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식민사학자가 남긴 '신라사연구'
[연합뉴스]2008년 06월 08일(일) 오전 08:00
이마니시 遺著 완역(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일본의 동양사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1875-1932)는 한국 역사학계에 대표적인 일제 식민사학자로 각인돼 있다. 그에게 이런 측면이 두드러진 것은 사실이지만 싫건 좋건 그가 한국사를 근대적인 의미에서 반석 위에 올려 놓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마니시는 실증주의를 고수한 문헌사학자로만 부각돼 있지만 고고학자이자 서지학자이기도 했다. 한국 고고학에서 발굴은 1906년 경주를 기점으로 삼는데, 그 첫 발굴자가 다름 아닌 그였다.
도쿄제국대학 사학과 출신으로 1906년 조선을 처음 방문한 그는 1932년 타계할 때까지 교토제국대학과 경성제국대학 교수를 겸했으며, 미술사학자인 세키노 다타시(關野貞)와 함께 조선 고적(古蹟) 조사를 지휘했다.
신라사회를 이해하는 키워드로 골품제(骨品制)를 처음으로 들고 나온 인물이 이마니시였으며, 갈문왕(葛文王)에 대한 해명을 근대적인 연구방법으로 시도한 첫 주인공도 그였다. 이마니시가 의욕적으로 시도한 신라 진흥왕 순수비 연구는 1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학술논문에 인용되곤 한다.
이런 그의 신라사 연구를 집대성한 결과물이 죽은 지 1년 뒤인 1933년 근택서점(近澤書店)에서 유저(遺著)로 나온 '신라사연구'.
갈문왕에 대한 해명을 시도한 '신라 갈문왕고(新羅葛文王考)'라든가 '신라 골품고(骨品考)를 비롯한 학술논문은 물론이고 각종 기행문이나 답사결과물까지 신라사와 관련된 글 26편이 수록됐다. 이 중 11편 가량이 미완성이다. 나중에 적절한 시기에 보완을 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죽는 바람에 미처 완성하지 못한 글까지 수록한 것이다.
이 '신라사연구'가 신라사 전공자인 이부오 박사(화정고 교사)와 일본의 한국사 연구자인 하시모토 시게루 박사 2명이 공동으로 완역해 최근 역사학 전문 출판사인 서경문화사에서 출간됐다.
누구보다 이마니시 논문을 많이 읽은 동국대 역사학과 이기동(65) 교수는 이번 번역본을 검토하고는 "내가 잘못 이해하고 인용한 곳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면서 "일본어 원전 해독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할 수 있는 젊은 역사학 연구자들에게 이런 완역본은 특히 더 도움이 되리라 본다"고 평가했다.
이마니시를 필두로 1세기 전 근대 역사학 초기 한국사 연구를 주도한 일본 역사학자의 저서가 온전히 번역되기는 '신라사연구'가 처음이다.
조선총독부에 의해 촉탁, 혹은 조선고적조사 위원 등으로 임명되어 유적 조사와 역사연구를 진행한 이마니시는 한국사를 정체성론, 혹은 타율성론에 의거해 설명하는 소위 식민사학의 전형적인 특성을 곳곳에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신라가 진흥왕 시대에 건립한 4대 순수비에서 동시대 중국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수준 높은 한문을 구사한 사실을 두고는 이를 신라로 귀화한 중국인이 썼을 것이라고 추정하는가 하면, "문화의 정도나 존속의 기간으로 보아 비의 건립이 가장 적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신라시에서 동시대 같은 종류의 비가 3기나 남은 것은 기연(奇緣)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신라에서 진흥왕 시대에 이미 완연한 한문 문장을 구사하고, 그런 한문을 새긴 비문을 세웠다는 사실을 못내 인정하기 싫음을 엿보이게 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508쪽. 2만7천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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