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잡다

고려피리(高麗笛)가 전통 일본아악(雅樂)기 란다.

한부울 2010. 4. 2. 23:30

우리가 근세기 눈감고 있을 때 그들은 고려의 전통적인 악기마저 그들 왕실에서 이어 온 악기인 냥 아악의 역사를 꾸며 놓고 있다.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아시아고려 즉 고려연합(united corea)은 아시아와 유라시아를 통괄하여 통치한 거대한 제국이다.

그러한 거대한 고려마저 근세기에 대륙조선과 함께 한반도에 꾸겨 집어넣고 보니 지형적으로 흡수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넘쳐 날 수밖에 없는 역사는 모조리 그들이 독차지하고 그들의 문화로 둔갑시켜 버렸던 한 예가 고려피리란 악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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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피리(高麗笛)

 

 

高麗笛是日本雅樂中使用的一種橫吹管樂器,常用於高麗樂、國風歌舞和東遊中。

아악(雅樂)-옛날 궁중에서 연주되던 전통 음악으로, 향악(鄕樂)과 당악(唐樂)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高麗笛為竹制,六孔,長36厘米,內徑9厘米。類似西洋樂器의 短笛(피콜로:작은플루트)。音高比龍笛高一音。音域為F♯5~E7。


그런데 위키 영어자료에 고려피리는 일본왕실아악의 전통적으로 쓰였다고 한다.

고려적(高麗笛) is a transverse fue(피리) that is used in traditional Japanese court music

 


The komabue(高麗笛) is used in both Gagaku(일본아악) and Komagaku(高麗楽) . Historically the Oga family of musicians in Japan specialized in the komabue(高麗笛)[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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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관전서 제65권  

조선 후기학자 이덕무(李德懋)의 저술총서.<청장관>은 저자의 호이다. 1795년(정조19) 내탕금(內帑金)을 받아 아들 광규가 편집, 간행하였다.

청령국지 2(蜻蛉國志二)

기복 器服

日本之樂。三絃者。琵琶。箏。和琴。三管者。笙橫笛。高丽笛。篥二笛合一。爲三管。三鼓者。太鼓。羯鼓。鉦鼓。推古二十年。百濟國味摩之己中芳等三人來。自言學樂伎于吳。置之櫻井村。而集少年習舞。二十二年。遣犬上御田鋤於隋。學樂而來。仁明時。眞敏入唐。傳得琵琶曲


음악(音樂) 일본 악기(樂器)의 삼현(三絃)이라는 것은 비파(琵琶)ㆍ쟁(箏)ㆍ화금(和琴)이며, 삼관(三管)이라는 것은 생횡적(笙橫笛)과 고려적(高麗笛)과 필(篳)ㆍ율(篥) 두 저[笛]를 합하여 하나로 하여 삼관이라 하며, 삼고(三鼓)라는 것은 태고(太鼓)ㆍ갈고(羯鼓)ㆍ정고(鉦鼓)이다. 추고(推古) 20년(612)에 백제국의 미마지(味摩之)ㆍ기중방(己中芳) 등 3인이 와서 스스로 말하기를,


“오(吳 지금의 중국 강소성(江蘇省) 지방)에서 기악(伎樂)을 배웠다.”

하므로 앵정(櫻井 사꾸라이)이라는 부락에 두고 소년들을 모아 춤을 익히게 하였다. 22년(614)에 견상어전조(犬上御田鋤 이누가미기미노미다스끼[犬上君御田鍬])를 수(隋) 나라에 보내어 음악을 배워 오게 하였다. 인명(仁明) 때에 진민(眞敏)이 당(唐)나라에 들어가 비파곡(琵琶曲)을 전수(傳授)받았다.


삼관(三管): 아악에 쓰는 세가지 관악기(管樂器)을 말한다. 원문에는 생횡적(笙橫笛 : 생황(笙簧)인 듯하나 미상)과 고려적(高麗笛:'고마부에' 본디 고려에서 전래한 것이며 고려악(高麗樂)을 연주할 때에 썼다)과 필·율 두 저[笛]를 하나로 쳐서 삼현이라 한다고 하였으나, 필률(篳篥)은 피리 따위를 총칭하는 것이다. 또 일반적으로 삼관이라 하면 생(笙)·피리[篳篥]·저[笛]를 말한다.


삼고(三鼓): 아악에 쓰는 세 가지 타악기(打樂器). 삼고는 우리나라나 중국의 것과 종류·제도가 비슷하다.

 

                                     생황(笙簧)고려·조선시대 궁중음악에서 쓰인 악기

 

                                       필율(篳篥)고대 관악기의 하나로 군대에서 많이 씀


조선 후기학자 이덕무(李德懋)아들 광규가 내탕금(임금의 돈)을 받아 편집 간행하였다고 하는 위 청장관전서는 근세기들어 일제에 의해 수정 훼손되었다고 보는 사서중에 하나이다.

일제는 저자가 아닌 아들이 내탕금을 받아 편집한 점을 약점으로 잡아 수정하였기 때문에 저자의 뜻과 같을 수가 없어 온전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늘 위와 같은 사서에서 우리가 갈등을 느끼는 것은 중국과 “비슷하다” “같다”라는 기록들이다.

이것은 근세기 저자들과는 관계없이 무엇인가 힘에 의해 조작 또는 수정, 지어낸 말일 가능성이 있으며 위 길지 않는 문장에서 나오듯이 같다와 비슷하다는 것은 결국 실체와 “다르지 않다” “동일하다“란 말임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