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보통인간 노무현이 대통령 이명박에게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한부울 2009. 10. 8. 12:11

보통인간 노무현이 대통령 이명박에게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프레시안] 2009년 10월 07일(수) 오전 11:37


"결론에 사실을 짜맞추는 수사팀 교체해 주십시오"


"저와 관련된 일로 대통령께 청원을 드립니다. 청원의 요지는 수사팀을 교체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동안의 수사 과정으로 보아 이 사건 수사팀이 사건을 공정하고 냉정하게 수사하고 판단할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이명박 대통령에게 부치지 못했던 편지의 일부분이다.


이명박 정부와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의 갈등이 표면화된 '대통령기록물사건'에서부터 '박연차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에 이은 노 전 대통령 서거와 이후 추모 열기까지 일련의 상황에 대한 백서 형식인 '노무현, 서거와 추모의 기록I-내 마음 속 대통령'이 7일 출간됐다.


노 전 대통령 측의 검찰과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당시의 상황들은 이미 언론을 통해 잘 알려졌지만 이 책에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 1개월 전에 이명박 대통령에게 청원 형식으로 쓴 '부치지 않은 편지'와 대검찰청 출석 후 5월 초에 작성하다가 중단했던 '추가진술 준비' 등 미공개 자료가 포함됐다.


"뭐라 변명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모습ⓒ프레시안


검찰의 무차별적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의 '받아쓰기'에 지친 노 전 대통령은 4월 19일 '이명박 대통령께 청원드립니다'라는 편지를 작성한다.


"지금 수사팀이 하고 있는 모양을 보면 완전히 균형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사팀은 너무 많은 사실과 범죄의 그림을 발표하거나 누설했습니다. (…) 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사건 수사팀이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미리 결론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발표하거나 누설한 내용을 보면 미리 그림을 다 그려놓고 그에 맞게 사실과 증거를 짜 맞추어 가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 저는 저와 제 주변의 불찰로 국민을 실망시켜드린 점에 대해여는이상 더 뭐라고 변명을 드릴 염치도 없습니다 (…) 이제 저는 한 사람의 보통 인간으로 이 청원을 드립니다. 형사절차에서 자기를 방어하는 것은 설사 그가 극악무도한 죄인이거나 역사의 죄인이거나를 가리지 않고 인간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최소한의 권리입니다."


하지만 이 편지는 참모진의 만류로 청와대에 전달되지도 않았고 그동안 공개되지도 않았다.


노무현 재단 기록위원회 위원장으로 이 책의 집필을 총괄한 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기록물 사건 때도 전화 통화, 공개 편지 등 여러 경로로 입장을 전달하고 청원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지 않았냐"면서 "이 편지도 마찬가지 결과를 낳을 뿐이라고 참모들이 만류했고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셨다"고 전했다.


"재판과정에서 검찰의 수사 유도를 반드시 밝혀내겠다"


4월 30일 "내 인생 최악의 시간이었다"고 본인이 회고한 검찰 출두 이후 노 전 대통령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추가진술 준비' 문건에서도 도덕적 자괴감과 검찰에 대한 비판은 겹친다.


"형님까지는 단속이 쉽지 않았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아내와 총무비서관의 일에 이르러서는 달리 변명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대통령을 하려고 한 것이 분수에 넘치는 욕심이었던 것 같습니다…저는 야망이 있어서 준비하고 단련해 왔지만, 그들은 아무 준비가 없었습니다.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사람들을 위험한 권력의 세계로 제가 끌고 들어온 것입니다. 또 다른 원인은 제가 그들에게 경제생활에 대하여 신뢰를 주지 못한 결과일 것입니다. 아내는 오랫동안 이 문제에 관하여 불신과 불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지금 검찰이 하는 모습을 보면 먼저 도덕적 책임을 추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덕적 책임을 반드시 법적 책임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정적 증거라고 보도되고 있는 박연차 회장의 진술이라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저는 검찰이 선입견을 가지고 오랫동안 진술을 유도하고 다듬어서 만들어 낸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재판과정에서 이 과정을 반드시 밝혀 낼 것입니다."


감정의 기복마저도 엿보이는 이 글에 대해 윤 전 수석은 "이 글은 대통령님 서거 이후 컴퓨터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것인데 장례기간에 공개하기엔 여러모로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있었고 이 번 책에 포함시켰다"고 전했다.


이 글에 대해 기록위원회 측은 "그가 '어떻든 받았지 않았느냐?'라는 피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그 상황이 초래한 도덕적 상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피의자 권리는 보장받고 싶다는 당연한 욕구 사이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던 그 봄, 시간은 잔인하게 더디게 흘러가고 있었다"고 풀이했다.


또한 이 책에는 유족들이 강력한 반대 의사를 접고 국민장을 받아들인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언이 큰 역할을 한 과정, 국민장의 경과 등도 자세히 담겼다.


기록위원회 측은 <사람사는세상> 홈페이지에 '함께 쓰는 내 마음속 대통령' 코너를 만들어 시민참여를 통해 보완해야 할 내용, 의미와 교훈, 과제 등을 추가로 정리할 계획이다. 내년 5월 노대통령 서거 1주기 때 <기록 2>를 발간할 예정이다.


윤태곤 기자 PRESS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