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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석초(滿花席草,燈心草:Rush)가 난 조선(朝鮮)

한부울 2013. 12. 19.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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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석초(滿花席草, 燈心草:Rush)가 난 조선(朝鮮)

 

글쓴이:한부울

 

만화석초(滿花席草)를 우리나라 자료에 보면 등심초(燈心草), 석용추(石龍芻), 골속, 용수초(龍鬚草)라고 하였고 한어자료에 보면 더 다양하게 불리었음을 알 수 있는데 등심초(燈芯草), 수등화(水燈花), 수등심(水燈心), 린초(藺草), 등초(燈草), 야석초(野席草), 마종근(馬棕根), 야마종(野馬棕)이라 하였으며 이것의 생장가능지역으로는 늪(沼泽), 습지(湿地), 도랑, 하수구(沟渠), 모래톱(河滩)등 부식질(腐殖質)이 풍부한 곳이라고 나타나고 있다.

 

산림경제 제4권

치약(治藥)

등심초(燈心草) 골풀

此織席者。拆取中心穰用。 本草 用作燈心。極妙。 俗方

이것은 자리를 엮는 사람이 쪼개어 그 속을 채취하여 사용한다. 《증류본초》

등잔 심지를 만들어 쓰면 아주 묘하다. 《속방》

 

백과사전을 보면 만화석(滿花席)이라고 하면 여러 떨기 꽃무늬를 줄을 지어 놓아서 짠 돗자리라고 설명되며 이 돗자리 재료가 바로 만화석초(滿花席草)라고 하는데 만화석, 즉 여러 가지 꽃무늬를 수놓은 방석을 만드는 풀이라고 하여 보통 '골풀'을 말하는 것으로 줄기가 원기둥형이고 1m 이상 자라는 풀로, 말린 줄기로 자리를 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을 현재 생물학적 분류체계에서 보면 화본목(禾本目:Poales), 골풀과(灯心草科:Juncaceae), 등심초속(灯心草属:Juncus)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우리나라에서나 신중국에서는 만화초(滿花草)를 등심초(燈芯草)라고 하고 학명은 "Juncus effusus L" 라고 공히 지정하는데 영어 별칭으로 "Soft Rush"라 하여 '부드러운 골풀' 또는 '부드러운 등심초'라고 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해동역사 제26권

물산지(物産志) 1

초류(草類)

만화석초(滿花席草)

○ 원(元)나라 순제(順帝)가 영영(英英)을 위하여 채방관(采芳館)을 경화도(瓊華島) 안에다 짓고는 당인(唐人)의 만화석(滿花席)을 깔았다. 당인(唐人)은 고려에 있는 섬 이름으로, 만화초(滿花草)가 나는데, 성질이 부드러워서 꺾어도 손상되지 않으며, 광택이 있어 아주 아름답다. 그 지방 사람들이 이것으로 짜서 방석을 만든다. 《원씨액정기(元氏掖庭記)》

○ 조선의 만화석을 만드는 풀은 색이 누렇고 부드러워서 꺾어도 부러지지 않으며, 소주(蘇州)에서 생산되는 것보다 더 좋다. 《조선부 주》 ○ 살펴보건대, 만화석초(滿花席草)는 바로 용수초(龍鬚草)로, 속명은 ‘장골’이다.

 

해동역사 속집 제13권

지리고(地理考) 13

산수(山水) 1 경내(境內)의 산(山)과 도서(島嶼)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원씨액정기(元氏掖庭記)》를 보면, 고려의 당인도에서는 만화초(滿花草)가 산출된다고 하였는데, 《고려도경》에서 이른 바 당인도는 바로 이곳이다. 이제 《고려도경》의 해도일록(海道日錄)을 근거해 보면, 8일에 해미현(海美縣)의 마도(馬島)에서 출발해 북쪽을 향해 가 9일에 구두산(九頭山)ㆍ당인도(唐人島)ㆍ쌍녀초(雙女礁)ㆍ화상도(和尙島)ㆍ우심서(牛心嶼)ㆍ계심서(鷄心嶼)ㆍ섭공서(聶公嶼) 등 여러 섬을 지나고, 이날 인천부(仁川府)의 자연도(紫燕島)에서 묵었다. 그런즉 이들 여러 섬은 모두 태안(泰安) 앞바다 북쪽에서 인천 앞바다 남쪽 지역에 있는 것이다.

 

세종지리지(世宗地理志)

경상도(慶尙道)

황화석(黃花席)·채화석(彩花席)·만화침석(滿花寢席)·만화석(滿花席)·염석(簾席)·방석(方席) 등이 있고, 타도에는 없다.

 

그런데 위 해동역사(海東繹史), 물산지(物産志), 초류(草類), 만화석초(滿花席草)편에 보면 원(元)나라 순제(順帝)가 영영(英英)을 위하여 채방관(采芳館)을 경화도(瓊華島)안에다 짓고는 고려(高麗) 당인도(唐人島)의 만화석(滿花席)을 깔았다는 내용이 나오며 원말명초의 문사학가(文史學家) 도종의(陶宗儀:1329-1410)의 원씨액정기(元氏掖庭記:1360-1368)에도 고려(高麗) 당인도(唐人島)의 만화석(滿花席)이 나는데, 성질이 부드러워서 꺾어도 손상되지 않으며, 광택이 있어 아주 아름답다 하면서 그 지방사람들이 이것으로 짜서 방석을 만든다고 한 것을 보면 분명 고려 당인도란 곳에서 이 만화석초가 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세종지리지 경상도...【有進獻黃花席、彩花席、滿花寢席。 滿花席、簾席、方席, 他道所無。 又貢國用滿花 各色席、別文上席、踏席、常文踏席、白文席、草席。】

 

특히 위 세종지리지의 경상도(慶尙道)편을 보면 번역에서 '중국에 바친다(進獻)'고 하여 다른 도에는 없는 황화석(黃花席), 채화석(彩花席), 만화침석(滿花寢席), 만화석(滿花席), 염석(簾席), 방석(方席)등이 있다 했고 이러한 용도 이외 나라에서 쓰는 만화각색석(滿花各色席), 별문상석(別文上席), 답석(踏席), 상문답석(常文踏席), 백문석(白文席), 초석(草席), 죽피방석(竹皮方席)등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 경상도에는 이 돗자리가 여러가지 용도로 사용되었거나 상거래로 생산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쯤하여 당장 궁금해지는 것은 원(元)나라 순제(順帝)가 영영(英英)을 위하여 채방관(采芳館)을 경화도(瓊華島)안에다 짓고는 고려(高麗) 당인도(唐人島)에서는 산출된 만화초(滿花草)로 만든 만화석(滿花席)을 깔았다고 하는 사실이나 세종지리지(世宗地理志) 경상도(慶尙道)편에서도 분명 타도에 없는 만화침석(滿花寢席), 만화석(滿花席)이 생산되었다는 사실에서 과연 이 만화초가 한반도에서 난 것인지 그렇지 않는 것인지 밝혀 볼 필요성이 있다 할 것이다.

 

위 기록들을 액면 그대로 인정한다 한다면 원씨액정기(元氏掖庭記)에 고려(高麗) 당인도(唐人島)에서 산출된 만화초(滿花草)는 부드러워서 꺾어도 손상되지 않고 광택이 있어 아주 아름답다고 한 사실과 영어로  'Soft Rush' 라고 한 사실이 과히 다르다곤 할 수가 없다.

 

때문에 'Soft Rush' 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으며 등심초라고 하는 학명 "Juncus effusus L"를 DNA 분석을 바탕으로 한 생명의 백과사전(EOL:Encyclopedia of Life)이 제공한 분포지도로 살펴보았다.

 

 

灯心草(学名:Juncus effusus),又名灯芯草、水灯花、水灯心、蔺草、灯草、龍鬚草、野席草、马棕根、野马棕,

科學分類

界: 植物界 Plantae

門: 被子植物门 Magnoliophyta

綱: 单子叶植物纲 Liliopsida

目: 禾本目 Poales

科: 灯心草科 Juncaceae

屬: 灯心草属 Juncus

種: 灯心草 J. effusus

二名法

 

[1]Juncus effusus L. Soft Rush

 

위 분포지도를 보면 거의 유럽대륙을 중점적으로 근원지가 나타나고 있으며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와 미국 서부지역, 그리고 멕시코를 포함한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대륙 북부지역을 광범위하게 표시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물론 동아시아 한반도와 일본도 나타난다.

 

《後漢書·東夷列傳》第七十五:「韓有三種:一曰馬韓、二曰辰韓、三曰弁辰。馬韓在西,有五十四國,其北與樂浪,南與倭接,辰韓在東,十有二國,其北與濊貊接。弁辰在辰韓之南,亦十有二國,其南亦與倭接。

 

세종지리지(世宗地理志) 경상도(慶尙道)

삼한(三韓) 때에는 진한(辰韓) 땅이었고, 삼국(三國)때에는 신라 땅이었는데, 고려 태조(太祖)가 신라와 백제를 병합함에 미쳐서 동남도 도부서사(東南道都部署使)를 설치하고, 사(司)를 경주(慶州)에 두었다가, 성종(成宗) 14년(995) 을미에 경내(境內)를 10도(道)로 나누어, 상주(尙州)의 관할은 영남도(嶺南道)로 하고, 경주(慶州)·금주(金州)의 관할은 영동도(嶺東道)로, 진주(晉州)의 관할은 산남도(山南道)로 하였었는데, 그 뒤에 어느 때인지 알 수 없으나 합하여 경상도로 되었다.

 

그러나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여태까지 살펴본 결과 북아메리카대륙을 삼한영역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삼한 영역이 "辰韓在東" 동쪽지역이 진한(辰韓)이라고 하였고 세종지리지에서 진한은 경상도라고 하였으니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에 경상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어 그렇게 추정하는 것이 무리가 아닐 성도 싶다.

 

특히 이 만화석초 즉 등심초는 린네(Carl von Linne:1707-1778)가 명명한 종(種)으로서 위 종 이외 주요종이 다수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것들을 하나하나 검토한 결과 아래 4가지 종을 발췌할 수가 있는데 이것들도 위 학명과 마찬가지로 DNA 분석을 바탕으로 한 생명의 백과사전(EOL:Encyclopedia of Life)이 제공한 분포지도로 살펴보았다.

 

[2]Juncus acutus L. Spiny Rush 캘리포니아, 네바다, 애리조나일부

 

[3]Juncus articulatus L.Jointleaf Rush 미국동북부, 서북부

 

[4]Juncus stygius L. Moor Rush 뉴욕 및 오대호 근역, 뉴햄프셔와 메인주일부, 캐나나전역

 

[5]Juncus trifidus L.Highland Rush

테네시, 노스캘롤라니아, 사우스캐롤라이나, 뉴욕, 퀘벡주, 뉴브런즈윅주

 

[2]Juncus acutus L. Spiny Rush :캘리포니아, 네바다, 애리조나일부

[3]Juncus articulatus L. Joint leaf Rush : 미국동북부, 서북부

[4]Juncus stygius L. Moor Rush : 뉴욕 및 오대호 근역, 뉴햄프셔와 메인주일부, 캐나나전역

[5]Juncus trifidus L.Highland Rush : 테네시, 노스캘롤라니아, 사우스캐롤라이나, 뉴욕, 퀘벡주, 뉴브런즈윅주

 

결과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고려(高麗)라고 인식되는 역사 지역 캘리포니아, 네바다, 애리조나일부로 근원지가 표시 되고 있는 두번째 학명[2]Juncus acutus L. 를 주요하게 보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이것의 영어별칭으로 '가시모양의 등심초(Spiny Rush)'라고 하는 것을 보면  부드럽지만 가시같은 풀 끝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도종의(陶宗儀)의 원씨액정기(元氏掖庭記)에서 원(元)순제(順帝)가 채방관(采芳館)을 경화도(瓊華島)에다 짓고 고려(高麗) 당인도(唐人島)에서 나는 만화석초로 만든 만화석을 깐 것이라고 한다면 형태적으로 고려의 만화석초는 가시같은 풀 끝의 모양을 추정할 수가 있어진다.

 

이 위 기록들을 종합적으로 비교해보면 그 분포지역으로 나타나는 곳은 고려 영역이었을 것이 확실하고 또한 조선의 영역임을 숨길 수가 없게 한다.

물론 수많은 종(種)이 분류되어 시원(始原)이 무엇인지 분명하게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근원지가 모두 무겁게 북아메리카대륙을 가르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이 만화석에 대해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기록은 명(明:1368-1644)사신 동월(董越)이 1488년(성종19) 조선에 왔다가 그 기행문을 본국에 돌아가 지었다는 조선부(朝鮮賦)에도 조선에서 만화석(滿花席)이 생산되며 만화석을 만들기 위한 재료 만화석초 즉 등심초가 났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는데 아래와 같다.

 

惟有五葉之葠,滿花之席。(五葉葠,即本草所謂「新羅人葠」也。滿花席之草,色黃而柔,雖摺不斷,比蘇州者更佳。)歲貢闕庭,時供上國。

오직 오엽(五葉)의 인삼과 만화석(滿花席)이 있을 뿐이다. 오엽의 인삼이란 즉 본초(本草)에서 말한 신라인삼이다. 만화석은 그 빛이 누르고, 또 부드러워 아무리 접어도 꺾어지지 않아서 소주(蘇州)의 것에 비하면 훨씬 좋다고 하였다.

 

위 조선부(朝鮮賦)에 등장하는 만화석 기록을 보면 물론 소주(蘇州)에서도 이 만화석이 났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게 하는데 소주(蘇州)가 과연 어딜까 하는 문제에 봉착하며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는 동아시아대륙 신중국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소주(蘇州)말고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소주계(蘇州髻)란 단어가 있다.

보통 여인들이 머리카락을 머리의 뒷부분에 둥글게 묶고 비녀를 꽂는 스타일을 말하는 것으로서 옛날 중국에서는 ‘계(笄)’라 하였으며 한대(漢代) 이후부터는 ‘잠(簪)’이라 칭한 것으로 여인들의 머리 장식에 쓰며 쪽을 고정시키는 것이다.

우리 옛날 조선(朝鮮)여인들의 비녀 꽂는 것과 거의 다를 바 없는 풍습인 것이다.

중국(中國)소주(蘇州)에 소주계란, 쪽을 고정시키는 풍습이 일반적으로 유행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마치 조선여인이 한 것과 동일하다고 여기지는 것은 어쩌면 소주는 조선 내에 있었던 고을이라고 할 수가 있다.

소주(蘇州)의 소(蘇)는 차조기의 소(蘇)라는 것이 지명의 핵심이다.

차조기라 함은 깻잎(蘇葉)이다.

그렇다면 소주(蘇州)를 알려면 차조기 원산지를 찾으면 된다.

바로 본 블로그 글 “차조기(紫蘇:Perilla frutescens) http://blog.daum.net/han0114/17049661” 란 글에서 주요 학명 ‘Perilla frutescens(L.) Britton’의 DNA 분포도가 분명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혔던 바가 있다.

그러나 세밀하게 밝히지 못한 부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소주의 지방이라는 명확한 지역을 알기에는 세월이 너무 지났는가 한다.

비록 현대 과학에 의해 DNA 분포지도를 만들었다지만 근원이 많이 희석이 되어 세밀한 구체적인 지역구도를 알기에는 솔직히 한계가 있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어 적잖은 아쉬움도 있다.

위 차조기의 분포지에서 살펴 본 결과 유일하게 북미대륙 서부지역의 워싱턴주(Washington)를 나타내고 있기는 하지만 거의 북미대륙동부를 집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은 만화석초 분포지와 함께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동시에 알 수 있는 것은 지칭에 의한 것으로서 소(蘇)는 아메리칸 인디언(American Indian) 수우족(Sioux)의 음(音)을 딴 것이라고 보이지만 총 길이 약 4500㎞에 이르는 로키산맥(Rocky Mountains)에서 발원하여 미 대륙 중북부를 흐르는 미주리강(Missouri River)에서 놀랍게도 소성(蘇城:Sioux city)과 남소성(南蘇城)이란 지명을 찾을 수 있고 '대초원 언덕'이라고 하는 뜻의 코토데프레리(Coteau des Prairies)의 사우스다코타주(State of South Dakota) 로버츠 카운티(Roberts County)에서 발원하는 빅수강(Big Sioux River), 리틀수강(Little Sioux River)이 이 소성(蘇城:Sioux city)이라는 고을 정북쪽으로 흘러들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지역을 음(音)으로 소(蘇:Sioux )라고 지칭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바로 소주(蘇州)인 것이다.

이 수강(Sioux River)은 1931년에 명명되었다고 하니 그 이전에 얼마든지 이렇게 불리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소주(蘇州)는 빅수강(Big Sioux River), 리틀수강(Little Sioux River)을 중심으로 한 지역 명칭임을 알 수가 있고 미주리강(Missouri River)동부지역을 지칭한 것임도 알 수가 있다.

물론 이곳에 차조기(蘇)가 많이 생산된 지역이라는 것도 알 수 있어 거의 추정이 맞아 들어감도 알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동월이 조선부에서 기록한 것처럼 소주(蘇州)가 소성(蘇城:Sioux city)과 남소성(南蘇城)을 포함한 지역이라고 한다면 이곳에도 등심초 즉 만화석초가 생산되었다는 사실을 더할 때 분포지도와 일치한다고 볼 수가 있다.

 

문제는 소주(蘇州)는 중국(中國) 땅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 예로 황화채(黄花菜)라는 식물이 있는데 우리는 원추리라 하고 훤초(萱草)라 하며 새로 돋은 속잎을 따서 나물로 만들어 먹으면 마치 취한 것처럼 모든 근심을 잊게 된다는 풀이라 하여 망우초(忘憂草)라고 하는데 옛날에 임신한 부인이 허리에 차고 다니면 아들을 낳는다는 미신이 있었던 풀이다.

이 식물이 어떤 종에 있어서는 유일하게 미주리주(Missouri州) 세인트루이스(Saint Louis)를 가르키고 있다는 점이다.

黃花菜。卽萱草也。義州人學於上國。善爲之。味極好
황화채(黃花菜)는 원추리(萱草)이다. 의주(義州)사람들이 중국사람(上國)에게 배워 잘 요리를 하는데 매우 맛있다.

위 기록을 보면 황화채가 상국 즉 중국 땅에서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에서 상국(上國)이라는 중국(中國)은 어딜까? 

이 세인트 루이스란 지명이 '성(聖)루이스'라고 할지언정 프랑스 왕 루이(Lou·is)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며 조선(朝鮮)숙종부터 정조까지 얽혀 있는 프랑스의 루이(Lou·is)제왕들의 역사기록을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숙종(肅宗, 1661-1720 재위:1674-1720)
루이14세(Louis XIV, 1638-1715 재위:1643-1715)
http://blog.daum.net/han0114/17050505
영조(英祖, 1694-1776 재위:1724-1776)
루이15세(Louis XIV, 1710-1774 재위:1715-1774)
http://blog.daum.net/han0114/17050506
정조(正祖, 1752년-1800,재위:1776-1800)
루이16세(Louis XVI, 1754-1793 재위:1774-1793)
http://blog.daum.net/han0114/17050507

 

이곳을 한양(漢陽)이라고 하지 않았을 이유도 없고 한성(漢城)이라고하지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본 블로그의 글 "대승(戴勝)후투티(hoopoe)로 본 조선열수(朝鮮洌水)의 위치http://blog.daum.net/han0114/17050677 "란 글에서도 미시시피강(Mississippi river)을 한강(漢江)이라고 하였고 실학자 한치윤이 그의 저서 해동역사(海東繹史), 지리고(地理考)에서 중요하게 기술한 것을 보면 한강(漢江)을 옛날에는 열수(列水)라고 하였으며, 혹 여강(驪江)이라고도 하였다는 사실도 보탤 수가 있고 또 이 강을 큰 세력이 합동하는 곳, 즉 모여든다는 뜻 대동강(大同江)이라고 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가 없다.

나는 여기서 감히 주장한다.

위나라 사람 장안(張晏)이 ‘조선(朝鮮)에 습수(濕水), 열수(洌水), 산수(汕水) 3수가 있는데, 이것이 합쳐 열수(洌水)가 되었다고 한 것처럼 이곳은 바로 조선(朝鮮)의 경기(京畿)가 있었을 것이다.

본 블로그에서 1882년부터 동아시아대륙에 신중국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때문에 중앙아메리카대륙에 있었을 근세기 동양사의 마지막 왕조 청조(淸朝) 즉 만주국(滿洲國)을 갑자기 중국(中國)이라 만들게 하고 1883년에 중강통상장정(中江通商章程)이란 제목의 통상조약문서를 이상하게도 이미 1881년에 해체 되어 버린 대조선(大朝鮮)을 상대로 만들면서 문서에 중국(中國)을 봉성(奉省)으로 수정하는 급급함을 보였다는 것은 많은 의혹을 낳기에 충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조선천자(朝鮮天子)가 있었던 곳 경기(京畿)를 봉성(奉省)이라 했다는 것을 감추려 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다.

하기사 돌이켜 우리 삼한역사를 보면 이것에 대한 확고한 답이 이미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고구려(高句麗)를 천하의 중앙이라고 풀이한다던지, 중심의 가우리(Kauli)로 읽었거나 구려(九黎)라 하여 구주(九州:冀州、兖州、青州、徐州、扬州、荆州、梁州、雍州、豫州) 즉 중국 전체 영토로 해석하고 있는 것을 보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또한 고대 민족전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구려삼묘(九黎三苗)란 말과 신라구주(新羅九州)라는 단어 역시 이러한 구도를 추리할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구려(九黎)를 아사달(阿斯達)이라고도 하는데 "아사" 역시 고대 말로 새로운 또는 처음이라는 뜻이며 "달"은 들 또는 산, 땅(land)이라는 뜻이라 하였기 때문에 아사달(阿斯達)은 "새 땅" 또는 "해 뜨는 땅"이라는 뜻으로 신세계(新世界)란 말과도 어울린다고 하였다.

근세기의 신대륙은 분명 북아메리카대륙이란 점도 매우 의미가 깊다 하지 않을 수가 없지만 이것 만큼 삼한의 역사는 결코 한반도에 끝이지 않고 분명히 북아메리카대륙에서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때문에 적어도 삼한 천자는 어디서나 중앙으로 존칭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고려와 조선이 병존한 것이 사실이라면 어쩌면 경기(京畿)봉성(奉省)에는 삼한천자가 있었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여기서 좀 더 따져 보아야 할 문제가 크게 세가지로 나뉘어지는데 앞에서 글쓴이가 주장한 것처럼 과연 조선(朝鮮)이라는 나라자체를 중국(中國)이라 한 것인지 아니면 조선(朝鮮)에서 조선 땅과 별개로 새로운 곳(강남:고려)에 전통적으로 중국(中國)이라는 영역을 만든 것인지 아니면 조선(朝鮮)의 경기(京畿)지역을 중국(中國)이라고 한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답이 필요하겠다 싶다.

나는 조선 경기지역에 천자가 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만약 조선의 경기지역이 현재 한강이라고 추정되는 미시시피강 일대라면 세인트루이스(Saint Louis)를 중심으로 캔자스시티(Kansas City)와 소성(蘇城:Sioux city)까지 경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경기(京畿)지역에 소주(蘇州)가 포함될 수 있으며 그렇다면 미주리강과 미시시피강이 만나는 곳에 소주와 한양이 같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할 수가 있다.

때문에 여인들의 비녀풍습이 같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생물학적 판단으로 본 블로그에서 살펴본 결과, 분명 중원(中原)과 강남(江南) 그리고 후금(喉衿:後金), 남경(南京)기후가 열대성기후로서 북아메리카대륙 서남쪽으로 치우쳐 있는 중앙아메리카대륙이라는 지역적인 추정이 가능하다 할 것이다.

그렇지만 만화석초(滿花席草,燈心草:Rush)로 분석한 결과 중원(中原), 중토(中土), 중주(中州), 중하(中夏), 중화(中華)와 다르게 중국(中國)이라고하는 상국(上國), 조가(朝家), 조정(朝廷)이 위치하였을 것이란 사실을 알 수가 있다.

"中国古语 名称 赤县, 神州, 齐州, 中土, 中原, 中州, 中夏, 中华"

위 한어자료가 이야기 한 것처럼 중국(中國)의 고대지명으로 적현(赤縣), 신주(神州), 제주(齊州), 중원(中原), 중토(中土), 중주(中州), 중하(中夏), 중화(中華)"라 하였는데 삼한의 나라 고구려, 신라, 고려 등이 이름 자체에서 자연스럽게 중국이라고 존칭되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이후 조선이 등장하면서부터 아마도 상국(上國), 조가(朝家)나 조정(朝廷)이라 하여 기존 있었던 지역에서 이동되었을 가능성도 엿 볼 수가 있다.

“ 赤县神州 ”的省称。 南朝 梁 沉约 《答陶华阳》:“故 邹子 以为赤县,於宇内止是九州中之一耳。”

적현(赤縣)은 아무래도 붉은 고을이라는 뜻과 기후적으로 매우 덥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위 한어자료를 보면 남조(南朝:梁502-557)시대 때 칭한 것으로 천하(天下) 구주(九州)의 하나의 귀(耳)라 하여 하나의 중심이라고 하였고 신주(神州) 역시 중국이라고 하면서 신선(神仙)이 사는 곳이라 하여 천자를 신선으로 보았고 송대(宋代)에는 경기(京畿)를 일컫었으며 중원(中原)이라는 뜻과 같이 병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제주(齊州)는 산동성(山東省)에 있었던 도시 이름으로 중국이라고 지칭된 것도 알 수가 있는데 이 산동이 놀랍게도 멕시코의 시에라마드레산맥(Sierra Madre)의 동쪽임을 알 수가 있다.

나머지 모두 중앙이라는 중(中)자가 붙어 도시가 위치하는 지리적인 점을 고려하였던 것으로 파악될 수가 있는 것이다.

 

특히 본 블로그가 파악한 것에서 볼 때 원조(元朝:1271-1368)의 영역도 뉴멕시코와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텍사스주를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남송과 원조(元朝)역시 열대지방을 영역으로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며 그리고 명조(明朝)역시 남경에서 일어난 세력이라고 할 때 그러한 위치적인 문제가 다르지 않았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지만 조선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의 체제를 바꾼 것이라면 세인트루이스를 명조(明朝)에게 내주었을 개연성도 없지 않다.

대신 중원(中原)을 조선(朝鮮)이 차지하여 지배력을 넓히는 대신 경기(京畿)에 있는 조정(朝廷)을 만들어 놓고 그곳의 지시를 따른 것이라고 보여지기도 하다.

아마도 이성계 이후 사이(四夷) 천자(天子)라고 판단할 수 있는 기록들을 종합할 때 태종 이방원(太宗:1367-1422)이 이성계의 유지와 반대로 스스로 그렇게 하였을 것이란 추측이 존재한다.

 

삼한(朝鮮)은 만방의 우두머리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9382
대조선황제폐하!-백두구(白豆蔻 Cardamom)  http://blog.daum.net/han0114/17049623

 

본 블로그 위 글에서도 충분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분명 삼한조선의 제왕들 3대 태종(太宗,1367-1422(세종 4),재위:1400-1418), 4대 세종(世宗, 1397-1450, 재위:1418-1450), 7대 세조(世祖,1417-1468,재위:1455-1468), 9대 성종(成宗,1457-1494, 재위:1470-1494), 22대 정조(正祖,1752 -1800,재위:1776-1800)에 이르기 까지 전부 천자(天子)또는 제(帝)의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여러가지 문헌자료로 알 수 있었다.

특히 성종(成宗)을 당시 사이(四夷)백성 즉 조민(兆民)를 다스리는 중국황제(中國皇帝) 천자(天子)

라고 하며 유구국왕(琉球國王) 중산부주(中山府主)가 "三韓者, 爲萬邦酋, 榮兆民群, 삼한(조선)은 만방에 우두머리이고 많은 백성의 영광이다"라고 까지 한 사실을 들지 않을 수가 없다.
德澤遍四夷 仁風齊二儀

또 전세계에 퍼져 중화(中華)의 사방으로 거주하고 조정에 귀순하지 않는 주변민족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蛮), 북적(北狄)을 사이(四夷) 혹은 이적(夷狄), 이만(夷蠻)라 하였는데 이 사이(四夷)를 완벽하게 통솔하는 세력으로 삼한조선을 지칭하였다는 사실은 여기저기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

22대 정조(正祖,1752 -1800,재위:1776-1800)에게 섬라국 장(暹羅國長) 정화(鄭華)가 올린 표문에도
暹羅國長鄭華, 叩首叩首, 上貢大皇帝陛下萬歲萬歲萬萬歲。 伏以皇恩浩蕩, 澤及遐荒, 聖德宏敷, 光臨海隅
“섬라국 장(暹羅國長) 정화(鄭華)는  머리를 조아리며, 삼가 대 황제폐하(皇帝陛下)에게 만세만세 만 만세(萬歲萬歲 萬 萬歲)를 올립니다. 엎드려 황제(皇帝)의 은혜가 커서 은택이 먼 나라에까지 미치고, 성덕(聖德)이 넓고 커서 바다 구석에까지 멀리 미쳤습니다. 라 하였으니 더 이상 부언의 말이 필요가 없다 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부첨할 것은 반도 역사에서는 조선 태조 이성계와 이방원를 태상왕(太上王)이란 존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꾸민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태상왕(太上王)이란 제도는 당시 봉건사회에서 천하유일체제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제도로서 실제의 역사를 감추고 있지만 조선 내 천자와 황제의 존재를 속이려 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5년 을유(1405, 영락 3)1월 3일(경자)
○朝廷使臣千戶高時羅等, 奉聖旨到吾都里地面。
명사신 고시라 등이 오도리 방면에 도착했다는 길주 안무사의 보고 명나라 사신(使臣) 천호(千戶) 고시라(高時羅) 등이 성지(聖旨)를 받들고 오도리(吾都里) 지면(地面)에 이르렀다.
吉州按撫使報云:
使臣高時羅等, 欲開讀聖旨, 吾都里萬戶童猛哥帖木兒不迎命曰: “汎稱吾都里衛, 不錄萬戶之名, 何以迎命!” 使臣等詰之曰: “由朝鮮來使臣二人, 於吾音會、彼北、阿伊兒、朱乙巨、何大等處, 會道伊兀良哈三衛、好羅乎兀狄哈二衛、沙河飮兀狄哈一衛、建州衛等處七衛待之。 又皇帝遣都司, 率兵衆齎燒酒百甁及朝鮮馬三十匹來, 與七衛磨金同盟, 賜馬三十匹於於虛出參政, 今爾萬戶不順可乎?” 猛哥帖木兒見使臣不爲禮曰: “不錄吾名, 緣何屈身!” 其母及管下百姓皆不可曰: “若不從聖旨, 帝必勑朝鮮, 執歸于京師, 如林八剌失里, 無乃不可乎?” 猛哥帖木兒怒叱之, 遂不順。
길주 안무사(吉州安撫使)가 보고하기를,
“사신(使臣) 고시라(高時羅) 등이 성지(聖旨)를 펴서 읽으려고 하니, 오도리 만호(吾都里萬戶) 동맹가첩목아(童猛哥帖木兒)가 칙명(勅命)을 맞이하지 않고 말하기를, ‘범칭(汎稱)하여 오도리위(吾都里衛)라고만 하고 만호(萬戶)의 이름을 기록하지 아니하였으니, 어찌 칙명을 맞이하겠습니까?’ 하니, 사신들이 꾸짖기를, ‘조선(朝鮮)을 경유해 온 사신 두 사람이 오음회(吾音會)·북쪽 아이아(阿伊兒)·주을거(朱乙巨)·하대(何大) 등처(等處)에서 회도이 올량합(會道伊兀良哈) 3위(衛)·호라호 올적합(好羅乎兀狄哈) 2위(衛)·사하음 올적합(沙河飮兀狄哈) 1위(衛) 및 건주위(建州衛) 등처 7위(衛)를 대접하였고, 또 황제께서 도사(都司)를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소주(燒酒) 1백 병과 조선의 말 30필을 가지고 와서 7위(衛)와 더불어 칼[金]을 갈아 동맹(同盟)하고, 말 30필을 어허출(於虛出) 참정(參政)에게 하사하게 하였거늘, 이제 와서 너 만호(萬戶)가 순종하지 않는 것이 옳겠느냐?’ 하자, 맹가첩목아가 사신을 보고 예(禮)를 하지 아니하며 말하기를, ‘내 이름을 기록하지 아니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몸을 굽히겠습니까?’ 하니, 그 어미와 관하(管下) 백성들이 모두 옳지 않다하며 말하기를, ‘만약 성지(聖旨)를 좇지 아니하면, 황제가 반드시 조선에 칙명(勅命)하여 경사(京師)로 잡아가기를 임팔라실리(林八剌失里)와 같이 할 것이니, 옳지 못하지 않겠느냐?’ 하자, 맹가첩목아가 노하여 꾸짖고, 마침내 순종하지 아니하였습니다.”하였다. 천호(千戶) 등은 반인(伴人) 10여 명을 거느리고 지난 달 20일에 오음회(吾音會)에 이른 것이었다.

 

위는 조선왕조실록 기록으로서 태종 5년(1405)기사인데 

“若不從聖旨, 帝必勑朝鮮, 執歸于京師, 如林八剌失里, 無乃不可乎?”

"‘만약 성지(聖旨)를 좇지 아니하면, 황제가 반드시 조선에 칙명(勅命)하여 경사(京師)로 잡아가기를 임팔라실리(林八剌失里)와 같이 할 것이니, 옳지 못하지 않겠느냐?"는 대목에서 임팔라실리(林八剌失里)운운은 조선에서 3년전인 1402년에 건주여진(建洲女眞)사람 임팔라실리(林八剌失里)를 압령(押)한 예가 있었기 때문이다.

 

황제가 자체적인 군사가 없어 조선을 시켜 모든 병권을 사용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가 있다.

이러한 황제를 조정 또는 상국이라고 한다면 조선 내에 존재하는 실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경사(京師)를 다른 말로 황성(皇城), 련하(輦下), 진단(宸垣)이라고 하였는데 명나라 수도였다고 하는 남경(南京)이라는 말이 아예 없는 것을 보면 실제로 조선의 수도를 지칭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렇듯 조선 영역내에 있었을 경사이며 황제가 있었던 곳임을 간접적으로 충분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것에서 정리를 해보면 사이(四夷)와 별도로 고구려, 신라, 고려는 명칭 자체가 천자국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사이(四夷)를 통합한 국가이다.
때문에 조선은 천자가 있는 곳을 별도로 조정이라 하였고 상국이라 하였다.
조선 내에 조정과 상국이 존재한 것은 조선이 사이(四夷)를 관리하고 천자를 모신다는 개념이다.
대신 조선의 병권은 천자가 가지고 있었다.
조선이 임진왜란 시 천자에게 구원요청한 사실은 천자가 사이(四夷)의 병권을 가졌기때문에 사해 천하에 걸쳐 강제징집(强制徵集)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하는 것으로 사이(四夷) 전체에 군사강제징집령을 내려 병사들을 모집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가 있다.

 

지명 위치상 중원과 중국은 다르다.
중국 명칭이 현실화된 것은 근세기로서 그 이전에는 천자가 있었던 곳이었지만 근세기 부터 갑자기 중원을 중국이라 하였다.
때문에 중국은 오래전부터 중원이라고 하였던 중앙아메리카이다.
중국은 북아메리카대륙에 있었던 고구려, 신라, 고려이고 이어 조선이다.

현재 신중국 역사에서 중국이라고 하거나 중원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앙아메리카대륙을 벗어날 수가 없으며 좀 더 크게 반경을 넓힌다면 뉴멕시코와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텍사스주 등까지 일 것이라고 본다.

이것을 조대명(朝代名)이라 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소주(蘇州)는 북아메리카대륙 중부 노스타코다주, 사우스다코다주 그리고 미네소타, 네브래스카, 아이오와주를 말하고 있으니 이곳은 강남(南京)의 중국이라고 할 수가 없다.

내가 잘못 짚은 것인가?

내가 잘못 짚은 것은 어리석음 때문일 것이지만 삼한역사서에서의 오류는 여기저기에 비일비재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숨길 수가 없다.

 

특히 위 세종지리지의 경상도(慶尙道)편을 보면 번역에서 '중국에게 바치는 만화석'이라고 하였지만 실제로 원문에는 단지 진헌(進獻)이라고만 하여 중국이란 중요한 "주어대명사"가 분명하게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라고 버젓이 번역하는 오류를 남발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가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행위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번역이라 할 때 우리 역사 번역인들의 보편적인 사고가 그렇다는 사실을 비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 때문에 세계삼한역사가 전진할 수 있는 것에서 많은 장해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보편적인 사고'가 나는 '친일사관'이라고 하는데 지금 나라가 이분 삼분 분열하는 것도 그러한 원인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이렇듯 삼한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역사 혼란속에서 정신적인 지주를 통째로 깡그리 잃어버리게 하였으니 종국에 가서는 나라 전체가 암울한 형국에 빠지게 될 것이 뻔하다고 판단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반도역사는 조선의 역사가 중국을 사대하는 것이 주 테마이고 주요 요지이다.

때문에'중국'이란 지명 역사 실체가 반도역사관으로 인하여 두리뭉실 아무렇게나 제대로 정립이 되질 못하고 이렇게 저렇게 쪼그라든 반도역사 기준에 맞추다 보니 번역인들이 자의적인 해석이 이렇듯 초라하고 한심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글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삼한의 진한 영역인 경상도에서 이 만화석초가 생산된 것임을 확실하게 알 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곳은 한반도가 아니라 북아메리카이다.

그리고 진헌(進獻)을 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조선 중앙에 있는 경기에 조선천자가 있었을 곳이다.

그곳은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미시시피강에 있는 프랑스 관리들이 있었다고 판단되는 세인트루이스(Saint Louis)일 것이란 생각이 강하게 머리를 치고 있다.

근세기 미시시피강 하류에 프랑스의 흔적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북미에 식민지를 건설한 프랑스가 세운 미시시피 강 주변의 개발무역 계획인 미시시피 계획(Compagnie du Mississippi:1717-1721)에 의한 경제버블사건 중심에 프랑스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결국 여기까지이다.

세부적으로 파고 들 수 있는 조건이 이렇게 까지 무르익고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도역사의 중국이란 정돈되지 못한 명칭때문에 솔직히 결론을 내릴 수가 없으며 마음은 번하지만 제대로 종결을 짓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글쓴이가 어리석기 때문에 이것을 아직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이상 변명이 없어야 하겠지만 솔직히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결론은 다음으로 미루어야하고 중국이란 명칭은 근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며 중국은 천자국을 말하는 것으로서 조선의 특수한 행정관리 체제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사이를 통합한 거대한 체제라는 것을 어찌 반도사의 찌들어 버린 우리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특수한 조선 행정체제 또는 지배체제를 가늠할 수 없다면 앞으로의 진전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근세기에 미국행정가가 조선의 관리체제를 보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체제라고 한 사실도 우리는 상기해야 한다.

바로 그들이 조선을 한반도에 밀어넣은 가장 중요한 요인인 속국이란 체제를 두고 한 말이다.

그렇다, 분명 아직까지 정점에 도달하지 못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것은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어떤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이처럼 판단을 가로 막고 있는 어떤 문제를 엄중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을 풀 수 있는 다음 글을 희망해본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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