이 통솔하는 5개 집단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백인 개척자, 이로쿼이족·모호크족 등 다른 인디언과의 전쟁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일부는 델라웨어족에 흡수되었으며, 일부는 매사추세츠주에 이주하여 스토크브리지인디언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후 위스콘신주의 인디언보호구역으로 옮겨갔다.


186.몬족(Mon) 


미얀마와 타이에 거주하는 소수민족. 미얀마에서는 탈라잉(Talaing)이라고도 불린다. 몬주(州)를 중심으로 미얀마에 약 45만 명, 타이 중부에 약 10만 명이 살고 있다. 예로부터 인도계의 수준 높은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활발한 해상무역을 영위하였다. 대륙부 동남아시아에서 최초로 스리랑카계의 상좌부(上座部) 불교를 받아들였고, 11세기 파간왕조의 미얀마에 이를 전하였다. 당나라의 현장(玄裝)이나 의정(義淨)이 기록한 <두화발저국(杜和鉢底國)> <타라발저국(墮羅鉢底國)>은 몬족의 나라 도바라바티였으리라 짐작된다. 미얀마에서는 18세기까지 활동했으나, 그 뒤 미얀마인에게 제압되어 미얀마의 한 소수민족이 되었고, 타이에서도 13세기까지 나라를 세우고 있었으나, 타이인에게 정복, 동화되었다. 언어는 오스트로아 시아어족의 몬크메르제어(諸語)에 속하는 몬어이다.


187.몽골로이드(Mongoloid) 


아시아대륙 동쪽 절반과 그 남동쪽 또는 동쪽에 흩어져 있는 섬들 및 남북아메리카대륙에 폭넓게 분포하는 인종. 세계 인구의 약 1/3이 여기에 속한다. 몽골로이드란 <몽골인 같은 사람>이란 뜻이다. 종종 황색인종이라고 불리나, 그 피부를 황색이라고 하기에는 적당치 않다. 몽골로이드란 호칭은 멸시하는 뜻을 갖고 있으며, 아시아인종·동양인종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역이 애매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피부색은 담갈색이나 짙은 갈색을 띠며 햇볕에 타기 쉽다. 햇볕이 강한 지방일수록 피부색이 짙다. 홍채는 갈색 내지 암갈색이며, 머리카락은 검고 그 결은 두껍고 거칠며 직모가 일반적이다. 여성의 머리카락은 종종 키보다 더 길게 자라며 남성은 비교적 대머리가 되는 경우가 드물다. 약간의 예외는 있으나 체모나 얼굴에 나는 털은 적다.


188.몽골족(Mongolians) 


12∼13세기에 칭기즈 칸의 인솔로 아시아에서 유럽에 걸친 대제국을 세운 유목민족. 좁은 의미로는 몽골(외몽골)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할하족(族)을 가리키나, 넓은 의미로는 러시아연방령 바이칼호(湖) 주변의 부랴트족, 볼가강 하류유역의 칼미크족, 몽골내에 거주하는 약간의 소수부족과 거기에 중국의 둥샹족[東鄕族(동향족)]·다촨얼족[達斡爾族(달알이족)]·투족[土族(사족)]·바오안족[保安族(보안족)] 등도 포함된다. 인구는 몽골에 약 260만명(1999), 내몽골자치구에 약 233만명(1997) 등이다. 편평한 얼굴, 눈에 두꺼운 몽골주름이 있는 것이 특징이며, 팔·다리는 짧으나 체격은 전체적으로 우람하고 튼튼하다. 그들의 거주지인 몽골고원에서 고비사막에 걸친 지역에는 일찍이 흉노(匈奴)·선비(鮮卑)·유연(柔然)·위구르 등의 유목기마민족이 활약하였고 몽골족의 선조라 생각되는 사람들은 당대(唐代)에 몽골[蒙兀(몽올)]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다. 민족으로서의 기반이 확립된 것은 칭기즈 칸에 의해 여러 부족이 통합되고부터이다. 대제국의 성립에 따라 몽골족은 중앙아시아·서아시아·유럽 각지로 거주지를 넓혀갔으나 대부분이 그 지방의 토착민족에 동화, 흡수되어 버렸다. 제국이 붕괴된 뒤에도 몽골족은 현재의 내·외몽골에서 신장[新疆(신강)]에 걸친 지역에서 세력을 유지했으나, 동서(東西)로 분열하여 결국 만주족인 청(淸)나라에 병합되었다.


189.무루트족(Murut) 


동남아시아 보르네오섬 북부 말레이시아령 사바주·사라와크주 및 인도네시아령 칼리만탄주에 걸친 내륙 주민들에게 주어진 명칭. 그러나 언어 및 문화적으로는 매우 다른 여러 집단들이 포함되어 있다. 사바주 안의 무루트족은 언어적으로 필리핀 여러 민족에 친연(親緣)관계를 갖고 있으며, 화전에 의한 밭벼재배에 종사한다. 사라와크주로부터 칼리만탄주의 무루트족은 룬·다이야·켈라비드 등 여러 족으로 이루어졌으며 고지대에서의 관개수답경법(灌漑水畓耕法)을 발달시키고 있다. 무루트 여러 족 전체를 통해 본래의 거주형태는 롱하우스였으나 사바주 무루트족 사이에는 이런 것이 거의 소멸되었다. 문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켈라비드족의 거석(巨石)기념물 건조이다. 남아도는 쌀·소금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이 제연(祭宴)을 베풀고, 그곳에 초청받은 손님이 주재자의 명예를 칭송해 돌멘·멘히르 등을 세운 것이다. 살아 있는 거석문화의 가장 좋은 예 가운데 하나이다.


190.무스코기족(Muskogee) 


미국 조지아주와 앨라배마주에 살았던 무스코기어계 인디언. 1950년 오클라호마주에 약 5만명, 앨라배마주에 약 500명이 살고 있었다. 옥수수·호박·콩 등을 재배하였는데 농사는 주로 여자가 맡았으며 남자는 사냥과 싸움에 종사하였다. 50개 이상의 모계 토템씨족으로 나뉘고 그들이 포족(胞族)을 이루고 있었으며 마을은 백(白)과 적(赤) 두 지역집단으로 나뉘어져 백 집단은 평화의례, 적 집단은 전쟁의례를 맡았다. 크리크족 사회에 세습적 신분 차이는 없었으나 개인적 능력, 예를 들면 싸움터에서 세운 공적에 의한 계급은 있었다. 옆쪽에 층계를 낸 대형상(臺形狀)으로 흙을 높이 쌓아올리고, 그 위에 돔모양의 초가지붕을 얹은 종교용 건물을 지었다. 1813∼1814년 크리크전쟁에서 패한 뒤 크리크족은 일부만 남고 강제로 오클라호마주로 이주되어 앨라배마주에 유적이 있을 뿐 고유의 언어와 문화는 거의 사라졌다.


191.문다족(Munda) 


인도 중·동부에 거주하는 부족의 하나. 인구 약 107만(1997). 비하르주 남부의 란치를 중심으로 서벵골과 오리사의 3주에 걸쳐 분포한다. 정주해서 밭벼·잡곡을 재배하며 계단식 논을 만들어 무논경작을 한다. 란치를 중심으로 비(非)문다의 상업활동이 활발하며, 촌락내에서의 비농업적 생산도 이루어진다. 주민은 문다어계의 문다리어를 사용하며, 1940년 이후 호·산탈 부족과 함께 민족주의운동이 활발하다. <1908년 토지법>에서, 그 이전부터 있던 공동묘지 소유자인 지배가계에 토지점유권을 집중시켜 여타 주민을 소작인화하고 토지매매를 금했던 것은 민족학적 지식에 기초를 둔 입법이 성공한 좋은 예이며, 이후 전통적 제도가 보존·고정되었다. 공동묘지·사삼(社森)·광장이 있는 촌락을 집합적으로 지배하는 소수장(小首長)이 있던 지역이 있으며, 복고주의적 씨족회의도 있다. 종교상으로는 태양신 숭배, 2단계의 장제(葬制), 고인돌 모양의 공동묘지가 특징적이다.


192.물길(勿吉) 


17∼20세기 초에 중국을 지배한 청(淸)나라를 이룩한 민족. 인구 1천 64만(1997). 중국에서는 현재 만족(滿族)이라 불린다. 본래 랴오닝성[遼寧省(요녕성)]을 중심으로 지린성[吉林省(길림성)]·헤이룽장성[黑龍江省(흑룡강성)] 등 중국 동북지방이 거주지였으나 청나라의 중국 진출로 전국에 퍼졌다. 주(周)나라 때의 기록에 의하면 중국 동북지방에 <숙신(肅愼)>이란 민족이 모피·화살·청석촉(靑石鏃)을 중위안[中原(중원)]의 여러 왕조에 헌상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기원 전후, 부여(夫餘)·읍루·물길(勿吉)·말갈(靺鞨) 등 여러 민족이 흥망하고 7세기에는 속말말갈(粟末靺鞨)과 고구려유민이 중심이 되어 발해(渤海)를 건국하였으나 10세기에 거란(契丹)에게 멸망하였다. 11세기에 만주족의 직접 조상의 하나인 여진족(女眞族)이 나타나서 1115년 금(金)나라를 세워 거란족의 요(遼)나라를 멸망시키고 송(宋)나라를 압박하였으나, 1234년 몽골에게 망하였다. 원(元)·명(明)시대의 여진족은 요동의 건주여진(建州女眞), 쑹화강[松花江(송화강)] 유역의 해서여진(海西女眞), 헤이룽강[黑龍江(흑룡강)] 방면의 야인여진(野人女眞)으로 나뉘어 몽골족·한족(漢族)의 지배를 받았다.


193.미나하사족(Minahasa) 


인도네시아 셀레베스섬 북쪽 미나하사반도에 사는 말레이계 민족. 미나하사어(語)를 모어(母語)로 하여 방언에 따라 여러 말로 나누어진다. 1563년 포르투갈인이 처음 들어온 뒤 에스파냐인이 들어와 가톨릭 포교를 시작했고, 19세기에는 네덜란드의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도 합류해 오늘날 주민 대부분이 그리스도교도이다. 토지가 비옥하여 화전과 벼농사를 지으며 옥수수가 주식이고 쌀이 부식이다. 화산재성 토지가 많기 때문에 화전에 의한 이동성은 적다. 소·돼지 사육과 들쥐·박쥐 사냥도 하지만 해안에서의 어업이 가장 중요시된다. 친족관계는 쌍계제(雙系制)를 바탕으로 결혼 뒤에는 새로운 집으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계층분화는 뚜렷하지 않지만 농경·의례에서 상부상조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등 필리핀 사회와 유사하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이전의 전통종교는 여러 영(靈)을 섬긴 것으로 추정되며, 주술사가 종교지도자 역할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194.미낭카바우족(Minangkabau)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섬 서부에 사는 말레이계의 민족. 인구 약 471만(1997). 말레이어의 한 변형이라 할 수 있는 미낭카바우어(語)를 사용한다. 대도시와 말레이시아로 이주한 사람이 많다. 논농사를 중심으로 하고 밭농사도 한다. 모계제(母系制)이며 촌락은 몇 개의 모계씨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하부단위인 소혈족집단은 농지 등의 공동세습재산을 가지며 한 사람의 남성 우두머리가 이끈다. 그들은 물소뿔같이 생긴 지붕을 가진 방바닥이 높은 큰 집에 산다. 공동재산의 사용권을 어머니로부터 딸에게로 계승하는데, 위양분할(委讓分割)되지는 않고 일족의 남성, 즉 딸의 오빠나 남동생이 관리한다. 결혼은 촌내족외혼(村內族外婚)을 기본으로 삼고 처가살이를 하는데, 예전에는 밤에만 남편이 처가를 찾아가서 아침에 돌아가는 것이 상례였다.


195.미슈미족(Mishmi) 


인도 북동부 아루나찰프라데시에 거주하는 부족. 언어는 티베트-버마어계 방언을 사용하며, 디방계곡과 루히트강을 따라 모여 산다. 루히트계곡의 높은 지역에 거주하는 미주와 낮은 지역의 디가루 2집단으로 구분되며, 디방계곡에 거주하는 사람은 미두라 한다. 부계를 기준으로 결혼 범위가 정해져 있어 다른 부계 사람과 혼인하며, 이동이 잦아 정착민은 적다. 족장이 존재하지 않아 실제적으로 가계(家系)에 의한 자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농경은 매우 원시적으로 옥수수·메밀이 주요 산물이며, 보리·밀은 고지대에서, 쌀은 언덕에서 재배한다. 가축은 식용으로 사육하고 통화의 구실도 한다. 또 수렵과 어업에도 종사한다. 티베트와 아삼에 살고 있는 종족과의 물물교환이 성하다. 부족신을 섬기는데 산 짐승을 제물로 바치며, 티베트의 영향을 받은 점도 몇 가지 눈에 띈다.


196.믹스텍족(Mixtec) 


멕시코 오악사카주(州) 북부와 서부에 사는 화전민(火田民). 고지·저지·해안평야의 3그룹으로 나뉘는데 모두 옥수수를 중심으로 하는 화전경작을 하며 살아간다. 10세기 이래 오악사카주 일대에서 강한 세력을 가진 높은 수준의 문화를 탄생시켰고, 발달된 성층사회국가(成層社會國家)를 이룩하였다. 그 무렵의 그림문서인 코데쿠스는 사회나 종교 등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또한 아스텍시대에도 우수한 장식토기라든지 귀금속 공예품 등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식민지시대 이후 높은 수준의 문화는 없어졌으며, 산촌(山村)에 흩어져서 살게 되었는데, 의례(儀禮)·애니미즘·생활양식 등은 전통문화를 지속하고 있다. 독특한 치마 등 여성의 전통의상은 부유함의 상징으로 중시되었다.


197.밍그렐족(Mingrelian) 


그루지야인의 한 종족. 러시아어로는 메그렐족(Megrel). 고대에 흑해 연안에서 번영한 코르키스 왕국의 유민(遺民)이다. 현재 리오니강 오른쪽 연안과 호비·잉글리 등의 하천분지에, 또 긴밀한 집단을 이루고 아부하지아에 산다. 카르트인·스반인 등과 함께 그루지야민족 형성의 모체가 되었다. 16세기 중엽 영주 다디아니가(家)는 이멜레티아 그루지야 왕국에서 사실상 독립하고 아부하지아에도 지배권을 가져 그 영역이 사메그렐로라고 불렸다. 오스만제국의 진출을 앞두고 다디아니가는 1638년부터 러시아차르의 명목적 가신(家臣)이었으며, 1803년 그리고르 다디아니는 최종적으로 차르의 보호를 구했다. 러시아의 직접통치가 행해진 것은 1856∼1857년의 농민반란 진압 뒤이다. 밍그렐어는 그루지야어의 방언이 아니고 독립된 언어이지만, 문어(文語)로는 발달하지 못했으며 가정에서 모어(母語)로 사용해도 사회에 나가서는 그루지야어를 사용한다. 그들은 최근까지 다른 그루지야인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생활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198.바가라족(Baggara) 


아프리카 수단 중앙부, 백나일강과 차드와의 국경 부근 사이의 사바나지역에 사는 유목민. 바카라족이라고도 한다. 인구 약 500만. <바가라>는 <소를 치는 사람>을 뜻한다. 이들은 이슬람교도이며 아랍어를 사용하고 자신들은 아랍의 피를 물려받았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몇 세기 전에 아랍지역에서 서쪽으로 진출, 남하하여 온 것으로 생각되나, 그 사이에 흑색 인종의 피가 상당히 섞여 있다. 바가라족은 호무르족·카바비슈족 등 다수의 부족으로 갈라져 바가라족으로서의 통일은 없다. 부족은 1∼2명의 나지르라고 하는 지도자에 의해 인도되고 있다. 바가라족은 물과 목초를 찾아 계절에 따라 이동하면서 소를 사육한다. 건기에는 습지대로 남하하고, 우기에는 반사막지역으로 향해 북상한다.


199.바스크인(Basque) 


피레네산맥 서단에 걸쳐 비스케이(가스코뉴)만안 일대에 거주하며, 바스크어를 사용하는 민족. 인구 70만(1997). 바스크인은 프랑스령에서는 라부르·바스나바르·술의 옛 3지방에, 에스파냐령에서는 기푸스코아·비스카야·알라바 3주와 나바라자치주에 각각 거주하고 있다. 바스크인은 1970년대 말 약 85만이 에스파냐에, 13만이 프랑스에, 약 17만이 유럽 외의 남아메리카와 미국에 주로 거주했다고 한다. 이베리아반도에는 고대부터 중세에 걸쳐 라틴어가 널리 퍼졌으나 바스크인만은 홀로 바스크어를 지켜왔다. 전통적인 복장(베레모 등), 음악·무용·경기(하이알라이와 나무뻐개기 등)를 고수하고 있다.


200.반달족(Vandal) 


민족대이동 시기에 활동한 동게르만계의 혼성부족. BC 1세기 무렵 오데르강 상류지역에 살다가 남하하여 AD 3세기 후반 다뉴브강 중류·하류지역으로 이주하였다. 406년 고데기젤왕이 부족을 거느리고 라인강을 건너 갈리아를 침입하였고, 409년에는 피레네산맥을 넘어 에스파냐로 이주하였다. 에스파냐를 침입한 서고트족의 압박을 받아, 429년 가이저리히왕은 전 부족을 모아서 북아프리카를 정복하고 반달왕국을 세웠다. 그 뒤, 가이저리히는 서지중해지역을 제압하여 한때 게르만계 나라들 사이에서 패권을 장악하였지만, 그가 죽자 세력은 약해졌다. 533년 비잔틴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보낸 벨리사리우스에 의해 멸망되었다.


201.반투어족


아프리카 중남부, 카메룬과 케냐를 잇는 선에서 남쪽의 광대한 지역에 분포하는 수백의 언어로 이루어진 어족. 이들 언어 사이에 친족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증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백하다. 반투제어(諸語)의 대부분은 부족어이며, 그 중에는 소멸 직전에 있는 것도 있지만, 반면에 스와힐리어(탄자니아 등)와 같이 수천만의 사용인구를 가지는 공통어도 있다. 반투제어의 태반에 공통적인 특징은, 명사가 상당수의 갈래(문법적인 集合 또는 類)로 나뉘어, 형용사·지시사·소유대명사·소유사·수사·술어동사 등 명사와 직접적 관계에 있는 것이 대응하는 명사가 어느 갈래에 속하는가에 따라서 형태의 일부를 바꾼다(특히 어두에서)는 <문법적 호응>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서구어(西歐語)의 성(性)이 더 복잡해진 것으로 생각해도 좋지만, 자연의 성은 관여하지 않는다. 명사는 접두사와 어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접두사를 보면 그 명사가 속하는 갈래를 거의 알 수 있다. 단수와 복수의 구별은 있으나, 단수명사(또는 복수명사)의 접두사를 보면, 대응하는 복수명사(또는 단수명사)의 접두사를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간은 단수·복수가 공통인 것이 일반적이다. 술어동사의 구조를 보면 동사어간에 전접(前接)하는 각종 접사가 많으며 접미사는 적다.


202.발트족(Balt) 


인도유럽어족의 하나인 발트어파에 속하는 언어를 모어(母語)로 하는 민족. 인구 약 593만(1998). 라트비아인과 리투아니아인 두 민족이 속한다. 이 민족의 언어에 대한 기록은 16세기 이후 처음으로 나타난다. 슬라브어파와 발트어파는 인도유럽어족 내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로 신화·민간전승·풍속·물질문화에서 분명한 공통점을 가진다. 역사적으로 두 어파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BC 1500∼BC 500년 무렵까지 있었다. 발트족의 거주지는 발트해 연안지역으로 그 대부분이 리투아니아에 속하지만 강·호수 이름을 연구해 본 결과 기원전에는 지금의 우크라이나까지 그 거주지역이 미쳤음을 알 수 있다. 같은 어파에 속하면서 라트비아인과 리투아니아인은 문화적으로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데 이것은 두 민족이 겪은 역사의 차이 때문이다. 라트비아가 튜트기사단과 스칸디나비아 여러 나라의 지배를 받는 동안 게르만계 프로테스탄트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반면 리투아니아는 오랫동안 폴란드의 슬라브계 가톨릭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 라트비아인이 발트·핀계 민족으로부터 문화적 영향을 받았던 것에 비하여 리투아니아인은 백러시아인의 문화적 영향을 받았다.


203.밤바라족(Bambara) 


서아프리카 말리 남부에 사는 농경민. 인구는 약 120만. 밤바라어를 쓰는데 이 지역의 공통어로 중요하다. 주로 농경을 하는데 옥수수·쌀·밀 등을 재배한다. 어업·수렵도 하며, 교역은 주로 이슬람교도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회계층구조가 존재하고 있어, 전사(戰士)·자유민·노예 외에 대장장이·사냥꾼·목수 등이 천민 카스트를 구성하며, 굴리요라는 음유시인이 최하층에 속한다. 부계 혈연집단의 결속이 강하고 부방거주(夫方居住)를 하는 확대가족이 기본단위이다. 종교적 권위를 가진 세습의 수장(首長)이 있고, 남녀 모두 할례를 하며, 연령계제제(年齡階梯制)가 있다.


204.버마계제족(-系諸族 Burman)


중국·티베트어족에 속한 버마어를 모어로 삼는 여러 종족. 버마족 외에도 아라칸족·타보이족·타운요족·다누족·인다족·요족 등이 있다. 버마족은 9세기 중엽 이라와다강 중·하류지역에 진출해 버마의 여러 왕조를 세웠다. 대다수가 소승불교도이며 벼농사를 지었다. 벵골만 연안의 아라칸지방에 사는 아라칸족은 생업이나 종교면에서 버마족과 같으나 벵골지방에 인접해 있으므로 일찍부터 인도문화, 15세기부터 이슬람문화의 영향을 받아 독자의 정치적·문화적 영역을 형성하였다. 현재 미얀마 내 아라칸주(인구 180만 이상)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들 언어는 버마어의 한 방언이며 옛 형태를 가지고 있다. 버마어의 방언을 쓰는 민족에 테나세림지방 타보이족, 샨고원 타운요족·다누족·인다족, 친산지 동쪽 기슭 요족 등이 있다. 그들은 소수 집단이지만 독특한 문화를 가졌다. 타운요족에는 카렌계 문화, 다누족·인다족에는 샨문화의 영향이 나타난다.


205.베다족(Vedda) 


스리랑카의 원주민. 19세기 말 차(茶)의 재배지가 중앙고지의 오지로 퍼짐에 따라서, 밀림지대의 채집수렵민 <베다>가 영국인에게 알려져 문화인류학자 C.G. 셀리그먼 등이 이것을 <석기시대의 유물>로 간주하고 조사함으로써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셀리그먼이 조사한 석기시대의 베다는, 임시로 오두막집에서 살며 동굴·바위 밑을 이동, 근채(根菜)·과일·벌꿀을 채집하고, 수렵·어로로 생활하였다. 셀리그먼의 조사 당시에도 주변농민과 마찬가지로 향모(香茅)·옥수수를 주로 한 화전농민이면서 베다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석기시대의 베다에서는 예전의 싱할리족과 같이 모계이고, 입부혼(入夫婚)이 성행하였던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3∼5가족으로 이루어지는 소집단의 세력권은 유동적이어서, 셀리그먼이 보고한 모계조직의 실태를 확인할 수 없는 등 불확실한 점이 많다. 채집수렵민 베다의 석기시대적 특징은 셀리그먼의 조사 당시에도 오로지 물질문화에만 한정되어, 야차(夜叉)를 보편적인 신격(神格)으로 하는 주술적(呪述的) 종교·의례는 기본적으로 싱할리와 관계가 있었다. 문헌상의 베다는 스리랑카에 <아리아인>이 도착하기 이전의 원주민으로 되어 있고, 고문헌에도 싱할리와의 통혼(通婚)을 언급하고 있으므로, 2000년 이상이나 지난 뒤의 셀리그먼 조사 당시에 이 섬 안에 외계로부터 단절된 집단이 남아 있었다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206.베두인(Bedouin


아라비아반도를 중심으로, 중근동과 북아프리카의 사막·반사막(半沙漠) 일대에 사는 아랍계 유목민. 베두인이라고 하는 말은 정확한 아랍어가 아니다. 바다비(단수여성형은 바다비아)의 집합명사 바두 또는 구어복수형 바다빈이라고 하는 아랍어를 유럽인이 잘못 발음한 것이 시초라고 전해지고 있다. 베두인과 아랍이 원래 동의어였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사료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아랍이라는 말이 최초로 나타난 BC 853년 무렵의 아시리아의 비문(碑文)에서는, 그것은 아라비아반도 북부에 사는 베두인을 말하는 것이었다. 남아라비아의 고대비문이나 코란에 나오는 아랍도 베두인임을 지적하고 있다. 아랍어의 바두는 바디야(사막성 황야, 도시가 아닌 곳)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그들이 이동하고 있거나 정주하고 있거나, 또는 일시적으로 정주하고 있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베두인을 <유목민>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오역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바두와 대조가 되는 말로서 하다리(도시에 사는 사람들)가 있다. 그러나 하다리도 원래는 바두였던 사람이 대부분이며, 양자 사이에서 연속성과 가역성을 찾아볼 수 있다.


207.베르베르족(Berber) 


북서아프리카에 살며 베르베르어를 사용하는 민족. 이집트의 시와오아시스를 비롯하여 카나리아제도, 산악지대와 사하라사막 일대에 분포한다. 추정 인구수 1317만 명(1997) 중, 모로코 898만 명(모로코 인구의 31%), 알제리 413만 명(알제리 인구의 14%)을 차지하며 튀니지·리비아 등은 6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베르베르라는 명칭은 라틴어의 <barbarus(로마세계 밖에서 사는 비문명인을 뜻함)>에서 유래하지만, 그들은 아마지그(복수형 imazighen;고귀한 출신의 인간, 자유인이라는 뜻)라고 자칭한다. 언어적으로는 아프로아시아어족(語族)에 속하며, 방언군(方言群)으로는 자나타계·마스무다계·산하자계 등 3가지로 대별된다. 역사시대에 들어서서 페니키아·그리스의 식민지가 되었고, 로마·반달·비잔틴의 지배를 받았으나, 해안부의 여러 도시에 한정되어 있어서 깊은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7세기부터 시작된 아랍의 침입·정복은 베르베르족을 차츰 이슬람화·아랍화해 갔다. 무라비트왕조(1056∼1147)·무와히드왕조(1130∼1269)·마린왕조(1196∼1465)는 이슬람화한 베르베르족의 왕조이다. 아랍화의 진행요인은 7세기부터 시작된 정복활동, 11세기의 아랍유목민의 침입, 12세기 이후의 모로코 남·북으로의 아랍의 이주, 국토회복운동의 압박 후 이베리아반도로부터의 아랍계 주민의 유입 등이다.


208.벤드족(Wenden) 


독일인의 동방식민이 개시되기 이전, 독일의 동방국경에 접하는 엘베강·자르강 동쪽지역에 거주해 있던 서슬라브계 여러 민족의 총칭. 카를대제 이래 역대의 독일황제는 벤드족의 그리스도교화와 무력적 정복을 시도했으나, 몇 차례의 반란으로 완전히 성공하지 못하였고, 1147년의 벤드족에 대한 십자군원정이 성공함으로써 독일인의 동방식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벤드족은 급속히 독일화하였다.


209.벰바족(Bemba) 


아프리카 중남부, 잠비아공화국 북동부 고원지대에 거주하는 농경민. 인구 278만(1997). 벰바어는 반투어에 속하고 잠비아에서도 유력한 언어로 국어의 하나이다. 전승에 따르면 벰바족은 오늘날의 자이르공화국 샤바지방에서 비롯된 루바족의 후예로서, 약 200여 년 전에 처음으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 이 최초의 이주 집단 자손이 수장을 선출하는 유력한 씨족을 형성하고 있다. 19세기에는 파라마운트 치프(최고수장)가 거느리는 강대한 왕국을 형성하고, 주변의 여러 부족을 지배하였는데 그 군사력은 아랍과의 교역에서 얻은 총포에 의존하고 있었다. 벰바족의 사회는 모계제로 알려져 있으며, 결혼 뒤의 거주도 처가쪽 거주이고 일반적으로 일부다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역집단인 촌락은 촌장의 모계 출신 집단을 중심으로 한 혈연집단이기도 하다. 오늘날 벰바족 성인남자의 대부분은 남부의 구리생산지대의 광산과 도시에서 일하고 있다. 한편, 촌락부에서는 전통적인 자급농경이 이루어지고 있다.


210.벵골인(Bengalese) 


인도의 서벵골주와 방글라데시의 이슬람교도·힌두교도의 총칭. 쌀·주트가 주요한 작물이다. 무굴시대에는 뒤떨어졌던 벵골인이 인도문화를 담당하게 된 것은 켈커타가 식민지의 수도가 되고, 영어교육의 중심이 된 캘커타대학이 졸업생을 많이 낸 19세기 후반 이후의 일이다. 영국 지배하에서 중산계급 대량육성의 급무에 부응하기 위해 벵골농촌의 힌두를 끌어들이고, 확대되어가는 식민지에다 확산시키는 기능을 캘커타대학이 수행했기 때문이다. 벵골인이 서유럽문화를 수용하고 민족주의의 핵심이 됨으로써, <벵골르네상스>의 창시자인 람모한 라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R. 타고르 같은 문화인이 배출되었다. <사타지트 라이>로 대표되는 현대 벵골의 영화, 캘커타의 금융 중심지 등과 함께 두드러진 경제발전을 보였으며, 인도 최대의 빌라재벌로 상징되듯 벵골인의 공업력은 인도공업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211.보도족(Bodo) 


인도 아삼지방에 사는 티베트버마어족(語族)의 총칭. 평원(平原)카차리, 산지(山地)카차리(디마사), 가로·라바·메추·디말·코추·크티야·자이종·호자이·랄룽·모란 등의 여러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구는 약 120만으로 추정된다. 옛날에는 보도족으로서의 통일된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으나, 현재는 문화의 내용이 같지 않다. 힌두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카스트제도를 받아들인 부족도 있다. 일반적으로 부계사회이지만, 가로족만은 모계사회이다. 가로족은 산마와 마르크라는 2개의 포족(胞族)으로 나누어져 있다. 산마와 마르크는 각기 몇 개의 모계 혈연집단으로 나누어지고 그것이 다시 몇 개로 나누어져 마을을 이루고 산다. 결혼은 특정한 산마 마을과 마르크 마을 사이에 행해지는데, 처가거주혼(妻家居住婚)을 취한다. 촌장은 그 마을 창시자의 혈연집단 여자의 남편이고, 촌장의 지위는 촌장의 딸과 결혼한 촌장 자매(姉妹)의 아들이 잇는다.


212.보로로족(Bororo) 


브라질 마투그로수주(州)에 사는 원주민 부족. 인구 약 500명. 인종적으로는 몽골로이드 대인종(大人種)의 아메리칸 인디언에 속한다. 과거에는 이 주의 북부에서 중앙부에 퍼져 있던 큰 부족이었으나, 백인과 접촉한 뒤로는, 인구가 격감하였다. 서보로로와 동보로로로 나뉘는데, 서보로로는 전에 파라과이에 가까운 서쪽에까지 퍼져 있었으나, 문화의 변용이 심하여 현재에는 보로로족을 다른 종족과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동보로로는 현재까지 비교적 전통을 잘 지키고 있다. 거주지는 파라과이강의 지류 산로렌소강 유역에서 아마존강 지류인 아라과이아강의 수원 유역까지 산재해 있으며, 3그룹으로 나눌 수가 있다. 보로로어(語)는 제족의 여러 언어와 가까운 관계에 있고, 사회·문화면에서도 비슷한 점이 있다. 화전·수렵·어로·채집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213.보어인(Boer)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네덜란드계 백인. 부르인이라고도 한다. 현재는 아프리카너라고 한다. 이 나라 백인 478만 명(1998) 중 약 60%를 이룬다. 역사적으로는 17세기 중엽 네덜란드 동(東)인도회사가 만든 케이프 식민지에 본국 네덜란드에서 이주한 이민이었으며, 농민(보어)이 많았다는 데서 연유한다. 19세기 초 영국의 케이프 점령과 영국지배에 반대하여 1835년 대거 내륙으로 이동하여 트란스발공화국과 오렌지자유국의 두 보어인 공화국을 세웠다. 1880년대 트란스발에 금광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영국이 트란스발을 병합하려고 보어전쟁을 일으켰는데 영국의 승리로 돌아갔고, 1910년 영국은 남아프리카연방을 결성했다. 그러나 연방이 결성된 다음에도 영국에 대한 보어인의 반감은 끈질겨 보어인의 문화 보전과 권리 확립을 위해 싸웠다. 1925년에는 그들의 언어 아프리칸스어를 공용어로 했다. 또 보어인은 프로테스탄트계 네덜란드 혁신파교회를 신봉하고 강력한 선민사상으로 유색인종을 멸시했다.


214.보탸크족(Votyak) 


러시아연방 우드무르트공화국의 주요한 주민. 우랄계 페름어파의 보탸크(우드무르트)어를 사용하고 있다. 지리엔(코미)족과 공통의 조상인 페름족이 중부 볼가강 지역에 이주해 온 것은 8세기 무렵이라고 하는데, 지리엔족은 북쪽으로 이동했으나, 보탸크족은 13세기 중엽 타타르족의 지배를 받을 때까지 이 땅의 볼가르왕국 영내에 머물렀다. 16세기 이후 러시아인에게 예속되었다. 거주지는 비옥하여 원시적 경작으로도 보리·귀리 등을 풍성하게 거둘 수 있었으므로, 거의 모두가 농업으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가축사육은 가정용이며, 식생활은 여러 가지 파이를 만들어 먹거나 비타민류를 많이 함유한 자작나무 음료 같은 것을 마신다. 성스러운 장소를 찾아서 전통적 통나무집을 고집하며, 주술적인 의미에서인지 술빚기는 여자의 일이었다. 교역적 약탈혼의 습속은 그리스정교 의례를 받아들이면서도 19세기 말까지 계속되었다. 나이가 적을수록 신부의 가치가 높은 것은 그 노동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현재 우드무르트 민중문화에 대한 여러 연구성과가 출간되고 있다.


215.보토쿠도족(Botocudo) 


브라질에 사는 남아메리카 인디언의 세 종족 집단. 산타카타리나주의 아웨이코마라고도 불리는 제(Ge)계의 집단, 파라나주의 과라니계의 집단, 동부의 내륙부에 사는 보룬이라고 하는 독립된 언어를 가진 집단을 말한다. 보룬은 다른 해안부 원주민과 마찬가지로 인구가 백인과의 접촉 이후 격감하였다(1939년에 80명 정도). 원래 수렵채집민으로 남자는 수렵, 여자는 채집을 하였다. 50∼200명이 확대가족을 형성하고, 함께 이동하고 협동하는 외혼적(外婚的) 무리를 이루었다. 무리는 초자연적인 힘을 가졌다고 믿어지는 한 지도자가 인솔하였다. 아웨이코마는 카인강족 중에서 유랑적 성격이 가장 강한 그룹이며 수렵채집생활을 계속하였다. 노예사냥의 표적이 되어 인디오국(局)의 거류지에 살게 되었으나, 1930년의 인구는 106명으로까지 감소하였다.


216.부랴트족(Buryat) 


바이칼호 주변에 사는 몽골족의 한 종족. 인구 약 4만(1997). 언어는 알타이어족 몽골어군에 속하고, 몽골어를 사용하는 민족으로서는 최북단에 살고 있다. 인구의 거의 대부분이 부랴티야공화국과 우스티오르딘스키부랴트민족관구에 모여 있으나, 이 밖에도 이르쿠츠크주, 몽골공화국 북부, 중국의 둥베이지구에 약간 분포하고 있다. 부랴트족은 12∼13세기의 몽골제국시대에도 존재하였으나, 한 부족으로 성립한 것은 17∼18세기이며, 몽골족의 할하부족과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뒤 독립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영주들은 러시아제국에 의지하여 그 지배 아래에 들어갔다. 생업은 바이칼호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큰 차이가 있다. 동쪽 자바이칼지방에는 러시아인의 진출이 드물어, 주로 전통적인 유목생활을 하면서 소·양·말·낙타를 사육하고 둥근 모양의 천장으로 된 펠트 텐트에서 산다. 농경은 2차 생업이다. 한편 서쪽은 러시아인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강의 골짜기, 분지 등에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으며, 보리·밀·호밀 등을 재배하고 목조가옥에 산다.


217.부르군트족(Burgunder) 


고(古)게르만민족 중 동(東)게르만계의 한 부족. 포메른 동부의 원주지에서 4세기 후반에는 라인강 중류역으로 진출, 로마와 동맹관계에 들어가고, 413년 군다하르왕 밑에서 부르군트왕국을 건립하였으나, 436년 로마의 장군 F. 아에티우스 지휘하의 훈족 용병군(傭兵軍)에게 패해서 멸망하였다. 중세독일의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하고 있다. 군다하르의 손자 군도베히는 패잔한 부족민을 이끌고 사부아지방으로 옮겨서 443년 왕국을 재건했다. 그의 아들 군도바트는 부왕이 죽은 뒤 분열된 왕국을 재통일하고, 아들 지기스문트와 동고트국왕 테오도리크 딸과의 결혼으로 동고트왕국과의 제휴를 꾀하였으며, 서고트족으로부터 프로방스지방을 탈취하고 부르군트법전을 편찬시키는 등 왕국의 최성기를 실현했다. 534년 클로타어 1세 등의 프랑크제왕 연합군에게 패하여, 국왕 군디마어는 전사하고, 프랑크왕국에게 합병되었다.


218.부족(tribe)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소규모이고 자기충족적인 무문자사회(無文字社會)에 사는 사람들의 집단. 부족에 대한 공통되는 명확한 정의(定義)는 없다. 영어 tribe의 어원인 라틴어 tribua는 고대 로마국가의 정치적 분할단위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19세기 진화론적 인류학자인 L.H. 모건은 부족사회(tribal society)를, 사회조직은 있으나 정치조직이 없는 사회라고 하였고, 법적 측면에서 H.J.S. 메인은 자발적인 계약관계에 근거를 둔 근대사회와는 대조적으로, 타고난 그대로의 신분에 의한 권리관계가 우세한 사회라고 하였다. 그 뒤 경험적 연구의 축적으로 말미암아 부족사회의 특징으로 사회의 내용보다도 오히려 형태가 중시되었는데, 즉 소규모이며 일정한 영역을 차지하고 자급자족의 경제활동을 하는 사회를 말한다.


219.북유럽인종(Nordic race)


코카소이드의 대표적 인종. 주로 유럽 북부에 분포하므로 이런 이름이 붙었으며, 북방인종이라고도 한다. 머리털의 빛깔은 금발이나 갈색, 눈동자는 파랑·녹색·회색을 띤다. 피부는 멜라닌색소의 양이 매우 적어 하얀 빛깔을 띤다기보다는 피하의 모세혈관이 비쳐 분홍색으로 보인다. 직사광선에도 피부가 잘 타지 않으나 얼굴이나 팔에는 주근깨가 생기기 쉽다. 코는 인류 가운데 가장 좁고 앞으로 튀어나왔으며, 코끝은 가늘다. 콧등은 반듯하거나 또는 가볍게 철(凸)자모양으로 굽는다. 얼굴폭은 일반적으로 좁고 길다. 이마는 넓고 양옆이 약간 경사지며 우뚝하다. 안와상융기(眼窩上隆起)는 비교적 발달하여 정면으로 보면 눈과 눈썹 사이가 좁다.


220.비사얀족(Visayan) 


필리핀 중부 비사얀제도(사마르·레이테·세부·파나이·네그로스·보홀 등)와 민다나오섬 일부에 사는 사람들. 비사얀어는 약 1700만 명이 사용하므로 필리핀에서 최대사용인구를 가지며 말라요 폴리네시아어족에 속한다. 비사얀어는 세부아노어 등 4가지 방언으로 나누어져, 사회·문화는 다소 다르나 에스파냐문화의 영향을 받은 필리핀 그리스도교 문화를 형성한다. 보통 말뚝 위 집에서 살며, 쌀·옥수수·마닐라삼·사탕수수·코코넛을 재배하고 어업도 한다. 세부·일로일로 등의 도시에 사는 비사얀족의 생활은 급격히 유럽화되어 가고 있으며, 괌·하와이·미국본토에 많은 사람이 이민 가 있다.


221.비콜족(Bikolano) 


필리핀 루손섬 남동쪽 끝에 길게 뻗은 비콜지방의 여러 주(카마리네스·알바이·소르소곤)와 그 주변의 크고 작은 여러 섬에 살며, 비콜어를 사용한다. 인구는 약 407만(1997)으로 총인구의 약 6%를 차지하며, 평지의 그리스도교민 가운데 5번째로 큰 부족이다. 일반적으로 신앙심이 두터우며, 부드럽고 온건한 성품을 지녔다. 아버지(남편)·어머니(아내) 쌍방으로 퍼진 친족관계가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농업이 주요 생업이며, 쌀을 중심으로 옥수수·코코넛·아바카(마닐라삼) 등을 재배하지만 태풍의 길목에 있으므로 종종 큰 피해를 입는다. 알바이주 주도 레가스피시는 비콜지방의 중심지이며, 관광지로 유명하다.


222.비하르인(Bihari) 


인도 비하르주의 주민 중 인도-아리아어계의 비하르어를 구사하는 약 4000만 명의 주민들의총칭. 비하르어는 3방언으로 나누어져 있다. 비하르인의 대다수는 힌두교도이며, 극히 일부만이 이슬람교도이다. 주산업은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농업이나, 근년에는 갖가지 근대산업에 종사하는 자가 많다. 다수의 카스트(caste)로 나뉘어 각기 특정직업과 관계를 맺고 있다.


223.빌족(Bhil) 


인도 토착민족 중의 하나. 북쪽은 라자스탄주의 아지메르 부근, 남쪽은 마하라슈트라주의 타나지역까지, 동쪽은 마디아프라데시주의 인도르 주변에 걸쳐서 사는 인구 약 632만(1997)의 사람들이다. 과거에는 도둑으로 유명하였으며 산지에 틀어박혀 평야의 주민들을 습격하였으나, 지금은 농민·노동자로서 생활하고 있다. 농업은 가래를 사용해서 벼·잡곡류를 짓고 있다. 산지에서 화전을 일구는 빌족도 있다. 빌족은 인도의 오랜 민족 중 하나로 여겨지는데, 기원·역사는 분명치 않다. 피부색은 검으며 입술은 두툼하고 넓은 코를 가졌으며, 신체적으로는 문다족과 비슷하나, 오늘날의 빌어(語)는 인도아리아어족에 가깝다. 빌족의 문화·사회는 오랜 동안 다른 민족(라자스탄인·구자라트인·마라티인)과 인접하거나 섞여 살았기 때문에 그들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는 이슬람교도이지만, 대부분은 힌두교적 요소가 가미된 종교를 가졌다.


224.사르트족(Sart)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을 중심으로 타지키스탄·카자흐스탄 등지에 거주하는, 인종적·문화적으로 이란계의 타지크인과 터키계의 우즈베크인의 혼합민족. 사르트족이 사는 스텝지대는 역사적으로도 코카소이드(백인종)와 몽골로이드(몽골인종)의 혼혈지역이며, 사르트족은 그 전형적 예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사르트라는 민족은 존재하지 않았고, 정복자로서 나중에 온 러시아인이 이 지방 사람들을 민족단위가 아니라 생업으로 구분하여, 유목민에 대해서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정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사르트라고 부른 데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민족용어로서는 의미가 없고, 현재는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형질적(形質的)으로는 중키에 단두(短頭)이며, 머리카락은 검고, 피부 및 눈빛깔은 진한 갈색인 점 등 몽골적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전통적으로 남녀구분이 엄격하고, 주거와 식사도 남녀 따로 하며, 여자는 외출할 때 검은 베일을 쓰고, 나이가 들면 이[齒(치)]를 검게 물들이는 관습이 있다. 남자는 머리를 깎고, 수염을 길러 이발소가 많다. 종교는 이슬람교 수니파이다.


225.사모예드족(Samoyed) 


우랄어족 사모예드어를 말하는 민족. 사모디족이라고도 한다. 현재 사모예드족은 네네츠족·예네츠족·가나산족·셀리쿠프족의 네 민족으로 이루어진다. 네네츠족은 예니세이강부터 우랄산맥 서쪽 드비나강까지의 북극해 연안 툰드라와 삼림지대, 즉 타이미르·야말로네네츠·네네츠 각 자치구와 코미공화국 북부에 분포한다. 네네츠족이란 이름은 사람을 뜻하는 <네네츠>에서 왔다. 툰드라에서 행해지는 대규모 토나카이 유목이 주된 생업이며 생활의 대부분을 토나카이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사냥과 고기잡이도 중요한 생업수단으로, 특히 삼림지대에 분포하는 네네츠는 사냥과 고기잡이로만 살아간다. 또한 예네츠족은 예니세이강 하구 부근, 가나산족은 티이미르반도에 분포하는데 예네츠족은 최근에 미네츠족에 동화·흡수되었으나 가나산족은 약 900명이 남아 있다. 그들은 네네츠족과 마찬가지로 툰드라에서 토나카이 사육을 하는데 타이미르반도가 아직 야생 토나카이의 보고이기 때문에 사냥의 비중이 높다. 셀리쿠프족은 예니세이강과 오비강의 중간지대에 분포하며 인구는 약 3600명이다.


226.사모왕국(Samo) 


7세기에 출현한, 역사적으로 실증되는 최초의 슬라브인 국가. 6세기에 아바르족에게 종속되어 있으면서 보헤미아·모라비아지방에 정착한 서슬라브인은 623년에 아바르족을 무찔렀다. 이때 활동한 프랑크 상인 사모는 슬라브인에게 천거되어 국왕이 되었다. 이 왕국은 프랑크군을 무찔러 북쪽은 라우지츠인지방, 남쪽은 슬로베니아인 지방까지 영토를 확대하였으나, 658년 사모가 죽은 뒤 아바르족에게 멸망되었다.


227.사카이족(Sakai) 


말레이시아 말레이반도에 사는 원주민. 세노이족을 말레이인과 중국인이 <노예>라는 뜻으로 경멸하여 부르는 호칭이다. 예전에는 민족명으로 쓰였으나 현재 말레이시아 정부는 말레이어로 <토착인>이라는 뜻의 오랑 아스리를 원주민의 총칭으로 쓰고 있다. || 말레이 반도 사 세노이족 인과 인 중국인 노예 라 뜻 경멸 부르는 호칭 예전 민족명 쓰였으나 정부 어로 토착 토착인 아스리 원주민 총칭 쓰고 있다.


228.사카족(Saka) 


BC 1~AD 1세기에 아프가니스탄(남동부)·파키스탄·인도(서부)를 지배한 스키타이민족. 샤카족(aka)·인도스키타이족이라고도 한다. 그 역사는 은화·동화 등의 명문(銘文)에 의해 재구성되고 있지만, 확실하지 않아 이론(異論)이 많다. 이들은 서(西)투르키스탄에 살고 있었지만 BC 130년경 대월지(大月氏)의 압박으로, 아프가니스탄 남동부(시스탄)와 파키스탄으로 이주했다. 시스탄은 아르사케스왕조(파르티아)의 지배 아래 있었지만, 보노네스 밑으로 독립하여, 곧 인더스강 서해안에 이르는 왕국을 세웠다. 그 뒤 파키스탄은 마우에스가 인도·그리크왕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왕국을 세웠지만, 곧 다른 계통인 아제스 1세·2세, 아지리제스 일족이 지배하였다.


229.사타(沙陀) 


북아시아 서돌궐(西突厥)의 일파. 당(唐)나라 초기에는 톈산산맥[天山山脈(천산산맥)] 동부에 있어서 고종(高宗;재위 649∼683) 때 당나라의 간접지배를 받았으나, 토번(吐蕃)의 압박으로 북정(北庭;비슈바리크) 방면으로 이주한 뒤 808년 당나라에 항복하였다. 당나라는 이들을 염주(鹽州)에 머물게 하고는 족장 주사집의(朱邪執宜)가 북서변 방위를 맡도록 하였다. 그의 아들 적심(赤心)은 당나라 말기, 혼란기의 반란을 평정하는 데 공적을 세워서 당나라로부터 이국창(李國昌)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국창의 아들 이극용(李克用)은 당나라를 도와서 황소(黃巢)의 난을 평정하는 데 힘썼으며, 또한 그의 아들 이존욱(李存勖)은 923년 후량(後梁)을 대신하여 후당(後唐)을 세웠다. 5대의 후진(後晉)·후한(後漢)도 사타가 세운 왕조이다.


230.삼니움인(Samnites) 


고대 중부 이탈리아에 거주하던 주민. 오스크어를 사용하였으며 용맹한 산악민족으로서 로마와 패권을 다투었다. 산지에서 비옥한 평지를 찾아 이동하여 그리스문화와 접촉하였다. 그들 가운데에서 캄파니아인과 루카니아인이 파생하였다. 이들은 캄파니아에서 에트루리아인의 세력이 퇴조함과 동시에 강력해졌고 캄파니아를 제압하였다. 4개 부족국가로 나뉘어 각각 정무관이 통치하였고 전쟁 때에는 단결하였다. BC 4세기 중엽, 갈리아인의 이탈리아 침입 때 로마와 결속했으나 그 후 로마와 적대관계가 되었다. 3차례 삼니움전쟁을 일으켰으나 결국 로마에 패하여 그 동맹국이 되었다. 동맹시전쟁(同盟市戰爭)에서 패한 뒤 완전히 로마에 편입되었다.


231.색목인(色目人) 


중국 원(元)나라 시대에 몽골인·한인(漢人)·남인(南人;옛날 남송사람) 이외의 사람들을 가리켜 부른 이름. 피부·눈 빛깔이 다르기 때문에 이같이 불렀다. 탕구트·위구르·나이만 등 주로 서방계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색목인은 몽골인이 중국을 지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지방 행정의 장관인 다루가치에는 몽골인 이외에 색목인만이 임용된다고 하는 원칙이 확립되어 많은 특권을 누렸다. || 원 나라 시대 몽골 몽골인 한인 남인 옛날 남송 사람 이외 가리켜 부른 피부 눈 빛깔 다르기 때문 이 불렀다 탕구트 위구르 나이 주 속한다 색목인 중국 지배 중요 역할 맡았다 행정 장관 다루 가치 다루가 치에 색목인만 임용 하 원칙 확립 많은 특권 누렸다.


232.생번(生蕃) 


청(淸)나라 때 타이완 원주민 중 한화(漢化)의 정도가 약한 9종족의 총칭. 중국은 예로부터 주변 소수민족에 대하여 한민족으로의 복속 정도에 따라 <생(生)·숙(熟)>으로 구별지었다. 그러나 이러한 멸칭을 피하기 위하여 서서히 <고사족(高砂族)>으로 바뀌었고, 제2차세계대전 이후 <고산족(高山族)> <산포(山胞)>라 하고 있다. || 청 나라 한화 의 정도 약한 9 종족 중국 예 소수 민족 대하 한민족 생 숙 구별 그러나 이러한 멸칭 위하여 서서히 고사족 바뀌었고 제 2차 세계 대전 고산족 산포 라 하 있다.


233.샤반테족(Shavante) 


브라질 마투그로수주의 원주민 부족. 아마존강의 지류 아라과이아강을 따라서 산다. 인종적으로는 몽골인종인 아메리칸인디언에 속하며 언어는 제(Ge)어족에 족한다. 셰렌테족과 함께 중앙 제(Ge)라고 불린다. 브라질사람 사이에서 샤반테족은 백인의 침입에 강하게 저항한 용감한 부족으로 유명하며 평화적인 접촉은 1950년대 전반까지 없었다. 그 뒤 브라질 정부의 파견 기관이나 그리스도교 선교기관과의 접촉에 의해 문화·사회가 심하게 변했고, 포르투갈어가 보급되었으며 부락을 찾는 사람도 나타났다. 그러나 여러 제족 가운데 전통을 가장 잘 지키고 있는 부족의 하나이다. 광장 주위에 활모양으로 집을 배열한 마을에 사는데 1년 중 몇 개월은 여러 무리로 나뉘어 마을을 떠나 채집·수렵여행을 떠난다. 부계사회로서 3개의 씨족이 있으며, 입부혼(入夫婚)의 관습이 있다. 마을은 한 사람의 지도자가 다스린다.


234.샤세반족(Shahsevan) 


이란 북서부 아제르바이잔지방에서 유목하는 터키계 부족. 인구 약 37만(1997). 사파비왕조의 샤아바스 1세(재위 1588∼1629)가 창설한 친위군(親衛軍)의 일부가 이 부족의 기원을 이룬다고 하는데, 부족명의 뜻은 <샤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부족집단으로서 실체가 명확해지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전반 나디르 샤의 시대부터이다. 그들의 유목지는 카스피해 서쪽 연안으로 흐르는 아락스강과 쿠라강의 하류지역에 펼쳐지는 모간평원을 겨울 숙영지로 하고, 거기서 남쪽으로 150㎞쯤 올라간 사발란산기슭(해발고도 2000∼4000m)을 여름 숙영지로 하고 있다. 1828년 투르크만차이조약에 의하여 아락스강 이북의 모간평원이 러시아에 할양되어 겨울 숙영지는 전보다 좁아졌다. 이 부족은 1909년 타브리즈 입헌운동(立憲運動)에 대하여 반혁명의 역할을 하였다. 1923년에 레자 칸의 토벌을 당하여 무장해제되었고, 1960년대 농지개혁의 진전으로 인하여 정치력을 잃었다.


235.샤이엔족(Cheyenne) 


19세기 플랫·아칸소강 유역에 살던 북아메리카 평원의 인디언. 알곤킨어족에 속하며 1700년대 이전에는 미네소타 중부지역에 살면서 농경·수렵·채집 등을 했으며 도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그러나 유럽인에게 쫓겨 18세기에는 서부의 대평원으로 이주하였다. 1780∼1830년 무렵에는 블랙힐 근방에서 인디언 고유의 유목문화를 발전시켰다. 씨족제는 없으나 봄에는 태양춤, 성스러운 화살, 버펄로 해트의 3대 제사의식 때문에 부족이 모두 모여 공동으로 들소 사냥을 하였다. 1950년 약 1900명의 북쪽 샤이엔족이 몬태나주 남동쪽의 텅강(江) 거류지에, 약 3100명의 샤이엔족이 오클라호마주의 애나다르코 부근의 지정 거류지에 거주하였다.


236.샤카족 


BC 1~AD 1세기에 아프가니스탄(남동부)·파키스탄·인도(서부)를 지배한 스키타이민족. 샤카족(aka)·인도스키타이족이라고도 한다. 그 역사는 은화·동화 등의 명문(銘文)에 의해 재구성되고 있지만, 확실하지 않아 이론(異論)이 많다. 이들은 서(西)투르키스탄에 살고 있었지만 BC 130년경 대월지(大月氏)의 압박으로, 아프가니스탄 남동부(시스탄)와 파키스탄으로 이주했다. 시스탄은 아르사케스왕조(파르티아)의 지배 아래 있었지만, 보노네스 밑으로 독립하여, 곧 인더스강 서해안에 이르는 왕국을 세웠다. 그 뒤 파키스탄은 마우에스가 인도·그리크왕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왕국을 세웠지만, 곧 다른 계통인 아제스 1세·2세, 아지리제스 일족이 지배하였다.


237.샨족(Shan) 


미얀마의 샨주(州)를 중심으로 거주하는 민족. 타이의 여러 종족 가운데 일부로 샨어는 타이어 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샨족은 미얀마의 역사 에서 버마족과 함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8세기 이전부터 이미 동남아시아의 하곡(河谷)을 따라 정착하고 있었다. 13세기에 원(元)나라의 침략을 받은 버마족이 쇠퇴하자, 샨족은 상(上)미얀마지방에서 세력을 키워 16세기에 다시 버마족이 지배할 때까지 이 지방을 지배하였다. 샨족은 작은 토후국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싸웠기 때문에 통일국가를 이루지는 못했다. 16세기 중엽 샨족의 여러 나라는 버마족인 타웅구왕조에 복속되어, 이후에는 정치적·문화적으로 버마화되었다. 그 후 19세기 영국에 의한 미얀마병합, 20세기 미얀마독립과 사회주의 정부수립을 거쳐, 샨족은 미얀마연방의 한 주가 되었다. 샨족의 주요 거주지는 미얀마 동부고원의 샨주이지만, 미얀마의 다른 지역이나 양곤 등의 대도시에도 샨족의 공동체가 있다. 농경민으로 논밭농사를 비롯하여 감자·차·커피·면화·담배·오렌지·복숭아·살구 등을 재배한다. 또한 은세공·견직물제조에 뛰어나며, 터번 위에 쓰는 댓잎으로 짠 모자나 샨종이 등으로도 유명하다.


238.서고트족(Visigoths) 


민족이동시대에 활동한 동게르만계 고트족의 한 분파. 고트족은 원래 스칸디나비아반도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남하하여 2세기 중엽부터 3세기에 다뉴브강 북안에 정주한 서고트족과 흑해 북안에 정주한 동고트족으로 나뉘었다. 4세기 후반 훈족의 서진(西進)으로 376년 서고트족의 대부분이 로마령 모에시아로 이주하였는데 이것이 민족대이동의 계기가 되었다. 정주 후, 로마의 압박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켜 378년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동로마 황제 발렌스를 죽였지만, 다음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의 화친정책에 의해 로마의 동맹자로서 트라키아 지방에 정주하였다. 테오도시우스 1세가 죽자 서고트족은 다시 로마와 적대관계가 되었으며, 알라리크를 왕으로 뽑아 이탈리아를 침입하는 등 각지에서 싸웠다. 410년 알라리크는 전사하였으며, 왕위를 이은 아타울프의 지도 아래 412년 이후 남갈리아를 정복하고, 왈리아왕 시대에 로마로부터 아키타니아(지금의 아키텐) 지방을 정식으로 양도받아 415년 이곳에 서고트왕국을 세웠다. 왕국은 에우리크왕 때 남갈리아에서 에스파냐 대부분에까지 국토를 넓히는 등 최전성기를 맞이했지만, 507년 알라리크 2세가 프랑크왕 클로비스에게 패한 후에는 남갈리아와 아키타니아를 잃고 왕국의 중심을 에스파냐로 옮겼으나, 711년 이슬람교도에 의해 멸망하였다.


239.서족


중국 동남연해지구(東南沿海地區)를 중심으로 분포한 소수민족. 인구 약 68만(1997). 푸젠성[福建省(복건성)] 닝더[寧德(영덕)]지구와 저장성[浙江省(절강성)] 원저우[溫州(온주)]·리수이[麗水(여수)]·진화[金華(금화)]지구를 비롯해서 장시성[江西省(강서성)] 동부와 안후이성[安徽省(안휘성)]·광둥성[廣東省(광동성)] 등의 산악·구릉지대에 분산해서 살고 있다. 사[舍(사)]·서·샤·서요·서객·서인·서가라고도 하며 푸젠성에서는 서파·서고·견두(犬頭)·산달·산객(山客)이라고도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가리켜 산합(山哈)·산달(山達)·산객이라고 하며 이 말은 <산에서 사는 손님>이라는 뜻이다. 언어는 시나 티베트어족의 먀오·야오어계의 한 지파를 형성하여 커자[客家(객가)]방언과도 가까운 관계가 있다. 문자가 없고 한어(漢語)와 한자가 일반적으로 통용된다. 서족이라는 이름은 남송(南宋) 말년에 사서(史書)에 <서民> <샤民>이라는 용례가 있는 데에서 유래하며 그들이 산간에 거주하며 화전(火田)을 경작했던 사실과 관계가 있다. 족원(族源)에 대해서는 에바하르트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연구한 그들의 문화내용으로 보아 야오족의 한 지파일 것이라고 여겨진다.


240.선비(鮮卑) 


고대 북아시아의 유목민족. 인종이나 언어계통에 대해 상세한 것은 알 수 없다. BC 3세기 초에 동호(東胡)를 구성하는 한 부족으로서 대싱안링[大興安嶺(대흥안령)] 일대에 분포하고 있었다. BC 206년 무렵 동호가 흉노(匈奴)의 모둔단우(冒頓單于)에게 격멸되자 흉노에게 복속되어 서서히 남하, 시라무룬강(遼河 上流) 유역에서 수렵·유목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흉노를 따라 한(漢)나라의 북동쪽 변방을 침입하기도 했다. 48년 흉노가 남북으로 분열된 뒤, 자립하기 시작하여 54년에는 추장인 어구분(於仇賁) 등이 후한(後漢)의 도읍 뤄양[洛陽(낙양)]으로 가 조공을 바쳤고 광무제(光武帝)는 그를 왕에 봉했다. 2세기 중엽에 나타난 대추장 단석괴(檀石槐)는 북흉노의 잔류 부족을 비롯하여 몽골평원의 여러 유목민족을 귀속시켰고 동쪽으로 랴오둥[遼東(요동)], 서쪽으로는 준가얼분지[準喝爾盆地(준갈이분지)]에 이르는 대세력을 구축하여 중국의 북변(北邊)에서부터 서변(西邊)으로 침공, 후한의 조정을 괴롭혔다. 단석괴가 죽은 뒤, 각 부족의 대인(추장)의 자리가 선거추대제에서 세습제로 바뀜에 따라 통일세력은 와해되었다. 3세기 초에는 보도근(步度根)·가비능(軻比能) 등의 대인이 나오기는 했지만 통일은 이루지 못했고 3세기 중엽부터 모용(慕容)·우문(宇文)·단(段)·걸복(乞伏)·탁발(托跋)·독발(禿髮) 등의 부족이 유력하게 되었다.


241.설연타(薛延陀) 


중국 북부 변경(邊境)에 거주하였던 철륵(鐵靭;투르크)의 한 부족. 수(隋)나라 때 알타이산맥의 남서쪽에 살면서 서돌궐(西突厥)외 지배를 받았으나 605년 철륵의 다른 여러 부족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 뒤 독립했다. 약 10년 뒤 다시 강성해진 서돌궐에게 복속되었으나, 627년 부족장인 이남(夷男)이 부족을 이끌고 셀렝가강 방면으로 옮겨가 위구르와 결속하여 동돌궐(東突厥)의 북변으로 침입했다. 630년 당(唐)나라 군사와 힘을 합쳐 동돌궐을 멸망시키고 몽골고원을 지배했다. 그러나 이남이 죽은 뒤에는 분열되어 나라가 쇠약해지면서 646년 당나라군사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그때 지배아래 있던 철륵의 여러 부족들은 당나라의 간접지배를 받게 되었다.


242.세노이어군(語群) 


말레이반도 중부에 분포하는 소수 민족의 언어. 중앙사카이어(세마이어)·동사카이어(자후트어)·북사카이어(테미아르어) 등의 방언으로 나뉘며 세망어(자하이크어) 등과 함께 세노이어군을 형성하고, 오스트로아시아어족의 지족(支族)인 몬크메르어족에 속한다. 사용 인구는 세노이어군 전체에서 약 3만 정도로 추정한다. 지금은 사카이어라는 명칭은 쓰이지 않고 세마이어·자후트어·테미아르어 등으로 부른다.


243.세노이족(Senoi) 


말레이반도 산악지대에 살며, 기원·언어·문화면에서 관계가 깊은 6종족에 대한 총칭. 인구는 세노이 전체로 보면 약 3만 3000명이다. 밝은 갈색의 살결, 물결모양의 털과 몽골주름, 두드러진 볼의 뼈 등 몽골로이드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언어의 유연관계(類緣關係)로 보아, 캄보디아나 베트남의 산악민족 기원설이 유력하고, 6000∼8000년 전에 인도차이나 대륙부에서 말레이반도로 이주한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화전농경민이고, 밭벼·카사바·옥수수를 재배하며 바람총, 각종 덫을 이용한 사냥, 독과 통발을 이용한 어로도 중요한 생업이다. 세노이족의 전형적인 취락은 50∼200명으로 이루어지고, 롱하우스에서 산다. 확대가족을 기반으로 구성되는 롱하우스집단은 경계가 뚜렷한 세습의 데리토리(거주구)를 가지고 있다. 쌍계적(雙系的)인 친족조직이 있고, 결혼거주형태는 쌍처혼(雙處婚)이 일반적이다. 문화는 비폭력, 논쟁의 회피, 개인의 자주성이 특징이다.


244.세누포족(Senufo) 


서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 북부를 중심으로 옆의 말리·부르키나파소(오트볼타)에 걸쳐서 거주하는 부족. 인구 약 85만. 사용하고 있는 세누포어(語)는 말리의 도곤어와 부르키나파소의 모레어(모시어)와 같은 볼타어군(語群)에 속한다. 사바나화한 초지에서 화전을 일구어 고구마·낙화생·육도(陸稻) 등을 재배한다. 정치적인 통합은 촌락수준이고 수장제(首長制) 왕국과 같은 정치조직은 가지지 못하고 있다. 야금·놋쇠공예·목공·피혁공예·직조·항아리제조·호리박세공 등 장인의 세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가면(탈)과 조각은 아프리카에서도 손꼽히는 부족이다.


245.세망족(Semang) 


말레이반도 북부 산악지대의 산기슭에 거주하는 수렵채집민. 말레이시아 정부에서는 인종용어로 니그리토라고 한다. 인구는 말레이시아측에 2000명 가량, 타이측에서 200명 가량으로 추정된다. 6개의 방언그룹으로 구별되어 각각 하나의 영역에서 생활하고 있다. 남방의 세노이족과 함께 아스리어를 사용한다. 20세기 초까지는 활을 사용했는데, 현재는 세노이에서 전래된 바람화살(바람총)이 유일한 수렵도구가 되어 원숭이·다람쥐 등의 수상성동물(樹上性動物)과 거북·도마뱀·쥐 등의 작은 동물도 잡는다. 이런 것은 세망족의 식료품으로 중요하지만, 음식물의 대부분은 식물성이다. 또한 수지(樹脂) 같은 정글산물을 교역물로 하여 농작물·담배 등의 생활용품을 수입한다. 거주단위는, 5∼10명의 핵가족으로 된 캠프이다. 각 가족은 나뭇가지와 야자나무 잎으로 매우 간단히 덮은 오두막집을 만들어 산다.


246.세부아노족(Cebuano) 


필리핀제도의 중남부, 세부섬을 중심으로 보홀섬, 네그로스섬 동부, 레이테섬, 민다나오섬 북부에 거주하는 사람들. 세부아노어를 모어로 하는 사람은 약 1665만(1997)이고, 필리핀 전인구의 25%를 차지하는 최대의 언어집단이다. 16세기에 F. 마젤란이나 M. 레가스피를 대표로 하는 에스파냐원정대가 필리핀에서 최초로 접촉한 사람들이다. 인접한 사말 레이테어 집단, 힐리가이논어 집단 등을 포함하여 <비사얀>이라 하기도 한다. 주민의 대부분은 농민이며 주식으로 쌀과 옥수수가 재배되고 있다. 코코야자재배에 의한 코프라나 코코야자유의 생산, 사탕수수재배에 의한 제당은 이 지역의 중요한 산업이다. 수공업도 발달하여 각종 바구니·매트·수직물 외에 세부시 주변에서는 기타제작이 유명하다. 주민의 대부분은 가톨릭교도인데 정령신앙과 같은 토착종교도 남아 있다.


247.세파르딤(Sephardim)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에 거주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자손들을 가리키는 말. 이베리아반도에 이주한 세파르딤은 중세에는 세계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모든 유대인들의 약 반수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라디노어(語)를 사용하고 이슬람문화와 동화해서 가장 활동적이었다. 1492년 에스파냐에서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을 거부한 유대인에 대해 추방령이 내려졌으며(공식으로는 1968년까지 존속) 약 25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이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그리고 오스만투르크로 이주했다. 오스만투르크에서는 유대인들을 환영했기 때문에 테살로니키(지금의 테살로니케)는 세파르딤의 중심지가 되었다. 개종한 유대인(콘베르소 또는 마라노)도 유대교를 버릴 수 없어서 <숨어서 사는 유대인> 생활을 했으며 16세기에 포르투갈을 거쳐서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세파르딤의 이주는 그 뒤 영국·미국·보르도·함부르크로 퍼져나갔다. 중세 이후 유대인은 둘로 나뉘어 각각 아슈케나짐과 세파르딤으로 불렸다. 수적으로는 소수여서 제2차세계대전 전에는 유대인 총인구 1650만 명 가운데에서 세파르딤은 불과 150만 명 정도였다. 나치스는 네덜란드에서 아슈케나짐과 세파르딤에게 차별을 두어 처우했다.


248.셈어족


남서아시아에서 북아프리카대륙 일대를 중심으로 쓰여 온 언어군의 총칭. 셈함어족·홍해어족·아프로아시아어족이라고도 한다. 아라비아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셈어족과 북아프리카 일대의 함어족이 합쳐진 개념으로 18세기 후반 F. 뮐러가 두 어족이 상호간에 언어학적으로 친족관계(親族關係)에 있다는 견지에서 붙인 명칭이다. 그러나 셈 제어(諸語)는 인도유럽어족의 게르만 제어처럼 상호간에 언어가 계통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보이고 있는 반면, 함 제어는 한 어족을 형성할 정도의 계통적 일체성이 없어 종래에 하위언어로 분류되었던 이집트어·베르베르어·쿠시 제어를 각각 대등한 자격으로 셈제어와 비교하기도 한다. 따라서 함어족이라 할만한 어군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최근에는 아프로아시아어족이라는 용어가 쓰인다. 북부주변·북부중앙·남부중앙·남부주변의 4어군으로 분류된다. 북부주변어군은 BC 3200년 년 무렵부터 쓰였던 아카드어와 바빌로니아어·아시리아어가 있었으나 절멸되었고, 북부중앙어군으로는 가나안어·우가리트어·아모리어·헤브라이어·고대아랍어·모아브어가 있었으나 모두 절멸되었으며 헤브라이어만이 이스라엘의 공용어로 쓰이고 있다. 남부 중앙어군은 아라비아반도를 중심으로 약 1억명이 쓰는 아라비아어가 있고, 남부주변어군은 남아라비아어와 에티오피아의 게에즈어가 있다.


249.셰렌테족(Sherente) 


브라질 고이아스주의 원주민부족. 인구 약 800(1970). 아마존강 지류인 토칸티스강 동쪽 연안에 있는 토칸티니아마을 부근에 4개의 부락으로 나뉘어 살고 있다. 인종적으로는 몽골로이드 대인종(大人種)의 아메리칸인디언에 속하며 언어는 제(Ge)어족에 속한다. 셰렌테족은 샤반테족과 함께 중앙제라 불리며, 두 종족 사이에는 강한 유연관계가 있다. 마을은 집들이 활모양으로 배열되어 있다. 문화가 점점 변모하고 있으며, 지금은 대부분이 포르투갈어를 쓰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아직 고유의 셰렌데어가 남아 있으며, 옛 관습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생업은 인근 브라질인들과 마찬가지로 간단한 도구를 이용한 화전경작이 중심이다. 가톨릭·프로테스탄트의 그리스도교 전도소 및 브라질 정부기관과 접촉하고 있다. 현재 제기되는 가장 큰 문제는 주변 브라질인들과의 토지·가축을 둘러싼 분쟁이다.


250.소그드인(Sogd) 


중앙아시아의 제라프샨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소그디아나지방의 원주민. 소그드인은 이란계이며 옛날부터 국제적 상업무역에 종사하면서 동(東)투르키스탄, 톈산산맥[天山山脈(천산산맥)] 북쪽 기슭, 간쑤[甘肅(감숙)] 북서부, 몽골고원 내부에 거류지를 만들었으며 당(唐)나라의 장안(長安)에도 많이 살고 있었다. 특히 흉노·돌궐·위구르 등의 유목국가 내부에서는 상업에 종사함과 동시에 그 군주들의 정치적·문화적 고문으로서 활동했으며, 중국에서는 상호(商胡)·고호(賈胡)라 하였다. 처음에는 조로아스터교도였으나 후에는 마니교를 믿는 사람도 나타나 세력이 커져 마니교가 위구르의 국교(國敎)가 되었으며, 당나라 때 중국에 전해졌다. 그들이 사용했던 달력은 티무르제국의 울루그 베크(재위 1447∼49) 때까지 이 지방에서 사용되었으며, 소그드문자에서 위구르문자가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몽골문자·만주문자의 기본이 되었다. 또한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돌궐문자도 소그드문자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근래에 사마르칸트 동쪽의 무그산이나 펜지켄트에서 소그드인의 도시유적, 각종 문서와 유물이 발굴되어 그들의 생활양식·문화 등이 밝혀지고 있다.


251.소르브인(Sorben) 


독일 콧부스주(州)에서 드레스덴주에 걸쳐 살고 있는 서(西)슬라브족 주민. 독일에 존재하는 유일한 소수민족으로서 그 수는 약 12만 명이다. 5세기 무렵부터 잘레강 동부 일대에 거주하였고, 12세기 초에는 슈프레강 하류지역에 독자적인 왕국을 건설하기도 하였으나, 그 뒤 강제적인 게르만화(化)로 인해 독일인에게 동화, 흡수되어 갔다. 17∼18세기 오버라운지트와 콧부스에서 소르브 문장어(文章語;소르브어)가 생겨났다. 이것을 중심으로 하여 1847년 이후, 소르브문화가 재흥(再興)하였으나 1871년 독일통일 후 동화를 강요당하였다. 이에 대하여 1912년 라우지츠소르브인 동맹(도모비나)을 중심으로 하여 민족적 독자성 옹호운동이 일어났으나, 나치스 밑에서는 박해를 받았다. 오늘날 독일에서는 이 권한과 언어의 공식사용 등이 인정되고 있으며, 도모비나가 민족적 대표기관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종교는 프로테스탄트 및 가톨릭이다.


252.소토족(Sotho) 


레소토왕국·남아프리카공화국·보츠와나공화국에 거주하는 반투계(系) 농경민. 인구는 210만. 원래는 목축민으로서 북방에서 세차례에 걸친 이주로 이곳에 들어왔다고 생각된다. 정주한 뒤에도 소는 중요시되어 재산이나 희생수(犧牲獸)로서 간주된다. 북소토·남소토·서소토 등 세 집단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중 보츠와나공화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트란스발주에 사는 츠와나족을 제외한 소토족은 19세기 초까지 소추장국으로 나뉘어서 드라켄즈버그산맥의 고지초원 전역에 퍼져 있었으나, 1820년대에 시작된 줄루족의 샤카가 진군(進軍)하는 와중에 중앙집권적 왕국을 건설하였다. 이 왕국은 후에 영국보호령 바수톨란드가 되었으며, 1966년 레소토왕국으로서 독립하였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 사회조직은 부계혈통에 기초한 동물 이름을 가진 씨족이 있으나, 혼인규제와는 관계가 없다. 씨족에 붙인 동물 이름을 세보고라고 하는데, 어느 세보고를 자기 씨족의 이름으로 쓰는 사람은 그 동물을 절대로 죽이지 않으며, 그 고기를 먹거나 모피를 사용해서도 안된다. 사촌과의 결혼이 가능하며, 부계사회에서는 예외적인 친사촌간의 결혼도 허용된다.


253.솔론족(Solon) 


중국 북부의 싱안링[興安嶺(흥안령)] 일대, 넌장강[嫩江(눈강)]유역에 사는 퉁구스계 사람들. 중국에서는 색륜(索倫)으로 표기하고 오늘날에는 에벤키족의 하나로 간주된다. 농경·목축도 하지만 수렵에 능하여 청대(淸代)에는 팔기제(八旗制)에 편입되고 북방의 방비와 서방의 전투에도 참전하였다. 오늘날 신장웨이우얼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신강유오이자치구)]의 다청현[塔城縣(탑성현)]과 훠청현에 그 병사들의 자손이 남아 있다.


254.수족(族) 


미국 그레이트 플래인스에 거주하는 평원 인디언부족. 수족(Sioux族)이라고도 한다. 수는 앨곤킨계제속(系諸族)들이 부르는 이름이며, 그들 스스로는 다코타라고 한다. 언어는 수어족(語族)의 수어를 사용하며, 동부의 삼림지대로부터 서부의 미주리강 유역까지 펼쳐지는 7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다. 평원인디언 중 가장 강력한 세력을 자랑하며, 백인의 침입에 대해서도 가장 격렬하게 저항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1876년 S. 불 등의 인솔로 커스터장군 지휘하의 제7기병대를 전멸시킨 리틀빅혼전투는 유명하다. 또한 1890년 운디드니에서 학살되어, 인디언 반항의 최후를 장식한 것도 다코타족이었다. 생활상은 다른 평원인디언과 기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는데, 채집수렵과 간단한 농경을 겸하는 경제생활이 말의 도입과 동시에 들소 사냥에 전면적으로 의존하게 되었다. 티피라는 원뿔형 텐트에 거주하며, 밴드, 즉 몇 가족으로 구성된 정치·경제상의 공동집단으로 나뉘어서 생활하고 있는데, 각 밴드는 독립해 있으며, 지도자는 선견지명과 무용(武勇)을 겸비한 개인적인 능력에 따라 선출되었다.


255.실위(室韋) 


중국 남북조시대 6세기 중엽부터 당(唐)나라 때까지 중국 둥베이[東北(동북)]지구를 본거지로 한 민족. 인종적인 소속은 몽골계에 퉁구스계가 혼혈된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싱안링[興安嶺(흥안령)]의 동쪽에 있다가 수(隋)나라 때 차츰 세력을 넓혀, 당나라 때는 헤이룽강[黑龍江(흑룡강)]·쑹화강[松花江(송화강)]의 합류점에서 몽골고원의 돌궐(突厥)에 접하게 되었다. 중국과 교역을 많이 했는데, 때로는 돌궐·거란(契丹) 등과 중국 북쪽 변경으로 침입했다. 그러나 통일국가는 이루지 못했고, 당나라 때 싱안링 서쪽에 있던 몽골실위[室韋(실위)]는 칭기즈 칸이 나온 몽골이다.


256.싱할리족(Singhalese) 


스리랑카 총인구의 72%를 차지하는 대표적 민족. 싱할리어를 사용하며, 인종·언어·문화면에서 인도-아리아계에 속한다. 거의가 불교도이다. BC 5세기에 북인도의 왕자와 일행이 원주민 베다족이 살고 있던 실론섬으로 표류해 와서 정착하였는데, 이들이 싱할리족의 조상이라고 한다. BC 3세기에 인도로부터 불교가 전래되었으며, 왕실의 보호를 받아 13세기까지는 대규모의 관개시설을 갖춘 장대한 불교왕도(佛敎王都)가 중부 건조지대를 배경으로 번영하였다. 그러나 그 뒤 타밀족의 침입과 내분으로 왕국은 분열되었고, 내란을 틈타 16세기부터 포르투갈, 이어서 네덜란드가 해안지방을 지배하여 향료·상아의 독점무역을 하였다. 이때 그리스도교가 포교되었다. 19세기 초엽에는 영국이 내륙지방을 점령하고, 홍차·고무의 플랜테이션화를 꾀하였다. 영국의 철저한 식민지정책에 대항해 타밀족과 싱할리족이 단합한 국가주의가 일어나서 마침내 오랜 식민지에서 벗어나 1947년 독립하였다. 그러나 유럽식의 교육을 받은 특권계급의 독립정부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증대되었으며, 1956년에는 국교로서의 불교옹호, 싱할리어의 국어화 등을 내세운 싱할리민족주의의 정당이 정권을 잡고 소수파를 탄압하였다.


257.아누아크족(Anuak) 


남수단 나일계의 일족. 같은 나일계로는 누에르족·딩카족·실루크족 등이 있다. 인구는 몇만 정도이다. 수수를 중심으로 콩·호리병박·기장 등 농작물을 재배하고, 소 사육은 그들의 전통과 관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결혼은 일부 부유한 남자는 복혼을 하지만 단혼이 보통이다. 실루크족에게 유명한 <거룩한 왕>의 원초적인 형태를 아누아크족의 지역집단 마을에서 볼 수가 있다. 촌장은 <토지의 아버지>라 하여 주술로써 토지를 비옥하게 하고 비를 내리게 하며 강에 고기를 부르는 의례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부를 잃어 마을사람들에게 베풀지 못하게 되거나 병에 걸리면 의례적인 힘을 잃게 되기 때문에 그의 부계 친족에 의해 추방되거나 때로는 피살된다. 이와 같은 일은 모두 마을 안에 한정되고 아누아크족 전체를 통치하는 왕은 없으며 마을간의 분쟁을 중재하는 정치적인 기능을 지닌 사람도 없다.


258.아라비아인 


원래 아라비아반도에 살았고 뒤에 중동지역에 널리 진출한 사람들. 아랍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구약성서》이다. <창세기> 제10장에 아라비아반도에 사는 사람들과 아라비아의 토지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아랍>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지만 뒤에 아랍이라고 불리게 된 사람들과 그들이 살고 있던 지역에 대한 기록이다. <아랍>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사용된 것은 BC 853년 아시리아의 비문에서이다. 샬마네세르 3세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왕자들에게 <아랍>의 긴디브라는 사람이 낙타 1000마리를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BC 6세기 무렵까지의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비문에는 <아랍>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 <아랍>은 아라비아반도 북부의 시리아사막에 사는 유목민을 가리키는 것이라 추정된다. 그 아랍인이 자신들을 가리켜 <아랍>이라는 말을 사용한 기록은, 북아라비아에서는 북아랍어로 쓴 나마라의 묘지에 나오는 것이 가장 오래되었고, 남아라비아에서는 고대 비문의 연대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 많은데 기원전 말기에서 기원후 초기의 기록으로 추정된다. 여기에서 <아랍>은 유목민을 가리킨다. 코란에 나오는 <아랍>도 도회사람이 아닌 사람, 사막의 유목민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메카·메디나의 주민은 <아랍>이라 하지 않았다.


259.아라와크족(Arawak) 


남아메리카와 카리브해지역 원주민 집단. 아라와크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수많은 부족의 총칭이다. 대(大)앤틸리스제도에서 처음으로 백인과 접촉한 것은 아라와크족이었으나 적대하고 있던 카리브족과 에스파냐인에 의해 카리브해지역에서 대부분 구축되어 버렸다. 현재의 아라와크족은 아마존분지 주변의 넓은 지역에 산재해 있다. 거주지는 해안(과히로족), 강 상류의 열대우림(캄파족 등), 초원(모호족 등) 등 문명이 미치지 못하는 변경지가 많다. 정착하여 화전농경을 주된 생업으로 하지만 사냥·어로도 중요하다. 기아나의 아라와크계 부족은 식인을 한다고 하는데 아라와크족 전체에 공통되는 특징은 아니다. 종교는 병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샤먼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260.아라우칸족(Araucanians) 


남아메리카 칠레 중남부와 아르헨티나 일부에 사는 원주민집단. 아르헨티나의 아라우칸족은 백인과 접촉한 뒤로 칠레에서 이주해 온 족속이다. 피쿤체·우일리체·마푸체 등 3부족으로 나뉘는데 피쿤체는 17세기말까지 에스파냐군에 패하여 동화되었고, 우일리체는 주위의 혼혈칠레인과 문화적으로 분간할 수 없게 되어 있으며 아직도 전통을 지키고 있는 부족은 보류지에 사는 마푸체뿐이다. 마푸체는 잉카제국의 군대를 격퇴시켰고 에스파냐인에 대하여도 격렬하게 저항했다. 마푸체의 저항은 계속되었으나 그 뒤 보호구역에 살며 옛날처럼 작은 마을을 이동하지 않고 한곳에 정착하고 있다. 이 마푸체는 남아메리카에 남은 얼마 안 되는 원주민 대집단의 하나로 젊은이 중에는 도시로 나가 교육을 받거나 일자리를 찾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261.아란다족(Aranda)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한 부족. 아룬타족이라고도 한다. 대륙 중앙부의 맥도넬산맥 남동쪽 산기슭에서 핑크강을 따라 펼쳐진 반건조지대지만 물이 풍족한 꽤 넓은 곳에 거주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흔히 채집수렵민으로서 이동생활을 하고 있다. 부족 전체는 5개의 아부족(亞部族)으로 나뉘고 각기 다른 방언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들 아부족 내부에서도 각각의 토템을 갖는 지구로 나뉘며 4분제(四分制) 또는 8분제의 혼인제도를 가진다. 장식이 풍부한 도구를 만들어 쓰며, 그중에서도 타원형 판자나 석판에 무늬를 새기고 채색한 토템심벌로서의 성물(聖物)인 <추링가>는 인류학자들의 논의에 의해 유명해졌다. 감소 경향에 있던 인구도 1960년 무렵부터 증가되고 있다.


262.아람인(Aramaeans) 


서(西)셈족에 속하는 유목민족. BC 15세기의 아마르나 시대부터 시작된 민족대이동의 영향으로 BC 11∼BC 8세기 무렵까지 시리아 북부부터 메소포타미아 북부에 정착하여 이곳을 근거지로 상업민족으로서 사방으로 진출하였다. 《구약성서》나 아시리아의 기록에는 강력한 약탈자로 되어 있다. 아시리아 티글라트필레세르 1세의 BC 11세기 비문에서 아람인이라는 이름이 처음 나타난다. BC 11세기 말 아람인은 시리아 북부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비트아디니라는 왕국을 세우고 하부르강 유역에서부터 다마스쿠스를 포함하는 안티레바논산맥지역까지를 차지하였다. 바빌론에서도 BC 9세기에 칼데아인(아람계 유목민)으로 알려진 왕국을 세웠으나 BC 8세기 아시리아제국에 멸망당했다. 그러나 아람어는 아시리아시대에 이미 국제상업어로 통용되고 있었으며, 문자는 서아시아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263.아루아족(Arua) 


남아메리카 브라질 론도니아지구의 민족. 마크라프족과 함께 블랑코강 연안에 살며 언어는 투피어와 과라니어로 구분된다. 땅을 파는 막대를 이용하여 옥수수·땅콩류를 주요작물로 하는 경작 외에 어업과 수렵도 한다. 가축으로 개·닭·집오리 등을 키운다. 유충류를 곡물 찌꺼기 속이나 나무줄기 속에서 키우는 풍습이 있으며, 집은 높은 기둥을 중심으로 하여 벌집모양으로 만들고 안은 경계를 정해 사는 것이 보통이다. 모계사회(母系社會)이고 동물의 이름을 가지는 집단으로 분류된다. 주술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액체를 식물이나 환자, 적의 신체 등에 주입하면 이로움과 해로움을 가져온다고 여기며 죽은 사람의 영혼이 적을 다치게 하거나 동료를 도와준다고 믿고 있다. 신화에서는 두 사람의 형제가 세계의 창조자이고 이 세상에 빛과 어둠을 가져왔다고 한다.


264.아르메노이드(Armenoid) 


코카소이드(백색 인종계) 가운데 한 인종. 유(類)아르메니아인종이라는 뜻이다. 소아시아(아나톨리아)의 터키·시리아·팔레스타인 일대에 집중하고 일부는 이란·이라크·발칸지방에도 분포한다. 두부(頭部)가 두드러지게 짧으며 두정부(頭頂部)는 뾰족하고 후두부(後頭部)는 편평하며 이마는 넓고 경사졌다. 이 독특한 두형은 요람에서 아이를 움직이지 못하게 포대기로 쌌기 때문이라 하지만 다른 지방에서 자라난 후손들도 역시 같은 두형을 하고 있으므로 인공변형설에는 의문이 있다. 코는 살이 두터운 매부리코이며 크다. 옆얼굴은 코끝에서 이마까지 일직선으로 되어 있고, 입술 두께는 중간 정도이며 아랫입술은 조금 뒤집혀 있다. 피부는 올리브색이며 모발과 홍채(虹彩)는 어두운 빛깔이다. 수염과 체모도 많고, 눈썹도 양미간이 붙을 정도로 숱이 많다. 키는 보통이며 옹골차다.


265.아리안(Aryans) 


원래는 언어학상의 말이었으나, 인종개념으로서 널리 쓰이게 된 것. <고귀한>을 뜻하는 산스크리트 ?rya에서 온 말이다. 옛날에 카스피해와 힌두쿠시산맥 사이의 이란고원에 사는 민족이 썼던 언어라는 점에서 그 사람들을 <아리안>이라 부르게 되었다. 원래 유목민이었던 그들은 BC 15세기 무렵 인더스강 상류지역에 침입하여, 당시 이미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가지고 있던 토착민족을 정복하고 차츰 정주,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힌두교 카스트제도에서의 최고계급인 브라만은 이때 침입한 아리아어족인 페르시아인의 자손이라고 하며, 그들은 그 후 지금까지 인도의 정치·종교·사회의 주도권을 계속 장악해 왔다. 또 그들이 쓰는 산스크리트가 아리아어의 가장 오랜 형태이다.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한 아리안의 일부는 근동에서 유럽에 미쳤으며, 핀·랩 등을 제외한 현재의 유럽언어의 원류가 되었다. 일설에 따르면 전세계에 분산되어 있는 집시들의 먼 조상은 서북인도의 원주민이었는데 인도에 침입해 온 아리안들에 의해 자신들의 토지에서 쫓겨나 방랑생활을 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한다. 19세기 유럽에서는 가끔 언어와 인종을 혼동해서 아리안인종을 둘러싼 논쟁이 많이 일어났는데,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 나치스 독일이었다.


266.아모리인(Amorites) 


고대의 서(西)셈족에 속하는 종족. 아무루인이라고도 한다. 아카드어로 아무루, 수메르어로는 마르투이다. 아무루는 서방(西方)을 뜻한다. 아모리인은 지중해 연안 가나안 주변에서 유목생활을 시작해 BC 3000년 무렵 시리아의 유프라테스강 중류에 정착했고, BC 2200년 무렵부터 메소포타미아로 들어갔다. 수메르문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사무 아붐왕이 나타나자 BC 2004년 당시 아카드지방을 지배하던 우르 제3왕조를 멸망시키고, 바빌론에서 아모리왕조를 세웠다. 이것이 바빌론 제1왕조이며, 6대째 함무라비왕(재위 BC 1792∼BC 1750) 시대에 최성기에 이르렀으며 바빌로니아 전역을 지배하는 대제국이 되었다. 바빌론 제1왕조는 BC 16세기에 멸망했는데, 이 종족은 서방의 마리나 알레포를 거점으로 활동했다. 언어는 BC 12세기에 바빌론에서 소멸했는데, 그 세력은 시리아나 팔레스타인에서는 여전히 유력했다. 그러나 특별한 왕국을 세우지는 않았다.


267.아바르족(Avars) 


몽골계 유목기마민족. 5세기 중엽 카스피해 북쪽변경의 돈강 하류역에 출현하였고, 나중에 투르크족에게 밀려나 유럽으로 이동하였다. 6세기 중엽에는 헝가리 평원으로 진출하여 게피드족을 멸망시켰으며, 랑고바르드족의 이탈리아 이동 뒤 다뉴브강 중·하류역을 중심으로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565∼566년 튀링겐에 침입하고, 비잔틴제국 내로도 침입을 되풀이하였으나, 7세기 중엽부터는 차츰 세력이 쇠퇴하였다. 788년 프랑크국왕 카를은 바이에른침입을 계기로 반격으로 전환하고, 아들 피핀도 아바르족의 본거지를 공격하였다. 9세기에 들어서 불가리아족이 발흥하여 아바르족의 잔존세력을 격파하였다. 9세기 말 아바르족은 동방에서 침입한 마자르족에게 흡수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268.아에타족(Aeta) 


필리핀에 살고 있는 니그리토의 총칭. 니그리토는 동남아시아에 사는 피그미족의 총칭으로, 키가 작고 곱슬머리에 갈색피부를 가졌다. 일찍이 해안부의 수렵채집민이었으나 말레이계 등 이주민에 의해서 산간부로 쫓겨갔다. 필리핀에서 아에타족의 인구는 약 2만이며, 루손섬·팔라완섬·파나이섬·네그로스섬·민다나오섬의 산악부에 홑어져 살고 있다. 주된 생업은 화전경작이며 화살을 사용하는 수렵·어로도 중요하다. 지금은 거의 정주하고 있으며 각 취락에는 거주구가 있다. 몇몇 핵가족이 모여서 하나의 대가족을 이루며 이것이 기본적 사회단위가 된다. 또, 대가족 몇이 모여서 취락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 취락은 자기 거주구 안에서 때때로 이동한다. 근년에는 밭 하나에서의 연작(連作)을 장려하고 있고 교육도 시작되었으나, 아직 그 효과를 충분히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269.아이누족(Ainu)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북해도)] 히다카[日高(일고)] 지방을 중심으로 거주하는 소수민족. 전에는 홋카이도·사할린·쿠릴열도 등에 살아 각각 홋카이도 아이누, 사할린 아이누, 쿠릴열도 아이누라 하였다. 언어학적으로는 고립된 지위를 가지며 생체형질(生體形質)도 특이하고 털이 많다는 점에서 코카소이드로 생각되었던 적도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몽골로이드의 틀 안에 든다는 설이 유력하다. 문화적으로는 북방 유라시아의 수렵문화와의 연관이 강하다. 이전에는 수렵·어로를 생업으로 하면서 같은 조상에서 갈라진 혈연가족이 모여 코탄이라는 취락을 형성해 다신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나, 현재는 일본인과의 혼혈이 두드러져 인종적으로 순수한 아이누를 찾아보기 어렵다. 인구는 혼혈을 포함하여 약 2만 4000이다.


270.아잔데족(Azande) 


아프리카의 수단에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동부 및 자이르 북동부에 거주하고 수단어(語)를 사용하는 농경민. 인구 약 75만. 잔데족이라고도 한다. 북부는 사바나지대, 남부는 열대우림지대로서 피를 중심으로 옥수수·카사바·땅콩을 재배하는 농경뿐만 아니라 수렵·어로·채집에도 적합한 지역이다. 아잔데족은 단야(鍛冶)·항아리제작·목조(木彫)에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일은 주술이나 요술과 결부되어 있다. 18세기 음보무강유역에 사는 주민이 아봉가라라고 하는 유력한 씨족의 통솔 아래 남부 및 동부를 정복하였다. 그 정복은 왕족 자손이 소규모 왕국을 여러 개 건설하면서 추진되었다. 왕 자신이 통치하는 왕국에서부터 지방에 있는 소왕국에 이르기까지, 왕이 임명하는 왕족의 일원이 지배했는데 왕국간에 가끔 전쟁이 일어났다. 가족은 일부다처혼(一夫多妻婚)에 따라 구성되어 있으며, 밭과 삼림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산다. 이웃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생업에 유리하기 때문이고, 또한 요술로부터 도망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271.아치에족(Atjehnese)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부에 사는 몽골로이드계의 종족.

Achehese, Achninese, Atchinese로 쓰기도 한다. 아치에어는 오스트로네시아어에 속하는 말레이어에 가까운 언어이다. 6세기에 인도의 지배 아래 있었고, 13세기 이슬람교를 받아들였다. 17세기 포르투갈인을 격퇴하고 20세기초에 네덜란드에 항복할 때까지 술탄이 지배하고 있었다. 아치에족은 저지에서 주로 논농사를 하는데, 내륙에서는 소나 물소에게 가래를 끌려 밭벼를 경작한다. 이 밖에 사탕수수·옥수수·담배·후추·빈랑나무·고무나무 등을 재배하고 있다. 그들은 1000년 이상 말레이지방과 교역해왔다. 아치에족의 정치적 중심은 수마트라섬 북단 항구인 코타라자이며 이곳에 술탄이 살았다. 아치에족의 친족관계는 부계·모계 양쪽을 따르는 쌍계제(雙系制)이나 결혼 후에는 아내가 사는 곳에 가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272.아캄바족


케냐에 거주하는 반투계 민족. 자신들이나 주변 민족들은 아캄바(캄바 사람들)라고 부른다. 인구는 약 324만(1997). 거주지는 광대하며 행정상으로 마차코스지구와 키츠이지구로 나뉜다. 생업으로 농경을 주로 하지만 지역에 따라 소·염소·양 등의 목축업도 한다. 과거에는 수렵도 하였는데 북부 캄바 사람들은 코끼리를 사냥하고 그 상아를 해안지방으로 운반하여 피륙·놋쇠와 교환하는 등 교역에 종사하였다. 최근에는 건설, 경비원 등의 일을 찾아 도시로 돈벌이 나가는 사람이 늘고 있다. 캄바족은 25개 정도의 부계 씨족으로 나뉘어져 있고, 다시 몇 개의 하위 씨족으로 나뉜다. 같은 씨족 성원이 참가하는 씨족 회의는 캄바족의 법·도덕·정치·재판·분배·종교 및 의식 등의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일부다처제이며, 가족은 3∼4대에 걸치는 부계 출신의 확대가족이다.


273.아프간족(Afghan) 


아프가니스탄 전체 인구의 50∼60%를 차지하는 민족. 파탄족·푸크툰족·파슈툰족이라고도 한다. 넓은 뜻으로는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모든 민족을 포괄하기도 한다. 거무스름한 피부에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자부심 강하고 용맹한 민족으로서, 국가통일의 중심이 되어 지금도 지도적인 지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일찍이 인더스강 유역에서 이주해 온 아리안계 민족으로 인도유럽어족의 동부 이란어파에 속하는 파슈토어를 쓴다. 원래는 유목민이었는데 반건조의 자연환경 속에서 남부의 구릉이나 중앙부의 고원지대를 이동하면서 양과 염소 중심의 유목생활을 하였다. 오늘날에도 유목민의 전통은 남아 있고 양모에서 특산물인 융단을 만드는데, 대부분은 도시주민이나 정착농민이 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충실한 수니파 이슬람교도이고 일부다처제가 인정되지만 지금은 거의 단혼이다. 전통생활을 고집하고 남녀 행동양식의 차이를 강조하여 도시에서도 여성은 외출할 때 눈에 띄지 않도록 전통복장인 차도르를 쓴다.


274.아피나예족(Apinaye) 


브라질의 고이아스주에 사는 원주민부족. 인구 약 300. 제어족(Ge 語族)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아마존강의 지류 토칸틴스강 연안의 토칸티노폴리스시 근처에 있는 2개의 마을에 살고 있다. 아피나예족이 사는 지역은 열대우림기후에서 키가 큰 풀과 관목으로 뒤덮인 사바나기후로 변해 가는 지역이다. 아피나예족의 문화·사회는 북제(北 Ge) 여러 민족과 매우 비슷하다. 출신은 쌍계적(雙系的)이고, 의례집단·연령집단이 중요한 기능을 지니고 있으며, 복잡한 반족조직(半族組織)이 있다. 한때는 평행계라고 하는 특수한 출신양식을 지녔는데, 이것은 키에라는 의례집단 성원권에만 관련된 것이다. 생업은 화전경작·수렵·어로·채집 등이다. 아피나예족 거주지역에 최근 브라질인의 목장이 진출하고 있어 마찰이 늘고 있으며, 정부의 보호·관리하에 있는 아피나예족이 많다.


275.알곤킨계제족(Algonkians) 


북아메리카 원주민 집단. 마크로 알곤킨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총칭이다. 좁은 뜻으로는 오타와에 가까이 있는 가티노강유역의 한 부족을 가리킨다. 마크로 알곤킨어족은 캐나다 동부, 남부의 대부분, 미국 북서쪽 해안, 멕시코만 연안, 대평원 일부에 분포하고 있었는데, 아한대문화영역 동부의 몬타네나스카피족, 북동부 오지브와족, 대평원 샤이엔족, 블랙푸트족 등이 그 대표적 부족이다. 남부에서는 옥수수 재배 농경을, 북부에서는 수렵을 주된 생업으로 하였다. 몬타네나스카피족이나 오지브와족은 백인과의 모피거래가 중요업이었고, 오지브와족은 아메리카줄을 대량으로 이용했다. 대평원에서는 수렵이 중심이었으며 백인이 가지고 온 말을 이용하여 들소사냥을 했다. 북동부 알곤킨계 여러 부족은 이러쿼이동맹의 압박에 의해, 또 백인과의 교역용 모피를 구하기 위해 차츰 서쪽으로 이동했다. 샤이엔 등 대평원부족이 백인의 침입에 대하여 강경하게 저항했던 일은 유명하다.


276.알라만족(Alamannen) 


수에비족에서 갈라져 나온 한 종족으로 구성된 서게르만계 혼성부족. 원주지였던 엘베강 유역으로부터 이동하여 3세기 중엽 로마령까지 진출했고, 5세기 초에는 스위스 동부에서 레흐강, 알프스에서 라인강 중류지역까지 이동했다. 496년 프랑크 국왕 클로비스에게 정복당해 프랑크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왕국이 무너진 뒤 부족대공 밑에서 정치적 통일을 회복하여 슈바벤대공령으로서 독일왕국에 속했다.


277.알라칼루프(Alacaluf) 


칠레 남부 푸에고섬의 서쪽에 있는 섬들에 사는 토착민족. 이 섬지대는 안데스산맥 남단 빙하가 동쪽에 닿아 있고 산기슭은 수목이 빽빽하게 들어선 비가 많은 지대이다. 한편 해안은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지형이며 바다에는 수많은 섬들이 있는데, 기후는 한랭하며 또 지형적 조건이 농사에 적합하지 못하여 어로와 수렵 중심의 생활을 한다. 조개나 성게의 채취, 바다표범·가마우지·펭귄·오리·돌고래 및 낙타과의 구아나코, 물고기 등의 사냥, 그리고 약간의 야생식물 열매 등을 채취한다. 통나무를 파내어 만든 작은 배와 야간족이 사용하고 있는 배와 같은 나무껍질로 만든 배를 사용하고 있으며, 조개채취용 막대·창·망바구니·작살·나무껍질바구니 등 단순한 물질문화밖에 없다. 항상 소집단적으로 이동하는 생활을 하며, 가옥은 반구형(半球形)이며, 가는 나무로 테두리를 만들고 바다표범 등의 가죽을 덮었다. 음식은 직접 불에 굽는 정도이며, 저장한다거나 다른 복잡한 기술·도구는 사용하지 않는다. 인구는 20세기에 들어와 200∼400명 정도이다.


278.알류트족(Aleuts) 


알래스카에서 캄차카반도 쪽으로 늘어선 알류샨열도에 거주하는 사람들. 18세기 초엽에는 약 2만 5000명으로 추정되었으나 18세기부터 러시아인 등 유럽인의 침입으로 인구는 격감하여 1970년에는 약 2000명 정도이고 그들 대부분은 혼혈되었다. 코만도르제도에는 약 440명이 살고 있으며 알류샨열도 이외에 알래스카반도·프리빌로프제도에도 분포되어 있다. 언어는 에스키모어에 가깝고 체격도 에스키모와 닮았으나 두부가 더 짧으며 장수한다고 한다. 고고학적으로는 에스키모와 함께 아시아에서 알래스카로 건너가 약 9000년 전에 알류샨열도에 퍼졌다고 보고 있다. 카야크 또는 바이다르라는 가죽제 보트를 사용하여 바다에서 바다표범·바다사자·해달 등을 사냥하는 일을 주된 생업으로 한다. 엽총이 보급되기 전에는 돌로 만든 찌르개[尖頭器(첨두기)]를 붙여 만든 작살을 투창기로 사용했다. 반지하식 주거에서 친족으로 결합된 2∼3가족이 공동으로 생활하며 각 주거에는 수장이 한 사람씩 있다. 혈통은 쌍계적(雙系的)이며 아내는 다른 마을에서 맞아 온다. 마을의 축제 때에는 주변의 모든 부락 사람들이 모여서 춤·노래 경연 및 격투기 등의 경기를 하기도 한다.


279.알타이계제족(Altaians) 


알타이 여러 언어를 쓰는 여러 민족의 총칭. 알타이계 여러 민족이라는 개념은 언어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것이고, 이론상으로는 그것을 사용하는 인종이나 문화의 계통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나 알타이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겐 신앙, 구두전승, 물질문화 등의 면에서 상당한 공통점이 발견되므로 알타이계 여러 민족이라 하면 편리한 점이 있다. 생활무대는 야쿠트족처럼 시베리아의 원시림이나 큰 강을 이용하여 사냥, 어로, 토나카이 목축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몽골·카자흐·키르기스 여러 민족처럼 건조한 초원지대로부터 반사막지대(半砂漠地帶)에 걸쳐 유목만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자는 열 몇 개의 막대기 상단을 묶고 하단을 벌려 원뿔모양으로 세워놓고 짐승 가죽이나 자작나무 껍질을 덮어서 주거로 한다. 후자는 전자가 발달된 형태로, 신축가능하게 짜맞춘 가는 나무로 만든 원통형 벽면 위에 원뿔형 지붕을 얹어 놓은 형태로 만들고, 그 위에 펠트나 짐승 가죽으로 덮은 파오[包(포)]·유르트(투르크어) 등에서 주거한다. 펠트는 아주 오래 전에 그들이 발명한 축산품으로, 양모에 짐승젖이 배어들게 하여 그 접착효과를 이용, 몇 층으로 감아 굳혀서 만든다. 생활의 모든 것을 사냥한 짐승이나 가축에 의존하고 있으며 의복과 주거는 털과 가죽에, 식료품은 유제품과 고기에 의존한다.


280.알푸루족(Alfuru)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교도가 아닌 사람들을 일컫는 말. 일반적으로 셀레베스(술라웨시)섬 북부, 몰루카제도, 할마헤라섬, 민다나오섬과 그 부근에 있는 섬에 거주하는 비이슬람교도에게 민족이라는 개념과 관계없이 부르는 명칭이며, 알푸루는 <숲 사람>이라는 뜻이다. J.G.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에는 알푸루족에 대한 기술이많이 있다. 그에 따르면 알푸루족은 아픈 사람을 남의 집으로 옮긴 다음 환자가 누워 있던 침상에 베개와 옷을 입힌 인형을 놓아둠으로써 악마가 그 인형을 환자로 착각하고 인형에게 병을 옮기므로 환자 병이 낫는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


281.암하라족(Amhara)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원주민 부족. 오랫동안 에티오피아의 지배부족이었으나, 1975년 사회 주의혁명으로 암하라족 출신의 하일레 셀라시 에 황제가 폐위되었다. 언어는 셈어에서 파생된 암하라어를 쓴다. 암하라족은 토착민인 쿠시족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보리·옥수수의 경작 농민이 대부분이고, 부권이 강하다. 1500여 년 전부터 독자적인 그리스도교를 발전시켰는데, 콥트교회의 영향력이 강하다.


282.애뢰(哀牢) 


중국 한(漢)나라 때 서남이(西南夷) 중의 하나. 건국연대는 BC 2세기 후반으로 짐작된다. AD 47년 애뢰국왕 현율(賢栗)이 후한(後漢)의 군사에게 패해 51년 후한에 귀속되었다. 69년 명제(明帝)는 그 고장에다 애뢰·박남(博南)이라는 2개 현을 설치하고, 익주군(益州郡) 서남도위(西南都尉) 소령(所領)의 6현과 합쳐서 영창군(永昌郡)에 속하게 했다(대략 윈난성의 파오산·융핑 2개 현의 지역에 해당한다). 애뢰의 땅은 기름져 오곡·잠상(蠶桑)에 알맞았고, 일찍이 인도·서아시아와도 통교(通交)하여 불교도 성하였으며, 질이 좋은 무명과 무늬 있는 비단을 생산하였다. 94년에는 대진(大秦)의 사절이, 97년과 120년에는 탄국왕의 사절이 이 지역을 경유해서 중국까지 도달했던 사실은 애뢰(영창군)가 1세기 말부터 2세기 초에 걸쳐서 중국과 인도 사이의 교통의 요충지였던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283.애서배스칸계제족(Athabascans) 


알래스카 및 캐나다 북서 내륙부에 사는 애서배스칸계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부족들을 통틀어서 가리키는 말. 이들이 사는 지역은 아한대 삼림지대이며 순록·큰사슴 등을 사냥하며 살고 있다. 핵가족을 중심으로 한 소집단 혹은 부족사회를 이루어 계절에 따라 이동을 반복하고 있으나, 겨울에는 반영구적인 캠프에서 지낸다. 집은 나무 버팀대에 짐승가죽을 둘러친 티피라는 텐트가 기본이다. 부족 전체를 통합하는 조직은 없고, 각 부족을 지휘자 한 사람이 거느리고 있다. 각 부족의 구성원은 유동적이다. 동물들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으며, 샤먼의 영향력이 강하지만 축제 등 공동행사는 거의 없다.


284.앵글로색슨(Anglo-Saxon) 


5∼6세기 민족대이동으로 브리타니아(그레이트브리튼섬)에 이주한 부족인 앵글인과 색슨인의 총칭. 유틀란트반도 남부에 게르만인, 슐레스비히지방에 앵글인, 홀슈타인지방에 색슨인이 살았다고 한다. 색슨인은 이미 3세기 무렵부터 엘베강·베저강 방면으로 진출하였고, 일부는 라인강 하류에까지 이동하였다. 앵글인도 일찍부터 남쪽으로 내려와 색슨인과 합류하여 함께 살았으며, 비슷한 문화·관습을 지니고 있었다. 브리타니아로 이주할 때도 앵글인과 색슨인의 구별없이 지도력을 갖춘 유력한 귀족의 지도 아래 그때그때 이주단을 구성한 듯하다. 그들은 보단신(神)을 최고신으로 삼고, 그 밖에 군신(軍神) 토르와 튀르, 풍작과 변영의 신 프레이르와 프레이야여신 등 게르만의 신들을 믿고 있었다. 브리타니아로 이주한 뒤, 보단신과 예수·마리아의 절충이라는 형태로 차차 그리스도교화되었다. 이주 후에도 토지 공동체 소유를 원칙으로 하고, 일반 자유민을 기본계층으로 한 메이즈라는 혈족 공동체를 단위로 하여 유력한 수장(首長)의 지도 아래 하천 연변에 정주하였다. 베이던언덕에서 브리튼인의 왕 암브로시우스 아우렐리아누스의 반격을 받아 웨일스로 서진(西進)하는 것을 저지당하였으나, 잉글랜드의 북부·중부에는 앵글계 왕조인 버니시아·데이라·머시아·이스트앵글리아, 남부에는 색슨계왕조인 웨섹스·서섹스·에섹스를 세워서 주트계의 켄트왕국과 더불어 헵타키(7왕국)시대의 패권을 다투었다.


285.야간족(Yahgan) 


남아메리카대륙 최남단 푸에고섬 남해안에서 살던 원주민. 같은 섬에 사는 오나족·알라칼루프족과 함께 농경을 전혀 하지 않는 채집수렵민이었다. 주된 포획물은 바다표범 등의 해수나 낙타과의 과나코였다. 인구는 19세기 후반에는 3000명 정도였으나, 그 뒤 급격히 줄어들어 1933년에는 40명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날 부족이 남아 있다고 해도 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남극대륙에 가까운 추운 곳이나, 의복은 해수나 여우의 가죽으로 만든 작은 어깨망토뿐이며, 체표면에 짐승의 기름을 발라서 추위를 견디었고 발은 맨발이었다. 기본적인 사회 단위는 가족이며, 부계거주의 규칙을 지닌 친족집단 내에서 상호부조가 이루어졌다. 부족은 방언의 차이에 따라 5개 지역으로 나누어졌으며, 느슨한 정치적 유대가 존재하였다.


286.야노마모족(Yanomamo) 


남아메리카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에 살고 있는 원주민 부족. 언어 귀속은 치브차어족 또는 카리브어족에 관계가 있다는 등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뚜렷하지는 않다. 언어집단으로는 야노아마(Yanoama)라 한다. 문헌에서는

와이카(Waika)·시리아나(Xiriana)·샤마타리(Shamatari)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언어의 차이와 거주지에 따라 4개의 하위집단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 거주지는 모두 아마존강의 지류 네그루강 좌안 지류와 오리노코강 상류부인데 남서부를 차지하는 집단을 야노마메(Yanomami), 남동부를 차지하는 집단을 야노맘(Yanomam), 북서부를 차지하는 집단을 사네마(Sanima), 북동부를 차지하는 집단을 야남(Yanam)이라고 한다. 총인구는 1만에서 2만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남아메리카에 잔존하는 문화변용의 정도가 적은 최후의 커다란 원주민집단이다. 생업의 중심은 화전농경이고 주요 작물은 요리용 바나나와 독성이 있는 마니오크이다. 다른 남아메리카 저지대 원주민과 마찬가지로 수렵채집과 어로는 농경을 보충하는 것으로 중요하다. 취락의 중심세력인 부계출신집단의 지도자 한 사람이 취락을 이끄는데 단일집단만으로 이루어진 촌락은 없으며 항상 복수의 출신집단 성원으로 이루어진다.


287.야키(Yaqui) 


멕시코 북서부 소노라주 야키강 오른쪽 기슭의 8개 취락과 미국 애리조나주 남부 7개 취락에 주로 살고 있는 민족집단. 인구 약 1만(1997). 피마콜라어족에 속한다. 1523년 에스파냐인과 접촉한 뒤, 1610년 평화조약을 맺었으며 예수회 전도조직이 건설되었다. 식민지시대에는 비교적 안정되었으며 밀 재배, 목축의 도입과 정착생활로 독자적 문화가 형성되었다. 멕시코 독립 뒤 통합을 요구하는 정부와의 사이에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일어난 반란 때 유카탄지방으로 포로 유형이 행해졌으며, 이때 미국으로 피란한 사람들이 잇달아 나왔다. 지금은 1939년 승인된 약 5000㎢의 토지에서 농업이 행해지고 있으나 관개시설의 미비, 염해 등으로 인해 생산활동에 지장을 받고 있다. 독자적 정치·종교 조직이 발달하였고 민족의 독립의식이 강하다. 미국인 작가 C. 캐스터네더는 야키주술사로의 입문 체험을 발표했으며, <인류학적 이해>를 둘러싼 많은 화제를 제공했다.


288.야페테인(Japhetic) 


고대 오리엔트 역사에서 활동한 여러 민족 가운데 하나. 셈·햄계 및 인도유럽계에 속하지 않는 귀속불명의 여러 민족을 말한다. 20세기초 이래 여러 연구에서 그들도 한 인종을 이루었다고 여겨져 《구약성서》 <창세기> 10장에 따라 이름지어졌다. 선사시대 오리엔트 전지역에 번성한 채색토기문화는 그들의 소산이다. 그들은 카프카스·아르메니아를 원주지로 하여 활동했다. 언어학적으로 카프카스어와 유사한 교착어에 속하며, 인류학적으로 아르메니아적 특징이 있는 인종군으로 오리엔트인종의 기반을 이룬 모든 민족과 혼혈되었다고 생각된다. 역사적으로 수메르인·엘람인·후르리인 및 히타이트와 미탄니제국 사람들이 여기에 속하고 크레타인, 에트루리아인, 지금의 아르메니아 여러 민족, 바스크인, 인더스 문명인도 같은 계통이라 하나 어느 쪽도 계통이 분명하지 않다. 야페테인이라는 이름은 오늘날 그다지 쓰이지 않는다.


289.에벤키족(Evenki) 


시베리아와 중국 둥베이지구[東北地區(동북지구)] 북부에 분포하는 소수민족. 알타이어족 퉁구스계 만주어군(滿洲語群)의 북방퉁구스어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인종적으로는 북몽골로이드인종에 속하며, 일반적으로 중간키에 피부는 황백색이고, 모발은 흑색 직모이다. 이전에는 퉁구스·오로촌·비랄·마네길 등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에벤키[鄂溫克(악온극)]를 공식명칭으로 하고 있다. 이들은 예니세이강 동쪽의 동시베리아 전역과 중국 둥베이지구 북부, 몽골 북부, 연해주, 사할린 북부 등에 분포하는데 이는 전시베리아의 70%를 차지하는 면적이다. 그러나 인구는 매우 적어 러시아에 약 2만 7300명(1979), 중국에 약 1만 3000명(1978)정도가 분포해 있다. 행정적으로는 비교적 인구가 조밀한 지역인 러시아의 에벤키민족관구, 중국의 에벤키족자치기(自治旗)가 형성되어 있다. 에벤키족의 주요 생업은 수렵과 순록사육이며, 남부에서는 소·말의 목축과 농경도 행해지고 있다. 수렵을 통한 주요 사냥감은 식용·모피용의 야생순록·고라니·노루·곰 등이며, 교역용 모피짐승으로는 검은담비·흰담비·다람쥐 등이 있다. 식량은 주로 수렵과 어로활동으로 얻으며, 사육한 순록은 짐을 싣거나 타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


290.에웨족(Ewe) 


서아프리카 가나 및 토고에 많이 살고 있는 원주민 부족. 인구 324만 8000(1997). 니그로계의 멜라노아프리카인종에 속하고, 언어는 니제르콩고대어족 중 크와어족에 속한다. 생업은 해안지대에서는 주로 어업이고 내륙부에서는 상품작물인 카카오재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종전에는 강력한 부계혈연집단(계보관계가 확실한 단계혈연집단)이 사회의 중심을 이루어 생활의 많은 부분을 통할하였다. 혈연집단의 장로는 권위의 상징인 의자를 가지고 있었고, 각 가족의 장(長)으로 구성된 고문회의가 장로를 보좌하였다. 촌락 차원에서는 촌락창설자의 혈연집단 장로가 촌장이 되어 권력을 잡았다. 역사상 단일한 왕국을 형성한 일은 없고, 10개의 수장국(首長國)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식민지시대에 노예무역에 관계하였고, 상품작물 재배가 사회경제생활을 변화시킨 결과 혈연집단의 통제력과 가장의 권한이 약화되었다. 토고·가나 두 나라에 거주지가 나누어져 있어서 이 두 나라의 정치에 미묘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291.에트루리아인(〔라〕Etrusci) 


BC 1000년 에트루리아(지금의 이탈리아 중부)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도시문화를 발전시켰던 민족. 그들은 라센나(Rasenna) 또는 라스나(Rasna)라 자칭하였으며, 로마인은 그들을 에트루스키 또는 투스키(Tusci;토스카나라는 지명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그리스인은 티르세노이(Tyrsenoi) 또는 티레노이(Tyrrhenoi)라고 불렀다. BC 7∼BC 6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나, BC 4세기 이후 로마에 압도되어 BC 90년까지 로마에 병합되었다. 그들은 에트루리아를 비롯하여 캄파니아나 포강유역에 여러 도시를 세웠으며 이들 도시는 대개 독립된 자치의 도시국가였다. 에트루리아의 주요 12도시국가는 연합을 결성했으나 전 에트루리아인을 통합한 통일국가는 형성되지 않았다. 도시 자체의 유적은 많지 않으나 상당수의 무덤[墓(묘)]유적이 껴묻거리[副葬品(부장품)]와 함께 발견되어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아는 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사료로는 그리스·로마의 문헌이 있으며, 또 에트루리아어로 된 명문(銘文)이 현재 1만점 이상 남아 있다. 그러나 이들 명문의 대부분은 그 문자가 그리스문자의 변종이므로 완전히 읽을 수는 있으나, 내용에는 불분명한 점이 많아 확실히 해독되어 있지는 않다.


292.에티오피아인종(Ethiopian race)


에티오피아고원과 소말리아반도를 중심으로 하여 분포하는 인종. 니그로이드로 분류되지만 니그로이드와 코카소이드의 중간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니그로이드적 특징으로는 약간 장두(長頭)인 것, 키가 큰 경향, 짙거나 옅은 갈색 피부, 폭이 넓은 어깨와 좁은 골반, 헌칠한 몸매, 상대적으로 긴 팔과 하퇴(下腿), 적은 체모(體毛), 홀쭉한 장딴지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코카소이드적 특징은 머리카락이 아주 고수머리가 아니고, 때로는 물결치는 정도의 것, 입술이 비교적 얇고, 말려올라가지 않은 것, 폭이 좁은 코가 오똑하고, 또 콧마루가 쪽 곧거나 때로 매부리로 된 것, 턱이 수직(안면이 비교적 수직에 가깝다)인 것, 광대뼈가 튀어나오지 않은 것 등이다. 예를 들면 올림픽의 마라톤우승자 B. 아베베 선수에게서 볼 수 있듯이 얼굴의 윤곽은 코카소이드적이나 피부색 등은 니그로이드적이다. 흑백혼혈아와 체형이 다른 데서 에티오피아인종은 니그로이드에도 코카소이드에도 명확하게는 분화되지 않은, 일반적 경향을 띠는 인종이라고 여기는 학자도 있다. 한편 원주민인 니그로이드와 북방에서 침입한 코카소이드와의 혼혈에 의하여 형성되어 양쪽의 특징이 비교적 고르게 나타나 안정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상당히 강하다.


293.예맥(濊貊) 


한민족의 근간이 되는 한국 고대의 종족 명칭. 예 또는 맥이라고도 한다. 그 원주지에 대한 명확한 사료는 없으나, 중국 고대 문헌에 맥이 나타나는 방위를 중국의 북쪽 혹은 북동쪽이라 기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개 BC 3∼BC 2세기 무렵에 남쪽으로부터의 한족(漢族), 서쪽으로부터의 몽골계 유목민의 압박을 피해 차츰 북동쪽으로 이동하여 지금의 만주(滿洲) 동부에서 한반도 동·중부에 걸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볼 때 예맥족은 쑹화강[松花江(송화강)]·헤이룽강[黑龍江(흑룡강)]·압록강(鴨綠江) 등 유역과 함경도·강원도에 걸쳐 활동한 대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예맥족의 종속적 계통에 대해서 일찍부터 여러 가지 논란이 있는데, 퉁구스족이 근간을 이루고 그 선주지(先住地)를 고려한 몽골족·만주족·터키족, 즉 우랄알타이어계 민족의 혼혈로 추정된다.


294.오나족(Ona) 


남아메리카 가장 남쪽 끝에 있는 푸에고섬에 사는 원주민 부족. 인종적으로는 몽골로이드대(大)인종인 아메리칸인디언에 속하고, 언어는 안데스 적도대어족(赤道大語族)의 촌어족에 속한다. 섬의 내륙부를 영역으로 하는 호전적인 채집수렵민족이며, 정치·경제상의 공동집단인 밴드단위로 이동하면서 낙타과(科) 구아나코를 사냥하여 생활하고 있다. 키는 커서 남자는 종종 180㎝를 넘는다. 의류에는 구아나코의 털가죽을 많이 쓰고 한랭한 지방이면서도 바다표범에게서 취한 수지(獸脂)를 몸에 바르기만 하면 추위를 견디어낸다. 1520년에 세계일주 항해중 F. 마젤란에 의하여 발견된 이래, 섬에 들어온 목양업자들과의 다툼과 전염병에 의하여 인구가 격감하였다. 그리스도교 전도자들이 준 의복이 오히려 몸의 내한성(耐寒性)을 약화시켜 많은 오나족이 죽었다고 한다. 해안지역의 야간족 등과 함께 생활하기도 하였으나 그 뒤에도 인구의 감소는 계속되어 푸에고 원주민은 절멸의 길을 걷고 있다.


295.오로촌족(Orochon) 


알타이어족 퉁구스·만주어군 북방 퉁구스어계에 속하는 민족. 러시아연방 부랴티야공화국 치친주·아무르주 및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흑룡강성)] 북부, 내몽골자치구에 분포한다. 인종적으로는 북몽골로이드인종에 속한다. 러시아에서는 에벤키족(퉁구스족)의 일파로 보고 있으나 중국에서는 별개의 민족으로 여기고 있다. 중국어로 <어룬춘족[鄂倫春族(악륜춘족)]>으로 쓰고, 어룬춘자치기(旗)가 형성되어 있으며, 중국 땅에 약 3200명이 살고 있다. 오로촌의 어원은 퉁구스어의 <오론>이라는 순록 또는 산꼭대기를 뜻하는 말에 있다. 일찍이 연해주에 살고 있는 오로치족, 울리치족, 사할린의 오로코족(우일타족)도 오로촌족으로 오인되곤 했다. 주요생업은 사냥인데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말이나 순록도 사육한다. 수렵의 대상은 노루·다람쥐·늑대·여우·멧돼지·곰 등이다. 그 가운데 노루를 가장 많이 잡으며, 고기는 식용으로, 가죽은 집·옷·공예품 등에 이용한다.


296.오로크족


사할린섬 북동부와 남부에 거주하는 소수민족. 윌타족은 자신들을 윌타, 씨족에 따라서는 우리차라고 부르고 있다. 또는 오로크(Oroks), 나니(Nani)라고도 한다. 인구는 북동부에 162명(1926), 남부에 약 170명(1965)이 거주한다. 알타이어족(語族) 퉁구스·만주어군(滿洲語群) 남방퉁구스어(滿洲語)계에 속한다. 문화적으로는 아무르강유역의 남방퉁구스어계의 여러 민족과 동류이고 또한 같은 사할린의 길랴크족의 영향도 많이 받기는 하였으나 토나카이(순록)를 사육한다는 점에서 그들과는 크게 다르다. 생업은 수렵·어로 및 토나카이 사육이며 토나카이를 타고 다니기도 하고, 썰매에 연결시켜서 교통수단으로 사용한다. 토나카이의 방목과 엽장(獵場)과 어장의 획득을 위해 1년 주기로 이동생활을 하는데, 여름에는 해안에서 어로를 중심으로 한 반정주생활(半定住生活)을 한다. 여름에는 카우라라는 커다란 목조(木造) 오두막에 살지만 나머지 계절은 아운다우라는 원뿔형주거에서 산다. 윌타족은 부계외혼씨족(父系外婚氏族)을 형성하고 있으며 각 씨족마다 주거범위를 가지고 있었다.


297.오스탸크족(Ostyak) 


러시아연방 튜멘주 한티만시 자치구를 중심으로 오브강과 이르티슈강유역에 널리 분포하는 민족. 한티족이라고도 한다. 언어는 우랄어족 핀우고르어군 우고르어에 속하며, 서쪽 만시족(보굴족)과 함께 오브우고르족이라 한다. 한 때 우랄산맥 서쪽까지 퍼져 있었으나, 러시아인, 핀계 여러 민족들에게 압박을 당해 500년경 지금의 위치로 옮겨 왔다. 13∼16세기 남부가 몽골제국과 시비르한국(汗國)의 지배를 받기도 했는데 그 영향이 관습법 등에 남아 있다. 16세기 말 시비르한국의 멸망과 동시에 러시아인의 지배를 받았다. 생업은 주로 사냥과 고기잡이이지만, 남부에서는 농경도 하며, 북부 툰드라 근처에서는 소규모로 순록을 사육한다. 사회는 작은 지역별 집단들로 구성된 여러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고, 결혼 상대는 반드시 다른 집단에서 맞이해야 한다. 각 씨족은 토템선조나 영웅의 이름을 따서 부르며 조상숭배의식을 행하는 한편 공동묘지도 있다. 신앙은 옛 시대의 양상을 보전하고 구전문학이 발달하였다.


298.오이라트(Oyirad) 


러시아연방 칼미키야공화국과,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신강유오이자치구)] 및 칭하이성[靑海省(청해생)], 몽골 등지에 분포하는 몽골계 종족. 칼미크(칼무크)·에루트라고도 한다. 13세기에 예니세이강 상류지역에 살다가 칭기즈 칸에게 정복당하였으나, 15세기 중엽 한때 에센이 몽골을 통일하였다. 16세기 후반에 도르벤오이라트라고 불린 이들은 호슈트·중가르·도르베트·토르구트·바투트·호이트 등의 부족으로 이루어져 이르티슈강 상류지역에서 살았으나, 내몽골족의 알탄 칸에게 토벌당하여 한때 쇠퇴하였다. 17세기 전반에는 호슈트부가 오이라트 전부를 지배하였고, 또 호슈트부의 구시 칸이 칭하이지방으로 진출하여 티베트까지도 정복하였다. 17세기 후반에 호슈트부를 대신하여 중가르부가 대두하였는데, 중가르부의 갈단이 오이라트 전부를 통일하고 또 동투르키스탄을 정복하여 중가르왕국을 세웠다. 갈단은 외몽골을 침략하려 하였기 때문에 청(淸)나라와 싸우게 되었다. 1696년 청나라에게 패한 갈단은 다음해 자살하였다. 그 뒤를 이은 체완 아라프탄, 갈단 체렌 때에 중가르왕국은 최전성기를 맞았고, 청나라와는 화평관계를 유지하면서 서투르키스탄 진출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1758년 내분을 틈타서 침공한 청나라에게 멸망당하였다.


299.오이로피데 


백색인종 계통에 속하는 인종의 총칭. 코카시아(Caucasia) 또는 코카서스(Caucasus)인종이라고도 한다. 니그로이드·몽골로이드와 함께 세계 3대 인종의 하나로 유럽·동아시아·인도·북아프리카·아메리카 등지에 넓게 분포한다. 코카소이드는 <코카서스인과 같은 것>이라는 뜻으로, 18세기 독일 인류학자 J.F. 블루멘바흐가 처음 붙였다. 그는 세계 각지에서 두골을 수집하였는데 코카서스 지방에서 유래된 두골이 아름다워 이러한 명칭을 붙이고 인류의 중심적인 인종으로 생각하였다. 유럽인종·백색인종 등의 명칭도 있으나 반드시 전체를 나타내지는 않기 때문에 일반화되지 않았다. 코카소이드의 기원으로는 후기 구석기시대 크로마뇽인과 골격형태의 유연(類緣)관계를 들 수 있는데 확실하지 않으며, 특히 크로마뇽인이 밝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코카소이드는 15세기 이후 지구 곳곳에 퍼졌고,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원주민을 쫓아내고 온난한 지방에 널리 분포하였다.


300.오지브와족(Ojibwa) 


북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치페와족(Chippewa)으로도 불린다.

언어는 알곤킨어족(Algonquian)에 속하고, 문화권은 북동부문화권에 포함된다. 5대호지방 중앙부에 거주하다가, 백인과 접촉한 후 슈피리어(Superior)호수의 남서부와 북서부로 거주지를 옮겼다. 인접하고 있는 다코타(Dakota)족과 소규모분쟁이 잦았는데 다코타족이 미네소타에서 추방됨에 따라 그들의 연고지를 차지하게 되었다. 백인 특히 프랑스인과의 모피거래가 끼친 영향이 오지브와족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백인 상인은 거래를 안정시키기 위해 오지브와족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또 직접 교섭에 임하는 지방수장의 지위를 강화시켰다. 다코타족 구령(舊領)에서는 벼의 일종인 아메리카줄을 집중적으로 이용하였는데, 이는 그 뒤 모피거래가 중요성을 잃은 뒤에 겨우 생계를 지탱하는 기반이 되었다. 사회조직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개인주의의 경향이 농후하다.


301.오환(烏桓) 


고대 동북아시아의 유목민족 가운데 하나. 오환(烏丸)이라고도 쓰며, 전한(前漢)시대 초부터 후한(後漢) 말까지 활약하였다. 오환의 선조는 동호(東胡)인데, 동호가 BC 3세기 말 흉노(匈奴)의 모둔선우(冒頓單于)에게 격파되면서 일부는 시라무룬[西喇木倫(서라목윤)]강을 중심으로 한 선비(鮮卑)가 되었고, 또 일부는 랴오허강[遼河(요하)]을 중심으로 한 오환이 되었던 것이다. 중국 정사에 따르면 수렵·교역 외에 계절적 농경을 한 흔적이 있고, 샤머니즘을 믿었으며 비세습(非世襲)의 대인(大人)에 의해 통솔되었다. 초기에는 흉노에 복속되었으나, 후에 한(漢)나라에도 조공하였다. 한나라의 흉노억제책에 일익을 담당했으며, 이에 후한 광무제(光武帝)로부터 비단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후한 말 답둔이 여러 부를 통일하면서, 유성(柳城)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기도 하였으나, 조조(曹操)의 대군에 의해 격파되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북위(北魏) 이래 한민족과 융합되었다.


302.옹구드(Ongud) 


중국 금(金)·원(元)나라 때 내몽골의 인산산맥[陰山山脈(음산산맥)] 북쪽에 거주한 투르크계의 유목부족. 그 기원은 당(唐)나라 말의 혼란기에 이 지방으로 이주한 사타돌궐(沙陀突厥)과 위구르족의 일부 등이 혼성된 것이라고 한다. 송(宋)나라 사람들은 이들을 백달달(白達達)이라고 하였다. 중국문화와 서방의 문화를 받아들여 몽골고원의 유목민들 가운데서도 비교적 높은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옹구드족의 일부는 금나라 왕조에 복속되어 그 북서 변방의 방위 임무를 맡았다. 몽골부에 칭기즈 칸이 나타나서, 몽골리아의 통일을 추진하던 중, 13세기 초에 옹구드부장(部長) 알라쿠시 데기트 쿠리는 이에 신복(臣服)하고 그 동맹자가 되었다. 그 뒤 옹구드족은 독실한 네스토리우스파의 그리스도교도였음이 알려졌고, 옹구드부장은 주교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왕성(王城)은 내몽골의 올론 숨에 있었으나, 원나라가 멸망한 뒤 명(明)나라 군대의 공격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옹구드의 후예는 엥구드라고 하였으며, 내몽골 튀메드부의 일원이 되었다.


303.와족(wa) 


미얀마 동부 샨고원의 살윈강 동쪽지역을 중심으로 중국 윈난성[雲南省(운남생)]에 걸쳐 거주하고 있는 종족. 정밀한 인구조사가 안 된 상태이나 1940년 후반 미얀마에 33만 5000명, 중국에 5만 8000명으로 추산되었다. 한편 중국은 국내의 와족 인구를 38만 명(1997)으로 추산하고 있다. 언어는 오스트로아시아어족 몬크메르어계 팔라우어파에 속한다. 타이족의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는 소승불교를 믿으며, 한족과 접촉이 많은 지역에서는 종래의 항상가옥(杭上家屋)이 아닌 평지가옥(平地家屋)에서 거주하는 등 문화가 바뀐 와족도 볼 수 있다. 그들은 <숙가와(가와는 와족의 별칭)>라고 하는데, 오지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생가와>와 구별된다. 예로부터 화전에서 육도(陸稻)와 두류·옥수수 등을 성년남자가 휴대하는 장도(長刀)를 중심으로 한 몇 가지 농기구를 사용하며 재배했다. 문화변용을 거쳐 발전한 지역에서는 소를 이용해 밭을 갈거나 수전경작(水田耕作)도 하고 교역물자로는 앵속과 차(茶)가 주종을 이룬다. 전통적인 와족의 촌락은 규모가 비교적 크고 수백 호에 이르는 곳도 많다. 부락 주위에는 흙을 쌓거나 가시나무를 둘렀고, 두 군데의 터널식 출입구에는 견고한 문을 달아서 적의 기습에 대비하였다.


304.왈론인(Wallonese) 


벨기에 남부지방에서 사용되는 왈론어를 모어(母語)로 하는 사람들. 벨기에 인구의 약 1/3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가톨릭교도이다. 왈론계 주민의 거주지역(왈로니아)은 리에주를 중심으로 하는 공업지대와 독일·프랑스국경 근처의 아르덴고원지대이다. 이 지역은 로마시대 이래 라틴(라틴화된 켈트)문화의 북쪽 끝에 해당되며, 지역 주민들은 그 북쪽의 게르만계 주민과의 문화적 차이를 오래도록 의식해 왔다. 그러나 지금의 민족적 감정에는 근대사의 영향이 크다. 18세기 중엽 이후 유럽대륙 최초의 산업혁명이 풍부한 자원을 가진 왈로니아에서 일어나자, 왈론인이 근대 벨기에왕국 건국의 중심이 되어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한편 1870년대부터 경제적으로 뒤져 있던 플라망계 주민의 인구가 급증하여 정치적 자각이 높아지자 왈론주민과 플라망계 주민의 민족적 감정대립이 심해져, 제1차세계대전 후에는 벨기에의 정치적 불안정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이러한 민족적 대립을 완화시키기 위하여 1930년대부터 제도화되어 1963년의 언어법 제정으로써 완성을 본 언어평등주의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왈론인>이라는 의식이 감정대립을 일으키는 요소가 되고 있다.


305.우리양하이(Uriyanghai) 


중국 원(元)나라 때 외몽골 오논강의 발원지 일대에 있다가 명(明)나라 때 싱안링[興安嶺(흥안령)]동쪽으로 이주한 몽골계의 한 종족. 한자로 올량합(兀良哈)이라고 쓴다. 명나라 홍무제(洪武帝)는 이 종족 때문에 1389년 태령(泰寧)·복여(福余)·타안(朶顔) 등 삼위(三衛)로 이루어진 우리양하이 삼위를 설치하여 원나라 왕실의 친척이 되는 요왕(遼王) 아찰실리(阿札失里)로 하여금 다스리게 했다. 이때부터 우리양하이 삼위는 명나라 북방방위의 거점일 뿐만 아니라 군마(軍馬)의 공급지로서도 중시되었으나, 몽골 본토로부터의 영향이 강하여 명나라에 대해 반란을 되풀이하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15세기 중엽 오이라트족의 수장 에센의 공격을 받아 큰 타격을 입었다. 명나라 말기와 청(淸)나라 초기에 우리양하이 삼위가 내몽골족의 압박을 받고 쇠퇴하다가 그들에게 병합되어 소멸했다. 또 예니세이강 상류의 당노(唐努)와 오량해(烏梁海)라고 하는 여러 부족(현재 러시아연방 투바자치공화국 주민)도 본래는 우리양하이와 동족이라고 한다.


306.우문부(宇文部) 


3세기 중엽 몽골고원에서 발흥한 선비계(鮮卑系)의 한 부족. 흉노계라는 설도 있다. 처음 시라무렌유역(遼河 상류)에 있었으나, 4세기 중엽에 같은 선비족인 모용부(慕容部)의 전연(前燕)에 병합되었고, 다시 전연의 후신인 후연(後燕)이 북위(北魏)에게 대패하자 북위에 투항하여 산시성[山西省(산서성)] 다퉁[大同(대동)] 북부에서 변경방비에 종사하게 되었다. 6세기 중엽 북위 말기의 혼란을 틈타 실권을 장악하고, 북주왕조(北周王朝)의 기초를 세운 우문태(宇文泰)는 그의 자손이다.


307.우아스테카(Huasteca) 


멕시코 중동부, 캄페체만 연안의 베라크루스주 북부와 산루이스 포토시주 북서부에 거주하는 민족집단. 인구 약 17만(1997). 언어는 마야토토나카어군 마양세어족(語族)에 속하며, 마야문화의 북쪽 한계에 해당한다. BC 1500년 무렵 남방으로부터 이주하였고, BC 2세기에서 AD 8세기에 걸쳐 고전기문화를 개화시켰다. 16세기 초에 아스텍의 침입을 받은 직후 에스파냐인과 접촉하였고, 정복전쟁과 카리브해지역에 대한 노예매매로 인구가 격감되었다. 비교적 안정된 에스파냐 식민지시대 이후 19세기에는 토지문제로 두 차례 반란이 일어났다. 고온다습한 기후에서 옥수수·콩·호박·고구마·사탕수수·커피를 생산하고, 또 쌀과 땅콩도 도입하여 경작하고 있다. 사회조직은 일찍이 부계씨족사회였던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친족관계를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정치·종교조직은 거의 소멸되었으나, 일부에서 장로회의가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종교는 가톨릭이며, 제례 때에는 많은 민족무용이 벌어지고 있다.


308.우즈베크족(Uzbek) 


우즈베키스탄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아프가니스탄 북부 등에 거주하는 투르크계 민족. 우즈베키스탄에 약 1688만 명, 중국에 약 1만 3000명, 아프가니스탄에 약 209만 명(1997)이 살고 있다. 우즈베크라는 명칭은 처음에는 킵차크한국(汗國)의 영내(領內)에 거주하는 유목민 전체를 가리켰으나 15세기 무렵 이 지역에 몽골계·투르크계 유목국가가 성립되면서 이들 다양한 유목민과 원래부터 정착해 있던 이란계 종족과의 혼혈족을 지칭하게 되었다. 알타이어군에 속하는 투르크 계열의 우주베크어를 사용한다. 대부분 수니파 이슬람교도이며 문화적 유대가 강하고 할례, 여성의 조혼(早婚) 관습 등이 유지되고 있다.


309.움브리인(Umbri) 


BC 1000년기(紀) 이탈리아의 움브리아지방에서 거주하며 움브리어를 사용한 민족. 움브리어는 오스크어와 함께 이탤릭어를 구성하는 인도유럽어의 일파이며, 굽비오에서 출토된 7매의 청동판에 새겨진 명문(銘文)에 의해 알려졌다. 그들은 몇 개의 도시를 세웠으나 통일국가는 형성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에트루리아인 및 사비니인들과 교류했으며, BC 4세기 이후에는 로마인들과 교류했으나 BC 295년에 그들에게 패하였는데, 동맹시전쟁(同盟市戰爭)을 계기로 로마시민권을 부여받았다.


310.월(越) 


중국 춘추시대 이후 화난[華南(화남)]에서 베트남 북부에 걸쳐 널리 분포한 민족, 또는 그들이 세웠다는 국가의 명칭. 종족이 많았기 때문에 백월(百越;奧)이라고도 불렸는데 비교적 통합된 세력으로는 다음과 같은 집단이 있었다. ⑴ 어월(於越): <우월(于越)> 또는 <월>이라고 했다. 회계(會稽)를 중심으로 하는 춘추시대의 한 나라로, 구천(句踐) 이후에는 국운이 쇠퇴하여 BC 334년 초나라에 멸망당했다. ⑵ 우월: 어월 후 한(漢)나라 초기에 나타났으며, 저장성[浙江省(절강성)] 어우장강을 중심으로 하였고 월동해(越東海) 또는 동우라고도 했다. ⑶ 민월: 한나라 때 푸젠성[福建省(복건성)] 민장강 유역을 중심으로 있었으며 동월(東越)이라고도 했다. ⑷ 양월(揚越): 한나라 때 양저우[揚州(양주)] 남부와 북부에 있었다. ⑸ 산월(山越): 어월·민월·양월의 후예로서, 삼국시대의 중심지는 장쑤성[江蘇省(강소성)]이었다. ⑹ 남월(南越): 진(秦)나라 말 한(漢)나라 초에 광저우[廣州(광주)]를 중심으로 하여 중국인 조타가 세운 국가이다. ⑺ 서우: 진(秦)·한 시대에 베트남 북부에 있던 월족의 한 세력이다.


중국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에 걸쳐 저장성[浙江省(절강성)] 북부에 본거지를 두고 장쑤성[江蘇省(강소성)]까지 진출했던 나라. 단발로 몸에 문신을 했으며 한민족(漢民族)과는 다른 동남이계(東南夷系)민족국가이다. BC 6세기 윤상(允常) 때 초(楚)나라의 원조를 받고 강대해졌으며 오(吳)나라와 항쟁을 벌이게 되었다. 그 아들 구천(句踐;재위 BC 496∼BC 465)은 오왕 부차(夫差)에게 회계(會稽)에서 패하고 한때 은인자중하고 있었으나 부차가 북진한 틈을 타서 오나라를 공격해서 멸망시킨 뒤에 북진하여 중원을 제패했다. 그 후 쇠퇴하여 《사기(史記)》에는 BC 334년에 초나라에게 멸망당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산왕(中山王)의 묘에서 출토한 동정(銅鼎)의 명문(銘文)에 보면 그 이후에도 존속했다는 유력한 견해가 나오기는 하였으나 월의 유품이 초나라의 묘에서 많이 나왔기 때문에 초나라에게 멸망당하였다고 본다.


311.위촐족(Huichol) 


멕시코 할리스코주와 나야리트주 북부 서(西)시에라마드레산맥에 사는 인디오. 인구 약 3만(1997). 언어는 우토아스텍어족에 속한다. 화전에 옥수수·콩·호박 등을 재배하고 있다. 전통적으로는 자치공동체를 형성하였는데, 각 공동체는 제사센터를 중심으로 몇 개 취락으로 구성된다. 또 취락은 대체로 친족관계에 있는 몇 가족으로 이루어지는데, 집과 집 사이는 걸어서 몇 시간이 걸릴 정도로 떨어져 있다. 대부분이 일부일처이나 그 중 일부다처도 있다. 결혼 후 약 1년 동안 남편이 처가에서 일하고 그 후 새로 집을 지어 이사를 한다. 그리스도교의 영향 아래 있으나 아직도 독자적 종교를 유지하고 있다. 중요한 신(神)은 불의 신(할아버지), 태양의 신(아버지), 땅과 물의 신(어머니)이며, 사슴을 형이라고 하여 신성시한다.


312.윌타족(Uilta) 


사할린섬 북동부와 남부에 거주하는 소수민족. 윌타족은 자신들을 윌타, 씨족에 따라서는 우리차라고 부르고 있다. 또는 오로크(Oroks), 나니(Nani)라고도 한다. 인구는 북동부에 162명(1926), 남부에 약 170명(1965)이 거주한다. 알타이어족(語族) 퉁구스·만주어군(滿洲語群) 남방퉁구스어(滿洲語)계에 속한다. 문화적으로는 아무르강유역의 남방퉁구스어계의 여러 민족과 동류이고 또한 같은 사할린의 길랴크족의 영향도 많이 받기는 하였으나 토나카이(순록)를 사육한다는 점에서 그들과는 크게 다르다. 생업은 수렵·어로 및 토나카이 사육이며 토나카이를 타고 다니기도 하고, 썰매에 연결시켜서 교통수단으로 사용한다. 토나카이의 방목과 엽장(獵場)과 어장의 획득을 위해 1년 주기로 이동생활을 하는데, 여름에는 해안에서 어로를 중심으로 한 반정주생활(半定住生活)을 한다. 여름에는 카우라라는 커다란 목조(木造) 오두막에 살지만 나머지 계절은 아운다우라는 원뿔형주거에서 산다. 윌타족은 부계외혼씨족(父系外婚氏族)을 형성하고 있으며 각 씨족마다 주거범위를 가지고 있었다.


313.유대인(Jews) 


셈어족에 속하는 헤브라이인과 가나안인의 혼혈민족. 본래는 헤브라이어를 사용했으나 BC 6세기 이후 아랍어로 바뀌었다. 유대라는 명칭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야곱의 아들 유다의 자손이라는 데서 유래하며 바빌론유수 뒤 이스라엘인(헤브라이인)의 총칭이 되었다. 이스라엘을 비롯하여 미국·유럽 여러 나라에 약 1300만 명이 흩어져 살고 있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메소포타미아의 우르에서 온 이주자들이 아브라함의 인솔로 가나안땅에 들어갔으나, 야곱의 일족은 다시 이집트로 이주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압제를 받았기 때문에 BC 1230년 무렵 모세의 인솔 아래 <출애굽>을 감행했다.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도중 시나이산에서 <십계(十誡)>를 받음으로써 신과 계약을 맺었으며, 이것은 12부족이 종교적 공동체인 이스라엘민족으로 성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원주민 필리스티아인(블레셋)과 싸우면서 가나안에 정착했고, BC 1000년 무렵 사울이 왕이 되어 왕정을 폈다. 헤브라이왕국은 예루살렘을 도읍으로 정한 다윗과 신전을 축조한 솔로몬에 의해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솔로몬이 죽은 뒤 북쪽 이스라엘왕국과 남쪽 유대왕국으로 분열됐다. 그 뒤 이스라엘왕국은 BC 722년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하였고, 유대왕국은 BC 586년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했다.


314.유카기르족(Yukagir) 


동시베리아의 북극해 연안에 거주하는 민족. 인구 약 500(1990). 언어계통은 구아시아어족에 가장 가깝다고 하나, 사모예드어의 요소도 있어 아직 확실하지 않다. 분포지역은 콜리마강·오몰론강·알라제야강의 하류지역 툰드라지대(야쿠트자치공화국)와 콜리마강 상류지역의 삼림지대(야쿠트자치공화국과 마가단의 경계)이다. 1859년 조사 때에는 2350명이 집계되었고, 그 이전에는 북동시베리아의 대표적 민족이었는데, 에벤키족과 야쿠트족에 의한 흡수동화와 질병 때문에 격감하여 20세기 초에는 400명 가량으로 줄었고 분포지역도 앞의 두 지역에 한정되었다. 유카기르족의 주생업은 수렵과 어로인데, 수렵대상은 식용의 야생순록·큰사슴, 모피용의 검은담비·여우·흰담비·다람쥐 등과 조류이다. 수렵방법으로 미끼·올가미 등과 사냥개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무기로는 활·창·볼라(bola;새나 짐승 포획용 투척구) 등이었으며, 총이 주가 된 것은 19세기 중엽부터이다. 어로도 활발해서 연어·송어류가 많이 잡힌다. 에벤키족으로부터 도입한 순록 사육은 17세기에 이루어졌으나, 대부분 부채(負債) 대신 러시아족에게 빼앗겼거나 역병으로 멸종되고 사육민이 에벤키족에 동화되어, 20세기에는 툰드라에 사는 사람만이 기르게 되었다.


315.이고로트족(Igorot) 


필리핀의 루손섬 북부 코르디예라 센트럴산맥에 거주하는 원(原)말레이계 산지민(山地民)의 총칭. <이고로트>란 <산사람들>이란 뜻이며, 그리스도교도화한 평지민이 그렇게 사용하여 왔다. 이고로트족은 그 언어나 관습의 차이에 의하여 몇 개의 민족언어집단으로 나누어진다. 대표적인 것은 북쪽으로부터 아파야오족·칼링가족·본톡족·이푸가오족·캉카나이족·이발로이족 등이며, 더욱 세분하여 명칭을 붙인 지역도 있다. 생업형태는 크게 둘로 나눈다. 강우림지대인 북부의 비교적 저지역에서는 육도재배(陸稻裁培) 중심의 화전에 의한 이동농경(移動農耕)을 하며, 중·남부의 고지에서는 고도의 관개기술을 이용한 계단식의 논경작을 하고 있다. 각 지역 모두 통합적인 정치조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취락 단위로 통합이 된 지연집단(地緣集團)으로서 그 기능을 하고 있다. 종교는 조령(祖靈)과 정령(精靈)을 신봉하며, 그들로부터의 초자연적 제재를 피하기 위해서 일이 생길 때마다 의례를 행하며 닭이나 돼지를 제물로 바친다. 또 과거에는 취락 간의 전쟁에서 적의 머리 베어오기가 성행하였다. 이것은 적의 목을 베어오는 사람에게는 영적 능력이 더해지며, 그 가족이나 취락을 번영으로 인도한다는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


316.이오니아인(Ionians) 


고대 그리스 민족 중의 한 파. 고대 전승에 따르면 그리스인의 조상 헬렌의 자손 이온(Ion)의 후손들이며, 도리아인의 침입을 받아 <이오니아 최고(最古)의 땅>인 아테네의 지도 아래 소아시아의 이오니아지역에 식민해 왔다고 한다. 그들은 언어학상 아티카·에보이아·키클라데스·이오니아에 분포한 아티카이오니아방언에 속하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며, 아테네에서 에게해의 섬들을 거쳐 소아시아 서해안에 이르는 여러 폴리스(도시국가)와 그들의 식민시(植民市)에 분포하였다. BC 5세기 이후, 지적이고 세련된 이오니아인과 용감하지만 거칠고 야만적인 도리아인이 대비되어 논의되었지만, 도리아계 식민시이면서 뛰어나게 아름다운 문화를 남긴 시라쿠사 등의 예외도 많이 있다.


317.인도게르만족


인도유럽어족(語族)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총칭. 인도·이란·슬라브·그리스 민족과 기타 유럽 여러 민족을 포함한다. 지리적으로 과거에는 동으로는 인도에서 서로는 유럽 서쪽 끝까지 걸쳐 있었으며, 오늘날에는 더욱 확장되어 남북아메리카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대륙, 그 밖의 지역에도 넓게 분포하고 있다. 인종은 기본적으로 코카서스인종(백색인종)이다. 인도유럽어족의 언어학적 연구에 의하여 이 어족이 공통의 조어(祖語)에서 나누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조어를 사용했던 사람들이 과거에는 동유럽 남부에 살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 뒤 긴 역사를 거치며 각지로 분산·이동하여 현재의 인도유럽제족으로 나누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당시의 문화에 대해서는 자료가 적어 추정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대략 BC 2000년 이후 그들이 그리스와 인도로 진출한 뒤의 것이며, 그 시점에 이미 문화적으로는 상당한 차이가 나 있었다. 그 때문에 이 여러 민족의 문화적 단일성을 아주 초기단계에서부터 의심하는 주장도 있다. 현재는 대단히 다종다양한 문화·사회를 가진 여러 민족으로 나누어져 있어 이들의 특징이었던 공통된 문화적·사회적 요소를 찾아내기는 힘들다.


318.인도네시아인


인도차이나반도에서부터 말레이제도에 걸친 동남아시아 일대에 널리 분포하는 복합인종. 인구 약 9000만 이상. 개괄적인 분류에 따르면 몽골로이드에 속하지만, 몽골로이드 특징의 전형적 형태인 아시아몽골로이드와는 구별되며, 인도네시아몽골로이드라고도 한다.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은 지형의 복잡함과 선사시대부터의 역사변천 과정에서 인종·민족의 전시장이 되고 있으며,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는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진 인종들이 흩어져 있다. 인도차이나반도의 평지에 거주하는 베트남인·타이인 등을 인도네시아말레이인종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으나, 이들은 남부몽골로이드의 특성에 가깝다. H.V. 발루아에 의하면 이 복합인종은 편의상 원(原)말레이인(Proto-Malays;인도네시아인)과 속성(續成)말레이인

(Deutero-Malays;제2차 말레이인)의 2군(群)으로 나뉜다. 원말레이인은 옛날에는 동남아시아에 널리 분포해 있던 인종이지만, 남하해 온 남부몽골로이드에게 압박당하여 오늘날 인도차이나반도에서도 산악지대로 밀려나 살게 되었다. 모이제족(Moi 諸族)이 그 대표적인 예이며, 그 밖에 아샘·윈난[雲南(운남)]·미얀마 등지에서도 볼수 있다.


319.인도스키타이족 


BC 1~AD 1세기에 아프가니스탄(남동부)·파키스탄·인도(서부)를 지배한 스키타이민족. 샤카족(aka)·인도스키타이족이라고도 한다. 그 역사는 은화·동화 등의 명문(銘文)에 의해 재구성되고 있지만, 확실하지 않아 이론(異論)이 많다. 이들은 서(西)투르키스탄에 살고 있었지만 BC 130년경 대월지(大月氏)의 압박으로, 아프가니스탄 남동부(시스탄)와 파키스탄으로 이주했다. 시스탄은 아르사케스왕조(파르티아)의 지배 아래 있었지만, 보노네스 밑으로 독립하여, 곧 인더스강 서해안에 이르는 왕국을 세웠다. 그 뒤 파키스탄은 마우에스가 인도·그리크왕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왕국을 세웠지만, 곧 다른 계통인 아제스 1세·2세, 아지리제스 일족이 지배하였다.


320.인디언 


에스파냐어·포르투갈어로 아메리카대륙의 원주민을 가리키는 명칭. 영어로는 Indian이다. 인도인과 구별하기 위하여서 아메린디오(Amerindio)·아메리칸인디언(American Indians)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명칭이 생겨난 원인은 C.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에 도달했을 때, 그곳을 인디아스(당시에는 동아시아 전체를 가리켰다)로 오해하고 아메리카대륙의 원주민을 인디아스의 주민, 즉 인디오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정복 당시 인디오의 자손이면서 이주자와 혼혈되지 않은 아메리카대륙의 주민을 인디오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는 메스티소, 중앙아메리카에서는 라디노, 남아메리카 안데스지방에서는 촐로 또는 미스티라고 불리는 혼혈과, 인디오의 구별은 생물학적 혼혈 여부를 기준으로 하는 인종구분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중앙안데스에서는 실제로는 혼혈이 아니어도 종래의 거주지에서 이동한 사람은 인디오 고유의 생활양식을 버렸기 때문에 이미 인디오가 아니라 촐로 또는 미스티라고 불린다. 곧, 외래문화와의 동화 여부가 인디오와 촐로·미스티를 구분하는 결정적 기준으로 크게 작용한다. 또한 인디오라는 용어에는 일종의 가치판단도 포함되어 있다.


C.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는 그곳을 인도(印度)라고 오인했다. 그래서 주민을 인디오 또는 인디언이라 부르게 되었다. 현재는 인도인과 구별하기 위하여 아메리칸 인디언이라 하며 좁은 뜻으로 중·남아메리칸 인디언을 인디오라 하기도 한다. 북극지방의 에스키모·알레우트족(알류샨열도 주민) 등은 아메리칸 인디언에 포함시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아메리카대륙에는 유인원(類人猿)이 살지 않으며 화석인류 유구도 발견된 일이 없다. 따라서 인류는 다른 대륙으로부터 이동하여 왔을 것으로 생각되며, 그 기원에 대한 여러 학설이 있으나 아메리칸 인디언의 조상은 유라시아대륙에서 베링해협을 건너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시기는 제4빙하기 해퇴(海退)로 인하여 베링해협이 육지로 이어진 시대가 확실하다. 그 연대는 여러 설이 있으므로 분명하지 않으나 2만 5000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아메리카대륙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321.일로카노족(Ilocano) 


필리핀 루손섬 북부의 서쪽 해안지대인 일로코스지방을 중심으로 거주하는 말레이계 민족. 일로카노어(語)를 모어로 하는 사람들은 필리핀 전국에서 약 666만 명(1997)으로, 필리핀에서 3번째로 큰 민족언어집단이다. 일로코스지방은 가장 인구가 과밀한 지역의 하나이며, 강수량이 적고 경지면적이 좁기 때문에 주요 작물인 쌀생산량은 지역수요에 훨씬 못미친다. 그래서 손으로 짜는 면직물 등이 현금수입원의 하나였으나 최근에는 잎담배 생산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 과잉인구의 대부분은 다른 지역으로 생활의 방도를 찾아서 이주해 갔다. 이주는 19세기 이전부터 시작되었으며, 1810년대부터 약 100년간은 주로 중부 루손지역에 농사 지으러 이주해 갔고, 20세기부터는 교사나 간호사로서 민다나오섬 중앙부로 건너갔다. 또한 마닐라 근교나 멀리 하와이로도 많은 이주자를 내보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매우 근면하여 성공한 사람이 많다. 에스파냐인과의 접촉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가톨릭교도인데, 필리핀독립교회의 신도도 적지 않다.


322.잔데를링잔데족


아프리카의 수단에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동부 및 자이르 북동부에 거주하고 수단어(語)를 사용하는 농경민. 인구 약 75만. 잔데족이라고도 한다. 북부는 사바나지대, 남부는 열대우림지대로서 피를 중심으로 옥수수·카사바·땅콩을 재배하는 농경뿐만 아니라 수렵·어로·채집에도 적합한 지역이다. 아잔데족은 단야(鍛冶)·항아리제작·목조(木彫)에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일은 주술이나 요술과 결부되어 있다. 18세기 음보무강유역에 사는 주민이 아봉가라라고 하는 유력한 씨족의 통솔 아래 남부 및 동부를 정복하였다. 그 정복은 왕족 자손이 소규모 왕국을 여러 개 건설하면서 추진되었다. 왕 자신이 통치하는 왕국에서부터 지방에 있는 소왕국에 이르기까지, 왕이 임명하는 왕족의 일원이 지배했는데 왕국간에 가끔 전쟁이 일어났다. 가족은 일부다처혼(一夫多妻婚)에 따라 구성되어 있으며, 밭과 삼림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산다. 이웃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생업에 유리하기 때문이고, 또한 요술로부터 도망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323.정령(丁零,丁令·丁靈) 


BC 3세기∼AD 5세기에 몽골고원에서 유목생활을 한 터키계 민족. 차륜(車輪)을 나타내는 고대 터키어 tegrak의 음역이라는 설도 있으나 튀르크(Turk)의 음역이라고 생각된다. 흉노(匈奴)의 지배를 받았으나 뒤에 독립하여 흉노를 공격했다. 삼국(三國)∼남북조(南北朝)시대에 일부는 중국 북변(北邊)과 북서변에 흩어졌다. 몽골고원에 남은 중심세력을 중국인들은 고거정령(高車丁零)·고거라고 불렀는데 유연(柔然)에게 정복당했다가 뒤에 독립하였다. 철륵(鐵勒)은 그들의 후예이다.


324.조선족(朝鮮族)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민족(韓民族). 중국내의 55개 소수민족의 하나이다. 인구 200만(1990). 지린성[吉林省(길림성)]·랴오닝성[遼寧省(요녕성)]·헤이룽장성[黑龍江省(흑룡강성)] 등 둥베이[東北(동북)]지구에 주로 거주한다. 일본강점기 일본의 학정(虐政)을 피하여 한국에서 이곳으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주로 농업에 종사한다. 1982~1990년까지 인구증가율은 연 1.05%로 같은 기간 중국 소수민족 평균 인구성장률 3.88% 보다 훨씬 낮으며, 반면 교육수준은 선진국수준에 가깝다. 중국 전체의 대학교, 중·고등학교, 초등학교의 이수비율이 각각 14명, 79명, 233명에 비하여 조선족 1천명당의 비율은 각각 43명, 209명, 337명이다. 또한 중국 전체의 문맹률은 22%인데 반해 조선족 문맹률은 7%로 매우 낮다.


중국조선족(中國朝鮮族) 한국계 중국인 또는 중국적(中國籍) 한국인. 중국 국적이라는 점에서 볼 때 북한 국적을 가진 재중(在中) 북한인(약 1만 명)이나 재중 한국인(약 10만 명)과는 구별된다. 1850년 무렵부터 한국인이 중국 둥베이[東北(동북)]지방에 이주하기 시작했다(間島). 둥베이지방의 개발을 서두른 청(淸)나라 정부는 처음에는 환영했지만 그 뒤에는 한국인이 일본의 앞잡이가 될 것을 두려워하여 중국에의 귀화를 강요했으며 이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배척했다. 1928년,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는 <조선인을 중국 내의 소수민족으로 간주할 것, 혁명 성공의 날에는 옌벤[延邊(연변)]에서 조선족의 자치권을 인정할 것>을 결정했다. 1932년 당시 중국에 살고 있었던 한국인은 약 67만 명, 그 중에서 중국에 귀화한 사람은 약 8만 명이라고 한다. 8·15 해방 후 약 220만 명 중 약 100만 명이 북한으로 갔다. 중국에 남은 한국인에게는 1949년 중국혁명 때 중국국적이 주어졌다. 중국조선족이라는 역사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 중에는 중국공산당의 일원으로서 국·공 내전(國共內戰)에서 싸운 사람, 한국전쟁에 참가한 사람도 많다.


325.좀비족(Zombie) 


주체성 없이 로봇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 좀비란 예부터 서아프리카의 부두족(Voodoo族)이 숭배하는 뱀의 신에서 유래된 말이다. 현대의 관료화된 사회조직에서 요령과 처세술만 터득하여 무사안일주의로 살아가는 대다수의 화이트칼라들을 꼬집는 말로 쓰인다. 최근에는 대기업의 관료화 현상에 비유되는 경영용어로도 쓰인다.


326.좡족(壯族)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최대 인구를 가진 소수민족. 중국 광시좡족[廣西壯族(광서장족)]자치구를 중심으로 윈난[雲南(운남)]·광둥[廣東(광동)]·구이저우[貴州(귀주)]·후난[湖南(호남)]의 각 성(省)에 거주한다. 인구는 약 1677만(1997)으로, 그 가운데 광시좡족자치구에 99% 이상이 살고 있다. 문화는 한(漢)문화의 영향을 받아 일상생활이나 주거형태가 한족(漢族)과 거의 같다. 중국 문헌에는 예전에 <퉁족>, 공산주의 치하에서는 <퉁족>으로 썼으나 현재는 <좡족>으로 바뀌었다. 언어는 티베트어계 타이어에 속한다. 일부일처혼이며 전에는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신부는 친정으로 돌아가 아이를 낳은 뒤 돌아오는 불락부가(不落夫家)라는 관습이 성행하였고, 또 해마다 미혼남녀가 중심이 되어 모이는 가무놀이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회로 삼았다. 종교는 다신교이다.


327.주니족(Zuni) 


북아메리카 푸에블로 인디언의 한 부족. 뉴멕시코주의 중서부에서 애리조나주의 경계에 거주한다. 촌락은 커다란 밀집형태의 공동가옥으로 이루어져 있다. 빗물 이외에 샘·못·강으로부터 물을 끌어 올려 농경을 하며 주요작물로 옥수수를 재배한다. 여자들은 바구니세공과 토기를 제작한다. 혈통은 모계이며 13개의 모계씨족이 있다. 결혼은 처가거주혼(妻家居住婚)의 형태를 취한다. 카치너로 불리는 신령(시조신이고 비와 오곡의 풍작을 가져오는 신)의 가면을 쓰고 춤추는 카치너의식 이외에 종교의식과 비밀결사의 의식을 행한다. 키바라고 하는 제례의식용의 지하성당이 있으며 매우 신성시된다. 문화인류학자인 R.


328.주트인(Jutes) 


본래 유틀란트반도에 있었던 게르만인의 한 파. 유트인이라고도 한다. 일찍이 프리슬란트로부터 라인강 하류지방으로 이동하였다. 프랑크 국가에 인접해 있었던 유치(Eucii)족이라는 설도 있다. 5∼6세기 무렵 앵글인·색슨인과 함께 브리튼으로 건너가, 특히 켄트·와이트섬 등 잉글랜드 남동부에 정착하여 오늘날 영국인의 한 원형을 이루었다. 켄트왕국과 서섹스왕국 일부에 주트적인 사회관습을 볼 수 있으며 토지를 개인적으로 이용한 특색이 있다.


329.지리안족


러시아연방 우랄산맥 서쪽의 북부와 중부에 사는 우랄어족 피노-우그리아어파 페름(perm)어계의 지리얀어를 사용하는 종족. 전에는 지리얀족이라고 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스스로 코미족이라고 칭한다. 거주지나 문화의 차이 등에 따라 북방·남방의 두 그룹으로 크게 나뉜다. 북방그룹은 좁은뜻의 코미족으로 페초라강 유역과 비체그다강 상류에 살며 인구 약 24만(1997)이다. 남방그룹은 카마강 상류에 사는 코미페르먀크족으로, 인구 약 10만(1997)이다. 일찍이 코미족은 카마강 상류에 살았으나 5~10세기 사이에 일부가 북쪽 비체그다강 중류로 이주하였고 16~18세기에 비체그다강 상류와 페초라강 유역으로 다시 옮겨갔다. 이것이 현재의 북방그룹이고 카마강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자손이 남방그룹이다. 대체로 농경과 목축을 하지만 북방그룹은 어업·사냥·임업도 하며 또한 19세기 무렵 사모예드족으로부터 토나카이(순록) 사육법을 배웠다. 남방그룹에서는 광업도 성하다. 코미족의 대부분은 러시아정교도이다.


330.참족(Cham) 


베트남 고원지대와 캄보디아 메콩강 유역에 사는 민족. 인구 약 10만. 언어는 말레이 폴리네시아어족(語族)에 속하며 문자는 아랍어와 비슷하다. 고대 힌두문명의 영향을 받은 참파문명의 후예로 2∼17세기 말까지 중부 베트남 해안에 참파왕국을 건설하고 중계무역으로 번영을 누렸다. 4∼5세기 무렵 중국의 공격을 받고 10세기에 안남왕국과의 전쟁에서 패배,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점차 쇠퇴하였다. 1471년 안남왕국에 점령되어 1822년 합병된 이래 지금은 소수민족으로 남아 있다. 참파왕국은 인도문화의 영향을 주로 받아 카스트제도가 있었고 지금도 토템씨족제 및 모계제 풍습이 남아 있으나 힌두문명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다. 캄보디아로 이주한 참족은 이슬람교로 개종하여 크메르족과 공존하고 있어 크메르 이슬람으로 불린다. 반면 베트남에 있는 참족은 베트남 문화의 영향을 받아 베트남에 동화되었으나 고지대에서는 독자적인 문화를 보존하고 있다. 종교는 힌두교와 토속신앙을 믿고 가족체계는 모계사회이다.


331.철륵(鐵勒) 


수(隋)나라·당(唐)나라 때 중국인이 돌궐(突厥) 이외의 투르크계 부족을 가리킨 말. 정령(丁零)·고차(高車)의 지족(支族)이다. 바이칼호 남쪽에서 아랄해·카스피해 북쪽에 걸친 지역에 분포하였다. 돌궐에게 정복당하기도 하였으나, 630년 철륵의 한 부족인 설연타(薛延陀)가 당나라와 협력하여 동(東)돌궐을 와해시켰다. 646년 당나라에게 토벌되어 34년 동안 당나라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동돌궐의 부흥과 함께 당나라에서 독립하여 동돌궐에 예속되었다. 그 뒤 744년 철륵의 한 부족을 이루던 위구르가 동돌궐을 멸망시켰다.


332.체레미스족(Cheremis) 


러시아연방 마리공화국의 피노우그리아계 민족. 인구 약 53만(1997). 볼가강 상류지역인 카잔 서쪽 및 북쪽에 거주하고 있다. 체레미스어를 사용하며 키가 크고 피부는 거무스름하다. 볼가강 좌안(左岸)의 주민을 초지(草地)체레미스, 우안의 주민을 산지(山地)체레미스, 벨라야강 유역의 주민을 동부체레미스라고 한다. 산지와 동부체레미스는 농업을 영위하며 초지체레미스는 수렵·어로를 생업으로 하고 양봉도 한다. 1918년 소련의 통치 아래 들어간 뒤 1936년 자치권을 얻었다.


333.체로키족(Cherokees) 


북아메리카 남동부, 애팔래치아산맥 남부에 거주하는 인디언부족. 언어는 이로쿼이어계에 속한다. 영국의 식민지 건설 초기에는 충돌이 심하였으나 백인의 문화를 대폭 수용하였으며, 미국정부는 인디언교육의 시험장으로 1797년 다트머스대학을 설립하였다. 세쿼이아라는 혼혈아가 알파벳을 모델로 문자를 만들어 북아메리카에서는 유일하게 문자를 가진 인디언으로 알려져 있다. 금광이 발견된 뒤 토지를 백인에게 매각당하고 1838∼1839년 겨울 오클라호마의 보호지로 강제 이주당하였다. 지금은 남동부로 도망쳐 돌아온 체로키족과 오클라호마체로키족으로 나뉘어 있다.


334.체코인(Czech) 


체코의 주요 민족. 체크인이라고도 한다. 주로 보헤미아·모라비아에 거주한다. 서슬라브의 한 부족으로, 본래는 체코의 라베(엘베)강 중부 유역의 지프산으로부터 남쪽에 걸쳐 5∼6세기에 정주하였다. 인구는 842만 5000명(1997)이고, 언어는 체크어이다. 대부분 가톨릭교도이며, 프로테스탄트도 다소 있다. 13세기 이후 역대 보헤미아국왕이 독일인의 이주를 권장하였으므로 그 뒤 민족적 대립의 한 요인이 되었다.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고 보헤미아왕국의 귀족이 일으킨 전쟁으로 체크인은 정치적 자립성을 상실하였고, 이후 19세기의 민족적 각성운동이 있을 때까지 이 지역은 독일화 정책의 파도에 휩쓸렸다. 1918년 체코인은 슬로바키아인과 함께 체코슬로바키아공화국을 이루었다가, 1993년 다시 분리되었다. 종교가인 얀프스, 교육가인 J.


335.초르티(Chorti) 


마야계 인디오의 한 집단. 언어학적으로는 저지(低地) 마야촐·촌탈 등과 함께 촐어족에 속하며 고지(高地) 마야와 저지 마야의 중간에 있다. 현재는 과테말라 동부에서 농업과 교역에 종사하고 있으며, 과테말라 북서부나 중서부 고지에 비해 원주민성은 약하나 민속신앙 등에서 마야전통이 다소 남아 있다. 이 지역에 있는 에스키프라스는 순례의 중심지이다. 또 온두라스의 코판에는 마야문명의 대유적이 있고 사실고전기(事實古典期) 마야의 중심지역에서 쓰인 언어는 촐계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336.초칠족(Tzotzil) 


멕시코 남부 고원지대인 치아파스 중심부에 살고 있는 마야계 인디오. 사는 지역에 따라 지나칸텍·차물란·우이스텍으로 나뉘며, 부족은 의상에 따라 구분된다. 1997년 현재 인구는 약 33만 명이며,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 언어는 마야어 계통에 속하나 문자는 없고, 전체인구 가운데 약 47%가 에스파냐어를 병용한다. 1528년 에스파냐인들이 들어온 뒤 압제가 심하여 1712년·1869년 2차례에 걸쳐 원주민 구제를 요구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화전농업을 중심으로 옥수수·콩·호박 등을 재배하고, 최근에는 환금작물과 채소류도 많이 재배한다. 가축으로는 양을 많이 기르고, 닭·칠면조·돼지 등을 사육한다. 주민 대부분은 중심촌락 주변에 흩어져 있는 작은 마을에 살면서 장이 서거나 종교행사가 있을 때에만 중심촌락에 모이는데, 이러한 거주형태는 식민지시대 이전부터 있었다. 결혼제도로는 같은 촌락 안에서 배우자를 정하는 내혼규제(內婚規制)가 있으며, 혈통은 부계중심으로 계승된다. 종교는 가톨릭의 성인신앙(聖人信仰)을 위주로 한 의식이 이루어지는 등 전지역에 걸쳐 토착신앙과 그리스도교 신비주의가 융합된 종교형태가 퍼져 있다.


337.추족(鄒族) 


타이완[臺灣(대만)] 원주민의 여러 종족을 일컫는 말. 청(淸)나라 때에는 한족화(漢族化)한 종족을 숙번(熟蕃), 그렇지 않은 종족을 생번(生蕃)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모두가 숙번이라고 불린다. 인도네시아로부터 처음으로 타이완에 정착한 종족은 산포(山胞)라고도 하였다. 한편 일본점령시대(1895∼1945)에는 다카사족[高砂族(고사족)]이라고도 하였다. 분포지역은 주로 타이완 본토의 중앙 산지와 동부 협곡 및 란위[蘭嶼(난여)] 등지이다. 타이완에 거주하는 원주민족의 언어의 총칭으로서 고산족제어(高山族諸語)라고도 하며 모두 오스트로네시아어족(語族;이하 <남도어족(南島語族)>이라고 약칭)에 속한다. 그런데 고산족제어(高山族諸語)가 남도어족 가운데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의견이 다르다. 남도어족을 서부어파(西部語派;인도네시아어파)와 오세아니아어파로 나누어 고산족제어는 전자에 속한다는 설(說), 남도어족을 타이완어파(고산족제어)·서부어파·오세아니아어파의 셋으로 나누는 설, 그리고 남도어족을 아타얄어파·초우어파·타이완어파(이상의 3어파는 모두 고산족제어)·말레이폴리네시아어파 등 넷으로 나누는 설 등이 있다. 실제로는 여러 방언군으로 나뉘는데 분포지역의 문화 정도의 차이에 따라 아타얄·사이샤트·부눈·사우·초우·루카이·파이완·퓨마·아미·야미 등의 종족이 제각기 그들의 방언을 사용하고 있다.


338.추크치족(Chukchee) 


시베리아 북동쪽 끝 추코트반도에 사는 소수민족. 몽골로이드에 속하며 인구는 약 1만 4000(1979). 바다사냥을 주된 생업으로 하는 바다 추크치와 툰드라지대에서 토나카이(순록)를 기르는 토나카이추크치가 있다. 바다추크치는 반지하의 주거에 살고 토나카이추크치는 천막에 살며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데, 두 추크치족은 부족한 물자를 서로의 물물교환으로 조달한다. 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으며 제례에 산 제물을 바치고, 샤먼은 점을 치거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의식을 행한다. 러시아혁명 이후 집단농장에 정착한 이들은 기술의 발전과 새경제사업을 추진하였다. 추크치어는 추크치캄차카어족에 속하며, 고대 아시아 여러 언어 가운데 사용인구가 가장 많다. 포합어(抱合語)이며 코리야크어와 친족관계에 있고 이텔멘어(캄차달)와도 계통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1930년 무렵부터 시작된 식자운동의 결과로 추크치어에 의한 독서가 널리 전개되어, 이 언어로 신문·문학작품·초등학교 교과서 등도 출판되었다.


339.츠와나족(Tswana) 


보츠와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부 지방에 사는 민족. 인구 약 539만(1997). 몇 개의 부족을 구성하여 칼라하리사막 주변 초원지대에 살고 있으며 언어는 반투어를 쓴다. 부족사회의 기본단위로 구(區)가 있는데 정치적·행정적으로 자치적인 성격을 띠며 노예와 부양가족을 포함, 부계로 맺어진 대가족이 그 구성원이 된다. 구 이외에도 나이에 따라 연령 그룹이 조직되어 부족 내 공공사업의 중요한 노동단위가 되고, 남아프리카의 금광이나 공업중심지로 계절마다 이동하기도 한다. 공공정책에 관련된 문제는 모든 성인 남자들이 참석하는 평의회를 열어 해결하고 구장은 부족의 자문역할과 함께 평의회 소집을 요구할 수 있다. 생업은 농업이 중심이며, 주로 옥수수와 수수를 경작한다. 초원지대에서는 축산업도 이루어진다. 물질문화는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으며 문화적·언어적 동질성은 결핍되어 있다. 가옥은 원추형 초가지붕에 둥근 방이 하나 있는 전통적 형태로부터 주름진 양철지붕에 방이 여러 개인 사각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마을 중앙의 집회장을 중심으로 빙 둘러 서 있다.


340.치브차족(Chibcha) 


남아메리카 콜롬비아의 보고타 부근 고원지대에 사는 원주민. 무이스카라고도 한다. 16세기 에스파냐에 정복되기 전까지 두 개의 중심국가를 이루어 잉카제국에 견줄 만한 중앙집권체제를 형성하였다. 모계혈통으로 계승되는 수장(首長)과 제사장은 오랜 기간의 단련을 거쳐야 한다. 수장의 권력이 강하여 귀족으로부터 공물을 받았으며, 상류층만 금을 사용할 수 있었다. 신분계승은 모계를 따르고, 토지와 재산상속은 부계를 따랐다. 집약농업을 중심으로 수공예가 발달하였으며, 매주 열리는 시장에서 교역이 활발하였다. 오늘날은 옥수수·감자 등을 주로 하는 농경생활을 하며, 점차 백인과의 혼혈이 늘어나고 있다. 인근 파나마·에콰도르 일부에서도 치부차언어를 사용한다.


341.친족(Chin) 


미얀마 서부, 방글라데시·인도 변경에 거주하는 산지민(山地民). 인구는 미얀마 친주(州)에 33만·인도 82만·방글라데시 3만 5000 등에 이르며, 쿠키·하카·친보크 등 많은 무리로 나누어진다. 미얀마어파(語派)에 속하고, 복잡한 접두사 체계를 가졌으며, 어순(語順)은 주어-목적어-동사이다. <친>이라는 말은 미얀마 사람들이 그들에게 붙인 이름이고, 그들 자신은 조 미(산사람)·라이 미(중앙의 사람)라고 부른다. 부계(父系)사회로 상속도 남자에 한한다. 논농사를 조금 짓는 것 외에 화전(火田)으로 옥수수·조·밭벼 등을 재배하며, 소·돼지·양·닭 등 가축도 기른다. 구릉의 정상이나 경사면에 촌락을 이루어 생활을 영위하며, 항상가옥(杭上家屋)을 짓고 산다. 동굴기원설화·호수신화·형제자매간 혼담 등을 공유하고, 종교는 정령숭배가 지배적이며, 따라서 사람이 죽으면 관에 넣어 매장하고 묘석을 세운다.


342.카나카족(Kanaka) 


미크로네시아에 거주하는 원주민. 처음에는 하와이에 거주하는 폴리네시아계 원주민을 가리키는 명칭이었으나, 후에 남양(南洋) 섬들의 사 람들이라는 넓은뜻으로 쓰였다. 주로 미크로네시아에 사는 원주민을 가리키는 속칭으로 사용되었다. 미크로네시아인은 형질과 관계없이 크게 2가지로 구분한다. 에스파냐인과 혼혈되어 일찍이 그리스도교화한 북부의 마리아나제도에 사는 사람들을 차모로족, 그 밖의 남부 여러 섬에 분포하는 사람들을 카나카족이라고 한다. 양자를 통하여 미크로네시아문화에는 폴리네시아문화와의 유사점이 많다. 언어는 동남아시아가 원향(原鄕)인 오스트로네시아어족에 속하며 인종은 몽골로이드인종에 속한다. 유럽인과 접촉하기 이전에는 신석기문화 단계의 원시농민으로서 마과의 얌, 타로토란 등의 근경작물과 바나나·빵나무·코코야자 등의 과수를 가꾸어 생활하였다. 현재는 쌀과 통조림이 보급·사용되고 있다. 미크로네시아의 서부에서는 토기가 알려져 있었으나 중부 및 동부에서의 요리법은 지로로 달군 돌 위에서 찜구이하는 우무라는 것이 알려져 있다.


343.카라모종족(Karamojong) 


우간다 북동쪽 건조사바나고원 카라모자지방에 사는 나일어계의 우목민. 인구 36만(1993). 북방으로부터의 이주과정에서 동족으로부터 갈라진 테소·제·지예·토포사·투르카나·도도스의 각 부족을 카라모종군(群)이라고 한다. 키가 매우 크고 몸이 가늘며, 비교적 얇은 입술과 높은 코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남자는 후두부에 점토로 만든 큰 가발을 붙인다. 여자는 반(半) 정주적인 부락에서 조방농업을 영위한다. 남자는 소를 기르는데 건기가 되면 목초를 찾아 주변지역으로 옮긴다. 강우량 부족으로 인한 잦은 한발과 기아로 투르카나족·제족·테소족 사이의 소 약탈전이 되풀이되고 있다. 소를 모든 가치의 핵으로 삼는다. 출신형식은 부계(父系)인데 소 교환에 따르는 소 친족관계가 물(水) 친족이라는 혈연관계보다 밀접하여 중요시되고 있다.


344.카렌족(Karen) 


미얀마와 타이국경의 샨고원 남부로부터 테나세림산맥에 걸쳐 분포하는 민족. 인구는 미얀마가 500만, 타이가 15~30만(1993)으로 보고 있다. 언어는 차이나·티베트어족 카렌어파에 속하나, 몬크메르계의 요소도 지적되어 계통상의 위치가 확정되어 있지 않다. 18세기 중엽 일부가 미얀마 남부 삼각주지대로 진출하였고 저지(低地) 카렌이라고 불리면서 수도경작(水稻耕作)을 기본으로 하는 생활을 영위하였다. 한편 화전경작을 생업으로 하는 전통적인 생활은 산지(山地) 카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옥은 고상장옥식(高床長屋式)으로, 독신남성용 방이 있다. 촌락이 기본단위이며 친족제도는 쌍계적(雙系的)인 처가살이가 보통이고, 부가라는 조령(祖靈)에 대한 의례는 모계친족이 주관한다. 이들 사이에서 중요시하는 동고(銅鼓)는 부락생활에서 여러 가지의 신호용으로 쓰인다. 저지 카렌을 중심으로 불교가 들어왔으나 19세기 이후에는 그리스도교가 보급되어 카렌족 인구의 약 15%가 그리스도교신자이다. 산지에서는 소수의 카렌계 집단을 많이 찾아볼 수 있고, 이 가운데에는 금속고리를 몇 겹이고 끼워서 여성의 목을 길게 하는 특이한 풍습을 가진 파다운족과 샨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고 토후국(土侯國)의 제도를 가진 카야(赤카렌)족 등이 있다.


345.카를루크(Kharlukh) 


7∼12세기 내륙아시아에서 활동한 터키민족. 알타이산맥 서쪽과 톈산산맥[天山山脈(천산산맥)] 북쪽을 본거지로 하고, 대체로 서돌궐(西突厥)과 서돌궐에서 분리·독립한 투르기슈[突騎施(돌기시)]의 세력 아래 있었다. 744년 돌궐이 멸망하자 일부는 위구르제국에 복속되었으나 대부분은 일리강 유역에서 서투르키스탄에 세력을 뻗쳤고, 위구르제국이 멸망한 뒤 서쪽으로 이동한 위구르와 카라한 왕조를 세웠다. 일리강 유역에 남아 있던 종족은 13세기 초 몽골제국에 복속되었다.


346.카리비언블랙 


에스파냐어를 사용하면서 미국에 거주하는 라틴 아메리카계의 미국 주민. 캐리비언 블랙(Caribbean Black)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미국에 살고 있는 멕시코계 푸에르토리코인을 가리키는 용어였으나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 정치정세의 불안이나 빈곤 등으로 인하여 자기 나라를 빠져 나와 미국에 밀입국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그들도 포함하게 되었다. 에스파냐계 미국인은 1980년 국세조사 결과 약 1460만 명이었으나, 인구증가율이 미국 평균의 4배나 되어, 2002년 7월 현재 3880만 명에 이르러 처음으로 흑인인구 3830만 명을 앞섰다. 특징은 다른 소수민족이 영어를 습득하여 미국사회에 동화하려고 하는 것에 비해 일상생활에서 에스파냐어를 유지하고 신문·라디오·TV 등에서도 에스파냐어를 쓰고 있다는 점 등이다. 이때문에 미국에서는 히스패닉을 사회에 통합시키는 문제가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였다.


347.카리에라족(Kariera) 


서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부족. 원주민의 사회구조와 종교 연구를 위한 유형그룹의 하나이다. 카리에라족은 본래 포트헤들랜드 주변과 율강 및 터너강 근처의 해안과 인접 내륙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종족은 약 20∼25개의 지역그룹으로 구성되었고, 각 지역그룹은 약 260∼320㎢의 영역을 차지하며 평균 약 30명의 인원으로 이루어졌다. 그룹들은 부계와 외혼제도를 따른다. 지역그룹의 인원은 숙식을 함께 하며 각 가족의 부모와 자식은 함께 산다. 이름이 다른 4개의 종족 구역 또는 범주가 있는데, 한 구역의 남자가 다른 구역의 여자와 결혼하였을 때 그 자녀들은 제3구역의 구성이 되었다. 지역그룹에는 식물이나 동물의 종이름을 붙였고 종교나 토템 숭배의 단위를 구성하였다. 각 지구마다 제례를 행하는 장소 또는 토템센터가 있고 남자들이 의식을 행하였다. 남자들은 사냥이나 고기잡이를 하였으며, 여자들은 야생식물의 종자나 뿌리 등을 채집하였다.


348.카마유라족(Kamayura) 


브라질 마투그로수주 북부 싱구강 상류지역에 사는 약 200명의 원주민 부족. 빌랴르·보아르 형제의 헌신적 노력으로 설치된 원주민보호구인 싱구국립공원 안에 거주한다. 언어는 투피어족에 속한다. 매니옥(카사바)을 주로 심는 화전 경작과 사냥·고기잡이·채집 등을 한다. 마을은 하나뿐이고, 넓은 광장을 여러 채의 큰 집이 둘러싸고 있다. 싱구강 상류지역에는 투피어 외에 아라와크어·카리브어를 사용하는 부족이 섞여 살고 있는데 모두 하나의 문화권에 속한다. 비슷한 기원신화를 가졌으며, 서로 통혼하므로 몇 가지 언어를 자유로이 말하는 이들도 많다. 이 지역에서는 각 부족이 제각기 다른 것을 생산함으로서 분업이 성립되어 각 부족 사이에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서로 다른 부족의 의례에 참가하며, 마을 대항 레슬링 시합 등도 열린다. 1970년대에 이 지역에도 도로가 개통되어 문명화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349.카시족(Khasi) 


인도 메갈라야주 몬크메르(Mon-Khmer)어계 민족. 인구 약 37만. 브라마푸트라강 남쪽 아삼 서부의 카시구릉 및 제인티아구릉에 살며, 제인티아·카시·와·보이·링감의 5개 하위집단으로 나뉜다. 몽골인종에 속한다. 중앙인도의 문다족과 마찬가지로 언어가 오스트로아시아어족에 속하는 점이 티베트미얀마어계와 인도유럽어계의 주변 민족 가운데 특이하며, 모계제(母系制)가 유지되어 온 것도 큰 특징이다. 평탄한 지대가 많은 제인티아구릉에서는 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16∼19세기에 걸쳐 힌두교 영향이 강한 제인티아왕국이 존재하였다. 해발고도 2000m의 카시구릉에서는 옥수수·잡곡·밭벼 등의 화전 경작과 빈랑나무 재배가 이루어지고, 19세기까지 외부와의 접촉이 적었다. 지금은 영국인이 가져다 준 감자 재배가 번성하다. 정주하는 마을은 가장 높은 곳에서 멀지 않은 분지에 만들어져 정치상 기본단위가 된다. 촌장을 선출하지만, 중요한 결정은 성년남자들의 합의에 의한다.


350.카얀족(Kayan) 


보르네오섬 내륙부의 원주민 종족. 내륙에 거주하는 켄야족 등과 문화적으로 같은 그룹에 속한다. 인도네시아·말레이인종에서도 원(原)말레이계에 속하며 서오스트로네시아 제어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중앙고지 아포카얀 지구가 발상지이며 현재는 카얀강·마하캄강·카푸아스강 등의 중류지역에 퍼져서 살고 있다. 인구는 약 10만 명 정도이다. 생업은 밭벼·옥수수·얌감자 등의 화전경작이 주를 이루고 10년이 지나면 토지의 생산력이 떨어지므로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강변을 따라 지은 바닥이 높은 롱하우스에는 보통 200∼300명으로 된 친족집단과 노예가 함께 모여 사는데 그것이 그대로 마을도 되고 또 몇 개가 모여서 한 집단사회를 이루기도 한다. 롱하우스의 앞면은 베란다로 되어 있어 통로 또는 응접실용으로 쓰이며 뒤쪽은 칸을 막은 방이 늘어서 있어 제각기 가족의 사적인 공간으로 쓰인다. 중앙 방에는 롱하우스의 수장이 거주하며 전쟁의 지휘와 재판, 의례 등을 관장한다. 수장은 선발되는 것이 원칙이나 그 아들로 세습되는 일이 많다.


351.카잉강족(Caingang) 


브라질 산타카타리나주 또는 아르헨티나의 파라나강·우루과이강의 지류유역에 사는 원주민 부족. 보토쿠도족과 함께 제(Ge)어족 언어를 사용하는 인디오 부족을 말한다. 백인과의 교류 이전에는 채집수렵을 하였으나 교류 이후부터 정주농경이 이루어졌다. 사회는 외혼(外婚)단위인 부계제(父系制)이며 문신으로 집단을 구별하는 부족 등 여러 부족들이 있다. 그러나 집단을 의례나 결혼 등에 있어서 둘로 구분하는 반족(半族) 조직과, 같은 연대 사람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는 연령계층제도는 다른 부족과 공통된다. 신앙은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이 지배적이다. 의복 및 장식은 브라질인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통성을 찾아볼 수 없으나 언어·촌락 형태·반족 조직·연령계층제 등은 제족(Ge族)의 특징이 아직 잘 보존되어 있다.


352.카자흐족(Kazakh) 


카자흐스탄과 중국 신장웨이우얼[新疆維吾爾(신강유오이)]자치구 이리하싸커자치주에 주로 살고 있는 터키계 민족. 1997년 현재 카자흐스탄에 716만,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 120만, 몽골에 14만 명 정도가 산다. 원래 유목민이었으나 지금은 정착생활을 하여 농경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신체적으로는 몽골족에 속한다. 민족 이름은 15세기 무렵 우즈베크족에서 갈라져 나와 동쪽으로 향한 한 무리를 카자흐(放浪者·冒險者)라 부른 데서 연유한다. 그 뒤 세력을 확대하여 16세기 전반에 서쪽으로는 우랄산맥, 카스피해 북서안으로부터 동쪽으로 발칸호에 이르는 판도를 형성하였으나 17세기에는 대·중·소 3개 오르다로 분열하는 등 약화되었다. 중국 영내 거주자는 대·중 오르다 출신자가 주류를 이룬다. 소오르다는 당시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던 제정러시아에 굴복하였는데, 18세기 말 푸카초프의 난과 반러시아폭동 등이 일어나자 러시아는 19세기 전반 중·소 오르다를 직접 관할하고 1850년대에는 카자흐스탄을 모두 지배하는 한편 러시아인 농민을 대량으로 이주시켰다. 전통적으로 카자흐족은 부모·미혼자녀, 결혼한 자녀와 그 가족으로 구성되는 대가족을 이루고 한 천막에서 같이 생활하였다.


353.카프카스인종


백색인종 계통에 속하는 인종의 총칭. 코카시아(Caucasia) 또는 코카서스(Caucasus)인종이라고도 한다. 니그로이드·몽골로이드와 함께 세계 3대 인종의 하나로 유럽·동아시아·인도·북아프리카·아메리카 등지에 넓게 분포한다. 코카소이드는 <코카서스인과 같은 것>이라는 뜻으로, 18세기 독일 인류학자 J.F. 블루멘바흐가 처음 붙였다. 그는 세계 각지에서 두골을 수집하였는데 코카서스 지방에서 유래된 두골이 아름다워 이러한 명칭을 붙이고 인류의 중심적인 인종으로 생각하였다. 유럽인종·백색인종 등의 명칭도 있으나 반드시 전체를 나타내지는 않기 때문에 일반화되지 않았다. 코카소이드의 기원으로는 후기 구석기시대 크로마뇽인과 골격형태의 유연(類緣)관계를 들 수 있는데 확실하지 않으며, 특히 크로마뇽인이 밝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코카소이드는 15세기 이후 지구 곳곳에 퍼졌고,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원주민을 쫓아내고 온난한 지방에 널리 분포하였다.


354.칼미크족(Kalmyk) 


유럽인이 몽골계 오이라트족을 부르던 명칭. 중앙아시아의 투르크족이 그들을 칼마크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 것으로, 칼무크족이라고도 한다. 17세기 초 볼가강유역에 이주한 서몽골족의 주민들이 1771년 청조의 이리(伊犁) 정복을 계기로 그 대부분이 이리로 귀환하였는데, 이때 볼가강유역에 잔류했던 사람들의 자손들이 칼미크족이다. 중국 신장웨이우얼[新疆維吾爾(신강유오이)]자치구 및 카자흐스탄공화국, 칼미기야공화국 등에 분포하며 유목생활을 한다. 언어는 몽골어의 하나인 오이라트어를 사용하고 라마교를 신봉한다. 전통적인 대가족제를 유지하며 씨족집단을 형성하면서 살고 있다.


355.캄바족(Kamba) 


케냐에 거주하는 반투계 민족. 자신들이나 주변 민족들은 아캄바(캄바 사람들)라고 부른다. 인구는 약 324만(1997). 거주지는 광대하며 행정상으로 마차코스지구와 키츠이지구로 나뉜다. 생업으로 농경을 주로 하지만 지역에 따라 소·염소·양 등의 목축업도 한다. 과거에는 수렵도 하였는데 북부 캄바 사람들은 코끼리를 사냥하고 그 상아를 해안지방으로 운반하여 피륙·놋쇠와 교환하는 등 교역에 종사하였다. 최근에는 건설, 경비원 등의 일을 찾아 도시로 돈벌이 나가는 사람이 늘고 있다. 캄바족은 25개 정도의 부계 씨족으로 나뉘어져 있고, 다시 몇 개의 하위 씨족으로 나뉜다. 같은 씨족 성원이 참가하는 씨족 회의는 캄바족의 법·도덕·정치·재판·분배·종교 및 의식 등의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일부다처제이며, 가족은 3∼4대에 걸치는 부계 출신의 확대가족이다.


356.캄보디아인 


오스트로아시아계 인종으로 몬크메르어족에 속하며 캄보디아어를 사용하는 민족. 크마에 또는 캄푸치아라 자칭하고, 지금의 캄보디아를 중심으로 거주한다. 요람지는 메콩강 중류지역으로 일찍부터 인도 문화를 수용하여 앙코르와트 등을 건설한 앙코르왕조의 후예이다. 키는 평균 165㎝, 피부는 구리빛을 띠고 눈빛깔은 검으며 단두(短頭)에 광대뼈가 나오고 머리털은 약간 곱슬이며, 근육질에 균형이 잡혀 있다. 두 손을 모아 합장으로 인사하며 예의바르고 성질이 온화하다.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며 논·밭을 경작한다. 마을은 침수하지 않는 자연제방 위에 있고, 약 200∼400명 규모로 집단을 이루어 혈연·지연에 의한 공동거주지를 형성한다. 일상생활은 농업 달력에 따라 영위된다. 항상가옥(杭上家屋)에 살고, 옷은 사롱(sarong;허리에 감는 천)에 블라우스(여성)로 간단하지만 제례 때에는 산포트(사롱을 양다리 사이로부터 걷어올려 뒤에서 동여맨 차림)라는 민족의상을 입는다. 주식인 쌀밥을 프라호크(생선젓)와 함께 먹는다.


357.캄차달족(Kamchadal) 


캄차카반도에 거주하는 이텔리멘족의 속칭. 인구는 약 1400명(1990)이다. 캄차달이란 본래 반도에 흘러 들어와 정착한 러시아인을 포함한 캄차카반도의 주민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선주민족인 이텔리멘족만을 가리키게 되었다. 형질적으로는 캄차카반도의 코랴크족에 가까우나, 러시아인과의 혼혈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 원형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생업은 채집·수렵 및 어로이며, 특히 바다동물 사냥과 고기잡이에 의하여 식량의 대부분을 얻고 있다. 또한 러시아제국 지배 아래 있었던 시대에는 교역·납세를 위한 모피가 대량생산되었다. 가축은 썰매용 개뿐이었었으나 러시아인에 의해 소·말도 도입되었다. 주거는 반지하식으로서 땅에 구덩이를 넓게 파고 위에 목조의 지붕을 걸쳤다. 거기에서 혈연관계가 있는 몇몇 가족이 공동으로 살았으며, 많을 때는 100명까지도 들어갔다고 한다. 여름에는 가족 단위로 고상식(高床式) 원뿔주거에서 생활하였다.


358.케추아족(Quechua) 


에콰도르에서 페루·볼리비아에 걸친 안데스산맥 일대에 살고 있는 원주민. 일찍이 잉카제국의 지배를 받던 사람들의 자손으로 인구는 500만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농사를 지으며 소규모 관개를 행하여 옥수수·감자를 생산한다. 감자를 썰어 추운 공기 속에서 냉동·건조시킨 츄뇨라는 보존식품을 만들며 가축으로 라마·알파카를 방목한다. 가옥은 흙벽돌로 벽을 쌓고, 풀로 지붕을 이었으며 부부와 아이들이 함께 생활한다. 해발고도 4000m가 넘는 높은 곳에 고립되어 잉카시대부터 공동체를 이루고 노동력을 교환하면서 살아왔다. 땅은 촌락의 소유로 해마다 각 집에 일정한 면적의 밭을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상속은 부계를 따르며, 혼인은 지역내혼이 대부분이고 일부일처제이다. 케추아족 종교는 가톨릭과 토착종교가 혼합된 독특한 형태이며 종교의식 때 옥수수로 빚은 치차주나 코카주를 마시는 풍습이 있다.


359.케트족(Ket) 


서시베리아 예니세이강 중·상류지역에 분포하는 원주민. 인구 1100(1979). 예니세이 오스챠크라고도 한다. 인종학적 계통이 불분명하며, 케트어는 현재 사라진 예니세이 여러 언어의 하나로, 언어학적 특성 때문에 독립된 언어로 분류되고 있다. 예니세이유역은 7세기 이후 투르크 및 위구르 영향을 받았으며, 13세기 몽골침입, 17세기 러시아 지배 아래에 놓였다. 케트족의 절반 정도가 어업에 종사, 정착생활을 하며, 전체 인구의 약 40%는 토나카이를 사육하는 유목민이다. 샤머니즘이 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주위 민족보다 키가 크며 눈이 파랗고 금발인 사람이 많다. 현대에 와서는 대부분 농목업에 종사하며 케트어와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360.코랴크족(Koryak) 


러시아연방 시베리아의 추코트반도 남부와 캄차카반도 북부에 사는 소수민족. 인구 약 7000(1991). 현재 코랴크자치구를 형성하고 있다. 언어는 옛 시베리아언어에 속하는 코랴크어이다. 인종은 시베리아인종에 속하며 얼굴이 납작하고 몽골로이드적이지만 키가 크다. 코랴크족은 그 생업의 차이에 따라 토나카이(馴鹿)코랴크와 해안코랴크로 나뉜다. 토나카이코랴크는 토나카이사육을 주된 생업으로 하며 아래는 원통모양이고 위는 원뿔모양의 집을 토나카이가죽으로 텐트처럼 설치한다. 해안코랴크는 해안이나 하구에 머물러 살며 고기잡이와 바다짐승사냥을 주된 생업으로 하고 이동할 때는 개썰매를 이용한다. 겨울에는 큰 반지하식 목조가옥에 가까운 친척 몇 가족이 함께 살고 여름이 되면 가족끼리 다락식 목조가옥이나 텐트로 옮긴다. 토나카이코랴크·해안코랴크는 자주 교역을 하여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다.


361.코만치족(Comanche) 


북아메리카 대평원 남부에 살았던 아메리칸인디언 종족. 인구 약 3000. 코만치란 유트어로 <적>을 뜻하는 말이다. 유트 아스텍어족계로 북방에서 생활하였으나 알곤킨족의 압력으로 남부로 이주하였다. 캠프 등 작은 집단을 형성하여 방랑생활을 하며 들소 사냥을 하였다. 17세기 유럽인으로부터 말을 사들여 발전된 사냥기술로 대평원에 진출하였다. 그 뒤 유럽인의 침입에 완강히 저항하였으나 1875년 미국 연방정부와의 협약으로 오클라호마 남서쪽 보호구역으로 이주하였고 현재 농업과 목축업으로 생활하고 있다. 1901년 160에이커의 땅을 할당받았고, 1931년 유콘지역에 금맥을 찾아 몰려든 백인들로 인해 90%가 혼혈이 되었다.


362.코미족(Komi-) 


러시아연방 우랄산맥 서쪽의 북부와 중부에 사는 우랄어족 피노-우그리아어파 페름(perm)어계의 지리얀어를 사용하는 종족. 전에는 지리얀족이라고 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스스로 코미족이라고 칭한다. 거주지나 문화의 차이 등에 따라 북방·남방의 두 그룹으로 크게 나뉜다. 북방그룹은 좁은뜻의 코미족으로 페초라강 유역과 비체그다강 상류에 살며 인구 약 24만(1997)이다. 남방그룹은 카마강 상류에 사는 코미페르먀크족으로, 인구 약 10만(1997)이다. 일찍이 코미족은 카마강 상류에 살았으나 5~10세기 사이에 일부가 북쪽 비체그다강 중류로 이주하였고 16~18세기에 비체그다강 상류와 페초라강 유역으로 다시 옮겨갔다. 이것이 현재의 북방그룹이고 카마강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자손이 남방그룹이다. 대체로 농경과 목축을 하지만 북방그룹은 어업·사냥·임업도 하며 또한 19세기 무렵 사모예드족으로부터 토나카이(순록) 사육법을 배웠다. 남방그룹에서는 광업도 성하다. 코미족의 대부분은 러시아정교도이다.


363.코이산(Khoisan) 


남부 아프리카에 사는 부시먼과 호텐토트의 총칭. 호텐토트가 자신들을 부르는 <코이 코인(사람 중의 사람)>, 그들이 부시먼에 대해 부르는 <산 크아(산의 사람들)>의 각 첫 음절의 합성어이다. 코이산인종은 일찍이 동부·중앙·남부 아프리카 일대의 광대한 지역에 분포하였으며, 탄자니아의 하자(Hadga)와 산다웨(Sandawe)는 그 일족으로 여겨진다. 희망봉(케이프 호프)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케이포이드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부시먼과 호텐토트는 신체 특성·언어·문화 등에서 매우 비슷해 보통 이들은 생계방법에 따라, 수렵·채집은 부시먼, 목축은 호텐토트로 구분한다. 코이산인종의 특징은 주름 많은 황갈색 피부, 곱슬머리, 튀어나온 광대뼈, 뒤쪽으로 돌출된 큰 엉덩이, 키는 작으나 피그미(키 150㎝ 이하)는 아닌 점 등이다. 남부 아프리카로 진출한 백인들과 반투족계 농경민들의 압박으로 코이산인종은 격감, 전통적 사회형태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364.코카서스인종 


백색인종 계통에 속하는 인종의 총칭. 코카시아(Caucasia) 또는 코카서스(Caucasus)인종이라고도 한다. 니그로이드·몽골로이드와 함께 세계 3대 인종의 하나로 유럽·동아시아·인도·북아프리카·아메리카 등지에 넓게 분포한다. 코카소이드는 <코카서스인과 같은 것>이라는 뜻으로, 18세기 독일 인류학자 J.F. 블루멘바흐가 처음 붙였다. 그는 세계 각지에서 두골을 수집하였는데 코카서스 지방에서 유래된 두골이 아름다워 이러한 명칭을 붙이고 인류의 중심적인 인종으로 생각하였다. 유럽인종·백색인종 등의 명칭도 있으나 반드시 전체를 나타내지는 않기 때문에 일반화되지 않았다. 코카소이드의 기원으로는 후기 구석기시대 크로마뇽인과 골격형태의 유연(類緣)관계를 들 수 있는데 확실하지 않으며, 특히 크로마뇽인이 밝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코카소이드는 15세기 이후 지구 곳곳에 퍼졌고,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원주민을 쫓아내고 온난한 지방에 널리 분포하였다.


365.콘드족(Khond) 


인도 중동부 오리사주의 구릉지대와 밀림에 살고 있는 원주민 부족. 인구 약 85만. 마디아프라데시주와 안드라프라데시주에도 산재하여 있다. 그 가운데 약 51만명은 드라비다어계(語系)에 속하는 쿠이어를 쓰며, 나머지는 인근 부족의 영향으로 오리야어를 사용하거나 두 언어를 병용한다. 언어적·인종적으로 인도 중부의 곤드족과 유사하여 그 일파로 보기도 한다. 벼농사를 생업으로 하나 산지에 사는 쿠티아 콘드족은 여전히 화전농업을 한다. 19세기 전반까지 풍작과 주민번영을 기원하는 인신공양(人身供養)의 풍습이 있었으나 지금은 가축으로 대치하였다. 족외혼제(族外婚制)를 취하며 카스트계급과 최하천민 등 힌두교와 유사한 계급제도를 가지고 있다. 1970년대 들어 문화변용(文化變容)이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366.콰키우틀족(Kwakiutl) 


캐나다 태평양 연안 밴쿠버섬 부근에 사는 원주민 집단. 언어는 와카시어 계통이며, 그와 비슷한 방언을 쓰는 약 20개 부족을 총칭한다. 각 부족은 통혼과 교역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통일되어 있지 않다. 거주지역에 연어를 비롯한 해산물이 풍부하여 경제적으로 여유있고, 채집·수렵 경제가 바탕이 되는 계층사회를 이룬다. 각 부족은 의례적인 위신에 따라 그 지위가 정해져 있고, 부족 안에서도 그것을 구성하는 출신집단 누미마의 지위가 정해져 있다. 누미마는 특별한 수렵장·어장의 사용권을 가지며, 겨울에는 공동연회에서 쓰고 난 나머지를 선물하거나 교환한다. 공동연회를 주최한 사람은 부를 과시하기 위하여 재산을 모두 지출하는데, 이러한 선물주기와 파산행위는 주최자 및 그 누미마가 그때까지 상속한 위신을 확인·강화시킨다. 선물을 받으면 반드시 답례하는데 이러한 선물주기와 파산경쟁을 포틀래치라고 한다. 사회계층질서를 유지하던 포틀래치는 유럽제품이 들어오고 자기파괴적인 대낭비경쟁이 되어 캐나다 정부가 금지한 결과 사회구조가 붕괴되었다. 오늘날에는 인구도 크게 줄었고, 목조(木彫) 등 전통공예가 남아 있지만 독자적 문화를 급속히 잃어 캐나다 사회에 흡수되어 가고 있다.


367.쿠나(Cuna) 


파나마에서 콜롬비아에 걸쳐 거주하는 인디오. 치브차어계의 쿠나어를 사용한다. 대부분 카리브해안의 산블라스제도에 살고 있으며, 이 섬들과 파나마 본토 일부분은 정부에서 공인한 쿠나의 거주지역이다. 산블라스제도는 크게 3지역으로 나뉘며 최소단위인 마을까지 단계적으로 구분된다. 각 단계의 지도자가 모여서 여는 회의가 최고결정기관이다. 집회소를 중심으로 가옥이 밀집한 마을은 사회생활과 오락을 위한 장소이며, 노동의 장소인 밭은 모두 본토의 밀림 속에 있다. 주요 작물은 화전경작에 의한 바나나·코코넛 등이며, 밀림에서의 사냥과 바다의 고기잡이로 식량을 보충한다. 남자들은 파나마 또는 운하지대에서 일하며, 섬을 방문하는 콜롬비아 상인들과의 교역도 활발하다. 여자들은 모라라는 밝은 빛깔의 웃옷을 입는데, 모라는 색깔이 다른 여러 개의 천을 겹치고 윗부분의 천을 무늬에 따라 오려내어 밑의 색깔을 노출시키는 역(逆)아플리케 수법을 이용하여 만든 유명한 민예품으로 수입원이 되고 있다.


368.쿠부족(Kubu)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무시강과 잠비강의 많은 지류 유역의 삼림지대에 사는 사람들. 베다족이라고도 하나 인종적으로는 불분명한 부분이 많다. 수마트라섬의 옛 주민 가운데 하나 또는 그 혼혈이라고 짐작된다. 비(非)이슬람교도로서, 물을 극단적으로 싫어하여 몸을 씻지 않으며 원시적인 생활을 영위한다. 따라서 이슬람교도인 말레이인의 멸시를 받고 있는데, 쿠부라는 말도 말레이어로는 불결·열등을 뜻한다. 혈연관계나 인척관계에 있는 서너 가족으로 집단을 이루어 숲속에서 유랑생활을 한다. 나무로 만든 긴 창을 던져 산돼지·원숭이 등 숲 속의 동물을 비롯하여 쥐·도마뱀·거북이·곤충 등을 잡으며, 과일과 식물뿌리를 채집한다. 감자류 또는 바나나를 재배하는 쿠부족도 있는데, 농경은 말레이인에게서 전수받은 것으로 보이며, 주거는 길이 2∼3m의 항상주거(杭上住居)이며, 지붕을 야자나뭇잎으로 만든다. 전통 복장은 수피포(俊皮布)로 허리부분만 덮는다. 남자는 사춘기에 할례(轄禮)를 받으며, 남녀 모두 치아에 가공을 한다.


369.크레올(Creole) 


서인도제도·중남미에 이주한 에스파냐인·프랑스인의 자손. 에스파냐어로는 크리오요(criollo)이며, 본래 뜻은 <키워진 사람>이다. 16세기에는 신대륙에서 태어난 순수 에스파냐인을 가리켰으나, 그 뒤 의미가 확대되면서 타국 출신이라도 신대륙에서 태어나거나 정착한 자를 뜻하게 되었으며, 또 신대륙에서 태어난 흑인을 아프리카에서 데리고 온 흑인과 구별하는 데 쓰였다. 한편 에스파냐에서 태어난 에스파냐인은 페닌술라르(반도 태생)라 하였고 가추핀 또는 차페론이라는 멸칭(蔑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식민지시대 초기 에스파냐 왕실은 <엔코미엔다>의 항구화와 원주민의 재판권을 요구하는 크리오요를 왕실에 대항하는 위험한 존재로 간주, 그들에게는 중요 관직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뒤 유럽에 유학하여 자유사상을 접한 크리오요의 자제들은 여전히 성속(聖俗)의 양쪽에서 권력을 누리고 있는 페닌술라르에 불만을 품고 19세기초 에스파냐로부터 독립하고자 싸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한편 미국의 크레올은 루이지애나지방에 식민지를 개척한 프랑스인·에스파냐인을 가리키는데, 가끔 이들과 흑인의 혼혈에 대해 오용(誤用)되는 경우도 있다. 뉴올리언스를 건설하고 프랑스의 우아한 문화를 심은 크레올은 1803년 이후 미국인의 대량 진출로 그 사회적 세력을 잃었으나 풍속·건축·음식물 등 문화는 보존하고 있다.


370.크리미아타타르(Krymskie tatary)


타타르민족의 일부로 크림반도가 고향인 사람. 3세기 몽골의 크림반도 침입·정복으로 킵차크한(汗)의 영지(領地)가 되었다가 15세기 전반 크림한국(汗國)이 성립되면서 크리미아타타르민족이 형성되었다. 1783년 러시아가 한국을 보호국으로 하는 오스만제국과 싸워 크리미아를 합병하였고, 혁명·내전을 거쳐 1921년 10월 크리미아자치공화국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때 I.V. 스탈린이 대독(對獨)협력을 이유로 카프카스·크림·볼가유역 등의 많은 소수민족을 시베리아·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킴으로써 1944년 5월 크리미아타타르인도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강제이주당하게 되었다. 1945년 6월 크림자치공화국은 말살되고, 러시아연방공화국 크리미아주가 되었다가 1954년 2월 우크라이나에 귀속되었다. 1957년 N.S. 후르시초프의 스탈린비판과 함께 이들 여러 민족의 대다수는 명예회복·귀환이 인정되고, 말살된 자치공화국 등도 부활되었는데, 크리미아타타르인 등 제외된 민족도 있다.


371.크리크족(Creek) 


미국 조지아주와 앨라배마주에 살았던 무스코기어계 인디언. 1950년 오클라호마주에 약 5만명, 앨라배마주에 약 500명이 살고 있었다. 옥수수·호박·콩 등을 재배하였는데 농사는 주로 여자가 맡았으며 남자는 사냥과 싸움에 종사하였다. 50개 이상의 모계 토템씨족으로 나뉘고 그들이 포족(胞族)을 이루고 있었으며 마을은 백(白)과 적(赤) 두 지역집단으로 나뉘어져 백 집단은 평화의례, 적 집단은 전쟁의례를 맡았다. 크리크족 사회에 세습적 신분 차이는 없었으나 개인적 능력, 예를 들면 싸움터에서 세운 공적에 의한 계급은 있었다. 옆쪽에 층계를 낸 대형상(臺形狀)으로 흙을 높이 쌓아올리고, 그 위에 돔모양의 초가지붕을 얹은 종교용 건물을 지었다. 1813∼1814년 크리크전쟁에서 패한 뒤 크리크족은 일부만 남고 강제로 오클라호마주로 이주되어 앨라배마주에 유적이 있을 뿐 고유의 언어와 문화는 거의 사라졌다.


372.크메르족(Khmer) 


오스트로아시아계 인종으로 몬크메르어족에 속하며 캄보디아어를 사용하는 민족. 크마에 또는 캄푸치아라 자칭하고, 지금의 캄보디아를 중심으로 거주한다. 요람지는 메콩강 중류지역으로 일찍부터 인도 문화를 수용하여 앙코르와트 등을 건설한 앙코르왕조의 후예이다. 키는 평균 165㎝, 피부는 구리빛을 띠고 눈빛깔은 검으며 단두(短頭)에 광대뼈가 나오고 머리털은 약간 곱슬이며, 근육질에 균형이 잡혀 있다. 두 손을 모아 합장으로 인사하며 예의바르고 성질이 온화하다.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며 논·밭을 경작한다. 마을은 침수하지 않는 자연제방 위에 있고, 약 200∼400명 규모로 집단을 이루어 혈연·지연에 의한 공동거주지를 형성한다. 일상생활은 농업 달력에 따라 영위된다. 항상가옥(杭上家屋)에 살고, 옷은 사롱(sarong;허리에 감는 천)에 블라우스(여성)로 간단하지만 제례 때에는 산포트(사롱을 양다리 사이로부터 걷어올려 뒤에서 동여맨 차림)라는 민족의상을 입는다. 주식인 쌀밥을 프라호크(생선젓)와 함께 먹는다.


373.키르기스족(Kirghiz)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의 튀르크어 민족 가운데 하나. 키르기스족은 기원전부터 예니세이강 상류지역의 삼림수렵민으로서 중국 사서(史書)에 나오며, 견곤(堅昆)·계골(契骨)·힐알사·키르기스[吉兒吉思(길아길사)] 등으로 전해진다. 그들은 원래 이란계 종족인 듯하나 7, 8세기 무렵에 터키화되었다. 돌궐(突厥)비문에는 qyrqyz(키르기스)라 적혀 있다. 수렵·어로·농업·목축에 종사하며 야금·금속가공에도 뛰어났다. 키르기스족은 흉노(匈奴)·돌궐·웨이우얼[維吾爾(유오이)] 등의 유목국가에 압박을 받았으나 독립을 유지하였고 당(唐)나라와도 교류하였다. 840년 무렵에 키르기스 군주는 웨이우얼제국을 공격하여 그 왕조를 뒤엎어 웨이우얼인들이 남서쪽으로 이동하게 하였다. 13세기초 키르기스족 군주는 칭기즈 칸에 복속해(1218) 몽골제국 아래 부족사회를 유지하면서 농경·모피생산·금속가공을 생업으로 하였다. 몽골제국이 무너진 14세기 이후 오이라트족의 지배를 받고 차츰 톈산[天山(천산)] 서부지역과 페르가나계곡으로 이주한 듯하며, 오이라트족과 서방 카자흐유목민의 압박을 받아 부르트[布魯特(포노특)]라고 불렸다. 17, 18세기 이후 준가얼족·청(淸)나라·러시아의 간접지배 아래 놓였다.


374.키오와족(Kiowa) 


미국 그레이트플레인스 남부에 살았던 북아메리카 인디언. 미국에 마지막으로 투항한 부족들 가운데 하나로 키오와 타노아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였다. 본디 7개 부족으로 구성되었는데 남부 아타바스카족에 속하는 소부족집단인 키오와아파치족(아파치어를 씀)도 포함하고 있었다. 키오와족은 평원 인디언의 전형으로서 말을 타고 버펄로 사냥을 하였으며 농사는 짓지 않았다. 가옥은 장대 3개를 세워 가죽을 씌운 커다란 티피에서 살았고, 전사집단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전공(戰功)에 따라 서열이 매겨졌다. 꿈과 환상이 전쟁·사냥 및 질병치료에서 초자연적인 힘을 가져다준다고 믿었으며, 부족을 지켜준다고 믿었던 10개의 주술보따리는 뒤에 태양춤 의식의 중심이 되었다. 중요 부족행사 때 그림문자를 그렸으며 현재 4000여 명이 오클라호마주 보호구역에 살고 있다.


375.키와이족(Kiwai) 


파푸아뉴기니 플라이강 어귀에 있는 키와이섬을 중심으로 살고 있는 민족. 일년 내내 고온다습하며 주로 얌·타로·사고야자·바나나 등을 재배하고, 수렵과 카누를 이용한 교역 및 어로를 생업으로 한다. 거주지 대부분이 저지대 늪지이므로 홍수를 피해 지상 2m 높이의 롱하우스에 산다. 큰 집은 길이 약 150m, 나비 약 8m나 되며, 거실은 남자용·여자용·어린이용으로 나뉜다. 19세기 말까지 남자의 경우 결혼조건으로 적의 머리를 잘라와야 하는 목 사냥의 풍습이 남아 있었다. 부계(父系)로서 외혼제 토템 집단을 이루며, 누구나 거북·바다뱀·타로·대나무 등 동식물과 관계되는 자기토템을 가졌는데 그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의식인 성년식에서는 독특한 노래와 춤이 곁들여진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데 식이 끝나면 여자는 결혼이, 남자는 전쟁 참가가 허락된다.


376.키쿠유족(Kikuyu) 


케냐 중서부 고지에 사는 반투어 농경민족. 인구 약 541만(1991). 기구유(Giguyu)·게코요(Gekoyo)·아게코요(Agekoyo)라고도 한다. 케냐 인구의 약 20.9%를 차지하는 최대 민족이다. 17∼19세기 중반까지 케냐 중부에서 지금의 거주지로 이주하여 왔다. 부계 친족조직이 사회생활의 근간을 이루며 직선형의 연령계제제(年齡階梯制)가 부족의 정치·군사·종교 조직을 뒷받침한다. 토착경제는 주로 수수·콩·사탕수수·고구마 재배에 의존하며 근래에는 커피·옥수수·과일·채소 등 환금작물도 재배한다. 9∼10개 씨족으로 나누어져 있고 왕제나 노예제가 없는 비교적 평등한 사회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정치적인 권한은 전통적으로 노인들에게 있다.


377.키타이 


4세기 이래 동몽골[東蒙古(동몽고)]을 본거지로 하고 있던 유목민족. 동호(東胡)의 후예로서 몽골과 퉁구스의 혼혈이라고도 하나, 대체로 몽골계에 속한다. 5세기 중엽부터 랴오허강[遼河(요하)] 상류 시라무렌강 유역에서 유목생활을 하고 있던 여러 부족으로 이루어진 민족이다. 당대(唐代)에 이미 큰 세력을 형성하였고, 부족 중에서 특히 8부족이 강력하여 그 중에서 추장을 뽑았는데, 당의 말기에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등장하면서 907년에 거란족을 통일하고 제위(帝位)에 올랐다. 그 후 거란은 국호를 요(遼)라 칭하고, 그 위세는 만주·화북(華北)·몽골[蒙古(몽고)]·신장[新疆(신강)] 방면에까지 미치어 북아시아에서 일대세력을 형성하였으나, 1125년 만주에서 일어난 금(金)에게 멸망되고 말았다. 당시 그 일족인 야율대석(耶律大石)은 중앙아시아로 달아나 서요(西遼)를 세웠다. 거란은 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민족으로부터 키타이(Kitai)라는 명칭으로 불렸는데, 이것이 후에 차이나로 와전되어서 중국을 지칭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영어의 <Cathay(중국)>가 그것이다. 거란은 한인(漢人)을 지배하여 한문화(漢文化)에 접하게 되었으나, 민족 의식이 강하여 독자적인 거란 문자를 만들었으며, 후에 서하문자(西夏文字)나 여진문자(女眞文字)의 제작에 큰 영향을 주었다.


378.타갈로그족(Tagalog) 


필리핀 마닐라를 중심으로 루손섬 중부, 마린두케섬, 민도로섬 등에 사는 종족. <타갈로그>라는 명칭은 타가일로그(Taga-ilog;강가의 사람들)에서 유래한다. 형질적으로는 말레이인종에 속하는데 타갈로그어를 모어로 사용하며 인구는 세부아노족에 이어 필리핀 제2위를 차지한다. 마닐라 등 대도시 외에는 인구의 대부분이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농민이며, 현금작물 또는 수출용으로 사탕수수·코코넛 등을 재배한다. 친족조직은 쌍계적(雙系的)이고 친족명칭도 아버지쪽과 어머니쪽을 구별하지 않는다. 마닐라는 역사적으로 필리핀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이고, 타갈로그인은 중국·에스파냐·미국 등 외래문화와 자주 접촉하였다. 또한 에스파냐에 대한 반식민지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하였으며 J. 리살·A. 보니파시오 등 국민적 영웅이 타갈로그 출신이다. 90% 이상이 그리스도교도이지만 토착신앙도 뿌리 깊게 남아 있다.


379.타라스코족(Tarasco) 


멕시코 중서부 미초아칸주 산악지대에 사는 원주민. 언어는 타라스코어를 사용하는데 멕시코 원주민 여러 부족과는 언어학적 관련이 없다. 사회의 기본단위는 핵가족이며, 몇 개의 마을이 모여 무니시피오(자치체)를 구성, 독립된 정치적 자치조직을 갖는다. 주요 생업은 농업으로 옥수수·콩·호박 등을 재배하나 가축사육·어업 및 공예품 제작도 행해진다. 마을마다 공예품 종류가 달라 시장경제체제가 뒷받침하는 마을 단위의 분업이 발달하였다. 중앙아메리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컴파드라스고라는 의례적 친족관계(세례를 받는 사람과 그 대부모와의 관계)는 타라스코족에게 종교적·사회적으로 중요하다. 종교는 토착화된 그리스도교로, 식민지시대 이전의 정통적 종교요소가 완전히 없어진 점도 다른 원주민 부족과의 특징이다.


380.타라우마라족(Tarahumara) 


멕시코 북부 치와와주 산악지대에 사는 원주민. 언어는 유트아스텍어족에 속하는 타라우마라어. 서(西)마드레산맥의 기복이 많은 산악지대에 살고 있다. 멕시코에서 가장 근대화가 늦은 부족 중의 하나이며, 역사적으로도 중앙아메리카 고문화(高文化)의 주변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여름에는 산악지대에서 판자집을 짓고 5·6채 단위로 란첼리아를 형성, 공동노동 등 긴밀한 협력관계를 이루나 겨울에는 가축을 데리고 따뜻한 협곡으로 이동, 흙벽돌이나 돌로 만든 집 또는 자연동굴 등에서 전혀 다른 집단을 구성한다. 농작물로 옥수수·콩·호박·토마토 등을 재배하나 농경에 부적합한 땅이므로 수렵·어업도 중요한 생산수단이다. 오랫동안의 예수회 전도로 다른 원주민보다 문화변용이 적기는 하나, 전통적인 종교에 가톨릭이 상당히 혼합되어 있는 형태이다.


381.타타르족(Tatarin) 


서(西)투르크메니스탄을 제외한 중앙아시아의 투르크계 주민의 총칭. 13세기 몽골 서정군(西征軍)을 따라온 투르크족의 자손과 불가리아·핀·카자흐인 등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들이다. 인구수는 약 1백만 명, 언어는 투르크어, 종교는 이슬람교이다. 교사·선교사·상인이 많고, 대부분 도시생활을 하고 있다. 타타르인이라는 명칭은 핀·사모예드·몽골인 등과 혼혈한 시베리아 원주민 투르크족에게도 확대, 적용되어 북방 투르크계 주민은 모두 타타르인으로 불려진다. 1917년 러시아혁명 때 일본을 거쳐 터키로 이주한 타타르인도 많다.


382.태즈메이니아족(Tasmanians) 


오스트레일리아 남동쪽 태즈메이니아섬의 원주민. 1803년 영국이 침략하여 식민지화되었을 때의 인구는 3000∼5000명으로 추정되나 그 뒤 영국의 비인간적 취급과 학살, 질병 등으로 1835년 200명 정도로 감소하였으며 1876년 마지막 태즈메이니아인이 죽음으로써 절멸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는 달리 검은 피부에 짧은 두상(頭上), 고수머리, 넓은 코, 두툼한 입술, 무성한 턱수염을 가졌으며 키는 작은 편으로 인종적 특징은 벵골만의 앤다만섬 사람들에 가깝다. 10여 개의 부족으로 나뉘어 각각 일정한 영역에서 제각기 다른 언어를 쓰며 살았는데 언어의 계통관계는 분명하지 않다. 캥거루가죽을 걸치고 바람막이 오두막에서 생활하면서 조잡하게 만든 석기를 사용하였고, 나무창(槍)과 투척용 곤봉으로 수렵 및 식물·패류(貝類)를 채집하였다. 20∼30명 정도가 집단을 이루고 여름에는 내륙부에서, 겨울에는 해안부에서 지내는 이동생활을 하였다. 여러 가지 면에서 가장 오래된 종족의 하나로, 약 1만 년 전 오스트레일리아와 태즈메이니아가 육로로 연결되었던 무렵 이주자 일부가 육로의 단절로 고립된 것으로 짐작된다.


383.테소족(Teso) 


우간다와 케냐에 사는 팔라나일어계의 부족. 형질적으로는 나일아인종(亞人種)으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키가 크고 피부색이 검으며 코는 납작하지 않다. 우간다에서 테소족은 간다족 다음가는 대부족으로 국내 지위가 높은 반면 케냐에서는 소수민족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생업은 소를 치는 혼합농업이며, 옥수수·커사버·잡곡류가 주요 농작물이며 환금작물(煥金作物)로 목화를 재배한다. 테소족은 일찍이 정치적으로 통일된 일이 없었고, 전통적 정치체제는 수장(首長)제도가 없는 비(非)집중형이며, 연령집단의 장로(長老), 지역의 실력자, 군사·종교 지도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이끌어왔다. 같은 언어계에 속하는 다른 목축민이 현재에도 전통생활을 유지하고 있는데 반해 이들은 20세기 초부터 근대적 생활양식을 도입하고 있다. 테소사회의 친족조직은 부계 출신·부방거주(夫方居住)·일부다처혼을 기반으로 구성된다. 테소족의 대부분은 그리스도교도이지만, 전통적 종교도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384.테우토니인


게르만인의 한 파. 유틀란트반도 서부, 엘베강의 강어귀에 거주하고 있었으나, 킴브리인과 함께 남하하여 로마영 내의 갈리아에 침입하다 BC 102년 남프랑스의 아콰에섹스티아에서 로마의 장군 마리우스에게 패하였다. 또한 카이사르가 갈리아에서 격파한 아두아투키인은 킴브리튜턴인의 후손으로 보인다. 나중에 라틴 시인들은 게르만인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였다.


385.텔루구족(Telugu) 


인도 남부에 사는 드라비다어족 텔루구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총칭. 텔루구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드라비다어족 가운데 가장 많아 약 7700만 명(1999)이나 되며, 그 분포지역도 안드라 프라데시주를 중심으로 넓다. 텔루구족의 사회는 카스트제도의 강한 영향을 받고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이며 가장 인구가 많은 농경민 카스트로 레디(카프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가 있다. 레디는 몇몇 부계외혼(父系外婚)씨족으로 이루어졌으며, 각 씨족에는 동물·나무·과일·공예품 등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텔루구족의 혼인은 북인도와 크게 다르다. 북인도에서는 일반적으로 고트라(gotra;공통된 조상을 가진 부계 친족집단) 내에서의 결혼은 하지 않으며 4촌 사이의 결혼도 금지되나 텔루구족에서는 브라만을 포함해 교차사촌혼(交叉四寸婚;남자가 어머니 형제의 딸이나 아버지 자매의 딸과 결혼하는 것)도 많다. 텔루구족은 기본적으로 힌두교도이지만, 그 밖의 드라비다 여러 부족과 마찬가지로 각종 토착신과 악령을 믿기도 하고, 신에게 바치는 동물도 깨끗이 하는 의식을 행한다.


386.토다족(Toda) 


인도 타밀나두주 닐기리 구릉에 있는 부족. 남인도 최대의 피서지인 오타카문드 근처에 살고 있다. 관광화된 소수 부족으로 드라비다어를 사용하고, 이목적(移牧的) 물소 사육이 주요 산업이며, 곡물과 기타 필수품은 가까운 부족과 물물교환한다. 일처다부제를 인정하며, 가족단위 부계친족세대군이 모여 외혼집단을 형성한다. 외혼집단이 모여 반족(半族)을 구성하지만, 어느 단계에도 수장(首長)은 없다. 신에게 제사지낼 때 물소를 희생으로 바치며, 여러 날에 걸친 2단계의 장례가 특징이다. 근대화된 농원이 물소 방목장을 잠식하고, 1953년 이후 일처다부관계의 인구학적 기반이었던 여아를 죽이는 습관이 엄격히 금지되어 특징적 사회문화 요소가 소멸되어가고 있다. 영국의 W.H. 리버스의 조사는 인류학사상 유명하다.


387.토르구트(Torgut) 


몽골 부족명. 오이라트 4족 가운데 하나로 중국 명(明)나라 때 이르티슈강 상류에 살았다. 1562년 알탄칸의 조카 체첸의 공격을 받았으나 계속 이곳에 머물렀다. 1630년 세력을 신장한 중가르족에게 쫓겨나 1636년부터 볼가강 하류, 돈강 왼쪽 연안에서 카프카스로 이주, 유목생활을 하였다. 라마교를 믿고 티베트에 참배하였으며 청(淸)나라에 조공을 바쳤다. 1704년 에치나의 토르구트는 중가르족이 티베트 참배에서 돌아가는 길을 막자 청나라에 복속하였다. 1758년 청나라가 중가르족을 정복하고 볼가강유역의 본부족에게 귀환을 권고하자 1771년 부족장 우바시의 인솔아래 볼가강 하류를 떠나 키르기스족과 카자흐인의 습격을 받아가며 청나라의 일리에 도착하였다. 청나라는 7만 명이 넘는 이들에게 목초지를 나누어 주고 각 지역에 분산·정착시켰다. 이들을 신(新)토르구트라 하며, 남은 사람을 카룸이크, 처음부터 러시아로 떠나지 않았던 사람을 구(舊)토르구트라고 한다.


388.토번(吐蕃) 


중국 당·송(唐宋)시대에 티베트족을 가리킨 명칭. <Stod-Bod>를 음역한 것이다. 티베트와 마찬가지로 <탁발(拓跋)>을 어원으로 한다는 설과 이 왕가(王家)가 다른 부족보다도 남부에 있었으므로 그 지배계급의 부족명 <퍄(phyva;不夜)>에 남(南)을 뜻하는 <토(Iho)>를 합쳐서 된 Iho phyva라는 호칭이 <吐發>이라고 음역되었고, 다시 멸시하여 부르는 <吐蕃>으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토번왕조의 원조는 4세기 중엽 무렵 네팔 북서쪽에 있는 카일라사 북쪽 변두리에서 동부 티베트의 캄으로 옮겨와 5세기말 중앙티베트 남부의 야루룬으로 거점을 옮겼다. 6세기말 중앙티베트를 장악한 뒤 곧 전 티베트를 제패하였다. 6세기 말에는 송첸감포왕이 쓰촨[四川(사천)]의 숨파족을 장악하여 캄지방의 이탈을 저지하였고, 수(隋)나라에 쫓기어 칭하이[靑海(청해)] 남부에 망명해 있던 토욕혼(吐谷渾)과 가까이 하여 제도·문물을 배웠다. 620년대에는 관등(官等) 12계(階)를 정해 여러 씨족을 통합하여 왕국을 세웠다. 638년 당나라와 싸워 토욕혼 일부를 복속시켰고, 640년 당으로부터 문성공주(文成公主)를 맞아들여 화친하였다. 이때부터 완성된 군사국가조직을 활용하여 복속시킨 토욕혼의 정통성과 그 권익 계승을 주장하여 659년부터 당나라와 싸우기 시작해 그 전선이 남조(南詔)에서 중앙아시아까지 이르렀다.


389.토토나카(Totonaca)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중부의 멕시코만 연안으로부터 푸에블라주 북부의 산간부에 걸쳐 거주하는 민족집단. 언어는 마야토토나카어군 토토나카어족이다. 600년 무렵 현재의 엘타힌 유적을 중심으로 번영하였으며, 그 뒤 12세기에 톨텍, 14세기에 아스텍의 침략을 받았다. 에스파냐인과는 1522년에 접촉하기 시작하여 이듬해부터 프란체스코회에 의한 그리스도교 포교가 시작되었다. 에스파냐 식민지시대가 지나간 뒤 19세기 멕시코 독립 이후에도 원주민 반란이 자주 일어났다. 지역적으로는 고온다습한 해안평야와 온난한 산간부로 나뉜다. 모두 옥수수·콩을 기반으로 해안평야에서는 바닐라와 사탕수수, 산간부에서는 커피를 산출한다. 사회의 기본단위는 핵가족이고, 사회관계에서는 의례적 친족(콤파도라스고)관계가 중요하다. 전통적인 정치종교 조직은 산간부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해체되었는데, 토착적인 동물령(動物靈)신앙이 남아 있다. 최근에는 볼라도레스라는 전통적 종교의례가 관광목적으로 재평가됨으로써 토토나카의 상징이 되고 있다.


390.통가족(Tonga) 


남아프리카 모잠비크 남부에 거주하는 반투계 여러 종족의 하나. 인구는 관련되는 여러 부족을 합쳐 100만 명이 넘는다. 옥수수·수수 기타 잡곡류를 주로 재배하는 농경민이며, 가축도 경제적으로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가족제도는 부계를 따르며, 부계족을 핵으로 하는 취락에서 산다. 여러 수장국(首長國)으로 나뉘고, 각 수장국은 한 사람의 최고 수장과, 최고 수장이 사는 궁전이 있는 주도를 가지고 있다. 최고 수장은 신성왕(神聖王)의 성격을 가지며 국토의 번영에 책임을 지고 여러 가지 금기(터부)에 둘러싸여 있다. 최고 수장의 건강상태는 국토의 번영에 직접 관계된다고 믿고 있어 육체적인 쇠약현상이 나타나면, 즉 치아가 1개만 빠져도 수장은 의례적으로 죽음을 당해야 하였다. 그 밖에 아프리카에는 통가라고 하는 부족으로 2개 부족이 더 있는데 이 세 통가족 사이에 유연(類緣)관계는 없다.


391.투아레그족(Tuareg) 


알제리·리비아·니제르·말리의 4개국에 걸치는 사하라사막의 유목민. 인구는 40∼50만 정도로 짐작된다. 코카소이드계 베르베르족에 속한다. 15세기에는 서아프리카의 포르투갈인과 교역하였고, 노예·상아·황금·모피 등을 지중해지방과 중동으로 가져가는 사하라사막 횡단대상(隊商)을 장악하고 있었다. 19세기에는 유럽의 식민지세력과 싸웠으나 1902년 프랑스에 패하여 그 지배 아래 들어갔다. 낙타·염소·양·소 등을 기른다. 오늘날에도 낙타의 대상을 조직하고 가축이나 암염(岩鹽)을 팔아서 차·설탕·옷감 등을 구입한다. 부모와 미혼 자녀가 같은 천막에서 살며, 친족이나 우인관계에 있는 몇몇 가족이 캠프를 치고 지낸다. 이슬람교도이지만 일부일처제를 지키고 있으며 아랍인과는 대조적으로 남자가 베일을 쓰고 여자는 얼굴을 가리지 않는다. 사회조직은 귀족·신하·종교인 등 3계급과 대장장이·노예의 2개 카스트제도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392.투피남바족(Tupinamba) 


브라질의 아마존강 하구에서 상파울루주까지의 해안과 내륙에 퍼져 살았던 투피계의 원주민. 좁은뜻의 투피남바·투피니킨 등 수많은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다. 포르투갈인이 브라질에 도착하였을 때에 처음으로 접촉하였던 원주민이다. 그 후 포르투갈인의 압박에서 도망쳐 아마존강 본류를 따라 내륙에 이주한 사람도 많다. 마니오크와 옥수수를 재배하고 수렵·어로·채취를 하였다. 촌락은 큰 공동주택이 중앙광장을 둘러싸고 조성되었다. 촌락 및 부족은 서로 잠재적 적대관계에 있으며, 이따금 전쟁을 되풀이하였다. 다른 투피계 부족과 마찬가지로 예언자에게 이끌려서 이상향을 찾아 헤매는 <천년왕국운동>이 가끔 일어났으며, 페루까지 간 집단도 있었다. 백인과의 접촉이 빨랐던 만큼 사회·문화의 붕괴가 빨라서 순수한 투피남바는 남아 있지 않다.


393.투피족(Tupi) 


남아메리카의 투피어를 사용하는 여러 족속의 총칭. 아마존강 남쪽으로부터 라플라타강까지의 넓은 지역에서 많은 부족을 이루어 살고 있다. 브라질 중부의 대서양 연안에 널리 분포하는 투피남바의 여러 족속, 아마존강유역의 카와이브족, 시리오노족, 파라과이 동부를 중심으로 거주하는 과라니족 등의 여러 족속이 있다. 투피족의 생활은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다르나 일반적으로는 매니옥(manioc;카사바)·옥수수·고구마 등을 주작물로 하는 화전농업과 사냥·채집을 한다. 강이나 바다 가까이에서 사는 투피족에게는 어업이 중요하다. 해안지역에서는 수천 명으로 구성된 마을을 이루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수백명 정도의 마을로 그 이상의 사회조직은 볼 수 없다. 과라니족과 투피남바 여러 족속의 마을은 부계친족에 의해 구성된다. 시리오노족은 모계 가족인데, 결혼하면 그 부부는 처가마을에서 살게 된다. 투피 여러 족속의 대부분은 전에는 마을을 단위로 삼고 끊임없이 전쟁을 함으로써, 적을 잡아먹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 가지 정령(精靈)을 믿으며, 질병을 치료하는 무당(샤먼)이 있다.


394.퉁족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최대 인구를 가진 소수민족. 중국 광시좡족[廣西壯族(광서장족)]자치구를 중심으로 윈난[雲南(운남)]·광둥[廣東(광동)]·구이저우[貴州(귀주)]·후난[湖南(호남)]의 각 성(省)에 거주한다. 인구는 약 1677만(1997)으로, 그 가운데 광시좡족자치구에 99% 이상이 살고 있다. 문화는 한(漢)문화의 영향을 받아 일상생활이나 주거형태가 한족(漢族)과 거의 같다. 중국 문헌에는 예전에 <퉁족>, 공산주의 치하에서는 <퉁족>으로 썼으나 현재는 <좡족>으로 바뀌었다. 언어는 티베트어계 타이어에 속한다. 일부일처혼이며 전에는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신부는 친정으로 돌아가 아이를 낳은 뒤 돌아오는 불락부가(不落夫家)라는 관습이 성행하였고, 또 해마다 미혼남녀가 중심이 되어 모이는 가무놀이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회로 삼았다. 종교는 다신교이다.


395.튀링겐족(Thuringen) 


민족대이동기에 형성된 게르만계 부족. 헤르문드레르족의 일부에 유틀란트반도로부터 남하한 앙겔족·바르넨족이 혼합되어 오늘날 튀링겐지방에서 형성된 듯하다. 5세기에는 베라강과 엘베강으로 둘러싸인 중부 독일로 퍼졌고, 6세기 초에는 왕국을 형성해 동고트왕족 테오드릭과 동맹을 맺어 당시 국제정치상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프랑크왕국의 세력이 동쪽으로 확대해 오자 그들 사이에 항쟁이 일어나 프랑크 분국왕(分國王) 테우데리히는 작센족과 결속해 튀링겐왕국을 멸망시켰으며, 운스트루트 이북은 작센족에게 할양되고 나머지는 프랑크왕국에 합병되었다. 튀링겐족은 독자적인 부족 법전을 가지고 있었으나 부족으로서의 중요성을 차츰 상실하였으며, 카롤링거시대 말과 독일왕국 초에 이르러 서로 독자적인 부족 대공령(大公領)을 형성하지는 못하였다.


396.튜턴인(Teuton) 


게르만인의 한 파. 유틀란트반도 서부, 엘베강의 강어귀에 거주하고 있었으나, 킴브리인과 함께 남하하여 로마영 내의 갈리아에 침입하다 BC 102년 남프랑스의 아콰에섹스티아에서 로마의 장군 마리우스에게 패하였다. 또한 카이사르가 갈리아에서 격파한 아두아투키인은 킴브리튜턴인의 후손으로 보인다. 나중에 라틴 시인들은 게르만인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였다.


397.틀린깃족(Tlingit) 


북아메리카의 북서인디언의 하나. 알래스카 남동부의 야쿠타트만에서 케이프폭스에 이르는 태평양 연안과 섬들에 14개의 지역집단으로 나뉘어 사는 어로수렵채집민이다. 작살·올가미·그물로 연어·송어 등 어류를 잡고, 바다표범·돌고래 등의 바닷짐승을 사냥하며, 조개류나 식물을 채집한다. 바구니세공·모직 외에 목공예·목조에 뛰어난 솜씨를 보이며, 나무로 집·카누·가구·식기 등을 만들고 특히 토템폴은 유명하다. 좋은 어장이 있는 파도가 잔잔한 만(灣)에다 취락을 만드는데, 그곳에서 겨울을 지내고 여름에는 각지로 흩어져 고기잡이와 사냥을 한다. 4개의 씨족이 있는 모계사회로 씨족은 반족조직(半族組織)을 구성한다. 대개는 모계혈연집단이 취락을 형성하고 수장(首長)이 독립된 정치를 하였다. 그 밖의 북서인디언과 마찬가지로 경쟁적인 증답교환(贈答交煥) 포틀래치(potlatch)를 행한다. 틀린깃어는 나데네어족 애서배스칸어파에 속한다.


398.파에스족(Paez) 


콜롬비아 남부고지의 인디언. 치브차어를 사용하며 높은 산악지대와 고원에 가족단위로 거주한다. 주요 작물은 감자이지만 밀·커피 등도 재배하며, 농사기구는 주로 땅 파는 막대기이다. 집은 큰 나무로 짓고, 때로 흙담·돌담으로 이중벽을 한다. 의복은 원래 모직블랭킷이었으나 에스파냐 지배 이후 남자들은 셔츠와 바지, 여자들은 치마와 판초를 입었다. 돌·금·구리 등으로 공예품을 만들었으며 에스파냐 지배 이후 도자기제조·직조·바구니짜기 등을 한다. 로마 가톨릭교가 들어오면서 일부다처제에서 일부일처제로 변하였으나, 전통적인 사춘기 의식과 월경 금기는 지금도 잘 지켜진다.


399.파이유트족(Paiute) 


미국 네바다주·유타주·아이다호주·오리건주·캘리포니아주·애리조나주에 걸친 건조한 사막지대에서 떠돌며 수렵채집생활을 했던 대분지의 인디언.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식물의 과실·씨·뿌리를 채집하고, 곤충을 잡고, 토끼·도마뱀·뱀·새 등의 작은 동물을 수렵하였다. 막대기로 식물의 뿌리를 파내므로 <디거즈(파내는 사람)>라는 경멸적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다만 극히 일부의 파이유트족은 원시적 농업을 하였다. 주거는 거의 이동생활을 하므로 나무틀에 나뭇가지·풀·나무껍질 등을 걸친 작은 오두막을 지을 뿐이었다. 수공예품으로는 바구니공예와 토끼가죽으로 털담요를 만드는 정도이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기본적인 핵가족 이상의 집단·사회조직은 없었다. 언어는 아스텍파노아 대어족(大語族) 유트아스텍어족 스미크어파에 속하고 쇼쇼니족과 친족관계에 있다. 인구는 1970년대에 약 4000명이 파이유트 거주지에 살고 있었다.


400.파푸아족(Papuan) 


좁은뜻의 멜라네시아제족(諸族)과 함께 넓은 뜻의 멜라네시아인에게 속하는 종족. <파푸아>는 말레이어로 고수머리라는 뜻이다. 뉴기니섬 동부·북부를 제외한 대부분과 남동쪽에 있는 누벨 칼레도니아섬까지 이어지는 도서(島嶼) 중 비교적 큰 섬의 내륙부에 분포한다. 인종적으로는 멜라네시아제족과 마찬가지로 오세아니아 니그로에 속하지만, 장기간에 걸친 혼혈(混血)의 결과로 양자의 차이는 작아지고 있다. 파푸아의 의미가 나타내는 바와 같이 머리카락은 곱슬이고, 피부는 암갈색인데, 매부리코와 두꺼운 입술을 가지고 있다. 멜라네시아제족이 조금 장신(長身)인 데 비하여 중등위(中等位)의 신장을 보인다. 언어는 매우 다양하며 적어도 수백종의 언어가 존재한다. 이들 언어는 파푸아제어(諸語)로서 일괄되지만, 인도네시아어나 멜라네시아어도 포함하는 오스트로네시아어와는 구별되며, 비(非)오스트로네시아제어라고도 한다. 종래에는 서로 계통관계(系統關係)가 없다고 생각되었으나,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여러 종류의 계통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복잡한 지세(地勢)와 비교적 고립되어 있으므로 언어와 함께 그 생활은 매우 다양하다.


401.팔라웅족(Palaung) 


미얀마의 샨주(州)로부터 중국의 윈난성[雲南省(운남성)]에 걸쳐 사는 민족. 중국에서는 붕룡족(崩龍族)이라고 표기한다. 그들 자신은 루마이(Rumai)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로 부른다. 오스트로아시아어족의 몬크메르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샨족과 마찬가지 형태의 소왕국을 이루어 자신들의 왕을 받들고 있다. 언어계통상으로 동쪽에 사는 와족과 매우 가깝지만, 화전을 일구고 수렵을 하던 와족과 달리 벼농사를 짓는 평화로운 상좌부(上座部) 불교도이다. 주변은 차 생산지로, 말린 차와 발효시킨 식용차가 수출된다. 집촌(集村)을 이루어 고상(高床)주택에 산다. 부계씨족제인 곳도 있으나, 쌍계적(雙系的)인 곳도 있어 친족 조직에는 지역차가 크다. 승려와 일부 상층민은 죽은 뒤 화장되지만, 일반적으로 토장(土葬)이다.


402.팔레오아시아제족


고아시아제어를 사용하는 제민족. 옛 아시아제족, 옛 시베리아제족이라고도 한다. 현재 러시아연방 영내에 살고 있다. 다른 민족과의 언어적인 관계가 확인되지 않아, 아시아 또는 시베리아 최고(最古)의 민족이라는 가정 아래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에 포함되는 민족은 다음과 같다. ① 예니세이강 중류에 사는 케트(예니세이 오스탸크;인구 약 1100) ② 아무르강 하류지방에서 사할린 북부에 걸쳐 분포하는 길랴크(니브흐;인구 약 4400) ③ 인디기르카강 하류지방에서 콜리마강 동쪽에 걸친 북극해 연안에 분포하는 유카기르(인구 약 800) ④ 캄차카반도 남부에 살며 러시아화(化)가 현저한 캄차달(이텔멘;인구 약 1400) ⑤ 캄차카반도 북방에 거주하는 코랴크(인구 약 7900) ⑥ 추크치반도의 동쪽과 북극해 연안에 걸쳐 널리 분포하는 추크치(인구 약 1만 4000). ①∼⑥ 외에 러시아의 학계에서는 ⑦ 에스키모(아시아의 에스키모는 인구 약 1500) ⑧ 알레우트(인구 약 500)를 더한다(이상 인구는 모두 1979년 조사). 이 가운데 ④ ⑤ ⑥의 상호간, 그리고 ⑦ ⑧의 상호간에는 저마다 언어상의 친족관계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지만, ① ② ③은 상호간의 관계는 물론 다른 언어와의 관계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403.팜파스인디언(Pampas Indians)


아르헨티나 중부의 대초원지대(팜파스)에 살고있었던 인디언의 총칭. 주요 부족으로는 푸엘체족·케란디족이 있었다. 라플라타강 북쪽 초원지대의 차루아족, 파타고니아지방의 테우엘체족과 인종적·문화적으로 가까운 관계에 있으며, 신체적 특징은 모두 단두(短頭)에 키가 크고 코는 넓고 높다. 농사를 짓지 않고, 가축도 기르지 않으며, 여러 가족이 한 무리를 이루어 일정한 영토 안을 옮겨다니며 먹을 것을 찾았다. 볼라(끝에 돌을 매단 줄)를 휘둘러 던져 동물의 다리를 감아 구아나코(야생 라마)와 레아(타조 비슷한 새)를 사냥하고,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채집하였다. 본디 도보로 이동, 수렵을 행하고 한 무리에 100명을 넘는 일이 없었으나, 유럽에서 말이 전래됨과 동시에 보다 효율적으로 수렵이 이루어져 몇백 명의 무리 집단도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밴드 이상의 사회조직은 없고, 인구밀도도 아주 낮았다. 부계사회로 아버지(남편)쪽 거주혼을 행하였다. 갖가지 정령을 믿고, 지고신(至高神)도 받들었으나 지고신은 세계를 창조하였을 뿐 그 뒤로는 사람들과 아무 관련도 없는 것으로 믿었다. 


404.펠리시테인


BC 12세기∼BC 11세기에 팔레스타인의 서해안 평야에 정착한 민족. 람세스 3세 치하에 에게해역에서 이동하여 해상으로부터 이집트에 침입을 시도하다가 격퇴당하였으며, 이집트 기록에는 <바다의 백성> 일원으로서 p-r-s-t로 나타난다. 그 땅은 BC 9세기말 아시리아 비문(碑文)에서 파라스투, 《구약성서》에서는 블레셋, 즉 페레시테로 언급된다. 이 민족은 토지정착시대 말기의 이스라엘 여러 부족을 가자·가데·아시케론·아시도드·에크론 등 5개 도시의 군사력으로 정복하여 사울을 전사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다윗에게 패한 뒤 반아시리아동맹을 맺고 이스라엘과 협력하였으며, 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에게 멸망하였다. 문화적으로는 가나안의 언어·종교 등을 따랐다.


405.표해민(漂海民) 


배를 주거지로 삼고 해상이동하면서 어업을 하는 집단. 홍콩의 단민(蛋民)과 미얀마의 남부 메르기제도에서부터 타이 남부의 안다만해, 말라카해협, 인도네시아 연안 여러 지역에 걸쳐 살고 있는 오랑라우트(orang laut;물의 백성)를 가리킨다. 오랑라우트 가운데는 북보르네오에서부터 필리핀의 술루제도, 민다나오섬 남부 연안에 분포하는 바자우족이 유명하다. 육지에 생활기반이 없는 집단이므로 풍파의 영향이 적은 다도해 주위를 근거지로 삼아 여러 가지 어로와 농경민과의 물물교환을 통하여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보르네오섬 서부 연안에서는 약 100여 년 전부터 육상과 관계를 맺어왔으며 바자우족 등은 정기적인 시장에서 거래하기도 하였다. 또한 해안에서 앞바다 쪽으로 이동하여 항상가옥(杭上家屋)의 취락을 이루는 예도 있다. 이 밖에 타이 남부의 푸케트섬과 말레이반도의 조호르바루 등에서는 관광 개발에 따라 생선요리집이 증가하면서 어패류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등 이동 범위가 축소되고 있다. 동남아시아 표해민들 사이에는 이슬람교가 많이 보급되어 있다.


406.푸난족(Punan, Penan)


동남아시아 남동부 보르네오섬 내륙부 산림지대에 사는 채집수렵민. 인종은 플료트 말레이계이며, 언어는 서오스트로네시아어에 속한다.20∼75명 정도의 소집단을 이루어 캠프생활을 하며, 멧돼지·사슴·원숭이류를 사냥하는 외에 과실·야생 사고야자 등에 의존하며 이동생활을 한다. 인종적으로 보르네오의 토착농경민족(다야크족)과 같으며, 언어·문화면에서도 주변 농경민, 특히 쿠냐족과의 유연(類緣)관계가 있다. 이는 푸난족이 농경민과 계속적으로 공생관계를 유지해온 결과로, 카얀족·쿠냐족의 수장(首長)층은 푸난족이 채집한 등나무나 등공예품(특히 매트)과 철제품이나 무명과의 교역을 독점함으로써 그 권력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대대적인 원시림 벌목과 개발사업 때문에 집단 정착생활을 유도하고 있어 점차 정착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407.푸르족(Fur) 


수단 서부 다르푸르지역 고산지대에 사는 민족. 다르푸르란 지명에서 푸르족이라는 이름이 생겼으며, 수단에서 가장 높은 마라산(3088m)에서 산다. 언어는 나일 사하라어족의 푸르어를쓴다. 종교는 아랍민족이 아니지만 이슬람교를 믿는다. 16세기 나일강까지 영토를 확장, 강력한 왕국을 이루기도 하였으나 아랍 침입자에 쫓겨 산지로 들어갔다. 16세기말 술리만 솔롱이 이슬람왕국을 건설하였는데, 그때부터 푸르족은 아랍 옷차림과 이름을 쓰게 되었다. 사회계층은 부유한 토지소유자와 농노로 나뉘며, 대장장이·무두장이·기술자 등은 천한 신분에 속한다. 일부다처제 사회이며, 이혼은 자유롭게 허용되어 있다. 부계가족제도이지만 결혼하면 남자는 여자의 친정 마을에 와서 살며 부부는 각자의 농토를 소유하는 등 경제적으로 독립되어 있다. 산지에 계단식 농업을 발전시켜 환금작물(煥金作物)인 목화·담배를 비롯해 밀·옥수수·땅콩·콩·토마토·감자·양파·마늘·호박 등을 재배한다.


408.푸어화이트(poor white)


미국 옛 남부의 빈민층. 옛날 남부의 노예제도 때 플랜테이션경제 때문에 몰락하여 벽지나 산간에 거주하던 반농반렵민(半農半獵民)들을 말한다. 이 이름은 처음 플랜터계급으로부터 붙여져 사회의 최하층을 가리켰으며 백인 우월주의의 뒷받침 구실을 하였다. 이들은 구남부 백인인구의 10∼30%를 차지했다고 한다. 남북전쟁 후에도 옛 남부시대의 습관에 따라 빈농계층을 이러한 용어로 부를 때가 많다.


409.푸에블로족(Pueblo) 


미국 뉴멕시코주와 애리조나주에 사는 약 20개 부족으로 이루어진 인디언의 총칭. 16세기에 들어온 에스파냐인이 낭떠러지에 세운 공동주택이 취락을 이룬 것을 보고 푸에블로(마을)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적으로 볼 때 1세기에서 1300년 부렵까지 이 지역 북방에 거주하였으며, 그 뒤 여러 차례에 걸쳐 남동·남서로 이주한 듯하다. 부족은 리오그란데강 연안에 사는 타노 푸에블로족과 케네스 푸에블로족의 동부 부족, 애리조나주에 사는 호피·주니 등의 서부 부족으로 나뉜다. 푸에블로 여러 부족은 옥수수 등을 경작하는 관개농경민이며, 사슴·들소·토끼 등의 수렵도 행하였고, 직물·바구니 세공 및 토기 만드는 기술이 뛰어났다. 동부 여러 부족은 대규모 관개를 행하여 마을의 결합력은 강하였으나 씨족의 결합이 약하였다. 이에 비해 빗물을 직접 이용하여 농경을 행한 서부 여러 부족은 마을의 결합력은 약하였으나 씨족의 결합이 강하여 공동노동이나 종교의례의 단위가 되었다. 출신·혼인형태는 부족간에 차이가 있었다. 본래 모계적인 씨족의 결합이 강한 마을이었으나, 리오그란데강지역으로 이주해 오면서 관개를 위해 공동노동과 강력한 통제력이 필요하여 모계씨족의 결합이 약화되고 쌍계적(雙系的) 친족 조직으로 바뀌었다.


410.풀라니족(Fulani) 


세네갈에서 카메룬 북부에 걸친 사바나에 사는 종족. 인구 약 600만. 지역에 따라 풀로·풀라·펠라타·풀베 등이라 한다. 언어는 니제르 콩고 어족 대서양안 제어(諸語)에 속한다. 흑인과 베르베르의 혼혈인종이라는 등 여러 설이 있다. 보통 풀라니는 유목풀라니·반정주(半定住)풀라니·정주풀라니로 크게 나뉜다. 유목풀라니는 백인에 가깝고 피부도 옅다. 유목에 종사하면서 다른 종족의 농경민과 평화적인 공생관계를 맺고 있다. 반정주풀라니는 농경과 목축에 종사하여, 10∼17세기에 기니·세네갈 등지에서 여러 왕국을 수립하였다. 정주풀라니는 흑인적 특징이 강하고 농민 또는 도시주민이며 열광적인 이슬람교도이다.


411.프러시아인(Prussians) 


발트해 남쪽 연안 비스바강 서쪽에서 메멜강에 이르는 지역에 거주하던 슬라브계 민족. 언어학적으로 인도-유럽계의 발트어족에 속하며, 스스로 프루사이(Prusai)라고 불렀다. 프러시아인들은 9세기 사료에서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인접한 폴란드·러시아와 무역관계를 유지하며, 경쟁하였다. 폴란드의 볼레슬라프 1세의 지배와 그리스도교의 강제 등에 대한 저항을 계속하여 1161년 볼레슬라프 4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13세기까지 독립을 유지하였다. 이 시기 프러시아인들은 귀족정치체제에 의해서 통치되는 11개 연방을 구성하였다. 프러시아인의 초기 봉건사회와 국가의 발전은 독일 봉건 가톨릭세력의 침입에 의해서 붕괴되었다. 즉 1226년 폴란드의 마조비아공(公) 콘라트가 독일 기사단을 이 지역에 불러들여 시작된 격렬한 투쟁은 독일 기사단이 1283년 지배권을 확립하면서 끝이 났다. 프러시아인은 거듭되는 전쟁 끝에 대부분 농노화되고 일부는 게르만화하여 독일족에 흡수됨으로써 역사에서 사라졌다.


412.프리지아인(Friesian) 


네덜란드·독일·덴마크 북부, 북해 연안의 프리지아 여러 섬에 거주하는 민족. 인구 약 30만. 게르만계통 민족으로 프리스인(Frisii)이라고도 한다. 종교는 그리스도교로 7세기 무렵 개종하였고, 언어는 영어와 비슷한 프리지아어를 쓰나 북·동 프리지아섬에서는 독일어를 쓴다. BC 3000년 무렵부터 프리지아지방에 정착하여 아우구스투스황제 시대에 로마의 맹방(盟邦)이 된 뒤, 로마·라인·스칸디나비아·영국을 연결하는 상업교역에 종사하였다. 게르만 민족이동기를 거쳐 프랑크왕국 지배 아래에서도 지리적 조건을 이용해 상업민족으로 활동하였다. 홍수가 잦았으나 제방과 운하건설로 토지유실을 막고, 저지대라는 이점을 살려 낙농을 발달시켰다. 주요 산업으로는 낙농을 비롯하여 밀·감자를 재배하였고, 전통적으로 통상·해운이 발달하여 이에 종사하는 인구가 많다.


413.플라망인(Flamands) 


벨기에 북서부, 낮은 지역에 사는 민족. 게르만계이다. 네덜란드어계 플라망어를 썼으며, 종교적으로는 가톨릭이다. 플랑드르 지방이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하였던 중세 이래 모직물 공업 및 기타의 수공업이 번창하였으며, 그 후 근세에 이르러 그 번영을 네덜란드에 빼앗겼지만 기술적인 전통은 아직도 끊어지지 않고 있다. 동남부에 사는 켈트계의 왈론인과는 인종적·사회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제2차세계대전 후 레오폴드 3세의 복위문제에서 대립을 빚기도 하였다.


414.피그마이오스(Pygmaios) 


고대그리스 전설상의 난쟁이족. 아프리카·인도 또는 러시아 남쪽에 살았으며, 키는 1피그메(약 30㎝)에 불과하였다. 워낙 키가 작아 학 등 새들과 심한 싸움을 벌였고, 목숨을 지키기 위해 양·염소로 변장하기도 하였다. 이 전설은 아프리카에서 실제로 살았던 종족에 관한 이야기에서 기원하여, 고대이집트를 거쳐 신화로 되어 그리스에 전해진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 아츠카족은 전설에 나오는 대로 학을 사냥하며 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 작은 종족을 총칭하는 피그미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415.핀인(Finn) 


핀란드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족. 우랄·볼가지역으로부터 이동하여 에스토니아에서 바다를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 핀인의 인류학적 특징은 큰 키에 흰 피부, 금발 또는 아마(亞麻)색 머리칼, 눈은 파랑 또는 회색으로 전형적인 북유럽인 모습을 하고 있다. 피노우그리아어족에 속하는 핀란드어를 유지해 온 핀인들이 핀란드에 정주한 것은 8세기 무렵으로, 당시에는 수렵과 어업을 영위하였다. 12세기 로마가톨릭교가 전파되고 교세 확장과 더불어 스웨덴의 영향력이 커져 13세기에 스웨덴 지배 아래 들어갔으며, 스웨덴은 광대한 지배체제를 유지하여 핀인의 자치를 허용해 민족문화가 형성되었다. 18세기 이후 여러 차례 합병을 기도한 러시아와의 갈등으로 민족주의 정신이 발현되어, 1875년에는 민족서사시 《칼레발라》가 복원되기도 하였다. 핀란드에 약 477만, 국외에는 미국에 약 20만, 캐나다에 약 6만, 오스트레일리아에 약 1만 5000명 정도의 핀란드계 이민이 있다. 러시아연방내 카렐리아공화국에는 핀인과 같은 계통의 카렐리아인이 약 9만 명 살고 있다.


416.필리스틴인(Philistines) 


BC 12세기∼BC 11세기에 팔레스타인의 서해안 평야에 정착한 민족. 람세스 3세 치하에 에게해역에서 이동하여 해상으로부터 이집트에 침입을 시도하다가 격퇴당하였으며, 이집트 기록에는 <바다의 백성> 일원으로서 p-r-s-t로 나타난다. 그 땅은 BC 9세기말 아시리아 비문(碑文)에서 파라스투, 《구약성서》에서는 블레셋, 즉 페레시테로 언급된다. 이 민족은 토지정착시대 말기의 이스라엘 여러 부족을 가자·가데·아시케론·아시도드·에크론 등 5개 도시의 군사력으로 정복하여 사울을 전사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다윗에게 패한 뒤 반아시리아동맹을 맺고 이스라엘과 협력하였으며, 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에게 멸망하였다. 문화적으로는 가나안의 언어·종교 등을 따랐다.


417.하우사족(Hausa) 


나이지리아 북부로부터 니제르 남부에 걸쳐 사바나지대에 주로 거주하는 흑인종족. 인구 약 1200만. 아프로아시아어족 차드어파에 속하는 언어(하우사어)를 사용한다. 기니콘(팥수수)·수수 등 잡곡과 쌀을 주작물로 경작하는 농경민으로 상업 활동도 활발하며, 서아프리카 넓은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13세기 무렵까지 카노·카치나·고비르·자리아 등 하우사의 7왕국으로 일컬어지는 도시국가군을 형성하였으며, 사하라교역의 중요한 중계점이었다. 이들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주위의 농촌을 지배하는 봉건 영주적 지배층이나 상인과 함께 다수의 장인집단을 거느렸으며, 여러 가지 공예품을 산출하였다. 하우사족은 일찍이 이슬람교로 개종하였고, 이슬람 문물을 도입하였다. 유럽인들과 접촉 이전에 아프리카인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쓴 유일한 기록인 하우사의 역사책 《카노연대기》도 아라비아어로 되어 있다. 하우사 여러 왕국의 번영은 오랫동안 계속되었으나, 18세기말 북서부 소코트지방에서 풀라니(풀베)족의 지하드[聖戰(성전)]가 일어나 풀라니제국(帝國)의 지배 아래 놓임으로써 멸망되었다.


418.하이다족(Haida) 


북아메리카 북서인디언의 한 종족. 현재 인구 약 2000명 정도. 캐나다의 퀸샬럿제도와 알래스카의 프린스 오브 웨일스섬 남부에 거주한다. 정주촌락을 만들고 어로·수렵·채집생활을 하며, 연어·북해산 큰가자미·대구는 이들의 중요한 식량자원이다. 까마귀와 독수리 등 2개 집단[半族(반족)]으로 나뉘고, 두 집단은 각각 몇 개의 모계 혈연집단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반족(半族)은 외혼단위로 되지 않고, 까마귀와 독수리 사이의 통혼은 금지된다. 모계 혈연집단은 몇 가구의 가족으로 이루어지며 취락을 구성하는데, 특정한 토템을 가지며 수장(首長)이 있다. 하이다족은 목공예에 능하며, 특히 카누 제작과 훌륭한 토템폴 만들기로 유명하다. 또 정치적·사회적 위신을 높이기 위한 경쟁적인 의례적 선물 <포트래치>를 주고받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하이다어는 아사바스칸어에 속한다.


419.하자르(Khazars) 


터키계통 유목민족. 7∼11세기에 카스피해 북쪽연안으로부터 흑해 북쪽연안에 걸친 초원지대를 지배하였다. 중국사료에는 가살돌궐(可薩突厥)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서남북 교역로 교차점이 되는 이 지방을 확보하여 강국이 되었고, 8∼9세기에는 당시 강대국이었던 이슬람제국이나 비잔틴제국과도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슬람사료에 따르면 그들의 풍속·습관은 동방의 돌궐과 비슷한 점이 많다. 유목민이기는 하지만 교역거점으로 몇몇 도시를 건설하였으며 또한 볼가강 어귀 부근에 있었던 수도 이틸은 각지로부터 모인 상인·수공업자로 활기를 띠었다. 800년 무렵 유대교를 국교로 삼았다. 10세기 이후는 북쪽에 나타난 유목민족과 슬라브 여러 공국의 공격을 받아 쇠퇴, 역사상 그 모습을 감추었다. 현재 동유럽 유대인의 기원이 하자르라는 설도 있다.


420.하카(客家) 


중국의 한(漢)민족이면서 독자적 전통과 생활양식 및 방언 하카어를 유지하는 사람들. 이들을 하카런[客家人(객가인)]이라 부르며 하쭈[客族(객족)]·하수[客屬(객속)]·하런[客人(객인)] 등의 별칭도 있다. 원래 고향은 황허강[黃河(황하)] 중류지역의 중위안[中原(중원)]지방인 것으로 알려졌다. BC 4세기 동진(東晉)시대 이후 오호난화(五胡亂華)에 의해 제1회의 남도(南渡)를 경험한 이래, 19세기 후반의 청(淸)나라까지 5회(또는 3회)에 걸쳐 남하, 이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카란 본래 <객이가언(客而家焉)>이란 뜻이며, 이주지인 광둥[廣東(광동)] 성내에서 먼저부터 살던 한민족과 구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하카런들은 호전적이나 단결력이 강하고 특히 여자는 남자 대신 노동하는 특성이 있다. 인구는 대략 중국 내에 4000만, 화교 500만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농업을 생업으로 하며, 이주의 조건을 살려 제2·3차산업에 종사하는 해외거주자도 많다. 태평천국난(太平天國亂)의 수령 홍수전(洪秀全)이 하카출신이며, 그 밖에 중국 근대 및 현대의 역사적 인물 중에 하카 출신자가 적지 않다.


421.한민족(韓民族) 


한반도를 중심으로 만주(滿洲)동부 일대에 살면서 공동문화권을 형성하고 한국어를 사용하는 민족. 인종상 황인종, 언어상 우랄알타이어계에 속한다. 한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대체로 신석기시대 이후 대륙지방에서 동쪽으로 진출한 예맥족(濊貊族)이 만주족인 숙신족(肅愼族)을 몰아내고 열하(熱河)방면에서 한반도의 구릉지대와 헤이룽강[黑龍江(흑룡강)]유역을 생활무대로 하여 정착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고대중국에서 동이(東夷)라고도 불렸던 예맥족은 중국의 한족(漢族)과는 별도로 독자적인 문화전통을 유지, 발전시켜 왔다. 일반적으로 예맥은 한족을 일컫는 총괄적인 명칭으로 쓰이지만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 등에서는 예와 맥을 분리시켜 단칭으로 파악하고 있다. 즉 고구려족에 관한 거의 모든 자료들은 <맥>으로만 표시하고 있지만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면서도 위치가 다른 부여에 대해서는 <예>로 표기하고 있다. 따라서 예맥이 문헌상으로는 한족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내용적인 면에서 보면 맥이나 예는 지역적인 분포상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개별적으로 가리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맥족은 고대아시아 민족인 퉁구스족에 속하며, 곰을 수호신·조상신으로 숭배하던 토템족으로 이러한 토템사상은 동북아시아의 여러 민족 사회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422.한인(漢人) 


중국 원(元)나라 신분제도 가운데 제3계급에 속하는 민족. 신분제도는 몽골인·색목인(色目人;위구르인·이란인 등의 서역인)·한인·남인(南人;옛 남송 치하 유민)으로 나뉜다. 그 가운데 한인은 옛 금(金)나라 지배 아래 있던 유민을 총괄하는 것으로, 한인·거란인·고려인·발해인 등을 가리킨다. 원나라는 이 신분제도에 따라 공적 지위뿐 아니라, 과거·형벌·부역 등 생활의 모든 면에서 차별을 두었는데, 몽골인·색목인은 정치적 요직 및 행정에 참여하는 지배적 지위에 있었고, 한인은 남인과 더불어 피지배자적 지위에 머물렀다. 이민족 왕조인 원나라가 압도적 다수인 중국인을 다스리고 그 통치의 지속을 도모한 데서 비롯되었다.


한족(漢族 Chinese) 중국 본토 재래(在來)의 종족. 한민족(漢民族)이라고도 한다. 그 발생 및 이동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중국 동부와 연안 여러 섬들 및 동북 지구에 이주하여 생활하고, 해외에서는 화교(華僑)로서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 거주한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민족으로 약 11억 3천만 명의 중국 인구 가운데 94% 정도를 차지한다. 몽골로이드에 속하며 담갈색 피부, 흑갈색 직모(直毛)와 홍채를 가지고 체모(體毛)는 적으며, 와상지수(渦狀指數)가 50% 전후인 점 등 여러 특성을 가진다. 내부적으로는 화북형(華北型)·화중형(華中型)·화남형(華南型)·내륙형(內陸型)의 지역적 차이가 있다. 키는 남쪽지방보다 북쪽지방 사람이 크다. 머리길이는 화북·화중·내륙형이 화남형보다 길며, 머리 나비는 화중형이 가장 넓고 다른 형은 별차이가 없다. 언어인 한어(漢語)는 중국티베트어족에 속하며 많은 방언으로 갈라져 베이징어[北京語(북경어)]를 표준어로 사용한다. 베이징어는 4성(四聲)이 있어 음의 높낮이에 따라 뜻이 달라지고 단음절적이고 고립적이며 표의문자인 특징이 있다.


423.한티족(Khanty) 


러시아연방 튜멘주 한티만시 자치구를 중심으로 오브강·이르티슈강 유역에 널리 분포해 있는 민족. 오스타크족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언어는 우랄어족 피노-우그리아어군의 우그리아어에 속하며, 서쪽의 만시족(보굴족)과 함께 오브우그리아라 불린다. 예전에는 우랄산맥 서쪽에도 분포해 있었으나, 러시아인과 핀계 여러 민족의 압박을 받아 지금 장소로 옮겨 온 것으로 알려졌다. 13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그 남부가 몽골제국과 시비르한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 시대의 영향이 아직도 관습법 등에 남아 있다. 16세기말 시비르한국의 멸망과 더불어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방언에 따라 북부(오브강 하류지역), 동부(오브강 중류지역), 남부(이르티강유역)의 3군(群)으로 나뉜다. 생업은 남부는 농경, 북부 툰드라 인접 지역에서는 순록 사육이 행해지며, 대부분 삼림지대에서 수렵·어업활동을 하고 있다. 신앙은 옛시대의 양상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구전문학이 풍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424.할하부(Khalkha) 


중국 명(明)나라 이후에 나타난 몽골의 부족이름. 할하부는 할하강의 이름에서 유래하며 <喀爾喀>으로도 표기한다. 다얀 칸의 여러 아들 중 알추 볼로드는 할하강 동쪽에서 싱안링[興安嶺(흥안령)]을 넘은 지방, 게레산자는 할하강 서쪽의 목초지를 부여받아 전자를 내(內)할하, 후자를 외(外)할하라고 하였다. 내할하는 5오톡으로 나뉘고, 1567∼1620년에는 명나라 동북변경을 자주 침범하였으며 알추 볼로드의 손자 스바하이, 에케 바가투루가 활동하였다. 그러나 스바하이의 조카 자이사이는 청(淸)나라 태조 누르하치[奴兒哈赤(노아합적)]와 1619년 톄링[鐵嶺(철령)]싸움에서 붙잡혀 내할하가 청나라에 복속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뒤 1636년 무렵에는 청나라에 편성되었다. 한편 외할하는 7오톡으로 나뉘고, 외몽골의 카라코룸 방면에까지 발전하여 유목생활을 하였다. 1688년 중가르 부족의 침략을 받아 청조의 보호를 받았으나 그 뒤 청조에 복속하여 3부 55기로 편성되었다. 건륭(乾隆) 연간에는 84기로 증가하여 외몽골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으나 내몽골의 다른 왕공과 마찬가지로 청나라 말까지 그 감독·관할 아래에 있었다.


425.헝가리인(Hungarian) 


핀우고르어족 헝가리어를 쓰는 헝가리의 기간주민(基幹住民). 마자르인(Magyar)이라고도 한다. 주로 헝가리에 거주하며 루마니아·유고슬라비아·체코·슬로바키아·우크라이나에도 소수 거주하고 있다.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주로 마자르자치지역(코바스나·하르기타·무레시)에서 생활하며 인구는 약 86만 명으로 스제클러(Szeklers)라고 한다. 헝가리 원주민은 우골족과 시베리아 서쪽에 살고 있는 투르크족의 혼합민족이다. 5세기초 남서쪽으로 이주해 하자르 투르크제국을 돌아다니다가 카스피아해 근처로 모여들었다. 830년 무렵 카바르로 알려진 하자르를 반대하는 3개 부족과 결합하여 7개 부족으로 이루어진 한 조직체로서 돈강 오른쪽 연안에 나타났다. 9세기말 슬라브족과 훈족을 차례로 정복하고 오늘날 지역을 차지하였다. 그 뒤 반세기 동안 브레멘·오를레앙·콘스탄티노플 등을 침략하는 등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유럽의 교차로에 있어 거듭된 침략전쟁으로 영토가 확장 또는 축소되기도 하였다. 이질적인 슬라브인·게르만인·루마니아인에 둘러싸여 계속적인 물적 형태와 문화의 혼합을 이루어 왔다.


426.헤브라이인


헤브라이어 이브리(ibrI;건너온 사람들)에서 유래한 말. 《구약성서》 등에서는 <히브리>로 번역되고 있다. 원래 특정 민족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을 가리킨 말이었는데, 외국인들이 유대인들을 멸시하여 부르면서 이스라엘인의 별칭이 되었다. 그 뒤 헤브라이는 이스라엘·유대·구약성서 등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거나 보다 넓은뜻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헤브라이인은 BC 2000년 무렵 고대오리엔트 지역 일대에 널리 퍼져 있던 가난한 사회층 하비루(habiru)의 일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믿고 단결하여 가나안땅에 정착해 살았는데, 이것이 헤브라이인 즉 고대이스라엘인의 기원이라고도 전한다. 《구약성서》 <출애굽기>에 상징되는 것처럼 그들은 농경지를 찾아서 정착생활을 하려다가 선주민의 학대를 받고 또 다시 불모지를 헤매는 식의 고난을 되풀이하는 동안 유일 절대신 여호와에 대한 신앙으로 결합, 종교·문화적으로 융합·동화되어 동일민족을 형성하게 되었다. 모세 율법에 잘 나타나 있다.


427.헬베티아인(Helvetian) 


켈트계의 한 부족인 스위스 원주민. BC 1000년 무렵부터 스위스지역에 살았던 켈트계 여러 부족 중 가장 강대하였다. 이들은 BC 2세기 게르만계 민족의 압력으로 남부 게르마니아에서 북부스위스로 이주하였다. BC 58년 로마의 G.J. 카이사르에게 정복되어, BC 15년 그들의 거주지역이 로마령으로 편입된 결과 급속히 로마화되었다. 게르만민족 이동기에 다시 게르만계의 알라만족·부르군트족에게 정복되어 이들에게 동화, 흡수되었다. 오늘날 스위스인의 별명으로 쓰인다.


428.호텐토트족(Hottentot) 


나미비아 남부에 사는 유목민족. 부시먼과 같이 설타음(舌打音)이라고도 하는 흡착음(吸着音)을 흔히 사용하는 코이산어족에 속하는 말을 쓴다. 부시먼과 호텐토트는 신체의 특성, 언어, 문화 등 3요소가 아주 비슷한데 부시먼은 채집·수렵, 호텐토트는 목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생활 방법으로 구별된다. 일찍이 동·중앙·남아프리카에 널리 분포되었던 부시먼이 15세기 무렵까지 남하해온 반투족에 압박을 받아 남부아프리카로 후퇴하는 과정에서 반투족과 융화하여 소를 유목하는 동시에 사회조직까지 동화된 일부가 호텐토트로 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호텐토트는 일찍이 남부아프리카 서해안에 널리 살고 있었으나 17세기 이후 백인의 침입으로 인구가 급감되었고, 경제·사회도 거의 전통적 형태를 남기지 않았다. 현재 가장 순수한 모습을 갖춘 부족이라 인정되는 나마 호텐토트가 나미비아를 중심으로 약 2만명이 있고 나머지는 절멸되었거나 케이프컬러드라는 혼혈그룹에 흡수되었다. 호텐토트란 보어어로 <말더듬이>라는 뜻이며, 스스로는 <인간 중의 인간>이란 뜻을 지닌 코이코인이라 자칭한다. 부시먼보다 약간 키가 커 남자의 평균신장은 160㎝이다. 여자는 지방둔(脂肪臀), 소음순(小陰脣)이 기형적으로 늘어진 것이 특징이다.


429.호피족(Hopi) 


미국 애리조나주 북동부에 사는 푸에블로 인디언의 한 종족. 언어는 유토아스텍어족의 호피어이다. 약 6000명의 주민이 집촌을 형성, 마을에 돌과 벽돌로 아파트식 공동가옥을 짓고 살며 모계(母系) 씨족을 구성하고 있다. 결혼은 모계 외혼제(外婚制)로서 처가에서 거주하는 제도였으나 현재는 없어지고 있다. 생업은 농업이고 옥수수·호박·콩 등을 재배하며 이 밖에 남자는 바구니세공, 여자는 토기를 만드는 기술이 뛰어나다. 카치나(kachina)제례는 동지부터 다음해 7월 말까지 정기적으로 개최되며 비와 풍작을 기원한다. 에스파냐인에 의해 그리스도교를 믿도록 강요당한 뒤에도 키바(kiva)라는 지하성당을 중심으로 고유의 종교를 지켜왔으나 전통문화는 점차 해체되고 있다.


430.회족(回族) Huizu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 인구는 약 862만(1990). 중국 서북위 닝샤후이족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영하회족자치구)]를 중심으로 간쑤[甘肅(감숙)]·칭하이[靑海(청해)]·신장[新疆(신강)]·구이저우[貴州(귀주)]·윈난[雲南(운남)] 등에 모여 살고, 기타 중국의 대부분 주요 도시에 산재해 있다. 그들의 조상은 7세기 무렵부터 중국에 들어간 아라비아나 페르시아의 이슬람교도들로 오랫동안 한족(漢族)·위구르족·몽골족 등과 혼혈되면서 한어(漢語)를 전적으로 쓰게 되어 한화도(漢化度)가 높은 이슬람교를 믿는 집단으로 형성되었다. 엄격한 계율을 가진 이슬람교 신앙 때문에 한족과 구별되어 회회(回回)·회자(回子)·회민(回民) 등으로 불리었다. 성격이 상무강직(尙武剛直)하여 농업 외에 군인·직공·상공업·여관업·교역업 등 대담성을 필요로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많다. 종교를 핵으로 하는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하는 한편 이슬람교사원을 청진사(淸眞寺)라고 부르는 등 일반의 언어풍습은 한화(漢化)되어가는 경향이 높다.


431.회흘(回紇) 


투르크계의 한 민족, 또는 그들이 건국한 나라. 회흘(回紇)·회골·웨이우얼[維吾爾(유오이)]이라고도 한다. 몽골에서 남시베리아에 걸쳐 널리 산재하고 있던 고대 투르크계 유목민족의 하나로, 돌궐(突厥)의 뒤를 이어 744∼840년 몽골에 유목국가를 건설하였다. 초대 회인 칸[懷仁可汗(회인가한)]이 위튀켄산 기슭에 도읍을 정하였고, 제2대 갈륵 칸[葛勒可汗(갈늑가한)] 때 안사(安史)의 난(755∼763)에 파병해 그 진압에 협력함으로써 한때 당(唐)나라보다 우위에 섰다. 그들은 유목생활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영내(領內)에 바이발릭[富貴城(부귀성)]·오르두발릭(카라발가순) 등 도성을 세워 지배층은 정착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문화면에서는 제8대 보의 칸[保義可汗(보의가한)]의 공적비인 <카라발가순 비문(碑文)>이 주목된다. 이 비문은 돌궐문자로 된 투르크어 외에 한문·소그드어로도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유목 위구르사회에 국제적 상인인 소그드인의 문화가 깊이 침투되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제3대 모우 칸[牟羽可汗(모우가한)] 시대 이래 종래의 샤머니즘과는 별도로 소그드인의 마니교가 신봉된 것도 그 한 예이다. 840년 내란과 북방 키르기스민족의 침공으로 위구르 유목국가는 붕괴하였다.


432.후르리인(Hurrians) 


서남아시아 카프카스산맥 남쪽 기슭 지방을 원주지로 하는 아르메노이드계 민족. BC 3000년 무렵부터 원주지를 떠나 북메소포타미아로 이동, BC 18세기 무렵 인도유럽어족을 지배자로 하는 왕국을 각지에 건설하였다. 아나톨리아지방에 침입한 일파는 히타이트제국, 유프라테스강 중류지역에서는 미탄니왕국, 바빌로니아에서는 카시트왕조가 세워졌는데 각국의 왕명이나 신명(神名)으로 보아 인도유럽어족의 영향을 알 수 있다.


433.후투족(Hutu) 


르완다·브룬디에 거주하는 종족. Bahutu·Wahutu라고도 한다. 대부분 이 두 나라에 살고 있는데 지역 원주민인 트와족을 몰아내고 이곳에 정착하였다. 14∼15세기 무렵 이 지역으로 이주한 툿시족에 종속되어 오다 1950년대말 툿시족의 지배에서 벗어나 르완다의 정권을 장악하였으나 브룬디에서는 여전히 툿시족의 군사정권에 예속되어 있다. 후투족과 툿시족 문화는 상호 혼융된 부분이 많은데 후투족의 친족·씨족 제도는 툿시족 문화에서 기인한 듯하며 툿시족과의 혼혈로 밝은 피부빛, 날씬한 체형을 가지게 되었다. 주로 소규모 농경생활을 하고 반투어를 쓰며 애니미즘·그리스도교를 믿는다.


434.훈족(Huns) 


중앙 아시아의 스텝지대에 거주하였던 투르크계 목축민족. 중국 고대사에 나오는 흉노(匈奴)와 같은 종족인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4세기초 유럽으로 이동하여 다뉴브·타이스강 사이에 약 반세기 동안 머문 뒤 375년 흑해 북쪽 연안의 동(東)고트족 대부분을 굴복시킨데 이어, 서고트족을 압박하여 게르만족 대이동의 발단을 만들었다. 4세기말 루아왕 때는 오늘날의 헝가리·트란실바니아 일대를 지배하였고, 아틸라왕 때는 전성기를 이루어 동·서로마를 압박하고 주변의 게르만 여러 부족을 부속시켜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아탈라왕은 약탈을 일삼았고 로마제국에 큰 위협을 주면서 다시 서쪽으로 진출하였으나 451년 로마군과 게르만 여러 부족의 연합군에게 북프랑스의 카탈라우눔의 평야에서 패하였다. 453년 아틸라왕이 죽은 뒤 게피다에인의 반란, 판노니아에서의 패전 등으로 대제국은 급속히 해체되고, 훈족은 다뉴브강 하류로 후퇴하여 얼마 뒤에는 타민족과 혼혈·동화되어 소멸되었다.


435.히바로족(Jivaro) 


아마존강 상류의 에콰도르와 페루 동부 열대저지대에 걸쳐 거주하는 부족. 자칭 <수아라>라고 하며, 아추알족·아구아루나족·우안비자족 등으로 나뉜다. 언어는 히바로어족(語族)에 속하고, 친족끼리 커다란 공동주택에 모여 산다. 인구는 한때 약 3만 명에 이르렀으나 현재는 2만 명 정도이다. 무독(無毒)매니옥·옥수수·고구마 등을 재배하는 화전농경민이지만, 바람총을 이용한 수렵, 어독(魚毒)을 사용한 어로활동도 중요하다. 히바로족은 적을 공격하여 목을 자르는 참수족(斬首族)으로 유명하다. 잘라 온 목을 말려서 오렌지만한 크기로 가공한 것을 <찬차>라고 하는데, 이는 죽은 사람의 복수의 혼을 가둠으로써 초자연적 권능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유래된 풍습이다.


436.히타이트(Hittites) 


BC 2000년 무렵부터 BC 1190년에 걸쳐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활동한 인도유럽어족. 말·전차·철제무기를 사용하여 오리엔트 최강국가를 이룩하였다. 흑해 너머 지역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이는 히타이트인은 처음에 아나톨리아 중부를 장악하고 하투샤(지금의 보가즈쾨이)에 수도를 마련하였다. 하투실리시 1세 등 고왕국(古王國) 초기 왕들은 시리아 북부로 세력을 확장하였고 무르실리시 1세는 바빌론까지 원정하였다. 그 뒤 왕위계승을 둘러싼 내분으로 왕권은 불안정해졌고 혼란시대가 계속되었다. 여기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투드할리야시 2세로서 그는 BC 15세기 중엽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고 신왕국을 건설하였다. 히타이트제국은 수필룰리우마스 1세의 재위기인 BC 14세기에 전성기를 누렸다. 수필룰리우마스 1세는 아나톨리아 서남부에서 아르자와를 물리쳤고 동남부의 미탄니왕국과 싸웠으며, 시리아에서 히타이트세력을 확립하였다. 여기에는 히타이트인의 용감한 성격도 큰 몫을 하였지만 철제무기와 말과 2륜전차에 의한 새 전술의 채용이 크게 공헌하였다. 무와탈리시는 BC 1299년 시리아의 패권을 둘러싸고 이집트 람세스 2세와 오론테스강변의 카데시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였다.


[야후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