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이 인도에 있다?
[조선일보] 2010년 03월 28일(일) 오후 06:33
인도 카슈미르주(州)의 주도 스리나가르에 있는 ‘예수의 무덤’에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이 27일 보도했다. 부활한 예수가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믿는 이들에게 한번쯤 꼭 들러야 할 ‘성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로자발(Rozabal) 무덤’으로 불리는 이곳은 스리나가르 중심가의 골목 속에 있는 오래된 건물이다. 무장 세력들이 인근에서 몇 차례 교전을 하기도 했지만 최근 치안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
2년쯤 전만 해도 택시기사가 몇 번이나 가는 길을 물을 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지만, 지금은 너무나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문을 닫은 상태다. ‘예수의 무덤’ 일부를 훼손해 기념품으로 챙겨가려는 사람들이 있어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이곳이 관광객들에게 한번쯤 들러야 할 곳이 된 것은 유명한 여행안내서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에 소개되면서부터. BBC는 “지친 모습의 호주 관광객들이 론리플래닛을 들고 와 무덤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며 “무덤이 폐쇄돼 있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하는 모습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절충주의적 기독교인, 온건한 이슬람교도, ‘다빈치 코드’의 열성팬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기독교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후손이 묻힌 무덤을 찾아가는 내용을 다룬 소설 ‘다빈치 코드’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로자발이 ‘예수의 무덤’으로 알려지게 된 이유의 하나는 다름 아닌 ‘장삿속’이다. 주변의 상인들은 관광객들이 몰려들면 수입이 올라갈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로자발의 경비원은 50개 정도의 영어 단어를 구사할 수 있고,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으로 팔기 위해 ‘고대의 도자기 타일’도 준비해놓고 있다. 그는 “예수는 서기 80년에 있었던 불교도들의 모임에 참석했다”고 말하며 ‘예수가 앉았던 자리’를 가리켜 보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예수가 인도에 살았다는 이야기는 불교와 기독교의 공통점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는 19세기 역사학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주제다. 또 예수의 기원을 인도에서 찾으려는 일부 기독교인들에 의해 이런 이야기가 등장했을 수도 있다.
BBC는 예수가 12세부터 30세가 될 때까지의 시기를 복음서에 등장하지 않는 ‘사라진 시기(the missing years)’로 보는 견해를 소개하며, “이 시기에 예수가 인도에 와서 불교 사상을 체득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전했다.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기독교 교파 ‘승리의 세계 교회(Church Universal and Triumphant)’ 등은 예수가 인도에서 죽지는 않았지만, 카슈미르에 살았다고 보고 있다. 또한 예수를 (마호메트에 이어) 둘째가는 예언자로 보는 이슬람교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아메디야(Ahmeddiya) 교파 등이 로자발에 예수의 무덤이 있다는 주장을 수용하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채민기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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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 of the Rozabal Tomb in Srinagar, Kashmir
1.유즈 아사프로 불린 예수(Jesus)의 무덤:Rozabal
2.성모 마리아 무덤 (Mai Mari da Asthan)
1886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베드로 복음서(Gospel of Peter)의 자료에 의하면, 예수가 죽은 후 들어갔던 무덤은 요셉(Joseph)의 정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리마태아 요셉과 본디오 빌라도 로마 총독은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 당할 때의 조작극을 잘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한편, 독일의 신학자인 홀거 케르스텐(Holger Kersten, 1951~)이 쓴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라는 책을 보면,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도 않았으며, 십자가에서 부활하지도 않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예수는 이스라엘 유대인의 아브라함 후손이며, 이삭, 야곱, 다윗의 후손이다. 예수는 혈통적으로 유대인의 왕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러나 예수가 추구한 것은 바로 유대민족의 메시아(Messiah)가 되는 일이었다. 그가 필요로 했던 것은 절대 다수의 유대인들이 예수 자신을 유대인의 메시아(Messiah)로 믿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일이었다. 그래서 예수는 고대의 신화와 종교에서 언급되는 십자가 부활이라는 조작극이 필요했던 것이다. 기존의 유대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유대인의 메시아로 믿게 할 종교적 필요가 있었다.
성경을 보면 예수가 로마의 법을 어기거나 로마 당국과 충돌한 일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예수를 원수로 생각했다면 로마 당국의 본디오 빌라도 (Pontius Pilate)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자기네의 율법으로 직접 돌로 쳐서 죽이는 사형법으로 예수를 죽였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로마의 사형법인 십자가형으로 죽었다. 그리고 원래의 로마 당국의 십자가 사형법은 죄수의 시체를 말라비틀어질 때 까지 십자가에 놓아두는 법인데, 예수의 경우는 죽은 것만 확인하고 곧바로 쉽게 내 주었다. 기존 유대인의 집권층에서 볼 때, 불과 몇 년 사이에 불쑥 나타난 예수라는 사람이 갑자기 인기가 높아지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예수가 인도와 티벳 및 이집트에서 수행을 하고, 의술을 배우고, 고전을 공부하고 돌아오더니, 만민 평등을 주장하며 유대민족의 메시아 행세를 하고 다녔다. 예루살렘의 유대인
자치의회인“산헤드린(Sanhedrin)”을 비롯한 기존 유대인의 세력과 로마 당국은 그들의 권익에 위협을 느꼈고, 이들은 예수를 제거하려고 계획했다. 이 때, 예수는 이 사실을 미리 알아차렸고, 그래서 부패한 로마 집권층의 본디오 빌라도를 매수했다. 본디오 빌라도는 잔악한 폭군이었으며, 반면에 부패하여 뇌물을 좋아했다. 그리고 아리마태아 요셉과 본디오 빌라도 로마 총독은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 그래서 예수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찾아갔고, 예수는 자기가 원하는 모든 형태의 것을 부탁했다. 마가복음 15장 44절에 보면“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을 때, 본디오 빌라도 역시 예수가 그렇게 빨리 죽는 것에 대해 놀랐다.”라고 한다. 요한복음 19장 32절에 보면“로마 형리들이 예수의 다리를 부러뜨리려 했을 때에 예수는 이미 죽어 있었다.”라고 한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의 발이 십자가에 고정되어 있었고, 다리가 부러지지 않았다 라고 했으니, 정상적인 십자가형의 경우 2~3일 정도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수 있었다. 이 대목을 보면 예수가 십자가에 묶였을 때 탈진 상태로 의식을 잃었든지 혹은 예수가 시간을 맞추어서 적절하게 죽은 것이다. 이렇게 죽은 혹은 실신 상태의 예수는 미리 준비된 왕릉 같은 동굴 형태의 무덤에 안치 되었고, 마태복음 27장 60절에 의하면 "이 무덤은 아리마태아 요셉의 개인 소유”라고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 23장 49절에 보면“예수의 아는 자들과 따라온 여자들이 모두 멀리 서서 구경했다.”라고 한다. 이것을 보면 예수의 십자가 사형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만 모인 십자가 사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개인 소유지에서 가족 몇 사람과 로마 당국자들이 모여서 행해진 조작극이었고 깜짝 쇼였다는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는 연극을 꾸미고 그럼으로써 유대교파의 질시와 저주를 모면하게 되고 동시에 유대인의 메시아(Messiah)로서의 명분을 얻게 되었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린 후, 가사 상태에 있었고, 예수의 후원자인 아리마태아 요셉은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예수의 몸을 인수받아 동굴무덤에 안치시킨 후 다시 비밀리에 후송시켰고, 3일간 정성껏 치료한 후 회복되었다. 그리고 그는 3일 후에 가까운 소수의 몇 명에게만 나타났다. 이 때, 예수는 모든 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활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와 가까운 몇 사람에게만 나타나서 마치 부활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진짜 예수가 부활했다면 분명 여러 사람과 대중들 앞에 나타나 의심할 여지없이 증명해 보이며 당당하게 설파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예수는 십자가 부활 사건이 끝나고, 그 후에 어디로 갔을까? 예수는 시리아 다마스커스에서 2년간 살다가, 다시 성모 마리아, 동생 토마 등을 데리고 인도 캐시미르 지방으로 갔다. 성모 마리아는 예수가 38세 되던 해에 사망했고, 예수는 인도에서 115세가 되어 자연사 했으며, 예수(Jesus)의 무덤은 인도 슈리나가르의 칸자르(Khanjar) 지역의 안지마르(Anzimar) 마을에 있다. 묘지 앞에 로자발(Rozabal)이라고 쓰여져 있는데, 로자발(Rozabal)은 라우자 발(Rauza Bal)의 준 말이며, 라우자(Rauza)는 예언자의 무덤이란 뜻이다. 그 건물은 정사각형이며,그 건물에 덧붙혀진 조그마한 현관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실제 묘실로 들어가는 통로 위에는 유즈 아사프(예수)가 수세기 전 캐시미르 골짜기로 들어왔으며, 그의 일생은 진리를 찾는 탐구에 바쳐졌다고 설명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성모 마리아(Maria)의 무덤은 캐시미르 지역의 경계에 한가롭게 자리잡은 마리(Mari)라는 조그만 마을에 있다. 이 무덤은 마이 마리다 아스탄(Mai Mari da Asthan)이라고 불리는데, 성모 마리아의 마지막 휴식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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