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프랑스 파리, 외교 십자로 되다

한부울 2008. 7. 14. 17:23
 

프랑스 파리, 외교 십자로 되다

[동아일보] 2008년 07월 14일(월) 오전 02:56


 

 

“문명간 대화” 기치… 카다피 “新십자군일뿐” 비난

프랑스 수도 파리가 유럽-중동-북아프리카의 ‘외교적 십자로’가 됐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주도한 ‘지중해연합’이 산고 끝에 13일 파리에서 출범했다.  프랑스는 유럽연합(EU) 전 회원국과 지중해 연안 17개국 등 43개국 정상을 파리에 초청하고자 노력해 왔으며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최고지도자를 제외한 42개국이 이에 응했다.


프랑스 언론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와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앉는 만큼 회담은 이미 성과를 내고 있는 셈’이라고 환영을 표시했다. 일간지 르피가로는 “알아사드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이 아니라 프랑스 파리에서 국제무대로의 복귀를 노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리아는 레바논에서 정부의 각료 배분권을 둘러싼 대립을 끝냈고 터키의 중재로 이스라엘과의 대화에도 나섰다. 레바논 베이루트와 시리아 다마스쿠스 사이에 외교관계를 열어 ‘대(大)시리아’ 계획 포기를 천명할 준비도 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란, 팔레스타인 하마스, 레바논 헤즈볼라 등 급진 이슬람주의자들과의 암묵적 동맹관계는 줄여나간다는 방침이다.


약 7억76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지중해연합은 이날 회의에서 태양력 발전벨트 조성, 항로(航路)통제권 협조, 중소기업 교역기구 설치, 자연재해 발생 시 협조 등 덜 민감한 문제부터 해결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지중해연합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지난해 취임 직후 모로코를 방문했을 때 기독교와 이슬람세계 간 문명 대립의 해소, 유럽과 북아프리카 국가 간의 경제 격차 해소를 목표로 제안한 구상. 당시 사르코지 대통령은 “젊은 인재와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갖고 있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은 이제 유럽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교역해야 할 단계로 성숙했다”며 “이를 통해 유럽의 골칫거리인 이슬람 테러와 불법 이민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사르코지 대통령의 제안은 거의 모든 당사국으로부터 반발을 샀다.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과 한 회의석상에 앉는 것조차 거부했다. 유럽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프랑스가 생색은 다 내고 EU는 돈만 대는’ 제안이라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스페인도 북아프리카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이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터키는 프랑스가 터키의 EU 가입을 거부하기 위해 이 같은 연합을 추진한다는 의심을 보였다.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 중에서는 알제리가 심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프랑스는 외교력을 총동원한 집중적인 설득작전을 펼쳐 해당국의 거의 모든 정상을 초대하는 데 성공했다.


유일하게 초청을 거부한 카다피 최고지도자는 지중해연합을 ‘제국주의적 발상’이라고 비난해 왔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달 카다피 최고지도자를 설득하기 위해 최측근을 리비아에 보냈으나 그의 마음을 돌리는 데는 실패했다. 가다피 최고지도자는 “지중해연합은 새로운 십자군 전략에 불과하며 이에 대항하는 이슬람 테러만 격화시킬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번 모임은 프랑스와 이집트의 공동 주최라는 형식을 띠고 있다.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공동 주최국이라는 자리를 확보한 후에야 지중해연합에 참여했다. 프랑스는 올해 말까지의 EU 순회의장국 지위가 끝난 후에도 지중해연합의 주최국으로 남으려는 희망을 나타내고 있지만 독일 등 다른 EU 회원국들은 이를 극력 반대하고 있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