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한 비운의 정치가 화궈펑은 누구
[연합뉴스] 2008년 08월 21일(목) 오전 01:07
(베이징=연합뉴스) 홍제성 특파원 = 20일 87세를 일기로 별세한 화궈펑(華國峰)은 마오쩌둥(毛澤東) 전 중국 공산당 주석의 후계자로 잠시 중국을 통치했으나 개혁개방의 아버지인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권좌에서 밀려난 비운의 정치가다.
1921년 산시(山西)성의 자오청(交城)에서 출생한 그는 1938년 타이위안(太原)의 중학을 중퇴하고, 항일 게릴라전에 참가하면서 중국 공산당에 가입했다.
1945년 자오청 당위원회 서기 및 군(軍) 지방부대 정치위원으로 토지개혁을 지도하고 1949년 중공군을 따라 남하해 후난(湖南)성 샹인(湘陰)현 당서기 겸 무장부대 정치위원으로 토지개혁을 주도해 농업합작화 운동에 큰 성과를 올렸다.
1958년 후난성 부성장이 됐고 이듬해 마오쩌둥에게 발탁돼 후난성 위원회 서기로 승진했으며 1964~1966년 후난에 240㎞에 달하는 대규모 수리 관개용 수로공사를 지휘함으로써 농업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과시했다.
1968년 후난성 혁명위원회 부주임, 1969년 당 제9기 중앙위원, 후난성 당위 제1서기 겸 후난성 군구 제1정치위원이 됨으로써 후난성의 당ㆍ정 최고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1971년 '린뱌오(林彪)' 사건으로 중앙으로 진출, 국무원에서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지도하에 이 사건을 조사함으로써 1973년 당 제10기 중앙위원, 중앙정치국 위원, 1975년 국무원 부총리 겸 공안부장, 1976년 2월 국무원 총리직 대행, 4월 당 중앙위 제1부주석 겸 국무원 총리가 되는 등 출세 가도를 달렸다. 같은 해 9월에 마오쩌둥이 사망하면서 당 주석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군부 실력자와 협조해 문화대혁명의 주도자인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부주석 왕훙원(王洪文), 정치국 상임위원 겸 국무원 부총리 장춘차오(張春橋), 정치국 위원이자 마오쩌둥의 아내인 장칭(江靑), 야오원위안(姚文元) 등 이른바 '문혁 4인방'을 제거했다.
그는 문화대혁명의 4인방을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오히려 문혁 당시 실각해 박해를 받았던 실용주의 노선을 걷던 덩샤오핑 일파에게 실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로 인해 1980년에는 국무원 총리직을, 1981년에는 당 주석직을 사임했다.
그럼에도 2002년 11월 공직에서 은퇴할 때까지 공산당의 중앙위원을 맡았던 것으로 볼 때 정치적 활동에 철저한 제약을 받은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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