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1마일 공장 지나면 쇳덩이가 스텔스 전투기로…
[조선일보] 2008년 05월 02일(금) 오후 03:18
포트워스(Fortworth)는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시(市) 바로 옆에 있다. 개척시대 인디언의 공격으로부터 요새(要塞·Fort)를 지켜낸 장군(Worth)의 이름을 따 만든 도시지만 지금은 댈러스보다 더 활기차게 성장하고 있다. 이곳에 1942년 록히드마틴 공장이 들어섰다.
사람들이 '포트워스 록히드마틴 공장'이라고 부르지만 공식 명칭은 '미 공군 플랜트 #4'다. 얼마 전까지 미 공군이 작전을 펴던 활주로를 포함한 광활한 부지의 상당 부분을 미 공군이 통제하고 있다. 민간기업이지만 군사시설처럼 관리되고 있다.
포트워스에서 지금까지 생산된 전투기, 수송기는 7종류, 3470대다. 2차 세계대전 때 전장(戰場)을 강타한 B-24 폭격기를 비롯해 C-87 수송기, B-32, B-36, B-58 전폭기와 F-111, F-16이 여기서 만들어졌다. 미국엔 군사력의 상징, 적국에는 '살상무기 창고'로 불리는 현장을 지난달 14일 찾았다.
포트워스 공장에 들어서는 데만 두 차례 검문을 받았다. 공장 곳곳에는 '통제'를 알리는 표지가 붙어있다. 직원 수가 1만 명이라는데, 돌아다니는 직원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출입문도 ID카드로 열고 닫는 시스템이다. 외부인은 문밖을 나섰다간 미아(迷兒)가 되기 십상이다.
록히드마틴 관계자들은 처음에는 이런저런 이야기에 아침식사까지 제공하며 친절을 베풀었다. 그런 그들의 눈빛이 공장 방문 시간이 다가오자 야릇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카메라는 안 됩니다. 비디오는 더 곤란하죠. 노트도, 볼펜도, 여권도, 동전도 안 됩니다…."
록히드마틴이 군사기밀에 속하는 포트워스 공장을 한국 언론에 공개한 이유는 최근 이 회사가 만들어낸 제5세대 전투기 F-35와 F-22 전투기에 세계가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한 줌의 정보라도 새어나갈 것을 우려한 듯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고 제지했다.
그들은 기자가 왼손에 낀 결혼기념 금반지도 테이프로 감았다. 불쾌한 표정을 짓자 이런 설명이 나왔다. "이 공장이 1마일(1.6㎞) 길이입니다. 세계 최대 규모죠. 쇳덩어리가 1마일을 지나면 전투기로 둔갑하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볼펜이라도 떨어져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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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미국 알래스카 상공에 F-15, F-16, F-18이 등장했다. 그들은 상대 전투기 한 대와 미사일과 기관포만 레이저로 대체했을 뿐 실전과 다름없는 공중전을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미 공군 주력기들이 전멸한 것이다. 스코어 144 대 0, 창공을 초토화한 가공할 전투기는 F-22였다.
F-22는 '랩터(Raptor)'라 불린다. 랩터는 라틴어로 '가로채서 잡아먹는다'는 뜻이다. 앞에 '빠르다'는 뜻의 라틴어 '벨로시'가 추가되면 공룡(恐龍)의 고유명사가 된다. 영화 '주라기 공원'에서 잔인하게 인간을 사냥해 '티라노사우루스'보다 관객을 더 소름 돋게 한 그 공룡이다.
이 공룡을 처음 만들어낸 곳이 바로 포트워스다. 현존하는 전투기 사상 최강의 전투기라는 수사(修辭)를 입증하듯 미 국방부는 F-22를 2015년까지 외국에 수출하지 않기로 했다. 일본이 관심을 갖고 구매 의사를 표했지만 아직 '수출 불가(不可)'입장에 변화가 없다.
하지만 F-22는 99% 미인박명(美人薄命)이란 말처럼 단명(短命)할 운명이다. 대당(臺當) 가격이 2000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미 공군은 381대의 F-22가 필요하다고 국방부에 요청했다. 국방부는 F-22를 183대 구입한 후 더 이상 주문하지 않고 있다. 미 국방부가 이러는 이유는 또 있다.
F-22보다 공중전 능력만 다소 달릴 뿐 전 분야에서 성능이 더 뛰어나면서도 가격은 3분의 1인 새 전투기가 개발된 것이다. 바로 F-35 라이트닝Ⅱ다. '라이트닝(lightning)'은 '번개'라는 뜻이다. 거기 로마자 Ⅱ가 붙은 것은 1938년 P-38 라이트닝이라는 기종이 이미 개발됐기 때문이다.
길이 15.40~15.48m, 날개 폭 10.67~13.10m, 높이 4.57~4.78m로 공군, 해군용과 해병대용 수직이착륙기(垂直離着陸機) 세 종류로 생산되는 F-35는 향후 최소 20년간 '창공(蒼空)의 지배자'로 자리가 예약돼 있다. 달랑 183대만 생산된 F-22와 달리 미 공군에서만 2443대를 도입할 예정이다.
F-35 개발에 참가한영국, 이탈리아, 호주, 터키,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캐나다도 최소 48대에서 131대를 주문했다. 여기에 이스라엘과 싱가포르도 선(先)주문을 넣었다. 최근 20년간 F-16이 기록한 베스트셀러 기록(4000대)을 단숨에 돌파할 태세다.
F-35는 한마디로 '먼저 보고 먼저 쏘고 먼저 죽이는(First to see, First to shoot, First to kill)' 전투기다. 삼국지의 장비(張飛)는 장판교에서 장팔사모 한 자루로 허풍을 떨어 조조 군사의 기(氣)를 눌렀다. F-35는 과학적인 장비로 적을 제압한다.
첫째 적기는 근접해서 눈으로 보기 전까지 레이더상으로 F-35를 볼 수 없다. 이게 가능해진 것은 F-35가 기존 전투기와 달리 완벽한 스텔스(stealth) 기능을 갖췄기 때문이다. 스텔스는 적군의 레이더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 지금까지는 전투기 동체(胴體)에 특수 페인트를 발랐다. 페인트가 적군의 레이더가 발사한 전파를 흐트러뜨리는 것이다. 기체 구조도 전파를 산란시킬 수 있도록 고안했다. 그렇지만 미사일이나 폭탄까지 페인트를 바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F-35는 페인트 대신 특수 필름을 아예 동체에 입혀버린다. 무기는 내장해 필요할 때만 투하하는 식이다. 인간이 레이더상에 작은 점으로 나타날 때의 크기를 1m라 할 때 F-35의 크기는 곤충 크기로 잡힌다고 한다.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둘째 F-35에 장착된 레이더는 F-22에 장착한 것을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정확한 명칭은 AN/APG-81로 공중, 지상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이 이 레이더에 잡힌다. 여기에 다른 F-35와 데이터를 연결할 수 있다. 2대 혹은 4대로 편대(編隊)를 짓던 과거 작전 개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셋째 F-35는 고장 났을 때 수리가 간편하다. 록히드마틴 관계자들은 스패너를 포함해 6가지 종류로 된 수리도구를 보여주며 "마당에 잔디 풀을 깎는 것보다 더 쉽다"고 했다. 다분히 과장됐지만 동체가 몇 개의 큰 덩어리로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거짓말로 들리지는 않았다.
넷째 F-35는 공대공(空對空) 공대지(空對地)를 동시에 상대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기존 전투기보다 능력이 최소 4배에서 최대 10배로 늘어났다고 한다. F-22가 주로 적 전투기와 교전하는 데 쓰인다면 F-35는 적기도 상대하면서 지상공격도 하는 다목적이라는 것이다.
다섯째 가격이 6000만 달러(600억원)로 F-22의 3분의 1이다. 앞으로 대량생산되면 가격이 더 내려간다고 한다. 록히드마틴은 가격 이야기가 나오자 신이 나는 듯 "당신도 한 대 사겠느냐"고 했다. "카드도 되느냐"고 응수했더니 "할부도 해주겠다"고 킬킬대며 한 술 더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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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설명을 들은 뒤 기자는 F-35 실물을 봤다. 시험용으로 운항된 X-35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정식 생산된 F-35는 단 한 대다. 이 전투기가 4000~5000회 테스트를 받으면서 개량을 거듭해 최종 완성품이 나온다. 영국의 해리어 같은 수직이착륙기지만 더 안정된 성능으로 개량된 수직이착륙형 F-35는 5월 23일 첫 완제품이 나온다.
F-35 실물을 본 후 기자는 F-35 조종 시뮬레이터에 앉았다. 4개로 나뉜 F-22 조종석과 달리 왼쪽에 작은 버튼을 누르면 적기가 나타나고 오른쪽으로는 전투기를 상승(上昇) 하강(下降)시키는 레버가 있다. 그 레버로 위치를 잡은 뒤 위에 달린 빨간 버튼을 누르면 미사일이 발사된다.
자동차 운전자라면 기능을 30분 정도면 숙지할 수 있다. 기자는 20분간 시뮬레이터를 조작한 뒤 적기 4대를 미사일로 격추했다. 옆에서 도와주던 교관은 적기가 전자게임처럼 한 대 한 대 화염에 휩싸일 때마다 "엑설런트(excellent)"라며 치켜세우더니 "적은 당신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죽었다"고 했다.
고개를 끄덕거릴 즈음, 록히드마틴 수석(首席)시험조종사 톰 그리즐리가 나타났다. 공군 파일럿 출신인 그는 F117 전폭기가 만들어질 때 이 회사에 입사했다. 기자가 질문도 하기 전 그는 "첫 시험비행 뒤 15분 만에 다시 F-35를 몰고 나갔다"며 "F16은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했다.
18일 기자는 다시 워싱턴 DC 크리스털시티 부근의 록히드마틴 화력통제소를 방문했다. 황금색 철문이 열리자 F-35가 실제로 쓰는 벌컨포와 미사일, 레이더가 모습을 드러냈다. 포트워스와 달리 이곳 직원들은 사진촬영을 자유롭게 허락했다.
여기서 기자는 F-22와 F-35 조종 시뮬레이터를 동시 체험했다. 10년 전 개발된 F-22와 달리 F-35는 편의성이 돋보였다. F-35는 360도 상황이 헬멧 위에 스크린처럼 나타난다. 야간 훈련 때 육지로 착각해 바다로 떨어지는 사고가 국내에서 여러 차례 있었다. F-35는 그런 가능성을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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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차기전투기 2차 사업의 기종으로 F-15K를 정하고 2012년까지 21대를 도입하기로 했다. F-15K는 보잉사에서 제조한 비행기로 완전한 스텔스 기능은 없지만 제4세대급 전투기 가운데 최강이다. 실전 능력에서 우리 공군의 주력인 F-16K를 압도한다.
문제는 이 F-15K가 미국에서는 사양기종이라는 점이다. 미 공군도 더 이상 구매하지 않는 F-15K를 들여오게 된 공군 측 논리는 이렇다. "F-35는 지금 주문해도 2014년이나 돼야 배치되는데 6년간 기다리기에는 너무 시간이 길다."
반론도 있다. 차라리 F-15K 구매에 들일 돈의 절반만 들이면 현재 한국이 보유 중인 구식 F-16 120대를 첨단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둘러싼 찬반양론을 소개하자면 적지 않은 지면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2012년 이후 우리에게는 F-22 혹은 F-35로 무장하든지 유럽제 전투기, 러시아제 전투기 가운데 하나를 차세대 주력기로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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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35를 관찰한 후 세 가지가 궁금했다. 첫째 일본은 F-22, 한국은 F-35를 구입했을 때 동북아에서의 힘의 균형이다. 일본은 F-22를 사겠다고 했지만 미국은 2015년까지 F-22의 수출을 금했다. 하지만 역대로 미국은 한국보다 한 수 위의 기종을 일본에 공급해왔다. 그래서 지금의 입장이 내일 변치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에 대해 미 국방부와 록히드마틴의 입장은 노코멘트다.
둘째 한국 공군이 북한은 물론 중국, 러시아와 비등한 공군력을 보유하려면 몇 대의 F-35를 사야 하느냐다. 그들의 답은 "100대"라는 것이었다. 대당 6000만 달러니 60억 달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이 아직 조기경보기(早期警報器)나 군사위성이 없는 상황에서 F-35 단독으로 기대했던 것만큼의 최대 위력을 낼지는 미지수다.
셋째 수직이착륙형 F-35를 1만4000t급 수송함인 '독도함'에 배치하는 방안이다. 현실화된다면 독도함은 명실상부한 경(輕)항공모함이 된다. 세계 최강인 한국형 이지스 '세종대왕함'과 연합작전을 펴면 동해에서 한국의 해군력은 압도적이 된다. 한국 해군도 이런 구상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그렇게 될 가능성은 작다고 한다. 독도함의 갑판이 수직이착륙기가 이륙하면서 내뿜는 압력을 견딜 만큼 견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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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35의 제작현장을 둘러본 뒤 떠오른 의문은, 터키 같은 나라조차 미국과 차세대 전투기 공동개발에 참가해 기술이전을 받으며 자국 항공산업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는데 우리는 왜 제외됐느냐는 것이다. 한 예비역 공군장성은 "우리 무기 획득법은 개발 중인 무기에 투자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측 역시 "한국을 참가시키고 싶어도 한국의 법 때문에…"라고 했다.
우리 법이 그런 규정을 둔 것은 부정(不正)이 많은 무기사업의 특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린다 김 사건 같은 악몽이 재연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실물도 아니고 개발 단계라면 돈을 날릴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국민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세계 10개국이 사용할 전투기에 과감하게 투자한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이제 설령 현금을 주고 F-35를 사온다 해도 당분간 기술이전을 받을 수 없다. 기술이전 시기는 F-16 때 그랬던 것처럼 생산중단 시기가 임박해야 될 것이다. 실리 없는 청렴(淸廉)이냐 그 반대냐. 한국의 역사는 고비마다 이런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문갑식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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