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한국인의 인심… 따르는 것은 술 아닌情
[헤럴드생생뉴스] 2007년 05월 19일(토) 오후 01:05
[커버스토리 - 서민의 술 막걸리의 부활]
산등성이를 땀 뻘뻘 흘리며 오르고 난 후 살얼음 동동 뜬 막걸리를 시원하게 들이키는 맛은 소주의 알싸한 맛과 다르다. 주룩주룩 비오는 소리를 들으며 기울인 막걸리 한 사발에 뜨뜻한 파전 한 점은 우아한 와인에 곁들인 치즈 한 조각과는 비교할 수 없다.
‘주류(酒類)’ 중에서도 ‘비주류(非主流)’로 밀려났던 막걸리. 서민의 땀이었고 서민의 낙이었던 막걸리는 소주와 맥주의 공세에 잠깐 잊혀졌지만 더 화려한 모습으로 부활했다. 텁텁하면서도 구수하고 구수하면서도 저릿한 막걸리의 옛 맛은 오늘로 ‘통(通)’한다.
입 속에 맴도는 막걸리의 맛은 늘 변함이 없었지만 막걸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막걸리를 둘러싼 분위기는 시대마다 달랐으니, 막걸리를 들이 킨 배경엔 그 시대의 면면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1950, 60년대 가난을 온몸으로 부둥켜안을 때도 늘 치열한 삶의 현장엔 늘 막걸리 한주전자가 놓여있었다. 논두렁에 풀잎을 깔고 둘러앉아서 들밥을 먹을 땐 흙에서 일하며 흘린 땀과 함께 막걸리를 마셨다.
그러나 박정희정권 하에서는 ‘밥 해먹을 쌀도 모자란다’는 이유로 막걸리를 만드는 것이 금지됐다. 그리고 말 한마디 잘못해 잡혀가는 ‘막걸리 반공법’이 활개를 치던 그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골프를 치고 난 후 사이다에 막걸리를 섞어 먹길 즐겼다고 한다.
결국 70년대 들어 소주와 맥주 소비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한 때 한국 주류시장의 80%를 차지하던 막걸리의 점유율은 뚝 떨어졌다. 그러나 대학가에선 막걸리가 마를 줄 몰랐다. 체육대회나 축제엔 잔디에서 어김없이 막걸리를 마셨고, 군사 독재에 항거하고 분을 삭이기 위해 사발을 기울였다.
선비들의 풍류와 서민의 흥이 섞여 내려오던 막걸리는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들었을 때는 ‘밥’이었고, 한국 사회의 격동기를 겪으면서는 시름을 달래 주는 ‘약’으로 변해있었다.
“하루치 막걸리와 담배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서슴없이 외쳤던 천상병 시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막걸리가 있는 곳은 늘 소박하고 훈훈한 기운이 넘쳤다. 낭만이 있고 정이 있었다. 지금은 플라스틱 병이나 팩에 담겨져 나오지만 역시 막걸리는 됫박으로 퍼고 사발에 부어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먹는 것이 제 맛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막걸리의 등장도 이런 분위기와 맥을 함께 한다.
영화 ‘타짜’에서 평경장(백윤식)과 고니(조승우)가 맛깔스러운 두부김치를 안주로 양철 주전자에 받아놓은 막걸리를 나눠 마시는 장면은 서로 마음의 문을 여는 시작이 되고 아버지와 아들 같은 정을 나누는 시초가 된다.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하얀거탑’에서도 야심에 가득 찬 외과 의사 장준혁(김명민)이 정보를 얻기 위해 찾는 곳은 와인바지만 의사로서의 양심에 충실한 친구 최도영(이선균)을 만나는 곳은 늘 막걸리 집이다. 분위기에 따라 만나는 장소와 술의 종류가 명확히 갈린다.
단순히 ‘옛날식’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매개체로 작용한 것이 바로 막걸리였다.
와인 없는 프랑스를 논할 수 없고, 백주 없는 중국 요리를 생각할 수 없다. 한 나라의 맛과 멋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술이라면 막걸리엔 한국의 푸짐한 인심과 아무리 나눠도 끝이 없는 정이 한가득 담겨있다. 막걸리가 오늘날까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웰빙 술’로 사랑받고 있는 이유다.
독자 여러분, 오늘 저녁 막걸리 한사발 어떠십니까….
윤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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