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출신 한인 4세, 美 성공스토리
[연합뉴스] 2009년 05월 08일(금) 오전 05:15
스베틀라나 김, 미 의회도서관서 강연
영어 한마디 못하던 내가 구소련 붕괴와 함께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주식 중개인과 전업작가로 성공했습니다."한국계 4세인 스베틀라나 김(41)은 7일 미 의회도서관 주최로 열린 `아시아.태평양 미국인 역사의 달' 행사에서 자신의 저서 `백옥과 나(White Pearl and I)'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백옥은 김 씨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는 할머니의 이름이다. 김 씨의 증조부는 1900년 한반도의 기근을 피해 러시아를 찾아 정착한 이른바 `고려인' 1세대.
구소련 붕괴 후인 1991년 12월 당시 23살이던 김 씨는 지갑 속에 달랑 1달러만 소지한 채 뉴욕행 비행기에 무작정 몸을 실었다. 할머니가 늘 들려준 "큰 꿈을 품어라"는 말씀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대장정'의 첫 걸음이었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던 그는 뉴욕에서 만난 낯선 사람에게서 미 서부로 갈 수 있는 버스티켓을 한 장 얻는 행운을 얻었고, 우여곡절 끝에 아시아계 이주민이 많았던 샌프란스시코에 정착했다. 그는 청소와 잔심부름 등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끝임없는 노력 끝에 결국 아시아계 여성으로는 드물게 주식 중개인으로 성공했다.
공산국가 출신인 그는 월스리트저널에 암호처럼 실린 주식시세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된 후 뮤추얼 펀드, 주식, 채권을 닥치는 대로 공부하게 됐고, 결국 주식 중개인으로 입문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지난해에는 조지 부시 전임 행정부에서 교통장관을 지낸 일본계 노먼 미네타, 노동장관을 역임한 중국계 일레인 차오와 나란히 아시아학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광을 누렸다.
김 씨는 온갖 역경을 딛고 입지전적인 성공스토리를 일궈냈지만, 이날 강연에서 "비행기 티켓과 1달러만 갖고 미국에 오는 일은 권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러시아어, 독일어, 영어를 구사한다는 김 씨는 "유감스럽게도 한국어를 하지 못하고, 한국에 가 본 적도 없다"고 말하면서도 "한국계로서 큰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스탈린이 1937년 한국어 교과서를 포함해 모든 한국어 서적을 불태우도록 지시한 가운데서도 자신의 할머니는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기 위해 한국 노래를 공책에 적어 자녀들에게 가르쳤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 자신의 저서 `백옥과 나'가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지금은 전업작가로 활동하면서 두 번째 저서를 집필중이며, 앞으로 향수 사업에 뛰어들 계획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 스베틀라나가 `빛'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하면서, 앞으로 돈을 많이 벌어 빌 게이츠 같은 자선사업가가 돼 사회의 `빛'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워싱턴=연합뉴스) 고승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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