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슈케나짐-Ashkenazi Jews
아슈케나짐(히브리어: אשכנזים)는 유럽에 거주하던 유대인 그룹이다. 아슈케나지 유대인(יהודי אשכנז 예후디 아슈케나즈) 이라고도 불리며 세파라딤과 구별된다. 중세시대 당시 라인랜드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의 후손이다. "아슈케나즈"는 그 당시 히브리어로 독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슈케나지 유태인들은 동유럽 국가들로 이주했다.
아슈케나짐은 11세기 당시 전세계 유대인들의 3%에 불과했으나 1931년에는 92%를 차지했으며 현재 80%를 차지한다. 20세기 중반까지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이디시어를 사용했다. 지중해 주변에 있는 유대인들을 제외하면 유럽 출신 유대인들의 대부분이 아슈케나짐으로 여겨진다. 현재 아슈케나짐 유대인의 숫자는 8백만 명 내지 1천 2백만명이다. 이중 3~4백만 명은 이스라엘에 거주하고있으며, 약 6백만 가량의 유대인들은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역사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유대인들의 직종이 한정되어있었으며, 기독교인들 사이의 높은 이자와 관련된 금융활동을 금지해서 아슈케나짐들은 대부분 무역과 금융에 관련된 직업을 맡았다. 프랑스에서는 많은 유대인들이 포도밭을 소유했으며 포도주를 만들었다. 최초의 반유대 폭동은 11세기에 발생했으며 1182년 결국 유대인들은 프랑스에서 추방당했다. 15세기 경 폴란드에 존재한 유대인 지역들은 디아스포라 이래 가장 큰 유대인 지역들로 발전하였다.
유대인 대학살
당시에 전 유럽에 존재했던 약 8백만 유대인들 중 대다수가 아슈케나짐이었고, 학살당한 6백만명의 희생자 역시 대부분 아슈케나짐이었다. 폴란드에 존재했던 330만 유대인 중 3백만 명(91%)의 폴란드 출신 유대인과 110만 명 중 90만명의 우크라이나계 유대인 (82%)들이 희생당했다. 슬라브 민족, 독일, 프랑스, 헝가리와 발칸 반도 출신 유대인들은 약 50~90% 정도가 학살당했다. 아슈케나짐이 아닌 유대인들이 대규모로 희생된 나라는 그리스밖에 없었다. 생존한 아슈케나짐은 대부분 이스라엘, 오스트레일리아나 미국으로 이주했다.
관습, 전통과 법
아슈케나짐들의 관습들은 세파르딤과 여러모로 다르다.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과월절에는 전통적으로 콩과식물, 옥수수, 쌀과 조를 먹는 것을 멀리했다. 반면에 자유롭게 생선을 섭취하고 우유를 마시지만 세파르딤 유대인들은 이런 음식들을 피하는 편이다. 히브리어 발음 역시 다소 다르다. "타우"라는 히브리 문자를 발음할 때 끝 부분에 "t" 혹은 "th" 발음 대신에 "s" 소리를 붙인다는 것이다.
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at its greatest extent.
Jews
Juda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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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족의 후예 '아슈케나지' 유태인Ashkenazi
유대인 역사 2008/09/29 11:18
아슈케나지 유태인들은 북동 유럽계 유대인으로 옛날 카자르(Khazar) 왕국을 세웠던 터키(돌궐족)계 카자르인의 후손이다. 따라서 현재 유럽과 미국에 퍼져 있는 유태인들은 대개가 투르크계라 할 수 있다.ⓒ catholicvoice.co.uk
현재 전 세계 유태인의 숫자는 약 1,500만~1,8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오늘날의 유태인들을 크게 ‘아쉬케나지’(Ashkenazim)와 ‘세파라딤’(Sepharadim), 그리고 이디오피아계인 ‘팔라샤’(Falasha) 등 세 부류로 나눈다.
이 가운데 순수 셈족으로 알려져 있는 세파라딤 유태인은 과거 유럽으로 이산한 유태인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거주했던 사람들과 그 자손들을 말한다. 이베리아 반도에 이주한 세파라딤은 중세시대 전 세계 유태인의 절반을 차지했고 라디노어(유대스페인어)를 사용했다.
일례로 지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주 경기장이 위치한 몬주익(Montjuic) 일대는 과거 유태인들의 집단 거주지였다. (몬주익은 `유태인의 산`을 뜻한다.) 그러나 1492년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 두 가톨릭 왕들이 마지막 남은 이슬람 지배 지역인 그라나다에 입성 합으로써 스페인에 대한 아랍의 지배는 종식됐다.
유태인들은 가톨릭으로 개종하라는 압력을 받았으며 만약 개종하지 않으면 스페인에서 떠나야만 했다. 당시 이베리아 반도 전체에는 약 50여만 명의 유태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5만 명이 1500년 가까이 살아온 고장을 떠나기 싫어 부득이 스페인에 잔류했으며 나머지 유태인들은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오스만 제국으로 이주했다.
반면 아슈케나지 유태인들은 북동 유럽계 유대인으로 옛날 카자르(Khazar) 왕국을 세웠던 터키계 카자르인의 후손이다. 카자르 지방은 현재의 남러시아의 평원으로 8세기경 이 광대한 초원에서는 터키계의 사람들, 즉 카자르 족은 상인, 직인, 무사로 살았다. 이 무렵 카자르 왕국은 비잔틴의 기독교와 이슬람교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았다.
이에 740년경 불란(Bulan)왕은 양쪽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유태교를 국교로 정하고 국민 대다수를 유태교로 집단 개종시켰다. 카자르 왕국은 9세기부터 국세가 기울기 시작하여 슬라브족의 침략을 받게 되었으며, 급기야 956년 우크라이나 왕국의 스비아토스라프 왕의 침략을 받고 몰락했다.
그 후 아시아로부터 온 몽골군이 유럽으로 원정을 오자 카자르인 들은 몽골을 피해 북쪽으로 이동했다. 따라서 매부리코로 유명한 동부 유럽의 아쉬케나지 유태인들이 실제로는 터키계인 카자르 족의 후손인 셈이다.
현재 아쉬케나지는 미국, 이스라엘, 유럽, 남아공에 약 1,200만 명(전세계 유대 인구의 70%차지), 세파라딤은 이스라엘,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 약 450만 명, 팔라샤는 이스라엘, 이디오피아, 예멘 지역을 합쳐 약 2만 명 정도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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