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서 귀화한, 독도 지킴이' "상대 빈틈 노리는 일본…
[중앙일보] 2008년 07월 20일(일) 오전 08:15
지난 2월 21일, 일본 시마네(島根) 현이 2005년 일방적으로 정한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표현)의 날’을 하루 앞두고 한 장의 고지도가 중앙일보에 공개했다. 1894년 일본에서 발간된 '신찬 조선국전도'라는 그 지도는 19세기 말 메이지(明治) 시대의 일본인들이 독도가 조선 영토라고 인식하고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일본의 도서관들을 뒤져 이 고문서를 찾아낸 인물은 바로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도쿄대 공학부를 나온 뒤 전공을 바꿔 한·일 관계 논문으로 고려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딴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2003년엔 아예 한국에 귀화했다. 그런 호사카 교수에게 다행히 일본인들의 사이버 테러는 없다고 한다. 대신 그의 연구 상황을 염탐하려는 일본 연구자들이 서양 사람이나 한국인을 가장해 e-메일을 보내오곤 한단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 그리고 그의 귀화 과정 등을 중앙SUNDAY가 들어봤다. 다음은 호사카 교수 인터뷰 전문.
독도 문제가 터질 때마다 언론에 단골로 등장하는 손님들이 있다. 호사카 유지(52) 세종대 교수도 그 중 하나다. 한·일 관계에 대한 수많은 논문과 책, 그리고 일본 내의 고문서 발굴을 통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건 억지”임을 밝혀온 그는 2003년 한국에 귀화한 사실로 더욱 관심을 끈다. 도쿄대 공학부 출신의 그가 갑자기 전공을 바꿔 한·일 관계 전문가가 된 사연은 뭘까. 그토록 한국 사랑이 넘치는 그가 이름은 한국식으로 바꾸지 않은 이유는 또 뭘까. 다음은 중앙SUNDAY 전문
김정수 기자
요즘 그의 하루 스케줄은 각종 매체 인터뷰로 꽉 차 있다. 이전에도 독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신문·방송의 단골손님이었다. 그럴 수밖에.『일본 고지도에도 독도는 없다』(2005, 자음과 모음) 같은 저서를 펴내고 일본 고문서 발굴을 통해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임을 거듭 밝혀온, 일본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전문가이니 말이다.
호사카 유지(保坂祐二·52) 세종대 교수. 그를 만난 15일은 일본 문부성이 독도 영유권 관련 문구가 명기된 교과서 해설서를 공개한 다음 날이었다. 만나자마자 깍듯이 몸을 숙이며 인사하는 태도, 유창한 한국어에 섞여 나오는 '도쿄 사투리'는 그가 일본인임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독도 문제에 대해 일본을 비난하는 그의 태도는 너무도 단호했다. 학자적 양심을 넘어, 한국에 대한 애국심의 표현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웬만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다.
“아버지가 재일교포나 재일 한국인들과 많이 거래하셨는데 모두 인상이 좋았다. 특히 아버지가 어떤 심포지엄에서 만나셨다는 서울대 교수님에 대해 '일본인 중에는 그런 인격자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걸 듣고 한국인은 일본인보다 인격자라는 생각이 강하게 박혔다. 1970년대만 해도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이 심했는데, 재일교포 친구들은 그런 걸 많이 겪으며 자랐기 때문인지 다른 또래에 비해 굉장히 어른스러웠다. 역도산이나 최영의(최배달) 등 내가 좋아했던 운동선수들도 알고 보니 한국 출신이었다.”
도쿄대 공학부를 나온 뒤 갑자기 전공을 바꿔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원래 역사를 좋아했다. 특히 한일관계사에 관심이 많아 대학 졸업 후에도 학습서와 NHK 라디오의 한국어 강좌 등을 통해 한국어를 혼자 공부했다. 한국인인 아내를 알게 된 것도 일본에서 열린 한일교류 심포지엄에서다(현재 3남매를 두고 있다). 86년 결혼한 뒤 결국 88년에 한국으로 유학을 왔다. 고려대에서 일제시대 개화파에 대한 연구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일제의 조선·만주 지배정책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둘 다 정치학)를 받았다.”(세종대엔 정치학과가 없기 때문에 그는 교양학부에서 일본학을 가르친다.)
독도 문제 같은 걸로 일본인한테 사이버테러 같은 건 당하지 않았나.
“일본의 독도 관련 사이트에 들어가 내 이름을 입력시키면 200~300개의 글이 뜨는데 80% 이상이 욕이다(웃음). 대개 일본 밖 외국에 서버를 둔 사이트다. 일본은 그런 욕도 단속하기 때문이다. e-메일도 추적 당할까봐 함부로 보내지 못한다. 최근엔 서양사람 이름으로 영문 메일이 왔는데, 독도와 관련해 상당히 전문적인 의견을 묻는 기조가 일본인 같았다. ‘전화번호를 가르쳐주면 직접 전화로 설명하겠다’고 답장했더니 ‘외국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받을 수 없는 번호’라고 했다. 말도 안되 길래 다시는 이런 메일 보내지 말라고 했다. 한국어로도 그런 메일이 가끔 온다. 대개 독도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진행된지 알아보려고 일본 연구자들이 보내는 것 같다. 일본인들은 욕하는 것으론 한계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날 무너뜨릴 방법을 찾는다.”
귀화도 비난하는 이들이 많을 텐데.
“귀화에 대한 한국인과 일본인의 생각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국인은 일본에 귀화했다고 하면 ‘배신’으로 여기지만 일본인은 어느 나라에 귀화했느냐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 사정이 있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도 2003년 귀화할 당시 15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이해해주는 분위기다. 나를 욕하는 사이트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귀화까지 한 것은 오히려 가장 일본인다운 태도’라고 칭찬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래도 유교 의식이 강한 부모님은 싫어하실 것 같아 귀화한 지 1년 뒤에야 말씀 드렸다.”
지난해 『조선 선비, 일본 사무라이』라는 책에서도 양국의 문화적 차이를 설명해 놓았던데.
“일본은 사무라이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다. 외교 전략을 세울 때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100전 100승’이라는 손자병법식 생각을 하기 때문에 우선 상대를 많이 연구해서 빈틈을 찾는다. 철저히 계산하고 상대를 대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얻는 게 많다. 그런데 유교적 선비 문화가 남아있는 한국은 외국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이다. 외국 정상이 와도 ‘국빈’으로 대우해줄 뿐 전략의 대상으로 보지는 않는 것 같다. 독도 문제 역시 일본은 역사적인 논쟁으로 번지면 불리하다는 걸 이미 깨닫고 영토분쟁화 하려는 것이다. 20~30년 후 국제 정세가 바뀔 때를 대비해 어린 세대에게 교과서를 통해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한다. 그렇게 미래를 구상하고 행동하는 일본인에게 맞서려면 한국도 좀 더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
호사카 교수는 요즘 숨 돌릴 틈도 없다. 이번 주에는 일본에 간다. 도서관들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독도의 한국 영유권을 입증해줄 또 다른 고문서를 찾기 위해서다. 아직까지 한국 이름으로 바꾸지 못한 것도 그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귀화할 때 누군가 지어준 '호삭하'란 이름을 무심코 신청했다가 법무부 관리가 오히려 “중국사람 이름 같다”며 말렸다고 한다. 이름이 무슨 상관일까. 그는 이미 분명한 한국 사람인데―.
[중앙일보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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