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시작도 마지막도 바보, 그 바보와 사랑했네

한부울 2009. 5. 30. 21:30
 

시작도 마지막도 바보, 그 바보와 사랑했네

[한겨레신문] 2009년 05월 29일(금) 오전 10:05

 


 

가슴에 별 심어주던, 부끄러움 빛낸 사람

오늘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웁니다


[박노해 추도시]


가슴에 별 심어주던, 부끄러움 빛낸 사람

오늘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웁니다

기댈 곳도 없이 바라볼 곳도 없이

슬픔에 무너지는 가슴으로 웁니다

당신은 시작부터 바보였습니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또 떨어지면서도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살 수 있다고

웅크린 아이들의 가슴에 별을 심어주던 사람

당신은 대통령 때도 바보였습니다

멸시받고 공격받고 또 당하면서도

이제 대한민국은 국민이 대통령이라고

군림하던 권력을 제자리로 돌려준 사람

당신은 마지막도 바보였습니다

백배 천배 죄 많은 자들은 웃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고, 저를 버려달라고,

깨끗하게 몸을 던져버린 바보 같은 사람

아, 당신의 몸에는 날카로운 창이 박혀 있어

저들의 창날이 수도 없이 박혀 있어

얼마나 홀로 아팠을까

얼마나 고독하고 힘들었을까

표적이 되어, 표적이 되어,

우리 서민들을 품에 안은 표적이 되어

피흘리고 쓰러지고 비틀거리던 사랑

지금 누가 방패 뒤에서 웃고 있는가

너무 두려운 정의와 양심과 진보를

두 번 세 번 죽이는 데 성공했다고

지금 누가 웃다 놀라 떨고 있는가

지금 누가 무너지듯 울고 있는가

“당신이 우리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인생을 사셨는데”

“당신이 지키려 한 우리는 당신을 지켜주지도 못했는데”

지금 누가 슬픔과 분노로 하나가 되고 있는가

바보 노무현!

당신은 우리 바보들의 ‘위대한 바보’였습니다

목숨 바쳐 부끄러움 빛낸 바보였습니다

다들 먹고사는 게 힘들고 바쁘다고

자기 하나 돌아보지 못하고 타협하며 사는데

다들 사회에 대해서는 옳은 말을 하면서도

정작 자기 삶의 부끄러움은 잃어가고 있는데

사람이 지켜가야 할 소중한 것을 위해

목숨마저 저 높은 곳으로 던져버린 사람아

당신께서 문득 웃는 얼굴로 고개를 돌리며

그리운 그 음성으로 말을 하십니다

이제 나로 인해 더는 상처받지 마라고

이제 아무도 저들 앞에 부끄럽지 마라고

아닌 건 아니다 당당하게 말하자고

우리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처럼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향해

서로 손잡고 서로 기대며

정직한 절망으로 다시 일어서자고

우리 바보들의 ‘위대한 바보’가

슬픔으로 무너지는 가슴 가슴에

피묻은 씨알 하나로 떨어집니다

아 나는 ‘바보’와 사랑을 했네

속 깊은 슬픔과 분노로 되살아나는

우리는 ‘바보’와 사랑을 했네


시인 박노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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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당신 떠난 빈자리 우리가 채우렵니다.


아름다운 바보여!

당신은 소통의 부재 화두로 남기고 홀연히 자연의 품에 안겼습니다.

당신은 봄 햇살로 언제나 곁에 머물렀는데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제 당신 떠난 빈 자리

국화 한 송이, 담배 한 개비, 술 한 잔

그리고 흐르는 눈물 당신 영정에 바치며

당신이 이루지 못한 꿈 가슴에 새기고

촛불로 밝혀 차곡차곡 이루렵니다.

하지만 그 길 멀고 험함을 압니다.

햇살을 가린다고 어둠이 깃드는 것 아닌데

이 순간에도 여전히 어리석은 착각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 떠나는 당신에게

마지막 인사도 못하게

차벽으로 차벽으로 줄지어 가로막고 있는지

촛불은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촛불은 소통을 향한 염원이었습니다.

하여

이제 당신 떠난 빈 자리에 또다시 촛불 하나 밝힙니다.

당신이 뿌린 봄 햇살

우리도 살고 싶어 이렇게 먹먹한 가슴

흔들어 깨웁니다.


정상훈/서울 양천구 신정7동


부엉이 바위


너는 보았니

갓 동튼 새벽 어스름

뿌옇게 쌓인 안개를 헤치고

누가 너에게 다가오는지

생애 이 편 저 편 너를 마음에 품고

물러서지도 비켜가지도 않고

외길을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농투성이 투박한 모습으로

뚜벅 뚜벅 너에게 다가갔는지

굶어 죽더라도 씨앗을 품는다는 농투성이

그 씨앗이 백 만배의 결실로 맺히는

내일을 기약하기에

가슴에 한 가득

피어나지 못한 씨앗을 안고

속이 너무나 아파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서

잠시 후 만남을 기약하는

지옥 같은 마음으로

너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이를

너는 보았니

담배 한 개피마저

여의치 않았던 세상

너의 기슭에 또 하나의

오월 넋으로

내려앉은

그를 너는 보았니

어둠을 횃불 같은 눈으로 밝히는

밤의 현자 부엉이

온 몸에 병원균을 묻히고 돌아치는

쥐 나부랭이들을 단번에 내치는

종결자 부엉이가 깃든다는

너는

그날 무엇을 보았니


유병천/경기 의정부시 금오동


내 오랜 사랑


오월, 그 서러운 계절

아직 눈감지 못하는 고혼들의 비가 (悲歌)

산하에 사무치고

남아있는 여린 곡조만이

두견화 따라 피고 지는데

내 오래된 사랑

서러움도 목말라 내려 놓고

분노마저 힘겨워 질 때

한 송이 미소로 나타나

한 줄기 눈물로 나타나

노래가 되어 곡조가 되고

사랑이 되어

다시 눈물이 되고

한 길 한 길

한 걸음 한 걸음

울고 노래하며

사랑하여 걸어간 길

오월의 남도

끝없는 황토의 땅

죽어야만 사는 생명

모진 역사의 척박함

눈물로는 해갈 안되고

노래로도 열리지 않는

절망의 강산

통한의 산하

몸이 죽어 흙이 되고

영혼마저 거름 되어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비로소 얻은 생명

다시 시작되는 노래

오월, 그 찬란한 계절

죽어있던 모든 것들의 부활

다시 시작되는 노래

버리고서 얻은

생명의 노래

온전히 내려 놓고

비로소 얻은 자유

다시 시작되는 생명

내 오랜 사랑

내가 부르는 사랑의 노래


김홍열/경기 고양시 마두동


그분을 생각하며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며

그분을 생각한다.


그분의 죽음은

그분을 둘러싸고 행해졌던 모든 농간들을

추문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분의 죽음은

그분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모든 것들이

한 판의 쇼였음을

명백하게 드러내보였다.


그분의 죽음으로 하여 우리들은 모두

추문의 당사자가 되어버렸고,

잘 만들어진 쇼의 귀 얇은 관객이었음을

뼈아프게 깨닫게 되었다.


그 죽음이 아니었다면

그 모든 것들이 쇼였음을

어떻게 밝힐 수 있었을 것인가.


그 죽음이 아니었다면

해일처럼 다가왔던 능욕들과

그보다 더 크고 길었을 치욕들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인가.


그분이 스스로를 버리심으로써

그분이 지키고자 했던 것을 지키고 가신 지

며칠 지난 아침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며

그분의 죽음을 또 생각한다.


그분의 마지막 아침에

담배 한 대가 없었음을

못내 아쉬워한다.


신현주/서울 송파구 잠실동

한겨레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