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사건

1890년에 영국인들이 말한“COREAN” 시대(Era)라고 한 의미

한부울 2012. 11. 18.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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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에 영국인들이 말한“COREAN” 시대(Era)라고 한 의미

 

글쓴이:한부울

 

안수길(서울대 전자공학부)명예교수가 쓴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는 한국을 지칭하는 corea 와 korea 것 중 어느 것이 정통성이 있는가를 밝히기 위해 여러 외국자료를 찾았다는 사실과 최종 미국(美國)과 영국(英國)등 영어권(英語圈)에서 한국(韓國)을 어떻게 지칭하였는가에 대한 관심이 있어 결국 서울 정동에 있는 영국대사관 건물 초석에서 KROEA 가 아닌 “COREA” 라고 지칭한 사실을 알아냈다는 이야기의 골자이다.

물론 그가 찾아 낸 사실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그의 글에서 나타나는데 바로 미국 메인주(Maine)에 있는 “corea” 라고 하는 마을(town)에 대한 새로움과 1996년 서울에 있는 영국대사관(英國大使館)을 찾아 그 현관 벽에 붙어 있는 사진에서 당시 정동(貞洞)에 있었던 영국대사관(英國大使館)건물의 초석(礎石)사진을 보았다는 것이고 그 초석에 새겨진 글씨에 영어(英語)로 korea 가 아닌 corea 라고 새겨진 사실을 알았다고 하는데서 그 초석의 문장들을 신기하게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신기하게 생각되는 것 중 미국 메인주(Maine)에 있는 “corea” 라고 하는 마을(town)에 대해서 다음 편에 쓰기로 하고 영국대사관 건물 초석에 쓰여진 간단한 문장들을 유심히 관찰해 볼까한다.

 

                                             [신축전에 영국영사관이라고 한다] 

 

[논외 언급의 글]

위 영국영사관 한옥 건물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약속된 상황에서 연출된 건물 그림이라는 사실이다.

옛부터 서울 정동에는 각국 대사관, 영사관 건물들이 즐비했다고 한다.
물론 알 수 없는 대륙 어느 곳에 최초 건립된 건축물이라고 할지라도 사진이나 그림으로 정교하게 그려 한반도 정동에 똑 같이 건립하거나 이후 똑같은 건물이 정동에 있었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당시에 기록말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억은 6.25년으로 모두 사라지고 없다.

1950년 이전 역사를 기억으로 담아 남길 수 없었던 매우 안타까운 일이 한반도에 벌어진 것이다.
어째서 서구라 할지라도 당시 서로 싫고 좋은 나라가 있을 것인데 다 같이 하필 정동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각국에서 건물 짓겠다고 하였다는 발상한 자체가 정상적이지 못하는 이야기다.
건물은 한반도의 역사가 안착한 후 전체적으로 기획아래 함께 세운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

빠르면 일제강점기가 될 것이고 늦다면 1950년 이전까지이다.
또한 각종 조선인이 갓쓰고 도포입고 나오는 그림들은 전부다 한반도에서 역사가 쓰여지면서 부터 본격적으로 제작하여 유포된 것이라고 보이고 시각적으로 역사를 나름대로 증빙하고 들어내기 위하여 사진을 빙자한 당시 정교하게 그렸다고 보는 그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진과 그림은 근세기에 역사조작하는데 가장 유용하게 쓰이며 실증으로 활용 되었다는 사실은 정설이다.
그러나 한반도에 힌옷을 입고 생활했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보이고 한복을 입고 물단지를 머리에 매고, 삿갓을 쓰고, 개천뚝으로 줄지어 다니던 사람들, 군중에 짐지게 짊어진 사람, 담뱃대를 문 사람, 바지가랑이를 걷어 올린 사람, 아낙들이 빨래하던 모습, 이런 것들은 한반도 역사만들기에 가장 중요한 팩터로 활용되었다고 본다. 그렇지만 단언컨데 조선역사에서 그들의 모습만이 유일한 구성원이었다고 할 수는 없는 또 다른 역사사실들이 즐비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한부울]

 

                            [1894.8.4일자에 London news에 실린 영국대사관 모습]

 

초석(礎石)

FOUNDATION STONE LAID IN THE RESIDENCE GARDEN

This Stone was laid by Mrs. Walter C. Hillier

on the 19th Day of July 1890

Being the 34th Year of the Reign of Her Most Gracious Majesty Queen Victoria

The 16th Year of Kwang HsU and The 499th of the Corean Era.

 

위는 안교수가 게시한 자료인데 이것이 바로 한반도 서울(Seoul)정동(貞洞)에 영국대사관(英國大使館) 건물 초석(礎石)에 나타난 글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당시 서울(Seoul)이나 한양(漢陽), 한성(漢城), 경성(京城)등 서울을 나타내는 지명은 전혀 보이질 않는 다는 것이 문제가 있는 초석이다.

초석에 건물이 들어서는 장소를 표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임을 알게 한다.

주한영국영사 힐리어(Walter C. Hillier)가 초석을 놓았다고 되어있으며 건물이 세워진 시기가 1890년이었음을 알 수 있고 그 때는 신장 152㎝의 영국여왕 빅토리아(Queen Victoria, 1819-1901)가 통치하던 시기로서 그레이트브리튼아일랜드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1800-1922:재위1837-1901)여왕과 인도제국(Empress of India,1877-1947:재위1876-1901)여제(女帝)를 동시에 겸했던 시기이다.

 

1890년은 그녀 나이71세가 되는 해이고 그레이트브리튼아일랜드연합왕국여왕 재위시기로 따지면 53년째 되는 해이며 또한 인도여제로서의 재위시기를 따진다면 24년째 되는 해가 된다.

 

Being the 34th Year of the Reign of Her Most Gracious Majesty Queen Victoria.

 

그런데 위 빅토리아 여왕 앞에 최고의 경의수식어가 들어가 있는 문장을 보면 “가장 인자하고 자비로우신 폐하 빅토리아여왕의 통치로부터 34년이 되는 해”라고 하고 있는데 위에 언급한 사실을 토대로 아무리 따져보아도 34년이란 숫자를 맞출 수가 없다.

그래서 역으로 추산해 들어가니 결국 1856년부터 빅토리아 여왕이 어떤 지역을 통치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 사실 또한 현재 자료로서는 찾기가 불가능하다.

1856년과 가까운 시기로 따진다면 1857년에 영국과 프랑스 양국은 수에즈 운하수에즈운하(Suez Canal, The Highway to India, 1859-1869)의 통치권을 두고 전쟁을 벌였고, 결국 영국의 승리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The 16th Year of Kwang HsU and The 499th of the Corean Era.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어 나오는 문장이 주는 의미이다.

자료에 보면 The Guangxu Emperor (Wade-Giles: Kuang-hsu Emperor; 1871-1908)라고 나오는데 이것은 Kwang HsU라 함은 바로 광서제(光緖帝, 1871-1908재위:1875-1908)를 지칭한 것으로서 청나라(淸:1616-1912) 제11대 청 덕종(淸德宗)황제(11th Qing Emperor of China)를 말한다.

 

그런데 “The 16th Year” 즉 16년째 되는 해가 1890년이라는 이야기로써 재위년도가 1875년이었으니 1890년이라면 즉위 16년 되는 해이다.

자료에 따르면 광서제는 청나라 역사상 최초의 방계 혈통 출신 황제라 하였다.

혈통관계의 분류법에는 직계방계(直系傍系)가 있는데 직계(直系)는 조부, 부, 자, 손과 같이 조부로부터 손자로 곧바로 이어나가는 관계를 말하는 것이고 방계(傍系)는 형제, 조카 등과 같이 공통의 조상을 통하여 갈라지는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조선국왕 중에서도 조선 말기에 거의 청나라 광서제와 똑 같이 철종(哲宗, 1831-1863:재위 1849-1863)이 있었고 그 후 고종(高宗, 1852-1919:재위 1863-1897)이 있었다.

모두 방계출신 국왕들이다.

그래서 철종(哲宗)을 두고 함풍제(咸豊帝, 1831-1861:재위 1850-1861)라고도 한다.

자료에 보면 광서제(光緖帝)는 겨우 4살 되는 나이에 재위하여 1880년 9살 되는 해까지 황제자리에 있었지만 거의 친정은 할 수 없었고 기록에는 1874년부터 1881년까지는 적모(嫡母)인 동태후(東太后)가 섭정하였고 1881년부터 1889년까지는 큰어머니이자 이모이기도 한 서태후(西太后)가 섭정을 하였다.

이것도 이상하게 본다면 1881년은 조선이 해체되는 시점이라고 볼 때 신중국을 동태후(東太后)라고 한 것이고 서양을 서태후(西太后)라 한 것이라면 세계삼한역사 관(觀)으로 볼 때 서태후는 즉 빅토리아여왕이라고도 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광서제는 그 후 1889년부터 1898년까지 친정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The 16th Year” 즉 16년째 되는 해가 되는 1890년으로 맞춘다면 1889년부터라고 하여도 겨우 1년이니 “The 16th Year”는 맞지 않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찾아 연결한다면 바로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이 있었다는 사실이고 그로부터 따진다면 바로 6년째 “The 6th Year”되는 해가 바로 1890년이 된다.

그렇다면 조선의 갑신정변(甲申政變)은 광서제가 비로소 친정으로 통치하기 시작하게 한 사건이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갑신정변(甲申政變)은 비록 3일천하로 막을 내렸다고 하지만 광서제가 비로서 반도역사에서 친일파로 인식되는 잉글랜드(서태후)로부터 자유롭게 되면서 친정을 하기 시작했다는 말이 된다.

때문에 당시 일본, 서태후, 고종 등은 동아시아대륙사를 만들기 위해 구상된 모두 가상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볼 것은 이어 나오는 The 16th Year of Kwang HsU and The 499th of the Corean Era. 이란 문장이다.

 

앞에서 광서제에 대한 것을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알아보았다.

우리가 가상이라고 해놓고 역사를 이야기하는 모순에 빠진을 자학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한다.

하나의 역사체제가 무너지면서 일어나는 수많은 역사음모꾼자들이 그냥 놔 두었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분리시키고 또 분리시켜야 그들이 생존할 수 있었다면 어찌보면 역사 수렁속에 또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The 499th of the Corean Era. 이 주는 의미는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영국대사관(英國大使館)이 서울 정동(貞洞)에 세워질 시기가 1890년 이었으니 한국 즉 조선시대(朝鮮時代)로 보면 499 주년이라는 뜻이다.

1890년에서 499년을 빼면 1391년이 나온다.

조선(朝鮮)이 1392년이라고 하였으나 개국되던 시점과 거의 일치함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위 초석에서 이상하게 조선에서임에도 당시 왕으로서 존재한 고종에 대한 기록이 없고 광서제만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혼란이다.

즉 당시 대조선이라는 나라의 황제가 광서제라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우리가 모화사상(慕華思想)을 가진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화(華)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고려(高麗)를 화(華)라고 하거나 화이(華夷)라 한 사실과 화려강산(華麗江山)이라고 한 사실등을 그냥 흘러보낼 말들이 아니다.

 

“Corean Era.”

 

영어의 "era"는 라틴어의 "aera"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며 age, point of time 으로 해석되고 있고 혹은 "epoch"라고 하는데 이는 절대적인 중요한 사건, 변화들이 일어난 시대를 말하고 보통 세(世)를 이야기 한다 하였다.

소위 영국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들 정체성역사에서 기원후5세기에 독일 북서부에서 브리타니아(Britannia)로 건너온 게르만인(Germanic peoples)의 한 일파를 앵글로 색슨(Anglo-Saxon)이라고 하는데 그 뒤에는 시대(era)란 단어가 꼭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era"는 기(紀), 대(代) 또는 전성기(全盛期)를 뜻하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원년(元年), 기원(紀元)등으로 쓰인 것인데 왕조(王朝)를 구분하는 것 이상으로서의 의미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우리가 냉혹하게 볼 것은 “COREAN”이 주는 어감에서 뿐만 아니라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시대(朝鮮時代)를 훨씬 크게 뛰어 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하며 더군다나 코리언이라고 하였으니 당시 코리언들이 사그라지는 형태라고 하겠지만 세계무대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과시하며 활동하였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확인 할 수 있는 문구라고 본다.

이 같은 풀이는 동양인들이 아닌 영국인들이 보는 관점이었다는 점도 고려할 때 이것이 주는 의미는 상당하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여기서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은 당시 광서제는 조선시대(朝鮮時代)에 방계출신의 황제였음을 알 수가 있다.

 

근세기의 세계사를 보면 웰스(Herbert George Wells:1866-1946)가 1920년에 역사대관(歷史大觀, Outline of History)을 출판했고, 2년이 지난 1922년에 그것을 요약하여 간추린 세계사(A Short History of the World)를 펴내게 된다.

그렇다면 적어도 1922년에 가서야 세계사대관이 작성되고 정리되었다고 감안한다면 그 이전 역사를 의식하지 않고 바위나 쇠 그리고 돌에 새겨져 있는 기록들은 거의가 당시 역사상황을 그대로 표현 한 것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종은 근세기에 역사판짜기하면서 한반도에서 새롭게 생성된 것이라고 볼 때 영국인들이 한반도 서울 정동에 영국대사관을 세울 때만 하더라도 한반도에는 별도 왕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감히”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인데 한반도에 고종이 있었음에도 고종을 조선시대에 왕으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것과 마찬가지라 그러한 일은 있을 수 없는 실없는 말이라 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반도역사가 말하는 것처럼 한반도 조선이 만주국 청(淸)의 속국이었다고 하지만 국가대 국가의 예의(禮義)상 도저히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광서제가 고종이었을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엄연히 조선 땅 고종이 있는 서울 정동에 스스로 영국대사관을 건축하면서 나라의 권력 핵심인 고종의 이름조차 각인하지 않았다는 것은 조선에서의 왕은 만주국 황제가 아닌 대조선의 광서제가 유일하였다는 것이고 우리가 아는 고종은 영국인들의 인식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이 청의 속국이 아니라 조선은 청을 포괄하는 전성기(全盛期)시대를 누렸던 "era"가 붙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절대 망각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기껏 한반도 조선(朝鮮)이라면 영국대사관 건물 초석에서 광서제를 조선시대(朝鮮時代)에 넣지도 않았을 것이고 아무리 청나라의 속국이라고 할지라도 고종이 언급되어서야 하는 것은 물론이며 실제로 청나라가 존재한 것이라면 반드시 조선과 함께 청나라를 뒤에 기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영국인이 보는 이 조선시대(朝鮮時代)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 포괄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Corean Era.” 를 조선시대(朝鮮時代)라고 역사적으로 서양인들 조차 말하고 있지만 이미 1881년 조선이 해체되었다고 하는 미국인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시대연장선상에서 볼 수 없었음에도 영국인들이 보는 시각은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후 조선이 실제 역사에서 공배기간에 있었지만 그래도 코리아시대라고 할 수 있을만치 영향력이 컸다는 것과 1890년 당시 영국대사관을 건립할 때 그곳은 분명 한반도가 아니며 건립된 곳의 통치자가 광서제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는 “Corean Era.” 시대의 황제였지만 가공인물 고종에 가려져 우리에게 보이질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광서제의 지금 들어난 사진들이 실존의 고려 광서제라고 하기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

한반도에 고종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엉크러져 세계삼한역사가 보이질 않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고종은 가상인물이며 한반도 용으로 재구성된 인물이라 할 때 비로소 역사가 풀리는 것이다. 

고려황제와 조선왕의 제도차이도 역시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이러한 자료들을 종합할 때 조선시대(朝鮮時代)가 경영한 영역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였다는 사실을 당시 영국인들의 인식에서도 알 수 있고 세계삼한역사 관점으로 보아서도 다시없는 크나큰 의미로 다가옴을 온몸으로 느끼고 전율이 느껴지는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재빨리 우리 것으로 만들어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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