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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용병·육아휴직·UFO… 조선시대 맞아?

한부울 2008. 1. 22. 13:06
 

흑인용병·육아휴직·UFO… 조선시대 맞아?

[오마이뉴스] 2008년 01월 21일(월) 오후 05:26

 

▲ <친절한 조선사> 표지 '역사의 새로운 재미를 열어주는 조선의 재구성'이라는 설명이 붙은 <친절한 조선사>.  미루나무 

 

임진왜란에 참전한 흑인용병, 노비에게도 출산·육아휴직을 줬던 세종, 광해군일기에 기록된 UFO(미확인비행물체) 목격담, 중종이 우유죽 먹는 것을 금지했던 이유, 욘사마를 뛰어넘었던 조선통신사의 한류 열풍, 중국 사신들의 기를 죽였던 조선의 불꽃놀이, 살인사건으로 귀양을 갔던 코끼리…….


조선시대에 과연 이런 일이 있었을까. 조선의 역사를 들춰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친절한 조선사>는 이렇듯 호기심을 잔뜩 자극하는 이야기 스무 가지를 들려주며 독자들을 조선시대로 맛깔나게 안내한다.


먼저, 이름만으로도 흥미로운 흑인용병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흑인에 대한 기록은 태조 3년(1394)에 처음 등장한 뒤, 선조 대인 1598년에 이르러서는 흑인용병이 임진왜란에 참전한 이야기가 나온다.


흑인용병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선조는 용병을 소개한 명나라 장수에게 “조선은 한쪽 구석에 있어서 어디 이런 신병을 볼 수 있겠소이까, 지금 대인의 덕택으로 이를 보니 이 또한 황은이 아닐 수 없소이다, 이제 저 무식한 왜놈들을 섬멸하는 날이 곧 올 수 있겠소이다”며 감격해 한다. 하지만, 실제 기록에는 용병들의 전과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욘사마 뛰어넘었던 한류 열풍, 조선통신사의 마상무예


누구나 존경해마지 않는 성군 세종대왕이 정한 출산정책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 세종은 서울 밖 공공기관에 소속된 노비가 아이를 낳으면 휴가를 백일 동안 주게 하고 이를 일정한 규정으로 삼게 하라고 하였고 이후 4년 후에는 파격적으로 출산 전 휴가도 직접 챙겨주었다. 이에 대한 <세종실록>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옛적에 관가의 노비에 대하여 아이를 낳을 때에는 반드시 출산하고 나서 7일 이후에 복무하게 하였다. 이것은 아이를 버려두고 복무하면 어린 아이가 해롭게 될까봐 염려한 것이다. 일찍 100일 간의 휴가를 더 주게 하였다. 그러나 산기에 임박하여 복무하였다가 몸이 지치면 곧 미처 집에까지 가기 전에 아이를 낳은 경우가 있다. 만일 산기에 임하여 1개월간의 복무를 면제하여 주면 어떻겠는가. 가령 그가 속인다 할지라도 1개월까지야 넘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상정소에 명하여 이에 대한 법을 제정하게 하라.”


세종은 한 발 더 나아가 "이제부터는 사역인의 아내가 아이를 낳으면 그 남편도 만 30일 뒤에 구실을 하게 하라"며 남편의 육아휴가를 아낌없이 보내는 데 이른다. 출산을 장려하면서도 아직까지도 남편의 육아휴직은 눈칫밥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당시 세종의 출산정책은 정말 파격적이었다.


가깝고도 먼 조선시대 이야기를 친절하게 풀어 낸 <친절한 조선사>의 저자 최형국(33)은 중앙대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사학도이자 조선의 무예24기 수련회 시범단장이다. 조선역사에 온 몸을 던지고 있어서일까. 저자가 들려주는 조선의 이야기는 쉽고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쫑긋 귀를 세우게 만든다.


조선통신사는 짧게는 8개월에서 길게는 2년에 걸쳐 험난한 일본 방문 여정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일본의 환영인파는 지금의 욘사마(배용준)가 일으킨 한류열풍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특히, 조선의 마상무예인 마상재(馬上才)는 일본사람들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은 열풍의 진원지였다.


“조선군관들이 펼치는 마상재를 보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당시 그 광경을 보면, 마상재가 펼쳐지는 장소를 중심으로 양 옆에 수도 없이 장막이 쳐졌고 숨 쉴 틈도 없이 빼곡하게 사람들이 들어앉아 놀라운 광경을 구경했습니다. 달리는 말을 좌우로 넘나드는 좌우초마(左右超馬)나 말의 한쪽 옆구리에 숨듯 매달리는 등리장신(?裏藏身) 등의 자세가 펼쳐질 때면 서로들 기이한 일이라며 기립박수를 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조선 무사들의 마상재와 유사한 다아헤이혼류(大坪本流)라는 마상무예 유파가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이는 무예24기 보존회 시범단장인 저자가 가슴 뭉클할 내용일 듯싶다.


소젖 많이 짜지 마라! 백성이 운다


<친절한 조선사>에 실린 이야기는 관심 있는 것부터 읽어도 상관없다. 대개의 역사서가 연대기 순으로 써내려간 것에 비해 이 책은 왕들의 작은 이야기, 역사 속 작지만 역동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기이한 물건 및 동물들의 이야기, 그리고 먹거리를 둘러싼 이야기 등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눠놓았기 때문이다.


‘소젖 많이 짜지 마라! 백성이 운다’ 등의 이유로 우유죽 먹는 것을 금지했던 중종, 마당 위로 세숫대야 같이 출현한 UFO를 보고 놀랐던 양양부의 품관 김문위, 불꽃놀이를 너무 좋아했던 성종에게 상소문을 올려야 했던 대사헌 이계손, 일본에서 선물로 바친 코끼리가 살인을 저지르자 전라도 섬으로 유배를 보냈던 이야기 등은 저자의 친절한 역사인식을 전해준다.


저자 최형국은 ‘저자의 말’에서 다음과 같은 역사관을 적었다.


“역사의 기록은 ‘승자의 역사’이며 대부분 ‘큰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그 영광스러운 승리의 역사 뒤에서 헌신했던 사람들이나 그 큰 사람들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온데간데없다. 어디 역사라는 것이 한 개인을 위해서 만들어지고 그를 위해서 모든 것이 존재해야 한다는 어리석은 영웅사관으로 만들어지는 것인가!”


스무 가지 이야기는 어느 것 하나 빼놓을 게 없이 재미있다. 때론 ‘진짜로?’라는 감탄사와 함께 때론 ‘과연 그랬을까?’하는 궁금증이 번갈아가며 읽는 속도를 더해준다. 이는 저자가 “도대체 왜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리고 그 안에 숨은 이야기들은 무엇이 있을까?”라는 의문에 대해 스스로 구한 답이 고스란히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역사가 어렵다고, 지겹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펼치기에도 부담이 전혀 없다. 오죽했으면 제목에조차 ‘친절한’이 붙었을까. 긴 겨울방학을 마무리하는 학생들이나 입시를 마친 수험생들 그리고 딱딱한 역사에 지친 사람들에게도 적극 권해 드린다.


저자 최형국은 누구?

 

 저자 최형국의 무예시범 <친절한 조선사>의 저자 최형국은 사학도이자 무예24기 보존회 시범단장이다.  최형국

 

중앙대 대학원 사학과 박사수료. <조선시대 기사(騎射) 시험방식의 변화와 그 실제>, <조선후기 군영의 왜검 교전 변화 연구> 등 다양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푸진 삶이 좋다며 가난한 풍물패 상쇠 생활을 마다하지 않았던 필자는 현재 무예24기 보존회 시범단장으로 찬란했던 조선 무예를 치열하게 수련하고 있으며, 역사의 진실을 찾아 온몸을 던져 연구하고 있다.


죽어 있는 역사가 아니라 늘 살아 숨 쉬는 역사를 찾기 위해 궁구하는 그는 필시 이 시대 문 무예를 아우르는 젊은 괴짜 실학자임에 분명하다.


“…… 지독하게 수련했습니다. 작다는 이유로 더 이상 상처받기 싫어서, 지리산 능선을 배낭 메고 죽기 직전까지 달리고 달리며, 체육관 바닥에 땀이 고이도록 , 대밭의 대나무가 남아나지 않도록, 진검 들고 치고, 베고, 찌르며, 발차기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해……


푸지게 굿을 쳤습니다. 꽹과리 수십 개를 깨뜨리며, 장단에 녹아 들어가며, 한삼자락이 땀에 질펀해지도록 탈춤 추며… 그리고 지금 나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젊은 날의 치열했던 그의 자화상처럼, 지금도 그는 일분일초 치열하게 역사의 진정한 의미를 캐내는 데 푹 빠져 있으며, 아울러 동시대인과 함께 역사를 이야기하며 한걸음씩 더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가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최육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