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동포

일본서 온 며느리가 마을 복덩이랑께

한부울 2008. 2. 6. 11:45
 

일본서 온 며느리가 마을 복덩이랑께

[동아일보] 2008년 02월 06일(수) 오전 02:58

 


해남 흑천마을 부녀회장 소메야 씨의 한국생활


《“우리 마을 복덩이여라. 마을 일을 똑 소리 나게 해분당께.” 1일 오후 전남 해남군 옥천면 흑천마을. 설을 앞두고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이 소메야 유코(染谷柔子·39) 씨 옆에 둘러앉아 “우리 부녀회장이 최고”라며 연방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아따 아짐들,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마쇼 잉∼”얼굴이 붉어진 소메야 씨는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를 하며 손사래를 쳤다.》


1995년 시집와… 사투리에 트로트 노래까지

트랙터-콤바인 몰며 농사 짓는 ‘억척 며느리’

마을 일 도맡아해 주민들이 잔칫상 마련도


이어 막 삶은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 나물, 과일이 차려진 상이 나왔다. 부녀회장을 맡아 고생하는 소메야 씨를 위해 부녀회원들이 마련한 잔칫상이다.


전임 부녀회장 신순희(55) 씨가 “우리 부녀회장 노래 한번 들어 보더라고” 하며 운을 떼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소메야 씨가 최근 유행하는 트로트 한 곡을 멋들어지게 부르자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 마을 중책 맡은 일본인 부녀회장


소메야 씨는 1995년 농사를 짓는 남편 임경진(39) 씨와 결혼해 이 마을에 정착했다. 그가 부녀회장을 맡은 것은 지난해 1월. 60여 가구 130여 명의 주민은 살림솜씨가 야무진 그를 만장일치로 부녀회장으로 추대했다. 이후 그는 시어머니, 시동생, 남편 등 7명의 대가족을 챙기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마을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섰다.


지난해 어버이날에는 경로잔치를 성대하게 치러 ‘마을 심부름꾼’으로서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윤광석(70) 이장은 “소메야 씨가 부녀회장을 맡고 난 뒤부터 마을에 활력이 넘친다”며 “면 전체 부녀회장 43명 중 나이가 가장 어리지만 일을 야무지게 잘해 다른 마을에서 ‘젊은 부녀회장을 둬 좋겠다’며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소메야 씨는 “주위에서 ‘왜 이런 사람을 뽑았느냐’는 얘기를 듣지 않기 위해 열심히 뛰어 다녔다”면서 “잘한 것도 없는데 어르신들이 예쁘게 봐주시는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 트랙터 콤바인 운전하는 억척 농군


말도 통하지 않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결혼 생활을 하다 보니 처음에는 웃지 못할 실수도 적지 않았다. 땅속에 묻어 놓은 김칫독에 하얀 거품이 일자 김치가 썩은 줄 알고 버리는가 하면 시어머니가 시장에서 사온 젓갈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며 깨끗이 씻어 밥상에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시어머니 박원덕(68) 씨는 소메야 씨가 가장 좋아하는 깨강정을 직접 만들어주고 보약도 챙겨준다. 소메야 씨를 친딸처럼 자상하게 돌봐준다.


“농사일에다 부녀회장 일을 하면서 거동이 불편한 시동생까지 보살피는 며느리가 안쓰러울 때가 많다”고 말하는 박 씨의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시어머니의 든든한 후원을 업은 소메야 씨 부부는 잉꼬부부로 소문이 날 정도로 금실이 좋다. 임 씨는 아내를 위해 일본어를 독학으로 공부했고 아무리 바빠도 생일선물은 꼭 챙긴다.


한편 남편과 8만2000m²(약 2만5000평)의 벼농사를 짓고 있는 소메야 씨는 논갈이나 추수 때마다 트랙터와 콤바인을 직접 몰 정도로 억척이다.


임 씨는 “트랙터와 콤바인 기술을 배우겠다고 해 가르쳐줬지만 경운기는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아 못하게 했다”면서 “아내가 끓여주는 김치찌개는 솔직히 어머니 손맛보다 낫다”며 웃었다. “올해도 우리 가족 모두가 평안하고 농사가 잘돼 부자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젠 ‘전라도 아낙’이 다 된 시골마을 일본인 부녀회장 소메야 씨의 소박한 꿈이다.


해남=정승호 기자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