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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착륙은 가짜? 이런 음모론 왜 나오는 건지…"

한부울 2007. 9. 27. 12:59
 

"달 착륙은 가짜? 이런 음모론 왜 나오는 건지…"

[조선일보] 2007년 09월 14일(금) 오후 11:39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한 대기업 광고에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사람’으로 묘사된 버즈 올드린(Buzz Aldrin·77)씨가 한국을 찾았다. 올드린씨는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의 착륙선 ‘이글’을 타고 달 표면 ‘고요한 바다’에 착륙했다. 그는 인류 최초로 지구 바깥의 땅에 착륙한 착륙선에 타고 있었지만, 닐 암스트롱(Armstrong)에 이어 2번째로 달에 발을 디뎠기에 사람들은 여간해서는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암스트롱은 달 표면에 인류 첫 족적을 남겼지만, 올드린씨는 달 표면에서 성조기를 들고 찍은 사진을 남겼다. 미국인들은 달 착륙을 기억할 때마다 이 사진을 떠올린다고 한다. 사실 그의 이름은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하다. 3차원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스토리’의 우주비행사 ‘버즈’가 그의 이름을 딴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출국을 앞둔 올드린씨를 인천 공항 라운지에서 만났다. 그는 회색 정장 바지에 하늘색 셔츠를 입고, 소매에는 독수리가 그려진 커프스단추를 끼우고 있었다. 큰 꽃무늬가 그려진 넥타이까지 바짝 올려 맨 모습에서 70대 후반의 나이를 떠올리긴 어려웠다. 재향군인회 초청으로 10일 한국에 도착해 2박3일 동안 바쁜 방한 스케줄을 소화했지만 여전히 절도 있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달에서 가장 인상적인 경험은 어떤 것이었나?

“착륙, (탁자를 가볍게 내리치며) 착륙이다. 착륙은 그때까지 이뤄진 어떤 시도보다도 어려운 일이었다. 달 중력장 안 궤도권을 비행하는 것과 착륙은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굉장히 많은 훈련을 했다. 제미니(Gemini) 12로 첫 비행을 하기 이전까지 수많은 수중 훈련을 거쳤고, 아폴로 11에 탑승하기까지 3번이나 우주 비행을 했다. 모든 과정이 성공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아폴로 11 계획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달에서 바라본 지구와 우주는 어떤 모습이었나.

“우주는…, 새까맣다. 태양빛이 시야를 가리지 않을 때만 별을 볼 수 있었다. 우주는 지구에서 본 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시골에서 아주 맑은 날 별이 가득 찬 밤하늘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구는 무척 달랐다. 지구는 달의 4배는 되는데다가, 파란색, 하얀색, 갈색이 뒤섞여 있었다. 아, 만리장성은 보이지 않았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올드린씨는 지금도 우주 개발 사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그는 우주 정거장, 우주 왕복선 등을 개발하는 회사 ‘스페이스크래프트(Spacecraft)’의 회장직을 맡고 있고, 미 국립 우주학회의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지구 화성간 운반선 ‘사이클러(Cycler)’에 관한 특허도 가지고 있다. 달에 갔다 온 이후로 그의 인생은 한순간도 빠짐없이 우주와 연관돼 왔다.

달에 갔다 온 경험이 당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생각하나.

“달 경험이나, 달에 갔다 왔다는 사실보다는 달에 갔다 온 사람이 됐다는 사실이 내 인생을 뒤흔들었다. 달에 갈 때까지 내 인생은 규칙적으로 꽉 짜진 삶이었다. 항상 바쁘게 일해야만 했다. 하지만 달에 다녀온 이후에 유명해지고, 에드워드 공군기지 테스트 파일럿(test pilot) 학교 교장을 거쳐 72년 퇴역한 후 나는 알코올 중독에 빠져버렸다. 이 위기는 아내의 도움으로 극복했고, 그 후로 지금까지 내 삶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지난 29년간 단 한 잔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에서 회복된 후 지금까지 올드린씨는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달에 다녀온 경험을 담은 책 ‘지구 귀환(Return to Earth)’을 썼고, TV 토크쇼와 다큐멘터리에도 출연했다. 하지만 그에 관한 이야기 중 널리 알려진 것은 폭력 사건이다. 2002년 9월 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올드린씨는 그에게 “성경에 손을 얹고 달에 다녀왔다고 맹세해 보라”고 말한 영화감독 바트 시브렐을 때렸다. 결국 그는 ‘정당방위’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 소식은 한국까지 알려졌다.

한국에도 아폴로 계획이 가짜라는 음모론은 유명하다. 왜 시브렐과 같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나온다고 생각하나.

“(말을 자르며) 그는 영화감독도 아니다. 대중을 이용하고 현혹시켜서 음모론에 빠뜨리려는 인간이 무슨 영화감독이냐. 그런 사람들에게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과학적으로 설득한들 그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겠나.”

다른 음모론에 대해서 말하자면, 당신은 2005년 다큐멘터리에서 ‘달에서 미확인비행물체(UFO)를 봤다’라고 말했고, 나중에 이를 다시 부정했다. 당신이 본 것은 무엇이었나.

“그건 방송 편집 때문에 일어난 오해다. 엄밀히 말해 그 당시 상황은 ‘미확인 비행 물체를 봤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곧 그 물체가 착륙선에서 떨어져 나온 타일이란 걸 알았다. 당시에는 그게 뭔지 몰랐으니 ‘UFO’라고 부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러시아의 것도, 외계인의 것도 아니었다. 그저 확인되지 않은 물체였을 뿐이다.”

아폴로 11호에 돌아오는 계획은 없었다는 얘기도 있다.

“세상에는 음모론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별하게 보이고 싶은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는 없으니 정설에 딴죽거는 거다. 그런 사람들은 무시하는 수밖에 없다. (웃으며) 어디선가 ‘대통령은 그들이 돌아오지 못할 걸로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라고 한마디 하면 소문이 입을 거쳐 음모론으로 커지는 식이다.”

당신이 우연히 가지고 있던 볼펜이 당신 생명을 구했다는 얘기가 있다. 그 볼펜이 아니었다면 착륙선 이글호는 지구로 돌아오지 못했을 거라는데….

“(크게 웃으며) 생명을 구한 펜이라고 말하는 건 과장이다. 나와 암스트롱이 임무를 마치고 달에서 이륙 준비를 하던 중에 회로 차단기 스위치가 부러졌다. 그 스위치를 작동을 시켜야 했는데, 뭔가 긴 게 필요했다. 금속 레버로 할 수도 있었고, 손가락으로 할 수도 있었지만 합선이 될까 봐 걱정이 됐다. 그때 마침 볼펜이 보여서 그걸로 스위치를 작동시킨 것이다.”

앞으로 한국은 우주 개발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나.

“한국도 우주 개발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이제 우주 개발은 어느 한 나라가 앞장서는 일이 아니다. 우주인들을 우주 정거장으로 보내는 스페이스 셔틀은 퇴역을 앞두고 있다. 이후에는 새로운 방식으로 우주인들을 쏘아 올려야 한다. 여기에 한국도 참여해야 한다. 미국, 유럽, 일본, 러시아, 한국 등 모두가 협동해 같은 규격으로 우주선을 제작한다면 더 경제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인묵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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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11호 달 착륙 동영상]

 

 

 

 

 

 

                                                 [APOLLO11 달 표면 여행자취]

                                                   [APOLLO12 달 표면 여행자취]

                                                   [APOLLO14 달 표면 여행자취]

                                                  [APOLLO15 달 표면 여행자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